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My Life

일   시 : 2011. 10. 26 ~ 2012. 04. 29
장   소 : 아트원씨어터 1관
관극일 : 2012. 02. 14 (화) 20:00
연   출 : 신춘수, 음악감독 : 변희석,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앨빈 켈비 - 이석준, 토마스 위버 - 고영빈
줄거리 :
두 주인공 앨빈과 토마스. 그들은 7살 초등학생 시절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앨빈은 여섯 살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서점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서 일까, 앨빈은 할로윈만 되면 항상 그의 어머니가 좋아하던 영화 <It`s a wonderful life(멋진 인생)>에 나오는 천사 클레란스 복장을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엄마 유령의 모습으로 분장했다고 어린 시절에야 귀여웠지만, 15살이 되도록 이런 모습으로 할로윈 파티에 참석하는 앨빈이 토마스는 참 못마땅하다.
그러던 어느날 토마스와 앨빈은 나중에 둘 중 누군가가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면 남아있는 한 명이 송덕문을 써주기로 약속한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대학 입학을 두고 있는 토마스. 아버지의 서점을 물려받은 앨빈은 고향을 떠날 생각이 없다. 대학원서를 쓰다 글문이 막혀버린 토마스는 앨빈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토마스에게 영감을 불어주는 앨빈. 앨빈의 조언에 마법처럼 글은 써진다.
토마스는 점점 세상에 물들어간다. 어린 티를 벗고 약혼한 애인도 있다. 하지만 앨빈은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그리고 사차원적인 행동도 모두 어린 시절과 그대로이다. 토마스는 이런 앨빈이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토마스는 많은 책들을 냈다. 그리고 세상에서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한다. 그가 쓴 모든 글의 영감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앨빈에게서부터 얻은 것이라는 사실.
지금 토마스는 먼저 떠난 친구 앨빈을 위한 송덕문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의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 앨빈은 평소 그가 가장 좋아하던 영화 <It`s a wonderful life(멋진 인생)>의 주인공 조지 베일리처럼 다리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토마스는 깨닫는다. 친구 앨빈의 소중함을 토마스가 써 내려가던 앨빈의 송덕문은 그가 생전에 그렇게 좋아하던 하얀 눈처럼 공중에 날린다. [출처 > 플레이DB]

- 이렇게 괜찮은 작품을 보고도 이번 글은 리뷰가 아닌 잡상임 ㅠㅠ
모든 게 계획대로만 진행됐다면 좋았을 걸, 괜시리 엘리 자체 첫공 날짜를 앞당기는 바람에 머릿속에는 '시간이 흘러가면 진실도 거짓도, 꿈도 현실도 모두 그저 흔한 싸구려~ Kitsch!' 가 내도록 둥둥 떠나니는 상태인데, 이 극은 시간이 흘러가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극이었으니 ㅠㅠ 아, 그렇다고 극에 집중을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좋은 내용이고,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코앞에서 볼 수 있어서 극을 볼 땐 정말 몰입해서 봤고, 내 자체 첫공임에도 눈물나고 감동받아서, 커튼콜 때는 자연스럽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고 여운을 음미할 틈도 없이 머리 한 켠에서 잠자던 루케니가 다시 일어나 방방 뛰어놀고 있어 OTL

-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수천개야!
이렇게 공감가는 대사가 있나그래. 다양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네 머릿속에 레시피만 수천개야(to 모 판다양)', '네 블로그에 비공개글만 수천개야~ (to me;;)'
이 대사가 몇 번 피드백 처럼 등장하는데, 한껏 들뜬 목소리로 이 대사를 할 때의 앨빈과 거기에 이어 '아는 걸 써, 톰'하는 앨빈 사이의 간극이 괜시리 눈물나더라. 다정하고 다정하고 다정한, 세상에서 토마스에게 가장 다정한 앨빈. 앨빈은 마치 작은 날개를 단 천사 같다. (닭살 돋아도 할 수 없;;) 어떤 느낌이냐면 날개가 작아서 멀리, 높이 날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땅을 밟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 살짝 지면 위를 떠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마음 먹으면 지면에 내려올 수 있지만, 앨빈을 땅에 발 붙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건 톰 뿐. 하긴 앨빈의 날개가 좀 더 크고 튼튼했더라면 클라렌스가 나타나길 바라지도 않았겠지.

- 그 모험들에 숨을 불어넣어준 한 작가 덕분에 76년은 75년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앨빈으로부터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은 톰이 부르는 1876년. 이 노래를 듣는데 왜이리 울컥울컥 하던지. 그건 아마도 이 노래를 부르는 고영빈 씨가 같이 울컥울컥하는 감정을 실어서 불러줘서 그랬던 것 같다.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며 책을 잡은 두 손을 가슴앞에 모으고 한 소절 한 소절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부르는 그 노래가 마치 솜사탕이 젖어드는 것처럼, 그렇게 내 마음을 적셨다. 까닭도 없이 목은 메이고, 눈물은 글썽글썽. 이 날 들은 노래 중에 앨빈의 '이게 다야'와 함께 가장 마음을 울리는 곡이었다.
토마스는 앨빈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항상 변함없는 앨빈을 뒤에 두고, 혼자 어른이 되버렸다. 어떻게 토마스가 앨빈한테 그럴 수 있냐는 마음이 반, 그런 토마스를 이해하는 마음이 반. 보고나서 아이다호가 잠깐 떠올랐지만, 그 둘과 이 둘은 서로 많이 다르니까.

- 이석준 씨와 고영빈 씨 모두 공연으로는 처음 만났는데, 참 좋았다. 이석준 씨의 앨빈도 고영빈 씨의 토마스도. 두 분 다 무대 위에서 참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데, 아마 공연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많이 배역에 빠져들고 계신 것이리라. 이석준 씨가 장난기 많은 앨빈일 때와 차분할 때의 목소리가 분위기가 참 다르던데, 그래도 기본적으로 따뜻한 목소리라 좋았다면, 고영빈 씨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럽고 감미롭운 목소리라 또 어찌나 듣기 좋던지. 어른이 된 톰이 이기적이고 못된 놈 처럼 안 보인건 고영빈 씨의 그 목소리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더라. 메마른 감성에 촉촉한 단비와 같은 작품이다. 치유계 작품이라더니 과연 명불허전.

- 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왜 이 작품 제목이 그냥 My life가 아니고 "The Story" of my life 인지 알겠더라. 누구나 살아온 인생이 드라마가 아닌 사람이 없다.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그게 한 권의 책이 되어서 하느님의 도서관 한 켠을 장식하고 있겠지. (feat. 시인 존 돈)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1 (토)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김효준
줄거리 :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가 죽은자들을 깨우며 과거로 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를 구해준 죽음의 사신 토드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엘리자벳은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로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토드는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함께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가자고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남편과의 갈등,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토드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엘리자벳을 사랑한 토드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칼을 건네게 되는데... [출처 > 플레이DB]

- 계획대로라면 내 자체 첫공은 다음주여야 했다. 그러나 개막 후 시시각각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면서 조급증이 도져서 전날 급 예매해서 달려간 공연. 그러니 좋은 자리는 애초에 포기하고, 그래도 무대 전체적으로 한 번 봐두면 좋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는데, 그래도 VIP석이라고 뒷 줄인데도 생각보다 시야 좋고, 음향도 조로에 비하면야 썩 나아져서 만족. (기획사의 횡포에 얼마나 찌들었는지, 생각보다 괜찮아서 만족하다니; OTL)
음향 얘기를 조금 더하자면 조로는 중앙 4열이었는데도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었는데, 엘리자벳은 중앙 구역도 아닌 훨씬 뒷 줄이었는데도 앙상블 떼창에서 뭉개지는 거 말곤 그럭저럭 전달되더라. 다만, 소리가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건 여전해서 그 부분은 공연장 자체의 문제인가 싶었다. 하여간 답답했던 조로 때의 음향에 비하면 엘리자벳은 그보단 훨씬 선명해진 편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지만, 소문대로 볼거리 풍성하고, 저 제목란 꽉 채우는 "럭셔리~"한 배우들을 한 무대위에 세울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는 극이었다. 뭐 EMK 특유의 허세 쩌는 오그라듬과 연출의 밋밋함은 예상 가능한 범위.

- 어차피 배우 표정까지 보이는 자리가 아니어서 전체적인 무대나 연출, 음악에 더 치중해서 보기는 했는데, 일단 무대 구성 나쁘지 않았다. 아니, 몇 장면은 꽤 훌륭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역동성을 부여한 것도 괜찮았지만, 과유불급인 장면도 좀 보이고. 프롤로그에서 망자들 등장할 때, 카페씬에서 탁자들 등장할 땐 정말 멋지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결혼식 장면에서 엘리자벳과 요제프가 왈츠를 추는 장면. 마치 영화에서 보면 카메라가 주인공에 포커스 맞춰서 배경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은 효과를 무대에서 재현해냈는데, 컨베이어 벨트에 거대한 기둥을 얹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하고, 뒷 배경 영상도 기둥을 따라 배경이 돌아가도록 해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그들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보통은 배경은 고정되어있고, 배우들만 움직이는 무대에 익숙해있는데, 이렇게 배우와 배경이 함께 동적으로 움직이니, 위태로움, 불안감 증폭. 게다가 이를 떠받쳐주는 건 미묘하게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화성으로 진행되는 왈츠 음악도 한 몫하고.

- 이왕 음악 얘기 나왔으니. 엘리자벳 음악을 듣다보면 이런 의도적인 불협화음(?)이 간간히 들려오는데, 이게 참 절묘하게 세기말적인 암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극 전반에 흐르는 조롱, 냉소와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는 거. 진짜 르베이의 음악적 센스는 천재적임.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루케니가 황실을 소개하는 장면 첫 등장에 웅장하게 팡파레가 울리는데, 이게 메인으로 위쪽에 얹어진 트럼펫은 웅장하고, 행진곡스러운 그대로인데, 거기에 베이스로 깔리는 다른 관악기의 소리는 어쩐지 서커스나 광대들의 불협화음처럼 살짝 우스꽝스럽게 들린다는 거다. 난 처음에 이게 오케스트라 미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곡이 황실 테마다보니 종종 재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똑같이 들리는 걸로 봐선, 이건 이렇게 의도된 곡인 것 같다는 거.
또 이런 식의 불협화음이 배경음악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등장 인물간의 갈등을 나타낼 때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엘리자벳과 소피의 대결 구도에서 소피가 묵직하고, 클래식한 선율로 찍어누르는 음성이라면, 거기에 대항하는 엘리자벳은 조급한 리듬에 소피와 벗어난 화성이라 들떠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둘의 기싸움이 시작되면 소피가 엘리자벳에 말려든 것처럼 소피의 리듬도 빨라지다가, 소피가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면 '황후는 빛나야해'라고 느리고 묵직한 선율로 돌아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이 클래식과 모던함을 오가며 세련되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는 현악은 기본 정도로만 구색을 갖추고, 관악기가 메인인 듯 한데, 조로 때부터 김문정 음감의 취향인가 싶기도 하고. 죽음이 등장할 때 그 등장을 예고하는 부분도 호른으로 묵직하게 분위기 잡아주는 건 아주 마음에 든다. 로맨틱한 분위기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으로 잡고, 서커스 풍의 쿵짝쿵짝은 트럼본으로, 그리고 뽕빨나는 색소폰보다 쭉 뻗어주는 트럼펫을 메인으로 써줘서 그게 균형을 잡았다. 그런데, 가끔 트럼펫 하이톤에서 삑 나는 건 좀 개선해줬으면 하네.
아, 그리고 프롤로그나 침몰하는 배 씬에서 날카롭고 영롱한 신디사이져 소리를 참 좋아라 하는데, 소리가 좀 묻혀서 그것도 안타까움. 이게 블퀘 음향탓인지는 모르겠지만.

- 넘버 얘기로 넘어가면 르베이 씨의 곡들은 저음에 고음까지 음역대가 광대한 곡들이 많아서 그걸 소화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좀 가혹한 곡들이 많다. 물론 제대로 소화해내면 그 파괴력이 무시무시하지만.
엘리자벳의 메인 곡이라 할 수 있는 '나는 나만의 것'만 해도 그렇고, 루케니 넘버들은 길이에 상관없이 난이도에 있어서 거의 최고 난이도라 할 수 있겠다. 죽음의 넘버들은 음역대가 그야말로 광활한 '마지막 춤'같은 경우에 깊은 저음에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고음까지 소화하면서 특유의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얹어줘야 하는 곡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역들 노래는 쉽냐고? 그럴리가. 앙상블의 힘이 가장 중요한 극 중 하나인데. 하여간 이렇게 어려운 곡들인데도 배우들이 대부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아직 노래 로딩이 좀 필요한 건 류정한 씨의 죽음과 몇몇 남 앙상블 정도. 류정한 씨의 경우는 노래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뭐랄까, 지난번 햄릿에서 윤영석 씨가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노래하려다보니 거기에서 오는 어색함이 더 큰 것 같달까. 차차 좋아지리라 보고, 여 앙상블은 소리의 합이 깨진다는 느낌 거의 안드는 데 반해서 남 앙상블들은 소리가 자꾸 흩어지고 깨지는데, 특히 몇 사람은 소리 튀는 게 너무 적나라하게 들리더라. 음감님 이것도 좀 신경써주길.

- 배역별로 보면 김선영 씨의 엘리자벳은 어린 씨씨 역에서 아무런 위화감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 서커스 돋는 의상은 에러였지만, 내가 아는 선영 씨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이 아니라, 정말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내시더라. 가볍고 통통튀는 음색으로 아빠처럼 살고싶다고 어리광부리는 어린 씨씨 그 자체였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미 씨씨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나는 나만의 것' 부르실 땐 첫 소절 '난 싫어~' 나올 때부터 온 몸에 소름이 오도도 돋으면서 울컥울컥, 클라이막스에서는 기어이 눈물이 터져나오더라. 자리가 멀어서 표정 같은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분위기와 노래에 실린 감성만으로 충분히 감정 전달해주는 여왕님을 일단 찬양. 그런데, 딱 이 이후부터는 엘리자벳에 이입하기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조금 아쉬웠던 건 1막 피날레 부분. 연출상으로도 아쉬운 부분인데,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걸어나와서 '나는 나만의 것' Rep.을 부르는데 좀 더 위엄있게 불러주셨으면 하는 거. 뒤에 요제프, 죽음과 3중창 할 때, 좌팬텀(윤영석), 우라울(류정한)에게 밀리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어쨌든 엘리가 주인공이니까 임팩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그래도 연출이 그 모양이라 하이라이트 치고 너무 밋밋한 감이 있는데.

- 류정한 씨는 사실 이번 공연이 첫 만남. 죽음은 내가 평소 이분에 대해 품고있던 막연한 이미지와 잘 맞는 배역이었다. 그 자체로 더하고 뺄 것 없는 '완전함'이라고 할까. 죽음을 선사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아서, 죽음을 선사하는게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고, 그게 그저 순리대로, 때가 되었으니 그렇게 한다는 것 같은 그런 죽음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 씨씨라는 존재가 새롭게 다가왔을 뿐. 자신은 인간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데, 씨씨는 그를 연인처럼 대하는 거. 나한테 이러는 건 네가 처음이야 인가...? ㅋㅋ

하여간 류토트는 프롤로그에서 첫 등장할 때 벌써 그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반음 사이로 미묘한 음정 사이를 흘러가듯 노래하고 있더라. 그런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고음에서 진성으로 지를 때마다 무리하시는구나 싶어서;; 목소리톤은 바리톤에 더 잘 어울리는 음색이었는데, 그게 오보에 소리와 정말 잘 어울려서 듣기 좋더라.
절대자로서의 위엄,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이라던가 이런 건 정말 충~분~히 객석에 전달돼서,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걸 기대하고 있다.

- 엘리자벳의 "광기" 담당 루케니. 아니, 사실은 루케니는 엘리자벳의 살해범이자 극의 해설자지만, 엘리자벳의 우울과 세기말적인 분위기는 죽음이 담당하고 있다면, 엘리자벳이 품고있는 광기는 루케니를 통해서 더 잘 표현되는 것 같은 느낌. 물론 상당한 비아냥과 조롱을 바닥에 깔고. 그런데 그 조롱은 엘리자벳만을 향한게 아니라 전방위적이라는 거. 심지어 관객에게도 그 조롱을 향한다. 니들도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가쉽과 키치(상징직인 의미로)에 열광하는 거 뿐 아냐? 뭐 이런 식.
아, 일단 은케니 찬양 좀. 이날 공연이 프리뷰를 포함하면 두번째 공연이고, 공식적으로는 은태 첫공이었다. 그런데, 첫공부터 이렇게 로딩따위 필요없음! 이러고 나타나면 어쩌라는 거냐. 전작의 잔영을 싹 지우고 세상을 비웃고 냉소하는 한 마리(;) 아나키스트가 되어 나타났다. 노래야 뭐 잘 하는 거 아는 배우라 남들이 다 오오~ 해도 나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진짜 햄릿 첫공 때도 연기야 앞으로 좋아지겠지 하면서도 노래 로딩은 완료라고 했던 그 때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
루케니 넘버가 고난이도라는 건 일단 리듬이 복잡하고, 선율도 순식간에 고저를 넘나드는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이 많은데, 그걸 너무 쉽게 쉽게 부르더라. (뭐, 본인은 굉장히 연습 많이하고, 부르면서 긴장도 타고 할지 모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 그렇게 들리니까.) 게다가 빠르게 다다다다 가사를 우겨넣어서 불러야 하는 부분도 발음이 하나도 뭉개지지 않고 또렷이 들려서 연습 진짜 많이 했구나 했다.
내가 노래만큼 또 감탄했던 건 대사를 할 때. 대사가 노래처럼 들리더라. 이게 뭔소리냐면, 대사를 할 때도 배경 음악이 흐르는데, 거기에 대사톤을 맞추더라. 대사는 대산데, 리듬감도 살려주고, 톤을 살려주니까 이게 전달력이 노래급. 난 이것도 악보가 있는 거냐 했다니까. 어찌나 찰지던지.
모촤, 피맛골, 햄릿을 거쳐서 목소리에 파워가 붙어서 이제는 앙상블을 든든하게 떠받쳐주는가 하면, 너끈하게 끌어올린 하이음으로 이끌기도 하고, 2막 오픈이 루케니 솔로 넘버인데, 혼자서 대극장 관객들과 주거니 받거니 아주 제대로 쥐락펴락, 노래 하나로 관객을 휘어잡는 스킬은 진짜 갑이더라. 루케니가 극의 수미쌍관을 장식하는 역이라 참 중요한 역이고, 여기 저기서 깨알같이 등장하는 씬도 많아서, 확실히 이 역할을 통해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구나 싶었다. 앞으로도 석 달은 더 남은 공연기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더 좋아질 것인지 기대기대. 햄릿 때 주마다 업그레이드 되어서 나타난 거 기억하고 있다. 너무 부담주는 건가? ㅋㅋㅋ

- 황제 프란츠 요제프 역에 윤영석 씨는 햄릿 초반에 참 나와 많이도 싸우셨던 걸 생각하면, 요제프 역은 이분과 참 잘 맞는 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인한 어머니 뜻에 휘둘리는 유약한 황제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고지식함, 한 여자에게 순정을 다 바치는 역에 정말 잘 어울리셨다.
소피 대공비 역의 이태원 씨도 명성황후에서 보여주셨던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지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셨고. 엄격해~ 냉정해~ 할 때 목소리는 정말 질감이 느껴지는 묵직함을 느끼게 해주셨다. 아, 태원님이 한껏 무게 잡고 불러주시는 '황후는 빛나야 해' 할 때 앙상블들이 '맞아요' 하고 추임새 넣는 거 좀 들 방정맞았으면 좋겠다.
어린 루돌프 효준이는 딱 기대한 만큼이었고, 청년 루돌프 동석이도 뭐 기대한 그만큼. 워낙 노래를 잘하는 배우라는 기대치가 있어서 그런가 박자 밀리는 거, 음 삐끗하는게 더 잘들려서 곤란; 그래도 워낙 음색 자체가 좋고, 성량 파워풀하고 또 그런거 다 휘발시킬만큼 비주얼이 끝내주지만, 내 자리에선 얼굴도 잘 안보였지;; '그림자는 길어지고'를 참 많이 기대했는데, 노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나 동석이가 류정한 씨에 맞춘다고 무릎 굽히는 게 너무 적나라하게 들어와서 집중을 못했다. OTL 제대로 귀가 호강하는 순간이었는데, 속으로는 ㅋㅋㅋㅋㅋ 상태여서 ㅠㅠ

- 엘리자벳이 연습기간이 다른 공연보다 길었다고 알고있다. 은태도 햄릿 공연 중에 엘리 연습에 합류했다고 하니 아마도 거의 석달에 가까운 연습 기간이었을 거다. 주요 배역마다 더블에 트리플을 줄줄이 엮어놔서 연습 기간이 더 필요했던 것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여간 그 연습 기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4번째 공연인데도 앙상블 합은 끝내주더라. 특히 밀크에서 아주 빛을 발하던데, 몇몇 튀는 남앙상블들도 로딩되면 더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3분마다 무대가 바뀐다는 광고 문구가 과장이 아니던데, 무대 크루들 안전사고 나지 않게 긴장하길 바란다.

- 처음엔 디클래스라는 말도 안되는 좌석 등급부터, 공연장이 블루스퀘어라는 것도 한 몫해서 땡기지 않았던 게, 공연 보고 났더니 역시 장사하는 법은 참 제대로 아는 EMK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졌다 싶다. 이런, 젠장~(feat. 은케니)
서울노트

일   시 : 2012. 02. 02 ~ 2012. 02. 12
장   소 : 대학로 정보소극장
관극일 : 2012. 02 .07 (화) 20:00
연   출 : 성기웅, 원작 : 히라타 오리자 - 도쿄노트
제   작 : 박광정을 기억하는 사람들
캐스트 : 변호사 - 권해효, 상속녀 - 남승혜, 상속녀의 친구 - 마두영, 장녀 - 임유영, 차남의 처 - 최선영, 차녀 - 박지아, 장남 - 민복기, 차남 - 신덕호, 큐레이터1 - 한인수, 큐레이터2 - 정해균, 여자1 - 이지현, 남자 1 - 문경태, 여자2 - 권민영, 남자2 - 한승도, 남자3 - 오용, 여대생1 - 송유현, 여대생2 - 임유나
줄거리 :
가상의 제3차 대전으로 인해 유럽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귀중한 미술품들이 안전한 우리나라의 미술관으로 피난을 오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서울의 작은 미술관에는 베르메르를 비롯한 17세기의 유명한 화가들의 진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미술관의 로비에서 1년 만에 만나는 가족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이유와 동기로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과 미술관 직원들이 만나고 혹은 지나쳐가면서 수많은 대화들이 오간다.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는 저마다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새겨져 있는데…….

- 옛날 생각이 났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한때 시청률이 50%네 뭐네 참 인기 좋은 드라마였고, 주인공으로 나온 신애라, 차인표 씨는 이 드라마를 인연으로 결혼까지 했다. 남들은 뭐 여기까지만 기억할 드라마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좀 남다르게 기억되는 게, 이 드라마에서 故박광정 씨와 권해효 씨가 조연으로 첫 TV 출연을 했다는 거다. 이때 대학로 연극을 그래도 좀 보러다녔던 터라, 난 이게 살짝 충격적이었는데, 연극에서 주연으로만 나오시던 분들이 TV 드라마에서 조연으로, 그것도 웃기는 감초 콤비로 등장하는 게 뭔가 마음이 상하더라. 사실 지금도, 무대 배우가 방송이나 영화 쪽에서 조연이나 비중없는 역으로 소모되는 걸 볼 때마다 속상한 건 여전하다.
하여간 변호사로 등장하는 권해효 씨를 보는 순간 그 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 히라타 오리자의 극은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이후 두번째. '서울 노트'도 딱 그 분위기에서 많이 다르지 않은 극이었다. 무대는 어느 미술관의 로비. 그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고 그저 담담히 그들을 지켜본다. 정말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다가 불쑥 비일상을 꺼내드는 방식이 히라타 오리자의 특기인 듯.
군복을 입은 청년과 아가씨의 데이트. 공공장소고 뭐고 아랑곳 않는 철없는 커플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전쟁,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만난 전 과외 선생과 제자. 오랜만에 만나 공통된 화제도 없이 어색한 순간순간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진 폭탄 발언. 우애가 좋아보이는 올케와 시누이, 그리고 가족 모임. 그저 단란한 가족 처럼 보이는 이들 사이에 또 툭 던져지는 어느 가족이나 안고있는 문제들.
아무렇지 않게 일상 언어로 대화가 진행되다가 한마디씩 작가가 하고픈 말이 묵직하게 던져진다.

- 미술관이 배경인 만큼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우리에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베르메르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풍경(인물을 포함해서)을 그림으로 그렸던 화가. 어쩌면 보고싶은 것만 보고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까. 여기에서 '본다'는 행위 자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데, 극의 마지막 어린 왕자를 인용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보인다.'는 구절을 가지고 마음으로 어떻게 보냐고, 절대 볼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다르게 와 닿았다. 눈으로 잘 관찰한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거니까, 일단은 찬찬히 잘 봐야하는 게 먼저지.

- 히라타 오리자는 우리의 일상을 그렇게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번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일   시 : 2011. 11. 18 ~ 2012. 02. 12
장   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관극일 : 2012. 01. 28 (토) 15:00
연   출 : 라우라 피에트로핀토, 협력연출 : 변정주, 음악감독 : 이나영
캐스트 : 다이애나 - 김지현, 댄 - 이정열, 게이브 - 한지상, 나탈리 - 오소연, 헨리 - 이상민, 의사 - 최수형

- 처음 봤을 땐, 좋은 작품이기는 한데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는 감상이었다. 넘버도 딱히 한번에 확 끌리는 건 없다 했는데, 참 보고 온 다음날부터 서곡에서 흐르던 피아노 선율과 콰광~!! 하고 울리는 드럼과 일렉기타 소리가 머릿속에서 무한반복. 그래서 다른 더블 캐스트로 예매하고 났더니 기획사의 뻘짓 작렬. -_-` 취소 수수료 물어가며 표를 취소하고 그렇게 놓으려다가, 정말 꼭 보고싶은 조합의 막공인데다 굿티가 풀려서. 그러게 진작 호미로 막았으면 좋았잖아?

- 확실히 두번째 보니까 첫번째 봤을 때랑은 감상 포인트가 상당히 달라졌다. 저 굿맨 패밀리의 아픔을 나는 이미 알고있으니까 좀 더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것도 수월해서 1막의 '넌 몰라'에서부터 벌써 눈물이 핑 돌더라. 댄이 얼마나 필사적인지, 다이애나를 얼마나 사랑하고있는지, 그리고 게이브가 '아빤 절대 날 몰라'라고 하면서 다이애나에게 매달리고,  댄을 쳐다보는 표정이 소악마적이면서도 정말로 원망스러운 감정이 가득한 게 보이더라.

- 김지현 씨의 다이애나는 일단 노래와 성량이 박칼린 씨와 확실히 차별화되게 잘하시더라. 울림이 풍부하고 성량에서 밀리지 않으니 여럿이 노래할 대 다이애나 목소리가 묻히는 일은 없고. 그런데, 재미있게도 외모나 이런 걸로는 김지현 씨가 더 가정주부 처럼 보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박칼린 씨가 훨씬 더 엄마 같았다는 거. 김지현 씨는 엄마라는 느낌은 좀 덜했는데, 그게 연기 노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김지현 씨는 자신만으로도 벅차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전혀 없는 쪽이라면, 박칼린 씨는 그래도 둘러보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 같달까. 특히 나탈리와 함께 나올 때마다 박칼린 씨 쪽이 그래도 나탈리를 더 생각하는 엄마라는 느낌. '나는 널 사랑해.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이라는 대사에서 박칼린 씨 쪽이 더 감정에 무게가 실려있는 느낌이었다.

- 아, 그리고 넘버 중에서 '내 신경 정신과 의사와 나' 라는 넘버가 저번에 들을 때도 뭔가 익숙한데 뭐지 싶었는데, 다시 들어보니 이게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rite things'을 패러디 한 거더라. 특히 '아내가 아끼는 약물 이름~' 할 때라던가 뒤에서 부작용 주의에 대해 노래할 땐 잘 느껴지는데, 어우 작곡가 선생 굿잡! 이런 깨알같은 웃음 포인트 정말 좋다.

- 그리고 다시보니까 헨리가 약쟁이 치고 너무 멀쩡해서 헨리가 너무너무 성실한 순정파로 보이는 건 좀 에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좀 들더라. 나탈리는 약 하면서 점점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게 보이는데, 헨리는 약을 할 때 조차도 너무 제정신이라.

- 음, 그리고 두번째 보다보니 게이브의 티셔츠 색깔이 댄의 셔츠 색과 깔맞춤 된다는 게 눈에 들어오더라. 자신을 부정하는 댄이지만, 그래도 댄이 자신을 봐줬으면 싶은 마음의 표현일까.

- 이정열 씨의 댄은 여전히 다이애나에게 헌신적이었지만, 이날은 그래도 참 감정을 많이 자제하셨었는데, 그게 갑자기 극 후반 다이애나가 떠나고 난 뒤에 포텐이 터지시면서 나를 통곡하게 만드셨다. 차기작 보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