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Hamlet)

일   시 : 2013.12.04 ~ 2013.12.29
장   소 : 명동예술극장
관극일 : 13. 12. 23 (월) 19:30
원   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   출 : 오경택,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햄릿 - 정보석, 클로디어스 - 남명렬, 거트루드 - 서주희, 폴로니어스 - 김학철, 레어티즈/극중극배우 - 박완규, 오필리어 - 전경수, 선왕의 유령/무덤지기/극중극배우 - 정재진, 호레이쇼 - 지춘성, 볼티먼드/극중극배우 - 이지수, 로젠크란츠/포틴브라스 - 김병희, 길덴스턴/무덤지기 - 구도균, 여비서/극중극배우 - 배소현, 경호원 - 신기원, 시종 - 최민혁, 시종 - 고홍진
줄거리 :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의문의 죽음을 맞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다. 지금은 왕이 된 삼촌 클로디어스와 여전히 왕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머니 거트루드의 계략이 있었다는 유령의 이야기에 햄릿은 일부러 미친 척을 하고 사실을 파헤친다. 오필리어는 갑자기 변해버린 연인 햄릿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아버지 폴로니어스와 오빠 레어티스의 반대로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다.
한편 햄릿은 자신을 찾아온 배우들에게 아버지의 살해 장면을 연기해 줄 것을 부탁하고, 공연을 함께 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영국으로 내쫓으려 하는데...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배우 낭비, (주의 - 아래 감상 중 스포일러 포함.)

- 전 세계 어디선가는 항상 상연되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가 지지 않는 연극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햄릿일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고 다양한 버전과 연출로 변주되고 있는 햄릿. 뮤지컬로 영화로 그리고 무엇보다 연극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었을 희곡.
믿음을 주는 명동예술극장의 선택이고, 원작이 바로 그 햄릿!!이고 오경택 연출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봤을 때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게 무리다. 당연히 그만큼 큰 기대를 안고 보러갔는데, 역시 기대와 만족도는 반비례의 관계였음을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

- 배우들? 당연히 다들 한가닥 하시는 분들인데, 나쁠 게 있었을까? 연출? 아주 막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정승호 디자이너의 무대는 참신했고, 역광 조명을 이용한 장면이나 오필리어의 죽음에서 사용된 시퍼런 배경은 정말 좋았다. 그 외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차지 않았냐....하면, 역시 캐릭터성, 현대화, 오리지널 캐릭터...뭐 이런 거? 

- 칼대신 총을 쓴 건, 뭔가 이유가 있어서 였을 거다. 처음 햄릿이 총을 꺼냈을 때만 해도, 나는 리즈시절 디카프리오의 화보 영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렸지만, 역시 햄릿은 총과 어울리지 않는다. 총은 그저 우리 현대사의 어떤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한 소품으로 등장할 뿐으로 포틴브라스에게서 느껴지는 낯설지 않은 독재자와 쿠테타의 향기가 너무 노골적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내가 가장 경악했던 부분은 클로디어스의 캐릭터였는데, 거기에 오리지널 캐릭터인 여비서는 뜬금없이 등장시켜서 클로디어스의 정체성마저 흔들어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악랄한 근친 살해, 부당한 왕위 찬탈에 이어 여비서와의 불륜까지 얹어서 클로디어스의 야비함을 더할 필요가 있었던 건지. 그리고 그의 최후가 햄릿의 복수의 칼날이 아닌 포틴브라스의 총끝에서 끝났다는 건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연출은 클로디어스의 최후에 박통의 최후를 겹쳐보았는지 모르겠는데, 음....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서주희 배우를 데려다 거트루드를 시키면서 그정도 밖에 활용을 못한다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배우가 아까울 지경이었다. 육체적인 욕망에 빠져서 클로디어스를 선택했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약하고, 그랬던 여인이 뒤에 진실을 깨닫고 햄릿에 대한 모성을 발하는 장면의 개연성 없음은 어쩔건가. 마치 선수의 기술력이나 기본기는 탄탄한데 제대로 된 안무가를 만나지 못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연기를 보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햄릿이라는 희곡이 원래 거트루드와 오필리어에게 친절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그럼 뭐하러 현대성을 찾고, 각색이라는 걸 하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원작 그대로의 오리지널리티를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 오필리어의 죽음이 연출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음모론'이나 작금의 안녕들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연출의 고통같은 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난 이런 식으로 마주치는 건 싫었단 말이지. 그래도 시퍼런 물속을 향해 침잠해가는 오필리어의 가련하고도 창백한 모습은 굉장히 시각적으로 훌륭한 연출이었다. 푸르도록 시리고 슬픈,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필리어 역의 전경수 배우는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2008)에서 오필리어로 출연한 경력이 있던데, 내년 초에 EMK에서 올린다는 햄릿에 재도전 해보시는 건 어떨지.

- 배우들 얘기를 해보면, 햄릿의 정보석 씨는 쉰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변치않는 미모를 자랑하시며 나약하고 신경쇠약에 까칠하며 생각이 많은 햄릿을 연기해주셨다. 레어티즈 역의 박완규 배우는 '잠들지 못하는 밤은 없다.'에서도 가장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주시더니, 레어티즈의 비통함과 절망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해주셨다. 엘리자벳의 라우셔 추기경 이지수 배우 역시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반가웠고, 폴로니어스 역의 김학철 배우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우스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한 분이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고 병들어 지친 몸뚱아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신 정재진 배우님까지 참으로 명품 배우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훌륭한 드림캐스트다.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저 유명한 독백을 극의 마지막으로 돌린 연출도 마음에 차지 않고, 비극의 여운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게 한 마무리도 마음에 안들고, 하여간 나한테는 별 두개 반, 박한 평점을 줄 수 밖에 없어 마음이 아픈 기대작이었다.
HAMLET
일   시 : 2011. 12 .23 ~ 2011. 12. 25
장   소 :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
관극일 : 2011. 12. 25 (일) 19: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누가 나에게 뮤지컬 햄릿 레전드 공연을 물어보면 나는 크리스마스에 고양 아람누리에서 올린 총막공이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것 같다. 진짜, 난 막판까지 큰 기대 안했는데, 총막공에서 이런 레전드 공연이 탄생할 줄이야. 일단 음향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23일, 24일 공연에 비하면 훨씬 나아져있었다. 그래도 나름 피드백을 했던 건지, 아니면 배우분들이 애쓰신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고의 공연을 보여준 배우분들 모두 레전드였고, 그 중에서도 총막공에서 그야말로 햄릿에 빙의되어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은릿은 오늘 제일 큰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 극의 시작. 오른쪽 망루에서 장례식을 지켜보는 은릿의 표정에는 슬픔이 흘러넘치고,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 벌써부터 저렇게 감정을 끌어올리면 이 뒤에 전개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주려고 저러나 기대감이 상승하면서, 사실상 이때 벌써 레전드를 예감했다.
아니나 달라, 결혼식 장면에 이어지는 Why me에서 감정의 격렬하기가 또 피크치를 달리는 거다. 화가 나서 옷자락을 털어내는 동작도 어찌나 격한지 코트 자락이 어깨를 덮을 정도였;; 이 썩어빠진 세상에 대한 한탄과 분노, 그리고 그걸 어떻게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다 토해내듯 그 답답한 음향을 뚫고 쩌렁쩌렁 질러대는데, 세상에 벌써부터 이러냐, 오늘이 총막공이라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싶었다.
아, 여기서 레어템으로, 벽에 장식된 장미꽃 리스를 집어던지는데 그게 벽에 맞고 튕겨나와서 그걸 기어이 발로 뻥 차버리는 걸 볼 수 있었다. ㅋㅋㅋㅋㅋㅋ

- Sister에서 태을 레어에게 거한 뒷통수를 맞아버렸고, 아니 왜 막판에 와서 연인 모드로 돌아서심; 이어지는 Let's rise above this world는 이번 시즌 들어 그래도 가장 햄릿을 사랑하는 것 같은 윤필리어를 만날 수 있어서, 조금이나마 화해했다. 그런데, 2막 극중극 장면에서 이경수 호레이쇼를 비롯해서 미경 헬레나, 윤필리어, 길던스턴, 로젠크렌츠까지 합동으로 빵 터져서 웃음기 누르느라 힘겨워하고, Sextet 들어가야하는 윤필리어마저 연기를 잊고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어떻게든 웃음기를 죽이려고 들썩들썩 하느라, 이 부분은 오늘 좀 의문. 뭐에 그렇게 웃음이 터졌는지, 이경수 호레이쇼가 마지막 트라이앵글을 좀 격하게 치느라 살짝 삑 비슷한 걸 내서 그랬을까나. 그래도 어떻게 Sextet에서 감정 잡고 제자리를 잡아들어가서 다행이었다.

- '피는 피로써'에서도 감정의 격하기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는데, 저 MR과 드럼과 베이스, 일렉기타 소리를 뚫고 목소리를 내려니, 이게 너무 과부하가 걸려서 조마조마 하더니만, '목이 말라 내게 제발!!!!!, 피를 줘─'하고 절규하는데, 저 제발!!!!!!!을 너무 강하게 지른거지. 결국 '피를 줘─'에서 소리가 살짝 뒤집혔는데, 그래도 은근슬쩍 자연스럽게 넘기는게 무대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스킬은 점점 더 노련해지는구나 싶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어디든 가주오~'는 또 처절함을 넘어서 피를 토하듯 절절하게 뻐렁치게 불러줘서 감탄했다. 이걸로 어제의 그 불완전 연소는 완벽 해결.

- 'He's crazy' 에서 어제 박자 때문에 고생하신 김성기 씨가 오늘은 제대로 리듬을 맞춰주셔서 괜찮았나 싶었더니, 2막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거트루트를 찾아와 커튼 뒤에 숨는 부분에서 또 박자를 어그러트리셔서, 이 분의 Free~ 한 박자감은 어디 안 가는구나 했다.
아 그리고, 이 장면에서 장섭 폴로니우스 일 땐, 왁! 하고 놀리더니만, 김성기 폴로니우스일 때 은릿은 '으응~?' 하는 김성기 씨 특유의 버릇을 흉내내며 놀리는 게 또 재미 중 하나.

- '수녀원에 가'는 넘버 시작부터 목소리가 슬픔으로 흔들리는데, 정말 장난 아니게 물기가 가득해서 심상치가 않았다. 차마 감정을 다 숨기지 못하고, 어떻게든 냉혹한 표정을 짓기는 하는데, 목소리에 담긴 애통한 감정은 또 너무 절절해서, 어떻게 저 속울음을 못 알아챌 수 있지 싶을 정도였다. 수녀원에 가라고 하고 뒤돌아서 가슴 무너지는 표정이다가 오필리어가 잡아 세울 때. 전에도 고개를 위로 향하고 있는 걸 보기는 했지만, 난 그게 오필리어를 향해 마음이 돌아선 사내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총막공에 와서야 그게 오필리어의 얼굴을 보는 게 괴로워서 애써 시선을 피하려고 저랬다는 게 눈에 확 들어오더라. 왜냐면 저렇게 시선을 허공에 두다가 결국 오필리어를 바라봐야 할 때 큰 결심하고 시선을 내리는 게 오늘에서야 확연하게 보여서, 난 왜 이런 은릿을 총막공에서야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낯설어 해야하나 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오늘 총막에서 보여준 은릿의 연기 자체가 그랬다. 이미 속속들이 다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들이 튀어나와서 나를 꽤 당황시켰는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바람에 이건 그냥 햄릿에 빙의되었구나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단 한 순간도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서 흘러넘치는 그런 느낌. 그런데다가 감정의 치열함이 이제껏 은태가 보여준 거에서 50%를 더한 그런 격렬함이 있어서, 진짜 무대 위에서 쓰러지려고 작정을 했구나 했다.

- '수녀원에가 가'에서 보여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 '증거가 필요해'로 이어지면서 신경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신경쇠약 직전의 광기를 보여주더니, '오늘 밤을 위해'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파고는 또 얼마나 진폭이 큰지, 진짜 저렇게 1막에서 모든 걸 불사를 듯이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서 끌어내면 어쩌나 싶을 정도였다.
이게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상당히 배우를 갉아먹는 것 같았던 게, 이날 극장 내부도 상당히 서늘해서 외투 벗었다가 다시 걸친 사람들이 천지였는데도 은태가 정말 땀을 비오듯 흘려대는 거다. 전에는 탭을 춘다더가 하는 격한 동작에서 땀방울이 머리카락을 타고 흩날리는 정도였는데, 이게 가만히 서있는데도 볼을 타고 땀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진짜 몸 사리지 않고 모두 불살라버릴 작정이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다 '산다는 게 연극같아' 독무 추는 부분에서 어쩌면 그렇게 순간순간 표정이 달라지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객석에 전달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지. 난 마지막에 그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고 기어이 은릿이 통곡하는 줄 알았다. 복수에의 희열보다 이 상황에 대한 서글픔과 분노로 일그러진 '오늘 밤을 위해─'는 내가 들어 본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외침이었다.

- 2막의 시작, 사느냐 죽느냐. 사실 나한테는 이 명제보다 더 와닿았던 게 잃어버린 녹슨 꿈을 찾으면 잊었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부분이었다. 복수를 꿈꾸는 햄릿과 달리 나에겐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보다 '자아'를 찾는 게 훨씬 중요해서. 내가 '나'로 있기 위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햄릿은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가면서 무너져내리는 게 더욱 가슴이 아픈 장면 중 하나다.

- 오늘 영숙 거트루트의 I'm untrue는 이번 시즌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애절했다. 표정 연기에서 묻어나오는 그 회환에 가득찬 감정, 강약 조절된 목소리로 표현하는 거트루트의 욕망, 사랑받고 싶다는 게 그렇게 큰 욕심은 아닐텐데, 사람 마음 하나 움직이는 게 참 이리 어렵고 무겁다.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 거트루트를 찾아와서 책망하는 은릿이 또 이날 따라 엄마를 비난하기보다 속상해서 그걸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더라. 그러더니 커튼 뒤에 숨은 사람을 인식하고나서는 그야말로 눈이 뒤집어졌다고 할까, 광기에 휩싸여서 일을 저지르는데, 아버지 유령의 외면으로 일순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이 오늘 정말 너무 애처로와서.
뭐라고 해야할까, 나는 여기에서 은릿이 보여주는 상식적인(?) 반응이 참 좋다. 간단하게 표현하기가 좀 어려운데, 건전한 도덕관을 가진 일반인이 광기에 휩싸여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보여줄 법한 반응이라고 해야하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경악하고,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두려움 속에 자책하다가 회피를 선택하게 되는 일련의 그 과정이 섬세한 디테일과 함께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걸 지켜보는 게 좋다.
그런데 이날 은태가 햄릿에 빙의한 것 같다고 내가 자꾸 그러는게, 아무리 울컥해도 무대 위에서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이 배우가 이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실제로 반 울음 속에 연기를 하더라는 거. 피 묻은 손을 보며 부들부들 떨 때도 눈에 눈물이 한 가득이더니, 거트루트가 뒤에서 안아주니까 울며불며 그 팔에 매달리는데, 평소에는 그렇게 어머니를 의지하지 않았어서 더 안스러웠다.
거트루트가 폴로니우스의 팔을 보고 은릿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 '이제 가혹한 저주가 시작됐어.'라고 하자, 은릿이 커튼 뒤에 사람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여기서도 평소보다 힘이 없어서 비틀비틀 계단을 오르더니, 커튼 뒤의 사람이 폴로니우스라는 걸 확인하고 경악하고는 울다가 웃다가 아주 정신줄을 놓고, 슬쩍 소매로 코밑을 훔치는데, 코끝이 빨개져서 부르는 Who's crazy가 상황에 안 맞게 너무 가슴을 후벼파는 거다. 사실 제일 불쌍한 건 어이없이 죽은 폴로니우스인데, 저렇게 망가져버린 왕자가 너무 불쌍하고 가련해서 거기에 이입해버린다는 거지. 보는 사람이 깜짝 놀랄만큼 온몸으로 계단에서 구르는 모습도 한 몫하고. 진짜 공연 끝나고 은태는 무릎이나 팔 다리 성한 구석이 있을까 싶;;

- 무덤지기 씬이 참 이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붕 뜨는 씬이긴 한데, 앞 뒤로 이어지는 씬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 숨 돌려가는 장면은 또 꼭 필요한 것 같고. 오늘 호레이쇼와 은릿이 등장할 때, 무슨 유치원 아이들이 친구 손 꼭 붙잡고 들어오는 것처럼 호레이쇼가 내켜하지 않는 은릿을 손 잡고 끌고 나와서 좀 웃었다. 그리고 김성기 씨는 '일산에 와서도 네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애드립으로 큰 웃음 주셨다.

- 이어지는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 은릿이 또 너무 처절하게 슬퍼하며 감정을 끌어올려서 태을 레어와의 부딛힘에서 아주 불꽃이 튀었는데, 첫번째 '형제여!'는 슬픔에 기력을 잃고 흐느끼며, 두번째 '형제여!!'는 너의 슬픔이 진심인만큼, 나도 죽고싶을 만큼 고통스럽다고 격렬함을 담고 있더랬다.

- 그리고 태을 레어가 오빠 모드를 버리고 연인 모드로 노선이 바뀐 것과 더해지면서 햄릿과의 결투씬에서 그 여파가 나타나더라. 전에는 독 묻은 칼로 바꾸기를 꽤 망설이다가 간신히 마음을 다잡는 거 같더니, 이 날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빼어드는데, 어우 막공 와서 이렇게 노선을 바꾸시긴가. 그리고 칼싸움의 격하기는 진짜 이 날이 최고. 검술의 달인이라는 태을 레어가 그동안 기백으로는 동레어에 밀리지 싶었는데, 이날은 그런 거 없이 태을 레어도 은릿 죽이려고 작정했지 싶게 격렬한 칼 싸움이었다. 칼날끼리 부딪히는 챙─ 하는 소리가 얼마나 날카롭게 울려퍼지던지.

- 참혹한 극의 마지막, 극장 전체에 울려퍼지는 '클라우디우스─!!!!!!!!!'는 새삼 전율이었고, 덴마크를 정화할 불꽃과도 같은 '덴마크여!'의 울림도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우고 구석구석 파동을 전해줘서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그 불꽃이 사그러들듯 죽어가는 은릿은 또 전에 없이 눈물을 가득 매달고 나타나, 나는 진짜 이 장면에서 그냥 또르르 눈물을 흘린 적은 있었지만, 오늘만큼 펑펑 운 건 또 처음이었다.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 치열하게 고뇌하고 번민하다 가버리는 이 불쌍하고 가슴 먹먹한 왕자님.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 라고 하면 어디든 따라갈테니, 부디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 이날 커튼콜은 참으로 총막공다운 커튼콜이라서, 앙상블부터 기립해서 마지막까지 레전드 공연을 선사한 배우분들에게 원없이 환호와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펑펑 운 얼굴 다 수습도 못했는데, 막판에 빵빵 터지는 이벤트 만들어주신 태을 레어, 성기 폴로니우스, 경수 호레이쇼, 그리고 커튼콜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장대웅 아빠 유령님. 아놔, 난 진짜 언젠가 아빠 유령도 커튼콜에 나와주면 좋겠다 했는데, 이렇게 총막공에서 총막공다운 이벤트를 만들어주셔서 무한 감사. 그리고 아빠 유령을 상대로 찐한 키스를 선사하여 능욕(?)한 은릿한테도 브라보!!

+
이번 시즌 뮤지컬 햄릿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은태가 과연 어떤 햄릿을 보여줄까 기대가 반, 우려가 반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멋지게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줘서, 결국 미친듯이 회전문을 돌게 만들었지. 아니, 그 때 왜 안 봤을까 미련을 남기느니, 통장을 희생시키는 게 낫다.
은태가 만들어낸 햄릿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치열한 햄릿이었는데, 그게 나와 참 잘 맞았던 것도 있다. 배우는 자신의 개성을 캐릭터에 투영시킬 수 밖에 없는데, 은태가 가진 "성실함"이 햄릿에도 반영이 된 것 같다고 할까. 전에도 썼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은릿은 점점 더 치열해져갔다. 치열하게 슬퍼하고, 분노하고, 갈등하고, 고뇌하고, 사랑하고. 그 감정들은 다 격렬해서 뭘 해도 중간은 없는 거다. 그러니 절친인 호레이쇼가 '너는 너무 심각해.' 라고 이해받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난 진지한 거 취향이라 이런 은릿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공연간 편차 없는 걸 뛰어넘어 극 안에서 폭풍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정말 지켜보는 보람이 있었다. 이번 시즌 내 햄릿, 은릿을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찬바람이 불면 이제 햄릿이 아련하게 떠오르겠구나.
HAMLET
일   시 : 2011. 12 .23 ~ 2011. 12. 25
장   소 :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
관극일 : 2011. 12. 24 (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아람누리 음향은 여전했고, 은릿은 답답한 마이크 음향에 욕구불만이었던 듯, '피는 피로써' 넘버에서 살짝 무리해서 지른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음향팀의 설계 미스를 생목으로 극복하려는 거 자체가 무리한 발상. 다음부터는 그냥 포기하도록. 괜히 자기 한계를 시험하다가 정말로 목이 상할 수 있으니, 아니 두번이나 성대 결절을 겪어봤으니,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이 때 무리한 게 이후 공연 중에 잠깐 잠깐 그 흔적을 드러냈지만, 노련하게 아슬한 선에서 넘버 클리어.

그런데, 정말 음향이 너무 총체적인 문제였던게, 그래도 어제 공연은 성량 폭발 동석이, 윤영석 씨라도 있었지, 오늘은 발음이 샌다고할까 하여간 소리가 모이지 않는 김성기 씨까지 있다보니, 1층 뒤쪽부터 그 이상 윗층에서 과연 대사가 제대로 들리기나 했을까 싶더라. 특히 가늘게 잦아드는 어말 어미는 죄다 먹어버리는 음향이었는데. 아니, 정확히는 음향이 문제가 아니라, 반주에 음향이 묻히게 디자인한 음향팀이 문제지. 아람누리 음향 자체에는 불만 없다. 반주에 배우들 목소리 묻힐 때마다, 특히 베이스, 드럼 쪽에 마이크 있으면 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렸어' 범사마가 분명 뭔가를 하신 게 분명하다. 지난 주 부터 영숙 거트루트께서 범사마 얼굴만 보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시는데, 이게 윤클로일 땐 그냥 끝까지 미소 지은 얼굴인데, 범클로일 땐 첫 대면 장면에서 벌써 웃음이 터지신단 말이지.

- 오늘 태을 레어는 이번 시즌 본 중에서 목 상태가 가장 좋았는데, 하여간에 저놈의 반주에 목소리 묻히는 음향만 아니었던들;
Sister에서 동석이가 오빠 모드를 찾은 거 같다했더니, 난데없이 이제까지 오빠 모드를 굳건히 유지하던 태을 레어가 막판으로 오면서 목소리를 부드럽게 내려고 애를 쓰더니 아련아련 오빠 모드로 돌아서서, 아쉬워서 그러시나 아님, 모차오락 연습 들어간 게 영향을 미친건가 싶었다.
Killer's name에서 슬픔에 반쯤 넋이 나가 몸을 못가누고 휘청거리며 배를 내려오는 태을 레어는 언제봐도 마음 짠한 장면. 그래, 타국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슬픔이 먼저 앞선다는 게, 아무리 주책맞은 아버지라도, 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어서 난 여기서 태을 배우의 해석이 참 마음에 든다. 성기 폴로니우스든, 장섭 폴로니우스든 애정 표현의 방식은 다를지언정, 자식 사랑 끔찍한 건 두 분 다 마찬가지기도 하고.
오필리어 장례식에서 동레어는 오필리어의 손을 꼭 붙잡다가 '너 없는 이 세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며 마지막에서야 손을 놓는다면, 태을 레어는 그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오필리어 손을 붙잡고 오열한다. 이 두 오빠의 너 없이 어떻게 사느냐는 한스런 마음이 저렇게 다르게 나타나는 게 참 좋다. 뭐랄까 동레어가 너무 너무 슬퍼하기는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래도 보내줘야지 라는 것 같다면, 태을 레어는 담담히 보내주는 듯 하다 마지막에 결국 너를 보낼 수 없다고 다시 손을 붙잡는 것 같다고 할까.

- 영숙 거트루트, 범클로는 언제나 진리시지만, 새삼 음향이 아쉬웠던 건 오늘 영숙 거트루트의 I'm untrue와 범클로의 Chapel이 정말 마음 절절한 연기가 덧입혀지면서 감정선이 말도 못하게 좋았는데, 그게 반주에 묻히는 목소리 때문에 앞자리에 앉은, 그리고 반복 관람한 나같은 사람에겐 정말 레전드다 싶었지만, 그게 객석 전체에 제대로 전달이 됐는가 하는 부분에서 너무 많은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어차피 내일 총막공이라, 그 사이에 바뀌지도 않겠지만, 반주에 묻혀 때로 묵음되버리는 한숨 소리, 흐느낌같은 게 진짜 너무 아깝고 안타까워서. 

- 김성기 씨는 오늘 MR 반주 부분에서 박자 따라가느라 급급한 모습을 참 여러번 보이셨다. 이게 오케스트라 같으면 어떻게 맞춰주려고 노력했을지 모르겠는데, He's crazy에서 색소폰 소리며, 뭔가 소리가 풍성해졌다 했더니 MR이었는지, 평소대로(?) 삘에 맞춰 템포 늘렸다 줄였다 하시는 김성기 씨 템포와 무관하게 MR은 정박으로 나가니 어지간히 안 맞아서 참으로 쓰릴했다. 그래도 자기 삘을 포기하고 막판에 겨우겨우 맞춰 들어가시기는 하더라만.

- 오늘 은릿은 분노에 슬픔과 우울을 더한 참으로 음울한 왕자님 버전. 분노의 크기만큼 슬픔도 더해지는 분위기라고 할까. 이게 결혼식 장면을 뒤에서 지켜볼 때부터 죽 이어지더니, '수녀원에 가'에서 '증거가 필요해'를 거쳐 '오늘 밤을 위해'까지 연결이 되면서 피날레의 '산다는 게 연극같아' 독무를 출 때, 난 오늘처럼 아프고 슬픈 독무는 본 적이 없다. 마치 통곡하듯, 한 음절 한 음절 내뱉는 가사가 가슴 속 울음을 토해내는 듯하고, 표정마저도 너무 비통해해서, 흐르는 땀방울이 눈물 방울처럼 보이더라.
지금까지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그 속에서 또 거짓을 연기하는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연민, 그리고 지금 거짓 속에 살아가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다른 모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처럼 느껴지는 피날레였다.

이 정서는 2막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져서 사느냐 죽느냐 고뇌할 때도 복수를 위한 연극을 올릴 때도 그 바닥에 깔려있는 정서는 증오와 분노보다 더한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 슬픔의 근원에는 깊은 무력감이 만들어낸 공허가 있다.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 눈 멀쩡한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취급받는 것 같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그런 무력감말이다. 그게 은릿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을까. 절친이라는 호레이쇼 마저도 '말을 해봐!' 버럭댈 수 밖에 없을 만큼 자신을 섬처럼 고립시켜버린 이 불쌍한 왕자님.
허나 그 고립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라고 하기엔, 하나뿐인 연인은 저리 텅빈 인형이고, 하나뿐인 친구는 속도 모르고 세상 이치는 원래 다 그렇다며 너는 왜 어른스럽지 못하게 거기에 순응하지 않느냐고 하니, 이 딱한 왕자님의 조력자가 '유랑' 극단 뿐이었다는 게 그 처지의 고단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달까.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의 연기가 아직도 계속 진화 중이다. 이만하면 완성형이라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계속 디테일이 더 자연스럽게, 더 강렬하게 조금씩이라도 발전하고 있어서, 은태한테 햄릿이라는 캐릭터는 새삼 특별한 캐릭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에 끝까지 더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극의 마지막. 음향 이런 거 상관없이 사자후와도 같이 뿜어낸 '클라우디우스─!!!!!'가 날카롭게 뻗어 올라 홀을 가득 메우고, '덴~마크여! 알고 있나' 부터는 그야말로 공간을 그 소리로 온전히 채워서 마지막에서야 완전 연소. 
은릿은 마지막까지 결코 편하게 가지를 않아서, 어째서 이 불쌍한 왕자님은 죽을 때마저 안식을 가질 수 없는 건지. 그렇게 힘겹게 온 마음과 영혼과 육신을 괴롭히다가 마지막까지도 고뇌를 털어버리지 못한 모습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 커튼콜에서 태을 레어가 배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미끌해서 쓰릴했고, 김성기 씨도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해줘서 크리스마스 이브 다운 커튼콜이었다. 사실 서울 총막공을 보고도, 고양 공연이 있으니까 라며 실감이 안났는데, 진짜 내일 공연으로 햄릿과는 이별이라는 생각이드니 이제야 서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부디 내일 총막공은 아무 사고(음향이라던가 오케미스라던가) 없이 무사히 치뤄지길 바란다.
HAMLET
일   시 : 2011. 12 .23 ~ 2011. 12. 25
장   소 :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
관극일 : 2011. 12. 23 (금)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EMK 라인업을 보아하니, 한동안 햄릿이 다시 올라올 것 같지가 않아서 (뭐, 제작사 사정에 따라 라인업은 바뀔 수도 있지만. 2013년에나 올라온다던 모차르트!도 내년에 올라온대고), 그리고 지하철로 다닐 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고 해서 부담없이(;) 예매했던 고양 햄릿. 그렇다고는 해도 평일 공연은 무리였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오늘 지연 관객될 각오를 하고 예매를 했던 건 처음에 뜬 스케줄표에 오늘 오필리어가 이정화 씨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공연장에 딱 5분전에 도착해서 캐스팅 보드 같은 거도 못 챙겨보고 부랴부랴 티켓 찾아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는데, 헉, 장례식에 등장하는 오필리어 윤공주 씨. 그래, 아무리 지방 공연이라고는 해도 첫공을 얼터에게 줄 것 같지는 않더라니. 이로서 내 오필리어 이정화 씨와는 지난 12월 2일 공연이 막공이 되버렸다는 너무너무 슬픈 사실. ㅠ.ㅠ 내 오필리어~~~

고양 아람누리도 초행길이고, 아람극장도 처음 가봤는데, 일단 멀기는 성남국 수준이지만, 그래도 지하철 역 바로 근처라서 접근성은 좋더라. 극장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반대로 무대는 꽤 광활하더라. 객석에 앉아서 봤을 때 앞에 OP파트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무대도 꽤 깊어서 새삼 유니버설 아트센터가 진짜 무대가 가까웠구나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MR로 공연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갔는데, 오케스트라 파트 구멍이 그대로, 거기다 부음감이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있어서 의외. 하지만, 소리를 들어보면 MR과 라이브가 섞여있더라.

- 무대가 더 커져서 전반적인 동선이 유니버설에서 짰던 것보다 길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했고, 무대 세트도 유니버설에서 꽉 찼던 게 좀 비어보이기도 하고, 하여간 공연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런 어색함이 묻어나던 공연. 배우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그동안 안 보이던 공간이 보여서 뭔가 내가 더 낯설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오늘 음향 담당은 나랑 싸울래연. 공연장 바뀌면 음향 세팅도 당연히 달라져야하지만, 무엇보다 라이브일 때랑 MR 사용할 때랑 음량이 차이가 나서, MR 사용할 때 배우 목소리가 반주에 묻히는데, 오늘 배우들이 좀 쉬고 와서 다들 목소리가 얼마나 깨끗하게 뻗어줬는데, 그걸 제대로 살려주지를 못하니. 하울링 사고도 두어번. 진짜 그거 하나 빼면 오늘 공연은 충분히 레전드급 공연이었는데, 장소가 유니버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도 없이 되뇌이게 만들었다.

- 일단 배우분들 모두 짦은 공백 뒤에 다시 무대에 섰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감 같은게 흐려질 리 만무. 오히려 표정 연기가 더 좋아지고, 깊어져서 진짜 음향만 아니었으면 소리를 속으로 몇 번을 했는지.

- 극의 시작 오른쪽 망루에 서서 장례식을 지켜보는 은릿이 등장하는데, 하루걸러 하루, 주말엔 연달아 보던 햄릿을 며칠 못 봤다고 새삼 보고 싶었구나 설레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그 청량하고 투명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잔뜩 묻어나서 또 마음이 선덕선덕. 이때부터 마이크 출력이 살짝 불안하더니, 세상에 Why me에서 반주에 다 묻히는 목소리 ㅠ.ㅠ 게다가 '피는 피로써'도 정말 혼신을 다해 불러줬는데, 마이크 출력이 받쳐줬다면 그 목소리가 홀 전체를 가득 메우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을. 아니, 음향 아쉬운 거 두고두고 곱씹을 후기라 이쯤에서 스탑.

- He's crazy에서 장섭 폴로니우스와 은릿 케미가 참 좋아서. 새삼 고양 남은 공연 조합이 은릿+OB 조합이라는 게 아쉽더라. 장섭님 어케 한 번 더 안되시려나. 왕자님을 대놓고 미쳤다고 해놓고, 정작 햄릿 등장하니 민망함에 몸둘바를 몰라하시는 장섭님이나, 거기에 맞춰서 폴로니우스 '왁!' 놀래키고 너무너무 즐거워하는 은릿도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하여간 깨알같이 귀여워서. 그리고 애처롭게 '왕자님~'을 부르짖는 장섭님. 이래서 장섭 폴로니우스가 좋아요.

- 이어지는 '수녀원에 가'에서 은릿 표정 연기가 더 섬세해지고, 절절해지고, '증거가 필요해'에서도 고뇌에 찬 표정, 혼란스러움, 그리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눈만 번들거리는 햄릿, '오늘 밤을 위해'에서 복수를 실행하기 전의 들뜬 마음, 검은 분노를 얼마나 잘 표현해내는지. 새삼 참 좋은 배우구나 했다. 끝을 모르고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

- 영숙 거트루트의 'I'm untrue', 윤클로의 'Chapel' 도 연기며 목소리가 막공 때보다 더 좋아졌는데, 음향.....항상 쩌렁쩌렁한 동석이만 살아남은 음향.....동석이는 이제 완전히 오빠 모드 장착된 듯.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보여주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이나, 감정선 그 황망한 감정이 참으로 안스럽고, 잠시나마 무덤지기와 만사 잊고 씐나씐나하는 그 장면도 오늘은 어쩐지 애잔한 마음이 들 정도. 여기에서 은릿은 뭔가 살짝 들뜬 기분을 애써 눌러 죽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은릿과 동레어의 저 불꽃튀는 슬픔의 대결도 이걸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더라. 사실 둘이 외쳐대는 것처럼 '넌 내 슬픔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라지만, 둘이 겪는 아픔과 슬픔의 감정은 공유할 수 없을지언정, 그 고통스러움 만큼은 서로가 제일 잘 알고있었을 것이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 남은 실 하나가 끊어지는 그 깊은 상실감을 이 둘은 샴 쌍둥이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 극의 마지막. 진짜 은릿은 끝까지 편해지지 못하고 그렇게 스산하게 아프게 서럽게 가버렸다.

- 커튼콜에서 동레어, 윤필리어 배에서 내려오는데 하울링 울리니까 귀 아프다고 티내는 동레어 귀여웠고, 제일 씐나씐나였던 장섭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해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알은 채 해주셔서 더 고마웠습니다. ㅋㅋ 은릿은 뭔가를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한 표정이라 더 좋아보였고, '피가 끓고' 하고 리듬타며 점프하는데, 아주 날아갈 기세라, 고양 첫공 무사히 마친거 축하고, 남은 공연도 잘 마무리 짓기를.
난 은릿 고양 공연도 전관이라, 진짜 이번 시즌 햄릿에는 한 점의 미련도 안 남기고 불태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