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interview.engekilife.com/102
연극 라이프 6월 10일 기사
나의 터닝 포인트 Vol.102 - 노무라 만사이
뛰어난 표현에는 시대나 국경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하나 습득해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교겐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당근과 채찍을 받아가며, 조금씩 이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울트라 괴수의 인형이 무대를 밟을 때마다 늘어나는 것에 광희난무하는 한편, 연습에서는 엄격하게 틀(型 - 교겐 연기의 기본은 양식, 형식이다)을 철저히 교육받는 셈입니다. 팔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주의를 받고, 조금이라도 높으면 꾸중듣고, 이거야말로 조교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몸에 형식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네요.

중학교를 졸업해서 자아가 싹틀 때가 되니, 이대로 교겐시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전기가 된 것은, 17세의 때에 「삼바소(三番叟)」를 피로했던 것(披く-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공연하는 것을 세상을 향해 연다, 선보인다는 의미로 히라쿠라고 한다.).

매우 고난도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습득에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만,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하나의 관문을 돌파한 것 같은 달성 감이 있었습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획득한 것 같은 감각. 아이템 장착, 이네요(웃음).

그리고, 이때의 무대의 사진을 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나를 『란(乱)』에 기용해 주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무대에서만 표현해 온 것을, 영상의 세계에서 시도한 것이어서,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표현의 장이 교겐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로 펼쳐져 가면서, 표현자로서의 자각이 싹 튼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영국 유학을 결심

도쿄 글로브좌에서 『햄릿』으로 무대에 선 것이 24살 때, 이것이 나의 첫 현대극이었습니다. 버선도 짚신도 아닌, 구두를 신고 무대에 서는 것부터 첫 체험이었고, 목소리를 내는 법, 서는 법까지 교겐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연기했다고 하는 점에서,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었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란(乱)』도,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깊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영국의 재팬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윈저의 즐거운 여인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을 교겐으로 번안한 『허풍 사무라이(法螺侍)』에 출연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셰익스피어를 더 알고 싶고, 연출에 대한 흥미도 깊어져서, 영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이 링크된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귀국하고 나서도,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실수의 희극(The Comedy of Errors)』을 교겐으로 번안한 『실수의 교겐(まちがいの狂言)』 (2001년 처음 출연), 조너선·켄트 연출로 런던 공연도 했던 『햄릿』 (2003년), 그로부터 『리처드 3세』를 번안한 『나라 도둑(国盗人)』 (2007년),이라는 형태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교겐과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완전히 다른 토지에서 자라 온 문화지만, 중세 시대에 태어난 고전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이라고 해서 해석이나 표현 방법이 고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시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같이 현대성이 있다는 것이 굉장한 점이네요.

현대성이 없는 작품으로는 상연하는 의의가 없다

니나가와 (유키오(幸雄))씨와의 만남은, 2002년의 『오이디푸스왕』이 계기입니다만, 스케일이 큰 연출에 더해서, 아사미 레이(麻実れい) 씨나 요시다 코타로(吉田鋼太郎) 씨라는 개성적인 공연진에 대항하는데만도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애초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육식 인종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문화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정도로, 육체를 혹사시키는 것입니다. 2004년에 아테네의 고대 극장에서 『오이디푸스왕』을 재연했을 때에는, 몸이 파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웃음).

그 후, 『우리 혼은 빛나는 물과 같이(わが魂は輝く水なり)』 (2008년)로 이어지고, 이번의 『파우스트의 비극(ファウストの悲劇 - Dr, Faustus)』에서 다시 니나가와 씨와 얼굴을 맞대는 셈입니다만,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현대성을 느낍니다. 인간이 신에게 반항하고, 향락에 빠져드는 모습은, 완전히 현대의 바로 그것. PC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지금 세상은 악마적인 유혹이 흘러넘치고 있지 않습니까(웃음).

이러한 현대성에야말로, 표현하는 의의를 느끼고, 그것은 고전이든 새로운 작품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뛰어난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시대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세계에 통용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 공통의 테마입니다.

노무라 만사이 상에게 Q & A

Q 만약, 교겐시가 되지 않았다면?
A 좀 상상이 안 갑니다. 교겐이 아닌 장소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배우라던가, 연출가라고 자기를 칭한 일 조차도 없으니까요.

Q 처음으로 감동받은 연극은?
A 사이먼·맥버니(Simon Montagu McBurney)의 작품은, 유학 중 본 것 중에 최고였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표현은, 국경이나 시대를 뛰어넘는다」네요.

Q 최근의 고민은?
A 최근이라고 할까, 지금 시대에 어째서 교겐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걸까, 라는 것을 늘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민 많은 인생 (웃음)

앞으로 연극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연극의 매력은, 라이브 감. 딱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거나, 느끼거나 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강하게 요구받기도 하겠지만, 그 정도 노력할 가치가 꼭 있습니다.

앞으로 연극을 하려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능숙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유로서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기만 해서는 불충분. 기술이라는 것은 자연히 몸에 붙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습득하기 위한 노력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으로 감성을 갈고 닦는 것. 『좋은 배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반드시 뭔가 하나,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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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이 상에게 있어서 교겐시로 살아가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삼바소(三番叟)".
삼바소는 오키나(翁)라는 노·교겐 중 교겐시가 추는 의식의 춤으로, 제사적인 의미가 강하다. 초반에는 맨 얼굴로, 후반에는 검은 탈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풍요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 우리나라의 굿과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맨 얼굴일 때는 인간 사제로서의 춤, 검은 노인 탈을 쓰고 추는 춤은 마치 강신 같다고 할까.
이 삼바소가 만사이 상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라는 건, 17세에 첫 공연으로 교겐시로 살아가겠다 결심하고, 이후 만사이라는 이름을 잇는 습명 피로 공연에서도 시작은 삼바소였고,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 취임 첫 공연도 삼바소였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래 영상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고 첫 공연으로 '삼바소'를 했을 때의 영상(狂言劇場 - その壱에 수록)에서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것이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실제 공연은 40 여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