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3. 07. 26 ~ 2013. 09. 07
장 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관극일 : 2013. 07. 27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소현, 죽음 - 전동석,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김이삭, 어린 루돌프 - 강동유, 루도비카/마담볼프 - 한지연, 막스 공작 - 오성원, 헬레네 - 박선정, 에스터하지 - 홍금단, 라우셔 추기경 - 이지수, 그륀네 백작 - 윤승욱, 슈바르첸베르크 장군 - 정태준 외
줄거리 :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가 죽은자들을 깨우며 과거로 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를 구해준 죽음의 사신 토드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엘리자벳은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로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토드는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함께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가자고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남편과의 갈등,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토드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엘리자벳을 사랑한 토드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칼을 건네게 되는데... [출처 > 플레이DB]

- 작년에 볼만큼 보고, 질리도록 회전문 돌았던 엘리자벳이 새로운 캐스트, 새로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블루스퀘어라는 공연장은 시설면에서 썩 좋은 공연장이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접근성에 있어선 최고였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음향이나 시설은 좋지만, 접근성이 최악인 공연장이다.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 ㅠ.ㅠ 가뜩이나 러닝타임도 긴 공연, 평일 저녁공 보고 귀가길이 매우 걱정된다.

- 공연 얘기를 해보자면, 초연과 연출의 방향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쓰잘데기 없는 '사랑과 죽음의 론도'라는 오글거리는 넘버를 집어넣어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로맨스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도장 쾅! 찍어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게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의인화에서 죽음의 신, 마왕 쯤으로 인격을 부여해버렸다는 데서 원작 파괴가 아닐런지. 뭐, 이것도 다 원작자가 그렇게 하라며 친절하게 넣어준 곡이고 보면 할말이 없기는 하지만. -_-+

그리고 루케니 캐릭터에 변화가 생겼는데, 화자로써의 면에 좀더 무게가 실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루케니라는 캐릭터와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비중이 초연에서 50:50 이었다면, 재연에서는 40:60 정도로 기울었다는 느낌.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장면이 '결혼의 정거장'이다. 작년에 후기에도 썼지만, 이 인형극에서 루케니는 직접 황실의 인물들을 조종하는 넘치는 권능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난 여기서 죽음이 배후라는 설명 외에 또 다른 장치, 예를 들어 루케니 역시 죽음이 조종하는 또 다른 인형이었다는 설정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했는데, 재연에서 아예 루케니는 인형극 밖으로 빼고, 황실 인물을 조종하는 건 죽음의 천사가 맡아서, 죽음의 입김을 좀 더 강화했다.

아, 또 공연 러닝 타임을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안내 방송에서 1막 1시간5분, 인터미션 15분, 2막 1시간20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실제 공연 시간은 뭐 1막 1시간10분여, 2막 커튼콜 포함 1시간 20분에 맞춰지더라. 작년에 2시간 45분 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5분 줄이는 거지만, 저 5분 줄이려고 음악 박자를 좀 더 빠르게하고, 대사를 더 빨리 말하고, 장면 전환도 빨리하고 등등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 그러나 1막에서 그 5분 줄이기는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고; 
보면서 장면 전환이 전반적으로 빨라진 것 같기도...하는 부분은 그게 자연스럽다기 보다 뭔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고, 게다가 정신없이 조명 사고나지(프리뷰가 아닙니다! -_-++), 마지막 장면에선 배우가 늦게 등장하는 일까지; 하여간 러닝 타임을 줄이려면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보인다.

- 소현 엘리는 내가 전작을 본 적이 없어서 영상으로 뜬 '나는 나만의 것' 밖에 본 게 없는 배우였는데, 일단 저~엉~말 예쁘다. 외줄 타다 떨어져서 죽음의 품에 폭 안겨서 나오는데, 진짜 인형같더라. 다만 여기 등장하는 죽음과 죽천들이 회전 무대에서 줄줄이 비엔나처럼 등장하는 건 굉장히 우스웠다. 하다못해 방향이라도 좀 정면을 향하던가. 회전 무대 기준으로 바깥쪽을 보고 줄줄이 돌아나오는데 진짜 코메디도 아니고. 초연 때처럼 죽음 혼자 무대쪽을 바라보고 등장하게 하는 게 훨씬 멋지다. 죽천을 꼭 등장시키고 싶으면 회전무대에 태우지 말고, 그냥 뒤에서 걸어나오게 하라고;

아, 하여튼 등장부터 소녀소녀 예쁨예쁨 소현 엘리는 죽음이고 요제프고 한 눈에 반하게 할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라는 게 너무 잘 이해가 되더라. 1막 마지막의 하얀 드레스는 물론이고, 2막의 헝가리 대관식 드레스까지도 아름답게 어울리고, 하다못해 잠옷 차림에 하늘색 숄을 두르고 있어도 인형처럼 예뻤다.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소리의 변화도 좋았고, 노래도 성악 출신 답게 잘 부르고, 가끔 중저음에서 소리가 잘 안나오기도 했지만, 무난무난. 아, 나는 나만의 것에서 끝에 확 올려부르는 건 정말 짜릿하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기는 앙칼지게 분노하는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기혼 여성이고, 아이 엄마라는 점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는데, 최후 통첩을 날리는 장면이나 말리디 씬에서 보여주는 분노의 표현이 굉장히 진정성이 느껴지더라. 게다가 소현 엘리가 좋은 건 그렇게 분노를 터트릴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여왕님이라는 거. 루돌프 추도식에서 보여주는 슬픔도 아, 역시 엄마는 다르구나...싶고.

- 작년에 루돌프에서 죽음으로 변신한 동석이. 이날이 첫공임을 감안(;)하고 보면, 생각보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막판 뒤집기ㅋㅋㅋㅋㅋ
일단 동석이 노래야 워낙 잘하니까, 그 부분은 믿고 보는데, 노래에 강세를 넣는 부분이 류토트를 많이 떠올리게 하더라. 아직은 젊고, 그래서 미숙하고 거친데, 힘이 넘치는 죽음이었다.
마지막 춤에서 춤 안 추는 거 완전 환영하고, 그런데 그 휘리릭~ 하는 느끼하고 과장된 손동작을 동반한 왕자님 인사법 좀 다듬어주라. 시도때도 없이 피식 웃음이 새나옴. 특히 마이얼링 등장 씬에서 그 권총들고 이상한 각기 추는거 진짜 너무 웃겨서, 난 그 심각한 장면에서 안 웃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날 제일 좋았던 곡은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 이었는데, 루돌프일 때도 워낙 절창으로 잘 불러줬는데, 죽음 포지션에서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는 지배자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다만 같이 듀엣하는 이삭 돌프 목소리가 좀 묻히는 감이 있어서 이건 좀 아쉽지만, 그게 어디 동석이 탓이겠냐며. 그런 밸런스 맞추라고 음향팀이 존재하거늘.
베일 씬에서 등장이 늦은 건 아마도 의상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무대에 서는 건 배우니까 큰 공부한 셈치고.

아, 재밌었던 거. 애기 루돌프한테 다가가서 '소용없어~ 그만두렴~'하는데, 웬지 저 앞에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ㅋㅋㅋㅋㅋ 저 끈끈한 유대감은 뭐지 싶더라.

- 초연에 이어 재연에 참여한 은케니는 식상함을 탈피해보자는 거였는지 갑자기 레게 머리로 등장. 프레스콜 사진 떴을 때는 좀 뜨악했는데,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루케니에 대한 연출의 방향 자체가 초연과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해설자로서 무게가 좀 더 기울었는데, 프롤로그에서의 첫 대사인 '이런 젠장' 부터 확 다르더라. 작년에 신경질적으로 내뱉던 그 대사에 힘을 쫙 빼고, 지겨워, 또 시작이냐 싶은 나지막한 톤. 하기는 백년동안 매일 밤 똑같이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겠지. 

전반적으로 대사톤은 좀 더 차분해졌고, 노래도 묵직해졌는데, 몸놀림은 반대로 가벼워지고, 연기도 좀더 여유가 생겨서 제대로 능수능란. 밀크는 앙상블 박력이 좀 많이 아쉬웠는데, 은케니 목청은 더 좋아져서 아주 쩌렁쩌렁 질러주는데, 진짜 홀 전체를 목소리로 가득 채우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게다가 겟세마네로 단련되어 그런가 고음 샤우팅에 자신감이 붙어서 좍좍 질러주는 거 늠 좋더라. 
키치에서 관객 조련도 언제 저렇게 넉살이 늘었나 싶게 능글맞고, 무대에선 진짜 말 그대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데, 볼프 살롱에서도 그렇고 저 깨방정에 잔망스런 팔랑거리는 생물은 뭔가요, 요정? 소악마인가? 싶을 정도였; (아니, 요정이라고 해도, 팅커벨, 엘프 이런 종류가 아니라, 한 여름밤의 꿈 같은데 나오는 나쁜 장난을 즐기는 그런 요정;)

캐릭터가 많이 어려진 것 같아서 후반부 루케니의 광기는 어떻게 표현하려나 했더니, 뭐 기우였는지, 침몰하는 배 씬에서부터 눈빛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하더라. 줄칼을 받아들고 심문을 받을 때도 대사톤은 프롤로그에서 처럼 한톤 다운된 평이한 어조. '그런데 나타나지 않던데.' 라며 줄칼로 면도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섬뜩함은 여전하더라. 그러더니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도 별다른 광기를 뿜어내지 않으면서 굉장히 일상적인 일인냥 살인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퇴장. 살인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사이코패스였다.

아, 은케니도 웃겼던거. 루돌프가 가명으로 쓴 기사를 읽는 장면에서 '황태자 루돌프...?' 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거, 낯설지가 않아요~ 뭐, 덕들만 속으로 웃을 수 있는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 그 외 초연 때부터 잘해줬던 민영기 요제프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전히 잘 해내고 있는 이정화 소피(하지만, 그 경박한 발차기만은 좀 ㅠㅠ)가 든든하게 극을 받치고 있고, 김이삭 루돌프도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는데, 엘리자벳의 절반은 앙상블이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앙상블의 박력이 모자라는 점이 많이 아쉽다. 떼창에서의 하모니나 목소리의 합은 괜찮은 편인데, 첫음 얼버무리는 거는 계속 신경쓰이고, 개개인의 끼가 좀 부족하달지. '모두 반가워요.'나 정신병원 장면에서 너무 얌전하고 심심하다. 중소극장 주연급을 앙상블로 데려온 초연이 캐사기급이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뭐, 이제 시작이니 공연 진행되면서 앙상블도 로딩이 될거라고 빌어본다.

엘리자벳이 돌아오기는 돌아왔구나.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28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4월 19일 이후로 거의 열흘 만에 보는 엘리자벳인데, 그냥 내가 뮤지컬 엘리자벳에 정이 떨어진 건가 싶은 기분이 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청아하게 울리는 명창 탕슨생 목소리는 참 반가웠고, 오랜만에 만나는 은케니, 류토트가 쨍하니 부딪히는 엘리자벳 배틀도 꽤 마음에 들었지만, 그뿐. 이후 공연은 계속 삐걱삐걱. 배우들도 강철 성대 민제프를 제외하면 다들 목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던 듯하고. 이게 초반에 좋은 기억이 있는 공연이라, 뒤로 갈수록 더 나아지고 좋아지는 부분이 보여야 할 텐데, 그런 건 눈에 안 들어오고 자꾸 실수하는 거, 오케스트라와 배우가 합이 안 맞아서(아직도!!!) 박자 틀리는 거만 들어와서 내내 마음에 차지 않는 공연 보느라 심드렁한 상태였다. 그렇게 이날의 엘리자벳은 또 이렇게 버리는 건가 하던 차에 딱 하나 "베일은 떨어지고" 장면이 마음에 들어서 후기 남길 마음이 되었다.

- 옥엘리는 처음 한 번 보면 참 잘한다 싶은데, 이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다 보면, 왜 이리 아쉬운 부분이 자꾸 늘어가는지. 캐릭터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표현이 단순하고 거칠다. 예를 들어 우는 연기를 한다고 치면, 통곡하는 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거,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거,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거 등등 다양하게 상황과 감정에 맞춰 연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아서 몇 개를 돌려가며 쓰는 것 같다. 그리고 곱고 예쁜 목소리로 노래는 참 잘하는데, 그 잘하는 노래에 감정을 실어서 절절하게 불러주면 좋겠는데, 이것 역시 얹어지는 감정의 종류가 단순해서 아쉽다. 앞으로 남은 공연은 한 번 빼고는 다 옥엘리라 심란하다. 더 우울한 건 이대로 나에겐 레전드 없이 엘리자벳이 끝날 거 같아서.

- 류토트와 은케니가 만나면 확실히 류토트가 은케니 잡아 누르는 게 보여서 좋다. 그래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해서, 조금만 방심해도 치고 오르는 은케니라 제어에 애를 먹기는 해도, 어쨌든 그래도 류토트가 우위라는 건 보이거든. 특히 엘리자벳 배틀에서 은케니가 '그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 라는 듯 버럭 대는 거 찌릿하고 노려보는 류토트 눈빛에서 '저 시키, 저거저거 말도 드럽게 안 들어 쳐먹는 시키, 저걸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도 보인다고 하면 오버일까.ㅋㅋㅋ

- 이날 은케니는 뭐랄까 상당히 삐쭉빼쭉한 상태. (겉모습도; 공연하면서 이발 안 하는 게 무슨 징크스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 머리가 상당히 많이 자라서 이젠 어깨에 닿을 지경인데다가 복슬복슬하기까지 해서 아주 정신 사납더라.) 자기 멋대로 휘젓고 다니고 싶은데, 똘끼로도 넘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위에서 떡하고 버티고 있으니 짜증스럽지만, 일단 죽음이 시키는 대로 하기는 한다만, 누르는 힘이 조금만 약해져도 퉁겨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더라. 인형극 씬에서도 그렇고, 카페 씬에서도 어떤 느낌이냐면, '이 내가 너(죽음)를 위해 움직여주고 있는데, 맡겼으면 참견하지 말고 지켜보기나 해!' 라는 것 같다. 전권을 위임받아 아낌없이 권력남용~ 그래서 이런 은케니가 딱 내 취향이다. 그리고 그럴 능력이 충분하잖아? Milk에서 민중을 선동하는 거 봐라. 내가 상사였으면 특별 보너스 엄청나게 챙겨줬을 거다. 이날도 다른 곡보다 Milk에서 만족도가 최고였던 것도 있고. 어우, 진짜 그 기세 좋은 앙상블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매번 전율이다.

- 그리고 이날 처음 본 디테일인데, Kitsch에서 Eljen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 뒤에 정지 화면처럼 멈춰있던 인물들이 윤정열 배우가 '헝가리의 자유를 준~'하면서 움직일 때, 은케니가 큐사인을 주는 거 보면서 오~ 이것 봐라? 싶더라.
프롤로그에서 보이지 않는 실로 좀비들을 쥐락펴락하는 것, 엘리자벳의 결혼 생활 4년을 짤막한 인형 단막극으로 보여주는 것, 정지된 카페 씬을 얼음 땡 하는 것처럼 커피 한 잔으로 깨우는 것에 이어서 Eljen까지. 루케니가 엘리자벳에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을 잘 파악하고 연출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은케니 기세가 꺾인 4월 초의 사건이 아쉽다. 햄릿 때 매주 디테일이 확확 달라지는 거 보면서, 은케니도 그런 발전 방향이 보였는데, 한 번 굴절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거라, 만약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어떤 은케니를 보여줬을지 뭐 그런 아쉬움. 사실 지금도 충분히 잘 해주고는 있지만.

- 그동안 은태 스케줄에 맞추다 보니 승돌프보다 동돌프를 압도적으로 많이 보게 되었는데, 엘리자벳에서 동돌프의 변천사를 보면 동석이가 어떻게 무대에서 힘을 빼는 법을 배워가는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달까. 사실 무대에서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게 더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무슨 일이든 안 그렇겠는가만은 적정선을 찾는 것. 균형을 잡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류동 그림자 송은 서로의 상성이 가장 잘 맞기도 해서 듣기 좋은데, 이날은 앙상블의 웅장한 합창이 더 귀에 들어오더라. 동돌프 거울송은 요즘 보면 거의 유서 같은 느낌. 애초에 엄마의 도움 같은 거 기대하지 않는 게 보여서 엘리의 거절이 당연하게 생각될 정도. 승돌프는 그래도 찌질하기는 해도 매달리는 느낌인데, 동돌프는 처음부터 포기한 것 같아서 그냥 마지막으로 엄마 목소리나 들으러 왔니 싶어 짠하다.

- 하여간 내도록 옥엘리에 시큰둥하다 보니, 그 짝이라고 할 죽음에게마저 별 감흥이 일지 않아서, 아무리 루케니, 루돌프가 잘해도 오늘 엘리는 버렸구나 할 때, 정말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극의 마지막 베일 씬에서 죽음의 마중을 맞이하며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옥엘리가 닭똥 같은 눈물을 후두둑 떨구는 게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거다. 그리고 옥엘리와 만나면 유독 차가운 절대자가 되는 류토트가 옥엘리를 안아주면서 "세상을 스치며 나를 지키려 했어~" 노래하는 옥엘리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순간 울컥하더라. 그 짧은 단 한 순간의 장면으로 나는 그날 공연을 버린 셈 치려던 걸 다시 주워 올렸다. 그 장면이야말로 죽음만이 엘리자벳의 유일한 위로이며 위안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에. 그러나 명이 다한 엘리를 끌어안은 류토트의 표정엔 애잔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아서 이것도 재미있었다.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9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이날 공연의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루케니가 극을 장악하게 되면 어떤 극이 되는지 그 끝을 본 느낌.
그것도 보통의 루케니가 아니라 완벽하게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린 사이코패스 은케니였으니···. 간혹 케니자벳이냐는 소릴 듣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건 애교였다. 이날의 공연이야말로 작가 은케니의 각본에 연출 은케니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판타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를 섞은 게 아니라, 살인자 루케니의 구차한 변명 이야기 쇼로 보이더라. 
그런데 이게 은케니의 의도라기보다는 캐릭터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다. 은케니는 평소에 하던 대로 자기 역에 충실하게, 지나치게 열심히(칭찬아님) 했다. 문제는 이날 송토트가 약해도 너무 약해서 극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는 데 있다. 죽음이 저리 약해졌으니, 은케니가 힘을 좀 뺐다면 균형이 맞았을까? 천만의 말씀. 죽음이 상대해야 하는 건 정작 루케니가 아니라 엘리자벳인데, 이날 엘리자벳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억세고 강한 옥엘리였다. 뿐인가 영원한 엘리바라기 민제프와 소유권 대결에 루돌프를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그러니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애초에 약해지면 안 되는 캐릭터다.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죽음이 되더라도 본질은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시간의 지배자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이 뮤지컬 엘리자벳은 원탑 여주인공 엘리자벳과 죽음과 루케니의 삼각 구도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극이 산으로 가더라. 

- 김음감, 부음감 딱히 가리지는 않았지만, 부음감일 때는 박자가 조금 빠르고, 오케스트라 반주에 여유가 없이 타이트해서 평소에 음을 끄는 버릇이 있는 배우들은 다들 삐걱삐걱. 이 어긋남이 연기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대사를 날리거나(옥엘리), 가사를 틀리거나(민제프). 보는 내내 이봐요, 그래서 당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싶었던 공연이었고, 여기에 대답을 준 캐릭터는 은케니 뿐이었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을 뿐이고. ㅠ.ㅠ

- 내가 송토트의 가창력에는 큰 기대가 없어서 참 그동안 관대한 기준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날의 송토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게 부른 넘버가 단 한 곡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관대한 기준을 더 깐깐하게 올린 것도 아닌데, 거기에 한 참 못 미쳐서 이게 다른 배우였다면 가루가 되도록 조목조목 까던지, 아니면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거다. 일단 목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었던 게, 노래를 대부분 가성으로 부르는데, 가성으로 부른다고 소리에 힘이 빠져서야. 연극에서 배우가 속삭인다고 객석에서 대사 안 들리는 거 봤나? 성악가나 연주자가 피아니시시모로 연주한다고 그 소절이 객석에서 안 들리는 거 본 적 있나? 그리고 고음 음역 안돼서 음 낮춰 부르면서 거기서 또 음이 플랫되는 건 또 뭔가. 하여간에 죽음 등장할 때마다 못마땅한 거 쌓여있는데, 이날 따라 연기도 뭔가 뚝뚝 끊어지는 듯해서 감정이 이어지지도 않더라.

'마지막 춤'에서 춤추는 동작 집어넣으면서 노래에 대한 집중을 잃은 건가 싶어서, 난 그 춤추는 거 차라리 뺐으면 좋겠고, '나는 나만의 것 rep.'에서 주인은 나야~ 하는데 옥엘리, 민제프 소리에 다 먹혀서 안 들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는 진짜 불쌍할 정도로 옥엘리에 밀리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상대가 승돌프라 그 정도였지 동돌프 였으면 듀엣 아니고 솔로라고 착각했을 거다. 후반 사비 부분은 앙상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

- 그런데다 옥엘리가 다시 날뛰는 망아지로 돌아와서 이런 재앙이 ㅠ.ㅠ 그리고 한 번 어긋나면 계속 어긋난다고, 옥주현 씨의 음을 질질 끄는 나쁜 버릇이 전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이날 유독 심하게 거슬렸다. 그건 박자를 타이트하게 딱딱 끊어내는 부음감과 만나서 더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민제프도 거기에 해당해서 가뜩이나 후음 길게 빼서 박자 미는 버릇이 있는 둘이 만나니 둘이서 부르는 듀엣이 계속 오케랑 어긋나고 두 사람의 하모니도 어긋나서 듣기 괴로웠다. 특히 2막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 같은 경우는 옥엘리, 민제프, 오케스트라가 정말 다 각각 따로 놀아서 수습이 안 되는 지경이었는데, 민제프는 가사까지 틀리셨지.

- 그리고 이날의 원작 파괴범 은케니. 난 처음부터 엘리자벳이라는 극이 해설자 루케니의 시선을 통해서 보는 한 여인의 일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루케니 친화적인 관객이었지만, 이날은 그 선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애당초 원작자는 루케니에게 참으로 많은 권능을 부여했다. 이 뮤지컬에서 액자 틀로 형상화된 무대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건 루케니가 유일하다.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권리,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라고 할 수 있는 권리. 극 안에서는 죽음이 절대적인 지배자이지만, 그 죽음조차도 루케니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존재가 아닌가. 판관이 그러잖는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듣기 싫다고. 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죽음"을 실체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루케니다. 그러니 케니자벳이 된다 한들 이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엘리자벳을 사랑해서 그녀를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가 루케니가 꾸며낸 허구의 변명 거리로 전락하는 건 다른 문제다. 원래도 은케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몸이고 보면 새삼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은케니의 태도가 최약체 송토트와 만나니까, 진짜로 저 "죽음"이 루케니의 상상의 산물처럼 보이더라는 거다.

게다가 근래 들어 웃음기가 싹 빠지고 그 자리를 광기와 사악함으로 채워 넣은 연기 때문에 이젠 아예 객석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을 작정을 했는지. 안 그래도 번뜩번뜩 빛나는 눈빛이 무서운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날은 약했나? 싶은 트립 상태까지 보여주더라. 난 이게 이날의 충격과 공포였는데, 죽음에게 줄칼을 받고 판관에게서 심문받는 장면에서 "그게 언제였습니까?"라고 하니까 날짜를 떠올리고 "아주 아름답고 화창한 날이었지."라고 대답할 때, 눈을 까뒤집으면서 고개를 뒤로 꺾으면서 경련을 일으키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 흡사 레옹에서 게리 올드만이 약에 취해서 발작하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엘리자벳을 암살하고 나서 전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퇴장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지만, 이날은 찌르고 난 줄칼을 코에 가져가 피 냄새를 맡으며 퇴장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이날의 은케니는 무슨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저 악의로 똘똘 뭉친 검은 마물은 도대체 뭐지? 싶은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이날 공연이 재미없었냐면,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진정한 무대광풍 은케니를 봤고, 저 반듯하고 선량한 청년이 저런 심연의 어둠과 광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엘리자벳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 이날의 은케니는 프린세스 츄츄의 드롯셀마이어 같았다.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7 (화)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옥류은 조합의 자체 첫공이고,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류토트가 반가웠던 공연.
지난번 옥류용 조합으로 옥류 페어는 한 번 보기는 했었지만, 은케니가 낀 조합으로는 처음이라 과연 어떤 합을 보여줄까 두근대며 공연장을 향했는데, 점심 먹은 건 체하고, 백만 년 만에 멀미라는 걸 다 하고 하여간 개인적인 컨디션이 꽝인 상태로 관극을 하게 됐다. 객석에 앉으면서도 제대로 극에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은케니의 첫 일성이 들려오자마자, 그래 바로 이 목소리가 나를 깨우는 호령이구나 했다. 이런~젠~장~! (feat. 은케니)

며칠 전부터 은케니 프롤로그 첫 대사에 비음이 섞여 있어서 감기 걸린 건가 싶다가도 뒤로 갈수록 목 상태가 쩌렁쩌렁 울려서 기분 탓인가? 아니면 찬 바닥에 오래 누워있다 보니 목소리가 막혀서 저러나 그랬는데, 감기였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성량 하며, 막힘없이 깨끗하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을 질러주는지, 참 미스터리. 오래간만에 만나는 류토트도 목 상태가 썩 좋아서, 프롤로그에서부터 둘이 쨍-하고 맞붙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다른 조합보다 유독 류토트 - 은케니 조합일 때 떠오르는 그림이기는 한데, 난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타나토스와 시지프스, 혹은 하데스와 시지프스가 떠오른다.
인간이면서 신들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밉보인 시지프스를 데려오라고 타나토스를 보냈는데, 그마저 속여넘기고 마법 사슬로 묶어서 지하 동굴에 가둔 시지프스. 그래서 한동안 죽는 사람이 안 나와서 이상하게 여긴 하데스가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시지프스를 데려왔는데, 이번엔 자기 아내에게 시신을 광장에 버려두고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이른 다음, 하데스를 속여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영생을 누릴 뻔했던 시지프스. 뭐, 결국엔 인간이 신을 당해낼 수는 없어서 타르타로스에 끌려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하여간 괘씸죄 적용인지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은케니나, 엘리자벳 배틀 할 때 찌릿하고 노려보는 류토트의 시선에서 저런 그림이 떠올라서 이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이 한층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거.

- 그런데 이날 은케니가 목 상태가 좋아서 그런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 것도 있겠지만, 광대다운 익살이 좍 빠지면서 다크 포스가 확 늘어서, 아주 시선을 잡아끄는 바람에 내도록 시선이 은케니에 고정돼버렸는데, 진짜 그 깨알 같은 표정 연기가 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우선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데, 특히 판관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듣기 싫다는 말에 '거 말귀 되게 못 알아 처먹네!' 하는 듯한 표정 연기도 좋고, "사랑! 아주 위~대한 사랑!!!" 이라고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정말 좋다. 이게 후반부에 "불쌍한 인간들이여,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하고 대칭 구조를 이루는 어조라서, 이렇게 틀이 딱 맞게 짜인 원작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극의 구조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대사 톤의 강약, 고저를 조절하는 은케니도 극에 대한 감각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벳은 루케니로 시작해서 루케니로 끝나는 수미쌍관의 구조이면서, 은케니 한정으로 뫼비우스 시스템(다른 두케니들은 이게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서)이라, 저렇게 대칭 구조로 대사 톤을 집어넣은 게 나는 참 좋더라. 특히 루케니는 해설자라 대사를 해야 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 대사를 강약, 고저 톤에 변화를 줘서 지루하지 않게, 마치 노랫가락 듣는 것처럼 들려줘서 그것도 좋다.
그리고 박자 감이 좋아서, 대사와 앙상블의 노래가 맞물려 들어가는 부분에서 딱 겹쳐 들어가는 부분이 정말 좋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에서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 엘리자벳~!"하고 곧바로 "지난 세상~"하고 딱 맞춰 들어가는 부분이나, 카페 씬에서 "바로 그 종말을~!"하고 "어떤 기사들이~" 하고 겹쳐지는 부분 같은 거. 이게 타이밍이 참 영점 몇 초 정도의 미묘한 건데, 그런 걸 참 기가 막히게 잘 맞추더라.

- 은케니 노래 잘하는 거야 말하면 입 아프지만, Milk는 어떻게 매 공연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갈수록 더 잘해서,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지? 싶다. 순식간에 표변하는 표정 연기도 그렇고, 여자들이 달려드니까 "아이들이 죽어가!"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동질하고, 자기 뜻대로 끓어오르는 사람들 보면서 희열에 차 웃을 때도 그 웃음에 악한 기운이 잔뜩 서려 있어서 섬뜩하다. 그리곤 탈것에서 뛰어내서 당신들과 같이하겠다는 듯 "더 늦기 전에 어서!" 그녀를 내쫓으라며 쑤석이다가 민중들이 앞으로 나서니까, 자신은 슬슬 뒤로 빠지면서 냉소를 흘리며 "민중의 자유, 민중의 해방~"을 외치는 모습이 진짜 나쁜 놈(;)처럼 보인다니까. 그 와중에도 새 시대를 열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또 어찌나 강렬하고 믿음직한지, 저건 그냥 확신범이다.

- 류토트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 '마지막 춤'에서 창법의 변화나 이런저런 변화를 줬다고 하던데,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들려서 좋았다. 후반부에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웃음소리를 넣은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한동안 못 봤던 "차갑고 냉혹한" 초월적인 절대자, 지배자다운 '죽음'이라 난 그 부분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게 옥엘리와 류토트가 되면 참 둘 사이에 뭔가 짜릿한 연애감정 같은 건 진짜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無케미스트리라, 이것도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 원래도 류토트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시하지는 않지만, 선영 엘리와는 뭔가 짜릿한 느낌이 있는데, 옥엘리와는 덤덤해도 이렇게 덤덤할 수가 없다. 옥엘리를 대할 때의 류토트를 보고 있으면 저건 죽음 나름의 사랑인가? 이런 물음표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반면 루돌프들과의 합은 또 지나치게 좋으셔서ㅋㅋㅋㅋㅋ

- 어린 루돌프 중에 제일 자그마한 준서지만, 셋 중에 맏형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라고. 감기 걸렸는지 목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래하는 목소리는 참으로 곱고 맑은데다 아직 어린 데도 깨알같이 연기도 잘하고 아주 예뻐죽겠다. 그러니 같이 연기하는 토트들은 또 이 어린 루돌프들이 얼마나 귀여울까.
이렇게 작고 여린 준서 루돌프가 동돌프로 자라서, 진짜 오스트리아 군사 학교는 대단하다~ 감탄하고ㅋㅋㅋ류동 그림자송은 뭐 언제 들어도 그 목소리 합이나 둘 다 쩔어주는 성량이라 귀가 호강인데, 이날 더더욱 둘이 성량 대결하듯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불러줘서 참 좋더라. 안 그래도 둘이 호흡이 척척 잘 맞는데, 서로 마음 놓고 지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날 동석이가 좀 강한 루돌프 노선을 잡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14일의 동돌프가 레전드여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젠 뭐 연기에 물이 오를 대로 올라서 불평할 것도 없다.

- 화요일 공연인데도 객석 호응이 정말 좋아서 배우들도 그 기운 받아서 정말 훌륭한 공연을 완성했는데, '침몰하는 배' 장면에서 화면에 '네트워크 오류'가 딱 뜨는 바람에 참 옥에 티였고, 그럼에도 공연은 정말 좋았어서, 커튼콜 분위기 역시 흥겨운 잔치 분위기였다. 함박웃음 짓는 배우들 보니, 오히려 박수를 보내는 이쪽이 커다란 선물 받는 기분이더라.
그런데 은케니 은산 탈춤은 영 안 돌아올 건가. ㅠ.ㅠ

+ 샤토트 회차 아니라도 일본어 안내방송 나오더라. 그냥 정책이 바뀌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