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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봤다. 내가 덕질을 시작한 건 언제쯤이었나. 거슬러 올라가보니, 캔디캔디를 파던 시절부터, 소년중앙, 보물섬을 탐독하던 시기를 지나, 르네상스, 댕기, 윙크를 지나 이슈, 화이트까지 순정 만화를 꾸준히 파오다, 자연스레(?) BL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지.
주윤발과 홍콩 느와르에 홀릭해서 주말마다 영화관으로 달리고 - 그래, 난 이때부터 영화 혼자보기 스킬을 마스터했더랬다 - 그러다 엑스재팬에 잠시잠깐 빠졌다가, 토니에게 홀려서 참 평생 첨으로 아이돌 팬질이란 걸 해봤지. 그렇게 토니는 always야~ 를 외치다 미키 상을 영접하여 성우 팬미팅에, 아자씨와 함께 여행이라는 황송한 이벤트 경험도 해보고, 오지 취향 어디가나 만사이 상을 만났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한가 했는데, 올들어 난데없이 공연(? 배우?)에 홀릭. 하여간에 난 참 덕질을 쉬지않고 하는구나....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하는 Born to be 덕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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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게 뮤지컬 모차르트!로 촉발된 공연에의 홀릭인지, 배우 박은태에의 홀릭인지 아직 좀 구분이 모호한 감이 있다. 그래서 내 덕질의 역사를 관찰한 지인들 눈엔 내가 박은태 파슨이라고 여겨질지라도, 나만 혼자 인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
이때껏 쏟아부은 액수를 봐도 배우 파슨 인정할 만 한데, 마음속에 한 자리 들여놓는게, 왜 이렇게 주저함이 생길까. 분명히 그 목소리에 홀리고, 연기에도 마음이 가고, 각종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도 호감이 가는데, 막 파슨이라고 하기에 걸리는 게 뭘까나.
생각해보니 내 팬질의 대상 중에 박은태가 제일 어리다, 81년생. (아, 90년생 연아는 숭배의 대상이니까, 팬질과는 좀 다르고;) 근데, 박은태보다 나이도 많은 토니는 토닌데, 박은태는 은태라고 안 불려서, 왜 그럴까 했더니, 처음 접한 나이가 문젠가 싶기도 하고. 토니야 십대 때부터 만나서 팬들도 같이 나이들고 그랬어서, 지금도 그냥 토닌데, 아무래도 30대에 처음 접한 박은태는 은태라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액면가로 봐도 토니가 아직 한참 더 어려보이고; 말이 좀 이상한데, 너무 생생한 현실감 때문인가? 아니면, 깊이 들어갈수록 진창이 되는 덕질에 대한 방어본능 때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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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모차르트!가 나한테 끼친 영향이란, 공연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킨 것 외에, 공연은 주말에나 보는 거라는 편견을 깨준 작품이라는 것. 경기도민으로서 평일 공연은 애초에 무리라고 딱 선 긋고, 주말 공연으로만 스케쥴을 채우려다보니 놓치는 공연이 어찌나 아깝던지. 결국 평일에도 공연보기 시작하면서, 카드 한도액을 증액하는 결과가 ㅠㅛㅠ
그래도 피맛골 연가로 한창 달릴 때가 참 좋았지 싶은 요즘이다. 평일 스케쥴 텅 빈거 보면서 이렇게 허전할 수가; 오늘도 당장 퇴근하고 대학로 달려가 현매라도 끊어서 공연볼까 싶을 정도기는 하지만, 햄릿 티켓 끊어놓은 게 얼마인지 계산하고 나면, 표를 더 잡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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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소리에 약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이제는 내 취향을 나도 모르겠다. 예전엔 분명 벨벳 보이스 계열의 부드럽고 묵직한 바리톤 취향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는데, 그럼 미키 상 목소리는? 박은태 목소리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목소리도 무게감이라면 충분히 묵직하지만, 그 신경질적인 예민한 목소리가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소리에 열광하는 거 보면, 내 취향을 다시 정의해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내 그렇게 신경 긁는 소리가 좋은 건 아니고, 특정 포인트에서 그런 소리 내주는 게 좋은 거니까, 아직 바리톤 취향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미키 상도 중후한 목소리로 연기하는 거 들음 또 좋아 죽지; 그래, 그래서 매력적인 걸거다. 다양한 소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하고, 그 중에 물기어린 목소리도 좋지만, 버석거리는 건조함이 가슴을 더 파고든다. 그래 이게 내 취향인갑다.
요즘 박은태의 야뇌에 꽂혀서 주구장창 돌려듣는데, 그 목소리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역시 경질의 유리처럼 단단한 목소리보다는 이렇게 바람 솔솔 잘 통하는 창호지 같은 목소리가 좋다. 노래 가사가 풍경처럼 펼쳐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 검붉은 노을, 홀로 남은 남자의 절규가 다 느껴져서, 이게 내가 파슨이 되는 단계라 평이 후한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평소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나 다른 가요를 부를 때와도 창법이 달라서, 정말 노래 잘하는구나, 순수하게 감탄하게된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봤자, 잡설 늘어놓기라 마무리하기 참 뻘쭘하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