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5 (일)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김준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샤토트를 드디어 봤다. 이로써 삼토트도 모두 클리어. 마지막으로 승현 돌프까지 클리어하면 엘리자벳 전캐를 찍겠군. 구하면 얻으리라고, 2층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아서; 1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 내의 좌석이 구해지지 않아서 거의 포기했는데, 운 좋게 자리가 구해져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자체 첫공이 막공될 듯.
특이하게 샤토트 회차에서는 일본어로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일본어 안내하는 분 목소리가 좀 무뚝뚝하게 들려서 좀 그랬다. 내용 자체도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딱딱한데, 좀 상냥한 목소리로 해주지 싶다가도, 내가 일본에서 안내 방송하는 언니들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나긋나긋한 음성에 너무 익숙한 건가 했다.
음향은 근래 들은 중에 가장 좋아서, 이게 마이크를 키워서 잘 들리는 건지, 오묘한 블퀘 1층은 중앙 앞 블록보다 사이드 중간이 더 소리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 샤토트는 확실히 차별화된 색다른 '죽음'이더라. 존재 자체가 판타지. 등장하는 순간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감이 있더라. 그리고 류토트와 송토트를 볼 때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모든 존재를 멸하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두려운 것이 곧 악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샤토트는 죽음의 속성 중에 어둡고, 邪스러운 부분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요사스럽게 사람을 홀리고 매혹하는 죽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다 빨릴 것 같아서, 마치 꽃 근처에 가면 꽃이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죽음이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의 다리에서 등장할 때도 다른 토트들과 확연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게 만화라면 '사사삭'이라는 의태어가 붙을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다. 음색에서도 쇳소리가 많이 섞인 목소리라 호불호가 꽤 갈리겠지만,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는 굉장히 잘 어울리더라. 사실 보러 가기 전에 가장 걱정한 부분이 목소리였는데, 생각보다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발성이라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뭐, 가끔 저음부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된다거나, 웃음소리 같은 건 좀 간사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그 분위기와 음색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장면에서 조종치는 걸 봤는데, 전에 송토트는 왼편 리프트에서 등장해서 줄만 잡아당기는 걸 봤는데, 샤토트는 아예 공중에 매달려서 등장하는 거 보고 식겁했다. 이것이 바로 20대 죽음의 패기!!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춤. 진짜 이제까지 송토트, 류토트가 커튼콜에서 보여준 건 그냥 율동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는 진짜 댄스! 그루브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현란한 몸놀림. 이게 바로 현역 아이돌의 위엄!! 오오~ 저 발 구르기가 이렇게 박력 넘치는 쿵쿵쿵이었단 말인가 감탄하면서 봤다. 사실 보러 가기 전에 이 부분의 연출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랬는데, 극 안에서 붕 뜬다는 느낌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러니까 마지막 춤만 혼자 극에 섞이지 못하고 뜬금없는 아이돌 댄스처럼 보이려나 싶었는데, 샤토트가 미리 잡아놓은 분위기나 이런 것과 어우러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저 화려하고 퇴폐미 가득한 무대하고도 무리 없이 섞여 들어가더라.
재미있었던 건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랬겠지만, 움직임이나 중간마다 집어넣은 숨소리(스읍~ 하 같은 거), 캬악~하는 거 모두 고양이과의 맹수를 떠올리게 해서, 어린 루돌프가 '어젠 고양일 쏘아 죽였죠.' 하는데, 어이쿠, 아가, 너 잘못 건드렸어! 도망가! 했다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판타지스러운 샤토트와 다크한 은케니가 만나니까 그 둘이 같은 속성이라는 데서 오는 케미스트리도 상당하더라. 전부터 느낀 건데, 다른 루케니들이 백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루케니라면, 은케니는 백년 전의 자아는 진작에 잃어버리고, 백년 동안 반복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런 루케니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마물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고. 최케니나 용케니는 그래도 어디 한구석 선량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은케니는 과연 '빛'인 부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새까맣다. 유쾌하다는 듯 웃을 때도 그 웃음에서 악의가 뿜어져 나와, 가끔은 죽음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비칠 때가 있는데, 이게 샤토트랑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너희 둘은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들더라.
- 이날 옥엘리는 바로 전날의 참한 아가씨 버전에서 다시 말괄량이 버전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게 요제프 따라가는 건지, 죽음을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민제프와 함께일 때는 어리광이 배로 느는 것 같단 말이지. 첫 데이트 할 때도 요제프가 열심히 황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배 타러 가자고 정신이 딴 데 팔려있고, 배에 오른 민제프가 냉큼 앉는 거 보고 에스코트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배 타려고 하고, 물장난 칠 때 반짝이도 엄청 많이 뿌리더니, 뒤에 한 번 더 민제프 얼굴에 뿌리더라. 세상 무서운 게 없는 명랑하고 기운찬 아가씨.
이 활기차고 자유로운 아가씨가 황실 생활에 지쳐서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새장 속에 갇힌 새의 파닥거림을 보는 느낌이다. 창살에 부딪혀 날개가 꺾이고, 점점 위축되어 날갯짓도 미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러다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죽음에 가장 강렬한 유혹을 받은 다음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벼랑 끝까지 가봤기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옥엘리와 샤토트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진짜 박진감 넘치는 한 판 승부더라. 재밌는 건 둘이 밀고 당기고가 아니라, 서로 당기고, 서로 밀고 있더라는 거. ㅋㅋㅋ 밀어낼 땐 둘이 바싹 붙어 서서 손바닥 마주하고 서로 밀어내는 데, 둘이 힘이 대등해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딱 붙어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당길 때는 좀 떨어진 거리에서 어느 한 쪽으로 끌려가는 법 없이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는 그런 그림이다. 마주한 거리는 가까우나, 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인력(引力)이 아니라 장력(張力, tension)이라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 오랜만에 만난 승돌프. 요즘 동돌프가 연기에도 물이 올라서 잔상이 남을까 했는데, 승돌프는 승돌프, 동돌프는 동돌프더라. 특히 마이어링 왈츠에서 승돌프의 몸놀림은 보고 따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유단자의 위엄! 이기도 하지만, 동돌프가 죽천들과 격투를 벌인다면, 승돌프는 춤을 춘다. 움직이는 동선의 유려함, 죽천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한 신체, 동돌프를 보면서는 이 장면이 춤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는데, 확실히 몸 쓰는 게 남다른 승돌프는 이게 마이어링 '왈츠'라는 걸 일깨워준다.
- 전석 매진인 객석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배우들이 조금씩 다들 업된 상태라는 게 느껴졌고, 2막 Kitsch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오더니, 은케니는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도 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넘버 끝나고 박수 소리도 우렁차고, 공연 분위기는 확실히 좋더라. 게다가 이제 공연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이젠 못하려도 못할 수 없는 그런 공연 퀄리티다 보니 커튼콜에서의 환호와 갈채가 넘쳐나는데, 샤토트 등장하니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이 굉장했다. 선영 엘리와의 조합도 보고는 싶지만, 이미 티켓은 다 동났고, 그래도 영 못 볼 줄 알았던 샤토트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5 (일)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김준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샤토트를 드디어 봤다. 이로써 삼토트도 모두 클리어. 마지막으로 승현 돌프까지 클리어하면 엘리자벳 전캐를 찍겠군. 구하면 얻으리라고, 2층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아서; 1층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 내의 좌석이 구해지지 않아서 거의 포기했는데, 운 좋게 자리가 구해져서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자체 첫공이 막공될 듯.
특이하게 샤토트 회차에서는 일본어로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그 일본어 안내하는 분 목소리가 좀 무뚝뚝하게 들려서 좀 그랬다. 내용 자체도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딱딱한데, 좀 상냥한 목소리로 해주지 싶다가도, 내가 일본에서 안내 방송하는 언니들의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의 나긋나긋한 음성에 너무 익숙한 건가 했다.
음향은 근래 들은 중에 가장 좋아서, 이게 마이크를 키워서 잘 들리는 건지, 오묘한 블퀘 1층은 중앙 앞 블록보다 사이드 중간이 더 소리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 샤토트는 확실히 차별화된 색다른 '죽음'이더라. 존재 자체가 판타지. 등장하는 순간 공기를 바꿔놓는 존재감이 있더라. 그리고 류토트와 송토트를 볼 때는 그들에 대해 어떤 가치판단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필요가 없으니까. 물론 모든 존재를 멸하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일 수는 있지만, 두려운 것이 곧 악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샤토트는 죽음의 속성 중에 어둡고, 邪스러운 부분을 극대화한 느낌이다. 요사스럽게 사람을 홀리고 매혹하는 죽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다 빨릴 것 같아서, 마치 꽃 근처에 가면 꽃이 금방 시들어버리는 그림이 떠오르는 그런 죽음이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의 다리에서 등장할 때도 다른 토트들과 확연하게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이게 만화라면 '사사삭'이라는 의태어가 붙을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다. 음색에서도 쇳소리가 많이 섞인 목소리라 호불호가 꽤 갈리겠지만,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데는 굉장히 잘 어울리더라. 사실 보러 가기 전에 가장 걱정한 부분이 목소리였는데, 생각보다 배역에 잘 어울리는 발성이라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졌다. 뭐, 가끔 저음부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된다거나, 웃음소리 같은 건 좀 간사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그 분위기와 음색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장면에서 조종치는 걸 봤는데, 전에 송토트는 왼편 리프트에서 등장해서 줄만 잡아당기는 걸 봤는데, 샤토트는 아예 공중에 매달려서 등장하는 거 보고 식겁했다. 이것이 바로 20대 죽음의 패기!!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춤. 진짜 이제까지 송토트, 류토트가 커튼콜에서 보여준 건 그냥 율동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주는 진짜 댄스! 그루브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현란한 몸놀림. 이게 바로 현역 아이돌의 위엄!! 오오~ 저 발 구르기가 이렇게 박력 넘치는 쿵쿵쿵이었단 말인가 감탄하면서 봤다. 사실 보러 가기 전에 이 부분의 연출도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그랬는데, 극 안에서 붕 뜬다는 느낌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 있어서 굉장히 좋았다. 그러니까 마지막 춤만 혼자 극에 섞이지 못하고 뜬금없는 아이돌 댄스처럼 보이려나 싶었는데, 샤토트가 미리 잡아놓은 분위기나 이런 것과 어우러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니까 저 화려하고 퇴폐미 가득한 무대하고도 무리 없이 섞여 들어가더라.
재미있었던 건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랬겠지만, 움직임이나 중간마다 집어넣은 숨소리(스읍~ 하 같은 거), 캬악~하는 거 모두 고양이과의 맹수를 떠올리게 해서, 어린 루돌프가 '어젠 고양일 쏘아 죽였죠.' 하는데, 어이쿠, 아가, 너 잘못 건드렸어! 도망가! 했다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판타지스러운 샤토트와 다크한 은케니가 만나니까 그 둘이 같은 속성이라는 데서 오는 케미스트리도 상당하더라. 전부터 느낀 건데, 다른 루케니들이 백년 전의 기억을 간직한 루케니라면, 은케니는 백년 전의 자아는 진작에 잃어버리고, 백년 동안 반복되는 재판에 미쳐버린 그런 루케니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난 마물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도 있고. 최케니나 용케니는 그래도 어디 한구석 선량한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은케니는 과연 '빛'인 부분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만큼 새까맣다. 유쾌하다는 듯 웃을 때도 그 웃음에서 악의가 뿜어져 나와, 가끔은 죽음보다 더 사악한 존재로 비칠 때가 있는데, 이게 샤토트랑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너희 둘은 같은 편이라는 동질감이 들더라.
- 이날 옥엘리는 바로 전날의 참한 아가씨 버전에서 다시 말괄량이 버전으로 돌아가 있었는데, 이게 요제프 따라가는 건지, 죽음을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민제프와 함께일 때는 어리광이 배로 느는 것 같단 말이지. 첫 데이트 할 때도 요제프가 열심히 황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귓등으로도 안 듣고 배 타러 가자고 정신이 딴 데 팔려있고, 배에 오른 민제프가 냉큼 앉는 거 보고 에스코트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 배 타려고 하고, 물장난 칠 때 반짝이도 엄청 많이 뿌리더니, 뒤에 한 번 더 민제프 얼굴에 뿌리더라. 세상 무서운 게 없는 명랑하고 기운찬 아가씨.
이 활기차고 자유로운 아가씨가 황실 생활에 지쳐서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확실히 새장 속에 갇힌 새의 파닥거림을 보는 느낌이다. 창살에 부딪혀 날개가 꺾이고, 점점 위축되어 날갯짓도 미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안타까움. 그러다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는 장면이 죽음에 가장 강렬한 유혹을 받은 다음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벼랑 끝까지 가봤기에 끝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걸까.
옥엘리와 샤토트의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진짜 박진감 넘치는 한 판 승부더라. 재밌는 건 둘이 밀고 당기고가 아니라, 서로 당기고, 서로 밀고 있더라는 거. ㅋㅋㅋ 밀어낼 땐 둘이 바싹 붙어 서서 손바닥 마주하고 서로 밀어내는 데, 둘이 힘이 대등해서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딱 붙어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당길 때는 좀 떨어진 거리에서 어느 한 쪽으로 끌려가는 법 없이 팽팽하게 줄을 잡아당기는 그런 그림이다. 마주한 거리는 가까우나, 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인력(引力)이 아니라 장력(張力, tension)이라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 오랜만에 만난 승돌프. 요즘 동돌프가 연기에도 물이 올라서 잔상이 남을까 했는데, 승돌프는 승돌프, 동돌프는 동돌프더라. 특히 마이어링 왈츠에서 승돌프의 몸놀림은 보고 따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유단자의 위엄! 이기도 하지만, 동돌프가 죽천들과 격투를 벌인다면, 승돌프는 춤을 춘다. 움직이는 동선의 유려함, 죽천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한 신체, 동돌프를 보면서는 이 장면이 춤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는데, 확실히 몸 쓰는 게 남다른 승돌프는 이게 마이어링 '왈츠'라는 걸 일깨워준다.
- 전석 매진인 객석의 기운을 받아서인지, 배우들이 조금씩 다들 업된 상태라는 게 느껴졌고, 2막 Kitsch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져 나오더니, 은케니는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도 해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넘버 끝나고 박수 소리도 우렁차고, 공연 분위기는 확실히 좋더라. 게다가 이제 공연 한 달 남은 시점이라, 이젠 못하려도 못할 수 없는 그런 공연 퀄리티다 보니 커튼콜에서의 환호와 갈채가 넘쳐나는데, 샤토트 등장하니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함성이 굉장했다. 선영 엘리와의 조합도 보고는 싶지만, 이미 티켓은 다 동났고, 그래도 영 못 볼 줄 알았던 샤토트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