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1 (일) 14: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막공 주간을 앞두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레전드니 뭐니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젠 하루 하루 공연 회차 줄어드는 게 아쉬운 시간만 남았다. 참 가열차게 회전문을 도는 와중에 이리 저리 섞이는 조합이라 매 공연이 조금씩 느낌이 다르고, 참 귀신같이 조합을 짜놔서; 가만 생각해보니, 동레어/윤클로/섭폴로가 너무 오랜만인거다. 이 멤버가 은릿 초연 멤버이자, 은릿 서울 공연 막공 멤버인데.
초연 공연보고 난 그 힘 잔뜩 들어간 은릿도 파릇파릇해서 좋다고 이 정도면 노래는 로딩 완료라고 했더랬는데, 참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서 새삼 감개무량. 그리고 당시에 나에게 혹평을 받았던 윤클로와 섭폴로님. ㅋㅋ 윤클로는 넘버 소화가 전혀 안 되고 있었고, 섭폴로님은 He's crazy에서 재즈 필을 못살린다고 좀 심심하다 했더랬지.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는 김장섭님이 내 최애 폴로니우스가 되셨고 (오늘은 이발까지 하고 오셔서 또 얼마나 훤칠하시던지. 가시는 김에 은릿도 좀 델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ㅠ.ㅠ), 윤클로는 화해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11월 말이었나;), 이젠 클로디어스 안 가려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동레어는 아직까지 편차가 있지만, 요 근래 그래도 오빠 모드에 들어가려고 많이 노력하는 게 보여서 마음이 흡족하고, 오히려 초연 때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윤필리어와 갈수록 싸움만 하다 나오는 형국이구나. 영숙 거트루트 님이야, 초반에 너무 위엄에 넘치는 여왕님 모드였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사랑에 목숨건 여자와 그럼에도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아주 절절하게 연기해 주셔서, 매공연 기립을 부르고 계신다.
하여간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 초연 멤버의 오늘 공연은 막공에 대한 기대감을 한 껏 부풀게 해줄 만큼 훌륭했다.
- 내가 뮤지컬 햄릿에서 참 좋아하는 시작하는 장면. 오늘도 이 부분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청보라빛 음울한 북유럽의 겨울 분위기가 매번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억하며 부르는 은릿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목소리인지. 새로운 왕 앞에 무릎꿇기 싫어 멀리서 지켜본 장례식. 그들이 모두 떠나고 뒤늦게 등장한 은릿은 오늘 유독 파리한 낯빛을 하고 나타나 무덤으로 옮기는 걸음마다 슬픔의 감정이 실려있더라. 이런 미세 조정이 아직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게 참 은태의 놀라운 점.
이렇게 아버지 장례식에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 오직 사랑'할 때 뒤에 등장해서 행복에 겨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감정선이 이제는 분노보다는 서늘한 체념과 약간의 비난 섞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데, 그게 정말 꼿꼿하게 선채로 딱 눈만 내리깔아서, 저 자존심이 절벽같은 고고한 왕자님이라는 캐릭터를 그 시선만으로도 보여주더라.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장례식에 등장했을 때 만큼 파리한 안색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서 이게 조명탓인가, 분장탓인가 하여간 히마리가 하나도 없어보이더니만, Why me에 가서는 악만 남아 악에 받쳐 질러대는 것 같더라. 그리고 요즘 경수 호레이쇼가 깐족대는 정도가 점점 늘어서, 전에는 그래도 햄릿을 다독다독 좀 냉정해지라고 충고하는 냉철한 친구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봐도 친구 속도 모르고 너도 즐겨보라는 둥 되도 않는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는 한량같은 느낌이다. 너무 멀리 간 느낌인데, 이제 좀 돌아와도 좋지 않을까. 호레이쇼는 햄릿이 신뢰하는 유일한 친구인데, 그 외계지렁이 보는 듯한 은릿의 시선은 어쩔거냐며. 상황상 호레이쇼도 자기가 무슨 뻘 소리를 한 건지 아니까 그렇게 꼬리를 내리는 거지만.
- He's crazy 넘버에서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 애드립 작렬.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은릿이 머리 양옆으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미쳤어~ 돌았어~' 하며 등장하자, 그걸 따라하시면서 '그렇게 안했는데요.'라고 하시고, 왕자가 직접 나타나서 비아냥대니까 몸둘바를 몰라 하시면서 막 변명아닌 변명하시느라 진땀 빼시고.ㅋㅋ 거기에 은릿은 어제부터 앙바 동작에서 폴짝 뛰는 거 아예 그 노선으로 가기로 했는지, 오늘도 그거 해줘서 사람들 뒤집어지고, 나도 이미 봤는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뒤에 '수녀원에 가' 보는데 좀 고생했다. 자꾸 떠올라서;
- 오늘도 윤필리어는 햄릿을 하나도 사랑하지를 않아서 나에게 얼음 한 판 선사하시고, 그 와중에도 은릿은 애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을 열심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진짜 막공까지 윤필리어는 안 바뀌려나 ㅠ.ㅠ
- '증거가 필요해'에서 호레이쇼의 백허그에 전에는 은릿이 얌전히 안겨있더니, 요즘들어 뿌리치려고 버둥거려서 분위기 더 묘해졌다; 안그래도 므흣한 장면인데, 점점 더 쓰릴미화 되가고 있는 이 바람직한 현상; (하여간 이래서 뮤지컬 햄릿 비지정 공식 커플은 오필리어 - 레어티스, 햄릿 - 호레이쇼라는 거)
- 1막의 마지막인 '오늘밤을 위해'와 2막의 시작인 '사느냐 죽느냐'가 인터미션을 두고 이어지는 게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체로 다면적인 햄릿이라는 캐릭터를 대표하는 두 넘버이기 때문이다. 이 두 넘버에서 은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은릿 (햄릿이라는 텍스트에 박은태의 개성을 입혀, 박은태 만의 햄릿이라는 의미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피는 피로써' 넘버에서 이어지는 폭풍같은 광기와 격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오늘 밤을 위해'에서 터트리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분노하고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사느냐 죽느냐' 넘버에서 햄릿의 번민과 고뇌를 보여주는 거다. 단숨에 복수를 결심했지만, 막상 복수의 때가 다가오자, 원래가 생각이 많고, 깊이 사색하는 성격의 이 왕자님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장렬하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물러서서 구차하게 살아갈 것인지, "그게 문제"인 거다. 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없겠는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불의를 보고도 행동하기를 망설이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결벽하고 순수한 왕자님은 부도덕한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과 같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가혹한 운명이 잔인할 따름이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아, 그런데 진짜 이 사느냐 죽느냐 넘버는 은태가 정말 너무 잘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 소절 소절 실리는 감정마다 창법을 달리하며 목소리에 색을 입혀가며 부르는지, 진짜 이 노래 하나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오늘 정말 인상에 깊이 남은 장면은 극중극 장면에서 은릿이 오필리어에 매달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참 아련하게 미소를 짓는데, 예전에 우리 이렇게 좋은 시절도 있었지 라는 듯 너무 따뜻하고 애련한 미소를 지어서, 비극성을 더 극대화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다 갑자기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오버하며 웃어대다가 표정 싹 굳히고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데, 이렇게 다중적인 캐릭터를 순식간에 확확 변화하는 표정 연기로 제대로 보여줘서 참 놀랍더라.
그런데, 그런 햄릿의 심리변화는 그 짧은 순간에도 천변만화 하고 있건만, 오필리어는 그저 이 굴욕적인 순간을 참고 견디어내는 텅 비어버린 '인형'이더란 말이냐. ㅠ.ㅠ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에게 저렇게 온 몸으로 매달려 있는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을 헤아려볼 생각도 못하는 건지.
하여간 윤필리어는 내도록 이런 상태라 이후에 매드씬에서 아무리 눈물 연기가 훌륭해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슬프기만 하면 단가?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 그저 자기 연민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막공 때까지 윤필리어와 화해할 날이 영영 안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동레어가 오늘 참 기특하게도 오빠 모드로 열심히 연기해주고, 2막 Killer's name에서의 폭주는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였으니 충분히 납득이 갈 수준이었다. 오필리어 매드씬이나 장례식 장면에서도 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오빠의 모습이라, 부디 이 감정선을 다음 공연에도 이어줘서, 다시 연인 모드로 돌아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쓰다보니 또 이만큼 길어졌는데; 난 왜 매번 1막만으로 저만큼 폭주해서, 정작 중요한 2막은 짧게 쓰고 끝나는지 ㅠ.ㅠ
하지만, 내일 출근도 해야하니까;
+ 오늘 커튼콜에서 장섭 무덤지기가 누운 채 올라오다가 동레어에게 밟힐 뻔해서 식겁하며 놀라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 동레어는 아무리 장섭 폴로니우스와 케미가 좋다고 하지만, 언제 저렇게 친해져서 발을 올려놓을 정도가 되었는지. 물론 당하고만 계실 장섭님이 아니신지라, 동레어는 장섭님의 분노의 어퍼컷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의 레어템으로 은릿의 커튼콜 삑사리가 나왔다. 본인도 내놓고는 거기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미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 망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표정이더니, 그래도 마지막에 쭉 올려주는 부분은 너끈히 올려주고, 인사할 때 혀를 낼름 내밀고 웃는 게 귀여웠다.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11 (일) 14: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막공 주간을 앞두고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레전드니 뭐니 하는 것도 그렇고, 이젠 하루 하루 공연 회차 줄어드는 게 아쉬운 시간만 남았다. 참 가열차게 회전문을 도는 와중에 이리 저리 섞이는 조합이라 매 공연이 조금씩 느낌이 다르고, 참 귀신같이 조합을 짜놔서; 가만 생각해보니, 동레어/윤클로/섭폴로가 너무 오랜만인거다. 이 멤버가 은릿 초연 멤버이자, 은릿 서울 공연 막공 멤버인데.
초연 공연보고 난 그 힘 잔뜩 들어간 은릿도 파릇파릇해서 좋다고 이 정도면 노래는 로딩 완료라고 했더랬는데, 참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서 새삼 감개무량. 그리고 당시에 나에게 혹평을 받았던 윤클로와 섭폴로님. ㅋㅋ 윤클로는 넘버 소화가 전혀 안 되고 있었고, 섭폴로님은 He's crazy에서 재즈 필을 못살린다고 좀 심심하다 했더랬지.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는 김장섭님이 내 최애 폴로니우스가 되셨고 (오늘은 이발까지 하고 오셔서 또 얼마나 훤칠하시던지. 가시는 김에 은릿도 좀 델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ㅠ.ㅠ), 윤클로는 화해하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지만 (11월 말이었나;), 이젠 클로디어스 안 가려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동레어는 아직까지 편차가 있지만, 요 근래 그래도 오빠 모드에 들어가려고 많이 노력하는 게 보여서 마음이 흡족하고, 오히려 초연 때는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윤필리어와 갈수록 싸움만 하다 나오는 형국이구나. 영숙 거트루트 님이야, 초반에 너무 위엄에 넘치는 여왕님 모드였지만, 역시 뒤로 갈수록 사랑에 목숨건 여자와 그럼에도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아주 절절하게 연기해 주셔서, 매공연 기립을 부르고 계신다.
하여간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 초연 멤버의 오늘 공연은 막공에 대한 기대감을 한 껏 부풀게 해줄 만큼 훌륭했다.
- 내가 뮤지컬 햄릿에서 참 좋아하는 시작하는 장면. 오늘도 이 부분 얘길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청보라빛 음울한 북유럽의 겨울 분위기가 매번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추억하며 부르는 은릿의 목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시리도록 맑고, 투명한 목소리인지. 새로운 왕 앞에 무릎꿇기 싫어 멀리서 지켜본 장례식. 그들이 모두 떠나고 뒤늦게 등장한 은릿은 오늘 유독 파리한 낯빛을 하고 나타나 무덤으로 옮기는 걸음마다 슬픔의 감정이 실려있더라. 이런 미세 조정이 아직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는 게 참 은태의 놀라운 점.
이렇게 아버지 장례식에서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 오직 사랑'할 때 뒤에 등장해서 행복에 겨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장면에서의 감정선이 이제는 분노보다는 서늘한 체념과 약간의 비난 섞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데, 그게 정말 꼿꼿하게 선채로 딱 눈만 내리깔아서, 저 자존심이 절벽같은 고고한 왕자님이라는 캐릭터를 그 시선만으로도 보여주더라.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장례식에 등장했을 때 만큼 파리한 안색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서 이게 조명탓인가, 분장탓인가 하여간 히마리가 하나도 없어보이더니만, Why me에 가서는 악만 남아 악에 받쳐 질러대는 것 같더라. 그리고 요즘 경수 호레이쇼가 깐족대는 정도가 점점 늘어서, 전에는 그래도 햄릿을 다독다독 좀 냉정해지라고 충고하는 냉철한 친구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봐도 친구 속도 모르고 너도 즐겨보라는 둥 되도 않는 섹시한 여자 타령이나 하는 한량같은 느낌이다. 너무 멀리 간 느낌인데, 이제 좀 돌아와도 좋지 않을까. 호레이쇼는 햄릿이 신뢰하는 유일한 친구인데, 그 외계지렁이 보는 듯한 은릿의 시선은 어쩔거냐며. 상황상 호레이쇼도 자기가 무슨 뻘 소리를 한 건지 아니까 그렇게 꼬리를 내리는 거지만.
- He's crazy 넘버에서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 애드립 작렬. 어느새 뒤에서 나타난 은릿이 머리 양옆으로 손가락을 빙빙 돌리면서 '미쳤어~ 돌았어~' 하며 등장하자, 그걸 따라하시면서 '그렇게 안했는데요.'라고 하시고, 왕자가 직접 나타나서 비아냥대니까 몸둘바를 몰라 하시면서 막 변명아닌 변명하시느라 진땀 빼시고.ㅋㅋ 거기에 은릿은 어제부터 앙바 동작에서 폴짝 뛰는 거 아예 그 노선으로 가기로 했는지, 오늘도 그거 해줘서 사람들 뒤집어지고, 나도 이미 봤는데도, 웃음이 멈추지 않아, 뒤에 '수녀원에 가' 보는데 좀 고생했다. 자꾸 떠올라서;
- 오늘도 윤필리어는 햄릿을 하나도 사랑하지를 않아서 나에게 얼음 한 판 선사하시고, 그 와중에도 은릿은 애절한 표정과 목소리로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을 열심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데, 진짜 막공까지 윤필리어는 안 바뀌려나 ㅠ.ㅠ
- '증거가 필요해'에서 호레이쇼의 백허그에 전에는 은릿이 얌전히 안겨있더니, 요즘들어 뿌리치려고 버둥거려서 분위기 더 묘해졌다; 안그래도 므흣한 장면인데, 점점 더 쓰릴미화 되가고 있는 이 바람직한 현상; (하여간 이래서 뮤지컬 햄릿 비지정 공식 커플은 오필리어 - 레어티스, 햄릿 - 호레이쇼라는 거)
- 1막의 마지막인 '오늘밤을 위해'와 2막의 시작인 '사느냐 죽느냐'가 인터미션을 두고 이어지는 게 참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체로 다면적인 햄릿이라는 캐릭터를 대표하는 두 넘버이기 때문이다. 이 두 넘버에서 은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은릿 (햄릿이라는 텍스트에 박은태의 개성을 입혀, 박은태 만의 햄릿이라는 의미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피는 피로써' 넘버에서 이어지는 폭풍같은 광기와 격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오늘 밤을 위해'에서 터트리며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분노하고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리고 '사느냐 죽느냐' 넘버에서 햄릿의 번민과 고뇌를 보여주는 거다. 단숨에 복수를 결심했지만, 막상 복수의 때가 다가오자, 원래가 생각이 많고, 깊이 사색하는 성격의 이 왕자님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장렬하게 죽을 것인지, 아니면 물러서서 구차하게 살아갈 것인지, "그게 문제"인 거다. 왜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없겠는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불의를 보고도 행동하기를 망설이게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결벽하고 순수한 왕자님은 부도덕한 현실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죽음과 같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가혹한 운명이 잔인할 따름이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아, 그런데 진짜 이 사느냐 죽느냐 넘버는 은태가 정말 너무 잘 부른다. 어쩌면 저렇게 소절 소절 실리는 감정마다 창법을 달리하며 목소리에 색을 입혀가며 부르는지, 진짜 이 노래 하나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 오늘 정말 인상에 깊이 남은 장면은 극중극 장면에서 은릿이 오필리어에 매달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참 아련하게 미소를 짓는데, 예전에 우리 이렇게 좋은 시절도 있었지 라는 듯 너무 따뜻하고 애련한 미소를 지어서, 비극성을 더 극대화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다 갑자기 아,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며 오버하며 웃어대다가 표정 싹 굳히고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데, 이렇게 다중적인 캐릭터를 순식간에 확확 변화하는 표정 연기로 제대로 보여줘서 참 놀랍더라.
그런데, 그런 햄릿의 심리변화는 그 짧은 순간에도 천변만화 하고 있건만, 오필리어는 그저 이 굴욕적인 순간을 참고 견디어내는 텅 비어버린 '인형'이더란 말이냐. ㅠ.ㅠ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에게 저렇게 온 몸으로 매달려 있는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을 헤아려볼 생각도 못하는 건지.
하여간 윤필리어는 내도록 이런 상태라 이후에 매드씬에서 아무리 눈물 연기가 훌륭해도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슬프기만 하면 단가? 철철 흘러넘치는 눈물이 그저 자기 연민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막공 때까지 윤필리어와 화해할 날이 영영 안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동레어가 오늘 참 기특하게도 오빠 모드로 열심히 연기해주고, 2막 Killer's name에서의 폭주는 오늘 장섭 폴로니우스였으니 충분히 납득이 갈 수준이었다. 오필리어 매드씬이나 장례식 장면에서도 여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는 오빠의 모습이라, 부디 이 감정선을 다음 공연에도 이어줘서, 다시 연인 모드로 돌아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쓰다보니 또 이만큼 길어졌는데; 난 왜 매번 1막만으로 저만큼 폭주해서, 정작 중요한 2막은 짧게 쓰고 끝나는지 ㅠ.ㅠ
하지만, 내일 출근도 해야하니까;
+ 오늘 커튼콜에서 장섭 무덤지기가 누운 채 올라오다가 동레어에게 밟힐 뻔해서 식겁하며 놀라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 동레어는 아무리 장섭 폴로니우스와 케미가 좋다고 하지만, 언제 저렇게 친해져서 발을 올려놓을 정도가 되었는지. 물론 당하고만 계실 장섭님이 아니신지라, 동레어는 장섭님의 분노의 어퍼컷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늘의 레어템으로 은릿의 커튼콜 삑사리가 나왔다. 본인도 내놓고는 거기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미묘하게 웃는 표정이 '아, 망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표정이더니, 그래도 마지막에 쭉 올려주는 부분은 너끈히 올려주고, 인사할 때 혀를 낼름 내밀고 웃는 게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