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2. 07. 10 ~ 2012. 08. 04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2. 07. 10 (화) 20:00
연   출 : 유희성,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 최성희, 레오폴트 모차르트 - 이정열, 콜로레도 - 민영기, 난넬 모차르트 - 임강희,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신영숙, 체칠리아 - 이경미, 쉬카네더 - 김재만, 아마데 - 탕준상, 어린 난넬 - 윤시영
줄거리 :
천재음악가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사랑 받고자 했던 모차르트,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스타 모차르트!
다양한 음악으로 풀어낸 진짜 그의 인생 이야기! [출처 > 플레이 DB] 

한줄 요약 - 사골국도 재탕까지는 먹을만 하지만, 삼탕부터는 맛이 떨어진다.

- 3년 연속으로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하여간에 삼연을 맞이하게 된 뮤지컬 모차르트! 한줄 요약이 첫공에 대한 감상이지만, 더 정확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난 첫공 보고 내가 잡은 표의 1/3은 버렸다. 아까운 수수료를 물어가며. ㅠ.ㅠ

아무리 첫공 쉴드를 쳐주고 싶어도 이건 아니다 싶게 공연의 완성도가 70% 정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올린 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애초에 공연 기간도 짧게 올라와서 이게 작정하고 올리는 공연이 아니라, 뭐라도 올려야 할텐데, 준비된 게 없어서 했던 거 올린다는 인상이더니만, 정말 딱 그짝이었던 모양이다. 기존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세번째나 되니까 안이하게 하던대로 하면 되지~생각했던 거 같고,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희성 연출의 단점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책없이 평면적인 무대전환, 맥이 뚝뚝 끊기는 흐름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 가장 큰 문제는 앙상블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합이 안맞는 건 연습량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소리가 제대로 뭉치지 않고,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량이 부족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모차르트! 넘버에서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앙상블이 제대로 받쳐주지를 못하니, 어디에서 감동받을 구석이 없더라. 기존 앙상블들이 지금 엘리자벳 지방 공연에 묶여있는 상황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진짜 1막 초반에는 다들 긴장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뒤로 가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제일 심각한 건 첫음이 소리가 안나는 거. 자신감 부족이라고 해야할지, 왜 치고 나와야 하는 첫음을 다들 뭉개버리는 건데. 음향 튜닝이 덜 되었는지 공연 중에 볼륨 들쑥날쑥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앙상블 소리에 힘이 없다. 다들 스리슬쩍 묻어가려고만 하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신영숙 씨가 끼면, 신영숙 씨 목소리만 확 튀면서 앙상블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기현상이 발생. 특히 여기는 빈, 모차르트모차르트 넘버에서 심하게 드러나더라. 공연 기간도 그리 길지 않은데, 과연 이 앙상블들이 제대로 앙상블을 이루게 될지 걱정된다.
그리고 쉬카네더의 김재만 씨는 깔롱을 떨지 말고, 제대로 공연을 보여주세요. 앙상블에 묻히는 쉬카네더라니 ㅠ.ㅠ 에녹 씨가 그리워서 눈물이 ㅠ.ㅠ
유희성 연출의 연출 방식은 마음에 안들어도 앙상블 조련 만은 제대로 한다고 생각했더랬는데, 어쩌다 이지경으로 무대위에 올리게 됐는지 진짜 궁금하다. 아니, 프로듀싱 하면서 이게 하나도 안 거슬렸나?

- 내가 작년 성남 모차르트를 보러갈 때, 아는 동생이 그냥 갈라콘이라고 생각하세요~ 했을 때도, 난 그렇게까지 맥락이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고, 모차르트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기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고. 그런데 이번 공연은 과연 작년에 봤던 그 공연과 같은 공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진짜 맥이 뚝뚝 끊기고 제대로 하나의 극으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장면 전환도 부자연스럽고, 단순할수가 있는지.
작년엔 내 눈과 귀에 뭐가 씌였던 건가 싶을 정도로 연출이 형편없더라. 무대 장치가 좌우에서 등장/퇴장을 반복하고, 노래 끝날 즈음해서 배우에게 핀 조명. 이게 매 장면마다 의미없이 반복되는데, 진짜 연출이 그냥 거저먹었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 뿐인가 배우가 연출에 기댈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휑한 무대 위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게 다 눈에 들어오던데. 연기다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거~의 없었고, 다들 갈라콘에 노래하러 나온 듯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서 난 이 극이 이렇게 지루한 극이었나, 내 기억이 왜곡된 건가 했다. 작년에 분명 150분이 짧다고 느껴졌는데.

- 배우 얘기를 해보자면, 은차는 이제 좀 쉴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작년 은차에 홀릭해서 팬 비스무리하게 된 이후 매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이번에도 기대가 좀 있었는데, 그 기대 중에 만족시킨 부분은 목소리에 파워가 붙었다는 거 말고는 없었다. 연기 노선도 크게 바뀐 부분이 없고, 여성스러움이 좀 빠지고, 연령대는 더 어려지고, 막무가내가 좀 늘고 하는 정도.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표면적이고 얕은 흉내내기? 연기가 단순해졌다. 흑흑 흐느끼고, 에헤헤 웃고, 깨방정을 떨고. 하여간 모차르트를 세번째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 흥이 나지를 않더라. 노래는 참 매번 감탄스럽게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첫공이라 실수없이 불러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던 거 같고, 그 와중에도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참 기가막히게 뽑아내서 그건 참 좋았다. 그러나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 복잡다단한 감정선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가고, 그냥 순서 외운대로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실망스러웠다.

- 이번에 공연 올라오면서 콘스탄체는 새 얼굴로 싹 바뀌었는데, 최성희 씨와 오진영 씨. 사실 바다의 연기를 내가 본 적이 없지만, 나는 4차원의 바다라면 새로운 콘스탄체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예상대로 최성희 씨는 정선아 씨와 전혀 다른 콘스탄체를 보여주기는 했는데, 이게 참;; 1막의 바다 콘스탄체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한마디로 백치미가 넘치는 푼수떼기. 볼프강과 재회했을 때 '난 항상 청소만 해야돼.'하는 대사를 정선아 씨는 의기소침해서 시무룩하게 하는데, 최성희 씨는 저 대사를 할 때 조차 발랄하기 그지없다. 백치미 넘치는 웃음을 헤헤헤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그런 모습도 나름 귀엽게 잘 어울리기는 해서 생각보다 괜찮네 했는데, 아~ 2막. '난 예술가의 아내라' 넘버 자체가 콘스탄체에게 참 불친절한 노래이긴 한데, 너무 캐릭터가 맥락없이 바뀌어서 ㅠ.ㅠ 뭐, 새로 캐스팅 된 배우의 첫공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가자 싶으면서, 관객인 내가 왜 이런 마음가짐으로 관극을 해야하나 싶어서 짜증도 나고. 오진영 씨의 콘스탄체는 또 어떠려는지.

- 작년에 대주교였던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그럭저럭 어울렸지만, 왜 노래를 가요풍으로 편곡해서 박자도 막 바꿔가며 부르시는지. 모차르트!의 곡들은 록적인 것 같으면서 클래식한 곡들이라 박자를 그렇게 밀고 당기고 하면 참 듣기에 어색해서. 하여간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기존의 범사마나 윤승욱 씨의 레오폴트에 비해서 참 아들을 많이 걱정하고, 또 귀족 앞에서 엄청 비굴한 레오폴트였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난 게 '황금별' 넘버 전 상황인데, 범사마든 윤파파든 황금별 여사님이 볼프강을 데려가려고 할 때 꽤 단호하게 맞서는 인상이었는데, 정열 파파는 그렇게 단호하게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공손하게 숙이고 들어가더라. 신분상의 문제나 이런 걸로 봤을 때 정열 파파의 해석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대사도 좀 더 자연스러운 톤이다. 근래에 아버지 배역을 자주 맡으시면서 볼프강이나 난넬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더라. 노래만 어떻게 정박자를 찾으시면 참 좋을 듯.

- 민영기 씨나 신영숙 씨(이제 황금별은 신영숙 씨 아니면 상상도 가지 않는 곡이 되버렸;)는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연기 노선에 그 짱짱한 성량까지 여전하셔서 그 점은 참 반갑고도 좋았고, 잔망 탕슨생(커튼콜에서 '나는 나는 음악'에 맞춰서 마지막 춤을 추다니, 잔망의 끝은 어디인가!)의 아마데도 여전히 훌륭! 이경미 씨의 베버 부인도 작년과 동일. 참, 이런 걸로 위안삼아야 하다니. ㅠ.ㅠ

- 보면서 참 한숨이 나오는 공연이었는데, 다음에 볼 땐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흐, 나의 모차르트!는 이렇지 않다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맨 오브 라만차 (Man of La Mancha)

일   시 : 2012. 06. 19 ~ 2012. 10. 07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2. 07. 01 (일) 18:30
연   출 : 데이비드 스완,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세르반테스/돈키호테 - 서범석, 알돈자 - 이혜경, 산초 - 이훈진, 도지사/여관주인 - 서영주, 닥터 까라스코 - 박인배, 신부 - 이영기
줄거리 :
배경은 스페인의 어느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인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급기야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며 착각하게 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난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지않나,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들어가 여종업원인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 않나, 여관주인을 성주라고 착각하고 기사작위를 그에게 수여 받으며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라고 우기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알돈자는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받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돈키호테 덕분에 알돈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만 억센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히 짓밟히고 만다. 다음날 엉망이 된 알돈자를 발견한 돈키호테는 여전히 아름다운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만 절망에 빠진 알돈자는 자신은 숙녀도 아니며 더럽고 천한 거리의 여자일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알돈자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돈키호테 앞에 이번에는 거울의 기사들이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본 알론조는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한 노인임을 깨닫고 쓰러지는데...[출처 > 플레이DB]

- 연극 돈키호테를 보면서도 생각한 건데, 나는 이 작품의 완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린이 명작동화 수준의 "동화" 혹은 어린이 명작극장에서 보여준 "만화" 정도의 사전 지식만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언젠가 꼭 원작을 완역본으로 읽어봐야겠다. 이게 하나의 원작으로 만든 건가 싶게 연극 돈키호테와 뮤지컬 돈키호테는 사뭇 달라서 과연 원작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연극 돈키호테의 주제가 "꿈"이라면, 뮤지컬 돈키호테의 주제는 "희망"이더라.

- 작년 가을 희망 강북 콘서트에서 '제 꿈은 돈키호테입니다.'를 간절히 소망하시던 범사마께서 드디어 소원성취하셨는데, 아주 그냥 진짜로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시더라. 특히 세르반테스가 소개하는 돈키호테는 깡마르고 비리비리한 늙은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난다고 묘사되는데, 범사마는 안광이 형형하다기보다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귀여운 기사님이랄까. 내가 세르반테스의 설명을 듣고 상상한 돈키호테는 성마르고 꼬장꼬장한 늙은이, 안광이 형형하여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근처에 가면 괜한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게 귀찮아서. 기본적으로 친근하지 않은 꼬챙이 같은 늙은 기사를 상상하게 되는데,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상당히 유하고 귀엽고 친근한 할아버지 기사였다. 온몸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빛을 마구 뿌리고 계시더라.
한마디로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는 즐겁고 유쾌한 늙은 기사님. 그렇다고 이 극이 마냥 해맑은 돈키호테를 그려내는 극이 아님에도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암울한 후반부를 다 덮을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라는 넘버가 어떤 상황에서 불리는 노래인 줄 모르고 들었을 땐, 그냥 좋은 노래,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노래로만 들렸는데, 확실히 뮤지컬 넘버는 극에서 따로 떼어져 있을 때랑 극 안에 녹아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큰 차이가 있다. 수많은 겁쟁이를 향해 꺾이지 않는 신념과 용기를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주는 저 보잘것없이 작고 마른, 눈빛만 맑고 형형하게 빛나는 늙은 기사의 울림이 가슴을 치더라.

- 이 뮤지컬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알돈자 - 둘시네아이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 감화되는 부분이 이 극의 주제인 것 같으니 말이다.
언젠가 EBS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숫자가 셋이라고 한다. 먼저 뜻을 세운 한 명, 그리고 그 사람의 지지자가 한 명. 그런데, 이렇게 둘만으로는 나머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동조하는 세번째 사람이 움직이면 그제야 비로소 움직이지 않던 다른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알돈자는 저 세번째 동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만드는 방아쇠 같은 존재.
이혜경 씨는 지난 시즌에도 알돈자 역을 하셨었는데, 거칠고 사나운 길고양이같은 알돈자를 연기하셨다. 그런데, 알돈자의 넘버들은 고음역대가 많아서 그 부분이 좀 어우러지기 힘들다고 할까. 대사를 할 땐 쌍욕을 지껄이고 퉤! 하고 침뱉는 여관의 하녀인데, 노래를 하면 고운 성악 발성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신세를 한탄하니 그 갭이 좀 있더라. 전에 김선영 씨가 인터뷰에서 노래의 음역이 너무 높아서 노래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기 싫어서, 노래의 음을 낮추고 연기를 살렸다는 걸 봤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 돈키호테의 영원한 동반자, 지지자 산초 역의 이훈진 씨는 동글동글한 외모에 '주인님이 그냥 좋아요~'라며 순정을 다바치는 역에 어울리는 깨알같은 귀여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런데, 산초가 이렇게 소년이어도 좋은 걸까...하는 생각은 들더라. 물론 귀엽고 깜찍한 산초도 좋았지만, 원래 산초는 그렇게 순수한 캐릭터가 아니지 않았나? 물론 돈키호테를 따라 모험을 떠날 만큼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적당히 늙은이 비위나 좀 맞춰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싶은 속내도 가지고 있는 속물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에서 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돈키호테 바라기였다.

- 살아가면서 점점 꿈을 잊고 산다. 꿈을 실현시키려면 부딪혀야 하는 수많은 난관들,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게 어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그렇게 꿈을 외면하고 산다. 용기가 필요하다.

+ 이날 무대 소품 사고가 대박으로 났더랬다. 2막의 막바지 가장 중요한 장면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소품으로 엉성하게 만든 침대에 범동키가 눕고 뒤로 체중을 싣는 순간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침대 상판이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이다. 그게 정말 너무 웃겨서 관객들이 다 웃고, 그래도 무대 위 배우 분들이 침착하게 다시 침대를 셋팅하고, 범사마가 웃음기 없이 침대에 눕고, 관객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극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뒤로도 침대에 누워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계속되었는데, 침대를 볼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와서 혼났다. 극에서 제일 중요한 감정선이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라 그 감정선이 깨진 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덕후 한 마리는 속으로 '앗싸! 레어템~'을 외쳤다나 뭐라나.
아부의 왕 (2012)

감   독 : 정승구
출   연 : 동식 - 송새벽, 혀고수 - 성동일, 예지 - 김성령, 성철 - 고창석, 이회장 - 이병준, 선희 - 한채아
관람일 : 2012. 06. 23 (토)
줄거리 :
아부계의 새싹 동식, 아부계의 전설 혀고수 
'아부'를 무기로 대한민국을 제대로 들썩인다! 
아부의 정,중,동을 일찍이 깨우쳐 '감성 영업의 정석'이라는 비법책을 저술한 아부계의 전설, '혀고수(성동일)와 아직은 눈치와 센스가 0.2% 부족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청출어람 제자 '동식(송새벽).
그들이 인생의 패러다임을 바꿀 인생역전 마법의 화술 '아부'를 무기 삼아 '혀' 하나로 대한민국을 들썩인다. [출처 > 네이버영화]

- 영화 포스터를 봐도, 네이버의 저 줄거리 소개를 봐도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은 뻔한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빵빵 터지는 코미디 영화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라고 해야할까. 아니, 분명 빵빵 터지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영화의 지향점은 그게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나는 꽤 재미있게 봤으니까. 하지만, 저 포스터와 예고편과 줄거리를 보고 기대한 관객에게 이 영화는 꽤나 혹평을 받을 거 같다. 감독은 판타지스러운 코미디와 다큐스러운 현실감 사이에서 어느 한 쪽도 손을 놓지 못했다. 내 취향을 말하자면, 다큐스러운 현실감 쪽이 더 마음에 들었기에 나는 이 영화에 대한 평이 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면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뒷 부분이 아니었을까. 웃기는 앞부분이 아니라.

- 송새벽이라는 배우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었고, 성동일이라는 애드립의 황제, 진지한 얼굴로 뿜게 만드는 배우에 대한 기대도 있었는데, 기대한 만큼 제대로 뿜겨주더라. 특히 아부의 기술을 전수하는 장면에서 기체조 혹은 택견을 떠올리게 하는 흐느적거리며 아부체조를 가르치는 장면이 압권이다. 뇌를 탁 놔버려~ 라며 온몸을 흐느적거리면서 "암요, 그럼요, 당연하죠, 별말씀을~" 춤을 추는 연체동물화한 성동일과 뻣뻣하기가 장작같은 송새벽은 그 자체로 그들의 내공을 보는 듯 했다. 송새벽은 좋은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멀었다.

- 배우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이 영화에서 나를 가장 웃게 만든 사람은 의외로(?) 김성령 씨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이 여인이 너무나도 얼토당토않은 아부쇼를 천연덕스럽게 펼쳐놓는 장면에서 나는 제일 많이 웃었던 것 같다. 분명 어설프고 사기꾼의 향기가 나는데, 하는 본인이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개드립을 치고 있으니. 역시 김성령 씨도 참 좋은 배우, 멋진 배우다.

- 출연하는지 몰랐고, 영화 소개 사이트에서 조차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철민 씨, 김진욱 씨. 아니, 적어도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 배우들 이름은 찾아볼 수 있게 만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키사라기 미키짱에서 키무라 타쿠야 역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이철민 씨가 이회장의 비서(?) 역으로,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총각 역으로 나왔던 김진욱 씨가 사채업자의 막내로 등장했는데, 이 두 역이 비중이 없는 단역도 아니었건만. 네이버같은 포털 소개 페이지에 안 나오는 거 가지고 뭐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영화 공식 사이트에는 이름이라도 올라갔어야 한다는 거지.
하여간 이철민 씨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김진욱 씨는 버섯 머리에, 잠자리 안경까지 쓰고 나오니 사람이 달라보이더라. 꽤 귀엽게 배역을 소화해내서 인상에 남았는데, 앞으로도 종종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전문 배우로는 보이지 않았던 동식의 아버지 역으로 나오셨던 분. (역시 어디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평생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사셨을 법한 그 아버지 역을 하신 분이 전문 배우가 아니라서 나는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진심을 전하는 마음이 더 진실되게 전해왔다고 할지. 저건 연기가 아니라, 정말 저 사람의 진심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 마지막 부분에서 더 울컥하게 만들더라. 아무래도 전문적인 연기자가 아니라, 마치 재연 드라마, 혹은 인생 극장을 보는 것처럼 튀는 부분도 있었지만, 난 그분의 표정이 참 좋았다.

- 이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웃음 코드는 이런 거였다. 보험 영업을 열심히 뛰던 동식이 우연히 선희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동식은 몸을 녹이려고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는데, 그걸 본 선희가 "선배 지금도 자판기 커피 좋아하는구나." 하니까, 그 뜨거운 걸 동식이 원샷해버리는 장면. 이런 생활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에겐 추천하고픈 영화다.

+ 밀려있는 후기가 11개 OTL 게으름도 관성이다. ㅠ.ㅠ
궁리(窮理)

일   시 : 2012. 04. 24 ~ 2012. 05. 13
장   소 : 백성희장민호 극장
관극일 : 2012. 05. 03 (목) 20:00
연출/대본 : 이윤택, 무대디자인 : 이태섭
캐스트 : 장영실 - 강학수, 세종 - 이원희, 황희 - 이종구, 이천 - 조정근, 당직사령 - 장재호, 조말생 - 전형재, 임효돈 - 김수보, 조순생 - 오동식, 최효남 - 유승락, 김종서/정갑손 - 심완준  
줄거리 :
“대호군 장영실이 안여(安輿: 임금이 타는 가마) 만드는 것을 감독하였는데, 튼튼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 ([세종실록] 1442년 3월 16일)

“주군이여 왜 내게 안여를 만들라고 하셨습니까?”
세종은 장영실에게 ‘안여’(수레)를 만들라고 명한다. 그러나 세종이 타고 가던 안여는 바퀴가 빠지며, 임금은 수레와 함께 땅 바닥에 처박히는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궁리>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을 계기로 장영실은 주군 세종을 음해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작품은 안여 사건을 중심으로 세종과 장영실. 그리고 그들은 둘러싼 주변 권력의 관계를 보여준다. 세종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장영실은 앞서가는 지식이자, 조선의 새로운 인물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견고한 계급과 권력 앞에서 인생 최고의 친우이자, 이상을 같아 나누었던 세종과의 관계는 파괴를 가져오기 시작하는데....[출처 > 플레이DB]

- 어렸을 때, 집에 전집으로 갖춰진 위인전에서 내가 제일 자주 꺼내 읽었던 게 모차르트와 장영실 편이었다. 장영실을 한국의 에디슨쯤으로 소개했던 거 같은데,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자동 물시계 자격루 부분이었다. 그림 없이 말로만 설명되어있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거기에 나오는 인형들 크기는 얼마만 한 건지 상상이 잘 안 돼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자격루를 머릿속에 그려보고는 했다. 그런데 이게 설계도나 이런 게 남아있지 않아서, 재현하기도 어렵다는데, 내 머릿속에는 서양식 자동인형 시계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격루가 동작하는 걸 무대에서 보여주더라. 감동~

- 극장에 들어가서 전공 학생 단관에 한 번 놀라고, 어쩐 일인지 엄마 손잡고 들어온 초등학생들이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이게 4월 말까지도 있었던 표가 5월 들어서면서 모두 매진이 돼버려서, 나도 일찌감치 예매해놓지 않았더라면 못 봤을 연극이라서. 장영실 역이 더블 캐스팅이라 포스터에 나오는 곽은태 씨의 연기도 보고 싶었는데 (아, 강학수 씨의 연기도 소름이 돋을 만큼 훌륭했으므로 아쉬워서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뒤늦게 잡으려고 보니 표는 이미 동났더라. ㅠ.ㅠ 그런데 전공 학생들은 진짜 한번은 봐야 할 것 같았던 게, 이게 희곡뿐만 아니라, 연출, 조명, 무대 디자인이 모두 수작이라. 특히 무대 디자인이 특이했는데, 2층 구조물로 가운데 마루 부분은 경사면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있고, 양옆으로 경사로가 있는데, 무대 오른쪽은 단순 경사로와 객석 앞쪽까지 휘감아 내려오는 경사로 이렇게 2개를 만들어놔서 동선을 다양하게 짤 수 있게 했다. 이만한 극이라면 연강홀 정도의 중극장에서 공연해도 좋겠다 싶더라.

- 극은 시작부터 긴장감이 흘러넘치는 폭풍우 속 왕의 행차 장면인데, 백성을 임금의 수레로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크고 무거운 임금을 짊어지고 힘겨워하는 백성과 그 백성 위에서 떠받침 받는 세종의 구도는 얼핏 백성의 희생과 고통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백성이 그렇게 힘겹게 떠받들고 있기에 어깨에 내려앉는 책임감도 태산같이 무거운 세종을 보여주는 듯했다. 임금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은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이 그걸 항상 명심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 대사 한 줄, 한 줄에서 힘이 느껴지는 극을 만난 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이 사대부들과 벌이는 설전은 뿌리 깊은 나무를 살짝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억지로 사극체로 하지 않은 대사들은 참 마음에 들었다. 명나라가 망해도 조선은 계속된다는 게 상상도 가지 않았던 당시 사대부들의 나름합리주의를 보면서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왜 이리 질기고 뿌리도 깊은가 했다. 현실적이라는 말로 보기 좋게 포장되는 기득권의 논리는 그래서 힘을 얻는 건가 보다. 개혁과 혁신을 단행하는 군주는 이상주의자 = 몽상가일 뿐이고.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는 누군가는 내쳐야 할 이단자. 그냥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힘이 없어서, 명분이 없어서 정치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군주 세종과 명나라가 망해도 영속하는 조선을 꿈꾸던 개혁 군주 세종과 장영실의 재능을 두려워하면서도 필요로 했으나 지켜주지는 못했던 세종. 어쩐지 나는 장영실보다는 세종의 처지를 이해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감옥에서 장영실의 발명품들 -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 자격루를 즉석에서 뚝딱 만들어 펼쳐놓는 장면은 이 아프고 서러운 연극에서 가장 밝고 빛나는 부분이었다. 바닥 조명을 이용해 별자리를 보여줄 때도 좋았지만, 압권은 극의 마지막 부분이다. 난 별자리 조명이 멋지다는 소리는 듣고 갔지만, 그런 식으로 연출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처음엔 경사로 부분을 보면서 황도 12궁을 펼치듯 경사로에 조명을 쏘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건 아니더라. 하여간 자신만의 별을 얻은 장영실과 그 곁으로 가고 싶어도 무거운 몸뚱이 - 명분, 실리, 정치, 거기에 병으로 고통스러운 육신을 포함한 - 때문에 비탈진 경사면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세종의 대비가 극명한 마지막 장면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장식한 별자리였다.

+ 공무가 아닌 사적인 시간이면 시도 때도 없이 영실아~ 장영실을 찾아대는 세종이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내시가 되어도 좋다는 장영실의 충의(?)를 보고 있자면, 조선 시대 주종 관계는 어쩌면 저렇게나 호모로운건지(;) 문학 시간에 사미인곡, 속미인곡 배우면서도 저건 남녀상열지사 뺨치는 로맨틱 연시다 그랬는데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