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1. 01(화)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지난 주에는 어쩌다보니 전동석 레어티스만 만났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강태을 레어티스.
내가 그동안 동레어의 감정 폭발에 너무 익숙해졌었는지, 오늘 어쩐지 강레어는 새삼 참 냉정하구나...하고 있었다; 진짜 동레어 강레어 반반 섞으면 딱 이상적인 레어티스가 나올 거 같은데 말이지. 확실히 동석이가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더 잘하는구나 싶은 게, 강레어는 고음 지르는 부분에선 여지없이 목소리가 갈라지더라. 그래도 강레어는 좀 더 오빠처럼 보여서 보는 내가 덜 긴장한다고 할까. 결혼식 장면에서도 동레어는 집착돋게 시선이 오필리어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데, 강레어는 그 정도는 아니더라.
그리고 강레어가 오랜만에 돌아온 거 치고, 오늘 햄릿과의 결투씬은 지금까지 본 중에 가장 박진감이 넘쳤다. 극이 진행될수록 몸 쓰는 건 점점 더 합이 맞아들어갈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젠 정말 칼싸움으로 보인다. 칼날 부딪힐 때 나는 소리도 전처럼 둔탁한 소리가 아니고.

- 3열은 시작할 때 오른쪽 성루에 등장하는 은릿 보기엔 참 목이 아픈 자리다. 물론 난 배우 얼굴 핥으러 또 3열을 찾아가겠지만, 핀 조명을 받으며 아버지가 주신 단검을 보며 '왜 가셨나요~ ' 슬픈 표정의 은릿을 보려면 목에 무리가. ㅠ.ㅠ
그래도 꿋꿋하게 보고왔지만; 선왕의 장례식이 곧바로 새로운 왕 -숙부- 의 대관식이 되는데, 그걸 지켜보는 은릿의 표정 변화를 놓칠 수가 있어야 말이지.

- 장례식에서 대관식이 치러지고, 시차를 거의 두지 않고 성대한 결혼식이 진행된다. 아버지가 죽은 것도 충격인데, 어머니는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촌과 결혼을 한다. 거기다 이게 무슨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결혼이 아니라, 어머니가 삼촌과 좋아 죽고, '사랑 오직 사랑~'을 외친다면 아들 입장으로서는 얼마나 기분이 묘할까. 만약 생전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냉랭했던 분위기였다면, 아들된 입장으로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리고 덴마크의 왕자로서, 숙부에게 빼앗긴 왕관은?
그런 복잡한 심경으로 결혼식을 지켜보는 은릿의 표정이 참 좋다. '사랑 오직 사랑'을 부르며 춤추는 하객들을 바라보며 아주 살짝 경멸의 감정을 담은 표정. 과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던지는 손키스는 그래서 참 인상적이다.

- 결혼 피로연에 마치 저승사자 처럼 나타난 은릿은 정색한 무표정이 더 어두워보인다. 속이야 어쨌든 겉으로 환영하는 클로디어스의 손길을 점점 강한 강도로 뿌리치는 - 처음엔 닿는 것도 싫다는 듯 닿자마자 피하고, 두번째는 어깨를 살짝 틀어버리고, 세번째는 아예 뿌리치더니 '이딴 건 사랑도 아냐!'라며 잔치에 찬물을 끼얹고 나가는 은릿. 그리고 이어지는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안들어 부르는 "Why me" 
처음엔 그냥 사춘기 중2병 환자가 자기 개인적인 감정에 덴마크를 끌어들이는 거 아냐 했는데, 오늘 무대 앞으로 나와서  "덴마크여 울고있나, 왕을 잃은 슬픔도 벌써 잊어버렸나"라며 부르짖는데, 마치 관객을 덴마크의 국민인냥 바라보며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그래서 두번째 반복되는 파트에서의 '덴마크여~ '와는 그렇게 온도차가 나는 건가 싶더라. 벽에 걸린 장미 화환을 집어 던질 때는 정말 울분을 포효하듯 내뱉는데, 저 앞부분은 그렇게까지 분노에 차있지는 않아서. 그래, 아무리 이 거지같은 상황이 왜 나한테 일어난 거냐고 찡찡대는 사춘기 중2병이라도 댁은 덴마크의 왕자님이셨지.

- 오필리어한테 개객끼 돋는 햄릿이라지만, 윤오필리어는 햄릿을 정말 좋아하기는 한 건지 헷갈린다. 아무리 봐도 그냥 햄릿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정화 배우의 오필리어가 새삼 회차가 적은게 아쉽더라. 예를 들어 햄릿에게 수녀원에나 가라고 폭언을 들은 다음에 햄릿이 준비한 연극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햄릿이 오필리어 무릎에 기대 앉으면, 윤오필리어는 얘 나한테 왜이래 라는 듯, 햄릿을 밀어낸다. 그럼 또 햄릿은 오히려 오필리어를 억지로 부둥켜 안고, 그럼 윤오필리어는 마치 인형처럼 껍데기만 남은 듯 안겨있는다. 그런데, 이정화 오필리어는 햄릿이 무릎에 기대면 얘 왜이래라는 표정은 짓지만, 햄릿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리고 두려워 하면서도 햄릿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햄릿이 오필리어 옆을 떠나 자리를 이동할 때도 윤오필리어는 그냥 자기 속으로 침잠해 있는 상태라면, 이정화 오필리어는 곁을 떠나는 햄릿에게 계속 시선을 보낸다. 이런 시선에서 없던 케미도 생겨나는 거라니까;

- 오늘도 범사마의 클로디어스를 일단 한 번 찬양하고.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가 조금만 삐끗하면 상 찌질한 캐릭터가 될 위험이 있는데, 범사마님은 클로디어스의  다면적인 성격을 참 설득력있게 노래와 연기로 보여주시니 좋아할 수 밖에.
거트루트에게 소리지르고 화내는 것도, 저게 사랑 안 해서가 아니라, 클로디어스라는 사람은 일이 잘 풀릴 때는 그냥 좋은 사람이지만,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을 때 성격이 변하는 그런 캐릭터로 보여진다고 할까. 그게 Chapel 넘버에서 드러나는 거다. 그녀를 위해 형을 죽여야만해~라는 똑같은 넘버에 가사인데도, 범사마가 부르면 그게 변명처럼 들리지 않고, 진심으로 들리는 신기한 배우빨.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서 왕관을 바라보며 '모두 무릎 꿇고서 새로운 왕 맞이하라~'에서는 형에 대한 질투와 그 왕관의 주인이 지금은 나라는 비뚤어진 자부심, 그리고 이어지는 '저주받은 나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줘~'에서 느껴지는 죄책감과 두려움, 통한과 후회의 감정. 이 모든 걸 다 담아서 불러주시는 범사마는 닥치고 경배.

- 은릿이 잡은 햄릿이라는 캐릭터는 감정의 기복이 널뛰듯 불안정안 질풍노도의 사춘기 햄릿인 듯 하다. 그리고 반항기라서 속은 범생에 착실한 학생인데, 겉모습을 날티나게 꾸미고, 불량 학생처럼 구는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가끔 교육 잘 받은 도련님의 모습이 언듯 언듯 비치는. 용릿은 그 반대로 겉으로는 어른들이 얌전한 학생이라고 믿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뒤로는 나쁜 짓 - 술, 담배, 약 뭐 이런 거 - 하고 다닐 것 같은 이미지다.

- 은릿의 노래는 오늘도 찬양받아 마땅하다. ㅠ.ㅠ 정말 이 남자는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부르냐. 목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데, 전혀 티도 안난다.
가성은 어떻게 저렇게 선명하고 깨끗한 소리가 나오는지, 피를 토하는 것처럼 절규하며 지르는 넘버는 음이탈도 없이 터져나오고, 굵게 긁어서 내는 소리조차 파워가 붙어서 한껏 그르렁대는 소리로 포효하는데 이게 지금 정상 상태가 아니라고요 ㅠ.ㅠ 하여간 노래에 관한한 귀신같구나.

- 은태 연기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죽는 연기인가보다. ㅠ.ㅠ 모촤 때도 그러더니, 햄릿에서도 마지막에 죽어가는 연기가 참 자연스럽다. 언제 좀 해피엔딩의 주인공 역도 한 번 하자. 어떻게 맡은 역이 줄줄이 다 죽음과 연관된 역할이니.

+ 오필리어 얼터 역의 이정화 배우님, 한 번 얼굴 익혔다고, 이제 앙상블에서 찾아지더라. 유랑극단에서 무희 중 한 명으로 나오시는 걸 발견. 언니님의 오필리어 회차가 좀 늘기를 기원합니다.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30(일) 14: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이정화,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어제 저녁 공연이 정말 좋았어서, 오늘 낮공도 당연히 그런 기대를 하고 가지만, 일말의 불안이 있기도 했다. 세상에 일요일 2시 공연이라니. 내가 주말 공연이 3시나 4시인 건 봤어도, 2시 공연인 건 또 처음이라서. 안그래도 이 사람들 10 to 10 이 일상인 사람들이 아니던가. 아니나 달라, 배우분들은 괜찮았는데, 오늘 오케스트라, 음향팀은 좀 반성하자. 원미솔 음감은 전에 지킬 할 때도 가끔 달리신다고 하더니만, 오늘 딱 그렇더라. 배우들 박자 따라가느라 애쓰고, 그러더니만 어느 순간 드럼 삑사리 나고, 2막에선 건반에서 음향사고 나고. 벌써 2주차가 끝나갑니다, 잘 좀 해봅시다. 무대위의 배우들이 저렇게 훌륭하게 연기를 선보이는데, 제대로 받쳐줍시다.

- 오필리어 얼터인 이정화 배우의 첫공이었다. 얼터 배우라서 어떨른지...하고 봤는데, 웬걸, 4차 때는 이정화 배우 회차 좀 늘려줍소 가서 빌고싶더라. 음색은 윤공주 배우와 비슷한데, 대사톤도 훨씬 자연스럽고 오필리어스러웠다.
윤공주 배우는 어려보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일부러 어린애 목소리, 찡찡대는 톤에 백치미를 끼얹어서 솔직히 내 취향의 오필리어는 아니었는데, 이정화 배우는 그런 게 없더라. 그리고 윤공주 배우는 자기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서,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만 집중한다고 할까, 그래서 햄릿과 전혀라고 해도 좋을만큼 케미가 안 생겼는데 (햄릿도 자기 문제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데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으니까), 이정화 배우는 자기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상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거다. 그러니, 첫 공연인데도 햄릿과 오필리어 사이에 없던 케미가 생겨나더라. 어우, 감격~그렇게 말라 비틀어진 사막같던 햄릿과 오필리어 사이에 그래도 남녀간의 애정 비스무리한 거라도 생기다니. 뭐 없던 게 생겼달 뿐이지, 여전히 오필리어는 레어티스와 케미가 터지는 건 어쩔 수 없다. ㅠ.ㅠ
게다가 오늘 이정화 배우 첫공이라 그런가 동레어도 오필리어 우쮸쮸 분위기가 더하고, 은릿도 본 공연에선 뭐 매몰찼지만, 커튼콜에선 또 토닥토닥 - 연인 분위기는 아니었지 - 해주고 훈훈하더라.

- 김성기 폴로니우스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저번부터 박자를 놓치시거나, 오늘은 가사를 씹으셨지. 워낙 애드립으로 잘 넘기시지만, 앞으로 해야할 공연이 더 많이 남았으니까, 끝까지 집중 잃지 않고 해주시길 바랄 뿐.

- 범사마는 언제나 진리시지만, 오늘 Chapel 넘버는 진짜 그 괴로움과 통한, 후회의 감정이 어찌나 절절하던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서 지르는 "모두 무릎 꿇고서 새로운 왕 맞이하라~ 저주받은 나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줘~"는 레전드였다. 클로디어스라는 캐릭터가 가진 복잡하고 다면적인 성격을 이 노래 하나로 그냥 설득시키셨다.

- 은릿은 이제 연기가 더 좋아질 일만 남았으나, 슬슬 성대의 피로도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직 티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그르렁대는 소리를 많이 넣어서 불안불안. 저렇게 지르고도 목이 안 상하나...? 뭐 이런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다. 미성인 목소리가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굵게 낸다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단점을 보완한다고 장점마저 변질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 은릿이 부르는 넘버 중에 가장 임팩트가 강한 노래는 아무래도 커튼콜에서도 부르는 "Let's rise above this world" rep.나 "Today, for the last time"이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2막 처음에 시작하는 "사느냐 죽느냐"다. 바로 그 유명한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나오는 넘버.
한 소절 한 소절 실린 감성과 음성을 핥아가며 찬양하고 싶게 만드는데, 능력이 안되서 은태는 참 노래를 잘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고 만다. ㅠ.ㅠ
아래는 원작과 가사의 비교

햄릿 중 - 번역 : 박우수 @ 열린책들

사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구나.
성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으로 견디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냐.
아니면 고해의 바다에 맞서 끝까지 대적하여
끝장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냐.
죽어서 잠을 잔다. 이게 전부란 말인가? 그래, 전부야.
아니, 잠을 자면 꿈을 꾸겠지. 맞아, 그것이 문제야.
사멸할 이 육신의 허물을 벗어 버리고
죽음의 잠 속에서 우리는 무슨 꿈을 꾸게 될까?
그 때문에 우리는 망설이고
이 장구한 인생의 재난을 이어 가는구나.
그게 아니라면 그 누가 시대의 채찍과 조롱,
억압자의 횡포와 거만한 자의 비방,
짝사랑의 고통과 법의 게으름,
관리의 오만함과
훌륭한 사람들이 하찮은 사람들로부터
참고 받아 내는 업신여김을 견디겠는가?
차라리 단검 빼어 들고 이승을 하직하는 편이 낫지.
그게 아니라면 누가 지루한 인생의 무게에 눌려
신음하고 땀 흘리며 그 무거운 짐 지고 가겠는가?
여태껏 아무도 되돌아온 자 없는 그곳,
그 미지의 나라,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달려가기보다
이승의 질곡을 참고 살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느냐 죽느냐

산다는 것이 진실보다 중요한가
거짓 속에 사는 대체 나는 누군가
쓰디쓴 진실 알고도 왜 난 망설이는가
진정 거짓에 굴복해야 하는가

사느냐, 죽느냐, 그게 문제야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고서 견뎌야 하나
아니면 운명에 맞서 싸울 건가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
날고싶었던 미지의 그곳으로
그곳엔 잊었던 녹슨 꿈이
잊었던 내자신 찾아줄 수 있을까

(사는 건) 산다는 건 (죽는 건) 무엇일까 (무얼까)
나에겐 어쩌면 죽음과 같은 것
(사는 건) 죽음이란 (죽는 건) 잠드는 것 (무얼까)
그리고 난 깊은 꿈을 꾸겠지

어디든 가주오 나와 함께
날고싶었던 미지의 그곳으로
그곳엔 잊었던 녹슨 꿈이
잊었던 내자신 찾아줄 수 있을까

나의 진실을──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9(토) 19: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 지난 3일 동안 은릿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26일 보고 3일만에 갔더니, 그 사이 뭔 일이 있었기에 연기가 이렇게 확 물이 오른거지? 경이롭다~ (feat. 콜로레도)
노래야 첫공 때부터 이미 로딩이 완료된 상태였고, 거기에 더해서 연기적인 측면에서 기본 골격은 갖춰졌지만, 세세한 디테일 같은 건 무대가 진행되면서 체득되는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로딩되기를 기다려왔는데, 이제 햄릿이라는 옷이 몸에 붙은 것 같다. 진짜 단 3일만에 만난 건데, 어떻게 26일에 본 은릿과 이렇게 달라져있을 수 있나. 세상에 뼈대가 완성되어 있었기에 거기에 어떻게 살을 붙이려나 했더니만, 그게 서서히가 아니라, 갑자기 이렇게 실체가 확 드러나니까 그게 너무 놀랍고 경이로와서. 물론 배우니까 완성된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야 하는 게 맞는 거지만, 누누히 말하지만, 무대는 살아있는 것이기에, 관객없이 연습으로만 채울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는 법이다.

- 은태는 올해 모차르트!, 피맛골 연가를 거치면서 목관리에 대해 도가 텄는지, 아무리 더블이라고 해도 2주차인데, 목소리가 여전하다. 물론 첫공 때의 오래 쉬고 돌아온 쩌렁쩌렁함에야 비하겠는가 싶지만, 성대의 피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노래에 실리는 감정이 더 깊어져서 호소력이 짙어졌다.
햄릿이 송쓰루 뮤지컬이라 노래에 연기를 싣지 못하면 완전 망하는 극인데, 그런 면에서 은릿은 노래의 발성을 워낙 자유자재로 구사하다보니 이게 큰 무기가 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노래에 연기와 감정을 싣는 것과 별개로, 그걸 할 수 있도록 테크닉이 받쳐줘야 하는데, 은태는 이미 그 부분이 완성되어있어서, 속삭이듯 부르지만 힘있게 고음을 내야한다던가, 가성과 진성을 자연스럽게 넘나들어야 하는 부분, 파르르 떨어야 하는 부분 등 세분화해서 발성하는 법을 이미 익히고 있어서, 거기에 감정과 연기를 제대로 실어주기만 하면 뭐 그냥 넘어가는 거다. 슬픔을 표현하는 다양한 연기의 방법이 있는 것처럼, 슬플 때 부르는 노래 또한 흐느끼거나, 지르거나, 속으로 삼키거나 노래에 실어서 다양한 창법으로 불러주니 진짜 귀가 호강하는 거지. 연기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져 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기분이란, 진정 경이롭다~(feat. 콜로레도)

- 1막 결혼식 장면에서 '사랑~ 오직 사랑~'하며 사랑 만세를 외치는 왕과 왕비, 하객들을 내려다보는 은릿은 그들을 경멸하듯 쳐다보다 손 키스를 던지고 내려가는데, 그게 참 그 표정과 동작을 봐서는 '사랑 만세? 엿같다' 같은데, 그걸 저속한 동작이 아니라, 저렇게 우아한 동작으로 표현하는 게 참 제대로 왕자님 같아서 나는 그저 좋을 뿐이고.
그런데, 이 결혼식 장면에서 동레어는 진짜 한시도 오필리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 아이고, 이 시스터 콤플렉스. 그러다 흥겨운 잔치에 찬물 끼얹으며 햄릿이 등장하니 또 못마땅한 시선으로 햄릿을 쳐다보는데, 햄릿 등장하자 햄릿만 쳐다보는 오필리어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하며, 저게 어딜 봐서 오빠래는 거.

- 1막에는 사실 햄릿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다. 1막 초반의 주인공은 거트루트와 클로디어스니까. 그런데, 그게 오필리어와 동침 이후 아버지의 유령이 등장한 다음부터 햄릿에게 확 쏠리게 된다. 오늘도 상반신 탈의하는 장면에선 눈이 참으로 즐거웠;; 그런데, 그새 더 말라서 이젠 갈비뼈도 확연하게 보이더라. 그리고 놀랬던 게 첫공 때는 갑빠가 실한 것에 비해 복근은 좀 덜 단단해뵈네 했었는데, 웬걸, 오늘은 식스팩이 제대로 보여서 그 사이 피하지방이 더 줄었구나 싶더라. 그외에 어깨에서 상박, 하박으로 이어지는 잔근육이나 쇄골도 더 선명하게 파인 것 같;; (몸만 훑다 왔냐;)
하여간 반라의 상태로 미쳐서 피를 부르짖는 장면에서 연기도 좀 더 깊이가 생겨서 그냥 휘번덕 거리는 게 아니라, 고통과 슬픔, 충격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리고 성벽으로 오르면서 부르는 '어디든 가~주오'는 오늘도 아주 피를 토하더라. 저렇게 부르다 목 나가는 거 아냐 살짝 걱정될 정도로 아주 절규를 하는데, 햄릿이 느낀 충격과 슬픔, 분노의 크기가 제대로 전해져왔다.

- 그런데, 참 햄릿이 오필리어한테 너무 개객끼돋는 게, 정황상 오필리어는 무슨 처녀 제물 바치는 것 처럼 햄릿에게 자신의 모든 걸 주고난 다음인데, 아무리 절망의 구렁텅이(;)속에 빠졌다고, 저리 내팽개쳐두고 사라지다니. 그렇게 유령처럼 사라져놓고, 그 다음에 만날 땐 갑자기 냉정하게 변해서는 '수녀원에나 가~'라고 윽박지르니, 오필리어가 느꼈을 먹먹함과 배신감, 상실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정말 은태가 '수녀원↗에나 가~' 라고 할 땐, 그 목소리가 시퍼렇게 칼날 같이 박혀들어와서, 오필리어가 너무 가엽다. 바들바들 떠는 오필리어를 쳐다보고 갑자기 커튼을 확 잡아당기고는 커튼뒤의 폴로니우스 들을 쳐다보고 오필리어를 향해, 너도 별 수 없지...라는 듯 썩소 한 번 짓고는 미친 웃음 소리를 내는데, 이젠 똑같은 미친 놈 웃음이라도 디테일이 달라져 있어서, 여기서도 깜놀.

- 2막을 시작하는 넘버에 그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나오는데, 여기서 보여주는 은릿의 연기, 감정선, 그리고 참으로 깨끗하게 울려퍼지는, 선명한 목소리는 그냥 진리다.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넘버를 들을 때 은태는 단 한번도 삑사리 날까 걱정한 적이 없다.

- 드디어 시작된 연극. 여기서도 햄릿은 오필리어에게 너무 잔인하게군다. 햄릿이 우악스럽게 오필리어를 끌어안고 저것좀 보라고 하지만, 오필리어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인형같다. Sextet에서 은릿만 쳐다고보 있어서; 오필리어가 뭐라는 지 제대로 안 챙겨 들었었는데, 오늘 들어보니 '신이여, 거짓이라고 말해줘요.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라고 애처롭게 현실을 부정하고 있더라. 가여운 것 ㅠ.ㅠ 레어티스가 곁에 있었더라면 그래도 좀 나았을까.

- 동레어가 다시 널뛰고 있다. 27일 정도가 딱 좋았는데, 다시 감정이 절제가 안되어 마구 튀어오르고 있는 동레어. 조금만 냉정해졌으면 좋겠다. 이건 진짜 강레어랑 어떻게 반반 나누면 좋겠구만. 역시 회차가 거듭되면서 결투씬에서 긴장감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짜고치는 고스톱스럽지만, 자 왼쪽, 오른쪽 그러고 자리 바꾸기~ 뭐 이렇게 박자를 세는 것 처럼 보이는 부분은 좀 줄었으니까; 가끔 아슬아슬해~ 라고 할만한 장면까지 보이니, 좀 더 몸에 익으면 진짜 긴박한 결투를 보게될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햄릿의 비극성이 가장 처절하게 드러나야하는 마지막 부분이 난 참 아쉬운 게, 거트루트가 독배를 드는 장면에서 아무리 봐도, 저 거트루트는 그게 독배인 걸 알면서 마시는 것 같단말이지. 독배라는 걸 모르고 마셔야 극의 긴장감이 올라갈텐데, 표정도 너무 비장해서, 모르고 보는 사람도 저 잔을 마시면 죽겠구나 싶다니까. 그래서 꼭 자살같이 보인다.  그건 레어티스도 그런데, 비겁하게 햄릿의 팔에 상처를 낸 다음 이걸로 내 할 일은 다 했어, 이제 오필리어 곁으로 가겠어...처럼 보인다. 물론 레어티스의 칼에 독이 묻었다는 걸 모르는 햄릿은 그저 비겁한 레어티스에 빡돌아서, 손속을 두었던 걸 거둬들이고, 진심으로 덤벼들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무력하게 햄릿의 칼에 맞아 죽는 건 자살로 밖에 안 보인다.

- 커튼콜 때, 마지막 부분에 원래 들어가려는 오필리어를 햄릿이 잡아채고 둘이 포옹하면 레어티스가 나와서 떼어놓고, 오필리어를 데리고 들어가던 걸 빼버렸다. 왜지? 커튼콜에서라도 햄릿과 오필리어를 이어주려고? 오늘 은릿은 오필리어 이마에 키스해줬다. 이걸 커튼콜에서 하지말고, 본극에서 좀 하라고. 어떻게 주인공 커플이 베드씬까지 가놓고도 그렇게 케미가 없을 수가 있나.
성벽이 닫히며 그 뒤로 들려오는 '오늘 밤을 위해~~'는 오늘도 전율이 일었다.

+
뒤늦게 생각나서 추가.
'수녀원에 가' 씬 전에 상심한 오필리어에게 헬레나가 'Let's not waste time' rep.을 불러주는데, 이게 참 가사가 좀 말이 안됐던게 '너의 모든 걸 그에게 바쳤다면, 더이상 망설이지마.' 라고 하는데, 아니, 친한 친구가 남자 친구한테 버림받다 시피하고 저렇게 상심해 있는데, 뭘 더 어쩌라는 걸까 싶었더란 말이지. 그걸 드디어 가사를 고쳤다. '더이상 망설이지마' 대신 '더이상 다가가지마'로. 그래야 말이되지.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7(목)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김수용,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 로버트 요한슨 연출로부터 '오리지널 햄릿'이라는 극찬을 받았다는 김수용 햄릿을 기대하고 보러갔다 왔다. 뭐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하여간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은릿과 다른, 어쩌면 좀 더 원작의 햄릿에 가까운 햄릿을 기대했지만...;

- 용릿과 은릿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단 외견상으로 용릿은 좀더 왜소하고 창백해서, 어딘가 병약 미소년의 기운이 풍긴다는 것. 은릿은 그런 면에선 말랐어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어서 약해보이지는 않거든. 그리고 용릿이 창백할 정도로 피부가 하얘서 오뉴월에 햇빛 한 번 못 본 것 같은, 야외 활동 보다는 실내에서 책에 파묻혀 있을 법한 햄릿이라면, 구릿빛 피부의 은릿은 말도 타고, 친구들과 바깥으로 싸돌아다닐 것 같은 햄릿.
이렇게 외모적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행동거지나 몸동작에서도 당연히 차이를 보이는데, 은릿이 좀 더 각이 잡혀있다고 해야할까.

특히 폴로니우스가 '그는 미쳤어~'라며 햄릿을 조롱하는 넘버를 부르고 나서 햄릿이 뒤에서 그걸 따라하는데, 은릿은 자신을 조롱하는 그들을 역으로 조소하며 절도있는 동작을 보인다면, 용릿은 그들의 바람대로 나는 미쳤다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는데, 약했나...? 싶은 분위기까지 낸다.

은릿은 어떤 동작을 취할 때, 발레를 배운 티가 나서 그런지, 기본적인 자세가 바르고, 우아함 같은 게 따르는데, 나는 이게 참 마음에 들었던 게, 햄릿은 어쨌든 왕자님이니까, 왕자의 격에 맞는 행동거지를 보여주는 게 좋았다. 용릿은 그런 격식 같은 걸 비웃고 반항하듯이 일부러 더 건들거리는 것 같달까. 예절 따위 엿먹어라...뭐 그런 태도.

- 용릿의 노래도 익히 훌륭하다 소릴 듣고 갔는데, 음.....성량 좋은 건 좋은 거고, 가성을 쓰는 부분은 잘 컨트롤이 안되는 것 같더라. 그리고 가장 신경쓰였던 건, 노래 할 때 고개를 까딱거리는 거. 한 소절 끝나고 다음 소설 시작할 때마다 고개를 가만두지를 못하고 락커처럼 까딱거리는데, 이게 내도록 신경에 거슬려서 집중이 안됐다. 이게 버릇이라면, 습관이 되기전에 좀 고쳐줬으면 싶다.

- 오늘 나의 베스트는 전동석 레어티스. 근친삘은 여전했고, 오필리어를 향한 감정선이 이게 과연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감정인가 싶고, 왜 얘네 둘이 사귀면 안되는 걸까..싶은 절절한 케미돋는 남매였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동레어의 연기가 오늘 정말 갑이었다. 동레어는 느무느무 훈훈한 기럭지에, 빛나는 비주얼, 거기다 노래도 쩔어주는데, 오늘은 거기다 강약조절이 제대로 들어가줘서 혼자 감정이 앞서가는 오류를 범하지도 않았고, 그 분노의 감정도 혼자 악을 쓰느라 딕션 뭉개졌던 지난주에 비하면 오늘은 제대로 다 전달이 될 정도로 자제해줘서 기특했다. 아, 진짜 동레어는 반칙인게, 햄릿보다 빛나는 레어티스라니. 레어티스 분량이 적어서 다행이지, 안그래도 개객끼 소리듣는 햄릿인데 ㅠ.ㅠ 햄릿들은 긴장하라!
안 그래도 긴 기럭지의 동레어와 붙으니 왜소한 용릿은 칼싸움에서 너무 많이 밀리더라.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절대 못이겼을 듯.

- 오늘도 로비에서 로버트 요한슨 연출을 봤다. 이분 미국 안 가시고, 유니버설에 눌러앉으셨나.

+
뒤늦게 생각나서. 무덤지기 씬에서 해골을 가리키며, 지킬이니 몬테니 모촤니 하는 건 출연 배우들의 전작이나 뭐 그런 것과 관련이 있는 소재라서 먹히는 개그였는데, 용릿에서마저 모짜렐라를 들먹이는 건 좀 에러지 않나. 헤드윅이나 뭐 용릿의 전작이 있을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