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06 (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은릿/동레어/범클로/장섭폴로 이 희귀 조합 (68회 공연 중 4번 밖에 없는 조합임)으로는 몇 번 레전드 공연이 나왔는데, 오늘 드디어 은릿/동레어/윤클로/성기폴로 조합의 레전드 공연 탄생. 사실 이 조합에서 제일 관건인 건, 동레어와 김성기 폴로니우스의 케미가 문제 (동레어가 장섭 폴로니우스를 너무 좋아해;) 였는데, 오늘은 그것도 가뿐하게 클리어. 게다가 내 기준의 레전드가 되려면, 일단 레어티스가 오빠 모드여야 하는데, 오늘 동레어가 참 기특하게도 오빠 모드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더라. 배우간 상성의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동레어가 윤필리어에게 오빠 모드 몰입이 좀 어려운 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오늘 동레어가 오빠 모드 잡느라고 노력하는 게 눈에 들어오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2막에서도 폭주하는 와중에도 억누르려고 많이 애쓰는 모습이 기특해서 우쭈쮸 모드로 지켜봤다.
- 오늘 윤영석 클로디어스와 완전히 화해했다. 이런 말이 참 실례인 줄은 알지만, 초, 중반을 지나면서도 나는 윤클로와 화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다른 공연은 못봤으니 모르겠는데, 일단 팬텀을 하셨던 분이니 실력이 뛰어난 분이리라고 예상했더랬는데, 이게 클로디어스 넘버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거다. 성악 발성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넘버들은 다 괜찮은데, 유독 Chapel 넘버에서 뭔가 계속 어긋나는 거다. 음정도 미묘, 박자는 따라가기 급급하다보니 거기에 연기를 집어넣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이게 클로디어스의 가장 중요한 솔로곡인데.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렸어'나 '사랑 오직 사랑'같은 넘버는 어떤 면에서는 범클로보다 더 나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데, 저 Chapel 넘버에 가서는 참 총체적 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게 11월 중순 정도에 보니 확 달라져서 오오~ 드디어 화해의 가능성이 보이는구나 했더니, 오늘 아주 레전드를 찍으시더라. 이제는 이게 윤클로만의 Chapel이라는 게 납득이 갔다.
내가 윤클로의 Chapel에서 느낀 것이 온통 찌질함 뿐이었던 초반의 감상을 생각해보면, 오늘의 Chapel에서는 연민의 감정까지 생기더라. 범사마가 잡은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는 악당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정의가 있고, 그늘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인자스러운 위엄을 갖춘 캐릭터다. 거기에 비해서 윤클로가 잡은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는 사실은 소심하고, 그러면서도 욕망에 충실하다보니 야비한 본성을 숨길 수 없는 악당 캐릭터. 더해서 순정파에 기분파라서 변덕스럽기도 한 연하남 캐릭터. 햄릿이 보여준 연극을 통해서 진실이 드러난 뒤에 두 클로디어스가 보여주는 반응도 사뭇 다른데, 범사마는 올 것이 왔구나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면, 윤클로는 안그래도 죄책감에 시달려왔는데, 그걸 햄릿이 확인사살 시켜주니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에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윤클로는 형에 대한 열등감, 질투는 하늘을 찌를 듯 해도, 형을 죽일 만큼의 배짱은 없었을 것 같은데, 진짜 사랑 하나 때문에 일을 저질렀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뒷감당을 하기에도 그릇이 모자란 소인배라 내내 전전긍긍하며 지내는 와중에 햄릿이 저런 연극을 보여주니, 그걸로 죄를 뉘우치기 보다는 햄릿을 어떻게든 처치해야겠다는 쪽으로 사고가 돌아가는 천상 악당 캐릭터. 이렇게 스트레이트하게 악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범사마의 클로디어스와 대비가 되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윤클로디어스가 범클로와 확실하게 차별이 되는 게 2가지 정도 있는데, 첫번째는 거트루트와의 케미. 두번째는 극의 마지막 부분. 범클로는 사랑과 야심이 반반이라고 할지, 하여간 애정표현도 겉으로 막 표현하는 쪽이 아닌 것 같단말이지. 혼자서 거트루트를 떠올리거나 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너무너무 애틋한데, 둘이 함께 있을 땐 별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윤클로는 거트루트를 여신 떠받들 듯 하는게 눈에 보인다. 특히, 햄릿의 광기에 부부싸움을 할 때, 범클로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도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는데, 윤클로는 버럭한 다음에 자기가 더 당황해서 착잡해하는 게 확실하게 보인다. 지난번에 범사마도 이 부분 대사를 바꾸시더니, 윤클로도 '닥쳐! 이건 왕의 명령이야!' 라고 대사를 바꿨더라. 문맥상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자 자기 캐릭터에 맞게 튜닝한 느낌.
극의 마지막,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고 죽는 장면에서는 두 클로디어스 모두 매우 슬퍼하고 비통해하지만, 여기서 범클로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윤클로는 그렇게 슬퍼하고서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버둥거린다. 그렇게 두 클로디어스가 보여주는 죽음의 순간이 굉장히 대조적이라 이런 것도 참 좋더라. 더블 캐스팅의 묘미는 이런 거 아니겠는가.
- 화요일마다 레전을 찍는데다 디테일까지 늘어서 오는 은릿은 오늘도 참 깨알같이 표정 연기같은 게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왔더라. 엘리자벳 연습 들어갔다더니, 그 영향도 있는 걸까. '피는 피로써'는 오늘도 지난 공연보다 더 처절해져서, 막공 때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는 걸까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걱정도 되고;
'수녀원에 가'에서 보여주는 가슴 찢어지는 표정과 냉정, 냉혈한 표정 사이의 그 격렬한 대비가 진폭을 더 키워서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도 깊이 상처 받으며 그래도 잔인해질 수 밖에 없는 저 사랑을 어쩌면 좋냐. 뒤돌아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은릿, 길을 잃고 헤매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느냐며 고통스러워하는 이 노래가 이후 '산다는 게 연극같아'와 연결되면서, 이 고단한 신경쇠약 직전의 왕자님이 참으로 가엽고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선왕이 복수를 명령한 이후로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복수에 매달리는 '사는 게 연극같은 나'만 남았다. 이제는 어떤 게 원래의 내 모습인지도 혼란스럽다. 내 꿈은 녹이 슬어버렸고, 그 녹슨 꿈이라도 다시 찾고나면 '잊었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 사는 것도 죽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이 진창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죽어서 잠드는 것, 잠들어 깊은 꿈을 꾸는 것 뿐이지 않을까. 그렇게 온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도록 망가져가는 이 왕자님이 오늘따라 얼마나 가엽고 안스러운지. ㅠ.ㅠ
극중극 장면에서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를 끌어안고 전과 달리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가만히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데, 그게 꼭 두 사람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하하하 오버하며 웃어대는데 '내가 연극을 올리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돼.'라는 것 같더라.
그리고 복수에의 긴장감이 부풀어오르다 펑 터져버리는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 이렇게 또 애처로움이 급상승해서 나타날 줄이야. 아버지 유령에게 외면당해 원망하고 허탈해하다 손에 묻은 피를 보고 공포와 두려움에 경악하는 표정이나, 자기가 찌른 사람이 폴로니우스라는 걸 깨닫고 망연자실한 표정하며, 이 황망함에 차라리 미쳐버릴 것 같은 심리 변화가 손에 잡힐 듯 전해져 와서 어쩜 이러냐 했다.
- 오늘 무덤지기 씬에서는 은릿과 호레이쇼가 술 한잔 걸치고 기분이 잔뜩 풀어진 게 보이더니만, 호레이쇼가 '이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는 대사에서 애드립 작렬. 이때부터 빵빵 터져서, 안그래도 애드립 대마왕 김성기 씨가 지킬 해골을 은릿에게 '너 줄게'하시곸ㅋㅋㅋ은태가 지킬 욕심내는 거 아시는 거냐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엄청 씐나씐나 모드. 은릿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웃어서 단 한순간이지만, 위로가 되었다. 이어질 전개를 생각하면 더더욱. ㅠ.ㅠ
- 동레어가 오늘 참 열심히 오빠 모드로 몰입해줘서, 이 장례식 장면에서도 여동생의 죽음을 너무너무 슬퍼하는 오빠님이더라. 하나뿐인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까지 더해 아주 탈력해버려서, 은릿이 나타나서 나를 용서하라며 따라 죽겠다고 무덤에 뛰어들고 그러는데, 원래라면 붙잡은 친구들 뿌리치고 은릿 멱살잡이를 해야하는데, 그걸 못 뿌리치고 잡혀있는 걸 보고, 슬픔에 기력을 잃었구나 싶더라. 이랬는데, 칼싸움에서는 아주 제대로 불타올라서 긴박감이 또 장난이 아니었다. 하여간 기세만으로 죽일둥 살둥 덤벼드는 동레어에 은릿이 겨우겨우 대응하는 구도.
거트루트의 독살 이후 오늘 은릿이 어찌나 이성을 잃고 날뛰던지.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서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상태. 그렇게 '이제 그만'을 외치는 레어티스에게까지 살수를 뻗고, 자신도 결국엔 독으로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 지르는'클라우디우스─!!' 에 담긴 깊은 절망, 분노, 그리고 허무. 여기서 은릿의 연기도 좋았지만, 윤클로의 끝까지 비열한 연기도 참 좋더라.
비록 잃어버린 꿈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잊었던 자신을 마지막에는 찾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릿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 오늘 앙상블 중에 박수진 씨가 빠지고, 그 자리를 이정화 씨가 채우고, 이정화 씨 자리는 스윙 김솔잎 씨(이정화 씨가 오필리어로 서면, 이분이 앙상블로 이정화 씨 부분을 채움)가 대신했는데, 이정화 씨는 초록색 드레스도 보라색 드레스도 잘 어울리더라. 지난 공연에서 이미경 씨 대타로 헬레나 역으로도 한 번 섰다는데, 그런 레어 공연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을 오늘 보라색 드레스 입은 모습 본 걸로 조금 상쇄시켜본다.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2. 06 (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은릿/동레어/범클로/장섭폴로 이 희귀 조합 (68회 공연 중 4번 밖에 없는 조합임)으로는 몇 번 레전드 공연이 나왔는데, 오늘 드디어 은릿/동레어/윤클로/성기폴로 조합의 레전드 공연 탄생. 사실 이 조합에서 제일 관건인 건, 동레어와 김성기 폴로니우스의 케미가 문제 (동레어가 장섭 폴로니우스를 너무 좋아해;) 였는데, 오늘은 그것도 가뿐하게 클리어. 게다가 내 기준의 레전드가 되려면, 일단 레어티스가 오빠 모드여야 하는데, 오늘 동레어가 참 기특하게도 오빠 모드가 되려고 많이 노력하더라. 배우간 상성의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동레어가 윤필리어에게 오빠 모드 몰입이 좀 어려운 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오늘 동레어가 오빠 모드 잡느라고 노력하는 게 눈에 들어오면서 혼자 흐뭇해했다. 2막에서도 폭주하는 와중에도 억누르려고 많이 애쓰는 모습이 기특해서 우쭈쮸 모드로 지켜봤다.
- 오늘 윤영석 클로디어스와 완전히 화해했다. 이런 말이 참 실례인 줄은 알지만, 초, 중반을 지나면서도 나는 윤클로와 화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다른 공연은 못봤으니 모르겠는데, 일단 팬텀을 하셨던 분이니 실력이 뛰어난 분이리라고 예상했더랬는데, 이게 클로디어스 넘버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거다. 성악 발성이라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넘버들은 다 괜찮은데, 유독 Chapel 넘버에서 뭔가 계속 어긋나는 거다. 음정도 미묘, 박자는 따라가기 급급하다보니 거기에 연기를 집어넣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 이게 클로디어스의 가장 중요한 솔로곡인데. '내 평생 당신을 기다렸어'나 '사랑 오직 사랑'같은 넘버는 어떤 면에서는 범클로보다 더 나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는데, 저 Chapel 넘버에 가서는 참 총체적 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게 11월 중순 정도에 보니 확 달라져서 오오~ 드디어 화해의 가능성이 보이는구나 했더니, 오늘 아주 레전드를 찍으시더라. 이제는 이게 윤클로만의 Chapel이라는 게 납득이 갔다.
내가 윤클로의 Chapel에서 느낀 것이 온통 찌질함 뿐이었던 초반의 감상을 생각해보면, 오늘의 Chapel에서는 연민의 감정까지 생기더라. 범사마가 잡은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는 악당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정의가 있고, 그늘속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이인자스러운 위엄을 갖춘 캐릭터다. 거기에 비해서 윤클로가 잡은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는 사실은 소심하고, 그러면서도 욕망에 충실하다보니 야비한 본성을 숨길 수 없는 악당 캐릭터. 더해서 순정파에 기분파라서 변덕스럽기도 한 연하남 캐릭터. 햄릿이 보여준 연극을 통해서 진실이 드러난 뒤에 두 클로디어스가 보여주는 반응도 사뭇 다른데, 범사마는 올 것이 왔구나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면, 윤클로는 안그래도 죄책감에 시달려왔는데, 그걸 햄릿이 확인사살 시켜주니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에도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윤클로는 형에 대한 열등감, 질투는 하늘을 찌를 듯 해도, 형을 죽일 만큼의 배짱은 없었을 것 같은데, 진짜 사랑 하나 때문에 일을 저질렀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뒷감당을 하기에도 그릇이 모자란 소인배라 내내 전전긍긍하며 지내는 와중에 햄릿이 저런 연극을 보여주니, 그걸로 죄를 뉘우치기 보다는 햄릿을 어떻게든 처치해야겠다는 쪽으로 사고가 돌아가는 천상 악당 캐릭터. 이렇게 스트레이트하게 악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면으로는 범사마의 클로디어스와 대비가 되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윤클로디어스가 범클로와 확실하게 차별이 되는 게 2가지 정도 있는데, 첫번째는 거트루트와의 케미. 두번째는 극의 마지막 부분. 범클로는 사랑과 야심이 반반이라고 할지, 하여간 애정표현도 겉으로 막 표현하는 쪽이 아닌 것 같단말이지. 혼자서 거트루트를 떠올리거나 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너무너무 애틋한데, 둘이 함께 있을 땐 별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윤클로는 거트루트를 여신 떠받들 듯 하는게 눈에 보인다. 특히, 햄릿의 광기에 부부싸움을 할 때, 범클로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도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는데, 윤클로는 버럭한 다음에 자기가 더 당황해서 착잡해하는 게 확실하게 보인다. 지난번에 범사마도 이 부분 대사를 바꾸시더니, 윤클로도 '닥쳐! 이건 왕의 명령이야!' 라고 대사를 바꿨더라. 문맥상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자 자기 캐릭터에 맞게 튜닝한 느낌.
극의 마지막,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고 죽는 장면에서는 두 클로디어스 모두 매우 슬퍼하고 비통해하지만, 여기서 범클로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윤클로는 그렇게 슬퍼하고서도 어떻게든 살겠다고 버둥거린다. 그렇게 두 클로디어스가 보여주는 죽음의 순간이 굉장히 대조적이라 이런 것도 참 좋더라. 더블 캐스팅의 묘미는 이런 거 아니겠는가.
- 화요일마다 레전을 찍는데다 디테일까지 늘어서 오는 은릿은 오늘도 참 깨알같이 표정 연기같은 게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되어서 왔더라. 엘리자벳 연습 들어갔다더니, 그 영향도 있는 걸까. '피는 피로써'는 오늘도 지난 공연보다 더 처절해져서, 막공 때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는 걸까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걱정도 되고;
'수녀원에 가'에서 보여주는 가슴 찢어지는 표정과 냉정, 냉혈한 표정 사이의 그 격렬한 대비가 진폭을 더 키워서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자신도 깊이 상처 받으며 그래도 잔인해질 수 밖에 없는 저 사랑을 어쩌면 좋냐. 뒤돌아 너덜너덜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은릿, 길을 잃고 헤매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느냐며 고통스러워하는 이 노래가 이후 '산다는 게 연극같아'와 연결되면서, 이 고단한 신경쇠약 직전의 왕자님이 참으로 가엽고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선왕이 복수를 명령한 이후로 원래의 '나'를 잃어버리고 오로지 복수에 매달리는 '사는 게 연극같은 나'만 남았다. 이제는 어떤 게 원래의 내 모습인지도 혼란스럽다. 내 꿈은 녹이 슬어버렸고, 그 녹슨 꿈이라도 다시 찾고나면 '잊었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 사는 것도 죽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이 진창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죽어서 잠드는 것, 잠들어 깊은 꿈을 꾸는 것 뿐이지 않을까. 그렇게 온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지도록 망가져가는 이 왕자님이 오늘따라 얼마나 가엽고 안스러운지. ㅠ.ㅠ
극중극 장면에서 오늘 은릿이 오필리어를 끌어안고 전과 달리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가만히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데, 그게 꼭 두 사람이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바로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하하하 오버하며 웃어대는데 '내가 연극을 올리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돼.'라는 것 같더라.
그리고 복수에의 긴장감이 부풀어오르다 펑 터져버리는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 이렇게 또 애처로움이 급상승해서 나타날 줄이야. 아버지 유령에게 외면당해 원망하고 허탈해하다 손에 묻은 피를 보고 공포와 두려움에 경악하는 표정이나, 자기가 찌른 사람이 폴로니우스라는 걸 깨닫고 망연자실한 표정하며, 이 황망함에 차라리 미쳐버릴 것 같은 심리 변화가 손에 잡힐 듯 전해져 와서 어쩜 이러냐 했다.
- 오늘 무덤지기 씬에서는 은릿과 호레이쇼가 술 한잔 걸치고 기분이 잔뜩 풀어진 게 보이더니만, 호레이쇼가 '이분이 누군지 알고 그러느냐'는 대사에서 애드립 작렬. 이때부터 빵빵 터져서, 안그래도 애드립 대마왕 김성기 씨가 지킬 해골을 은릿에게 '너 줄게'하시곸ㅋㅋㅋ은태가 지킬 욕심내는 거 아시는 거냐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엄청 씐나씐나 모드. 은릿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웃어서 단 한순간이지만, 위로가 되었다. 이어질 전개를 생각하면 더더욱. ㅠ.ㅠ
- 동레어가 오늘 참 열심히 오빠 모드로 몰입해줘서, 이 장례식 장면에서도 여동생의 죽음을 너무너무 슬퍼하는 오빠님이더라. 하나뿐인 여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까지 더해 아주 탈력해버려서, 은릿이 나타나서 나를 용서하라며 따라 죽겠다고 무덤에 뛰어들고 그러는데, 원래라면 붙잡은 친구들 뿌리치고 은릿 멱살잡이를 해야하는데, 그걸 못 뿌리치고 잡혀있는 걸 보고, 슬픔에 기력을 잃었구나 싶더라. 이랬는데, 칼싸움에서는 아주 제대로 불타올라서 긴박감이 또 장난이 아니었다. 하여간 기세만으로 죽일둥 살둥 덤벼드는 동레어에 은릿이 겨우겨우 대응하는 구도.
거트루트의 독살 이후 오늘 은릿이 어찌나 이성을 잃고 날뛰던지. 그야말로 눈이 뒤집혀서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상태. 그렇게 '이제 그만'을 외치는 레어티스에게까지 살수를 뻗고, 자신도 결국엔 독으로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 지르는'클라우디우스─!!' 에 담긴 깊은 절망, 분노, 그리고 허무. 여기서 은릿의 연기도 좋았지만, 윤클로의 끝까지 비열한 연기도 참 좋더라.
비록 잃어버린 꿈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잊었던 자신을 마지막에는 찾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은릿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 오늘 앙상블 중에 박수진 씨가 빠지고, 그 자리를 이정화 씨가 채우고, 이정화 씨 자리는 스윙 김솔잎 씨(이정화 씨가 오필리어로 서면, 이분이 앙상블로 이정화 씨 부분을 채움)가 대신했는데, 이정화 씨는 초록색 드레스도 보라색 드레스도 잘 어울리더라. 지난 공연에서 이미경 씨 대타로 헬레나 역으로도 한 번 섰다는데, 그런 레어 공연을 놓쳐서 아쉬운 마음을 오늘 보라색 드레스 입은 모습 본 걸로 조금 상쇄시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