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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4 5년 꽉꽉 채워서 받은 신인상, 축하합니다
  2. 2011.10.24 햄릿 잡담
  3. 2011.10.13 온도차의 이유
  4. 2011.10.04 의식의 흐름에 의한 잡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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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한국 뮤지컬 대상 남우신인상 수상 축하합니다.

뮤지컬 계에서는 한 대여섯 작품 할 때까지는 여전히 신인배우 취급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박은태가 신인상? 이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뮤지컬 배우의 성장 프로세스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스윙 - 앙상블 - 조연 - 커버 - 주연 순으로 성장해 나간다. 저렇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주연 자리까지 올라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거머쥐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편이다. 그래서 한뮤대 규정상 신인상은 데뷔 후 5년까지로 시기를 정했는데, 은태는 딱 그 5년을 꽉 채워서 신인상을 받은 거다. 올해 못받으면 신인상은 영 못받는 거였는데, 늦게라도 이렇게 받게되어서 참 다행이랄지, 하여간 뿌듯하겠다 싶다.
작년에 모차르트!로 받을 만 했는데, 올해 피맛골 연가의 김생 역으로 받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김생은 창작 뮤지컬의 초연 캐릭터였으니, 온전히 은태가 만들어낸 캐릭터로 받은 상이니까. (그러고보니, 피맛골 연가는 최다 노미네이트 된 것 치고는, 남우 신인상과 여우 주연상 - 조정은, 선녀님의 주연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 이렇게 2가지 상을 수상했는데, 역시 배우빨이었던 게지;)

각종 인터뷰에서 보면 참 거침이 없다고 할까, 굳이 감추고 그런 게 없기는 한데, 시상식 소감이 진짜 너무 너무 박은태다워서 좀 웃었다. 부천에서 채소가게 하시는 부모님의 세째 아들이 상을 받았다며 부모님께 감사를 전하고, "사랑하는 여자 친구"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거 보면서, 참 한결같다 정말 솔직하고 가리는 게 없구나 싶었다.

노력하는 것, 성실도 재능이다. 시간의 힘을 믿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 성장형 배우가 이뤄낸 성과를 축하하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무대 위에서 빛이 나는 배우로 서 주길 바란다.
- 공연없는 월요일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햄릿으로 도배될 최근 작성글 리스트가 좀 보기에도 그래서;

- 햄릿 정극을 두어번 봤더랬는데, 예전에 난 하다못해 그날의 캐스트조차 챙겨보지도 않는 상머글이었을 뿐이고; 그냥 기억에 남는 게 두가지 버전의 햄릿에서 거트루트에 대한 해석이 참으로 대조적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하나는 여왕의 자리에 집착하여 시동생과 결혼을 선택한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한 여자라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뜻이 아닌, 타인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버전이었다.

전자는 그야말로 여왕님이셨고, 햄릿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여왕님으로서 왕자위에 군림하는 태도여서, 어머니 앞에서 주늑들었던 햄릿이 침실에서 그녀의 권위와 자존심을 짓밟으며 행패를 부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곧바로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서 상황 정리되었지만.

후자는 캐릭터로서 별 매력이 없을 것 같은 데, 이게 또 의외로 참 괜찮았더랬다.
희미한 존재감이 딱 그만큼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트루트여서, 연약하고, 소심하고, 이쪽 저쪽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는 참으로 딱한 왕비님. 오필리어가 왕비가 되면 저렇게 되려나 싶은. 누구도 상처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씨 고운 왕비님. 그저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자기가 중간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는지, 새 남편도 아들도 알아주지 않아서 야속하지만, 겉으로 표현도 못하고, 그저 눈치만 보는 가녀린 여인이라, 햄릿도 클로디어스도 개객끼 소리가 절로 나왔더랬지.
거트루트의 침실에서 햄릿이 광증으로 미쳐 날뛸 때,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말리는 걸 보면서, 그래도 선왕은 거트루트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나보다, 다행이다...했더랬다. 사실 이 극에서는 거트루트의 분량이 정말 적었는데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배우분의 연기가 정말 좋았던 모양인데, 그분을 내가 몰라;
아, 쓰면서 생각났다. 이 거트루트는 어딘가 수하이바토르의 엄마를 닮았구나. 아들이 새아버지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그래서 눈에 밟혔나보다.

- 5막으로 구성된 원작에서 햄릿은 1막에서 이미 선왕의 유령을 만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듣게된다. 그러나 똑똑한 햄릿(;)은 유령의 말을 그냥 믿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증명하려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피의 복수를, 거짓이라면 그저 악마의 장난으로. 그래서 미치광이 연기를 시작하고, 유랑 극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나름 주도면밀한 매우 이성적인 왕자님이다. 좀 우울한 캐릭터에 생각이 좀 많기는 해도.

그런데, 뮤지컬 햄릿의 햄릿은 그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장례식이 끝나자 결혼식을 올리는 어머니에 환멸하고,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 왕위를 가져간 삼촌을 증오한다. 그저 이 상황이 다 마음에 차지 않아 덴마크는 썩어가고 있다고 부르짖는 중2병 환자. 그렇게 혼자 비극을 짊어지고 고뇌하는 상처받은 영혼을 오필리어에게 위로 받는다. 어쩌면 이 순간이 햄릿에게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죽은 아버지의 망령이 나타나서 홀랑 깨버린다. 그래 자긴 억울하게 죽었는데, 마누라는 원수와 한 이불을 쓰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도 연인의 품안에서 안식을 찾는게 고까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참 죽이는 타이밍이다.
안그래도 심란한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이 전하는 진실에 세상이 무너지고, 발밑이 뒤집히는 충격을 받아서, 이 뒤에 보여주는 그의 광기는 미친 척하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 가시오! 라는 햄릿도 보면 원작의 햄릿은 오필리어를 상처주려고 그런다기 보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환멸의 감정,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오필리어에게 비아냥대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때 햄릿은 폴로니우스와 클로디어스가 숨어서 지켜본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긴 원작의 오필리어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리에 나왔기도 하고.
뮤지컬 햄릿에서 햄릿은 자기가 오필리어에게 쓴 연애편지(;)가 들킨 것에 대해 부끄럽고, 짜증이 난 상태에, 그걸로 조롱당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걸 오필리어에게 쏟아부으며 수녀원에나 가라고 버럭질. 이건 명백하게 오필리어를 상처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넌 개객끼! 그래놓고 뒤돌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고뇌마저 오필리어를 상처줘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자기 문제로 괴로워하는 거다.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남을 상처주는 상 찌찔이 같으니라고.

- 원작을 읽으면서도 좀 그랬던게. 햄릿은 폴로니우스를 살해했다. 그런데, 일국의 왕자라고 무슨 처벌도 안 받고 국외로 빼돌려진다는 것. 물론 클로디어스는 영국왕에게 햄릿을 죽여달라는 편지를 동승시켰지만, 그건 폴로니우스 살해에 대한 벌이 아니라, 눈엣가시인 햄릿을 제거하여 왕좌를 굳건하게 하기위한 대비책이었다. 일국의 재상이 죽었는데, 그게 왕자라고 이렇게 처리가 되다니!!
물론 햄릿은 영국에 가지도 않았고, 중간에 돌아왔지만, 하여간 실성한 오필리어를 방치한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뭐 도망간 건 도망간 거지만, 이 경우는 추방에 가까우니까. 그렇기에 돌아와서 무덤지기를 만나 유쾌한 만담을 나눠도 뭐 그러려니가 되는데, 뮤지컬 햄릿에선 이 부분이 싹 빠져있으니, 실성한 오필리어가 자살한 씬 뒤에 무덤지기와 희희낙락거리는 걸 보면, 저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싶어지는 거다. 그러더니만 오필리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는 몰라라니, 에라이!!

- 햄릿이 작게는 한 가족의 잔혹사, 크게는 한 나라의 왕조의 몰락을 다루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 패턴이잖아. 그래서 이렇게 재미지나?

산다는 게 연극같아
온통 거짓말로 모두 가려져있어
피가 끓고 울고 웃기도 하겠지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즐겨
오늘 밤을 위해───


뮤지컬 '햄릿' 주연 박은태 "연기,이제야 눈뜨고 있어요"
- 파이낸셜뉴스, 2011-10-12 16:56

“관객들이 ‘아, 티켓 값이 아깝다.’ 이런 생각 안 들게 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려워요.”

배우 박은태(30)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곱상한 이미지의 무대 위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꿈꾸는 낭만주의자라기보다 계산 잘하는 현실주의자다. 물론 개런티 협상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2006년 스물다섯 늦깎이 데뷔.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뭐였겠나.

“닥치는 대로 했어요. 역할에 필요하다 싶은 건 밤을 새워서라도 연구하고 익히고 했습니다. 제 색깔요? 그런 게 어딨어요. 1년차 연기자가 ‘제 생각에는요…’ 이런 식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싶었어요. 제작진의 의도, 연출가의 생각, 솔직히 전 그게 더 중요했습니다. 연습 때마다 물었죠. ‘이럴 때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상황엔 어떻게 움직이나요.’ 결국 그래서 더 많이 배웠습니다.”

아이돌 출신의 꽃미남들이 속속 상륙 중인 뮤지컬계에 묵묵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는 배우 박은태의 생존 비법은 이런 것이었다.

“부모님이 시장에서 대파 팔아 200원 남겨 번 돈으로 자식 셋 대학 보내셨습니다. 노래, 하고 싶어도 그걸로 먹고 살 생각은 못했어요.”

한양대 경영학과 2학년. 강변가요제에 나가 동상을 받았을 때도 ‘이쪽은 별나라 사람들의 동네’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노래가 좋은 걸 어찌하겠나. 샐러리맨이냐, 가수냐. 졸업 직전까지 끌어안고 있었던 이 햄릿형 질문에 그는 운명처럼 ‘가수’를 골랐다.

예상대로 시작은 험난했다. “끼가 없더라고요. 멍석을 깔아주면 튀질 못하는 거예요.” 그때까지 생애 단 한편의 뮤지컬도 본 적이 없었다는 그가 뮤지컬 무대로 빠지게 된 건 이런 이유도 크다. “뮤지컬에도 끼가 필요합니다.그래도 잘 짜여진 극 속에 연습과 노력으로 끼를 보충할 수 있는 게 다르더라고요.”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했지만 초반엔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다. 행운은 벼락처럼 찾아왔다. 지난해 2월 조성모의 대타로 투입된 ‘모차르트!’에서 매끈한 창법으로 객석을 놀라게 했다. ‘은차르트’로 불리며 단번에 주인공 대열에 올라섰고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 이자나 연출의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까지 잇달아 주역을 꿰찼다. 올 들어선 ‘모차르트!’ ‘피맛골 연가’ 재공연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박은태가 이번에 새롭게 도전하는 작품은 뮤지컬 ‘햄릿(20일~12월 17일 유니버설아트센터)’이다. 1999년 초연돼 꾸준히 인기몰이 중인 체코의 흥행 뮤지컬. 국내에선 2007년 초연 후 2008, 2009년에 이어 올해가 시즌 네번째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연출했던 로버트 요한슨이 이번 작품 연출로 합류했다. 록, 재즈, 라틴음악 등 다양한 선율을 섞어 록 오페라 뮤지컬을 표방하고 있다. 김수용, 서범석, 윤영석, 김성기, 김장섭, 강태을 등 연기파 배우들이 두루 포진해있다.

7일 경기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연습실. 회전무대를 중앙에 두고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사랑해요, 사랑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약속해줘요,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햄릿 박은태와 오필리어 윤공주의 달콤한 연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무대가 한 바퀴 돌자 침실이다. 유령의 음성에 놀라 깨어난 햄릿이 침실 밖으로 뛰쳐나가자 무대는 다시 돈다. 성벽으로 이어진 계단을 타고 오르며 햄릿은 절규한다.

박은태는 햄릿 역을 위해 4㎏이나 체중을 뺐다. “고뇌하는 햄릿이 통통한 얼굴일 순 없잖아요. 대본을 잡은 후로는 매사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배역을 받으면 그 역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해요.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작품을 못합니다. 아직 초보 배우라 그럴거예요.”

뮤지컬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각색한 ‘거트루트의 사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어머니 거트루트와 삼촌 클라우디우스의 사랑에 햄릿은 갈팡질팡한다. “아직 이 역의 답을 못 찾았습니다. 하나도 쉬운 장면이 없어요. 마지막 죽는 것도 속시원하질 않아요. 모차르트는 할 만큼 다하고 슬픔에 복받쳐 죽음을 맞습니다. 그건 오히려 쉬웠어요. 햄릿은 죽을 때 그제서야 편안해집니다. ‘사는 게 뭐지.’ 이런 생각 하면서요. 이 편안한 죽음의 표현이 지금 제게 숙제입니다.”

‘레슨 종결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는 과외수업을 많이 받는 배우로 유명하다. 데뷔 후 노래 레슨은 쉰 적이 없다. “안 배우면 잠을 못잔다”는데 어쩔텐가. 최근엔 춤과 연기 수업에도 악착같다. 그는 이제야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며 ‘연기 잘하는 배우’가 최종 목적지라고 말한다.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는 중이에요. 워낙 연기 밑천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슬슬 이 세계가 보여요. 그러니 무조건 달려볼 생각입니다.하하.”

/jins@fnnews.com 최진숙기자


저 프로필 사진[각주:1]이 박은태라는 사람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이 아닐까 싶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은 선한 인상, 살짝 어색한 포즈, '나성실'이라고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저 범생 포스. 그래서 재미없는;

그런데도 끌렸던 건, 이 청년이 완성형이 아닌 성장하는 중이라서였던 것 같다. 그것도 초고속으로.
앙상블 데뷔 후 대극장의 주조연에서 바로 대극장 주연으로. 그것도 한국 초연 라이센스 뮤지컬의 주조연, 창작 초연 뮤지컬의 주연이었으니.

재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성실함을 무기로 자기 자리를 확보하는 배우. 그런 모습은 참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이 바른생활 사나이가 그 틀을 깨고 파격을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대에 서는 표현자로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있을지.

박은태라는 배우는 내게 있어, 믿음을 주는 배우,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항상 보장하는 안정적인 배우다. 오늘 최고의 공연을 보여줬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하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무대 공연에서, 매 무대 편차없는 연기력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다만,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틀을 깨는 모습도 보고싶은 거다. 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데, 감정 과잉의 폭발력이 아니라, 완벽하게 계산된 그 어떤 것을 더도 말고 2%만 더 뛰어넘는 진폭. 만약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마 그 때, 내가 느끼는 이 온도차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사랑은 비를 타고(2009) 시절 동현 역 프로필 사진이라 최근 사진은 아니지만. [본문으로]

가만 생각해봤다. 내가 덕질을 시작한 건 언제쯤이었나. 거슬러 올라가보니, 캔디캔디를 파던 시절부터, 소년중앙, 보물섬을 탐독하던 시기를 지나, 르네상스, 댕기, 윙크를 지나 이슈, 화이트까지 순정 만화를 꾸준히 파오다, 자연스레(?) BL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지.

주윤발과 홍콩 느와르에 홀릭해서 주말마다 영화관으로 달리고 - 그래, 난 이때부터 영화 혼자보기 스킬을 마스터했더랬다 - 그러다 엑스재팬에 잠시잠깐 빠졌다가, 토니에게 홀려서 참 평생 첨으로 아이돌 팬질이란 걸 해봤지. 그렇게 토니는 always야~ 를 외치다 미키 상을 영접하여 성우 팬미팅에, 아자씨와 함께 여행이라는 황송한 이벤트 경험도 해보고, 오지 취향 어디가나 만사이 상을 만났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한가 했는데, 올들어 난데없이 공연(? 배우?)에 홀릭. 하여간에 난 참 덕질을 쉬지않고 하는구나....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하는 Born to be 덕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이게 뮤지컬 모차르트!로 촉발된 공연에의 홀릭인지, 배우 박은태에의 홀릭인지 아직 좀 구분이 모호한 감이 있다. 그래서 내 덕질의 역사를 관찰한 지인들 눈엔 내가 박은태 파슨이라고 여겨질지라도, 나만 혼자 인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
이때껏 쏟아부은 액수를 봐도 배우 파슨 인정할 만 한데, 마음속에 한 자리 들여놓는게, 왜 이렇게 주저함이 생길까. 분명히 그 목소리에 홀리고, 연기에도 마음이 가고, 각종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도 호감이 가는데, 막 파슨이라고 하기에 걸리는 게 뭘까나.

생각해보니 내 팬질의 대상 중에 박은태가 제일 어리다, 81년생. (아, 90년생 연아는 숭배의 대상이니까, 팬질과는 좀 다르고;) 근데, 박은태보다 나이도 많은 토니는 토닌데, 박은태는 은태라고 안 불려서, 왜 그럴까 했더니, 처음 접한 나이가 문젠가 싶기도 하고. 토니야 십대 때부터 만나서 팬들도 같이 나이들고 그랬어서, 지금도 그냥 토닌데, 아무래도 30대에 처음 접한 박은태는 은태라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액면가로 봐도 토니가 아직 한참 더 어려보이고; 말이 좀 이상한데, 너무 생생한 현실감 때문인가? 아니면, 깊이 들어갈수록 진창이 되는 덕질에 대한 방어본능 때문인지도.


뮤지컬 모차르트!가 나한테 끼친 영향이란, 공연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킨 것 외에, 공연은 주말에나 보는 거라는 편견을 깨준 작품이라는 것. 경기도민으로서 평일 공연은 애초에 무리라고 딱 선 긋고, 주말 공연으로만 스케쥴을 채우려다보니 놓치는 공연이 어찌나 아깝던지. 결국 평일에도 공연보기 시작하면서, 카드 한도액을 증액하는 결과가 ㅠㅛㅠ

그래도 피맛골 연가로 한창 달릴 때가 참 좋았지 싶은 요즘이다. 평일 스케쥴 텅 빈거 보면서 이렇게 허전할 수가; 오늘도 당장 퇴근하고 대학로 달려가 현매라도 끊어서 공연볼까 싶을 정도기는 하지만, 햄릿 티켓 끊어놓은 게 얼마인지 계산하고 나면, 표를 더 잡기도 그렇고`


내가 목소리에 약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이제는 내 취향을 나도 모르겠다. 예전엔 분명 벨벳 보이스 계열의 부드럽고 묵직한 바리톤 취향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는데, 그럼 미키 상 목소리는? 박은태 목소리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목소리도 무게감이라면 충분히 묵직하지만, 그 신경질적인 예민한 목소리가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소리에 열광하는 거 보면, 내 취향을 다시 정의해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내 그렇게 신경 긁는 소리가 좋은 건 아니고, 특정 포인트에서 그런 소리 내주는 게 좋은 거니까, 아직 바리톤 취향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미키 상도 중후한 목소리로 연기하는 거 들음 또 좋아 죽지; 그래, 그래서 매력적인 걸거다. 다양한 소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하고, 그 중에 물기어린 목소리도 좋지만, 버석거리는 건조함이 가슴을 더 파고든다. 그래 이게 내 취향인갑다.

요즘 박은태의 야뇌에 꽂혀서 주구장창 돌려듣는데, 그 목소리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역시 경질의 유리처럼 단단한 목소리보다는 이렇게 바람 솔솔 잘 통하는 창호지 같은 목소리가 좋다. 노래 가사가 풍경처럼 펼쳐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 검붉은 노을, 홀로 남은 남자의 절규가 다 느껴져서, 이게 내가 파슨이 되는 단계라 평이 후한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평소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나 다른 가요를 부를 때와도 창법이 달라서, 정말 노래 잘하는구나, 순수하게 감탄하게된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봤자, 잡설 늘어놓기라 마무리하기 참 뻘쭘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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