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2 .23 ~ 2011. 12. 25
장   소 :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
관극일 : 2011. 12. 23 (금)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EMK 라인업을 보아하니, 한동안 햄릿이 다시 올라올 것 같지가 않아서 (뭐, 제작사 사정에 따라 라인업은 바뀔 수도 있지만. 2013년에나 올라온다던 모차르트!도 내년에 올라온대고), 그리고 지하철로 다닐 수 있는 공연장이기도 하고 해서 부담없이(;) 예매했던 고양 햄릿. 그렇다고는 해도 평일 공연은 무리였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오늘 지연 관객될 각오를 하고 예매를 했던 건 처음에 뜬 스케줄표에 오늘 오필리어가 이정화 씨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공연장에 딱 5분전에 도착해서 캐스팅 보드 같은 거도 못 챙겨보고 부랴부랴 티켓 찾아 자리에 앉아 공연을 보는데, 헉, 장례식에 등장하는 오필리어 윤공주 씨. 그래, 아무리 지방 공연이라고는 해도 첫공을 얼터에게 줄 것 같지는 않더라니. 이로서 내 오필리어 이정화 씨와는 지난 12월 2일 공연이 막공이 되버렸다는 너무너무 슬픈 사실. ㅠ.ㅠ 내 오필리어~~~

고양 아람누리도 초행길이고, 아람극장도 처음 가봤는데, 일단 멀기는 성남국 수준이지만, 그래도 지하철 역 바로 근처라서 접근성은 좋더라. 극장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반대로 무대는 꽤 광활하더라. 객석에 앉아서 봤을 때 앞에 OP파트가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무대도 꽤 깊어서 새삼 유니버설 아트센터가 진짜 무대가 가까웠구나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MR로 공연할 거라고 예상을 하고 갔는데, 오케스트라 파트 구멍이 그대로, 거기다 부음감이 부지런히 뭔가를 하고 있어서 의외. 하지만, 소리를 들어보면 MR과 라이브가 섞여있더라.

- 무대가 더 커져서 전반적인 동선이 유니버설에서 짰던 것보다 길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했고, 무대 세트도 유니버설에서 꽉 찼던 게 좀 비어보이기도 하고, 하여간 공연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는데, 그런 어색함이 묻어나던 공연. 배우들은 금방 적응했지만, 그동안 안 보이던 공간이 보여서 뭔가 내가 더 낯설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오늘 음향 담당은 나랑 싸울래연. 공연장 바뀌면 음향 세팅도 당연히 달라져야하지만, 무엇보다 라이브일 때랑 MR 사용할 때랑 음량이 차이가 나서, MR 사용할 때 배우 목소리가 반주에 묻히는데, 오늘 배우들이 좀 쉬고 와서 다들 목소리가 얼마나 깨끗하게 뻗어줬는데, 그걸 제대로 살려주지를 못하니. 하울링 사고도 두어번. 진짜 그거 하나 빼면 오늘 공연은 충분히 레전드급 공연이었는데, 장소가 유니버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도 없이 되뇌이게 만들었다.

- 일단 배우분들 모두 짦은 공백 뒤에 다시 무대에 섰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감 같은게 흐려질 리 만무. 오히려 표정 연기가 더 좋아지고, 깊어져서 진짜 음향만 아니었으면 소리를 속으로 몇 번을 했는지.

- 극의 시작 오른쪽 망루에 서서 장례식을 지켜보는 은릿이 등장하는데, 하루걸러 하루, 주말엔 연달아 보던 햄릿을 며칠 못 봤다고 새삼 보고 싶었구나 설레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그 청량하고 투명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잔뜩 묻어나서 또 마음이 선덕선덕. 이때부터 마이크 출력이 살짝 불안하더니, 세상에 Why me에서 반주에 다 묻히는 목소리 ㅠ.ㅠ 게다가 '피는 피로써'도 정말 혼신을 다해 불러줬는데, 마이크 출력이 받쳐줬다면 그 목소리가 홀 전체를 가득 메우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을. 아니, 음향 아쉬운 거 두고두고 곱씹을 후기라 이쯤에서 스탑.

- He's crazy에서 장섭 폴로니우스와 은릿 케미가 참 좋아서. 새삼 고양 남은 공연 조합이 은릿+OB 조합이라는 게 아쉽더라. 장섭님 어케 한 번 더 안되시려나. 왕자님을 대놓고 미쳤다고 해놓고, 정작 햄릿 등장하니 민망함에 몸둘바를 몰라하시는 장섭님이나, 거기에 맞춰서 폴로니우스 '왁!' 놀래키고 너무너무 즐거워하는 은릿도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하여간 깨알같이 귀여워서. 그리고 애처롭게 '왕자님~'을 부르짖는 장섭님. 이래서 장섭 폴로니우스가 좋아요.

- 이어지는 '수녀원에 가'에서 은릿 표정 연기가 더 섬세해지고, 절절해지고, '증거가 필요해'에서도 고뇌에 찬 표정, 혼란스러움, 그리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눈만 번들거리는 햄릿, '오늘 밤을 위해'에서 복수를 실행하기 전의 들뜬 마음, 검은 분노를 얼마나 잘 표현해내는지. 새삼 참 좋은 배우구나 했다. 끝을 모르고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

- 영숙 거트루트의 'I'm untrue', 윤클로의 'Chapel' 도 연기며 목소리가 막공 때보다 더 좋아졌는데, 음향.....항상 쩌렁쩌렁한 동석이만 살아남은 음향.....동석이는 이제 완전히 오빠 모드 장착된 듯.

- 폴로니우스 살해 장면에서 보여주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이나, 감정선 그 황망한 감정이 참으로 안스럽고, 잠시나마 무덤지기와 만사 잊고 씐나씐나하는 그 장면도 오늘은 어쩐지 애잔한 마음이 들 정도. 여기에서 은릿은 뭔가 살짝 들뜬 기분을 애써 눌러 죽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
오필리어 장례식 장면에서 은릿과 동레어의 저 불꽃튀는 슬픔의 대결도 이걸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더라. 사실 둘이 외쳐대는 것처럼 '넌 내 슬픔을 절대 이해할 수 없어.'라지만, 둘이 겪는 아픔과 슬픔의 감정은 공유할 수 없을지언정, 그 고통스러움 만큼은 서로가 제일 잘 알고있었을 것이다. 죽을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버티고 버티다 마지막 남은 실 하나가 끊어지는 그 깊은 상실감을 이 둘은 샴 쌍둥이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 극의 마지막. 진짜 은릿은 끝까지 편해지지 못하고 그렇게 스산하게 아프게 서럽게 가버렸다.

- 커튼콜에서 동레어, 윤필리어 배에서 내려오는데 하울링 울리니까 귀 아프다고 티내는 동레어 귀여웠고, 제일 씐나씐나였던 장섭님,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해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알은 채 해주셔서 더 고마웠습니다. ㅋㅋ 은릿은 뭔가를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한 표정이라 더 좋아보였고, '피가 끓고' 하고 리듬타며 점프하는데, 아주 날아갈 기세라, 고양 첫공 무사히 마친거 축하고, 남은 공연도 잘 마무리 짓기를.
난 은릿 고양 공연도 전관이라, 진짜 이번 시즌 햄릿에는 한 점의 미련도 안 남기고 불태울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