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처음 '성우'라는 사람들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 나이는 몇 살 쯤이었던가.
그 전엔 '성우'에 대한 개념도 없고, 만화 주인공들이 그냥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더빙의 개념에 대해 깨달은 것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를 열렬히 시청하면서 부터 였다. 그 전에는 만화 주인공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처음 계기는 '어째서 죽은 안소니와 테리우스의 목소리가 똑같은 거지?'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동네 친구들은 누구 하나 내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안소니 목소리와 테리우스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그 아이들은 우겼고, 나는 내 나름대로 안소니를 매우 아꼈기 때문에 안소니의 목소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며, 테리우스 목소리와 같다고 우겼다. 서로 우기다 싸움이 나고, 나는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무슨 만화 잡지(보물섬? 어깨동무? 소년중앙? 뭐였는지 모르겠다;;)에 캔디의 성우에 대한 기사가 실려서 내 귀가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 "권혁수"님이 안소니와 테리우스의 1인 2역을 하신 것이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캔디 역에 김진숙 님, 이라이자 역에 송도영 님과 안소니/테리우스 역에 권혁수 님이었다.
그때 이후로 내가 좋아하는 성우 리스트 라는 것이 알게 모르게 마음 속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때 좋아했던 성우분들 리스트
송도영 - 주말의 명화에서 거의 여주인공은 이 분이 다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만큼 곱고,
주희 - 이 분은 '삐삐'로 대표되는 목소리로 기억한다. 장난기 가득한 소녀의 목소리에서부터 지적이며 쿨한 성인 여성의 목소리까지 연기의 폭이 넓으신 분. 말괄량이 삐삐에서 삐삐, 요술공주 밍키에서 밍키,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 외화시리즈 [V] 1기에서 다이애나 역.(2기에선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아쉽게)
송도순 - 마치 구연 동화를 듣는 듯한 '톰과 제리'의 나레이션으로 기억되는 목소리다. 나는 이 분의 어딘지 푸근한 목소리가 좋았다. 요즘은 홈쇼핑에 자주 출몰하시는 듯하다.
장유진 - 개구쟁이 스머프의 똘똘이 스머프. 송도영씨가 주말의 명화에서 단골 여주인공이었다면, 장유진씨는 토요명화에서 자주 여주인공을 맡았다.(MBC와 KBS를 대표하는 '공주'님들 ^^;) 내 기억 속엔 똘똘이 스머프가 압도적으로 인상 깊게 각인되어 있지만, '가요산책' 이라는 라디오 DJ로도 꽤 유명하셨었다.
탁원제 - 개구쟁이 스머프의 가가멜. 심술궂은 아저씨 역에도 잘 어울리지만, 믿음직스런 보스역에도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계심. 주로 중년 이상의 배역을 자주 맡으시며, 최근에 이누야샤의 자켄 역으로 열연하시고 계시다. (한때 이 분의 따님과 친분이 있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_^)
그 외에 만화에는 출연하지 않았지만, 외화 더빙을 전문으로 하는 성우중에 좋아하는 분들
이선영 - 굉장히 기품있고 나긋한 목소리로 한때 라디오에서 '영화음악' DJ도 하셨다. 글렌 클로즈, 캐서린 햅번 전문 성우
김세원 - 주로 나레이션 전문 성우(?) 차분하고 맑고 경쾌한 목소리에 발음이 야무지고 명쾌하다. 원래 아나운서 출신이시던가;; 알고보면 CF에서 자주 들리는 목소리. 월북 작곡가 김순남씨의 딸.
박일 - 보통 '목소리가 좋으면 얼굴이 못생겼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 속설에서 멋지게 빗나간 미남이시다. ^^; 권혁수님이 아니라면, 테리우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닐까. 에어울프의 호크 외 다수. 출연작이 꽤 많은데, 잘 생각이 안난다. OTL
양지운 - 스타워즈의 한 솔로, 인디애나 존스의 인디애나를 비롯 해리슨 포드 전문 성우로 각인된 목소리. ^^;
배한성 - 맥가이버의 맥가이버, 외계인 알프의 알프외 다수, 진짜 천의 목소리는 이 분을 두고 하는 말인듯 싶다. 요즘은 동물 나오는 프로에 나레이션도 많이 하신다.
유강진 - 동물의 왕국 나레이션 목소리로 처음 인식했기 때문에, 언젠가 다른 성우분의 나레이션을 듣고 굉장히 어색했던 적이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렛 버틀러 역은 유강진 님 말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외 주로 숀 코네리 전문 성우님.
이정구 - 전격 Z작전의 마이클외 다수, 실베스타 스텔론, 브루스 윌리스 전문 성우. 반지의 제왕 더빙에서 아르곤 역을 싱크도 120%로 연기하심.
TV와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성우에 대한 관심도 옅어져서,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우분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마, 나이 어린 사람들이 내가 좋아했던 성우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