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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The Musical Awards 남우주연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시작은 <라이온 킹>의 앙상블로 코뿔소 앞다리, 남자5, 해바라기 등등의 역할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랭구와르 역을 맡으며 단번에 대극장 주조연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모차르트!>였을 거다. 나도 초연은 아니지만, 모차르트!를 통해 박은태라는 배우를 인지하고 빠져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차근차근 경력과 필모를 쌓아가며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김생으로 신인상 (제17회 한국 뮤지컬 대상)을, <엘리자벳>의 루케니로 조연상 (제6회 The Musical Awards)을 타더니, 이번에 <프랑켄슈타인>의 앙리 뒤프레/괴물 역으로 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배우가 걸어온 길이, 이 배우의 평소 캐릭터와 그 행보가 참으로 나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뭘 하든 기초, 기본을 중시해서 수학을 시작해도 정석부터 해야 직성이 풀린다더니, 앙상블 - 조연 - 주연으로 성장해가는 길이 그렇고, 신인상 - 조연상 - 주연상 으로 업그레이드 해가는 배우의 경력이 또 그렇다. 지름길 따위는 없다. 

내가 박은태라는 배우를 지켜보기 시작한 건 2011년 모차르트! 부터였지만, 그 뒤로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때로는 폭풍 성장, 때로는 반 걸음 정도라도 꾸준히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기에 어느새 본진 자리를 꿰차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준 작품은 엘리자벳, JCS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프랑켄슈타인은 배우로서 한 꺼풀을 벗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여간에 무대 위에 박은태는 없고, 앙리와 괴물만이 오롯이 남아있더라. 참으로 탁월한 캐릭터 해석이었고, 그 해석을 고대로 객석에 전달하는 표현력이었다. 노래는 뭐 점점 더 좋아져서 괴물같다...그랬더니 진짜로 괴물을 연기할 줄이야. ^^;

남우주연상 수상이 곧 다 이루었다...는 아닌 공연 예술의 세계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보상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고, 축하한다. 본인의 바람대로 오래도록 무대 위에서 장수하는 배우가 되어주길 바란다.


 


2014 피겨 종합선수권 SP - Send in the Clowns | Score - 80.60


연아가 보여준 아름다움이 가슴에 스며들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즌의 SP으로 선택한 곡 Send in the Clowns.
올리브 그린과 노란색이 절묘하게 섞인 코스튬은 그 자체로 꽃같고, 나비같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전하는 건 들판을 장식하는 노란 들꽃. 멀리 떠나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는 건 노란 손수건. 선곡과 어울리는 참으로 멋진 색상이다. 게다가 재질이 뭔지 모르겠는데, 연아가 팽그르르 회전할 때마다 치맛단이 꽃잎처럼 활짝 펼쳐져서 은반위에 핀 노란 수선화같이 아름답다. 나풀나풀 한 마리 노란 나비같다.

점프는 더이상 찬사할 말도 부족할 정도로 가볍고 높으면서도 견고하다. 서정적인 곡이라고 역동성이 떨어질 거라는 예상을 비웃듯 한시도 쉬지않는 트랜지션과 안무. 아름다운 포지션의 스핀과 유려한 스텝. 어느 하나 억지스러운 거, 막히는 거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그저 자연스럽고 그 자체로 완벽하다.

작년에 세계선수권 때도 느꼈던 거지만, 연아는 어떤 경지에 오르다못해 득도해서 우화등선한 것 같다. 피겨 스케이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어떤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마찰력이 없는 은반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둥실 떠다니는 듯 매끄러운 움직임, 물 흐르듯 유려한 흐름, 속도, 그리고 비상(飛上). 그 모든 미끄러짐에 동반된 아름다운 몸짓까지.

그저 주어진 시간 안에 음악에 맞춰 점프를 뛰고, 스핀을 돌고, 스텝을 수행하는 게 피겨 스케이팅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훌륭한 선수는 음악과 안무와 연기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관중에게 전달하고 교감을 이끌어낸다. 연아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스케이팅과 연아와 음악 (+코스튬), 그 모든 것이 혼연일체되어 한 덩어리로 전달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일체감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온전한 전부라고 할까, 완전한 그 무엇을 만난 느낌이다.

겨울이 지나 내게 찾아온 봄 같은 연아.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과학계의 오랜 수수께끼 중의 하나가 있다.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논리적으로 돌고 도는 이 질문에 대해 과학은 그래도 알이 먼저라고 답한다.
가끔 나의 덕질에도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좋아하니까 취향이 따라가는 건지, 취향에 맞으니까 좋아하게 된건지. 아래 인터뷰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벳을 보면서 트리플 캐스팅된 삼케니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배역을 만들어갔다는 게 느껴졌는데, 그 중 은케니에게서만 느껴지는 특징 중 하나가 반복성이었다. 백년동안 계속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뫼비우스의 띠,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계속될 루케니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애초에 은태가 잡은 루케니라는 캐릭터가 그랬던 모양이다.
여기서 의문은 그거지. 난 그렇게 해석한 은태의 루케니가 정말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가열차게 회전문을 돌았지만, 그게 내 취향의 루케니라서인지, 은태가 만들어낸 루케니라서인지....하는 의문.

박은태 "부족함 채워가는 재미, 그 맛에 살죠"  | TV데일리, 2013. 07. 10 中

- 박은태를 사로잡은 루케니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루케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얘기하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원작의 내용이 정말 많이 빠졌어요. 독어 원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두 세배는 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어요. 그걸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중요한 정보만 넣다 보니 많은 것이 빠지게 된 거죠. 아쉬워요. 루케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관에게 얘기를 하고, 객석은 배심원이 되죠. 그런데 극적인 효과를 따지기 위해 중간에 배심원에 대한 얘기가 없어졌죠. 그러다보니 드라마적인 얼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죠. 하지만 뮤지컬 장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연출자의 선택이고 몫이니까 저는 루케니가 주인공이라는 마인드로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거죠. 한 신 한 신 정말 재미있어요."

-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

"루케니는 흔히 말해 사이코패스잖아요. 미친 사람인거죠. 자기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누군가를 죽여요. 상스럽고 저급한 인물이죠. 루케니 나름대로는 이상을 가지고 엘리자벳을 죽였겠지만 정말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인 거죠. 즉흥적이고 욱하고 에너지컬한 느낌이 강하죠. 그래서 저는 처음과 마지막이 가장 루케니스럽다고 생각해요. 이게 정말 루케니 얘기인 것 같아요. 물론 '밀크' 같은 곡도 좋지만, 처음 눈을 떠서 재판관에게 욕을 하고, 마지막에 다시 목을 맬 때 제일 매력 있어요. 루케니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거든요. 물론 그 사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식의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드라마적으로 루케니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을 과감하게 칼로 찌르는 거죠.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 보니 그런 신에서 사이코패스를 표현하고 싶거든요.

-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연기하면서 희열을 느끼시나요?

"무대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희열을 느끼죠. 지저스라는 인물도 마찬가지에요. 박은태라는 사람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무대에서 하잖아요. 그게 제일 재미있어요. 100년 동안 매일 밤마다 깼을 때,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요. 하지만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또 사람을 죽이잖아요. 목을 매는 것은 짜증이 나지만 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좋아서 내일을 기약하는 거죠. 그렇게 생각을 하니 재미있는 인물이 되더라고요. 항상 그렇게 표현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잠깐이지만 칼로 찌르기 전의 느낌이나 찌르고 나서의 미소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재미있어요."

이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만 해도 은태가 해석한 지저스가 내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어떤 예수象과 굉장히 유사하고, 내 취향(이라는 말을 쓰려니 죄스럽지만;)의 그 어떤 것, 그러니까 이런 저런 게 보고싶다고 생각한 그런 것을 보여줬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볼 수 있었던 거라. 하기는 모차르트! 때도 그렇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내 감성과 맞닿아있는 감성과 연기 노선 때문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런 배우를 만나게 된 게 어쩌면 나한테 행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헐, 이래서 본진인가? (새삼스레;;)

ps. 근데 인터뷰 말미에 내년에 올라온다는 햄릿에 스케줄때문에 못들어간다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뮤지컬 엘리자벳을 몇 번씩이나 보면서도 사실 "죽음"이라는 캐릭터에 100% 만족하고 돌아온 적은 별로 없었다. 이건 배우의 역량과는 무관한 드라마 엘리자벳에서의 "죽음"이라는 캐릭터의 설정같은 게 명확하지 않다고 해야하나. 캐릭터를 잡는데 정답은 없는 법이고, 연출의 노선이라는 건 하나의 큰 줄기를 정해주는 것 뿐이고, 세세한 디테일이나 배우간에 호흡, 상성은 배우 역량으로 메꿔가고 뭐 그러는게 EMK식 뮤지컬이기는 한데, 죽음과 사랑(혹은 연애;)이 결합되면서 가끔은 이 캐릭터를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있었고.

그래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나한테는 이거야 말로 "죽음"이 인간으로 육화해서 나타난 것 같다는 전율을 선사한 존재가 너무나 생생했기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009 세계선수권 SP - 죽음의 무도 | Score - 76.12


- 빙판 위에서 시작 포즈를 잡는 순간부터 피아노 건반에 맞춰 고개를 확 꺽는 오프닝 동작, 강렬한 시선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그 짧은 순간 굉장한 집중력으로 몰입, 자신 뿐만 아니라, 청중들 모두를 순식간에 음산하고 기괴한 무덤가로 초대한다.
시작부터 자신의 지배력을 과시하는 듯한 거대한 스케일의 3F-3T을 뛰는데, 난 정말 남녀 통틀어 이렇게 시원스럽고, 넓은 아이스 커버리지를 보여주면서 이대로 날아가버릴 듯한 3F-3T를 본 적이 없다. (이런 훌륭한 점프에 장난질한 심판들, 그래서 지금 피겨판에 저런 점프 뛰는 여자 선수 한 명이라도 있던가? 흥, 자업자득일세.) 이어지는 3Lz의 근사함이야 뭐 이미 최고라고 말하기도 입 아플 지경이고. (끈질기지만, 현 여싱 중에 3Lz 저만큼 뛰는 선수 있음 나와보라 그래. 하여간에 ISU든 심판들이든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뒤로 뒤로 후퇴만 하고 있으니.) 연아의 프로그램이 정말 독보적인건 점프, 스핀, 스텝, 스파이럴이 각기 하나의 기술 요소로 필요하니까 들어간 게 아니라, 이 기술 요소들이 전체 안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의미없이 뛰어야 되니까 뛰는 점프, 의미없이 들어간 스핀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저 완벽한 균형미와 우아함,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표정 연기,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란 연아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처음 음악으로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들었을 땐 죽음이 을 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연아의 죽음의 무도는 그야말로 죽음이 춤을 춘다는 느낌이다. 때로는 요사스러울만큼 유혹적이고, 때로는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이에게 자비로운 안식을 선사하고, 그리고 무자비하게 폭풍처럼 몰아치며 전쟁과 질병으로 인간을 학살하는 절대자. 그런 모습을 단 2분 30여초에 모두 담아서 선보이는 이 작품은 피겨 역사에도 길이 남을 마스터 피스다.

음악 선곡에 어울리는 의상과 안무. 그리고 그걸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걸 뛰어넘어 몸 동작에 맞춰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섬세한 음악성.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 종종 배경음악 틀어놓고 나는 나 할 것 하겠소 하는 경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음악을 잘 타기만 해도 음악성있다 소리 듣는 세계인데, 연아는 진짜 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여기선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 이런 부자연스러움도 없다. 그저 이 모든 상황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표정이 드러나고 감정이 실린다. 내가 곧 이 세계를 지배하는 죽음이라고 엔딩 포즈에서 '쾅' 폭발하는데, 그저 엎드려 경배하고 싶을 뿐이고.
참고로 위 영상에서는 그 장면이 안 잡혀서 좀 아쉬운데, 화질은 좀 떨어지지만 이 영상 - http://youtu.be/zFDQpt92ygE 에서는 엔딩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연아를 볼 수 있다.

+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내가 '완벽'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더라. 하여간 나에게 연아는 진짜 '완벽'이 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