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MOBY DICK)

일   시 : 2012. 03. 20 ~ 2012. 04. 29
장   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관극일 : 2012. 04. 25(수) 20:00
원   작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연   출 : 조용신 이소영, 대본 : 조용신, 작곡/음악감독 : 정예경
캐스트 : 이스마엘 - 신지호(피아노), 퀴퀘그 - KoN(바이올린), 에이헙/필레그 - 황건(첼로), 스타벅 - 이승현(기타), 플라스크 - 유승철(트럼펫), 스텁/모비딕 - 황정규(콘트라베이스), 네레이드 - 이지영(피아노)
줄거리 :
도시에 사는 이스마엘은 부모를 잃고 직장까지 잃자 어릴 때 꿈을 쫒아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려고 결심한다. 이스마엘은 바닷가 물보라 여인숙에서 거친 외양과는 달리 과묵하고 친절한 퀴퀘그를 만나고, 서로가 가진 지식을 나누며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흰 고래 `모비 딕`을 쫒는 에이헙 선장이 지휘하는 피쿼드 호에 승선하여 항해사 스타벅, 플라스크, 스텁과 함께 출항한다. [출처 > 플레이DB]

- 작년에 예매해두고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보고 지나갔는데, 올해 재연된다고 해서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어느새 막공이 다가오고 있더라. 부랴부랴 뒤늦게 보고 왔는데,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신선함은 좋았지만, 노래-연주-연기를 병행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셋 중 2개만 클리어해도 굉장한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악기 연주를 1순위로 두고 연기와 노래를 훈련시켰다…는 느낌이었는데, 제대로 넘버를 소화하는 배우가 드물었다. 그나마 재즈풍이라 즉흥성으로 많이 커버가 되었지만, 리듬이 빨라지면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에 음정이 때때로 미묘하게 어긋나서 제대로 넘버를 즐길 수가 없었다. 노래만이 아니라, 대사 처리도 에이헙 선장, 플라스크 정도를 빼고는 어색한 편이었다.

- 배우들이 직접 연주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볼거리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장점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일단 큰 악기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연주할 수밖에 없고, 특히 피아노는 붙박이라서 배우가 피아노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제약이 있어서, 무대 오른편에 고정된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이스마엘이 객석 왼편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퀴퀘그의 경우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고, 바이올린으로 효과음을 넣어주는 등 이 뮤지컬이 보여주고자 하는 궁극의 액터-뮤지션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바이올린의 음색은 사람의 억양이라던가 이런 걸 표현하는데 적합해서 퀴퀘그의 심리를 표현하기에도 적합했고, 퀴퀘그와 이스마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동작에 맞춘 끼익~하는 효과음 같은 건 정말 신선하더라. 그리고 퀴퀘그와 이스마엘이 서로 친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jam battle은 흥미진진하기도 했고.

단점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며 들려주는 음악은 날 것의 힘을 뽐내며 생동감을 느끼게 해줘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이스마엘의 피아노 연주와 퀴퀘그의 바이올린이었지만, 스텁의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깊은 울림을 전해줘서 좋더라. 플라스크의 트럼펫 역시 가벼운 캐릭터에 걸맞은 경쾌한 소리를 내다가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소리,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처량한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줬고, 에이헙 선장의 첼로는 오히려 바이올린보다도 날카롭고 건조한 소리를 내서, 불안정하고 광기에 휩싸인 선장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악기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도 꽤 신선했는데, 플라스크의 트럼펫은 망원경으로, 퀴퀘그의 바이올린 활은 작살로, 그리고 거대한 몸체의 콘트라베이스가 모비 딕을 형상화할 때는 아주 감탄했다.

- 1막은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우정 쌓기(를 빙자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비중이 크고, 2막은 모비 딕을 향한 에이헙 선장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모비 딕과의 대결이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1막의 피날레는 너무 급전직하라 조금 어리둥절한 상태로 막을 내리더라. 아마 초연 때는 인터미션 없이 진행됐던 극을 재연하면서 규모를 키우다보니 적당히 끊을 시점이 모호해져서 이렇게 된 것 같기는 하더라.
 
- 뮤지컬 모비 딕에는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바다의 정령 네레이드를 등장시켰는데, 나는 이게 정말 탁월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그 변덕스러움 때문에 예로부터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고, 풍랑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소프라노의 고음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모비 딕을 '나의 아이'라고 직접적으로 가사에 드러낸 것도 좋았다. 에이헙은 바다를 향해 '당신을 숭배하지만, 나는 당신을 거역할 것이다!'라고 외치는데, 어머니 바다는 그래도 계속해서 '돌아가, 에이헙' 경고를 보낸다. 말 안듣는 아이에게 끝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타이르는 자상하지만 엄한 어머니처럼.
그리고 파국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비 딕을 형상화한 콘트라베이스의 음산한 저음이 주는 깊은 울림이 파동을 일으키듯 너울너울 공기를 타고 피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 무대는 산만한 듯 하면서도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정취를 물씬 풍겼는데, 어쩐지 나는 이런 종류의 뱃사람 이야기에 약한 모양이다. 바다, 모험, 의리 이런 단어가 주는 가슴 벅찬 느낌이 참 좋다. 그런 의미로 누가 캐러비안의 해적 뮤지컬로 안 만들어주려나.
푸르른 날에

일   시 : 2012. 04. 21 ~ 2012. 05. 20
장   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관극일 : 2012. 04. 24(화) 20:00
연   출 : 고선웅, 원작 : 정경진
캐스트 : 여산 - 김학산, 현재의 정혜 - 정재은, 과거의 정혜 - 조윤미, 오민호 - 이명행, 오진호 - 박윤희, 일정 - 이영석, 이상무 - 장성익, 윤기준 - 조영규, 오운화 - 최광희, 아이 외 - 홍의준
줄거리 :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민호는 사랑하던 연인 윤정혜가 임신한 사실도 모른 채 이별한다. 도청에서 시민군으로 저항하던 민호는 투항하여 살아남지만 동료들을 계엄사에 밀고했다는 죄책감으로 환각에 시달린다. 배 다른 형 진호와 정혜의 애틋한 배려를 뿌리치고 행려자가 되어 떠돌던 민호는 해남에서 일정스님을 만나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서 태어난 딸 운화가 성년이 되어 어느 덧 결혼을 하게 되고 민호와 정혜는 중년이 되어 스님과 보살의 관계로 식장에서 만난다. 비로소 용서하고 화해하는 두 사람. 민호는 마음의 짐을 털며 니르바나의 환희를 느낀다. [출처 > 플레이DB]

- 극장을 나서고 뜨뜻미지근한 밤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그런 일을 겪고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고, 사랑을 하고, 계속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연극이라는 것만 알고 갔다. 일부러 사전에 시놉도 읽지 않고 갔다. 보고 나와서는 다시 한 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내용을 미리 알고 갔더라면,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도 못했을 거 같고, 그렇게 무방비하게 칼을 맞지도 않았을 테지.

참 영리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처참한 이야기도 아니라니까요? 사람 사는 건 언제 어느 시절이나 다 똑같아요. 그냥 그때 그런 끔찍한 일도 있었어요~ 라면서 쓴웃음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심장을 손가락으로 콕 쑤신다. 

고선웅 연출은 차마 울릴 수 없어서 웃기기로 했는가 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연출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극을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어체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변사처럼 연기하는 배우들과 비장한 각오를 다지면서도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구령이 Paul Anka의 'Diana'라는 기묘하게 명랑한 장면들 덕에 한발 물러서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이 극은 나를 끝내 관망자가 아닌 공범자로 몰아세우더라. 아마도 이 부채의식은 절대 사라지지 않겠지.

-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故 김남주 시인의 시들, 그리고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송창식의 '푸르른 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월의 노래'를 비롯한 음악들이다.

詩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배우들이 저마다 외치는 故 김남주 시인의 학살2는 전율이었다. 시인보다 전사, 투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인의 날카로운 칼날 같은 시구들이 가슴을 서걱서걱 베어 나가는 듯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 故 김남주 시인 학살 2 中

시를 다 읊고 나서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에 맞춰서 군무를 추는데,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뜨악했더랬다. 한껏 고조되었던 감정이 폭삭 꺼져버리는 듯한 감각. 왜 저 노래를 선택했는지 이런 건 다 이해가 가지만, 이 앞에서 시 낭독만으로도 절정을 치고 올라갔던 감정이 그대로 식어버리더라.

- 배우들 얘기를 하자면, 오민호 역의 이명행 씨가 단연 인상에 남는다. 공연 내내 정말 고행하는 심정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혜. 이 사랑으로 뭉쳐진 것 같은 깊고도 순수한 애정이 한결같은 여인 정혜가 아니었다면 민호가 아무리 수행을 거듭한다 한들 그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역시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9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이날 공연의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루케니가 극을 장악하게 되면 어떤 극이 되는지 그 끝을 본 느낌.
그것도 보통의 루케니가 아니라 완벽하게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린 사이코패스 은케니였으니···. 간혹 케니자벳이냐는 소릴 듣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건 애교였다. 이날의 공연이야말로 작가 은케니의 각본에 연출 은케니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판타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를 섞은 게 아니라, 살인자 루케니의 구차한 변명 이야기 쇼로 보이더라. 
그런데 이게 은케니의 의도라기보다는 캐릭터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다. 은케니는 평소에 하던 대로 자기 역에 충실하게, 지나치게 열심히(칭찬아님) 했다. 문제는 이날 송토트가 약해도 너무 약해서 극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는 데 있다. 죽음이 저리 약해졌으니, 은케니가 힘을 좀 뺐다면 균형이 맞았을까? 천만의 말씀. 죽음이 상대해야 하는 건 정작 루케니가 아니라 엘리자벳인데, 이날 엘리자벳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억세고 강한 옥엘리였다. 뿐인가 영원한 엘리바라기 민제프와 소유권 대결에 루돌프를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그러니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애초에 약해지면 안 되는 캐릭터다.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죽음이 되더라도 본질은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시간의 지배자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이 뮤지컬 엘리자벳은 원탑 여주인공 엘리자벳과 죽음과 루케니의 삼각 구도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극이 산으로 가더라. 

- 김음감, 부음감 딱히 가리지는 않았지만, 부음감일 때는 박자가 조금 빠르고, 오케스트라 반주에 여유가 없이 타이트해서 평소에 음을 끄는 버릇이 있는 배우들은 다들 삐걱삐걱. 이 어긋남이 연기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대사를 날리거나(옥엘리), 가사를 틀리거나(민제프). 보는 내내 이봐요, 그래서 당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싶었던 공연이었고, 여기에 대답을 준 캐릭터는 은케니 뿐이었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을 뿐이고. ㅠ.ㅠ

- 내가 송토트의 가창력에는 큰 기대가 없어서 참 그동안 관대한 기준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날의 송토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게 부른 넘버가 단 한 곡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관대한 기준을 더 깐깐하게 올린 것도 아닌데, 거기에 한 참 못 미쳐서 이게 다른 배우였다면 가루가 되도록 조목조목 까던지, 아니면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거다. 일단 목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었던 게, 노래를 대부분 가성으로 부르는데, 가성으로 부른다고 소리에 힘이 빠져서야. 연극에서 배우가 속삭인다고 객석에서 대사 안 들리는 거 봤나? 성악가나 연주자가 피아니시시모로 연주한다고 그 소절이 객석에서 안 들리는 거 본 적 있나? 그리고 고음 음역 안돼서 음 낮춰 부르면서 거기서 또 음이 플랫되는 건 또 뭔가. 하여간에 죽음 등장할 때마다 못마땅한 거 쌓여있는데, 이날 따라 연기도 뭔가 뚝뚝 끊어지는 듯해서 감정이 이어지지도 않더라.

'마지막 춤'에서 춤추는 동작 집어넣으면서 노래에 대한 집중을 잃은 건가 싶어서, 난 그 춤추는 거 차라리 뺐으면 좋겠고, '나는 나만의 것 rep.'에서 주인은 나야~ 하는데 옥엘리, 민제프 소리에 다 먹혀서 안 들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는 진짜 불쌍할 정도로 옥엘리에 밀리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상대가 승돌프라 그 정도였지 동돌프 였으면 듀엣 아니고 솔로라고 착각했을 거다. 후반 사비 부분은 앙상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

- 그런데다 옥엘리가 다시 날뛰는 망아지로 돌아와서 이런 재앙이 ㅠ.ㅠ 그리고 한 번 어긋나면 계속 어긋난다고, 옥주현 씨의 음을 질질 끄는 나쁜 버릇이 전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이날 유독 심하게 거슬렸다. 그건 박자를 타이트하게 딱딱 끊어내는 부음감과 만나서 더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민제프도 거기에 해당해서 가뜩이나 후음 길게 빼서 박자 미는 버릇이 있는 둘이 만나니 둘이서 부르는 듀엣이 계속 오케랑 어긋나고 두 사람의 하모니도 어긋나서 듣기 괴로웠다. 특히 2막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 같은 경우는 옥엘리, 민제프, 오케스트라가 정말 다 각각 따로 놀아서 수습이 안 되는 지경이었는데, 민제프는 가사까지 틀리셨지.

- 그리고 이날의 원작 파괴범 은케니. 난 처음부터 엘리자벳이라는 극이 해설자 루케니의 시선을 통해서 보는 한 여인의 일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루케니 친화적인 관객이었지만, 이날은 그 선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애당초 원작자는 루케니에게 참으로 많은 권능을 부여했다. 이 뮤지컬에서 액자 틀로 형상화된 무대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건 루케니가 유일하다.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권리,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라고 할 수 있는 권리. 극 안에서는 죽음이 절대적인 지배자이지만, 그 죽음조차도 루케니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존재가 아닌가. 판관이 그러잖는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듣기 싫다고. 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죽음"을 실체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루케니다. 그러니 케니자벳이 된다 한들 이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엘리자벳을 사랑해서 그녀를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가 루케니가 꾸며낸 허구의 변명 거리로 전락하는 건 다른 문제다. 원래도 은케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몸이고 보면 새삼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은케니의 태도가 최약체 송토트와 만나니까, 진짜로 저 "죽음"이 루케니의 상상의 산물처럼 보이더라는 거다.

게다가 근래 들어 웃음기가 싹 빠지고 그 자리를 광기와 사악함으로 채워 넣은 연기 때문에 이젠 아예 객석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을 작정을 했는지. 안 그래도 번뜩번뜩 빛나는 눈빛이 무서운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날은 약했나? 싶은 트립 상태까지 보여주더라. 난 이게 이날의 충격과 공포였는데, 죽음에게 줄칼을 받고 판관에게서 심문받는 장면에서 "그게 언제였습니까?"라고 하니까 날짜를 떠올리고 "아주 아름답고 화창한 날이었지."라고 대답할 때, 눈을 까뒤집으면서 고개를 뒤로 꺾으면서 경련을 일으키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 흡사 레옹에서 게리 올드만이 약에 취해서 발작하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엘리자벳을 암살하고 나서 전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퇴장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지만, 이날은 찌르고 난 줄칼을 코에 가져가 피 냄새를 맡으며 퇴장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이날의 은케니는 무슨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저 악의로 똘똘 뭉친 검은 마물은 도대체 뭐지? 싶은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이날 공연이 재미없었냐면,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진정한 무대광풍 은케니를 봤고, 저 반듯하고 선량한 청년이 저런 심연의 어둠과 광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엘리자벳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 이날의 은케니는 프린세스 츄츄의 드롯셀마이어 같았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Mozart L'Opera Rock)

일   시 : 2012. 03. 30 ~ 2012. 04. 29
장   소 :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관극일 : 2012. 04. 18 (수) 20:00
연   출 : 김재성, 음악감독 : 서유진
캐스트 : 모차르트 - 박한근, 살리에리 - 강태을, 콘스탄체 - 이해리, 알로이지아 - 최유하, 레오폴트 - 이기동, 난넬 - 홍륜희, 디바 - 허진아, 세실리아 - 최현선, 안나 마리아 - 장이주, 로젠베르크 - 성열석, 베버/요제프2세 - 장원령

- 사실은 이날 공연이 내 첫 모오락이 될 공연이었는데, 계획이란 소용없어~(feat.은케니)

- 지난 2번의 공연에서 레오폴트만 새로운 캐스트였는데, 이기동 씨의 레오폴트(이후 기동파파)는 일단 신파파에 비해서 진짜 평범하고 소시민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신파파는 일단 비주얼에서 사기캐에 가까운 것도 있고, 그 흰머리 블리치가 어찌나 매력적이신지. '불가능을 생각해' 넘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신파파가 콜로레도의 횡포에 분노를 느끼는 거라면, 기동파파는 좌절하고 있더라. 그래서 그런가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으셔서 난넬 목소리밖에 안 들리는 참사가; 그래서 이거 원래 난넬이 메인인 곡인가? 했다. 그런데다가 대사를 할 때도 기동파파는 상사 앞에서 비굴해지고,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하지만, 그 진심이 자식에게 전달되지는 않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불쌍한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어서, 카리스마 넘치는 신파파와는 참 많이 대조되었다. 신파파가 권위적인 아버지라면 기동파파는 세파에 찌들어 너무 지쳐버린 아버지.
그리고 무엇보다 기동파파는 록넘버가 전혀 안 되시더라. OTL 신성우 씨가 전직(?) 록커 출신이라 레오폴트 넘버를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꽤 잘 소화를 해낸 것에 비하면, 그래도 뮤지컬 배우이신데, 어찌 그리 박자 감이 없으신가요; 가창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록 비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 어디서 치고 들어가야 하는지, 어디다 강세를 둬야 하는지 이런 게 안되니까 노래가 너무 밋밋해져 버렸다. 그나마 '불가능을 생각해'는 난넬이 커버해주지만, '벗어나야 해'는 대책이 없더라. 사실 이 노래를 신파파도 그렇게 썩 만족스럽게 불러준 건 아니었지만, 기동파파에 비하면야;

- 근촤의 노래가 몇 군데 달라지기도 했고, 참 넘버 소화력, 가창력은 쩔어주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지는 못해서 왜 그럴까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모촤와는 달라서 그런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모차르트는 경박하고, 푼수지만, 천재이고, 음악 외에는 모든 면에서 독립하지 못한 의존적인 인간인데다, 대인관계가 순수하다 못해 백치에 가깝고, 빛과 어둠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이중성을 간직한 캐릭터. 그런데 근촤는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이더라. 그리고 모든 면에서 너무 진지하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호촤가 나하고 맞는 것 같은데, 심각한 자아도취에 난 천재~ 라는 자신감이 뿜어져 나와서 그게 똘끼로 이어지다가도,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지고 나약해지는 여린 자아. 그런데 근촤는 그렇게 되기엔 너무 진지하고 또 강인하다. 진지하게 분노하고, 화를 내며, 너희가 날 무시해!! 복수하겠어!!! 라는 장미송을 듣다 보면 어쩐지 모차르트보다는 베토벤이 떠오를 뿐이고. 콜로레도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자유 선언을 할 때도 저건 혁명가로구만 했다.

- 이날이 두 번째 태을 살리였는데, 지난 공연 보다, 나는 이날 공연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노래는 살짝 삑이 나오기도 했지만, 노래에 실린 감정이 지난 공연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와, 가뜩이나 근촤에 이입이 어려운 것도 있어서, 참 내 평생에 모차르트가 주인공인 극을 살리에리에 이입해서 해석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싶었다. 하지만 태을 살리는 진짜 어찌나 귀족적이고 우아하고 자존심이 다락 같으신지. 내가 원래 저렇게 긍지 높은 인간이 처음으로 벽에 부딪혀 패배하며 좌절하는 걸 또 좋아하다 보니; 
모촤에 대한 집중을 잃고 자연스레 2막은 살리에리 오페라 락이 되버렸는데, '고통스러운 즐거움' 전에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를 감독하러 나왔다가 경박한 모차르트의 모습에 음악을 듣지도 않고 넌 글렀다고 평하는 걸 보면서, 다른 때 같으면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지 했을 텐데, 이날은 그래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신인 음악가가 궁정에서 받은 일에 저렇게 나태한 모습을 보인 것만으로도 해고감이다,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이랬다는;

사실 살리에리의 비중이나 줄거리가 '아마데우스'와 비슷해서 착각할 수 있지만, 모오락의 살리에리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와는 다르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질투하고,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거까지는 같지만, 모오락의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밀어 넣지는 않는다. 그의 성공을 훼방 놓을 뿐. 그리고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리가 대적하는 건 결국 '신'이지 모차르트가 아니다. '신'의 사랑을 받은 모차르트를 파멸시키는 것으로 신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지.
이걸 깨달은 것이 '악의 교향곡'인데, 태을 살리가 '악의 교향곡'에서 보여주는 감정은 모차르트에 대한 시기나 질투보다는 다분히 자기 파괴적인 쪽에 가깝다. 천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열등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치고, 선택받은 자를 저주하며 악의 교향곡에 영혼을 바치겠다고 선언하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의 음악에 잠식당해 자신이 죽을 것 같으니 치는 방어선이랄까, 몸부림치는 걸로 보이더라. 모차르트를 만나기 전에는 패배감, 열등감이라는 감정과는 연이 없었던 살리에리에게 이것은 큰 충격이고, 그 탓에 자신의 인생관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게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 곡이 '승리의 희생양'인데, 살리에리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자긍심 높은 인물이었는지 보여준다. 이런 살리에리였기에 죽어가는 모차르트를 마지막으로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을 테지.

극의 마지막 '후회없이 살리라'도 지난 공연보다는 이날 공연에서의 화음이 더 아름답게 어울려서 참 좋더라.

+ 커튼콜을 보면서 모오락과 모차르트! 에 각기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이 어쩐지 비슷한 포지션인 게 또 재미있었다. 아르코 백작과 로젠베르크 백작이라던가, 디바 누님과 황금별 여사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