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3 (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막공 주간의 첫 공연이었다. 화요일마다 레벨업해서 오는 은릿은 오늘도 또 디테일이 정말로 깨알같이 변화하고, 더 세밀하게 미세 조정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도대체 막공 때는 어디까지 가려나라는 감상이었는데, 1막 초반에 앙상블 합이 자주 어긋나서 역시 화요일은 화요일이구나 했다. 특히 결혼식 장면에서 앙상블이 다함께 외치는 부분(사랑스런 신부를 위하여! 라든가, 행운이 함께 하기를! 같은 거)은 계속 어긋나더라. 그래도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었는데, 오늘의 복병이 따로 있었으니 원음감 -_-` 몇몇 넘버는 참 쓰릴하게 달려주시고(폴로니우스의 충고, 클로디어스의 분노), 늘어지면 안되는 넘버는 늘어지고(무덤지기 노래) 지금 막공 주간이거든요? ㅠ.ㅠ

- 극의 시작, 오른쪽 성루에서 장례식을 바라보다 거트루트가 왜 나야~ 라며 한탄하니, 노래하기 시작하는 은릿.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를 못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떠나셨냐며 원망스런 마음 반, 슬픔 반의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오늘 또 너무 절절한 거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무대가 회전하면서 예의 그 태권브이=선왕의 유령이 등장하는데, 막공이 다가와서 그런가 가슴에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가슴에 덴마크를 새기고, 아들은 덴마크를 등에 짊어지고 있구나.

선왕의 유령을 태권브이라고 맨날 놀려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햄릿이나 거트루트, 클로디어스의 증언을 토대로 선왕의 모습을 그려보자면, 그는 용맹하고 위엄이 넘치는 정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훌륭한 통치자였을 거다. 그랬기에 선왕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는 책임과 고통의 십자가가 아닌, 자신이 이룩한 업적, 자랑스러운 치세의 훈장이다. 햄릿은 그 아버지가 이뤄놓은 업적을 등에 업고, 새로운 덴마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운명처럼 그렇게 십자가를 등에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햄릿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햄릿이 홀로서기를 하기엔 아버지의 부재가 너무 빨랐다.

- 그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자신만 뒤에 남겨진 채 착착 진행된 결혼식. 장례식에서 보여준 슬픔의 감정이 강했던 그만큼 오늘 Why me 넘버에서 이제까지 본 중에 은릿의 분노 지수, 짜증 지수가 거의 최고치였던 거 같다. 게다가 누가 딕션가지고 뭐라했나? 왜이렇게 한 음절 한 음절 씹어먹을 것 처럼 또박또박 발음해주시는지, 안 그래도 가사 내용이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이라, 아주 내뱉는 마디 마디 독을 품고 있더라.

- 이 독기가 '피는 피로써' 넘버에 이어지면서 만렙찍으려고 작정한 은릿은 오늘도 한층 더 목소리를 그르렁대면서 지르는데, 저 피맺힌 절규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릿이 느끼는 그 고통에 강제로라도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런 햄릿의 고통에 찬 몸부림이 그저 사랑의 열병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폴로니우스 같은 사람도 있어서 세상은 재미가 있는 거지. 오늘 He's crazy에서 은릿의 팔랑팔랑 오도방정이 또 업그레이드. 아놔~ 이런데서마저 업그레이드 안 해도 되거든요. 이 뒤에 '수녀원에 가' 들어가는 부분까지도 웃음기가 수습이 안되잖아. 그래놓고 자기는 웃음기 싹 지우고 애절하게 피를 토하면서 불러요. -_-;

- 1막의 피날레인 오늘 밤을 위해의 가사는 참 의미심장하다. "산다는 게 연극같아 / 온통 거짓말로 모두 가려져있어" 이 가사는 그대로 복수를 위해 연기를 해야하는 햄릿의 상황이기도 하며, 어제의 삼촌이 오늘의 아버지로, 그리고 그 삼촌이 아버지의 원수라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그 모든 것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를 불태우는 은릿의 독무와 노래가 폭발하듯 공간을 가득채우는 걸 보는 건, 참 매번 짜릿한 경험이다.

- 급격하게 비극으로 치닫는 2막을 보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햄릿의 비극은 "욕망에 물든 치명적인 사랑"이 원인이지만, 결국 아버지를 잃은 두 아들들의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
폴로니우스의 죽음을 전해듣고 귀환하는 태을 레어가 오늘 정말 배에서 내릴 때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싶게 휘청거리면서 내려오는데, 장섭 폴로니우스를 사랑하는 건 동레어 뿐만이 아니었구나 싶더라.
한 사람은 그 그림자가 사방에 뻗은 태산같은 아버지를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친구처럼 다정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둘 다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가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햄릿이 복수했다고 착각하고 내뱉은 첫 대사가 '내 칼에 묻은 피, 아버지 보이나요.' 였고, 레어티스가 독 묻은 칼로 햄릿에게 상처를 입히고 내 뱉은 첫 대사가 '아버지 보이시나요. 저 상처'였다는 걸 생각해보자.
게다가 한 쪽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고, 다른 한 쪽은 "목숨보다 귀한" 여동생을 잃었다. 정말 이 둘은 형제처럼 닮았다. 레어티스는 아마도 거트루트의 죽음을 목격하고서야 햄릿이 또 다른 자신과 같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가서는 "형제여!"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거겠지.

- 숨이 막힐 것 같은 극의 마지막. 사는 거나 죽는 거나 매한가지 고통스러웠던 저 가여운 왕자님은 결국 마지막까지도 그 질문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게 가더라. 다른 때는 그래도 죽을 때 만큼은 조금이라도 편해보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끝내 그 고뇌를 덜어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게 참 안타까웠다.

+ 오늘 앙상블에서 이정화 씨가 안보여서 생각해보니, 내일 공연에 오필리어로 서니까 오늘은 어디 객석에라도 앉아서 무대 모니터를 하고 계셨을까나. 그런데, 스윙 김솔잎 씨는 어쩌면 그렇게 이정화 씨랑 놀라울 만큼 닮으셨는지.

++ 커튼콜에서 거트루트를 소개할 때 범사마의 이쁜 짓, 1열 부터 기립이 이어져서 은태가 씐나한 거 기억해두기.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1 (일) 14: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막공 주간을 앞두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레전드니 뭐니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젠 하루 하루 공연 회차 줄어드는 게 아쉬운 시간만 남았다. 참 가열차게 회전문을 도는 와중에 이리 저리 섞이는 조합이라 매 공연이 조금씩 느낌이 다르고, 참 귀신같이 조합을 짜놔서; 가만 생각해보니, 동레어/윤클로/섭폴로가 너무 오랜만인거다. 이 멤버가 은릿 초연 멤버이자, 은릿 서울 공연 막공 멤버인데.

초연 공연보고 난 그 힘 잔뜩 들어간 은릿도 파릇파릇해서 좋다고 이 정도면 노래는 로딩 완료라고 했더랬는데, 참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서 새삼 감개무량. 그리고 당시에 나에게 혹평을 받았던 윤클로와 섭폴로님. ㅋㅋ 윤클로는 넘버 소화가 전혀 안 되고 있었고, 섭폴로님은 He's crazy에서 재즈 필을 못살린다고 좀 심심하다 했더랬지.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는 김장섭님이 내 최애 폴로니우스가 되셨고 (오늘은 이발까지 하고 오셔서 또 얼마나 훤칠하시던지. 가시는 김에 은릿도 좀 델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ㅠ.ㅠ), 윤클로는 화해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11월 말이었나;), 이젠 클로디어스 안 가려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동레어는 아직까지 편차가 있지만, 요 근래 그래도 오빠 모드에 들어가려고 많이 노력하는 게 보여서 마음이 흡족하고, 오히려 초연 때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윤필리어와 갈수록 싸움만 하다 나오는 형국이구나. 영숙 거트루트 님이야, 초반에 너무 위엄에 넘치는 여왕님 모드였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사랑에 목숨건 여자와 그럼에도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아주 절절하게 연기해 주셔서, 매공연 기립을 부르고 계신다.
하여간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 초연 멤버의 오늘 공연은 막공에 대한 기대감을 한 껏 부풀게 해줄 만큼 훌륭했다.

- 내가 뮤지컬 햄릿에서 참 좋아하는 시작하는 장면. 오늘도 이 부분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청보라빛 음울한 북유럽의 겨울 분위기가 매번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억하며 부르는 은릿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목소리인지. 새로운 왕 앞에 무릎꿇기 싫어 멀리서 지켜본 장례식. 그들이 모두 떠나고 뒤늦게 등장한 은릿은 오늘 유독 파리한 낯빛을 하고 나타나 무덤으로 옮기는 걸음마다 슬픔의 감정이 실려있더라. 이런 미세 조정이 아직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게 참 은태의 놀라운 점.

이렇게 아버지 장례식에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 오직 사랑'할 때 뒤에 등장해서 행복에 겨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감정선이 이제는 분노보다는 서늘한 체념과 약간의 비난 섞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데, 그게 정말 꼿꼿하게 선채로 딱 눈만 내리깔아서, 저 자존심이 절벽같은 고고한 왕자님이라는 캐릭터를 그 시선만으로도 보여주더라.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장례식에 등장했을 때 만큼 파리한 안색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서 이게 조명탓인가, 분장탓인가 하여간 히마리가 하나도 없어보이더니만, Why me에 가서는 악만 남아 악에 받쳐 질러대는 것 같더라. 그리고 요즘 경수 호레이쇼가 깐족대는 정도가 점점 늘어서, 전에는 그래도 햄릿을 다독다독 좀 냉정해지라고 충고하는 냉철한 친구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봐도 친구 속도 모르고 너도 즐겨보라는 둥 되도 않는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는 한량같은 느낌이다. 너무 멀리 간 느낌인데, 이제 좀 돌아와도 좋지 않을까. 호레이쇼는 햄릿이 신뢰하는 유일한 친구인데, 그 외계지렁이 보는 듯한 은릿의 시선은 어쩔거냐며. 상황상 호레이쇼도 자기가 무슨 뻘 소리를 한 건지 아니까 그렇게 꼬리를 내리는 거지만.

- He's crazy 넘버에서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 애드립 작렬.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은릿이 머리 양옆으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미쳤어~ 돌았어~' 하며 등장하자, 그걸 따라하시면서 '그렇게 안했는데요.'라고 하시고, 왕자가 직접 나타나서 비아냥대니까 몸둘바를 몰라 하시면서 막 변명아닌 변명하시느라 진땀 빼시고.ㅋㅋ 거기에 은릿은 어제부터 앙바 동작에서 폴짝 뛰는 거 아예 그 노선으로 가기로 했는지, 오늘도 그거 해줘서 사람들 뒤집어지고, 나도 이미 봤는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뒤에 '수녀원에 가' 보는데 좀 고생했다. 자꾸 떠올라서;

- 오늘도 윤필리어는 햄릿을 하나도 사랑하지를 않아서 나에게 얼음 한 판 선사하시고, 그 와중에도 은릿은 애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을 열심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진짜 막공까지 윤필리어는 안 바뀌려나 ㅠ.ㅠ

- '증거가 필요해'에서 호레이쇼의 백허그에 전에는 은릿이 얌전히 안겨있더니, 요즘들어 뿌리치려고 버둥거려서 분위기 더 묘해졌다; 안그래도 므흣한 장면인데, 점점 더 쓰릴미화 되가고 있는 이 바람직한 현상; (하여간 이래서 뮤지컬 햄릿 비지정 공식 커플은 오필리어 - 레어티스, 햄릿 - 호레이쇼라는 거)

- 1막의 마지막인 '오늘밤을 위해'와 2막의 시작인 '사느냐 죽느냐'가 인터미션을 두고 이어지는 게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체로 다면적인 햄릿이라는 캐릭터를 대표하는 두 넘버이기 때문이다. 이 두 넘버에서 은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은릿 (햄릿이라는 텍스트에 박은태의 개성을 입혀, 박은태 만의 햄릿이라는 의미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피는 피로써' 넘버에서 이어지는 폭풍같은 광기와 격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오늘 밤을 위해'에서 터트리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분노하고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사느냐 죽느냐' 넘버에서 햄릿의 번민과 고뇌를 보여주는 거다. 단숨에 복수를 결심했지만, 막상 복수의 때가 다가오자, 원래가 생각이 많고, 깊이 사색하는 성격의 이 왕자님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장렬하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물러서서 구차하게 살아갈 것인지, "그게 문제"인 거다. 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없겠는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불의를 보고도 행동하기를 망설이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결벽하고 순수한 왕자님은 부도덕한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과 같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가혹한 운명이 잔인할 따름이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아, 그런데 진짜 이 사느냐 죽느냐 넘버는 은태가 정말 너무 잘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 소절 소절 실리는 감정마다 창법을 달리하며 목소리에 색을 입혀가며 부르는지, 진짜 이 노래 하나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오늘 정말 인상에 깊이 남은 장면은 극중극 장면에서 은릿이 오필리어에 매달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참 아련하게 미소를 짓는데, 예전에 우리 이렇게 좋은 시절도 있었지 라는 듯 너무 따뜻하고 애련한 미소를 지어서, 비극성을 더 극대화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다 갑자기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오버하며 웃어대다가 표정 싹 굳히고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데, 이렇게 다중적인 캐릭터를 순식간에 확확 변화하는 표정 연기로 제대로 보여줘서 참 놀랍더라.
그런데, 그런 햄릿의 심리변화는 그 짧은 순간에도 천변만화 하고 있건만, 오필리어는 그저 이 굴욕적인 순간을 참고 견디어내는 텅 비어버린 '인형'이더란 말이냐. ㅠ.ㅠ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에게 저렇게 온 몸으로 매달려 있는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을 헤아려볼 생각도 못하는 건지.
하여간 윤필리어는 내도록 이런 상태라 이후에 매드씬에서 아무리 눈물 연기가 훌륭해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슬프기만 하면 단가?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 그저 자기 연민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막공 때까지 윤필리어와 화해할 날이 영영 안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동레어가 오늘 참 기특하게도 오빠 모드로 열심히 연기해주고, 2막 Killer's name에서의 폭주는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였으니 충분히 납득이 갈 수준이었다. 오필리어 매드씬이나 장례식 장면에서도 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오빠의 모습이라, 부디 이 감정선을 다음 공연에도 이어줘서, 다시 연인 모드로 돌아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쓰다보니 또 이만큼 길어졌는데; 난 왜 매번 1막만으로 저만큼 폭주해서, 정작 중요한 2막은 짧게 쓰고 끝나는지 ㅠ.ㅠ
하지만, 내일 출근도 해야하니까;

+ 오늘 커튼콜에서 장섭 무덤지기가 누운 채 올라오다가 동레어에게 밟힐 뻔해서 식겁하며 놀라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 동레어는 아무리 장섭 폴로니우스와 케미가 좋다고 하지만, 언제 저렇게 친해져서 발을 올려놓을 정도가 되었는지. 물론 당하고만 계실 장섭님이 아니신지라, 동레어는 장섭님의 분노의 어퍼컷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의 레어템으로 은릿의 커튼콜 삑사리가 나왔다. 본인도 내놓고는 거기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미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 망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표정이더니, 그래도 마지막에 쭉 올려주는 부분은 너끈히 올려주고, 인사할 때 혀를 낼름 내밀고 웃는 게 귀여웠다.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0 (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이제 그냥 은릿은 매일 매일이 레전드 갱신의 나날이구나. 은릿/태을레어/범클로/성기폴로 조합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공연 탄생. 어떻게 이틀만에 또 이렇게 연기 디테일이 자연스럽게 늘어서 오는 거냐. 대단하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다. 매 공연 더 더 좋아져서 나타나는 게 정말 가능하다는 걸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정말 신세계로구나. 은태야 너는 정말이지 ㅠ.ㅠ
은릿 뿐만 아니라, 진리의 범사마, 영숙 거트루트님도 연기 쩔어주시고, 태을 레어도 지난 번과 달리 목상태도 많이 회복되어 안정감 있게 레어티스를 연기해주고, 성기 폴로니우스도 오늘은 엇박을 많이 자제하시더니, 무덤지기 씬에서 애드립 폭발ㅋㅋㅋ 이렇게라도 균형을 잡아주셔서 감사.

 - 뮤지컬 햄릿은 특이하게 '막'이라는 게 없이 무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극이 시작되고, 또 시작 전에 암전 같은 것도 없이 종소리로 시작되서, 초반엔 그게 좀 불만이었더랬다. 관객들이 아직 극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되어있는 상태에서 극이 시작되어버리는 것 같아 술렁거림이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걸렸거든. 그런데, 그게 오늘에서야 또 이해가 되더라. 저렇게 드러난 무대가 관객을 장례식에 초대된 덴마크의 국민들로써 끌어들이는 것었다는 걸. 이걸 관극 nn번 만에야 깨닫다니, 왜이리 뒤늦게 알아채는 게 늘어가는지;

2011 뮤지컬 햄릿이 병맛 연출로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난 이 시작 부분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음울하고 차가운 북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푸른 조명과 검은 의상이 어우러져 엄숙한 장례식 분위기에 그로테스크함을 더한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장중한 앙상블의 음성 뒤로 북구의 시린 바람같이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은릿의 목소리가 또 그렇게 좋다. 오늘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가 어릴 때 작은 검을 주셨죠~'부분 부터 표정 연기가 디테일해져서 '장난감과 바꿨어요~'에 가서는 목소리도 같이 흐느끼더라. 그리고 서럽게 부르는 "아버지─"가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그 느낌도 참 좋고. (이러다 오늘은 죄다 좋았다고 끝맺음을 할 기세;) 아직 아버지로부터 들을 얘기도, 하고싶은 말도 많은데, 그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커다란 구멍으로 남았다.

- 가슴에 뚫린 구멍을 안고 참석한 결혼식에서 어머니조차도 그게 시간이 흐르면 메워질 작은 상처쯤으로 넘겼지만, 그 구멍은 점점 더 넓어져서 종국에는 햄릿 뿐만 아니라 덴마크 왕실을 통째로 집어삼킬 블랙홀이었건만. 하기는 제일 친하다는 호레이쇼마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은릿은 내적으로 비밀이 많은데다, 까칠하기가 고슴도치라 아무에게도 -오필리어에게마저- 곁을 내주지 않으니 누가 그 속을 헤아리겠는가. Why me에서 그래도 친한 친구에게 불만도 털어놓고, 내 심정을 좀 알아다오 투정도 부려보는데, 이 눈치 없는 친구가 그냥 맞장구를 쳐주면 될 걸,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타이르고 얼르고 되도않게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은릿이 답답해 미치지. 와우와우~ 할 때 쳐다보는 눈빛이 얼마나 한심해하는지, 오늘도 호레이쇼가 거기서 깨갱하는 분위기.

- 동레어가 폴로니우스를 좀 가리는 경향이 있다면, 태을 레어는 그런 면에서 가리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정 조합에서 케미가 터진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폴로니우스간에 편차없이 착하고 듬직한 아들이라는 게 보여서 안정적이다. Sister에서도 태을 레어는 동생 아끼는 마음이 끔찍한 다정한 오빠를 연기해서 참 좋다. 오늘은 목상태도 돌아와서 노래도 지금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좋았다. 미묘한 감정 같은 거 느끼지 않게 해줘서 좋은 레어티스. 그런 오빠의 신신당부도 내팽겨치고 햄릿한테 다가가는 오필리어.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에게 보여주는 감정은 사실 '사랑'보다는 '미안함'쪽이 훨씬 더 강했다. 그건 은릿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사랑한다는 고백에 저렇게 울상을 지으면 도대체 어떤 감정을 잡으라는 거냐고;;

- 매 공연 더 처절해지는 '피는 피로써' 넘버. 은릿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보면서 항상 속으로 '제발 이제 됐잖아요. 이제 그만두게 해주세요.'소리가 절로 나온다. 저대로 뛰어내리든, 목을 긋든 그대로 망가져버릴 것 같아서, 자살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해주고 싶을 지경.

- 그렇게 사는 거나 죽는 거나 같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의 광기를 비웃는 He's crazy 넘버. 오늘 은릿이 미쳤어~ 돌았어~ 하면서 폴로니우스들을 같이 비웃어주는데, 그 냉기가 말도 못하게 서늘하더니만, 갑자기 '아름다운 밤입니다.'하고 펼쳤던 양 팔을 발레의 앙바 자세(가장 기본이 되는 팔 동작)를 한 채 폴짝 뛰어가지고 웃음이 터져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니 배우가 자체 관크 할래요. 이 뒤에 오필리어가 나타나서 심각한 장면이 이어지는데, 나는 웃음 참느라 고역;;; 그래놓고 은릿은 웃음기 싹 지우고 나타나서 너무 가슴아프게 '수녀원에 가'를 부르는데, 세상에 목요일에 봤던 것 보다 감정의 낙차폭이 더 커지고 가슴 아픈 표정이 더 디테일해져서 다시 한 번 감탄. 공연을 거듭하면서 어디까지 발전하는 건지.

- 상처받은 오필리어는 사실상 또 다른 햄릿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사랑. 그리고 복수를 위해 버려야 하는 원래의 '나'. 그래서 천갈래 만갈래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하며, 나는 누구인지, 나는 대체 왜 사는 건지 길을 잃었다고 울부짖는 은릿은, 이때만 해도 아직 복수에 완전히 잠식당하기 전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다. 그리고 호레이쇼가 나타나서 상복은 이제 벗어버리라며 어떻게 너를 위로할까 하는 그 순간이 은릿이 복수에 온전히 먹혀버리는 순간이다. 오로지 복수에 대한 일념으로 잠도 잘 수 없고,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복수에 잠식당해 정신도 육체도 무너져가는 것을 방치하고 자신을 절벽으로 몰아가는 위태로운 상태. 
복수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안달나 있을 때, 나타난 유랑극단은 그야말로 천군만마. 그들과 함께 복수극을 꾸밀 생각으로 눈만 생기가 돌아서 번뜩이는데, 그 묘하게 다크하면서 환희에 찬 표정이 참 섬뜩하더라.
복수를 위해 '나'를 버리고, 또 다른 '나'를 연기해야만 하는 이 연극같은 삶, 거짓으로 점철된 현실에 대한 분노와 환멸의 감정을 가감없이 표출해내는 1막의 피날레는 그래서 오늘도 전율이었다.

- 범사마의 Chapel은 오늘도 레전드. 오늘 범클로는 참회의 기도를 하면서 벌써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은릿이 살해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그 뒤 '내 손에 묻은 피 안 씻겨' 할 때 부터 벌써 눈물 자욱이 반짝이더라.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에 이끌려 눈물을 매달고 아련한 미소를 짓는데, 정말 거트루트를 사랑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을 죽여야만 해─오~ 오오"에서 보여주는 감정선은 정말 최고. 형을 사랑했다는 말도 진심으로 들리는 죄책감, 통한의 감정들. 그리고 비뚤어진 열등감 같은 것이 다 느껴지더라.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보여주는 은릿의 연기는 이제 뭐라 더 토을 달 것도 없이 너무 애처로워서 ㅠ.ㅠ 폴로니우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 무너져내리는 연기는 진짜 ㅠ.ㅠ 여기서 뭐가 더 나올까 싶었는데, 더 나오더라. 웃어도 웃는게 아니고, 그 웃음에 마저 두려움이 묻어나 파들파들 떨면서 겁에 질려,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치지도 못하는, 통곡하고 싶지만, 눈물도 나오지 않는 모든 것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설상가상 오필리어와 마주쳐서 기겁하고는 달아나는 은릿이 참 상황에 안맞게 불쌍하더라.

- 귀환하는 태을 레어티스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보여주는 슬픔과 분노의 연기가 좋다. 아버지의 부고를 타국에서 전해듣고, 분노보다 먼저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휘청거리며 배에서 내리는 레어티스가 좋다. 오버하지 않고, 격한 동작없이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을 부르르 떠는 온몸에 들어간 힘과 분노에 찬 표정과 눈빛으로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도 썼지만, 태을 레어는 머리에 피가 몰렸어도, 이성을 잃지 않아서, 클로디어스의 제안을 제대로 듣고, 왜 저런 제안을 하는지 재보고 클로디어스와 손을 잡는다는 게 보인다.

- 오늘 무덤지기 씬에서는 호레이쇼가 참 술이 많이 들어간 것 같더라. 은릿은 그냥 침울한 평소 분위기인데, 호레이쇼가 먼저 키득키득 술 거하게 걸친 티를 내며 등장. 해골 세개 놓고 개그치는 부분에서 오늘 객석 반응이 꽤 좋았어서, 김성기 씨 애드립 작렬. 타타타 가사를 한치 앞도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까지 나간 건 좀 오버였지만, 하여간 객석 분위기도 좋고 씐나씐나 모드. 그러더니만 이어지는 오필리어 장례식에서 은릿이 또 얼마나 처절하게 비통해하던지. 여기서 은릿이 표현하는 슬픔의 강도도 점점 더 세져서, 조만간 뒤에서 잡는 호레이쇼 뿌리치고 무덤에 뛰어들 기세. 그러나 그게 사랑해서였냐면 은릿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미안한 마음이 더 강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서 영숙 거트루트의 연기가 얼마나 애절했는지. 뭐, 항상 이 부분의 연기는 좋았지만, 위로의 손길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너무너무 절망해서 흐느끼는 어머니의 마음이 애처롭더라. 이런 어머니였기에 잃고나서 햄릿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던 거겠지.

- 상대가 동레어에서 태을 레어로 바뀌면 이상하게도 은릿이 호승심이 더 높아지는 것 같단말이지. 동레어는 내가 상처를 입든 말든 너 하난 꼭 죽이고 말겠어라며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니까, 일단 그 기세에서 밀리는 느낌이라면, 태을 레어는 그정도까지 눈이 뒤집힌 건 아니라서, 정당한 결투, 내 검 실력으로 너를 이겨서 죽여주겠어 라는 분위기랄까. 거기에 은릿도 검술이라면 나도 지지않아 뭐 이렇게 맞받아치는 분위기의 결투씬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는 긴박감은 동레어에 비하면 좀 덜하다.

- 거트루트의 독살로 단 하나 남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된 은릿, 그의 폭주를 막을 것은 무엇하나 남아있지 않아 이성을 잃고 자신을 막는 자는 모두 닥치는대로 죽이고 또 죽이고. 눈이 벌개져서 죽음의 사자가 되버렸는데, 그 귀에 레어티스의 제지의 말이 들어올리가 없다. 앞을 막는 자는 무조건 칼로 쓰러트리고, 그래서 지금 자신이 찌른 게 레어티스였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들린 "형제여!"도 처음엔 안 들리다가 두번째 "형제여!"에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와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된다. 결국 모든 사단은 그 한사람 때문이었으니 그를 향해 불태우는 증오, 살의, 분노, 원망의 불꽃이 "클라우디우스─!!" 한 마디에 담겨 터져오른다.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된 화염이 덴마크 왕실을 불태우고, 햄릿 자신도 그 불길에 휩싸여 완전연소.

- 극의 마지막, 어디든 가주오~ 라던 은릿은 오늘 하얗게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바람에 날려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 목소리가 바람 소리 같더라. 그 바람 소리나는 목소리를 타고, 그렇게 바라던 미지의 그곳으로 날아가 잃었던 꿈, 잊었던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을 지켜봤다.

+ 요 근래 커튼콜에서 별다른 이벤트가 없었는데, 오늘 퇴장할 때, 은릿이 오필리어와 포옹하는데, 태을 레어 등장. 오필리어 뺏어가시려나 했더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어서, 은릿도 뭐지? 그냥 이대로 안고 있어도 되는 건가? 뭐 이러고 있는데, 태을 레어가 웃으면서 계속해 뭐 그런 제스춰. 은릿과 오필리어가 포옹을 푸니까 태을 레어가 은릿한테 악수를 청해서, (내심 포옹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뭐야, 이제 오라버니가 공인으로 인정해주는 사이라는 뜻? 얼쑤~ 은릿은 이제 태을 레어한테 인정 받았구랴 싶더라. ㅋㅋㅋ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08 (목)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이만큼이나 반복해서 보고 있는데도, 질리지 않고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아있다는 게 참. 나도 내가 징하지만, 매번 새로운 뭔가를 던져주는 배우분들 모두 참 대단하다. 앙상블 중에 박수진 씨가 오늘도 안나오셔서 그 자리를 이정화 씨가 메꿨는데, 뭔가 사정이 있으신 건지.

- 극의 시작, 장례식 장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장례식인데, 직접 참석도 안하고 오른쪽 성루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은릿을 바라보며, 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처음으로 헤아려봤다. 어이가 없지. 내가 이 극을 몇 번을 보는데, 내도록 그저 아버지를 정말 좋아했는가보다, 참 슬퍼하는구나 뭐 이 정도로만 보고 있었다는 게. 장례식에서 곧바로 삼촌의 대관식으로 이어지는데, 새로운 왕을 맞이하여 그 앞에서 무릎꿇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도 못하고(안하는 게 아니다)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다가 그들이 다 물러가고 나서야 애도의 꽃 한송이를 그 앞에 바칠 수 있었던 저 결벽하고 자존심 높은 왕자님. 그걸 세상에 이제와서야 깨닫다니;

- 오늘 Why me에서 은릿은 짜증과 분노 게이지가 또 평소보다 높아서,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까지 썩어가는 거냐며 아주 있는대로 성질을 내는데, 호레이쇼가 거기에 말려들어서ㅋㅋㅋ 넌 너무 심각하다며 좀 즐겨보라고 섹시한 여자는 어때 와우와우~ 하며 귀염을 떠는데, 오늘 은릿이 진짜 호레이쇼를 쳐다보는 눈빛이 '저런 한심한 놈!'을 넘어서 소위 외계지렁이를 쳐다보는 시선이라  와우~하고 두번째 와우를 채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데 꼭 야단맞는 강아지 같았다. ㅋㅋ

- 같은 대사, 다른 느낌 : 네 엄마 같은 여잔 안돼!
이런 게 더블 캐스팅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데, 폴로니우스 역에 김장섭 씨와 김성기 씨는 참 대조적이라서.
김장섭 씨는 참으로 훈훈한 기럭지에 댄디한 신사, 귀족적인 분위기라서, 젊은 시절 지금의 레어티스와 많이 비슷했을 거 같은 인상이다. 유학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 그들만의 리그에서 순차적으로 재상의 자리까지 올랐을 법한 느낌. 거기에 비해서 김성기 씨는 어떻게 봐도 평민에서 발탁되어, 돈으로 관직을 산 건 아닐까 싶단 말이지. 그렇다고 능력도 없는데, 오로지 돈으로 매수했다는 게 아니라, 신분의 핸디캡을 돈으로 극복한 케이스.
하여튼 이렇게 두 분이 보여주는 폴로니우스는 계급적으로 차별화된 느낌인데, 그래서 프랑스로 떠나는 레어티스에게 하는 충고 "여자를 만날 땐 신중해야해. 네 엄마 같은 여잔 안돼."라는 가사가 서로 다르게 들린다는 거. 뭐, 이건 회전문 돌다보면 나타나는 부작용의 일종으로 내가 혼자 뻘 상상을 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훤칠한 외모의 김장섭 씨가 이 대사를 할 땐, 젊어서 바람 같이 나비 같이 이 여자 저 여자 전전하시다가 사실 마음에 없던 그 누군가와 사고를 쳐서(;) 억지 결혼을 하게 된 건 아닐까, 그런데 그 부인되신 분이 외모는 그럭저럭이어도 알고보니 진국이라, 남편 꽉 틀어쥐고 집안 단속 잘하고 그런 살림꾼이 아니었을까 뭐 이런 상상.
반면 김성기 씨가 이 대사를 할 땐, 아마도 돈 버느라 늦게 장가를 가셨을 거고, 신분 상승을 위해 가난한 귀족 집안의 영애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영애라는 분은 알고보니 미모도 출중하신 분(슬하의 두 자식을 보면 엄마 닮았군요~ 소리 밖에 안나올 듯;) 이어서, 부자 남편 만나서 사치스런 생활도 좀 하시고, 인물값도 좀 하고 그랬나보다 뭐 이렇게 혼자 상상하고 앉았다.

- '피는 피로써' 넘버는 매 공연 참 계속해서 레전드를 찍어주니 내가 더이상 어떻게 더 찬양할 수식을 못 찾겠다. 그런데 정말 그 허리에 감은 천하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자꾸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와 겹쳐보여서, 언제가 은태가 꼭 JCS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우, 저렇게 파워가 붙은 목소리로 질러주는 겟세마네는 얼마나 처절할까.

- 햄릿의 광기에 클로디어스와 거트루트가 부부싸움 하는 장면에서 클로디어스가 "역겨워! 저 미치광이 헛소리" 할때, 영숙 거트루트의 표정이 '아니, 이이가 지금 내 사랑하는 아들한테 뭐라는 거야?!'라는 표정이 참 좋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잘 구슬려보려고 다가가는데, 윤클로가 버럭 누가 왕인지 보여주겠다며 허세를 부리니, 거트루트의 여왕님 모드에 스위치가 켜져서 '당신의 그 고집이 당신을 망치고 말거야.'라며 훈계. 이게 또 윤클로의 자격지심을 건드리는 바람에 격하게 대응을 하고 마는데, 그 불꽃튀는 자존심 싸움이 참 흥미진진.

- Chapel 넘버에서 윤클로의 연기는 지난 화요일보다 더 다듬어져서 좋더라. 무엇보다 윤클로는 표정이 참 변화무쌍한데, 특히 형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을 표출할 때 최고. 형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이 더 비참해서 음지로 숨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날. 왕관을 향해 손을 뻗으며, 지금은 형이 아닌 내가 왕이라고 호기롭게 외쳐보지만, 저주가 이미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걸 외면할 수는 없다.

- 윤필리어의 매드씬이 눈물 철철에 연기력도 그만하면 괜찮은데, 왜 내 마음은 갈수록 싸늘해지기만하는지.
정화 오필리어가 매드씬에서 '현실도피'를 선택했다면, 윤필리어는 '퇴행'을 선택했다. 목소리도 행동거지도 어린애가 되버려서, "안돼, 울지마. 내가 안아줄테니까~" 하는 장면에서도 정화 오필리어는 울고 있는 상대를 달래고 위로해주는 쪽이라면, 윤필리어는 어린애가 같이 울어버릴 거 같으니까 울지말라고 매달리는 분위기. 그렇게 어린 시절로의 퇴행을 선택해놓고 거기에 햄릿을 끼워맞춰 넣으니까 이게 자꾸 아귀가 안맞고 비틀어지지. 
내가 원하는 캐릭터 해석이 아니라고 이러는 게 아니다. 저 모순을 배우가 해결하지 못하는 게 보이니까 답답한 거지. 뮤지컬 햄릿에서 제일 불쌍한 캐릭터가 오필리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모든 감정에 "슬픔"과 "청승"이 들어가 있는 걸까. 하다못해 1막에서 헬레나와 햄릿의 연애편지를 읽는 장면에서조차 울 것처럼 웃는 얼굴은 슬퍼보이고, 햄릿에게 사랑을 고백받을 때도 울상을 짓는데, 이게 햄릿의 감정에 동화되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이건 다른 소리지만, 윤필리어가 원캐로 계속 무대에 오르면서, 그리고 2막의 오필리어 매드씬에 더 집중하면서, 1막의 오필리어로서 집중이 깨지는 건 아닌가 그런 의구심도 든다. 2막에서 오필리어가 얼마나 가혹한 운명에 처할 지 아는데, 햄릿과 온전히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햄릿을 경계하는 오필리어라니.

- 오늘 결투씬에서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고 죽는 걸 보고 동레어가 마구 괴로워하는 걸 처음 봤다. 전부터 이렇게 연기를 해왔는데 내가 못 본 건지 모르겠지만, 그 죄책감이 이후에 '형제여, 이제 서로 용서해.'라는 대사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게 아니라는 개연성을 부여해줘서 좋더라.

- 오늘 공연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게 뭐냐고 한다면, 은릿의 눈빛이라고 하겠다. 시작부터 핏발이 선 듯한 눈동자처럼 보여서 신경이 날카로운 게 눈빛에서부터 보이더니, 이후 그 눈빛이 때로는 물기에 젖은 듯, 때로는 광기에 번들거리는 것처럼, 때로는 열에 들뜬 것처럼 빛을 내며, 말 보다 더 강하게 감정을 뿜어대더라.

- 공연 자체로는 지난 화요일 공연이 더 좋았지만, 은릿과 윤클로는 오늘 공연에서 한 발짝씩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줘서 이건 이것대로 또 회전문을 도는 기쁨을 던져주었다. 이제 은릿 남은 공연은 고양 공연을 제외하면 6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