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만사이 상 팬 블로그에서 교겐 공연의 후기를 읽다가 만사쿠 상이 토크 시간에 해외 공연의 추억담을 펼쳐놓으시다가 '올해는 처음으로 한국 공연이 결정되서' 라고 하셨다는 후기를 읽고, 사실은 반신반의 그 시기가 언제쯤일까 예상했더랬었다. 당시에 만사이 상 스케줄이 워낙 후덜덜해서, 아니, 뭐 지금도 마찬가지만, 맥베스가 막 끝난 다음, 연극 파우스트에 영화 노보우의 성,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교겐 공연에 과연 이분이 언제 시간이 나서 한국엘 오시나 했는데, 그게 9월이었나보다. (난 겨울에나 오시려나 했다;) 관련 정보는 국립극장 홈페이지, 티켓링크, 그리고 8월 12일자로 万作の会 홈페이지 공지에 올라있다. 만사쿠/만사이 상 한국 첫 공연이로구나~ 얼쑤~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공연기간 : 2010.09.03 ~2010.09.04
공연시간 : 105분
09.03 20:00 공연
09.04 13:00 공연
기획 : 국립극장(기획)
기획제작 : 세타가야 문화재단,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협력 : 만사쿠회 (万作の会)
레파토리 : 봉에 묶기(棒縛, 보우시바리), 상류(川上, 카와카미), 버섯(茸, 쿠사비라)
보우시바리와 쿠사비라는 해외 공연 단골 레파토리라 이해가 가는데, 카와카미는 의외였다.
앞에 두개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웃을 수 있는 콩트라고 하면, 카와카미는 내용을 알아도 잘 이해가 안 간다고 할까나. 어쨌거나, 내용 자체가 교겐에서는 드문 언 해피니까.
출연진을 보니까, 만사쿠 상이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과연 무대에 오르실까 싶었는데, 카와카미에 출연하시는 걸 보고 참 그 연세에 자기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셨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혹시나 유키군도 같이 안 와주려나 했더니, 쿠사비라에서 버섯 역할로 등장하는 모양이다. 노무라가 삼대가 총출동이네.
* 줄거리
두 하인 타로-카자와 지로-카자가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술 곳간에서 술을 훔쳐 마신 것을 알게 된 주인. 그는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어 타로를 막대기에 묶고 지로의 양손을 묶은 후 안심하고 외출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묶인 채 술 곳간으로 가고 술 독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으니 마시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두 손이 묶인 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묶인 손으로 술 곳간의 문을 열거나 춤을 추는 장면에서 웃음을 주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공연이다. 누구든 즐겁게 만들어 주는 교겐극의 대표작으로 해외에서도 여러 번 공연 되었다.
카와카미(강의 상류)
맹인남편 : 노무라 만사쿠 (野村万作)
부인 : 이시다 유키오 (石田幸雄)
* 줄거리
요시노에 사는 맹인 남자가 영험하다는 강의 상류에 있는 지장보살(자비로운 수호신의 돌상)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한 결과로 그의 시력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지장보살은 지금 그와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은 악연이므로 헤어지라는 조건을 단다. 그것을 알게 된 부인은 화를 내며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우기는데…. 인간과 운명의 대치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교겐의 이색적인 명작으로 비록 40분 정도 상연되는 짧은 극 이지만 장편 연극에 필적할 만한 긴장감 넘치는 내용을 보여준다. 또한 ‘카와카미’는 일본의 희곡 베스트3에 오르기도 했다.
<이 공연은 20분의 휴식시간을 가진다. >
쿠사비라(버섯)
수도승 : 노무라 만사이 (野村萬斎)
남자 : 이시다 유키오 (石田幸雄) (* 참고로 저 위에 사진이 쿠사비라 공연 사진이고,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이 이 분임. 머리에 갓을 쓴 사람들은 버섯)
버섯들 : 츠키자키 하루오(月崎晴夫), 나카무라 슈이치(中村修一), 노무라 료타(野村遼太 - 만사쿠 상 외손자), 노무라 유키 (野村裕基 - 만사이 상 아들), 토키타 마츠히로(時田光洋), 타카노 카즈노리(高野和憲), 후카다 히로하루(深田博治)
* 줄거리
한 남자가 그의 집에서 하나 둘 씩 자라나기 시작하는 버섯들 때문에 몹시 난감한 나머지 그 버섯들을 제거해 달라고 야마부시(수도승 또는 퇴마사) 에게 부탁을 한다. 그의 집으로 향한 야마부시는 재빨리 굿을 시작 하지만 버섯의 수는 줄기는커녕 더 많아지고 몇몇의 버섯들은 그 남자와 야마부시에게 장난을 치기까지 한다. 인간과 거대한 버섯들의 싸움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자연의 경이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독특한 버섯의 형태는 교겐의 워크숍에서 종종 채택되어 지고 있다.
2010 All That Skate Summer 일시 : 2010. 07. 23~25 총4회 공연 | 장소 : 일산 KINTEX 특설 아이스링크 | 주최 : All That Sports
출연 : 여자 싱글 : 김연아, 곽민정, 김해진, 미셸 콴, 샤샤 코헨, 실비아 폰타나
남자 싱글 : 스테판 랑비엘, 브라이언 쥬벨, 제레미 애봇, 존 짐머만
페어 : 알리오나 사브첸코 & 로빈 졸코비, 제이미 살레 & 데이빗 펠티에
아이스댄싱 : 타니스 벨빈 & 벤자민 아고스토
특별출연 : 윤하, 조경아 외 꼬꼬마 선수들 (경아 선수 외에 이름을 몰라서 미안합니다.)
연아선수의 아이스쇼는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가봤거늘, 지난 4월 FOI는 회사에서 갑자기 일본으로 출장가라는 바람에 못갔었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ㅠ.ㅠ 내사랑 쿨릭 옵화, 돔샤에 베르너, 쥬벨까지 왔었는데, 못봤지. 나중에 영상을 보는데, 좋으면서도 막 화가 나더라. 으찌나 속이 상한지. 저 자리에 내가 있었어야해~~~~~~~~~~~~~~~라며.
그래서 이번 아이스 쇼는 작정하고 즐기기로 마음먹고 2일 3회즈를 하기로 했다. 금요일 일산 크리만 아니라면 첫 공연도 보러갔을 텐데, 거기까지는 무리여서. ㅠ.ㅠ
이번 아이스 쇼의 주제는 꿈.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은 참 좋은 것이다. 좋은 것이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연아의 자서전에 나오는 구절 중에 99도와 100도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이 아가씨가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단 1도지만, 끓어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거기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이 어린 아가씨는 일찍부터 깨달았던 거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힘써준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이 아가씨는 여전히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세계 최고라는 건 이렇게 다른건가 싶다.
꿈이라는 주제에 맞춰 오프닝 전에 콴과 연아의 인터뷰 영상이 흐르고, 2부의 오프닝은 꿈나무들이 I Have a Dream에 맞춰서 피겨 스케이팅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closing은 Dream on으로 구성되었다.
Opening - "Get the Party Started" by Pink
토요일, 일요일을 거치면서 선수들의 군무가 나름 착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와우, 左콴 右샤샤와 어깨동무하며 등장하는 연느님의 위엄이여~ 이건 뭐 상상만 하면 다 이뤄지는 연아쇼인가.
특히 막공때. 랑비는 시작부터 이미 스테판과 분리되기 시작. 선수 소개 시간에 보여준 덩실덩실부터 이미 ^^
존 짐머만 (John Zimmerman) - "I'm Gonna Crawl" by Led Zeppelin
얼빠를 양산하는 잘난 남자. 전형적인 미국산 느끼 미남 마초맨. 쥬벨 못지 않게 두꺼운 남자. 하지만, 솔직히 스케이팅 자체는 인상에 남는 게 별로 없;;
곽민정 - "Canon in D Major" by Johann Pachelbel / "Don't Rain on My Parade" soundtrack by Glee
캐논, 이번 시즌 쇼트로 윌슨이 안무를 짜주었다고 한다. 하얀 드레스에 반짝반짝 선녀가 따로 없더라. 이번 시즌 룰 개정으로 쇼트에서 스파이럴이 사라져서 어색했다. 그래도 윌슨이 고심해서 안무를 짜 넣어 허전함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민정이하고 굉장히 잘 맞는 느낌. 크리켓 클럽 호그와트설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줬다. 살짝 밋밋했던 민정이 스텝이 아주 괄목상대, 일취월장. 얼마나 더 다듬어서 가져올까 기대가 된다.
제이미 살레 & 데이빗 펠티에 (Jamie Salé & David Pelletier) - "Try" by Blue Rodeo / "Scream" by Michael Jackson
솔트 레이크 동계 올림픽 페어 금메달은 스캔들로 잡음이 있었고, 러시아조는 피해자, 캐나다조는 그 스캔들의 수혜자로 팬들 사이에선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바로 그 페어조. 그래서 선입견도 있었고, 솔직히 토요일 공연 때는 Try 프로그램을 봐도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랬는데, 회를 거듭할 수록 프램그램의 완성도가 올라가더니, 막공에서는 정말 멋진 공연을 선보였다.
이 페어조의 진가는 2부 scream에서 드러났는데, 와우, 기술적으로 현역에 전혀 밀리는 게 없을 뿐 더러, 안무가 정말 독창적이었다. 기립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막공엔 전원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공연 전후 가장 인상이 달라진 선수들이다.
실비아 폰타나 (Silvia Fontana) - "Boom Boom Pow" by Black Eyed Peas
이 언냐, 몸매부터 어찌나 핫 하신지. ^^; 제대로 리듬타고 춤을 춰주셔서. 하지만, 스케이팅 자체가 거칠어서 보는 맛은 좀 덜한. 하지만, 열정을 불사르는 춤 솜씨에는 감탄. 2부에선 부군인 존 짐머만과 Prince의 Purple Rain에 맞춰 페어 연기를 선보였다. 부부라고 말야, 아주 끈끈한 애정을 과시해서 흥,칫,핏
제레미 애봇 (Jeremy Abbott) - "At This Moment" by Michael Bublé / "Viejos Aires" by Nuevo Tango Ensamble
제레미는 토털 패키지에 가까운 선수로 스케이팅 스킬도 좋고, 점프도 깔끔, 스핀도 잘해, 스텝이야 뭐 스케이트에 버터 발랐나 싶은 선수지만, 이상하게 큰 대회랑은 인연이 없어 아쉬운 선수. 1부 갈라는 그야말로 제레미에게 꼭맞는 옷과 같은 갈라였고, 2부 프로그램은 올 시즌 쇼트인 탱고. 탱고는 아이스 쇼에서 한 게 두번째 런쓰루라고 할 정도니까, 아직 완성품이 아니라 믿고. 좀더 탱고 삘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탱고는 부드럽기만 해서는 재미 없어요. 맺고 끊는, 완급조절이 필요해보인다.
타니스 벨빈 & 벤자민 아고스토 (Tanith Belbin & Benjamin Agosto) - "If it Kills Me" by Jason Mraz / "Bleeding Love" by Leona Lewis
벨빈은 정말 헐리우드 미녀가 울고갈 미인이었다. 화면으로 봐도 이쁜데, 실물로 보니 더 예쁘더라. 아고스토에게 미안한데, 정말 한순간도 벨빈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1부의 If it kills me는 소꿉친구로 시작해서 하이틴을 거쳐 어른의 로맨스로 발전. 이것이 바로 소꿉친구 첫사랑 루트의 정석이라는 걸 보여줬다. 재미있었던 건 벨빈 언니의 3단 변신. 그리고 아고스토는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싶게 참으로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1부의 귀여운 커플이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을 2부에서 보여주는 듯한 Bleeding love. 벨빈은 얼굴만 예쁘다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번에 보니 역시 아댄팀의 스케이팅 스킬은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브라이언 쥬벨 (Brian Joubert) - "Love is All" by Roger Glover / "Aerodynamic" by Daft Punk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쥬벨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왠지 나에게 쥬벨은 점퍼로 기억되었고, 내 취향은 패트릭 챈 처럼 트랜지션이 좋은 쪽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보니, 스케일이 큰 점프의 박력이란. 그리고 그 두꺼운 몸을 하고 코믹한 프로그램으로 큰 웃음 선사. 막공에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 남방을 결국엔 벗어 선물로 투척, 재미있었다. 한국 팬들의 기 받아서 다음 시즌 좋은 성적 기대해본다.
샤샤 코헨 (Sasha Cohen) - "Hallelujah" by Jeff Buckley / "Mein Herr" soundtrack from Cabaret by Liza Minnelli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프로그램은 말라게냐. 앙큼 샤샤라는 별명만큼 잘 어울리는 별명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샤샤는 어딘가 깍쟁이 이미지가 있었는데, 뭐 그 이미지는 지금도 유효하지만, 이번에 보니 왜 미국에서 샤샤 복귀를 그렇게 바랐는지 알겠더라. 현 미국 여싱은 샤샤의 매력에 반도 못 미친다. 샤샤는 기계체조 선수 출신답게 유연성도 좋고, 동작 하나하나가 예뻤다. 1부의 할렐루야에서 보여준 팔동작이 얼마나 우아하고 예쁘던지. 2부 마인 헤어에서 보여준 뮤지컬 배우 같은 춤솜씨도 일품이었다.
알리오나 사브첸코 & 로빈 졸코비 (Aliona Savchenko & Robin Szolkowy) - "Barbie Girl" by Aqua / "Gee" by 소녀시대
FOI에서 영장 갈라로 처음 접했던 페어조. 이후 다른 페어조에서는 볼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선보여서 나는 이 페어조를 참 좋아한다. 남녀간의 케미스트리가 아닌, 동료애라고 할까. 파트너쉽이라고 할까. 바비걸이나 Gee나 이 팀에서는 평소 보기 힘든 발랄한 갈라라 귀엽고 흥겨웠지만, 두 프로그램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약간 아쉽기도. 그래도 알리오나의 깜찍발랄 귀여운 모습을 실컷 봐서 좋았다.
스테판 랑비엘 (Stéphane Lambiel) - "Let the Good Times Roll" by Ray Charles / "William Tell Overture" by Gioachino Rossini
랑비는....이제 뭐 더 말할 게 없다. 그냥 최고다. 어찌나 관중과 찰떡궁합인지. ^^ 한국에만 오면 관중 환호에 힘 받아서 올림픽 프로그램을 클린해내고. 1부의 스윙재즈도 좋았지만, 역시 2부의 윌리엄 텔 서곡이 압도적이었다. 아이스 쇼에서 보기 드문 쿼드 점프를 아주 깔끔하게 성공시키고. 어째서 그분이 이제야 오셨을까. ^^;; 더블 악셀 - 쿼드 토 - 트리플 플립에 랑비 전매특허인 드릴 스핀, 삘 충만 스텝까지. 멋진 퍼포먼스였고, 그 퍼포먼스의 완성은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와 쩌는 박자감으로 함께한 박수, 그리고 스탠딩 오베이션으로 마무리. 아주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미셸 콴 (Michelle Kwan) - "Primitive" by Annie Lennox / "No One" by Alicia Keys
연기에서 인품이 우러나온다. 극 연기건, 춤이건, 스포츠이건 표현자인 이상, 자신의 성격, 인품은 고대로 드러날 수 밖에없다. 그리고 드러내지 못한다면 표현자로서는 부적합것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콴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묵직함, 안정감, 당당함, 짙은 호소력은 그대로 콴의 인품이라 생각된다. 그녀의 빙판 장악력은 조금 심심한 프로그램 안에서도 빛을 발한다. 안무가 좀 부족하고, 스킬이 예전만 못하다고한들 그게 뭐 어때서. 여전히 콴은 콴이다. 빙판에 날이 박혀도 기어이 랜딩을 해내는 걸 보면서, 콴의 안정감이란...하고 감탄했다.
1부의 클로징은 연아와 콴의 듀엣 공연. Mariah Carey의 Hero. 연아의 우상이었던 콴과 콴의 소개대로 자라나는 어린 소녀들의 훌륭한 롤 모델인 연아. 이 두 영웅의 합동 공연을 두눈으로 보게되다니. 참으로 영광스러워서. ㅠ.ㅠ
김연아 - "Méditation" from Thaïs by Jules Massenet / "Bulletproof" by La Roux
아, 드디어 우리 연아 얘기.
말해 무엇하겠는가만, 연아의 타이스를 맨눈으로 봤다. 타이스는 역시 올림픽 갈라 의상이 진리. 이상봉 디자이너의 드레스도 아름답지만, 명상곡에는 비둘기색 드레스가 딱이다. 짙은 회색으로 그라데이션된 치마자락이 얼마나 아름답게 나부끼던지.
그 단아하고, 우아한 몸짓, 담백하면서도 청아한 팔동작. 마치 대나무 숲속을 거니는 것과 같은 청량감. 그 대숲에서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참선을 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맞다. 정화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막공에서 보여준 지고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그저 눙물이.......ㅠ.ㅠ
2부에서 새로 선보인 Bulletproof는 명상곡과 강렬하게 대비가 되는 일렉트로닉팝. 팔색조인 연아니까 가능한 이 연기의 갭. 도대체 끝을 모르는 연아의 재능. 이건 뭐 화수분도 아니고.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 끝을 모르는 광맥이라고 해야하나. 진짜 연아가 계속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남아준다는 사실이 피겨계에 얼마나 큰 다행인지 사람들은 알까 모르겠다. 앞으로 보여줄 신세계는 또 얼마나 환상적일까. 지금도 충분히 현란해서 눈이 부시다.
Finale는 Aerosmith의 "Dream On"을 가수 윤하가 불렀다. 윤하 노래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잘하더라. 피날레의 분위기는 뭐 이미 광란의 클럽.^^ 사진 한 장으로 대체한다.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 그것은 때로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고, 뜨거운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이번 아이스쇼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우리 유망주 선수들도 많이 느꼈으면 한다.
일본어로 놀자 만사이의 야야코시야~풀베개~(にほんごであそぼ 萬斎のややこしや~草枕~@2008) 중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로만 알고있었는데, 좀더 알고보니, 이 분도 참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사신 분이다. (위키피디아 참조 - 미야자와 겐지, 이것보다는 ebs의 지식채널 쪽을 추천)
결핵으로 37세에 요절하고, 역시나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하고, 후대에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에도 지지 않고」는 작가 사후 수첩에 적혀있던 것이 발표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이 시는 병상에서 쓴 시라는데, 소박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꿔온 시인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득 전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선진국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아느냐고. 그때 예로 들어준 것은 Sesame street 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음악가, 엔지니어, 무대 연출가, 각본가 등등 당대 최고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간다던가.
이 "일본어로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니코동에 가끔 '일본어로 놀자' 클립이 올라가면 "贅沢(사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소리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일본어의 감각을 익히게 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어른이 함께 봐도 재미있다고 할까.
이번 편은 시 낭송이지만, 어떤 때는 교겐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만 보여준다던가 - 우리로 치면 판소리 명창이 어린이 프로에 나와서 흥보가의 박타령 한 소절, 어느 날은 춘향가의 사랑가 한 소절 불러주는 식이다 - 진짜 온 몸으로 유명한 시구를 표현하기도 한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을 어렸을 때 깨버리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하고
욕심 없이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고
하루에 현미 네 되와
된장국과 약간의 채소를 먹고
어떤 경우에도
내 계산만 하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않고
들녘에 소나무 숲 그늘
작은 초가집에 살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 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북쪽에 싸우거나 송사가 있으면
사소한 일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지내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서글픈 피아노 선율에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어슴프레 조명이 켜지면, 라마승과도 같은 붉은 복장의 코러스가 절규에 휩싸인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몸을 내던질 만큼의 고통과 탄식, 오체투지의 박력에 일순 테베의 비참한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로소 무대에 시선이 가는데, 벽면은 녹슬고 균열이 간 거울, 무대엔 마치 솟대를 연상시키는 기둥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그 기둥엔 룽따(風馬,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티벳, 네팔 등지의 오색 기도천)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어 코러스와 함께 어딘지 티벳을 떠올리게 한다.
역병으로 황폐해진 테베의 슬픔을 쏟아내는 코러스의 절규에 드디어 정면의 문이 열리며 오이디푸스왕이 등장한다. 극적인 효과를 노린 핀 라이트에 하얀 의상이 콘트라스트되며, 어둡고 절망스러운 분위기가 일순 화사하게 피어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젊고 현명한 자랑스러운 왕. 첫 등장에서부터 어찌나 오만하고 위엄에 넘치는 왕님이시던지.
만사이 상, 36세에 연기하신 이 오이디푸스 왕은 초반 감정의 기복이 널뛰듯 한 불안정한 "청년왕"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테베에 내린 재앙의 원인이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 때문이라고 신탁이 내리자, 세상에 자기만큼 정당한 자는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살인자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그 살인자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겠다, 자신은 정의롭다고 과시하며,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청해 사건의 진실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 테레시아스가 전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오히려 이것이 크레온과 테레시아스의 정치적 음모가 아닌가 억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에게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테레시아스는 "지금은 올바로 보는 그 눈도 그 때가 되면 어둠밖에 비추지 않을 것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한편 왕위 찬탈을 노린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크레온과의 험악한 분위기는 이오카스테의 등장으로 수습이 된다. 남자들만 득실대는 무대위에 단 한송이 백합처럼 우아하고 늠름하고 위엄이 넘치는 왕비님이다. 과연 전 다카라즈카 설조의 남자역 탑스타였던 아사미 레이 상,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단 한명의 여배우로서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고, 오히려 모두가 의지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강했다. 50년생인 아사미 상은 만사이 상과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차가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서있을 때는 어느 장면이든 그림이 되고, 하여간 이분도 나이를 잊으신 듯. 가끔은 부부라기보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인 장면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건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나 싶고.
퍼즐 조각이 하나씩 채워져 가며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마치 차례차례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는 대전 게임과 같다. 조금 더 큰 조각을 가지고 있는 코린토스의 사자, 라이오스의 양치기가 차례차례 등장하며 마침내 모든 사건의 진실이 명확해진다. 마지막 패를 미리 알아버린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오이디푸스를 말리지만,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가여운 사람인가."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버린다.
피갑칠하고 나타난 만사이 상의 오이디푸스에는 진짜 깜짝 놀랐다. 선혈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앞에 코로스는 무대에 룽따를 펼치기 시작한다. 일순 무대는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 정상과도 같이 보인다. 그리고 송곳처럼 박혀오는 "痛い────" 자신의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저지른 죄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점점 작아져가는 왕. 그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하리라는 예언을 벗어나고자 버둥거린 결과가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만 증명한 꼴이 되었으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예언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인정한다. 진리를 찾고자 열심이고, 결벽한 자존심을 가진 그가 나락에 떨어진 그제야 비로소 전에 없던 신성함을 두르기 시작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돌아온 크레온은 오이디푸스를 동정하여 그의 두 딸을 데려다준다. 여기에서 보여준 두 딸 - 이면서 동생이기도 한 - 에 대한 절절한 애정은 살짝 만사이상의 아버지로서의 모습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끝까지 왕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스스로 추방당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을 뒤로 코러스의 '인간 죽기 직전까지 교만하지 말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출부터 배우들의 연기,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성찬을 맛본 것 같은 연극 한 편이었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서 객석을 무대로 끌어들인 연출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음악, 특히 의상 담당하신 분은 찬양하고 싶어진다. 이 처절하게 슬픈 극을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커튼콜마저 연극의 연속인 듯 아름답고 우아한 인사가 이어졌다. 특히 만사이 상이 인터뷰에서 '커튼콜에서는 아사미 상에게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는 아사미 레이 상의 인사하는 모습은 한 떨기 백합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품위가 있었다. 그리고 피갑칠을 싹 지우고, 하얀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등장한 만사이 상은 커튼콜에서조차 오이디푸스 왕을 연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숙였던 몸을 들어올리고 객석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라니.
새삼스럽지만, 하얀옷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
개인적인 별점 :
부녀자로서연출에 있어서 한가지 신경쓰였던 점 중에 하나.
크레온이 오이디푸스의 억측때문에 누명을 쓰게 됐을 때, 어쩐지 되게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더니만, 오이디푸스가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냐 싶었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