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07 (토)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전반에 걸쳐 음향 상태 좋았는데, 다만 카페 씬에서 아마도 신문 휘두르다 마이크 장치에 문제가 생긴 듯 튀는 소리가 좀 났지만, 지엽적인 문제였던 듯하고, 배우가 박자를 빨리 들어가거나, 놓쳐서 오케스트라와 합이 안 맞은 부분이 좀 있었는데,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넘버에서 선영 엘리가 '당신 어머니나 찾아가시죠.'를 반박 빨리 들어가서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 맞춰 들어갔고, 2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송토트가 '뭘 망설이지'를 박자 놓쳐서 대사 처리했다. 그리고 앙상블 넘버에서 조금 어긋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이번 주에 김송은으로만 연속 세 번을 달리다 보니 사실 세 공연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역시 이런 게, 무대 공연의 묘미겠지. 게다가 아래 보듯이 조연 배역도 더블에 트리플을 끼얹어서 요제프, 소피 대공비, 루돌프가 조합이 달라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도 있고. 

                      엘리자벳/ 죽 음 /루케니/요제프/ 소 피 /루돌프/어린 루돌프
12. 04. 03(화) - 김선영/송창의/박은태/민영기/이태원/김승대/김효준
12. 04. 06(금) - 김선영/송창의/박은태/윤영석/이정화/전동석/김효준
12. 04. 07(토) - 김선영/송창의/박은태/윤영석/이태원/전동석/탕준상 

무엇보다 은케니가 6일 공연부터 깨알 디테일을 삭제하고, 살짝 톤다운 된 감이 있었는데, 그게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 아니라, 잘 달리는 말 고삐를 잡아채는 쪽인 듯해서 마음이 안 좋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은케니 특유의 번뜩임, 날카로움이 죽은 건 아니라서,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바람에, 오히려 블랙 은케니로 제대로 각성해서 죽음보다 더 다크 포스 넘치는 루케니더라. (이건 또 이것대로 무대 광풍(@유리 가면)이라고 저격당하는 거 아닐는지ㅋㅋㅋ) 디테일 뺀 부분마다 무대 한편에서 조용히 형형한 안광을 빛내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어찌나 얼음장인지. 웃음기 쫙 빼고 빈정거릴 때마다 주위 온도가 1도씩은 내려가는 것 같아서 으스스했다. 게다가 한껏 눌러놨던 걸 Milk에서 폭발시키듯이 터트리는데, 매 공연 이 넘버 만큼은 잡고 간다는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서 레전 찍는 Milk지만, 참 귀신같다고 할지, 목소리 하나로 이만한 감동을 주는 배우가 흔치 않다는 감탄을 다시 하게 되더라.

- 이날 선영 엘리는 평소보다 진폭이 커진 연기를 보여 주셨는데, 여릴 땐 더 여리게, 강할 땐 더 강하게, 자신감 넘칠 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오만해지고, 무너져내릴 때도 더 처절해져서 그 격차에서 오는 낙차 폭 큰 연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셨다. 개인적으로 이날 선영 엘리의 베스트 송은 하루도 안 좋은 날이 없었던 '나는 나만의 것'과 '내가 춤추고 싶을 때'였는데, '나는 나만의 것'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상처를 받고, 앞날에 대한 절망감 속에 주저앉았던 한 가녀린 소녀가 다시 일어서며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온 마음과 영혼을 걸고 맹세하는 모습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게 옥엘리는 타고난 건강함(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이 베이스로 받쳐주다 보니 비장한 느낌이 좀 덜한데, 선영 엘리는 부서질 듯 가냘픈 몸매에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성정이라는 게 보여서, 그런 연약한 소녀가 강철같은 의지를 내보이는 간극이 참 짜릿하다.

그리고 여제로 다시 태어나 승리감에 도취해 부르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 보여주는 하늘을 찌를듯한 자신감이 또 대단해서, 송토트는 시작부터 전의 상실, '내가 너에게 자유를 주겠어.'가 아니라, 거의 '당신의 발 앞에 자유를 갖다 바치겠습니다.' 처럼 보이더라. 그래도 전에는 밀어서 안 되면, 당겨보자는 정도는 보여줬었는데, 이날 원체 선영 엘리가 강한 여제 모드여서;
선영 엘리가 이렇게 강한 여제로 노선을 잡으니까, 송토트도 이날 나쁜 남자 모드를 섞었는데, 그게 선영 엘리의 연기의 진폭이 워낙 크다 보니 크게 두드러지지 못하고, 또 극이 진행되면서 루돌프의 죽음, 엘리자벳의 죽음을 거쳐서 자기가 먼저 통곡할 것 같은 감정의 흐름과 좀 대치되는 감정선이라 어떻게 좀 일관성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 황제의 자리에 있기엔 사람이 지나치게 좋아서 탈인 윤제프. 엘리에게 한눈에 반한 연기는 갈수록 설득력이 강해지면서 아주 윤제프 주위로 하트가 둥둥 떠다니는 게 보이는 듯하다. 재미있는 게, 엘리에게 청혼할 때 목걸이를 꺼내 보이는 장면에서 엘리가 '무거워~'하고 대답하면, 민제프는 그냥 농담으로 웃어넘기는데, 윤제프는 그러질 못하고 당황한다. 그러다 엘리가 웃으면서 '너무 아름다워'라고 하면 그제야 표정이 풀어지는데, 두 분 요제프가 서로 이렇게 다른 캐릭터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엘리와 소피가 고부 갈등을 일으켜서 중간에 끼어있을 때, 민제프는 '무슨 일이야? 왜 그래?' 가 먼저라면, 윤제프는 '괜찮아, 진정해'라고 토닥이며 안심시키는 행동을 보여줘서 좀 더 따뜻한 남편이라는 게 보인다. 심성이 따뜻한 윤제프는 누구에게도 상처입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겠지만, 상냥함만으로는 사랑을 지킬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날 특히 윤제프와 선영 엘리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에서의 화음이 참 눈물날 만큼 슬프고 아름다웠는데, 선영 엘리가 루돌프의 범선을 호수에 띄울 때, 마치 루돌프를 떠나보내는 것처럼 슬퍼하는 디테일이 추가되면서, 윤제프에 대한 마음이 아주 떠난 건 아니지만, 결코 예전처럼 돌아갈 순 없다는 거 같아서 더 안타까웠다.

- 요즘 연기에 물이 오른 동돌프가 이날 보여준 연기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송토트의 연기에 맞춰서 시선 처리나 고개를 돌리는 속도 같은 걸 맞춰주더라는 거. 이게 류토트와 케미스트리가 절대적으로 좋다 보니, 연기 동선, 시선 처리, 음악에 맞춰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 같은 게 다 류토트에 맞춰져 있어서, 송토트와는 시선을 맞추거나 할 때 합이 잘 맞지 않았는데, 그걸 동석이가 다 맞춰왔더라. 이게 가장 티가 나는 부분이 어디냐면,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후주가 끝나가는 부분, 마지막에 일렉 기타가 촹~ 하고 마무리 지을 때, 류동 페어일 땐, 그 박자에 서로 딱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맞추는데, 송토트는 그 부분에서 아예 시선이 허공을 배회할 때도 있고 그래서 합이 잘 맞지 않았는데, 동석이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는 걸로 바꾸면서 그나마 죽음하고 합이 좀 살아나더라. 동석이도 정말 발전하는 속도가 놀라운 것이 선배 연기자들 바짝 긴장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아직도 무대 위에서 어색한 부분,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성장형의 배우는 지켜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 지난 주는 엘리자벳을 주 3회나 보는 강행군이어서, 사실 엘리자벳을 너무 많이 봤구나 싶기도 했고, 요즘 프롤로그에서 전율을 느껴보지 못한 게 참 오래 되어서 이제 좀 쉬어야 하나 했더니, 은케니가 저리 갑자기 변해서 그 모양을 또 지켜보라고 붙잡는구나. 뭐, 지방 공연 안 간다 생각하고 볼 수 있을 때 봐두는 게 나중에 후회하는 것 보다 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