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만사이 상 팬 블로그에서 교겐 공연의 후기를 읽다가 만사쿠 상이 토크 시간에 해외 공연의 추억담을 펼쳐놓으시다가 '올해는 처음으로 한국 공연이 결정되서' 라고 하셨다는 후기를 읽고, 사실은 반신반의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 예상했더랬었다. 당시에 만사이 상 스케줄이 워낙 후덜덜해서, 아니, 뭐 지금도 마찬가지만, 맥베스가 막 끝난 다음, 연극 파우스트에 영화 노보우의 성,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교겐 공연에 과연 이분이 언제 시간이 나서 한국엘 오시나 했는데, 그게 9월이었나보다. (난 겨울에나 오시려나 했다;) 관련 정보는 국립극장 홈페이지, 티켓링크, 그리고 8월 12일자로 万作の会 홈페이지 공지에 올라있다. 만사쿠/만사이 상 한국 첫 공연이로구나~ 얼쑤~

2010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 http://www.ntok.go.kr/wfnt2010/program/04_detail.jsp
티켓링크  - http://theater.ticketlink.co.kr/detail/place_end01.jsp?pro_cd=B0054648
万作の会(공식 홈페이지) - http://www.mansaku.co.jp/news/2010/08/the-world-festival-of-national-theaters-2010.html
 
2010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트래디셔널 교겐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기간 : 2010.09.03 ~2010.09.04
공연시간 : 105분
               09.03 20:00 공연
               09.04 13:00 공연
기획 : 국립극장(기획)
기획제작 : 세타가야 문화재단,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협력 : 만사쿠회 (万作の会)
레파토리 : 봉에 묶기(棒縛, 보우시바리), 상류(川上, 카와카미), 버섯(茸, 쿠사비라)

보우시바리와 쿠사비라는 해외 공연 단골 레파토리라 이해가 가는데, 카와카미는 의외였다.
앞에 두개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콩트라고 하면, 카와카미는 내용을 알아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할까나. 어쨌거나, 내용 자체가 교겐에서는 드문 언 해피니까.
출연진을 보니까, 만사쿠 상이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과연 무대에 오르실까 싶었는데, 카와카미에 출연하시는 걸 보고 참 그 연세에 자기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셨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혹시나 유키군도 같이 안 와주려나 했더니, 쿠사비라에서 버섯 역할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노무라가 삼대가 총출동이네.

* 프로그램 설명 - 티켓링크 참조

보시바 (막대기 묶음)
타로-카자 : 노무라 만사이 (野村萬斎)
주인 : 타카노 카즈노리 (高野和憲)
지로-카자 : 후카다 히로하루 (深田博治)

* 줄거리
두 하인 타로-카자와 지로-카자가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술 곳간에서 술을 훔쳐 마신 것을 알게 된 주인. 그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어 타로를 막대기에 묶고 지로의 양손을 묶은 후 안심하고 외출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묶인 채 술 곳간으로 가고 술 독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으니 마시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두 손이 묶인 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묶인 손으로 술 곳간의 문을 열거나 춤을 추는 장면에서 웃음을 주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공연이다. 누구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교겐극의 대표작으로 해외에서도 여러 번 공연 되었다.


카와카
(강의 상류)
맹인남편 : 노무라 만사쿠 (野村万作)
부인 : 이시다 유키오 (石田幸雄)

* 줄거리
요시노에 사는 맹인 남자가 영험하다는 강의 상류에 있는 지장보살(자비로운 수호신의 돌상)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한 결과로 그의 시력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지금 그와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은 악연이므로 헤어지라는 조건을 단다. 그것을 알게 된 부인은 화를 내며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우기는데…. 인간과 운명의 대치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교겐의 이색적인 명작으로 비록 40분 정도 상연되는 짧은 극 이지만 장편 연극에 필적할 만한 긴장감 넘치는 내용을 보여준다. 또한 ‘카와카미’는 일본의 희곡 베스트3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공연은 20분의 휴식시간을 가진다. >


쿠사비라
(버섯)
수도승 : 노무라 만사이 (野村萬斎)
남자 : 이시다 유키오 (石田幸雄) (* 참고로 저 위에 사진이 쿠사비라 공연 사진이고,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 이 분임. 머리에 갓을 쓴 사람들은 버섯)
버섯들 : 츠키자키 하루오(月崎晴夫), 나카무라 슈이치(中村修一), 노무라 료타(野村遼太 - 만사쿠 상 외손자), 노무라 유키 (野村裕基 - 만사이 상 아들), 토키타 마츠히로(時田光洋), 타카노 카즈노리(高野和憲), 후카다 히로하루(深田博治)

* 줄거리
한 남자가 그의 집에서 하나 둘 씩 자라나기 시작하는 버섯들 때문에 몹시 난감한 나머지 그 버섯들을 제거해 달라고 야마부시(수도승 또는 퇴마사) 에게 부탁을 한다. 그의 집으로 향한 야마부시는 재빨리 굿을 시작 하지만 버섯의 수는 줄기는커녕 더 많아지고 몇몇의 버섯들은 그 남자와 야마부시에게 장난을 치기까지 한다. 인간과 거대한 버섯들의 싸움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자연의 경이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버섯의 형태는 교겐의 워크숍에서 종종 채택되어 지고 있다.
한 줄 감상 - 아이스쇼 스탠딩 석 도입이 시급합니다.
                 혹은, 시즌제 도입이 시급합니다.

2010 All That Skate Summer
일시 : 2010. 07. 23~25 총4회 공연 | 장소 : 일산 KINTEX 특설 아이스링크 | 주최 : All That Sports
출연 : 여자 싱글 : 김연아, 곽민정, 김해진, 미셸 콴, 샤샤 코헨, 실비아 폰타나
         남자 싱글 : 스테판 랑비엘, 브라이언 쥬벨, 제레미 애봇, 존 짐머만
         페어 : 알리오나 사브첸코 & 로빈 졸코비, 제이미 살레 & 데이빗 펠티에
         아이스댄싱 : 타니스 벨빈 & 벤자민 아고스토

특별출연 : 윤하, 조경아 외 꼬꼬마 선수들 (경아 선수 외에 이름을 몰라서 미안합니다.)

 


연아선수의 아이스쇼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가봤거늘, 지난 4월 FOI는 회사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출장가라는 바람에 못갔었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ㅠ.ㅠ 내사랑 쿨릭 옵화, 돔샤에 베르너, 쥬벨까지 왔었는데, 못봤지. 나중에 영상을 보는데, 좋으면서도 막 화가 나더라. 으찌나 속이 상한지. 저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해~~~~~~~~~~~~~~~라며.
그래서 이번 아이스 쇼는 작정하고 즐기기로 마음먹고 2일 3회즈를 하기로 했다. 금요일 일산 크리만 아니라면 첫 공연도 보러갔을 텐데, 거기까지는 무리여서. ㅠ.ㅠ

이번 아이스 쇼의 주제는 꿈.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은 참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연아의 자서전에 나오는 구절 중에 99도와 100도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이 아가씨가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단 1도지만, 끓어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이 어린 아가씨는 일찍부터 깨달았던 거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힘써준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이 아가씨는 여전히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세계 최고라는 건 이렇게 다른건가 싶다.

꿈이라는 주제에 맞춰 오프닝 전에 콴과 연아의 인터뷰 영상이 흐르고, 2부의 오프닝은 꿈나무들이 I Have a Dream에 맞춰서 피겨 스케이팅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closing은 Dream on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어로 놀자 만사이의 야야코시야~풀베개~(にほんごであそぼ 萬斎のややこしや~草枕~@2008) 중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로만 알고있었는데, 좀더 알고보니, 이 분도 참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사신 분이다. (위키피디아 참조 - 미야자와 겐지, 이것보다는 ebs의 지식채널 쪽을 추천)
결핵으로 37세에 요절하고, 역시나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하고, 후대에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에도 지지 않고」는 작가 사후 수첩에 적혀있던 것이 발표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이 시는 병상에서 쓴 시라는데, 소박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꿔온 시인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득 전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선진국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아느냐고. 그때 예로 들어준 것은 Sesame street 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음악가, 엔지니어, 무대 연출가, 각본가 등등 당대 최고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간다던가.
이 "일본어로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니코동에 가끔 '일본어로 놀자' 클립이 올라가면 "贅沢(사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소리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일본어의 감각을 익히게 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어른이 함께 봐도 재미있다고 할까.
이번 편은 시 낭송이지만, 어떤 때는 교겐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만 보여준다던가 - 우리로 치면 판소리 명창이 어린이 프로에 나와서 흥보가의 박타령 한 소절, 어느 날은 춘향가의 사랑가 한 소절 불러주는 식이다 - 진짜 온 몸으로 유명한 시구를 표현하기도 한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을 어렸을 때 깨버리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의상 담당하시는 분은 풍선을 참 좋아하시는 듯. ^^


雨ニモマケズ

宮澤賢治

雨ニモマケズ
風ニモマケズ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丈夫ナカラダヲモチ
慾ハナク
決シテ瞋ラズ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ツテイル
一日ニ玄米四合ト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アラユルコトヲ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ニ
ヨクミキキシワカリ
ソシテワスレズ
野原ノ松ノ林ノ蔭ノ
小サナ萱ブキ小屋ニイテ
東ニ病気ノ子供アレバ
行ツテ看病シテヤリ
西ニ疲レタ母アレバ
行ツテソノ稲ノ束ヲ負ヒ
南ニ死ニソウナ人アレバ
行ツ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北ニケンクワヤソシヨウガアレバ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ミンナニデクノボートヨバレ
ホメラレモセズ
クニモサレズ
サウイウモノニ
ワタシハナリタイ
비에도 지지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하고
욕심 없이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고
하루에 현미 네 되와
된장국과 약간의 채소를 먹고
어떤 경우에도
내 계산만 하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않고
들녘에 소나무 숲 그늘
작은 초가집에 살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 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북쪽에 싸우거나 송사가 있으면
사소한 일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지내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오이디푸스왕(2002, オイディプス王)

원작 : 소포클레스
연출 : 니나가와 유키오 (蜷川幸雄)
음악 : 토기 히데키 (東儀秀樹)
상연 : 2002년 6월 7일 ~ 30일 / 시부야 분카무라 시어터 코쿤
         DVD 수록은 6월 15일

출연
오이디푸스 : 노무라 만사이 (野村萬齋)
이오카스테 : 아사미 레이 (麻実れい)
크레온 : 요시다 코타로 (吉田鋼太郎)
테레시아스 : 칸노 나오유키 (菅野菜保之)
코린토스의 사자 : 카와베 큐조 (川辺久造)
양치기 : 야마야 하츠오 (山谷初男)
보고자 : 스고 타카유키 (菅生隆之)


서글픈 피아노 선율에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어슴프레 조명이 켜지면, 라마승과도 같은 붉은 복장의 코러스가 절규에 휩싸인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몸을 내던질 만큼의 고통과 탄식, 오체투지의 박력에 일순 테베의 비참한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로소 무대에 시선이 가는데, 벽면은 녹슬고 균열이 간 거울, 무대엔 마치 솟대를 연상시키는 기둥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그 기둥엔 룽따(風馬,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티벳, 네팔 등지의 오색 기도천)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어 코러스와 함께 어딘지 티벳을 떠올리게 한다.
역병으로 황폐해진 테베의 슬픔을 쏟아내는 코러스의 절규에 드디어 정면의 문이 열리며 오이디푸스왕이 등장한다. 극적인 효과를 노린 핀 라이트에 하얀 의상이 콘트라스트되며, 어둡고 절망스러운 분위기가 일순 화사하게 피어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젊고 현명한 자랑스러운 왕. 첫 등장에서부터 어찌나 오만하고 위엄에 넘치는 왕님이시던지.

만사이 상, 36세에 연기하신 이 오이디푸스 왕은 초반 감정의 기복이 널뛰듯 한 불안정한 "청년왕"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테베에 내린 재앙의 원인이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 때문이라고 신탁이 내리자, 세상에 자기만큼 정당한 자는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살인자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그 살인자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겠다, 자신은 정의롭다고 과시하며,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청해 사건의 진실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 테레시아스가 전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오히려 이것이 크레온과 테레시아스의 정치적 음모가 아닌가 억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에게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테레시아스는 "지금은 올바로 보는 그 눈도 그 때가 되면 어둠밖에 비추지 않을 것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한편 왕위 찬탈을 노린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크레온과의 험악한 분위기는 이오카스테의 등장으로 수습이 된다. 남자들만 득실대는 무대위에 단 한송이 백합처럼 우아하고 늠름하고 위엄이 넘치는 왕비님이다. 과연 전 다카라즈카 설조의 남자역 탑스타였던 아사미 레이 상,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단 한명의 여배우로서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고, 오히려 모두가 의지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강했다. 50년생인 아사미 상은 만사이 상과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차가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서있을 때는 어느 장면이든 그림이 되고, 하여간 이분도 나이를 잊으신 듯. 가끔은 부부라기보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인 장면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건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나 싶고.

퍼즐 조각이 하나씩 채워져 가며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마치 차례차례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는 대전 게임과 같다. 조금 더 큰 조각을 가지고 있는 코린토스의 사자, 라이오스의 양치기가 차례차례 등장하며 마침내 모든 사건의 진실이 명확해진다. 마지막 패를 미리 알아버린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오이디푸스를 말리지만,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가여운 사람인가."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버린다.

피갑칠하고 나타난 만사이 상의 오이디푸스에는 진짜 깜짝 놀랐다. 선혈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앞에 코로스는 무대에 룽따를 펼치기 시작한다. 일순 무대는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 정상과도 같이 보인다. 그리고 송곳처럼 박혀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저지른 죄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점점 작아져가는 왕. 그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하리라는 예언을 벗어나고자 버둥거린 결과가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만 증명한 꼴이 되었으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예언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인정한다. 진리를 찾고자 열심이고, 결벽한 자존심을 가진 그가 나락에 떨어진 그제야 비로소 전에 없던 신성함을 두르기 시작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돌아온 크레온은 오이디푸스를 동정하여 그의 두 딸을 데려다준다. 여기에서 보여준 두 딸 - 이면서 동생이기도 한 - 에 대한 절절한 애정은 살짝 만사이상의 아버지로서의 모습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끝까지 왕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스스로 추방당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을 뒤로 코러스의 '인간 죽기 직전까지 교만하지 말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출부터 배우들의 연기,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성찬을 맛본 것 같은 연극 한 편이었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서 객석을 무대로 끌어들인 연출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음악, 특히 의상 담당하신 분은 찬양하고 싶어진다. 이 처절하게 슬픈 극을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커튼콜마저 연극의 연속인 듯 아름답고 우아한 인사가 이어졌다. 특히 만사이 상이 인터뷰에서 '커튼콜에서는 아사미 상에게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는 아사미 레이 상의 인사하는 모습은 한 떨기 백합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품위가 있었다. 그리고 피갑칠을 싹 지우고, 하얀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등장한 만사이 상은 커튼콜에서조차 오이디푸스 왕을 연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숙였던 몸을 들어올리고 객석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라니.
새삼스럽지만, 하얀옷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
 
개인적인 별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