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7 (화)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옥류은 조합의 자체 첫공이고, 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류토트가 반가웠던 공연.
지난번 옥류용 조합으로 옥류 페어는 한 번 보기는 했었지만, 은케니가 낀 조합으로는 처음이라 과연 어떤 합을 보여줄까 두근대며 공연장을 향했는데, 점심 먹은 건 체하고, 백만 년 만에 멀미라는 걸 다 하고 하여간 개인적인 컨디션이 꽝인 상태로 관극을 하게 됐다. 객석에 앉으면서도 제대로 극에 집중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은케니의 첫 일성이 들려오자마자, 그래 바로 이 목소리가 나를 깨우는 호령이구나 했다. 이런~젠~장~! (feat. 은케니)

며칠 전부터 은케니 프롤로그 첫 대사에 비음이 섞여 있어서 감기 걸린 건가 싶다가도 뒤로 갈수록 목 상태가 쩌렁쩌렁 울려서 기분 탓인가? 아니면 찬 바닥에 오래 누워있다 보니 목소리가 막혀서 저러나 그랬는데, 감기였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성량 하며, 막힘없이 깨끗하게 치고 올라가는 고음을 질러주는지, 참 미스터리. 오래간만에 만나는 류토트도 목 상태가 썩 좋아서, 프롤로그에서부터 둘이 쨍-하고 맞붙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다른 조합보다 유독 류토트 - 은케니 조합일 때 떠오르는 그림이기는 한데, 난 이 둘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타나토스와 시지프스, 혹은 하데스와 시지프스가 떠오른다.
인간이면서 신들의 사생활에 끼어들어 밉보인 시지프스를 데려오라고 타나토스를 보냈는데, 그마저 속여넘기고 마법 사슬로 묶어서 지하 동굴에 가둔 시지프스. 그래서 한동안 죽는 사람이 안 나와서 이상하게 여긴 하데스가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시지프스를 데려왔는데, 이번엔 자기 아내에게 시신을 광장에 버려두고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이른 다음, 하데스를 속여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영생을 누릴 뻔했던 시지프스. 뭐, 결국엔 인간이 신을 당해낼 수는 없어서 타르타로스에 끌려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하여간 괘씸죄 적용인지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은케니나, 엘리자벳 배틀 할 때 찌릿하고 노려보는 류토트의 시선에서 저런 그림이 떠올라서 이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이 한층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는 거.

- 그런데 이날 은케니가 목 상태가 좋아서 그런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 것도 있겠지만, 광대다운 익살이 좍 빠지면서 다크 포스가 확 늘어서, 아주 시선을 잡아끄는 바람에 내도록 시선이 은케니에 고정돼버렸는데, 진짜 그 깨알 같은 표정 연기가 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우선 프롤로그에서부터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데, 특히 판관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듣기 싫다는 말에 '거 말귀 되게 못 알아 처먹네!' 하는 듯한 표정 연기도 좋고, "사랑! 아주 위~대한 사랑!!!" 이라고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정말 좋다. 이게 후반부에 "불쌍한 인간들이여, 흙으로 돌아갈지어다!!!" 하고 대칭 구조를 이루는 어조라서, 이렇게 틀이 딱 맞게 짜인 원작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극의 구조를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대사 톤의 강약, 고저를 조절하는 은케니도 극에 대한 감각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벳은 루케니로 시작해서 루케니로 끝나는 수미쌍관의 구조이면서, 은케니 한정으로 뫼비우스 시스템(다른 두케니들은 이게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들어서)이라, 저렇게 대칭 구조로 대사 톤을 집어넣은 게 나는 참 좋더라. 특히 루케니는 해설자라 대사를 해야 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 대사를 강약, 고저 톤에 변화를 줘서 지루하지 않게, 마치 노랫가락 듣는 것처럼 들려줘서 그것도 좋다.
그리고 박자 감이 좋아서, 대사와 앙상블의 노래가 맞물려 들어가는 부분에서 딱 겹쳐 들어가는 부분이 정말 좋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에서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르고 있잖아, 엘리자벳~!"하고 곧바로 "지난 세상~"하고 딱 맞춰 들어가는 부분이나, 카페 씬에서 "바로 그 종말을~!"하고 "어떤 기사들이~" 하고 겹쳐지는 부분 같은 거. 이게 타이밍이 참 영점 몇 초 정도의 미묘한 건데, 그런 걸 참 기가 막히게 잘 맞추더라.

- 은케니 노래 잘하는 거야 말하면 입 아프지만, Milk는 어떻게 매 공연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갈수록 더 잘해서,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지? 싶다. 순식간에 표변하는 표정 연기도 그렇고, 여자들이 달려드니까 "아이들이 죽어가!"라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동질하고, 자기 뜻대로 끓어오르는 사람들 보면서 희열에 차 웃을 때도 그 웃음에 악한 기운이 잔뜩 서려 있어서 섬뜩하다. 그리곤 탈것에서 뛰어내서 당신들과 같이하겠다는 듯 "더 늦기 전에 어서!" 그녀를 내쫓으라며 쑤석이다가 민중들이 앞으로 나서니까, 자신은 슬슬 뒤로 빠지면서 냉소를 흘리며 "민중의 자유, 민중의 해방~"을 외치는 모습이 진짜 나쁜 놈(;)처럼 보인다니까. 그 와중에도 새 시대를 열자고 외치는 목소리는 또 어찌나 강렬하고 믿음직한지, 저건 그냥 확신범이다.

- 류토트는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 '마지막 춤'에서 창법의 변화나 이런저런 변화를 줬다고 하던데, 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들려서 좋았다. 후반부에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웃음소리를 넣은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한동안 못 봤던 "차갑고 냉혹한" 초월적인 절대자, 지배자다운 '죽음'이라 난 그 부분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게 옥엘리와 류토트가 되면 참 둘 사이에 뭔가 짜릿한 연애감정 같은 건 진짜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無케미스트리라, 이것도 미스터리라면 미스터리. 원래도 류토트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시하지는 않지만, 선영 엘리와는 뭔가 짜릿한 느낌이 있는데, 옥엘리와는 덤덤해도 이렇게 덤덤할 수가 없다. 옥엘리를 대할 때의 류토트를 보고 있으면 저건 죽음 나름의 사랑인가? 이런 물음표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반면 루돌프들과의 합은 또 지나치게 좋으셔서ㅋㅋㅋㅋㅋ

- 어린 루돌프 중에 제일 자그마한 준서지만, 셋 중에 맏형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라고. 감기 걸렸는지 목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래하는 목소리는 참으로 곱고 맑은데다 아직 어린 데도 깨알같이 연기도 잘하고 아주 예뻐죽겠다. 그러니 같이 연기하는 토트들은 또 이 어린 루돌프들이 얼마나 귀여울까.
이렇게 작고 여린 준서 루돌프가 동돌프로 자라서, 진짜 오스트리아 군사 학교는 대단하다~ 감탄하고ㅋㅋㅋ류동 그림자송은 뭐 언제 들어도 그 목소리 합이나 둘 다 쩔어주는 성량이라 귀가 호강인데, 이날 더더욱 둘이 성량 대결하듯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불러줘서 참 좋더라. 안 그래도 둘이 호흡이 척척 잘 맞는데, 서로 마음 놓고 지르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이날 동석이가 좀 강한 루돌프 노선을 잡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14일의 동돌프가 레전드여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젠 뭐 연기에 물이 오를 대로 올라서 불평할 것도 없다.

- 화요일 공연인데도 객석 호응이 정말 좋아서 배우들도 그 기운 받아서 정말 훌륭한 공연을 완성했는데, '침몰하는 배' 장면에서 화면에 '네트워크 오류'가 딱 뜨는 바람에 참 옥에 티였고, 그럼에도 공연은 정말 좋았어서, 커튼콜 분위기 역시 흥겨운 잔치 분위기였다. 함박웃음 짓는 배우들 보니, 오히려 박수를 보내는 이쪽이 커다란 선물 받는 기분이더라.
그런데 은케니 은산 탈춤은 영 안 돌아올 건가. ㅠ.ㅠ

+ 샤토트 회차 아니라도 일본어 안내방송 나오더라. 그냥 정책이 바뀌었는가 보다.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5 (일)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김준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샤토트를 드디어 봤다. 이로써 삼토트도 모두 클리어. 마지막으로 승현 돌프까지 클리어하면 엘리자벳 전캐를 찍겠군. 구하면 얻으리라고, 2층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아서; 1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 내의 좌석이 구해지지 않아서 거의 포기했는데, 운 좋게 자리가 구해져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자체 첫공이 막공될 듯.
특이하게 샤토트 회차에서는 일본어로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일본어 안내하는 분 목소리가 좀 무뚝뚝하게 들려서 좀 그랬다. 내용 자체도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딱딱한데, 좀 상냥한 목소리로 해주지 싶다가도, 내가 일본에서 안내 방송하는 언니들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나긋나긋한 음성에 너무 익숙한 건가 했다.
음향은 근래 들은 중에 가장 좋아서, 이게 마이크를 키워서 잘 들리는 건지, 오묘한 블퀘 1층은 중앙 앞 블록보다 사이드 중간이 더 소리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 샤토트는 확실히 차별화된 색다른 '죽음'이더라. 존재 자체가 판타지. 등장하는 순간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감이 있더라. 그리고 류토트와 송토트를 볼 때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모든 존재를 멸하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두려운 것이 곧 악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샤토트는 죽음의 속성 중에 어둡고, 邪스러운 부분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요사스럽게 사람을 홀리고 매혹하는 죽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다 빨릴 것 같아서, 마치 꽃 근처에 가면 꽃이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죽음이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의 다리에서 등장할 때도 다른 토트들과 확연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게 만화라면 '사사삭'이라는 의태어가 붙을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다. 음색에서도 쇳소리가 많이 섞인 목소리라 호불호가 꽤 갈리겠지만,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는 굉장히 잘 어울리더라. 사실 보러 가기 전에 가장 걱정한 부분이 목소리였는데, 생각보다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발성이라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뭐, 가끔 저음부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된다거나, 웃음소리 같은 건 좀 간사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그 분위기와 음색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장면에서 조종치는 걸 봤는데, 전에 송토트는 왼편 리프트에서 등장해서 줄만 잡아당기는 걸 봤는데, 샤토트는 아예 공중에 매달려서 등장하는 거 보고 식겁했다. 이것이 바로 20대 죽음의 패기!!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춤. 진짜 이제까지 송토트, 류토트가 커튼콜에서 보여준 건 그냥 율동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는 진짜 댄스! 그루브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현란한 몸놀림. 이게 바로 현역 아이돌의 위엄!! 오오~ 저 발 구르기가 이렇게 박력 넘치는 쿵쿵쿵이었단 말인가 감탄하면서 봤다. 사실 보러 가기 전에 이 부분의 연출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랬는데, 극 안에서 붕 뜬다는 느낌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러니까 마지막 춤만 혼자 극에 섞이지 못하고 뜬금없는 아이돌 댄스처럼 보이려나 싶었는데, 샤토트가 미리 잡아놓은 분위기나 이런 것과 어우러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저 화려하고 퇴폐미 가득한 무대하고도 무리 없이 섞여 들어가더라.
재미있었던 건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랬겠지만, 움직임이나 중간마다 집어넣은 숨소리(스읍~ 하 같은 거), 캬악~하는 거 모두 고양이과의 맹수를 떠올리게 해서, 어린 루돌프가 '어젠 고양일 쏘아 죽였죠.' 하는데, 어이쿠, 아가, 너 잘못 건드렸어! 도망가! 했다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판타지스러운 샤토트와 다크한 은케니가 만나니까 그 둘이 같은 속성이라는 데서 오는 케미스트리도 상당하더라. 전부터 느낀 건데, 다른 루케니들이 백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루케니라면, 은케니는 백년 전의 자아는 진작에 잃어버리고, 백년 동안 반복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런 루케니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마물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고. 최케니나 용케니는 그래도 어디 한구석 선량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은케니는 과연 '빛'인 부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새까맣다. 유쾌하다는 듯 웃을 때도 그 웃음에서 악의가 뿜어져 나와, 가끔은 죽음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비칠 때가 있는데, 이게 샤토트랑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너희 둘은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들더라.

- 이날 옥엘리는 바로 전날의 참한 아가씨 버전에서 다시 말괄량이 버전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게 요제프 따라가는 건지, 죽음을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민제프와 함께일 때는 어리광이 배로 느는 것 같단 말이지. 첫 데이트 할 때도 요제프가 열심히 황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배 타러 가자고 정신이 딴 데 팔려있고, 배에 오른 민제프가 냉큼 앉는 거 보고 에스코트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배 타려고 하고, 물장난 칠 때 반짝이도 엄청 많이 뿌리더니, 뒤에 한 번 더 민제프 얼굴에 뿌리더라. 세상 무서운 게 없는 명랑하고 기운찬 아가씨.

이 활기차고 자유로운 아가씨가 황실 생활에 지쳐서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새장 속에 갇힌 새의 파닥거림을 보는 느낌이다. 창살에 부딪혀 날개가 꺾이고, 점점 위축되어 날갯짓도 미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러다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죽음에 가장 강렬한 유혹을 받은 다음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벼랑 끝까지 가봤기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옥엘리와 샤토트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진짜 박진감 넘치는 한 판 승부더라. 재밌는 건 둘이 밀고 당기고가 아니라, 서로 당기고, 서로 밀고 있더라는 거. ㅋㅋㅋ 밀어낼 땐 둘이 바싹 붙어 서서 손바닥 마주하고 서로 밀어내는 데, 둘이 힘이 대등해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딱 붙어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당길 때는 좀 떨어진 거리에서 어느 한 쪽으로 끌려가는 법 없이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는 그런 그림이다. 마주한 거리는 가까우나, 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인력(引力)이 아니라 장력(張力, tension)이라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 오랜만에 만난 승돌프. 요즘 동돌프가 연기에도 물이 올라서 잔상이 남을까 했는데, 승돌프는 승돌프, 동돌프는 동돌프더라. 특히 마이어링 왈츠에서 승돌프의 몸놀림은 보고 따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유단자의 위엄! 이기도 하지만, 동돌프가 죽천들과 격투를 벌인다면, 승돌프는 춤을 춘다. 움직이는 동선의 유려함, 죽천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한 신체, 동돌프를 보면서는 이 장면이 춤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는데, 확실히 몸 쓰는 게 남다른 승돌프는 이게 마이어링 '왈츠'라는 걸 일깨워준다.

- 전석 매진인 객석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배우들이 조금씩 다들 업된 상태라는 게 느껴졌고, 2막 Kitsch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오더니, 은케니는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도 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넘버 끝나고 박수 소리도 우렁차고, 공연 분위기는 확실히 좋더라. 게다가 이제 공연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이젠 못하려도 못할 수 없는 그런 공연 퀄리티다 보니 커튼콜에서의 환호와 갈채가 넘쳐나는데, 샤토트 등장하니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이 굉장했다. 선영 엘리와의 조합도 보고는 싶지만, 이미 티켓은 다 동났고, 그래도 영 못 볼 줄 알았던 샤토트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4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점점 게을러져서 큰일이다. 후기는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서, 그때 그때 써둬야 기억도 좀 남아있고 한 것을; 7일 이후로 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엘리자벳. 그동안 선영 엘리만 주구장창 만났다고, 이후 잡은 스케줄은 죄다 옥엘리인데, 이날이 그 시작일. 엘리 스케줄 짠 사람은 나랑 면담좀 -_-` 선영 엘리 - 은케니 조합이 25일 마티네를 끝으로 없다는 게 말이 돼~~~~~~~~~~~~~~~? (feat.은케니) 아니, 옥엘리가 싫다는 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몰아서 스케줄을 짤 수 있는가 말이지. (뒤늦게 4월 7일이 선영 엘리 - 은케니 자체 막공이 되버렸다는 사실에 패닉 ㅠ.ㅠ)

- 참, 할 말 없는 스케줄 때문에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옥엘리는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답더라. 무엇보다 이날 왈가닥스러운 면모가 좀 줄어들고, 얌전한 공주님 분위기가 좀 더 살아서 그게 참 좋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옥엘리가 완전 고삐 풀린 망아지였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움직임이 차분해지니까 우아함이 살아나서 확실히 귀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같더라. 그러면서 연기에서도 기존 보다는 좀 더 폭이 넓어져서, 난 이날 옥엘리 연기에 완전히 만족해서, 이후로도 이만큼만 해준다면 딱히 불만은 없을 듯.

원래도 목소리가 참 곱고, 노래가 안정적이라 그런 면에서는 믿고 보는 옥엘리인데, 이날 '나는 나만의 것'에서 쳐연함이 확 늘어서 시작할 때 여리고 청아한 목소리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노래를 하는데, 얼마나 애처롭던지. 그저 죄가 있다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죄지. 선영 엘리는 그래도 후반부로 가면서 이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강단있게 일어서는 느낌인데, 옥엘리는 아직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안 나온 상황처럼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해? 어떻하지? 이렇게 사는 건 싫은데 ㅠ.ㅠ 라는 느낌. 그래서 더 가엽고, 그 처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1막의 마지막 '나는 나만의 것 rep.'에서도 선영 엘리와 옥엘리는 참 많은 해석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선영 엘리가 여제로서 각성하고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할 위엄을 두르고 등장하는 것과 달리, 옥엘리는 여기서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서 등장한다. 선영 엘리는 요제프의 목소리 따위 안들려 상태였던 것 같다면, 옥엘리는 몸 단장하면서도 요제프의 음성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옥엘리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물론 선영 엘리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옥엘리가 유난히 이 장면에서 자체 발광 미모라, 이게 어깨를 드러내고 안 드러내고의 차이려나.

2막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옥엘리의 치마질은 정말 전투적이라 물러설 때도, 휙휙 돌리는 치맛자락에 토트 후려치는 거 아닌가 싶고, 빙글빙글 턴도 잘 돌고, 게다가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패기가 정말 대단한데, 더 놀라웠던 건, 마지막에 자신을 끌어당기는 토트의 손을 뿌리치는 것도 아니고, 단호하게 잡아 떼어내는 동작을 보고 어떤 토트가 와도 옥엘리에겐 이기기 힘들겠구나 싶더라.

이날 옥엘리의 베스트 송은 '아무것도'였는데, 시작부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바로 정면에서 보는 바람에 더 깊이 감정이입해서 봤던 듯하다. 선영 엘리의 우울함은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데, 옥엘리의 경우는 발그레한 두 뺨이 사랑스러운 건강한 소녀가 팔자에도 없는 황실에 시집와서, 웃으면서 말속에 칼을 품은 귀족들에게 치이고, 무시당하고, 시어머니의 음흉한 계략에 휘말려 점점 비틀리고 굴절되는 과정이 보여서, 그런 점에서 더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의무는 내팽개치고 자유롭게 떠돌면서, 뭐가 아쉽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이날 옥엘리를 보면서는 그래, 저런 환경이었으면 누구라도 차라리 미쳐버리길 소원하지 않았을까 하고 공감이 가더라.

- 이날 송토트는 그새 또 연기 노선이 바뀌었는데, 이렇게 매번 다른 노선을 들고 나오니, 참 보는 재미가 있는 배우다. 목 상태는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름 티 안나게 조심스럽게 잘 부르다 1막 그림자 송에서 살짝 삑이 나서, 끝 부분을 올리지 않고 내려서 불렀는데, 색다른 느낌이더라.

무엇보다 이날 가장 놀랐던 건, '마지막 춤'에서 커튼콜에서 추던 춤을 춰서 깜짝 놀랐다. 사실 춤을 췄다기 보다는 살짝 리듬을 타면서 발 쿵쿵 구르는 동작 정도만 선보인 게 다인데, 그래도 극 중에는 안 추던걸 춰서 거기서 이미 헉! 해버렸달까. 이날 송토트는 근래에 꽤 자주 시도하고 있는 나쁜 남자 컨셉이었는데, 그 강도가 좀 더 세져서 이게 옥엘리와 페어라서 저런 노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막의 베일씬에서 어떤 감정을 보여주려나 또 흥미진진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음, 베일 씬은 여전히 통곡할 기세의 죽음이라서, 이게 갑자기 어떻게 보였냐면, 마음은 순정인데, 내 뜻대로 안 되는 너를 차갑고 거칠게 대했지만,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고~ 뭐 이런 츤데레 죽음;

- 동돌프는 3월 말부터 매 공연 레전드 갱신하는 중이고. 거울송에서의 감정선이 진짜 말도 못하게 깊어졌는데, 근래들어 살도 좀 빠졌는지 얼굴선이 날카로워진 듯하고, 특히 이날은 퀭한 눈이 너무너무 인상 깊었는데, 저 애정결핍 기아에 허덕이는 덩치만 큰 아이를 왜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나요~ (feat.동차르트)
그런데, 이 장면에서 루돌프 등장해서 노래할 때 루돌프만 보느라 몰랐는데, 거울 뒤에서 옥엘리는 가만히 앉아있는 게 아니라, 깨알같이 연기하고 있더라. 머리를 짚었다가, 손가락을 깨물고 시녀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머리나 빗으라고 하는데, 옆에서 루돌프가 아무리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안들리겠구나 싶었다. 옥엘리는 '당신처럼 rep.'에서부터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루돌프의 음성은 그저 귓전을 맴돌다 흩어질 뿐,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다. 그러다 아들을 잃고나서야 명확한 생각을 찾(feat. 매든 박사)게 되었는데, 그 타이밍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윤제프님은 언제나 달달한 목소리로 귀를 녹이시고, 정화 소피는 이날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니라 훨씬 듣기 편했다. 부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시길. 그렇게 하셔도 며느리 쥐잡듯이 볶아채는 시어머니 포스는 어디 안 갑니다. 그리고 벨라리아에서 태원 소피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들에게 버럭 역정내시는 게 강해지셔서 좋았다. 사실 이 장면 볼 때마다 던져준 미끼 덥썩 문 게 누군데, 어디와서 화풀이냐 싶기도 하다.

- 그리고 이날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사라졌던 은케니의 디테일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 황제의 집무실에서 탄원자의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죽천들과 함께 팔 들어올리는 동작 할 때 속으로 얼마나 반갑던지. '계획이란 소용없어' 에서 엘리자벳 손등을 볼에 가져다 대는 건 사라졌지만, 대신 엘리와 요제프에게 손 키스를 던지고 두 사람의 손을 맞잡아주는 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부분 판관의 질문에 오를레앙 공을 살해하려고 '몇 번을 말해!' 버럭 하는게 돌아와서, 이게 가장 좋더라. 다른 건 몰라도, 저 '몇 번을 말해!'는 프롤로그의 '정말로 원했다니까!'와 대칭을 이루는 수미쌍관의 구조라서, 이게 다시 살아나줘서 다행이다.
게다가 며칠 좀 쉬었다고 목 상태도 쩌렁쩌렁, 프롤로그에서부터 그 쨍한 날카로움이 묻어나오더라. 노래야 뭐 매 공연 기복없이 잘해주고 있는데, 그 와중에 마담 볼프 살롱에서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분을 확실하게 강조해서 불러주는 디테일 추가한 것도 참 좋더라.

하여간 이렇게 마무리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배우가 연구하고 파고들어서 만들어낸 캐릭터가 전체적인 연출 노선과 어긋나는 거라면 모를까, 웹상의 평가 하나 보고 가위질 할 시간이 있거든, 괴상한 번안이나 비문 교정에나 신경 쓰기를.
모차르트 오페라 락(Mozart L'Opera Rock)

일   시 : 2012. 03. 30 ~ 2012. 04. 29
장   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관극일 : 2012. 04. 12 (목) 20:00
연   출 : 김재성, 음악감독 : 서유진
캐스트 : 모차르트 - 박한근, 살리에리 - 강태을, 콘스탄체 - 이해리, 알로이지아 - 김민주, 레오폴트 - 신성우, 난넬 - 홍륜희, 디바 - 허진아, 세실리아 - 최현선, 안나 마리아 - 장이주, 로젠베르크 - 성열석, 베버/요제프2세 - 장원령

- 모차르트! 를 볼 때, 성남아트센터 음향에 큰 불만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모오락은 유난히 에코 효과를 과하게 집어넣어서 이게 그냥 동굴 음향 정도면 참아주겠는데, 돌림 노래 만들듯 메아리치는 건 정말 개선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얼마나 심한지 지금 배우가 박자를 틀린 건지, 내가 메아리를 듣고 그렇게 느끼는 건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배우들 마이크 볼륨을 상당히 크게 올려놓은 것 같은데, 특히 신파파 숨소리는 좀 많이 거슬렸다. 노래가 아닌 대사할 땐 마이크 볼륨 조절 좀.

- 8일 공연과 싹 다른 새로운 모차르트, 살리에리, 알로이지아를 만나게 되었는데, 확실히 배우가 달라지면, 극이 달라진다.
근촤는 호촤에 비해 반항아 기질이 훨씬 강한 혁명가 모차르트더라. 음색 자체도 허스키하면서 훨씬 강한 음색이고, 호촤가 어딘지 여린 구석이 있는 똘끼 충만한 이질적인 존재라는 느낌이라면, 근촤는 그야말로 시대의 반항아라는 느낌. 그래서 근촤에게서는 천재로서의 광기 같은 건 좀 덜한데, 형식 파괴, 고정 관념과 싸우는 전사, 투사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장미 위에 잠들어'였는데, 이 넘버에서 호촤의 절규에는 '한(恨)'이 느껴진다면, 근촤의 절규에는 분노가 느껴지더라. 그리고 이렇게 센 모촤다보니 후반으로 가면서 병들고 약해지는 부분에서도 그 병약함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 근촤가 지금의 연기 노선에 광기를 좀 더 얹어서 똘끼까지 표현해 준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알로이지아 역의 최유하 씨(이후 유하 알로)나 김민주 씨(이후 민주 알로) 모두 참으로 아름다우신데, 민주 알로는 유하 알로에 비해서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강한 느낌이었다. 유하 알로가 공주병 환자다운 곱고 예쁜 목소리라면, 민주 알로는 살짝 노는 언니 풍의 포스가 느껴지는 목소리인데, 이게 빔밤붐에서 추는 각기춤에서도 민주 알로 쪽이 동작이 더 크고 절도가 있다. 난 유하 알로의 새침데기같은 그 예쁜 각기 쪽이 더 취향이더라만. 그래서 자매쏭에서도 유하 알로는 나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라면서 육탄전은 피할 것 같다면, 민주 알로는 수틀리면 머리끄덩이 잡고 어디서 언니한테 반항이냐고 딱 잡아 누를 기세랄까.
이게 재회한 모차르트를 만났을 때에도 두 알로가 차이가 나는데, 유하 알로는 어머니 돌아가시고 비참하게 된 모차르트를 동정하고, 그를 배신한 걸 미안해하는 게 겉으로도 티가 나는데, 민주 알로는 속으로는 그를 동정하고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겉으로는 자신을 상처 준 모차르트에게 더 차갑게 대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렇게 분노하는 근촤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리고 이날 나에게 단연 베스트 연기자였던, 살리에리 역의 강태을 씨(이후 태을 살리). 지난번 준살리를 볼 때도 느낀 건데, 사실 살리에리가 이렇게 매력적이고 잘생기고 귀족적이어도 되는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건 아마데우스가 아니라, 모오락이니까. 내 머릿속 살리에리는 단 거 좋아하고, 남들보다 안목 높고, 주제 파악도 객관적이라 스스로 찌질해진 노인네(;)라는 인상이 강해서, 사실 모오락의 살리에리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이건 어떻게 봐도 살리에리에 대한 지나친 미화잖아? 모촤는 모촤인데, 살리에리는 거의 순정만화 버전으로 재탄생, 모오락 제작자들은 살리에리 빠돌이들인가;

하여간 태을 살리는 아주 온몸에서 귀족적인 우아함, 자긍심이 흘러넘치더라.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를 감독하러 왔다가 로젠베르크가 떠난 뒤, 야유하는 의미로 모차르트에게 예를 표하는 동작에서마저 아주 우아함이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황제가 불러도 '예'라던가 하는 응답도 안 하는, 고고하기가 아주 절벽 위에 핀 한 떨기 난이다. 그런 그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뿌리째 흔들리고,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걸 표현하는 게 '고통스러운 즐거움'인데, 와우~ 난 태을 살리의 이 넘버에 그냥 껌뻑 넘어가고 말았다. 마디마디 느껴지는 상처입은 자존심, 인정하고 싶지 않아 도피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이 열등감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에 더욱 좌절하고 긍지에 상처입은 모습이 가감 없이 와 닿았다. 다만, '악의 교향곡'은 조심스럽게 부른다는 느낌이 들어서, 감정이 좀 약하지 않나 싶은 게 불만이었지만, 태을 살리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다운(응?) 살리에리더라.

아, 그리고 내가 태을 살리에 또 껌뻑 넘어간 이유 중 하나는, 강태을 씨의 평소 목소리는 살짝 높은 톤에 더 가까운데, 그걸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저음으로 발성해서 소리를 내는데, 그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러 목소리를 눌러서 저음을 꾸며내는 부자연스러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저음 톤이라 그게 참 좋더라.

그리고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연기도 참 좋았는데,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찾아온 장면. 사실 뜬금없이 쟤는 왜 갑자기 모차르트를 찾아왔대? 싶은 장면인데, 태을 살리가 그 부분도 연기로 설득시키더라. 그러니까 원래도 긍지가 높은 사람이라, 자신의 치졸한 술수가 참을 수 없이 수치스럽고, 자신도 음악가라 모차르트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인지 알기에 그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가만있을 수 없어 찾아왔다는 게 보이더라. 진심으로 모차르트를 걱정하고 후회하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근촤와 태을 살리 두 사람이 부르는 '후회 없이 살리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서 8일 공연에 들은 그 노래와 같은 노래인가 싶을 정도로 좋더라.

- 이렇게 보고나니 당연히 호촤에 태을 살리 조합이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근데, 이 둘 조합이 앞으로 딱 두번 뿐인데, 내가 갈 수 있는 날이 호촤 막공 뿐이라는 눈물나는 현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