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5 (일)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김준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샤토트를 드디어 봤다. 이로써 삼토트도 모두 클리어. 마지막으로 승현 돌프까지 클리어하면 엘리자벳 전캐를 찍겠군. 구하면 얻으리라고, 2층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아서; 1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 내의 좌석이 구해지지 않아서 거의 포기했는데, 운 좋게 자리가 구해져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자체 첫공이 막공될 듯.
특이하게 샤토트 회차에서는 일본어로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일본어 안내하는 분 목소리가 좀 무뚝뚝하게 들려서 좀 그랬다. 내용 자체도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딱딱한데, 좀 상냥한 목소리로 해주지 싶다가도, 내가 일본에서 안내 방송하는 언니들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나긋나긋한 음성에 너무 익숙한 건가 했다.
음향은 근래 들은 중에 가장 좋아서, 이게 마이크를 키워서 잘 들리는 건지, 오묘한 블퀘 1층은 중앙 앞 블록보다 사이드 중간이 더 소리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 샤토트는 확실히 차별화된 색다른 '죽음'이더라. 존재 자체가 판타지. 등장하는 순간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감이 있더라. 그리고 류토트와 송토트를 볼 때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모든 존재를 멸하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두려운 것이 곧 악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샤토트는 죽음의 속성 중에 어둡고, 邪스러운 부분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요사스럽게 사람을 홀리고 매혹하는 죽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다 빨릴 것 같아서, 마치 꽃 근처에 가면 꽃이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죽음이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의 다리에서 등장할 때도 다른 토트들과 확연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게 만화라면 '사사삭'이라는 의태어가 붙을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다. 음색에서도 쇳소리가 많이 섞인 목소리라 호불호가 꽤 갈리겠지만,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는 굉장히 잘 어울리더라. 사실 보러 가기 전에 가장 걱정한 부분이 목소리였는데, 생각보다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발성이라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뭐, 가끔 저음부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된다거나, 웃음소리 같은 건 좀 간사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그 분위기와 음색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장면에서 조종치는 걸 봤는데, 전에 송토트는 왼편 리프트에서 등장해서 줄만 잡아당기는 걸 봤는데, 샤토트는 아예 공중에 매달려서 등장하는 거 보고 식겁했다. 이것이 바로 20대 죽음의 패기!!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춤. 진짜 이제까지 송토트, 류토트가 커튼콜에서 보여준 건 그냥 율동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는 진짜 댄스! 그루브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현란한 몸놀림. 이게 바로 현역 아이돌의 위엄!! 오오~ 저 발 구르기가 이렇게 박력 넘치는 쿵쿵쿵이었단 말인가 감탄하면서 봤다. 사실 보러 가기 전에 이 부분의 연출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랬는데, 극 안에서 붕 뜬다는 느낌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러니까 마지막 춤만 혼자 극에 섞이지 못하고 뜬금없는 아이돌 댄스처럼 보이려나 싶었는데, 샤토트가 미리 잡아놓은 분위기나 이런 것과 어우러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저 화려하고 퇴폐미 가득한 무대하고도 무리 없이 섞여 들어가더라.
재미있었던 건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랬겠지만, 움직임이나 중간마다 집어넣은 숨소리(스읍~ 하 같은 거), 캬악~하는 거 모두 고양이과의 맹수를 떠올리게 해서, 어린 루돌프가 '어젠 고양일 쏘아 죽였죠.' 하는데, 어이쿠, 아가, 너 잘못 건드렸어! 도망가! 했다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판타지스러운 샤토트와 다크한 은케니가 만나니까 그 둘이 같은 속성이라는 데서 오는 케미스트리도 상당하더라. 전부터 느낀 건데, 다른 루케니들이 백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루케니라면, 은케니는 백년 전의 자아는 진작에 잃어버리고, 백년 동안 반복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런 루케니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마물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고. 최케니나 용케니는 그래도 어디 한구석 선량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은케니는 과연 '빛'인 부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새까맣다. 유쾌하다는 듯 웃을 때도 그 웃음에서 악의가 뿜어져 나와, 가끔은 죽음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비칠 때가 있는데, 이게 샤토트랑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너희 둘은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들더라.

- 이날 옥엘리는 바로 전날의 참한 아가씨 버전에서 다시 말괄량이 버전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게 요제프 따라가는 건지, 죽음을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민제프와 함께일 때는 어리광이 배로 느는 것 같단 말이지. 첫 데이트 할 때도 요제프가 열심히 황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배 타러 가자고 정신이 딴 데 팔려있고, 배에 오른 민제프가 냉큼 앉는 거 보고 에스코트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배 타려고 하고, 물장난 칠 때 반짝이도 엄청 많이 뿌리더니, 뒤에 한 번 더 민제프 얼굴에 뿌리더라. 세상 무서운 게 없는 명랑하고 기운찬 아가씨.

이 활기차고 자유로운 아가씨가 황실 생활에 지쳐서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새장 속에 갇힌 새의 파닥거림을 보는 느낌이다. 창살에 부딪혀 날개가 꺾이고, 점점 위축되어 날갯짓도 미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러다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죽음에 가장 강렬한 유혹을 받은 다음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벼랑 끝까지 가봤기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옥엘리와 샤토트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진짜 박진감 넘치는 한 판 승부더라. 재밌는 건 둘이 밀고 당기고가 아니라, 서로 당기고, 서로 밀고 있더라는 거. ㅋㅋㅋ 밀어낼 땐 둘이 바싹 붙어 서서 손바닥 마주하고 서로 밀어내는 데, 둘이 힘이 대등해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딱 붙어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당길 때는 좀 떨어진 거리에서 어느 한 쪽으로 끌려가는 법 없이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는 그런 그림이다. 마주한 거리는 가까우나, 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인력(引力)이 아니라 장력(張力, tension)이라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 오랜만에 만난 승돌프. 요즘 동돌프가 연기에도 물이 올라서 잔상이 남을까 했는데, 승돌프는 승돌프, 동돌프는 동돌프더라. 특히 마이어링 왈츠에서 승돌프의 몸놀림은 보고 따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유단자의 위엄! 이기도 하지만, 동돌프가 죽천들과 격투를 벌인다면, 승돌프는 춤을 춘다. 움직이는 동선의 유려함, 죽천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한 신체, 동돌프를 보면서는 이 장면이 춤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는데, 확실히 몸 쓰는 게 남다른 승돌프는 이게 마이어링 '왈츠'라는 걸 일깨워준다.

- 전석 매진인 객석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배우들이 조금씩 다들 업된 상태라는 게 느껴졌고, 2막 Kitsch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오더니, 은케니는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도 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넘버 끝나고 박수 소리도 우렁차고, 공연 분위기는 확실히 좋더라. 게다가 이제 공연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이젠 못하려도 못할 수 없는 그런 공연 퀄리티다 보니 커튼콜에서의 환호와 갈채가 넘쳐나는데, 샤토트 등장하니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이 굉장했다. 선영 엘리와의 조합도 보고는 싶지만, 이미 티켓은 다 동났고, 그래도 영 못 볼 줄 알았던 샤토트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4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점점 게을러져서 큰일이다. 후기는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서, 그때 그때 써둬야 기억도 좀 남아있고 한 것을; 7일 이후로 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엘리자벳. 그동안 선영 엘리만 주구장창 만났다고, 이후 잡은 스케줄은 죄다 옥엘리인데, 이날이 그 시작일. 엘리 스케줄 짠 사람은 나랑 면담좀 -_-` 선영 엘리 - 은케니 조합이 25일 마티네를 끝으로 없다는 게 말이 돼~~~~~~~~~~~~~~~? (feat.은케니) 아니, 옥엘리가 싫다는 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몰아서 스케줄을 짤 수 있는가 말이지. (뒤늦게 4월 7일이 선영 엘리 - 은케니 자체 막공이 되버렸다는 사실에 패닉 ㅠ.ㅠ)

- 참, 할 말 없는 스케줄 때문에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옥엘리는 여전히 건강하고, 아름답더라. 무엇보다 이날 왈가닥스러운 면모가 좀 줄어들고, 얌전한 공주님 분위기가 좀 더 살아서 그게 참 좋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옥엘리가 완전 고삐 풀린 망아지였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걸 수도 있지만, 움직임이 차분해지니까 우아함이 살아나서 확실히 귀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같더라. 그러면서 연기에서도 기존 보다는 좀 더 폭이 넓어져서, 난 이날 옥엘리 연기에 완전히 만족해서, 이후로도 이만큼만 해준다면 딱히 불만은 없을 듯.

원래도 목소리가 참 곱고, 노래가 안정적이라 그런 면에서는 믿고 보는 옥엘리인데, 이날 '나는 나만의 것'에서 쳐연함이 확 늘어서 시작할 때 여리고 청아한 목소리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노래를 하는데, 얼마나 애처롭던지. 그저 죄가 있다면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게 죄지. 선영 엘리는 그래도 후반부로 가면서 이렇게 살지는 않겠다고 강단있게 일어서는 느낌인데, 옥엘리는 아직 어떻게 해야할지 답이 안 나온 상황처럼 보인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해? 어떻하지? 이렇게 사는 건 싫은데 ㅠ.ㅠ 라는 느낌. 그래서 더 가엽고, 그 처지가 불쌍해서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1막의 마지막 '나는 나만의 것 rep.'에서도 선영 엘리와 옥엘리는 참 많은 해석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선영 엘리가 여제로서 각성하고 그 누구도 다가오지 못할 위엄을 두르고 등장하는 것과 달리, 옥엘리는 여기서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서 등장한다. 선영 엘리는 요제프의 목소리 따위 안들려 상태였던 것 같다면, 옥엘리는 몸 단장하면서도 요제프의 음성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옥엘리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서, 물론 선영 엘리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옥엘리가 유난히 이 장면에서 자체 발광 미모라, 이게 어깨를 드러내고 안 드러내고의 차이려나.

2막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옥엘리의 치마질은 정말 전투적이라 물러설 때도, 휙휙 돌리는 치맛자락에 토트 후려치는 거 아닌가 싶고, 빙글빙글 턴도 잘 돌고, 게다가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패기가 정말 대단한데, 더 놀라웠던 건, 마지막에 자신을 끌어당기는 토트의 손을 뿌리치는 것도 아니고, 단호하게 잡아 떼어내는 동작을 보고 어떤 토트가 와도 옥엘리에겐 이기기 힘들겠구나 싶더라.

이날 옥엘리의 베스트 송은 '아무것도'였는데, 시작부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바로 정면에서 보는 바람에 더 깊이 감정이입해서 봤던 듯하다. 선영 엘리의 우울함은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데, 옥엘리의 경우는 발그레한 두 뺨이 사랑스러운 건강한 소녀가 팔자에도 없는 황실에 시집와서, 웃으면서 말속에 칼을 품은 귀족들에게 치이고, 무시당하고, 시어머니의 음흉한 계략에 휘말려 점점 비틀리고 굴절되는 과정이 보여서, 그런 점에서 더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사실,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의무는 내팽개치고 자유롭게 떠돌면서, 뭐가 아쉽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이날 옥엘리를 보면서는 그래, 저런 환경이었으면 누구라도 차라리 미쳐버리길 소원하지 않았을까 하고 공감이 가더라.

- 이날 송토트는 그새 또 연기 노선이 바뀌었는데, 이렇게 매번 다른 노선을 들고 나오니, 참 보는 재미가 있는 배우다. 목 상태는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름 티 안나게 조심스럽게 잘 부르다 1막 그림자 송에서 살짝 삑이 나서, 끝 부분을 올리지 않고 내려서 불렀는데, 색다른 느낌이더라.

무엇보다 이날 가장 놀랐던 건, '마지막 춤'에서 커튼콜에서 추던 춤을 춰서 깜짝 놀랐다. 사실 춤을 췄다기 보다는 살짝 리듬을 타면서 발 쿵쿵 구르는 동작 정도만 선보인 게 다인데, 그래도 극 중에는 안 추던걸 춰서 거기서 이미 헉! 해버렸달까. 이날 송토트는 근래에 꽤 자주 시도하고 있는 나쁜 남자 컨셉이었는데, 그 강도가 좀 더 세져서 이게 옥엘리와 페어라서 저런 노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막의 베일씬에서 어떤 감정을 보여주려나 또 흥미진진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음, 베일 씬은 여전히 통곡할 기세의 죽음이라서, 이게 갑자기 어떻게 보였냐면, 마음은 순정인데, 내 뜻대로 안 되는 너를 차갑고 거칠게 대했지만,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고~ 뭐 이런 츤데레 죽음;

- 동돌프는 3월 말부터 매 공연 레전드 갱신하는 중이고. 거울송에서의 감정선이 진짜 말도 못하게 깊어졌는데, 근래들어 살도 좀 빠졌는지 얼굴선이 날카로워진 듯하고, 특히 이날은 퀭한 눈이 너무너무 인상 깊었는데, 저 애정결핍 기아에 허덕이는 덩치만 큰 아이를 왜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나요~ (feat.동차르트)
그런데, 이 장면에서 루돌프 등장해서 노래할 때 루돌프만 보느라 몰랐는데, 거울 뒤에서 옥엘리는 가만히 앉아있는 게 아니라, 깨알같이 연기하고 있더라. 머리를 짚었다가, 손가락을 깨물고 시녀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머리나 빗으라고 하는데, 옆에서 루돌프가 아무리 절절하게 호소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안들리겠구나 싶었다. 옥엘리는 '당신처럼 rep.'에서부터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루돌프의 음성은 그저 귓전을 맴돌다 흩어질 뿐, 자신의 아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신경 쓸 여유가 전혀 없다. 그러다 아들을 잃고나서야 명확한 생각을 찾(feat. 매든 박사)게 되었는데, 그 타이밍이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윤제프님은 언제나 달달한 목소리로 귀를 녹이시고, 정화 소피는 이날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니라 훨씬 듣기 편했다. 부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시길. 그렇게 하셔도 며느리 쥐잡듯이 볶아채는 시어머니 포스는 어디 안 갑니다. 그리고 벨라리아에서 태원 소피 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들에게 버럭 역정내시는 게 강해지셔서 좋았다. 사실 이 장면 볼 때마다 던져준 미끼 덥썩 문 게 누군데, 어디와서 화풀이냐 싶기도 하다.

- 그리고 이날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사라졌던 은케니의 디테일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 황제의 집무실에서 탄원자의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죽천들과 함께 팔 들어올리는 동작 할 때 속으로 얼마나 반갑던지. '계획이란 소용없어' 에서 엘리자벳 손등을 볼에 가져다 대는 건 사라졌지만, 대신 엘리와 요제프에게 손 키스를 던지고 두 사람의 손을 맞잡아주는 걸로 바뀌었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부분 판관의 질문에 오를레앙 공을 살해하려고 '몇 번을 말해!' 버럭 하는게 돌아와서, 이게 가장 좋더라. 다른 건 몰라도, 저 '몇 번을 말해!'는 프롤로그의 '정말로 원했다니까!'와 대칭을 이루는 수미쌍관의 구조라서, 이게 다시 살아나줘서 다행이다.
게다가 며칠 좀 쉬었다고 목 상태도 쩌렁쩌렁, 프롤로그에서부터 그 쨍한 날카로움이 묻어나오더라. 노래야 뭐 매 공연 기복없이 잘해주고 있는데, 그 와중에 마담 볼프 살롱에서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분을 확실하게 강조해서 불러주는 디테일 추가한 것도 참 좋더라.

하여간 이렇게 마무리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배우가 연구하고 파고들어서 만들어낸 캐릭터가 전체적인 연출 노선과 어긋나는 거라면 모를까, 웹상의 평가 하나 보고 가위질 할 시간이 있거든, 괴상한 번안이나 비문 교정에나 신경 쓰기를.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07 (토)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전반에 걸쳐 음향 상태 좋았는데, 다만 카페 씬에서 아마도 신문 휘두르다 마이크 장치에 문제가 생긴 듯 튀는 소리가 좀 났지만, 지엽적인 문제였던 듯하고, 배우가 박자를 빨리 들어가거나, 놓쳐서 오케스트라와 합이 안 맞은 부분이 좀 있었는데,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넘버에서 선영 엘리가 '당신 어머니나 찾아가시죠.'를 반박 빨리 들어가서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 맞춰 들어갔고, 2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송토트가 '뭘 망설이지'를 박자 놓쳐서 대사 처리했다. 그리고 앙상블 넘버에서 조금 어긋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이번 주에 김송은으로만 연속 세 번을 달리다 보니 사실 세 공연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역시 이런 게, 무대 공연의 묘미겠지. 게다가 아래 보듯이 조연 배역도 더블에 트리플을 끼얹어서 요제프, 소피 대공비, 루돌프가 조합이 달라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있고. 

                      엘리자벳/ 죽 음 /루케니/요제프/ 소 피 /루돌프/어린 루돌프
12. 04. 03(화) - 김선영/송창의/박은태/민영기/이태원/김승대/김효준
12. 04. 06(금) - 김선영/송창의/박은태/윤영석/이정화/전동석/김효준
12. 04. 07(토) - 김선영/송창의/박은태/윤영석/이태원/전동석/탕준상 

무엇보다 은케니가 6일 공연부터 깨알 디테일을 삭제하고, 살짝 톤다운 된 감이 있었는데, 그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 아니라, 잘 달리는 말 고삐를 잡아채는 쪽인 듯해서 마음이 안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은케니 특유의 번뜩임, 날카로움이 죽은 건 아니라서,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바람에, 오히려 블랙 은케니로 제대로 각성해서 죽음보다 더 다크 포스 넘치는 루케니더라. (이건 또 이것대로 무대 광풍(@유리 가면)이라고 저격당하는 거 아닐는지ㅋㅋㅋ) 디테일 뺀 부분마다 무대 한편에서 조용히 형형한 안광을 빛내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어찌나 얼음장인지. 웃음기 쫙 빼고 빈정거릴 때마다 주위 온도가 1도씩은 내려가는 것 같아서 으스스했다. 게다가 한껏 눌러놨던 걸 Milk에서 폭발시키듯이 터트리는데, 매 공연 이 넘버 만큼은 잡고 간다는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서 레전 찍는 Milk지만, 참 귀신같다고 할지, 목소리 하나로 이만한 감동을 주는 배우가 흔치 않다는 감탄을 다시 하게 되더라.

- 이날 선영 엘리는 평소보다 진폭이 커진 연기를 보여 주셨는데, 여릴 땐 더 여리게, 강할 땐 더 강하게, 자신감 넘칠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만해지고, 무너져내릴 때도 더 처절해져서 그 격차에서 오는 낙차 폭 큰 연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셨다. 개인적으로 이날 선영 엘리의 베스트 송은 하루도 안 좋은 날이 없었던 '나는 나만의 것'과 '내가 춤추고 싶을 때'였는데, '나는 나만의 것'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상처를 받고, 앞날에 대한 절망감 속에 주저앉았던 한 가녀린 소녀가 다시 일어서며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온 마음과 영혼을 걸고 맹세하는 모습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게 옥엘리는 타고난 건강함(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이 베이스로 받쳐주다 보니 비장한 느낌이 좀 덜한데, 선영 엘리는 부서질 듯 가냘픈 몸매에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이라는 게 보여서, 그런 연약한 소녀가 강철같은 의지를 내보이는 간극이 참 짜릿하다.

그리고 여제로 다시 태어나 승리감에 도취해 부르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보여주는 하늘을 찌를듯한 자신감이 또 대단해서, 송토트는 시작부터 전의 상실,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겠어.'가 아니라, 거의 '당신의 발 앞에 자유를 갖다 바치겠습니다.' 처럼 보이더라. 그래도 전에는 밀어서 안 되면, 당겨보자는 정도는 보여줬었는데, 이날 원체 선영 엘리가 강한 여제 모드여서;
선영 엘리가 이렇게 강한 여제로 노선을 잡으니까, 송토트도 이날 나쁜 남자 모드를 섞었는데, 그게 선영 엘리의 연기의 진폭이 워낙 크다 보니 크게 두드러지지 못하고, 또 극이 진행되면서 루돌프의 죽음, 엘리자벳의 죽음을 거쳐서 자기가 먼저 통곡할 것 같은 감정의 흐름과 좀 대치되는 감정선이라 어떻게 좀 일관성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 황제의 자리에 있기엔 사람이 지나치게 좋아서 탈인 윤제프. 엘리에게 한눈에 반한 연기는 갈수록 설득력이 강해지면서 아주 윤제프 주위로 하트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이는 듯하다. 재미있는 게, 엘리에게 청혼할 때 목걸이를 꺼내 보이는 장면에서 엘리가 '무거워~'하고 대답하면, 민제프는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기는데, 윤제프는 그러질 못하고 당황한다. 그러다 엘리가 웃으면서 '너무 아름다워'라고 하면 그제야 표정이 풀어지는데, 두 분 요제프가 서로 이렇게 다른 캐릭터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엘리와 소피가 고부 갈등을 일으켜서 중간에 끼어있을 때, 민제프는 '무슨 일이야? 왜 그래?' 가 먼저라면, 윤제프는 '괜찮아, 진정해'라고 토닥이며 안심시키는 행동을 보여줘서 좀 더 따뜻한 남편이라는 게 보인다. 심성이 따뜻한 윤제프는 누구에게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만, 상냥함만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날 특히 윤제프와 선영 엘리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에서의 화음이 참 눈물날 만큼 슬프고 아름다웠는데, 선영 엘리가 루돌프의 범선을 호수에 띄울 때, 마치 루돌프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슬퍼하는 디테일이 추가되면서, 윤제프에 대한 마음이 아주 떠난 건 아니지만, 결코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거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 요즘 연기에 물이 오른 동돌프가 이날 보여준 연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송토트의 연기에 맞춰서 시선 처리나 고개를 돌리는 속도 같은 걸 맞춰주더라는 거. 이게 류토트와 케미스트리가 절대적으로 좋다 보니, 연기 동선, 시선 처리, 음악에 맞춰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 같은 게 다 류토트에 맞춰져 있어서, 송토트와는 시선을 맞추거나 할 때 합이 잘 맞지 않았는데, 그걸 동석이가 다 맞춰왔더라. 이게 가장 티가 나는 부분이 어디냐면,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후주가 끝나가는 부분, 마지막에 일렉 기타가 촹~ 하고 마무리 지을 때, 류동 페어일 땐, 그 박자에 서로 딱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맞추는데, 송토트는 그 부분에서 아예 시선이 허공을 배회할 때도 있고 그래서 합이 잘 맞지 않았는데, 동석이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는 걸로 바꾸면서 그나마 죽음하고 합이 좀 살아나더라. 동석이도 정말 발전하는 속도가 놀라운 것이 선배 연기자들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무대 위에서 어색한 부분,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성장형의 배우는 지켜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 지난 주는 엘리자벳을 주 3회나 보는 강행군이어서, 사실 엘리자벳을 너무 많이 봤구나 싶기도 했고, 요즘 프롤로그에서 전율을 느껴보지 못한 게 참 오래 되어서 이제 좀 쉬어야 하나 했더니, 은케니가 저리 갑자기 변해서 그 모양을 또 지켜보라고 붙잡는구나. 뭐, 지방 공연 안 간다 생각하고 볼 수 있을 때 봐두는 게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 나으니까.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06 (금)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여러 번 재관람 하다 보니 생긴 폐해이긴 한데, 정적을 깨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은케니를 보고 있으면,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그 앞에 장면이 저절로 머리에서 떠오른다.
죽어서도 안식을 얻지 못한 채, 매일 밤 끊임없이 과거의 체험들이 폭풍처럼 밀려와 그를 몰아치고, 벗어나려고 미친 듯이 날뛰다가 지쳐서 마침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뻗어버린 불쌍한 시지프스가 거기 누워있는 것 같다. 그리곤 허공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번쩍 뜨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광경을 보는 듯하다. 시작부터 관객에게 스산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이 짧은 순간, 일상의 관객들이 곧장 비일상의 극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끌어들이는 기선제압으로 참 귀신같이 짜인 프롤로그라고 생각한다.

엘리자벳은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를 섞은 팩션이라 프롤로그의 역할은 그만큼 더 중요한데, 사전지식이 없는 관객들에게 가장 중요한 엘리자벳, 죽음, 루케니라는 캐릭터를 이 장면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이후 전개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 은케니가 보여주는 루케니는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상태인 지금, 더욱더 엘리자벳을 증오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엘리자벳의 동상을 쓸어보는 동작 같은 거 보면, 한 여자의 이야기를 백 년씩이나 늘어놓고 있다 보니 미운 정도 정이라고 붙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결코 호의적인 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엘리자벳을 암살한 것도, 그녀가 거기 나타났기 때문에 죽였던 거지, 무슨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죽여놓고 보니 그게 죽음의 계획이었다는 걸, 자신도 죽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아닐까. 그리고 매일 밤 잠들지 못한 채 시달리는 이유도 다 죽음이 꾸며놓은 계획에 자신은 거든 것뿐이었건만, 괘씸죄 적용인지, 자신에게만 안식을 주지 않는 죽음에게 적대감을 내비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죽음과 엘리자벳 배틀에서 보여주는 '저 여자가 도대체 뭐라고!!'라는 감정이 그런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 이날 송토트가 창법에 변화를 줘서, 저음을 묵직하게 눌러 부르던데, 그게 살짝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뭐 이건 내 취향이 꾸며낸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 하여간 지난 3일 공연 때보다는 확실히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불러줘서 일단 만족했다. 죽음의 노선이 어떻든 간에 필멸하는 존재들의 지배자이기 때문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서도 힘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송토트의 연기 노선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이게 선영 엘리와 만나서 이런 노선이 된 건지 싶기는 한데, 멜로 노선이 약해지면서 인간 남자 같은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었더라. 그런데 또 어떤 장면에서는 간혹 감정 과잉이 좀 보여서 갸우뚱하게 하는 면이 있는데, 아직 노선 정리가 진행 중인가 싶었다. 차라리 멜로 노선일 땐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던 어린 루돌프와의 만남, 청년 루돌프의 죽음, 마지막 '베일은 떨어지고'에서의 괴로움이 이날 송토트가 잡은 서늘한 죽음의 감정선과 좀 미묘하게 어긋나서, 그게 좀 더 다듬어지면 좋을 것 같다.

- '당신처럼'에서 선영 엘리는 평소보다 한두 살 더 어려진 씨씨를 연기하셨는데, 이게 소녀 시절뿐만 아니라, 극 내내 평소에 느껴졌던 연령대에서 고르게 어려지셔서, 심지어는 '아무것도'에서는 지금 내가 옥엘리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게 감정선까지 이해가 가는 노선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뭐라고 할지, 나는 계속 미묘하게 선영 엘리와 어긋나는 느낌이라서 전에 없이 심드렁한 상태였다. 선영 엘리의 연기나 노래가 모자랐다기보다는 워낙 그동안에 좋은 연기, 감정선을 보여주셔서 그만큼을 기대하다 보니.

특히 인형극 씬에서 선영 엘리는 아예 인형극에 맞춰 연기하는 걸 포기하고, 정극에서 하듯 연기하시는데, 그게 인형극 연기가 제일 자연스러운 윤제프에 정화 소피, 인형 같은 앙상블이랑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너무 혼자 동떨어지셔서, 오히려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드시더라. 그렇게 심리적인 거리가 생기고 나니까 엘리자벳에게 이입하기가 어려워진데다, 크리티컬은 루돌프의 도움을 거절하고 추도식으로 이어지는 감정선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게 컸다.

이날 베스트 연기자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동돌프를 꼽을 수 있겠는데, 아프면 레전드 찍는 특이체질 동석이가 3월 말부터 계속 레전드를 갱신하고 있어서. 감기 때문에 목소리에 비음이 섞여서 원래 비음 싫어하는데도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그 비음은 참 매력적으로 들리더라. 그리고 감기 걸린 상태로도 저리 쩌렁쩌렁 쩔어주는 동석이 성대는 진짜 대단하다. 그리고 연기가 아주 신이 내렸는데, 29일에 봤던 어린아이로 퇴행에서 더 나아가, 아픈 아이 특유의 칭얼거림이랄지, 엄마 아파 죽겠어요, 나를 좀 봐줘요~ 하는 오라가 아주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데, 그걸 외면한 선영 엘리에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는가. 아니, 31일에 선영 엘리가 보여줬던, 자기 눈물에 익사할 것 같은 극한의 우울한 상태였으면 그래도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날 선영 엘리는 내가 얼마나 힘겹게 황실을 벗어났는데, 너 때문에 그 지옥에 발을 들일 수는 없다고 네가 나를 좀 이해해달라고, 루돌프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추도식에서 울부짖으며 루돌프를 부르는 엘리자벳에게 어떤 동정심도 생기지 않더라.

- 어쩌다 보니 계속 태원 소피를 연속으로 만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정화 소피도 그동안에 창법이 참 많이 달라지셨는데, 위에도 언급했지만 내가 꾸며서 내는 목소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정화 소피가 일부러 군인처럼 굵고 단호하게 내는 목소리나 벨라리아에서의 급속하게 늙어서 탁해진 목소리가 좀 힘겨웠더랬다.
연기 디테일도 좀 달라지셨는데, 목소리만큼 무서운 시어머니 포스가 확 늘어서 저런 시어머니라면 씨씨가 아니라, 3년 동안 황후 수업받은 헬레네라도 학을 띠겠다 싶더라. 그리고 음모 씬에서도 대신들을 향해 마구 퍼부어대시는 게, 뭐랄까 태원 소피는 대신들의 무능을 질책하는 느낌인데, 정화 소피는 자기 분풀이처럼 보여서 당하는 대신들이 좀 더 불쌍하게 보이는 효과가. 그런데 이 장면에서 두 소피 분이 좋은 부분이 또 각각 달라서, 라우셔 추기경이 윤리적인 입장에서의 반대를 정치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 바꿀 때는, 태원 소피의 포스 넘치는 '그래.'가 좋고, '묻겠노니!' 할 때는 정화 소피의 톤이 더 마음에 든다.
아, 그리고 라우셔 추기경이 성호를 긋는 디테일을 새로 추가하셨는데, 진짜 사제처럼 보여서 좋았다.

- 이날 은케니는 평소대로 모든 넘버 다 잘 불렀는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특이하게 '마담 볼프의 살롱'이었다. 아니, 평소에도 이 장면에서 은케니는 참 귀엽다 싶기는 한데, 삼케니를 다 찍고 보니, 볼프 여사와 제일 케미가 좋은 게 뜻밖에 은케니였다는 게ㅋㅋㅋㅋㅋ. 난 당연히 최케니가 제일 케미가 살지 않을까 했는데, 이 장면에서 볼프 여사와 커플 댄스를 찐하게 추는 건 은케니 뿐이더라. 그래서 그런가, 다른 두 케니는 그런 느낌이 덜한데, 은케니는 볼프 여사의 새끼 기둥서방귀염둥이 같은 분위기가ㅋㅋ 그리고 볼프 살롱 소개 전에 부르는 '궁정 발레단의 우아한 쁠리에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분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분에서 제대로 성악 발성으로 불러줘서 좋더라.

이날 은케니의 디테일 중에 사라진 게 꽤 많아서 진짜 은케니가 디테일을 빽빽하게 채워넣기는 했었구나 싶었다. 우선 황제의 집무실에서 탄원자의 아들 죽을 때, 죽천들과 같이 한쪽 팔을 들어 올리고, 기각한다 할 때 목 긋는 거 없어지고, 그냥 지켜보다 손인사 던지고 퇴장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리고 '계획이란 소용없어' 에서 엘리자벳 손등 볼에 가져다 대는 거 (난 이거 개인적으로 머슴 삼돌이가 이때 아니면 언감생심 별당 아기씨 섬섬옥수 언제 느껴보겠느냐는 거 같아서 좋아했다. ㅠ.ㅠ) 빠지고, 조각배 씬에서 뱃사공 하면서 연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제스춰가 좀 약해지고, 대사 톤도 전체적으로 살짝 톤다운 되었는데, 가장 아쉬운 건 오를레앙 공을 살해하려고 "몇 번을 말해!!" 버럭 하는 부분이 없어졌다. 이거 프롤로그의 "정말로 원했다니까!!" 버럭과 대칭을 이루는 수미쌍관의 구조에 딱 들어맞는 거였는데, 이건 다시 살려주면 좋겠다.

- 동석이가 감기 걸린 게 걱정인 게, 엘리 팀은 어쩐지 감기는 키스를 타고 옮겨다니는 것 같아서. 요즘 날씨도 변덕스러운데 부디 배우분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길.
이전버튼 1 2 3 4 5 6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