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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0.05.23 이미지에 압도되다 2
  4. 2010.05.17 몹쓸 사람, 반칙의 에이스케 3
출처 - http://interview.engekilife.com/102
연극 라이프 6월 10일 기사
나의 터닝 포인트 Vol.102 - 노무라 만사이
뛰어난 표현에는 시대나 국경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하나 습득해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교겐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당근과 채찍을 받아가며, 조금씩 이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울트라 괴수의 인형이 무대를 밟을 때마다 늘어나는 것에 광희난무하는 한편, 연습에서는 엄격하게 틀(型 - 교겐 연기의 기본은 양식, 형식이다)을 철저히 교육받는 셈입니다. 팔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주의를 받고, 조금이라도 높으면 꾸중듣고, 이거야말로 조교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몸에 형식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네요.

중학교를 졸업해서 자아가 싹틀 때가 되니, 이대로 교겐시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전기가 된 것은, 17세의 때에 「삼바소(三番叟)」를 피로했던 것(披く-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공연하는 것을 세상을 향해 연다, 선보인다는 의미로 히라쿠라고 한다.).

매우 고난도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습득에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만,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하나의 관문을 돌파한 것 같은 달성 감이 있었습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획득한 것 같은 감각. 아이템 장착, 이네요(웃음).

그리고, 이때의 무대의 사진을 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나를 『란(乱)』에 기용해 주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무대에서만 표현해 온 것을, 영상의 세계에서 시도한 것이어서,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표현의 장이 교겐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로 펼쳐져 가면서, 표현자로서의 자각이 싹 튼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영국 유학을 결심

도쿄 글로브좌에서 『햄릿』으로 무대에 선 것이 24살 때, 이것이 나의 첫 현대극이었습니다. 버선도 짚신도 아닌, 구두를 신고 무대에 서는 것부터 첫 체험이었고, 목소리를 내는 법, 서는 법까지 교겐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연기했다고 하는 점에서,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었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란(乱)』도,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깊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영국의 재팬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윈저의 즐거운 여인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을 교겐으로 번안한 『허풍 사무라이(法螺侍)』에 출연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셰익스피어를 더 알고 싶고, 연출에 대한 흥미도 깊어져서, 영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이 링크된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귀국하고 나서도,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실수의 희극(The Comedy of Errors)』을 교겐으로 번안한 『실수의 교겐(まちがいの狂言)』 (2001년 처음 출연), 조너선·켄트 연출로 런던 공연도 했던 『햄릿』 (2003년), 그로부터 『리처드 3세』를 번안한 『나라 도둑(国盗人)』 (2007년),이라는 형태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교겐과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완전히 다른 토지에서 자라 온 문화지만, 중세 시대에 태어난 고전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이라고 해서 해석이나 표현 방법이 고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시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같이 현대성이 있다는 것이 굉장한 점이네요.

현대성이 없는 작품으로는 상연하는 의의가 없다

니나가와 (유키오(幸雄))씨와의 만남은, 2002년의 『오이디푸스왕』이 계기입니다만, 스케일이 큰 연출에 더해서, 아사미 레이(麻実れい) 씨나 요시다 코타로(吉田鋼太郎) 씨라는 개성적인 공연진에 대항하는데만도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애초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육식 인종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문화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정도로, 육체를 혹사시키는 것입니다. 2004년에 아테네의 고대 극장에서 『오이디푸스왕』을 재연했을 때에는, 몸이 파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웃음).

그 후, 『우리 혼은 빛나는 물과 같이(わが魂は輝く水なり)』 (2008년)로 이어지고, 이번의 『파우스트의 비극(ファウストの悲劇 - Dr, Faustus)』에서 다시 니나가와 씨와 얼굴을 맞대는 셈입니다만,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현대성을 느낍니다. 인간이 신에게 반항하고, 향락에 빠져드는 모습은, 완전히 현대의 바로 그것. PC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지금 세상은 악마적인 유혹이 흘러넘치고 있지 않습니까(웃음).

이러한 현대성에야말로, 표현하는 의의를 느끼고, 그것은 고전이든 새로운 작품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뛰어난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시대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세계에 통용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 공통의 테마입니다.

노무라 만사이 상에게 Q & A

Q 만약, 교겐시가 되지 않았다면?
A 좀 상상이 안 갑니다. 교겐이 아닌 장소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배우라던가, 연출가라고 자기를 칭한 일 조차도 없으니까요.

Q 처음으로 감동받은 연극은?
A 사이먼·맥버니(Simon Montagu McBurney)의 작품은, 유학 중 본 것 중에 최고였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표현은, 국경이나 시대를 뛰어넘는다」네요.

Q 최근의 고민은?
A 최근이라고 할까, 지금 시대에 어째서 교겐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걸까, 라는 것을 늘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민 많은 인생 (웃음)

앞으로 연극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연극의 매력은, 라이브 감. 딱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거나, 느끼거나 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강하게 요구받기도 하겠지만, 그 정도 노력할 가치가 꼭 있습니다.

앞으로 연극을 하려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능숙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유로서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기만 해서는 불충분. 기술이라는 것은 자연히 몸에 붙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습득하기 위한 노력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으로 감성을 갈고 닦는 것. 『좋은 배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반드시 뭔가 하나,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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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이 상에게 있어서 교겐시로 살아가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삼바소(三番叟)".
삼바소는 오키나(翁)라는 노·교겐 중 교겐시가 추는 의식의 춤으로, 제사적인 의미가 강하다. 초반에는 맨 얼굴로, 후반에는 검은 탈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풍요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 우리나라의 굿과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맨 얼굴일 때는 인간 사제로서의 춤, 검은 노인 탈을 쓰고 추는 춤은 마치 강신 같다고 할까.
이 삼바소가 만사이 상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라는 건, 17세에 첫 공연으로 교겐시로 살아가겠다 결심하고, 이후 만사이라는 이름을 잇는 습명 피로 공연에서도 시작은 삼바소였고,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 취임 첫 공연도 삼바소였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래 영상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고 첫 공연으로 '삼바소'를 했을 때의 영상(狂言劇場 - その壱에 수록)에서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것이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실제 공연은 40 여분 정도.

 


  • 가장 최근 만사이 상의 모습.
    왼쪽은 지난 6월 5일 NHK BS2에서 방송된 The Star(프로그램명 : ザ☆スター) 에서의 모습. 오른쪽은 연극 "파우스트의 비극"에 같이 출연하는 오바야시 모토코(大林素子) 씨 블로그에 6월 10일 올라온 사진.
    생각해보니, The Star 스튜디오 녹화는 5월 17일이었다지; 오바야시 모토코 씨는 전직 배구 선수로 배구를 은퇴한 뒤 연기자로도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파우스트의 비극에 캐스팅 된 것 같다. 키가 182cm라는데, 음....요즘 만사이 상이 연극 때문에 탱고 특훈 중이라고 하는데, 혹 이 분과 추는건가? 만사이 상 키가 이 분보다 10cm는 작은데 어떤 그림이 나오려는지 좀 궁금하네. ^^;


  • 직접 보지는 못하고 일본 팬 블로그 돌아다니면서 깨알같은 The Star 방송 후기를 봤다.
    • 초·중·고교 동창인 NHK 아나운서 시바타 유키코(柴田祐規子)씨가 나와서 '만사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인 '타케시'라고 불러대면서 학창시절의 만행(?) - 여학생 화장실 습격 사건 - 을 폭로했다던가. 그걸 또 화면 상단에 부인 치에코 씨의 얼굴을 같이 비춰줬다던가 - 치에코 씨는 학교 후배 - 만사이 상은 허둥대며 몸둘바를 몰라했다던가.

    • 드라마 아그리의 실제 주인공인 요시유키 아그리 씨의 장녀 요시유키 카즈코 씨가 출연해서, 어머니에게 있어서 진짜 에이스케 보다, 만사이 상이 연기한 에이스케 씨가 남편의 이미지로 남아버렸다....고 했다던가.

    • 음양사의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 영화 감독인 타키타 요지로 씨 모두 "3탄"에의 미련을 숨기지 않으셨다고. 그러나 팬들조차 "2"의 연장선상이라면 필요없음!! 이라는 냉정한 반응.

    • 만사이 상이 내는 목소리의 울림과 관련해서 소리를 보여주는 카메라로 분석을 해봤는데, 목소리가 전신에서 울려퍼지고 있다던가. 심지어 다리에서도 소리가 난다고. 만사이 상은 등을 반향판으로 해서 소리를 내는 이미지로 연습을 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목소리는 전방으로만 퍼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 뒤로도 울려퍼지고 있는 것을 화면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 이제 10살이 된 잘 자란 유키군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교겐시가 되고싶다.'고 인터뷰 한 것을 보고, '립서비스 겠지요.'라면서도 기뻐하는 만사이 상, 아버지 만사쿠 상의 '앞으로 30년, 40년 뒤에도 교겐이 남아있을까..'라는 말씀에는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 되셨다던가.

    • 끝에는 하고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클론이 8명 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지금도 충분히 8명 분의 일을 해나가고 계신 것은 아닌지.

  • 날때부터 앞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 걸까.
    지금은 인간문화재이신 노무라 만사쿠 상도 적극적으로 교겐시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건 대학교 재학 중이셨다고 한다. 만사이 상은 저서라든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할 시기인 17세에 비로소 교겐시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 그에 비해 어린 나이에 아빠처럼 되고 싶다, 아빠를 뛰어넘는 교겐시가 되겠다고 적극적으로 연습에 임하는 유키군은 어쩌면 정말 본인이 선언한대로 만사이 상을 뛰어넘는 교겐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노무라 가의 교겐 삼대(狂言三代). 그리고 또 새로운 삼대.
DNA의 신비!! 유키군의 모습에서 만사이 상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이고, 만사쿠 상의 모습은 점점 만조 상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만사이 상이 더 나이가 들면 만사쿠 상을 닮아 있을까나. ^^

  • 8명분의 일을 하고 계신 만사이 상 => 연극정보 사이트・스테이지 웹에 6월 13일 올라온 기사
    노무라 만사이가 이야기하는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 2010년도 프로그램
    교겐시로서의 일, 연극 배우로서의 일, 때로는 방송 출연(자주는 아니지만), 거기에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감독으로서의 일. 집에서는 아버지, 아들, 남편 그리고 후진양성을 위한 스승도 되어주셔야 하는 참으로 다망하신 분이다.

    ■노무라 만사이에게 듣는 예술감독 프로그램 소개

    11월17일(수)− 28일(일)『현대노가쿠집(現代能楽集)V-「春独丸」「俊寛さん」「愛の鼓動」』
    12월17일(금)・ 18일(토)『노가쿠 현재형극장판@세타가야(能楽現在形 劇場版@世田谷)』
    12월23일(목・祝)− 26일(일)『실수의 교겐(まちがいの狂言)』을 상연하는 외에, 인기 시리즈『MANSAI◎解体新書』도 5월과 3월28일(월)2회 개최。


음양사로 인해 생긴 관심과 호기심. 
긴가민가 하다가 한순간에 혹----- 빠져드는 계기가 된 사진 한 장

이 사람은 정말 배어나오는 고전적인 기품, 주위를 둘러싼 공기가 다른 사람이다

진짜구나

마음놓고 풍덩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왕이었다.
「아그리라는 단어에 컬쳐라는 단어를 붙여볼래. 애그리컬쳐(agriculture), 농업이라는 의미야. 대지를 개척해서 힘차게 나아가는 농업에 비할 수 있지. 언제나 앞으로 앞으로 개척해 나간다, 어딘가 당신과 통한다고 생각지 않아?」

- 모치즈키 에이스케, 아그리의 미용실 이름을 "AGRI"로 지어주며.


지난 포스트에서 못다한 에이스케 이야기를 하려고, DVD를 다시 보다가, 또 다시 빠져들고 말았다. OTL
이걸 뭐라고 할까. 딱 츤데레?
입만 살아서는~~~ 하고 빈정대면서도, 속으로는 정말 귀엽다거나, 멋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이것이 바로 '혐오스런 파슨의 일생'. 하지만, 만사이 상이 하면 묘하게 진실되게 들린단 말이지.
에이스케가 멋진 역할 담당인 이유 중 하나는 아그리가 곤궁에 처하거나, 울적해 있을 때는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구원의 손길을 던지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일로 잠못 이루면 같이 화투도 쳐주고, 선향 불꽃놀이도 해주고, 같이 나무도 올라주고. 하여간에 타인으로 인한 상심엔 손 내밀어 주면서, 자기로 인해 상처입을 땐 나몰라라 한다는 게 나쁜 남자의 표본이라 하겠다.


아그리가 다니는 여학교에서 결혼한 학생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아그리를 학교에 다니게 할 수 없다는 학부모들의 탄원이 들어온다. 아그리의 처우에 대해 결정하는 자리에 원래는 시어머니인 미츠요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에이스케가 대신 출석해서 아그리를 두둔한다.
"부모가 자식을 지키려고 하듯이, 남편은 아내를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그리는 나의 소중한 아내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입니다. 학교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전말을 복도에서 지켜본 아그리는 처음으로 에이스케를 남자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고나서, 아버지가 후계자로 내세우려고 하자, 도쿄로 날라버렸지.

에이스케가 도쿄에서 소설을 쓴대놓고, 잘 안 써진다고 술과 여자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걸 보다못해, 아그리를 도쿄로 보내 에이스케를 데려오라고 하는데, 그런다고 돌아올 에이스케가 아니다보니, 아그리도 도쿄에 눌러 살게되었다. 그러면서 미용사 체리 야마오카를 만나 미용사의 꿈을 키우게 되는데, 그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 하니, 근성을 보겠다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미완성 아기옷 100벌에 리본과 단추를 달아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이틀 밤을 새서 작업에 열심인 아그리였지만, 쏟아지는 잠에는 장사가 없는 법. 깜박 졸았다가 닭 울음에 잠이 깨서 보니, 에이스케가 열심히 바느질 중이더라는.
이렇게 에이스케의 도움으로 무사히 100벌을 완성해서 체리 야마오카의 내제자(内弟子)가 되는 데 성공한 아그리였다.

하지만, 이 전에 아그리의 격려(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하고 물으니, 아그리가 그건 바람이 정하는 거니까..라고 대답한다. 그 대답에 에이스케는 한 줄기 빛을 발견)로 소설을 쓸 수 있게 됐다며, 생활비를 몽땅 들고 튀었었더랬지.

체리 야마오카의 내제자 생활은 말 그대로 체리의 집에서 가정부 대신으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밥도 차리고, 체리의 짐꾼에 미용실에서는 견습생으로 휴가는 한달에 한 번 뿐인 생활이다.
그 한달에 한 번 있는 첫 휴가에 쥰노스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던 아그리였으나, 체리의 큰 딸래미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휘말려 집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쥰노스케가 보고 싶지만, 마음을 달래며 마당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는데, 거짓말 같이 에이스케가 쥰노스케를 안고 쓱 나타난다. 진짜 타이밍 하나는 기가막힌 남자다.
쥰노스케는 물론이고 에이스케와도 한 달만에 간신히 재회한 아그리였다.

위에 언급한 체리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큰 딸.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의 엄마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해! 반항을 하는 와중에 아그리까지 묻어서 비난한다. 자기 아이를 한달이나 방치했다가, 한달에 한 번만 만나러 가는 엄마라니, 너무하지 않느냐며. 에이스케는 시원스럽게 그럼 아그리에게 물어보자고 한다. 그날은 마침 한달에 한 번 있는 아그리의 휴가.
집에 와서 보니, 아그리는 쥰노스케를 끌어안고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있다. 에이스케는 "이 시간이 아그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아그리가 열심히 일하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쥰노스케에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라는 사탕발린 말로 달랜다. (이런말로 설득당할 것 같으면 애초에 어설프게 반항하지마!)

체리 야마오카의 미용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신진 미용사의 술책(?)으로 베테랑 미용사를 빼앗기고, 마침 요코하마에 지점을 내는 바람에 또 한 명의 베테랑 미용사를 지점장으로 보낸 체리 미용실은 견습 미용사 3명과 체리 야마오카가 격무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꾸려가는 와중에 빼앗겼던 베테랑 미용사를 다시 데려오는데 아그리가 공을 세우고, 그동안 무리한 게 쌓여 늑막염으로 쓰러져 버린다. 열이 내리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라는 의사의 말에 아그리의 병상을 지키는 에이스케는 친구 린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그리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아그리가 없으면 소설을 쓸 수 없어. 쓸 수 없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어."
한편 생사의 갈림길에서 죽은 언니들과 아버지를 만나 저승으로 가려던 아그리를 붙잡은 것은 다름아닌, 여자와 히히덕거리고 있는 에이스케의 모습. 자신은 아직 에이스케와 결판을 내지 못했다며 돌아온다.

아그리가 앓고 난 뒤, 시아버지인 켄타로는 아그리에게 미용실을 내라며 건축비를 대주고, 아그리는 자신만의 미용실을 갖게 되었다. 미용실 개점 후 고향에서 어머니 미사가 동생 이츠키와 함께 상경해서 아그리의 미용실을 보러온다. 이 와중에 건축비를 몽땅 다시마를 사들이는데 쓴 에이스케 때문에 한 때 미용실을 다시 내놔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몰렸다가 악운에 강한 것인지, 때마침 태풍이 불어서 다시마 양식장에 피해가 커, 에이스케가 사둔 다시마가 고가에 팔려 무사히 건축비를 지불하고도 이익이 남게 되었다는 사건이 일단락되고, 미사는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데, 미사가 올라온 이유는 자신이 후두암에 걸려 앞으로 생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배웅하면서 울려고 하는 아그리에게 에이스케는 또 이렇게 폼을 잡는다.
"울지 마. 울면 안돼. 어머니가 너의 웃는 얼굴을 기억할 수 있도록 웃으면서 보내드리는 거야."

하지만, 이래놓고 아그리가 시어머니 간병 때문에 같이 여행에 갈 수 없다고 하자, 쥰과 둘이 떠난 온천 여행에 다른 여자를 데려가는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지.

어머니 미사의 병이 악화되어 오카야마에 돌아온 아그리 일가족.
안그래도 에이스케가 쥰과 함께 가는 여행에 다른 여자를 데려간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은 아그리에게 어머니의 병 악화는 이중 삼중의 고통.
미사 역시 죽기전에 걱정되는 것은 딸의 행복. 왜냐하면, 아그리를 모치즈키가에 시집보낸 것은 자신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이스케는 한 번 집을 나가면 한달은 기본이고, 다른 여자의 그림자도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에이스케에게 아그리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데, 에이스케는 아그리와의 결혼은 자기 뜻이 아니었지만, 아그리와 만나지 못했다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거라며,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은 아그리의 덕분으로 앞으로도 아그리를 소중하게 여기겠다는 말로 미사를 안심시킨다. 마침 복도에서 이 말을 듣게 된 아그리도 위안을 받게된다.

중간에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지만, 다 생략하고, 에이스케의 생애 가장 몹쓸 짓은 바로 이거.
한 때 주식으로 날리던 시절에 하코네의 별장을 사서 아그리와 셋째 딸 리에의 생일 선물로 줬었는데, 그걸 다시 주식으로 날려먹고 되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그리의 생일 전날. 그 별장에서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또 이렇게 한 상 차려주는데, 에이스케가 이렇게 한 상 차려줄 때는 반드시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아는 아그리가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는다.
에이스케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계속 아그리 곁에 있을 거야." 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별장에서 돌아온 후 에이스케는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하지만, 아그리는 차 멀미 때문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미용실에 일하러 돌아간다. 에이스케는 협심증을 일으켜 앉은 채로 조용히 잠들 듯 세상을 뜬다. 아그리의 33번째 생일 바로 전날의 일이었다.

하여간에 참 여러모로 몹쓸 사람이고, 반칙인 에이스케이지만, 만사이 상은 그 천연덕스러움, 장난기 많은 가운데, 소설가로서의 치열한 창작의 고통, 안 그런듯 하면서 가족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에이스케를 잘 표현해 주셨다.
본인 스스로 처음엔 출연을 거절할까도 했었다는데, 자신이 아니면 안되는 연기를 목표로 그냥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극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작업하셨다고 한다. 에이스케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머플러도 본인 생각이었다고. 에이스케라는 인물은 현대로 말하자면 펑크 뮤지션 같은 존재니까, 기모노를 입더라도 그 형태를 약간 일그러트리는 의미로 빨간 머플러를 선택하셨다는데, 그게 멋지게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에이스케가 죽는 장면에서도, 사전에 복선처럼 별장으로 가는 길에 머플러가 바람에 날려 계곡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연출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만사이 상은 이 드라마가 종영되기 전 97년 9월에 장녀 사야코가 태어나는 경사를 맞이하시기도 하셨다.
또한 이 역으로 제6회 하시다 상 신인상을 수상하셨는데, 수상평이 "경쾌하고 또한 표표한 분위기와 대담하면서 섬세한 연기에는 기존 연기자에는 없는 독특한 존재감이 있다. 정(靜)과 동(動)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서 앞으로 크게 기대된다." 라고 한다.
아그리의 흥행으로 이후 트렌디 드라마의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자기는 어디까지나 교겐시라며 거절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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