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6(수) 20: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은릿이 한 이틀 쉬고 오더니, 목청은 더 좋아져서 왔는데, 뭔가 미묘하게 합이 잘 안 맞았던 공연.
근데, 이게 은태한테만 벌어진 일이 아니라 시작할 때 영상과 음향이 안 맞아서 다시 한다던가, 결혼식 장면에서 벽에 걸린 장미꽃 리스가 떨어진다던가 (헬레나 이미경 배우가 재치있게 다시 걸어줬다. 이걸 나중에 햄릿이 광분해서 집어던져야 하거든), 오필리어 자살 씬에서 원래 옷자락이 앞에 펼쳐져야 하는데, 그 받침대 사이에 껴서 아래 반쪽은 다 보였다던가 (이건 좀 큰 실수지 싶지만 뭐;), 은태는 커튼콜에서 관객들의 환호 소리에 묻혀 한 음절을 반복해야했다.
화요일이면 뭐 조금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어제 용릿 공연도 있었는데, 오늘 왜들 이러시나. 그런 자잘한 산만함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듯한 상황이 몇 번 연출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은릿의 노래가 쩌렁쩌렁 쩔어주셔서 ㅠ.ㅠ 매번 감탄하기는 하는데 진짜 노래를 어쩌면 그렇게 잘 하는지.  

- 뮤지컬 햄릿에서 햄릿은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쉴드를 쳐줄 수가 없는 개객끼다. 그런데, 오늘 특히 은릿이 완전 나쁜 남자 모드가 되어서 오필리어한테 너무 잔인하게 굴더라. 수녀원에 가라고 할 때 그 빈정거림에 정말 무섭게 퍼부어대더니, 커튼 뒤에 폴로니우스, 클로디우스, 거트루트가 숨어있는 걸 알아차리고 뜯어내는데, 그 커튼 자락이 오필리어를 덮어버렸다. 안 그래도 가슴이 찢어질 오필리어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2막에서 클로디어스를 떠보기 위해 연극을 할 때, 쭈뼛쭈뼛 햄릿을 무서워하는 오필리어 옆에 앉아 그 무릎위에 손을 올리고, 그 손을 오필리어가 소심하게 밀어내자 오히려 허리 뒤로 팔을 돌려 거칠게 끌어안는데, 참 잔인하다 싶더라. 아무리  복수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해도 어쩜 그렇게 마음 한 조각 나눠주지 않는 건지. 그러면서 무의식중에 밀어내려는 오필리어를 끌어당기고 있는 건 자각하지 못하고.  그래놓고 죽은 오필리어를 끌어안고 네가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 없다며 함께 죽겠다고 그러니 그 사랑을 누가 이해하겠냐고.  

- 강태을 레어티스는 전동석 레어티스(이후 동레어)에 비하면 오빠도가 더 높고, 그만큼 분노하는 와중에도 이성을 놓지 않아서, 동레어에 비해 좀더 냉정하다. 그렇다고 오필리어에 대한 애정이 덜하냐 하면, 이쪽도 만만찮지만, 그래도 근친삘은 덜해서 이쪽이 더 내 취향이다. 동레어는 오필리어와 케미가 늠 좋아서 오히려 부담스럽다. 노래는 동레어쪽이 좀 더 취향이지만, 연기는 역시 태을 레어티스의 노선이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레어티스가 죽어가며 '형제여, 이걸로 서로 용서하자.'는 앞에서 보여준 분노의 감정이 크면 클수록 뭥미스럽기 때문에 이 부분은 연출이 에러라고 밖엔. 눈이 뻘개져서 죽여버리겠어! 라더니만, 마치 권투에서 공이 울리고 코너로 돌아가는 상대 선수 뒷통수를 치는 것처럼 얍삽하게 팔을 삭 긋는 것도 좀 웃기다. 원작에서도 그런 설정이라는 건 알지만, 적어도 원작에선 그 결투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이 복수의 결투가 아닌,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한 대결이라고 덧씌우고 시작한단 말이지. 그래서 레어티스가 형제여- 어쩌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정당한 대결에 간계를 꾸며 복수를 하려던 자신에 대한 자책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 김장섭 씨는 김성기 씨와 비교하면 참으로 훈훈한 미중년이시라, 폴로니우스의 광대적인 면모를 보이기엔 느무 멋지시다. 레어티스를 프랑스에 보내면서 충고하는 중에 '넌 날 닮아서 너무 잘생겼어'라는 대사가 김성기 씨가 하면 개그 포인트겠지만, 김장섭 씨가 하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되버린다. 그래서 김장섭 씨의 폴로니우스는 조금 심심한데, 무덤지기는 또 아주 능청스럽게 걸쭉하게 잘 소화하셔서 대 만족. 루이 암스트롱 삘로 목소리를 걸걸하게 뽑아내시는데, 넘버와 잘 어울린다. 오늘은 아예 모짜렐라 해골을 은릿 얼굴 옆에 대고 '비슷하다'고 까지 하셨음ㅋㅋㅋㅋㅋ
이 부분 연출도 참 할 말이 많은데, 이 바로 앞에 오필리어가 참으로 슬프게 죽는단 말이지. 그러고 바로 무덤지기와 씐나씐나 이러고 놀고 있으니, 햄릿은 그냥 생각없는 놈으로 비치기 딱 좋은 설정. 원작에서야 덴마크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설정이니까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고, 무덤지기와 삶과 죽음, 죽음의 공평함에 대해 만담을 늘어놓을 수 있겠다 싶지만, 뮤지컬 햄릿에서 햄릿은, 사방을 살피는 호레이쇼의 동작에서 미루어 짐작하길,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설정인 것 같은데, 실성한 오필리어에 대한 소문도 못 들었을까. 뭐 하여간 5막짜리 희곡을 2시간짜리 뮤지컬로 만들면서, 또 원작에 없던 거트루트와 클로디어스의 사랑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서 이것저것 쳐낸건 알겠지만, 캐릭터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너무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 범사마 님의 클로디어스는 역시 진리. 그런데 이쪽도 참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 오직 사랑~'을 외치고는 있지만, 거트루트를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단말이지. 자신의 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것에 대한 명분을 '사랑'에서 찾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건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고 변명하는 모습도 그렇고, 햄릿 때문에 부부싸움 할 때 보여주는 신경질적인 면모도, 누가 왕인지 보여주겠다는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권력욕, 제일 심한 건 독배를 마시는 거트루트 옆에서 당황하기는 하나, 놀라거나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다는 것. 그러니까 클로디어스의 거트루트에 대한 사랑은 딱 거기까지 였던 게지. 사랑 앞에 모든 걸 내던진 여자, 그게 바로 나라던 거트루트는 어렴풋이라도 그걸 깨닫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 이것저것 불만을 토로하기는 했지만, 은릿의 풀어헤쳐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실한 가슴팍(;)이라던가, 허리에 이불 둘둘말고 반라로 미쳐 돌아댕기는 씬, 그리고 귀가 호강하는 그 맑고 힘있는 노래에 낚여서 아차산 지박령이 되겠지;

- 공연없는 월요일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햄릿으로 도배될 최근 작성글 리스트가 좀 보기에도 그래서;

- 햄릿 정극을 두어번 봤더랬는데, 예전에 난 하다못해 그날의 캐스트조차 챙겨보지도 않는 상머글이었을 뿐이고; 그냥 기억에 남는 게 두가지 버전의 햄릿에서 거트루트에 대한 해석이 참으로 대조적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하나는 여왕의 자리에 집착하여 시동생과 결혼을 선택한 버전이고 다른 하나는 무력한 여자라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뜻이 아닌, 타인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버전이었다.

전자는 그야말로 여왕님이셨고, 햄릿을 대하는 태도 역시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여왕님으로서 왕자위에 군림하는 태도여서, 어머니 앞에서 주늑들었던 햄릿이 침실에서 그녀의 권위와 자존심을 짓밟으며 행패를 부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뭐 곧바로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서 상황 정리되었지만.

후자는 캐릭터로서 별 매력이 없을 것 같은 데, 이게 또 의외로 참 괜찮았더랬다.
희미한 존재감이 딱 그만큼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트루트여서, 연약하고, 소심하고, 이쪽 저쪽 눈치보기에 여념이 없는 참으로 딱한 왕비님. 오필리어가 왕비가 되면 저렇게 되려나 싶은. 누구도 상처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씨 고운 왕비님. 그저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자기가 중간에서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는지, 새 남편도 아들도 알아주지 않아서 야속하지만, 겉으로 표현도 못하고, 그저 눈치만 보는 가녀린 여인이라, 햄릿도 클로디어스도 개객끼 소리가 절로 나왔더랬지.
거트루트의 침실에서 햄릿이 광증으로 미쳐 날뛸 때,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말리는 걸 보면서, 그래도 선왕은 거트루트를 진심으로 사랑했었나보다, 다행이다...했더랬다. 사실 이 극에서는 거트루트의 분량이 정말 적었는데도, 이렇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배우분의 연기가 정말 좋았던 모양인데, 그분을 내가 몰라;
아, 쓰면서 생각났다. 이 거트루트는 어딘가 수하이바토르의 엄마를 닮았구나. 아들이 새아버지 눈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그래서 눈에 밟혔나보다.

- 5막으로 구성된 원작에서 햄릿은 1막에서 이미 선왕의 유령을 만나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듣게된다. 그러나 똑똑한 햄릿(;)은 유령의 말을 그냥 믿는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증명하려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피의 복수를, 거짓이라면 그저 악마의 장난으로. 그래서 미치광이 연기를 시작하고, 유랑 극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나름 주도면밀한 매우 이성적인 왕자님이다. 좀 우울한 캐릭터에 생각이 좀 많기는 해도.

그런데, 뮤지컬 햄릿의 햄릿은 그저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장례식이 끝나자 결혼식을 올리는 어머니에 환멸하고,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 왕위를 가져간 삼촌을 증오한다. 그저 이 상황이 다 마음에 차지 않아 덴마크는 썩어가고 있다고 부르짖는 중2병 환자. 그렇게 혼자 비극을 짊어지고 고뇌하는 상처받은 영혼을 오필리어에게 위로 받는다. 어쩌면 이 순간이 햄릿에게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죽은 아버지의 망령이 나타나서 홀랑 깨버린다. 그래 자긴 억울하게 죽었는데, 마누라는 원수와 한 이불을 쓰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도 연인의 품안에서 안식을 찾는게 고까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참 죽이는 타이밍이다.
안그래도 심란한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이 전하는 진실에 세상이 무너지고, 발밑이 뒤집히는 충격을 받아서, 이 뒤에 보여주는 그의 광기는 미친 척하는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에 가시오! 라는 햄릿도 보면 원작의 햄릿은 오필리어를 상처주려고 그런다기 보다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느끼는 환멸의 감정, 순수한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오필리어에게 비아냥대는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때 햄릿은 폴로니우스와 클로디어스가 숨어서 지켜본다는 걸 알지 못했다. 하긴 원작의 오필리어는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그 자리에 나왔기도 하고.
뮤지컬 햄릿에서 햄릿은 자기가 오필리어에게 쓴 연애편지(;)가 들킨 것에 대해 부끄럽고, 짜증이 난 상태에, 그걸로 조롱당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그리고 그걸 오필리어에게 쏟아부으며 수녀원에나 가라고 버럭질. 이건 명백하게 오필리어를 상처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러니 넌 개객끼! 그래놓고 뒤돌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고뇌마저 오필리어를 상처줘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자기 문제로 괴로워하는 거다.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남을 상처주는 상 찌찔이 같으니라고.

- 원작을 읽으면서도 좀 그랬던게. 햄릿은 폴로니우스를 살해했다. 그런데, 일국의 왕자라고 무슨 처벌도 안 받고 국외로 빼돌려진다는 것. 물론 클로디어스는 영국왕에게 햄릿을 죽여달라는 편지를 동승시켰지만, 그건 폴로니우스 살해에 대한 벌이 아니라, 눈엣가시인 햄릿을 제거하여 왕좌를 굳건하게 하기위한 대비책이었다. 일국의 재상이 죽었는데, 그게 왕자라고 이렇게 처리가 되다니!!
물론 햄릿은 영국에 가지도 않았고, 중간에 돌아왔지만, 하여간 실성한 오필리어를 방치한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뭐 도망간 건 도망간 거지만, 이 경우는 추방에 가까우니까. 그렇기에 돌아와서 무덤지기를 만나 유쾌한 만담을 나눠도 뭐 그러려니가 되는데, 뮤지컬 햄릿에선 이 부분이 싹 빠져있으니, 실성한 오필리어가 자살한 씬 뒤에 무덤지기와 희희낙락거리는 걸 보면, 저놈은 대체 뭐 하는 놈이야 싶어지는 거다. 그러더니만 오필리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는 몰라라니, 에라이!!

- 햄릿이 작게는 한 가족의 잔혹사, 크게는 한 나라의 왕조의 몰락을 다루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 패턴이잖아. 그래서 이렇게 재미지나?

산다는 게 연극같아
온통 거짓말로 모두 가려져있어
피가 끓고 울고 웃기도 하겠지
지금 이 순간을 후회없이 즐겨
오늘 밤을 위해───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3(일) 18: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전동석,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어스 - 윤영석, 폴로니우스 - 김장섭

은릿 첫공 멤버로 다시 한 번 관극. 오늘이 햄릿 첫 2회 공연일이었고, 저녁공이었는데, 확실히 첫공의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있었다.

윤 클로디어스는 감탄스러운 성량과 노래였지만, 아무래도 넘버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클로디어스가 거트루트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거 같다. 햄릿이 손톱 밑에 가시 같이 군다해도, 그 화풀이를 거트루트에게 향하는 건 아니지 싶다. 원작이 그렇다면 모르겠는데, 원작에서도 클로디어스는 폴로니우스에게 히스테리를 부릴지언정, 거트루트 앞에서는 점잖은 체를 했더란 말이지. 형을 사랑했지만, 그녀를 더 사랑했다면서, 클로디어스도 그저 왕좌가 탐이 났던게 아닐까...라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지 싶다.

영숙님의 거트루트는 여자로서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 와중에 모성을 끝까지 지키는 캐릭터를 보여주셨는데, 그 해석이 정말 설득력있고, 참 좋았다. 전에 봤던 정극 햄릿에선 거트루트를 여왕의 자리에 집착하는 캐릭터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그래서 햄릿에게도 어머니로서보다는 여왕으로 군림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해석이었지만, 뮤지컬 햄릿에서의 거트루트는 사랑에 목숨 건 여자로 나오니까. 그런데, 거트루트도 클로디어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하면, 난 그녀는 그저 '사랑받고싶다'는 감정에 충실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숭배해줄 대상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어머니로서의 모성을 포기하지 않은 모습에서 더 많은 공감이 갔다. 어떻게든 아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를 쓰지만, 이미 핀트가 어긋나서 그 마음이 햄릿에게 닿지 않았다. 이 모든 사단이 자기 때문이라 자책하던 그녀는 결국 독배라는 걸 알고 마신 게 아닐까.

은릿이야 뭐 공연간 편차 없는 꾸준한 배우라, 오늘도 역시 훌륭했고, 점점 더 대담해지고, 광기가 더해지는 것 같더라. 표정이 아주 번뜩번뜩, 눈빛도 형형하고. 노래는 말해 뭐하겠는가. 여기까지 가능할까 싶은 영역까지 울림이 풍부한 후음이 쭉쭉 뻗어올라가고, 그런가하면 파르르 떨리는 속삭임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목소리가 정말 감탄스럽다. 그리고 정말 은릿 목소리가 내 취향이라 그런가, 떼창 속에서도 은태 목소리는 왜이리 선명하게 귀에 들어오는지.
은릿이 표현하는 햄릿은 결벽하고, 자존심이 높고, 예민하고, 찌질하고(;), 우유부단하고, 그리고 어딘지 모성 본능을 자극한다. 이게 그러니까 햄릿 개객끼를 외치면서도 아주 미워할 수 없는게 바로 저 감싸주고 싶어지는 부분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끝까지 고민하고, 죽는 건 단지 잠드는 것, 그뿐. 어쩌면 난 꿈꾼 걸까..사는 것, 죽는 것 그게 뭐지? 라며 죽어가는 햄릿처럼 은릿도 아직은 조금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이 표현해야 할 햄릿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워낙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그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드러내야하고 강약조절을 해야할 지 아직은 고민 중인 것 같다. 뭐 난 지금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지만, 좀 더 파고들어서 만들어낸 은릿을 기대하고있다.

동석 레어티스는 진짜 1막에서 혼자 런웨이를 걷고있고, 어찌나 비주얼이 혼자 빛이 나시는지. 게다가 그 흰 코트 느무 멋져서, 미모 포텐 제대로 터져주시고. 오필리어와 함께 부르는 Sister는 가사가 아무리 들어도 이게 남매가 부를만한 노래인가 싶고. 2막에서는 감정 폭발에 성량도 폭발. 특히 오필리어의 죽음 앞에 햄릿이 따라죽겠다는 둥 할때 가식떨지마라며 진짜 한대 칠 기세로 달려드는 동레어티스에 완전 이입해서 잘한다~ 응원하고 있;; 그래놓고 나중에 아무리 죽어간다고 해도 햄릿을 향해 '형제여' 소리가 나오는 지는 지금도 이해불가;

오늘 제일 감탄스러웠던 오필리어의 윤공주 배우.
사실 어제까지도 거트루트에 좀 밀린다 싶은 감이 있었는데, 그게 오필리어라는 캐릭터 자체가 좀 순종적이고 강하게 어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서, 배우의 역량과 별개로 눈에 덜 들어와서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오늘 실성한 오필리어는 진심으로 애처롭고, 너무나 가여웠다. 촛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해맑지만 어딘가 섬뜩한 미소. 그리고 슬퍼하는 레어티스를 보며 울지 말라며 안아주는 장면에서 그 미소띤 얼굴로 눈물 한방울이 툭 떨어지는데, 그녀의 처지가 너무 안됐어서 연민의 감정이 끓어올라 눈물이 나더라. 햄릿 개객끼!! 

김장섭 씨는 폴로니우스 보다 무덤지기 쪽일 때가 더 좋더라. 물론 댄디한 폴로니우스도 좋지만, 이쪽은 살짝 광대스러운 김성기 씨 쪽이 더 내 마음에 들고, 무덤지기도 사실 비주얼은 김성기 씨 쪽이 더 무덤지기에 가깝지만, 노래에서 걸쭉하게 소울 풍으로 불러주시니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김장섭 씨는 아예 모짜렐라;; 해골을 은릿 얼굴에 가져다 대셔서 아주 배꼽을 잡았다.

뮤지컬 햄릿에서의 햄릿이라는 캐릭터는 진짜 미친놈에 찌질이인데, 왜 이리 관대할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커튼콜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게 연극같아!


저 첫소절이 들려오면 가슴이 설레고, 마지막에 도개교인 성문이 닫힐 때까지 들려오는 '오늘 밤을 위해~'를 듣고나면 그냥 닥치고 찬양밖에 안나오니까;; 역시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건가.

- 오늘도 로비엔 로버트 요한슨 연출을 비롯한 원작 크리에이티브 팀이 출몰. 미국 가신다더니 그전에 한 번 더 보러오셨을까나.
- 다른 후기 읽다가 깨달았는데, 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그냥 자체 소거시키나보다. 태권브이(본 사람만 앎) 나 랩에 대한 건 그냥 무시하고 있으니;;
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2(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어제 첫공이라 나도 객석도 어수선하고, 배우들도 들뜬 분위기였는데, 어제보다는 좀 정돈이 된 것 같았던 두번째 관극.
더블 캐스팅은 싹 다른 분들로 바뀌었는데, 범사마 님은 역시 진리십니다. -_-乃 윤 클로디어스 때는 제대로 파악 안된 가사들, 멜로디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햄릿이 연극으로 밝힌 진실 앞에서 고뇌하는 연기가 정말 갑. 다만, 거트루트와는 그다지 사랑하는 사이같지는 않았다. 햄릿이 짜증나더라도, 거트루트에게는 좀 지고 들어가줘야하는 거 아닌가. 사랑해서 형도 죽였다면서 어쩌면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나 그래.
그리고 김성기 폴로니우스 역시 훌륭하십니다. He's crazy도 좀 더 재즈풍으로 소화해주셨고, 춤도 민망하지 않더이다. 태을 레어티스는 시작 전엔 동석 레어티스보다 더 기대를 했는데, 아직까진 so~so~ 그래도 동석 레어티스보단 오필리어의 오빠처럼 보였다. 동석 레어티스는 오빠로 안 보이는 건 둘째치고, 너무 연인처럼 보여서;; 난 남매근친은 쥐약이라고...이쪽은 그냥 끈적이지 말고 산뜻하게 가줬음 하네.

원작에서도 햄릿이 딱히 오필리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오필리어가 죽고난 다음 햄릿의 태도를 보고 사랑했....나?? 싶었는데, 뮤지컬 햄릿은 진짜, 햄릿 개객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설정이다. 아니, 지가 힘들 때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취하고 나선 아버지의 복수를 한답시고 잔인하게 내치고, 상처주고는 죽고나서 사랑했다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믿느냐고. 레어티스가 미쳐 날뛰는 게 백번 이해가 되고도 남지.

그런데, Let's rise above this world에서의 은릿의 연기가 꽤 마음에 든다는 게 문제; 내 피를 팔아 당신의 갈증을 풀어드리겠다는 오필리어의 고백에 은릿은 진짜 너무너무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손을 뻗어 오필리어의 손을 찾고, 오히려 오필리어가 리드하는 중에 아주 간절한 마음을 담아 터져나오는 '사랑해─'가 참 반칙이란 말이지. 그리고 침실로 이끌 때는 괴로운 표정을 지우고 오필리어를 향해 웃어준다. (그러니까 나쁜 남자!!)

원작과 달리 햄릿은 오필리어와 함께 한 잠자리에서 선왕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하여간 뮤지컬 햄릿의 주제는 포스터에 쓰인 것처럼 "욕망으로 얼룩진 치명적 사랑"이니까) 그래서 햄릿들이 상반신 누드에 아랫도리에 이불을 둘둘 말고 돌아댕기는데, 아우 서비스가 참 훈늉하십니다ㅋㅋㅋ 선왕 살해에 대한 진실을 듣게된 햄릿이 반라로 미치광이짓을 하고 돌아다니다, 성루에 올라 Let's rise above this world 후렴구를 rep.를 부르는데, 피를 토하는 것처럼 절규하며 지르는 노래가 하반신만 이불로 감싼 비주얼과 함께 자꾸 JCS를 떠올리게 한다. 진짜 언젠가 은태가 겟세마네를 불러주지 않으려나. 참 감탄스럽게 깨끗하게 뽑아주니 그냥 절하고 싶은 심정.

이후 미치광이 햄릿을 연기하는 은태의 연기도 참 마음에 든다. 눈이 아주 형형하게 빛나고 표정에는 냉소가 가득하다. 살을 쪽 빼서 턱선이 더 날렵해져서 옆 모습 실루엣이 조명을 받으면 베일 듯 날카롭다.
은릿은 초반 중2병 환자 -> 질풍노도의 반항 청소년을 거쳐 선왕 살해의 진실을 알게 된 뒤, 감당이 안되는 진실 앞에 정신줄을 잡았다 놨다 이게 미친 척인지 정말 미친 건지 구별이 안 가는 상태를 보이다 급기야 '나는 누구인가'라며 자아 상실의 위기까지 겪는다. 그러다보니 자기자신 밖에 보이지 않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어서 자신을 주위로부터 고립시키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호레이쇼는 참 좋은 친구다. (그게 우정인지는 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좀 묘하긴 해도;)
이 예민하고 생각많고 자존심 높은 자기만 아는 날 때부터 왕자님이 결국엔 오필리어를 상처입히고, 착각으로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오필리어를 실성하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도 햄릿 개객끼;
게다가 실성한 오필리어는 '아가'라고 임신을 암시했다고. 햄릿 개객끼;
그래놓고 오필리어 죽었다고 나타나서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나를 용서해줘' 그럼 이 개객끼야 소리밖에 더 나오냐고. (아, 근데 그래도 햄릿은 별로 감정이입할 여지가 없는 개객끼인데도 좋았다니까;; 햄릿에게 옮았을까, 이 우유부단;)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 장면이 생각보다 박력이 떨어져서, 무거운 검이 아니라, 레이피어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좀 더 경쾌해졌을 거 같은데.

하여간 웃긴게 뭐냐면, 이 뮤지컬을 보고나면 햄릿이 이렇게 재미난 극이었냐 하는 감상이 남는다는거다.
분명히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 아니냐며. 그런데, 보고나면 아~ 재밌었다, 그래서 또 보고싶다...는 감상이 남는다는 것. 그게 연출자의 의도였다면 성공하셨음요. 난 솔직히 어제 1막 초반 보면서는 1n번 잡아놓은 표가 살짝 아까울 뻔 했는데, 다 보고나서는 다음주 3차 티켓팅도 참전이구나 했다. 아, 진짜 재미지는 햄릿이라니.ㅋㅋㅋ

- 단 2회만에 커튼콜에서 기립이 나왔다. 아니, 기립하고 싶어지는 가창력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