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11.06 11. 11. 06 - 레드
  2. 2011.10.20 11. 10. 19 - 레드
  3. 2011.10.17 11. 10. 16 - 레드
레드
일   시 : 2011. 10. 14 ~ 2011. 11. 06
관극일 : 2011. 11. 06 (일) 18:30
장   소 : 이해랑 예술극장
연   출 : 오경택
캐스트 : 마크 로스코 - 강신일, 켄(조수) - 강필석

- 레드 막공을 보고왔다. 지난 번에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디테일이나 연기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 건 없었는데, 강신일 씨의 버럭질이 좀 톤 다운 되어서 살짝 아쉬웠다. 아무래도 노쇠한 로스코의 이미지 쪽으로 잡으신건지, 아니면 오늘 낮공도 있었고, 막공이라 좀 지치신 건가 싶기도 했고. 그걸 느낀 게 캔버스 밑칠하는 장면에서, 전보다 뭔가 활력이라고 할까 그런게 좀 덜 보였다. 하긴 저 넓은 캔버스를 제한 시간 안에 온통 레드로 빽빽하게 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칠하고 나서도 두 분 호흡이 오래도록 거칠더라.
강필석 씨는 두번째 봤을 때의 대사 치는 타이밍이 미묘하게 어긋나던 그런 것들이 싹 사라져 있었다. 그때는 뭔가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관극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참 편하게 지켜봤다. 극이 진행되면서 더 깊어지는 감정이나, 원숙해지는 그런 느낌이 충분히 느껴지는 막공이었다.

- 마크 로스코의 장광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하나 다 내 마음에 드는 걸까. 오늘은 영원 불멸로 남을 그 어떤 것은 야만적이고, 고통스러운 것, 그저 좋기만 한 거나 예쁘기만 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참 와닿더라. 물론 대중성과 예술성이 꼭 대립해야 하는 인자는 아니지만, 로스코의 말처럼 대중적이기만 해서는 안되는 그 어떤 것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그 세월을 관통하는 그 무엇을 간직한, 인류 보편적인 어떤 철학을 담고있는 작품이 고전이고 클래식인 거겠지.
하여간 이거 꼭 희곡이든, 책이든 내주면 안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다음에 앵콜 공연이 또 올라오는 거겠지.

- 이 연극에서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당신의 레드는 무엇이고, 블랙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빨강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벡터는 빨강을 향하고 있다. 나에게 빨강은 강백호의 붉은 머리, 토니의 상징색, 미키 상의 빨간 자켓. 정열, 위험, 뜨거움, 선명함, 천박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매력, 생명력 같은 이미지.
그런 레드를 집어삼키는 블랙은 일단은 무기력. 난 그게 제일 무서운 것 같다. 무기력.

- 오늘은 배우 박정자 씨가 이 극을 보러오셨더라.
레드
일   시 : 2011. 10. 14 ~ 2011. 11. 06
관극일 : 2011. 10. 19 (수) 20:00
장   소 : 이해랑 예술극장
연   출 : 오경택
캐스트 : 마크 로스코 - 강신일, 켄(조수) - 강필석

- 원래는 오늘 늑대의 유혹을 예매했었었다. 고퀄리티 병맛;;이라는 평도 좋고, 갑자기 60% 할인이 떠서, 캐스팅에 스케줄 잡다보니 그게 오늘이었는데, 레드를 어떻게든 한 번 더 봐야해서 - 프로그램북 사러간다는 핑계로 - 60% 할인이 아깝지만, 취소하고 레드를 보러갔다. 그리고 보고와서 레드 막공 표를 찾아 예매. --;

-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앞에 두고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입만 살아서는, 꿈보다 해몽이구나~ 하고;; 선, 면, 색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손보다 입이 부지런한 예술이라고 건방진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예술과 진지함'에 대해 저토록 깊이 성찰하는 사람들의 시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닌게지.
아, 근데 로스코 교수님 대사는 하나하나 어찌나 주옥같은지. 이거 정말 책으로 안 나왔으려나.

- 그래, 공룡이 떠드는 거야. 니들 눈엔 우리가 그냥 산소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공룡처럼 보이지.
- 차가운 이성으로 속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 총으로 강요된 명랑과 같아. (백만장자들만 간다는 식당에서 들려오는 웃음 소리가)
-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즐기면서가 아니라 그저 용감하게.
- 자기 그림을 제대로 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할지 믿을 수 없게 되버린거야.

- 젊고 명석하고, 패기 넘치는 애송이 켄. 켄이 로스코의 장광설, 가식을 비판하며 둘이 한 판 붙고나서 '저는 이제 해고인가요?' 라고 물었을 때 로스코는 '너는 처음으로 존재했어.'라고 한다. 로스코를 자극하고 그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정면으로 들이대고, 자기기만을 비판하는 켄이라는 존재에 대한 로스코의 결벽할 정도의 성찰의 결과 나온 대답이 저거구나. 켄은 로스코 안에서 '존재'로 인정받았다.

- 타협하기엔 너무나 결벽하고 예민한 자존심을 가진 로스코. 극의 마지막 장면은 다시 봐도 울컥한다. 그 뒷모습에서 풍겨나오는 어떤 거대한 산과 같은 느낌. 실제로 강신일 씨는 그리 큰 체구가 아닌데도 말이다.

- 강신일 님은 여전하신데, 오늘 강필석 씨는 뭐랄까 대사치는 타이밍이 조금 빠르거나 느리거나해서 조금 갸우뚱.
처음 볼 때는 아무래도 마크 로스코를 중심으로 관극을 했기에, 이번엔 조수 켄을 좀 더 주의깊게 봐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맞받아치는 대사 톤도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고, 대사와 대사 사이에 간격이랄까 그런 게 미묘하게 틀어지는 느낌. 강신일 님의 로스코는 그냥 그대로 자연스러웠지만, 켄의 대사는 연극톤스러운 그 느낌이 빠지지 않았다고 할까. 특히, 로스코를 추궁할 때 켄의 대사톤은 너무 형사가 취조하는 것 같아서 거북했다. 음, 막공 때쯤 되면 달라져 있으려나.
레드

일   시 : 2011. 10. 14 ~ 2011. 11. 06
관극일 : 2011. 10. 16 (일) 18:30
장   소 : 이해랑 예술극장
연   출 : 오경택
캐스트 : 마크 로스코 - 강신일, 켄(조수) - 강필석
줄거리 :
`인생에서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단 한 가지...어느 날 블랙이 레드를 집어삼키는 것이다.`
1958년-59년, 마크 로스코는 뉴욕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에 있다. 그는 비싸고 배타적인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화를 작업 중이다. 그는 조수 켄에게 그저 물감을 섞고, 프레임을 만들고, 캔버스를 그리는 일을 주문했으나, 켄은 무모하게도 로스코의 예술 이론과 그런 상업적인 프로젝트의 작업에 응한 것에 대해 질문한다... [출처 > 플레이DB]

무대가 화가의 작업실이라는 걸 알려주는 테라빈유의 향기도 좋았고. 역시 베테랑 2인극의 힘이란. 좋은 연극이었다....라고 하면 로스코 씨가 다다다다 좋아?!! 그냥 다 좋지?!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안목, 식견은 어디다 버리고 온거야? 라고 타박을 줄 것만 같다.


사실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가 누군지도, 그의 작품이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포스터의 배우 두분 바라보고 예매한 연극이었는데, 이거 사전지식이 좀 필요한 극이었다. 마티스, 피카소, 폴락까지는 어떻게 알겠는데, 난 마크 로스코라는 분은 몰랐어서; 그래서 극장 입구에 미리 공부 좀 하라고 판넬을 세워뒀더라. 그거라도 안 읽고 들어갔으면 극을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웠을 것 같다.

강신일 씨는 그동안 영화,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어서 그만큼 기대도 컸고, 연극 무대에서도 그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발성이 얼마나 좋으신지, 심지어 중국집 국수(미드에 자주 등장하는 종이 박스에 든 그거)를 드시면서도 대사가 뭉개지지 않는 경지를 보여주셨더랬다. 내 자리가 앞에서 두번째 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심지어 속삭이는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리더라. 마크 로스코라는 인물은 화가이면서 동시에 여러 학문에 박식한 인물이라 사용하는 용어 자체가 참 생소한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 거기다 강의하시는 것처럼 대사량도 엄청 많아서 저거 다 외우시느라 고생 좀 하셨겠다 싶었다.
연기 내공이 쌓일대로 쌓이신 분들이 보여주시는 카리스마란 이런 건가 싶게, 정말 이게 무대와 배우가 아니라 마치 그 캐릭터 자체인듯 자연스럽게 연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극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건 뭐라고 해야하나 따로 어떤 장치나 분장이 없어도, 과장된 표정, 몸짓 없이도 그 인물이 될 수 있는 자연스러움. 이런 걸 보고싶었다고 진심으로 기뻤다. 극의 마지막 대가의 뒷모습 위로 빨간 조명이 비춰지는데, 그 뒷모습에 눈물이 차오르더라. 아, 이것이 늙은 사자의 포효, 타협하지 않는 대가의 뒷모습이구나 싶어서.

강필석 씨. 이 연극을 통해 처음 뵙는 배우인데, 강신일 씨에 밀리지 않고 버틴 것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셔서 역시 발성은 뒤지지 않으시고, 어제는 붓질 하시다 붓을 날려버리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셨는데, 살짝 톤 다운된 연기로 강신일 씨를 받쳐주는 연기가 참 좋았다. 배역에 충실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그러다 로스코와 갈등을 빚는 장면에서 팽팽하게 맞서는 씬에서의 연기도 너무 과하지 않게 절제하는 연기가 꽤 마음에 들었다.

주옥같은 대사가 정말 많아서, 다 기억을 못하겠는게 한이다. 나의 지적 허영심을 찔러대는 대사들, 속물 근성을 비웃으며 정작 자신이 그 속물이라는 걸 지적받으면 아픈 말들. 그래서 한 번 보려고 했던 거, 결국 프로그램 북이 아직 안 나왔으니, 그걸 사러간다는 명분으로 한 번 더 예매했다. 희곡이나 책이 있다면 꼭 구해보고싶은 작품이다.

- 이해랑 극장은 울림이 참 좋은 극장인데, 그게 객석에서 사소한 부스럭거림, 툭탁거리는 소리까지도 잘 울린다는게 좀 단점.
- 명색이 redlover인데, 마크 로스코라는 작가를 몰랐다는 거에 일말의 죄책감 같은걸 2g쯤 느끼고 돌아왔다. 극 내내 부르짖는 '레드'에 대한 정의, 열망 같은 것들을 2번째 보면 좀 더 잘 알 수 있으려나.
- 극중에 로스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진짜 담배가 아니라서 참 다행. 처음엔 진짜 담배인 줄 알고 식겁했는데 - 난 담배 냄새 맡으면 멀미를 해서 - 그냥 낙엽 태우는 냄새 비슷한 탄내가 나더라. 그리고 물감 섞는 중에 계란 노른자만 분리해서 넣는 거 보고, 유화에는 계란 노른자도 쓰이는 구나, 강신일 씨 손놀림에 살짝 감탄.
- 까탈스러운 로스코 씨의 열강을 들으며 켄의 머리 위로 이런 말풍선이 보이는 것 같았다. "Why so serious?"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