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3 (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막공 주간의 첫 공연이었다. 화요일마다 레벨업해서 오는 은릿은 오늘도 또 디테일이 정말로 깨알같이 변화하고, 더 세밀하게 미세 조정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서, 도대체 막공 때는 어디까지 가려나라는 감상이었는데, 1막 초반에 앙상블 합이 자주 어긋나서 역시 화요일은 화요일이구나 했다. 특히 결혼식 장면에서 앙상블이 다함께 외치는 부분(사랑스런 신부를 위하여! 라든가, 행운이 함께 하기를! 같은 거)은 계속 어긋나더라. 그래도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가 싶었는데, 오늘의 복병이 따로 있었으니 원음감 -_-` 몇몇 넘버는 참 쓰릴하게 달려주시고(폴로니우스의 충고, 클로디어스의 분노), 늘어지면 안되는 넘버는 늘어지고(무덤지기 노래) 지금 막공 주간이거든요? ㅠ.ㅠ

- 극의 시작, 오른쪽 성루에서 장례식을 바라보다 거트루트가 왜 나야~ 라며 한탄하니, 노래하기 시작하는 은릿. 나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를 못했는데,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떠나셨냐며 원망스런 마음 반, 슬픔 반의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오늘 또 너무 절절한 거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무대가 회전하면서 예의 그 태권브이=선왕의 유령이 등장하는데, 막공이 다가와서 그런가 가슴에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가슴에 덴마크를 새기고, 아들은 덴마크를 등에 짊어지고 있구나.

선왕의 유령을 태권브이라고 맨날 놀려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햄릿이나 거트루트, 클로디어스의 증언을 토대로 선왕의 모습을 그려보자면, 그는 용맹하고 위엄이 넘치는 정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훌륭한 통치자였을 거다. 그랬기에 선왕의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는 책임과 고통의 십자가가 아닌, 자신이 이룩한 업적, 자랑스러운 치세의 훈장이다. 햄릿은 그 아버지가 이뤄놓은 업적을 등에 업고, 새로운 덴마크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운명처럼 그렇게 십자가를 등에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햄릿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햄릿이 홀로서기를 하기엔 아버지의 부재가 너무 빨랐다.

- 그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런 부재에 혼란스러운 가운데 자신만 뒤에 남겨진 채 착착 진행된 결혼식. 장례식에서 보여준 슬픔의 감정이 강했던 그만큼 오늘 Why me 넘버에서 이제까지 본 중에 은릿의 분노 지수, 짜증 지수가 거의 최고치였던 거 같다. 게다가 누가 딕션가지고 뭐라했나? 왜이렇게 한 음절 한 음절 씹어먹을 것 처럼 또박또박 발음해주시는지, 안 그래도 가사 내용이 세상이 미쳐돌아간다며 조롱하고 비난하는 내용이라, 아주 내뱉는 마디 마디 독을 품고 있더라.

- 이 독기가 '피는 피로써' 넘버에 이어지면서 만렙찍으려고 작정한 은릿은 오늘도 한층 더 목소리를 그르렁대면서 지르는데, 저 피맺힌 절규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릿이 느끼는 그 고통에 강제로라도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런 햄릿의 고통에 찬 몸부림이 그저 사랑의 열병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폴로니우스 같은 사람도 있어서 세상은 재미가 있는 거지. 오늘 He's crazy에서 은릿의 팔랑팔랑 오도방정이 또 업그레이드. 아놔~ 이런데서마저 업그레이드 안 해도 되거든요. 이 뒤에 '수녀원에 가' 들어가는 부분까지도 웃음기가 수습이 안되잖아. 그래놓고 자기는 웃음기 싹 지우고 애절하게 피를 토하면서 불러요. -_-;

- 1막의 피날레인 오늘 밤을 위해의 가사는 참 의미심장하다. "산다는 게 연극같아 / 온통 거짓말로 모두 가려져있어" 이 가사는 그대로 복수를 위해 연기를 해야하는 햄릿의 상황이기도 하며, 어제의 삼촌이 오늘의 아버지로, 그리고 그 삼촌이 아버지의 원수라는, 거짓말 같은 현실을 말하기도 한다. 그런 여러 복합적인 의미를 담아 그 모든 것에 대해 분노하고 증오를 불태우는 은릿의 독무와 노래가 폭발하듯 공간을 가득채우는 걸 보는 건, 참 매번 짜릿한 경험이다.

- 급격하게 비극으로 치닫는 2막을 보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햄릿의 비극은 "욕망에 물든 치명적인 사랑"이 원인이지만, 결국 아버지를 잃은 두 아들들의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
폴로니우스의 죽음을 전해듣고 귀환하는 태을 레어가 오늘 정말 배에서 내릴 때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싶게 휘청거리면서 내려오는데, 장섭 폴로니우스를 사랑하는 건 동레어 뿐만이 아니었구나 싶더라.
한 사람은 그 그림자가 사방에 뻗은 태산같은 아버지를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친구처럼 다정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둘 다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아버지가 자신을 돌아봐주기를 바라고 있다. 햄릿이 복수했다고 착각하고 내뱉은 첫 대사가 '내 칼에 묻은 피, 아버지 보이나요.' 였고, 레어티스가 독 묻은 칼로 햄릿에게 상처를 입히고 내 뱉은 첫 대사가 '아버지 보이시나요. 저 상처'였다는 걸 생각해보자.
게다가 한 쪽은 사랑하는 연인을 잃었고, 다른 한 쪽은 "목숨보다 귀한" 여동생을 잃었다. 정말 이 둘은 형제처럼 닮았다. 레어티스는 아마도 거트루트의 죽음을 목격하고서야 햄릿이 또 다른 자신과 같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가서는 "형제여!"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거겠지.

- 숨이 막힐 것 같은 극의 마지막. 사는 거나 죽는 거나 매한가지 고통스러웠던 저 가여운 왕자님은 결국 마지막까지도 그 질문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그렇게 아프게 가더라. 다른 때는 그래도 죽을 때 만큼은 조금이라도 편해보이기도 했는데, 오늘은 끝내 그 고뇌를 덜어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게 참 안타까웠다.

+ 오늘 앙상블에서 이정화 씨가 안보여서 생각해보니, 내일 공연에 오필리어로 서니까 오늘은 어디 객석에라도 앉아서 무대 모니터를 하고 계셨을까나. 그런데, 스윙 김솔잎 씨는 어쩌면 그렇게 이정화 씨랑 놀라울 만큼 닮으셨는지.

++ 커튼콜에서 거트루트를 소개할 때 범사마의 이쁜 짓, 1열 부터 기립이 이어져서 은태가 씐나한 거 기억해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