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23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2열도 좋다 했는데, 1열은 진짜 신세계로구나. 앞으로 잡아놓은 것 중에 1열이 딱 한 번 남았는데, 마티네라는 게 함정. 그래서 사실 표를 잡아놓고도 내가 갈 수 있을까, 못가면 양도하지 이랬는데, 오늘 보고나니 반드시!! 연차를 내서라도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젠장, 연차비가 표값보다 더 비싼 게 또 함정이지만 ^.ㅠ

- 도대체 같은 중앙 구역인데, 1열과 2열의 음향이 이렇게 차이나는 이유가...? 1열에선 앙상블 가사를 다 알아들을 수 있더라. 난 프롤로그에서 아기 루돌프도 노래하는 거 이날 처음 알았다. 아님, 지난주 토요일 이후로 음향 설계가 또 좀 더 좋아진건가? 하여튼 앙상블 떼창에서도 가사가 뭉개지지 않고 다 전달되어서 너무 신기하더라. 특히 카페씬에서 "자유주의자, 급진주의자, 정말로 별난 여자야" 라고 하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아들었다.

- 그리고 2열에서 본 은케니와 1열에서 본 은케니는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남들이 다 미친놈 은케니, 정신병원 갓 탈출한 은케니라고 할 때도 그게 딱히 와닿지 않았었다. 번뜩번뜩 날카로운 광기를 뿜어내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미친놈 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오늘 1열에서 보고 어, 너님 미친놈 맞음 하고 인정했다. 이래서 목소리에 속으면 안된다니까. 뒷쪽에서 봤을 땐 루케니에게만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아니고, 대략의 분위기와 목소리로 판단하게 되니까 뭔가 광기에 차있지만, 그래도 꽤 냉정하고 냉소적인 해설자구나 했는데, 어우 1열에서 생생한 표정까지 같이 곁들여서 보니 왜 그렇게 다들 은케니 미친놈 타령을 했는지 알겠더라. 가장 인상적인 제스춰는 손가락 까딱거리며 조련하는 거랑, 목 꺽는거. 그 동작 할 때마다 어찌나 섬뜩하던지. 그런데, 시종일관 그렇게 미쳐버린 게 아니라, 멀쩡하게(?) 나타날 때도 있어서 눈빛은 보면 번들번들한데, 표정은 굉장히 차갑고 냉정해서, 저러다 언제 또 돌변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은케니, 무서운 아이.

뭐 평타 레전 은케니 노래 실력이야, 늘 하던대로 잘 했는데, 마담 볼프 살롱에서 가사가 바뀌었더라. "위험을 즐기시려면 그녀가 딱이겠지요." => "그녀가 왜 위험한지 꿈에도 알 수 없겠죠." 워낙 무대에서 애드립이 없는 배우라, 나는 그새 가사가 바뀐 모양이네 했더니, 다른 횽 후기에서 보니까 쌈빡하게 "틀렸어요~"라고라고라. 허허~ 언제 이런 순발력을. 하긴 애드립엔 약해도 순간적인 사고 대처 능력은 뛰어났더랬지. 이날 정신병원 씬에서 다시 김문정 음감에게 젓가락 휘젓는 미친년 드립이 다시 돌아와서, 어제의 트럼펫 주자한테 한 건 역시 레어템이었던 건가. ㅠ.ㅠ


- 송토트는 18일 낮공연에 이어서 2번째였는데, 이날 연기의 노선을 바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순정남 모드에서 완전 나쁜 남자 모드로 변신을 했나. 프롤로그에서 등장 할 때 부터 실실 쪼개면서 등장하는데 그때부터 어라, 저건 뭐지? 했다. 엘리자벳 같은 여자를 - 특히 옥엘리 - 얻기 위해서는 청순가련애잔순정남으로는 안되겠다고 판단한건가? 음, 난 사랑에 빠진 섬세한 남자st 송토트도 취향이었어서 조금 아쉬웠다. 
18일 공연에서 송토트는 송창의 씨가 원래 가지고 있는 섬세한 남자 이미지와 맞물려서 정말 엘리자벳과 사랑에 빠진, 엘리자벳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죽음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미안하지만 살짝 양아삘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왜 이렇게 건들거리고 실실 쪼개는 거야 싶어서, 18일 공연에서 보여준 애수에 찬 송토트가 살짝 그리웠지만, 워낙 잘생기셔서 뭘 해도 그림이 되기는 하더라.

송창의 씨의 노래가 다른 쟁쟁한 뮤지컬 배우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면이 많지만, 그래도 나는 송토트가 기본적으로 가진 음색을 좋아하고, 또 안되는 건 미련없이 포기하고 자기가 잘 낼 수 있는 음역대로 낮춘 것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얼빠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마지막 춤은 용서가 안되는 수준이었음. -_-
지난 18일 공연에서 내가 송창의 씨 노래중에 가장 오오~ 하면서 봤던 건 '그림자는 길어지고' 와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였는데, 애시당초 송토트가 엘리한테 너무 홀딱 반한 상태라 이 둘은 기싸움이 성립이 안되겠구나 하고 지켜봤거든. 그런데, 역시 좋은 배우는 배우다 싶었던 게, 송창의 씨는 거기에서 다 감싸안는 포용력의 죽음을 선보이더라. 그러니까 전투적인 옥엘리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너 하고싶은 대로 마음껏 앙탈 부려봐, 나는 다 받아줄 수 있다는 대범한 죽음. 저 섬세하고 애수에 찬 죽음이 옥엘리에 그냥 캐발리겠구나...하는 예상을 뒤집어 엎는 장면이라, 여기에서 송토트에 대한 호감도 상승.
그랬는데, 이날 공연에서 나쁜 남자 모드로 돌아선 송토트. 전투력 막강한 옥엘리에 같이 맞서 싸우면 댁은 그냥 밀릴 수 밖에 없거든요....? 좀 더 수련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엘리한테 참패를 당하고서는 그 아들 루돌프를 집적(;)이러 나타난 송토트. 여기서도 18일 낮공연과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소용없어, 그만두렴." 하는데, 18일 공연에선 너나 나나 그 여자한테 관심 받기는 글렀어~ 뭐 이런 연대감이랄까, 저 친밀한 유대감은 뭐지? 싶었지만 친구라는 말이 납득이 갔는데, 이날 공연에선 아주 제대로 루돌프를 꼬시고 있더라. 게다가 준상이도 18일 공연에선 그렇게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는데, 송토트가 막 볼도 쓰다듬고 스킨쉽에 이러니까 상당히 적극적으로 붙잡는 거다. "마음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 이 부분을 준상이는 포르테로 부르지 않아서 다른 두 어린 루돌프랑 차이가 있는데, 저렇게 막 매달리면서 부르니까, 뭐랄까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테니까 가지마세요~ 라는 거 같아서 더 애처롭고 뭔가 간질간질한 케미스트리가 생기더라. 거기에 확인사살 하듯, 송토트가 준상돌프 손에 키스를 똻!! 진짜 어버버 거리면서 이 가정파괴범!!! 하고 봤던 씬. 그러더니만, 그 케미가 커튼콜까지 이어져서, 커튼콜에서 송토트랑 준상이가 손잡고 나오는 거 보고 또 어버버.

- 딴길로 새는 소리지만, "마음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 부분을 세 어린 루돌프별로 보면, 어디까지나 내 감상이지만
효준이는 씩씩하고 용기있는 자신을 어필하는 것 같다. 어젠 고양이도 쏘아죽였어요, 나 잘했죠? 그러니까 같이 있어줘요, 이런 느낌.
준서는 외모도 목소리도 아기 천사 같은 아이가 그 부분에서 반전돋게 앙칼지게 팍 치고 들어오는데, 어젠 고양이도 쏘아 죽였다는 게 살짝 협박조로 느껴지면서, 떠나려는 죽음을 억지로 잡아 앉히려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너도 엘리자벳 아들 맞구나 뭐 그런 느낌.
준상이는 위에 썼다시피 거기에서 강세를 주지 않는데, 좀 더 애처롭게 매달리는 느낌이라, 어딘지 섬약한 미소년 삘이 강하다.
하여간 세 아기 루돌프들 목소리도 곱고 예쁘고, 연기도 늠늠 잘해줘서 대견하다.

- 옥엘리는 선영 엘리와 비교하면 감정을 밖으로 발산하는 타입인데, 그게 젊어서 그런 것도 있는 듯. 의지도 강하고, 자기애도 그만큼 강해서, 방랑하는 씬에서 거울을 들이 밀면, 선영 엘리보다 훨씬 격하게 반응하는데, 그게 선영 엘리는 거울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피하는 쪽이라면, 옥엘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견딜 수 없는 쪽.
옥엘리가 부르는 노래 중 이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정신병원 씬에서 "아무 것도 없어." 인데, 이 곡이 참 선율도 일반적이지 않고, 리듬도 복잡한데다 음역도 상당히 높고, 감정을 넣고 폭발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엘리자벳 솔로곡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곡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가만히 서서 불러도 어려울 이 곡을 컨베이어 벨트 위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불러야 하니, 배우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동선이라고 해야할지. 하여튼 그래서 선영 엘리가 이 곡을 부를 땐 약간 힘겨워 보이는데, 젊다는 건 역시 좋은 것인가, 옥엘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성량도 빵빵하게 질러주더라. 특히 '난 강한척 할 뿐' 할 때 아주 화려하게 터트려주고 점점 사그라드는 목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 난 개인적으로 요제프 역에는 윤영석 씨가 좀 더 취향인데, 옥엘리와의 케미는 확실히 민제프 쪽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래도 2막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에서 두 사람의 하모니는 잘어우러져서 만족스러웠다. 이 장면에서 윤제프와 옥엘리가 아닌, 요제프와 엘리자벳으로서의 두 사람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는데, 나를 용서하라고,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는 요제프와 서로 갈 길이 다르다는 엘리자벳. 이 둘은 끝까지 소통하지 못하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싶어서 그게 안타깝더라.

- 세 토트가 아마도 세 루케니처럼 각자의 개성과 노선이 다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송토트가 이렇게 딱 로맨스 담당의 토트를 해버리니까 종말이니 세기말의 혼돈이니 하는 게 다 겉돌아버려서 그 점은 좀 아쉽다.

- 아, 이날 공연 좋았던 거. 지난 두 번의 공연(17일, 18일)에서는 마지막에 은케니가 로프에 목을 걸면 바로 커튼이 닫히는 바람에 3초만 늦춰주지!! 했었는데, 이날은 고개 늘어뜨리는 것 까지 제대로 보여주고 커튼이 닫혀서, 제대로 극이 완결된 깔끔한 느낌이 좋더라.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8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옥주현 엘리자벳, 송창의 죽음, 민영기 요제프, 탕준상 어린 루돌프 자체 첫공.

- 옥주현 엘리자벳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에서는 처음 만났는데, 이 아가씨가 나름대로 뮤지컬 무대에서 경험이 쌓이더니, 이제야 빛을 보는 건가 싶을만큼 노래도 연기도 훌륭했다. 이전에 옥주현 씨의 공연을 봤던 지인들의 평에 의하면 노래는 잘 하는데, 표정 연기가 미숙하고, 상대 배우와 하모니를 이루지를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엘리자벳에서는 제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데다가, 이제는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법도 제대로 익힌 것 같더라. 타고난 목청이 좋다고 할지, 목소리가 확실히 트여있고, 힘있게 뱃심으로 쭉 뻗어내는 발성이 아주 시원시원 하더라. 물론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서 섬세함이 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연기 내공 십여년의 김선영 씨와 어떻게 비교를 하겠는가.

두 명의 배우가 표현하는 엘리자벳이니 당연히 연기의 노선도 다르고 (연출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디테일이나, 자잘한 대사도 조금씩은 차이를 두고 있었는데,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감정 표현의 방법이 선영 엘리가 안으로 끌어들여서 삭이는 표현이라면, 옥엘리는 밖으로 다 터트리는 표현이다. 그래서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선영 엘리가 목을 부여잡으며 질식할 것 같은 씨씨라면, 옥엘리는 가슴을 치고 숨을 몰아쉬는 쪽이다.

그리고 선영 엘리가 본질적으로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정을 타고나서, 그 정도가 차츰 심해지는 씨씨라면, 옥엘리는 환경적인 요인(궁정 내 왕따, 고된 시집살이, 믿었던 남편의 외도 등)으로 점점 마음과 영혼이 피폐해져가는 씨씨라고 할까. 그래서 젊은 날의 전성기 시절 씨씨일 때 옥엘리는 꽤 강해서 '내가 춤출 때' 같은 경우 옥엘리는 죽음 따위! 다 물리칠 기세ㅋㅋㅋ 아, 사실 여기엔 '죽음'이라는 캐릭터와의 상성도 꽤 중요한데, 이날의 죽음인 송창의 씨는 내 보기에 세 죽음 중에 제일 순둥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서ㅋㅋㅋ. 옥엘리 - 류죽음일 때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꽤 궁금해지더라.

그리고 루돌프의 장례식 장면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도 두 배우가 달랐는데, 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김선영 씨는 슬픔을 안으로 끌어들여 삭이다 순간적으로 탁 풀어내는 쪽이면, 옥주현 씨는 오열하며 슬픔의 감정을 발산하는 쪽이다. 게다가 옥주현 씨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요제프를 원망하며 요제프의 가슴을 치는 디테일을 집어넣었는데, 아들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 + 그렇게 아들을 몰아간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더해져서 요제프가 내민 손을 거절하는 이유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만들어냈다.

극의 마지막 부분, 루케니에게 찔리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선영 엘리는 검은 상복을 벗어던지고 나서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것 처럼 자유롭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데, 옥엘리는 아직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찔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죽음의 다리를 올라간다. 두 배우의 해석 차이인 듯 한데, 아마도 옥엘리는 죽음의 키스를 받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고 보고 그렇게 연기하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선영 씨의 내면 연기도 좋고, 주현 씨의 감정 전달이 쉬운 연기도 다 설득력이 있어서 두 배우의 다른 해석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좋더라. 이런 게 더블 캐스팅의 묘미니까.

- 역시나 무대에서는 처음 만나는 송창의 씨. 죽음의 캐릭터가 달라지니 극 자체가 달라지더라. 엘리자벳 포스터에 쓰인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에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실제로도 외줄에서 떨어진 씨씨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들어올 때 그림은 포스터 그 자체였다.
하여간에 프롤로그에서부터 죽음이 엘리자벳을 너무 사랑해! @.@ 저 잘생긴 남자가 목소리도 엄청 감미로운데, 어찌나 절절하게 엘리~ 자벳~ 하고 부르는지 원. 그래서 은케니가 날카롭게 엘리~자벳! 하고 외치니까 초상화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루케니를 내려다보며 니가 뭔데 내 여자 이름을 부르는 거임? 하는 표정으로 엘리~자벳! 하고 노래하는데, 아, 송창의 씨는 사랑에 빠진 죽음이로구나 싶더라.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할 때, 다리 난간 위에서부터 와이어 밖으로 엘리자벳을 향해 손을 쭉 뻗는 아주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죽음이다.
특히 류토트랑 아예 대사부터 달랐던 장면이 있는데, 엘리자벳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의사로 변장해서 등장하는데, 시녀장에게 류토트는 "이만 나가주세요."라고 하는데, 송토트는 "우리 둘만 있게 해주세요." 라고 해서 잠시 뿜겼다.

송창의 씨는 기본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발성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고, 노래도 음역대가 안맞는 부분은 포기하고 음을 낮췄는데, 차라리 그편이 낫다. 무리하게 지르는 것보다는 안정적으로 가는 편이 관객도 덜 괴롭고. 허나, 그런 걸 떠나서 목 상태 자체가 별로 좋지가 않아서 1막에선 살짝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 2막에서는 그래도 나아져서 그 정도면 선방한 거라고 보고. 너무 관대한 평가인가? 그 비주얼이면 다 용서되는 수준임.ㅋㅋㅋ

그런데, 송토트는 이미 엘리자벳에게 너무 반해버려서 싸움도 하기 전에 지고 들어간다. 안그래도 상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의 옥엘리인데. 그래서 옥엘리에게 차일 때마다 표정이 너무너무 상심한 표정.ㅋㅋㅋ 섬세한 송창의 씨 캐릭터랑 맞물려서, 가뜩이나 안스러운데. 특히 그 마마보이 요제프에 최후 통첩이라고 선전포고 날리는 씬에서, 나름 분위기 잡고 침대 위에서 엘리~자벳~ 이러고 등장하는데 (진짜 비주얼은 최강이더라;), 옥엘리가 끌려가다가 딱 뿌리치며 필요없어, 가~~~~~~~~~~~! 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충격받아서 침대에서 내려와 퇴장할 때도 막 비틀거려.ㅋㅋㅋ 웃을 일이 아니지만, 여기서 송창의 씨 연기가 정말 딱 상처받은 섬세한 남자st여서.ㅋㅋㅋ

그렇게 이 둘은 밀당이나 기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되겠구나 하며 지켜본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와우, 송창의 씨도 그렇게 녹록한 배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더라. 뭐냐면, 포용하는 죽음이라고 할까. 그래 마음껏 앙탈 부려봐, 다 받아주겠어, 어차피 넌 나에게 돌아오게 돼있으니까...라는 부드럽게 감싸안는 대범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 쯤, 전투적인 옥엘리가 머리도 살짝 흐트러지고 한바탕 전투를 치른 기색이었던 것에 비해, 송토트는 오히려 여유롭고 단호하게 엘리를 바라보더라.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게지. 이 죽음 역시 만만치 않다.
그치만, 너무 순정돋게 엘리자벳을 사랑하고 있어. ㅠ.ㅠ 마지막에 엘리자벳을 데리러 왔을 때도, 마치 잠긴 문 앞에서 요제프가 엘리자벳 부르는 것 처럼, 아주 애절하게 엘리자벳을 부르더라.

아, 그리고 송창의 씨가 의외로 가창력이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그림자는 길어지고' 넘버였는데, 송창의 씨도 기본적으로 벨벳 보이스 계열이라 동석이와 목소리 어울림이 좋았다. 류토트 + 동돌프 케미에야 못미치겠지만, 예상 외로 둘의 목소리가 잘어울리는데다가 송창의 씨가 그저 넘버를 소화해내는 데 급급한 그런게 아니라, 노래에 감정을 실어서 제대로 불러주더라. 강하게 샤우팅해야 할 부분(미래의 황제 폐!하!가! 같은 부분)도 제대로 질러주고. 뭐, 마이크를 키운건지 모르겠지만, 성량 괴물 동석이에게 그럭저럭 밀리지 않고 자기 소리를 내서 나는 오오~ 하면서 봤다. 무엇보다 겁나게 잘생긴 미남자 둘이 그러고 있으니 눈도 호강, 귀도 호강 ㅋㅋㅋ 아, 난 예쁜 거 밝힌다고 누누히 말해왔음;

- 지난 두 번의 공연을 모두 윤영석 씨의 요제프(이후 윤제프)로 보고, 민영기 씨의 요제프(이후 민제프)는 이날이 처음이었는데, 민제프는 확실히 더 강성이라, 마마보이에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윤제프가 착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 삘의 마마보이라면, 민제프는 어머니의 권력이 막강하기에 알아서 기는 아들이라고 할까. 그래서 윤제프가 신혼 시절 엘리자벳에게 어머니의 충고를 들어줘 라고 할 때는 나름 이해가 되는 게, 평생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으니까, 그게 무리한 부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쪽인데 반해, 민제프는 오히려 어머니 눈치를 보며 엘리자벳을 설득시키려고 하니까 그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좀 비겁해 보인다. 즉, 윤제프는 이런 건 당연한 건데, 왜 이해를 못해? 라는 쪽이고, 민제프는 당신 편을 들고 싶지만, 내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지...라는 태도로 보인다는 거. 개인적으로는 윤제프 쪽이 목소리도 그렇고 더 취향이다.

- 이날의 애기 루돌프는 탕준상 어린이. 준상이는 모차르트!에서 내 최애 아마데였던 것도 있어서, 기대도 좀 있었는데, 어우, 이렇게 고운 목소리인 줄 몰랐다. 세상에, 엄마~ 하고 찾는 목소리부터 너무너무 천사인데다가, 그 잠옷!!! 서양 고전 영화에서 봤던 그런 천사돋는 잠옷을 입혀놓으니 또 얼마나 아기 천사 같은지. 그런데, '마음 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 부분에서 강세를 줘야하는데, 강세없이 그냥 죽 이어나가서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어디 아픈 것 처럼도 보이고.
아, 커튼콜에서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준상이. 이번에는 커튼콜에서 이정화 소피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 하더라. ㅋㅋㅋ

- 청년 루돌프 동석이는 '내가 어머니의 거울이면 좋겠어요.' 부를 때, 도와달라며 무릎 꿇는 장면에서 정말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려서 저 커다란 아이가 이 사이즈가 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작아져서 참 안스러웠다. 캐릭터의 상황과 맞물려서 저렇게 자꾸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 그리고, 여기서 대응하는 두 엘리가 또 조금 다른데, 선영 엘리가 세상만사 다 귀찮고, 지친 기색으로 거절한다면, 옥엘리는 다시는 황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거절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이어링 왈츠에서 동석이가 조금만 더 몸에서 힘을 빼주면 처절함이 더 극대화될 것 같은데, 음...무대 위에서 몸에 들어간 힘을 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감각이긴 하겠지.

- 마지막으로 은케니. 노래야 매 공연 기복없이 훌륭! (세번 밖에 못봤지만;) 연기에 대해 말해보면, 왼쪽 사이드에서 보니까 깨알같은 디테일이 정말 눈에 잘 들어오더라. 루케니가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자기가 메인이 아니라도 참 바쁜 캐릭터다. 때로는 시종이 되어 높으신 분들께 차 셔틀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뱃사공으로 변신해서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의 로맨틱한 데이트 분위기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카페 마스터로 서빙을 하고, 기념품 판매도 하는 등 십잡스가 따로 없다.
재미있는 게 루케니의 메인 의상(가로 줄무늬 셔츠에 후줄근한 겉옷)일 땐, 해설자 루케니이고, 뭔가 의상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극 중에 스며들어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하고 있더라.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관객들 눈엔 루케니로 보이지만, 극중 인물들 눈엔 때에 따라 시종, 뱃사공, 카페 마스터, 지나가는 행인 등 그 자리에 있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가구'같은 존재랄까 뭐 그렇게 보여지는 것. 이건 루케니가 죽음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지배 받지 않는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밌었던 디테일을 몇 개 기억해보자면, 바트 이슐에서 헬레네와 요제프가 선을 보는 자리. 한쪽 구석에서 옥엘리가 혼자 컵케이크를 먹다가 그냥 지나치려는 루케니를 발견하고 차를 달라고 손을 든다. 그럼 루케니가 차를 대접하고 옥엘리는 자기가 먹던 컵케이크를 루케니 주고 먹으라곸ㅋㅋㅋ. 그럼 루케니가 일단 받기는 받았지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고 있고, 그럼 옥엘리는 자꾸 먹어보라고 권하고 루케니가 마지못해 먹는 시늉 좀 하다, 옥엘리가 곁에 다가온 요제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루케니가 뭐씹은 표정으로 컵케이크를 쟁반 위에 올려놓는다. 이 짧은 순간 시트콤의 한 장면이 지나가는 거다. ㅋㅋㅋ
그 외에도 카페 씬에서 타자를 치며 기사를 작성하는 테이블 뒤로 가서 뭐라고 썼는지 기웃거리다 기자(로 보이는 남 앙상블)가 그걸 못보게 가리니까 에이~ 라는 표정으로 쌩하니 돌아서는 것도 귀엽고. 정신병원 씬에서 요즘은 정신 병자가 아주 많다며 김문정 음감 앞에 가서 언제부터 젓가락들고 미친년 마냥 팔을 휘저었냐고 할 때, 김음감이 머리위로 하트만들어서 응대하니까 빵터져서 웃음 참는 것도 웃겼다.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조명이 꺼진 뒤에도 계속 캐릭터로서 연기하는 것. 요제프와 엘리자벳의 첫날밤, 퇴장하는 루케니와 소피 대공비가 왼편 어둠속에서 스쳐지나가는데, 소피를 향해 깍듯이 절을 하고 물러나는 은케니. 이런 은케니라 좋다.

+ 커튼콜에서 송토트는 레알 아이돌 댄스를 제대로 소화해서 추더라.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 모양이다. 그리고 환호속에 등장한 꽃같이 어여쁜 옥엘리는 시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는데, 뭐랄까,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걸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 집에 돌아와서 옥류은 조합을 뒤져봤더니, 3월 21일 마티네 공연이 유일하더라. 장난하냐?!!! 4차 오픈할 땐 옥류은 조합좀..굽신굽신.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7 (금)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이준서

- 아무리 무대 전체를 보네 어쩌네 해도 역시 배우들 표정 생생하게 보이는 앞자리가 최고다. 다만 스모그 효과는 좀 작작 해주라. 멀리서 봤을 땐 그렇게 과한지 몰랐는데, 파도처럼 밀려오는 스모그에 정말 눈앞이 하얘지더라. 오케스트라 연주자분들 악보나 지휘자가 보이기나 했을까; 급기야 2막, 호수씬에서는 김문정 음감이 손사레를 치더라.
하여간, 11일과 다른 캐스트는 소피 대공비와 루돌프들.

- 전에도 말했지만, 극의 시작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관객을 얼마나 빨리 몰입시키고, 등장 인물들을 최대한 짧은 순간에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엘리자벳의 프롤로그는 그야말로 기선제압에 있어서는 최고 수준. 압도적인 음악과 앙상블의 물량공세에, 캐릭터에 대해서도 황후 암살범이면서 해설자이기도 한 루케니를 한 방에 설명 끝내고, 몰락한 합스부르크 황실, 그리고 주인공인 엘리자벳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마침내 "죽음"이라는 판타지스러운 존재를 들이민다.
그 죽음이 등장하는 다리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매개채로 오로지 죽음만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그래서 다리의 등장(?)은 단순한 무대장치의 전환이 아니라, 자 이제 죽음이 등장합니다~ 하는 신호와도 같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은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저 다리 위에서 엘리자벳의 초상화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것은 사랑'을 외친다. 류정한 씨의 죽음은 그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분위기에서 풍겨져 나오는 포스로 '죽음'이라는 이미지 반은 먹고 들어가는 듯, 등장할 때마다 그 존재감이 남다르더라.

- 엘리자벳과 죽음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 외줄타기 하다 떨어진 씨씨를 죽음이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고 등장하는데, 이 장면에서 좀 웃었던 게, 안전 문제로 그렇게 밖에 연출이 안될 것 같기는 한데, 씨씨가 중력을 무시하고 너무 사뿐하게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너무 멀쩡하게 죽음의 품에 안겨 등장하니까, 이게 어떻게 보이냐면, 떨어져 죽을 운명이었는데, 죽음이 그녀만 특별히 봐줘서 염동력을 발휘해서 털끝 하나 안 다치게 구해냈다...는 것처럼 보이더라는 거. 그래서 뜬금없는 가사 '특별한 너 엘리자벳~'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연출이었다.ㅋㅋㅋ 그리고 거기에 방점을 찍는 은케니의 조롱. "와우~ 사랑의 시작~" 루케니는 자신도 죽음의 지배를 받으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향해 겁도 없이 비웃음을 날려주는 그런 캐릭터라 매력적이다.
죽을 뻔했던 거 치고는 참으로 멀쩡한 씨씨는 아빠처럼 자유롭게 살고싶다던 그 노래로 죽음을 향해 가지 마요, 왕자님~ 이러고 있다.ㅋㅋㅋ 같은 노래를 통해 씨씨가 꿈꾸는 자유는 결국 죽음 만이 전해줄 수 있다는 의도였다면 훌륭하오!

- 황제 요제프와 대공비 소피를 소개하는 씬에서 지난 번에 이태원 씨, 이번엔 이정화 씨였는데, 이태원 씨는 대공비 쪽으로 좀 더 무게 중심이 가있다면, 이정화 씨의 소피는 좀 더 시어머니 쪽으로 무게 중심이 가 있는 느낌이다. 음색 면에서도 이태원 씨가 우아하면서도 묵직하게 누르는 목소리라면, 이정화 씨는 엄격하고 깐깐한 느낌. 그러나 두 분 다 각자의 개성으로 황실의 웃전으로서 철의 여인이라는 느낌은 잘 살려주셔서, 누구를 보더라도 괜찮을 듯.

- 죽음과 엘리자벳의 두번째 만남은 결혼식. 바로 그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까지'라는 결혼 서약이 등장하는 그 결혼식 장면이다. 지난 번에도 이 장면에서의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는데, 참 볼수록 괜찮은 연출이다. 무대에 영상을 덧입히는 연출은 이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데, 그걸 아예 영상 연출법을 들고와서 그 이질감을 없애버렸다. 카메라의 앵글과 샷을 무대 위에 재현해낸 건 정말 괜찮은 시도였다. 로버트 요한슨 연출이 영상 사용을 남발하는 경향이 좀 있는데, 하다보면 는다고, 이 분도 점점 내공이 쌓이시는 거겠지.
그리고 여기서 깔리는 왈츠곡은 또 얼마나 다크하면서도 매력적인지. 이게 2막 마이어링 왈츠에서 한번 더 사용되는데, 참 절묘한 곡 배치다. 무엇보다 자, 이제 죽음이 등장합니다~ 라고 알려주는 호른의 묵직한 한방과 서서히 내려오는 다리라던가, 이런 게 상당히 멋지게 연출된다. (출렁거리는 와이어들은 좀 불안해보이긴 하지만;)

죽음의 천사들(이후 죽천)의 호위(;)를 받으며 '마지막 춤'을 노래하는 죽음. 중앙 자리에서 보니까 제일 멋지게 눈에 들어오는 건 6명의 죽천들이 죽음 뒤로 가서 반쪽짜리 날개를 펼치는 장면. 사이드에선 제대로 안 보일 것 같은데, 중앙에서 보면 이건 3쌍의 날개를 단 세라핌이 따로 없다. 루시퍼를 연상시키는 안무지만, 류정한 씨는 죽음이라는 캐릭터에 사악함을 부여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검은 천사로 보이더라.
이 '마지막 춤'은 죽음이 엘리자벳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라고 할까. 선빵을 날린 거다. 너는 결국 나와 마지막 춤을 추게 되어있다고. (그러나 어디서 뭐하다 이제야 나타나서 넌 나 대신 황제를 선택했냐며 구남친 돋는 죽음. 그러니 허구헌날 차일 수 밖에...;;)

- 시작부터 삐걱거리던 엘리자벳의 결혼 생활. 이정화 소피는 진짜 무서운 시어머니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비해 이태원 소피는 사감 선생님 쪽에 더 가깝다고할까.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규칙이고 예법이야...라는 느낌. 그래서 좀 더 냉정한 건 이태원 소피 쪽. 이정화 소피는 아들에 대한 집착도 더 강하고, 하여간 시어머니 느낌이 훨씬 더 강했다.
아, 그리고 여기서 엘리자벳과 요제프의 결혼 생활을 인형극으로 연출한 것도 매우 좋았다. 엘리자벳의 외롭고 힘든 처지를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죽음의 입김이라고 할지, 루케니가 황실 인물들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게 참신하더라.

- 세번째 엘리자벳과 죽음의 만남은 엘리자벳의 첫째 딸, 소피의 죽음으로 이루어졌다. 멀찍이 높은 데 서서 '길어지는 그림자'를 부르는 죽음은 좀 없어보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 씬. '행복한 종말'이라는 이 넘버는 제목의 이율배반처럼, 종말을 얘기하면서도 신나는 곡이다. 게다가 루케니가 가르송 복장으로 나타나서 서빙을 보는데다가 죽천들이 카페에서 알바를 뛴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황태자 탄생과 관련해서 루케니가 탁자위에 올라가 솔로로 부르는 부분에서 너무너무너무 친절하게 가사 내용을 무대 뒤쪽에 재현해서 보여준다는 거. 아마도 1막에 등장하지 않는, 비중이 너무 적은 청년 루돌프를 한 번이라도 더 무대에 올리기 위한 서비스인 동시에, 나름 2막의 루돌프에 대한 복선으로 처리한 것 같다. (장면 장면 쓰려니 벌써부터 지친다;)

- 네번째 엘리자벳과 죽음의 만남은 참으로 '사랑과 전쟁'스러운 장면에서였다. 시어머니의 횡포에 견디다 못한 엘리가 마마보이 요제프에게 나냐, 어머니냐 선택하라는 선전포고를 하고난 뒤. 이 모든 구질구질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겠다며 침대에서 이리 오라며 유혹하는 죽음ㅋㅋㅋ 아놔, 여기서 죽음의 유혹적인 면모를 보여줘야한다는 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 대놓고 제비스러워서. 게다가 죽음에 끌려가다 정신차린 엘리자벳이 대차게 뿌리치며 필요없어! 가────!!! 라고 하는데, 뻘쭘하게 돌아서는 죽음이 또 너무 상처받은 표정이라, 죽음의 체면이 말이 아닌 장면이 되버렸다.

- 황후가 불행한 황실 생활을 하거나 말거나, 높으신 분들의 마음의 병은 사느냐 죽느냐는 서민들의 고통 앞에서 그냥 사치스러운 투정일 뿐. 비어있는 우유통 앞에서 분노하는 민중들 앞에 루케니가 나타난다. 이 장면에서 은케니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오늘도 배달이 없습니다.' 하고 민중들을 향할 때는 그것 참 안됐군요,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답니다 근심 가득한 표정이다가 뒤돌 때 씨익~ 웃는 거 완전 소름끼쳤다. 그리고 무대 뒤로 돌아가면서 앙상블의 '누군가는 이 상황을 즐기지'라는 가사에 딱 맞춰서 또 한번 썩소를 날려주고는 정색을 하고 민중들을 향해 '모든 사실들을 알고싶나?'라고 하는데, 와, 진짜 디테일을 얼마나 다듬는 거냐.
사실, 루케니라는 역이 뭐 대단한 연기력이 필요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역이 절대 아닌게, 루케니는 해설자로 극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가도, 어느 순간 극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그 두 가지 역할을 참으로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더라. 그런 장면 중 은케니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게 이 '밀크'가 아닐까 한다. 여기에서 은케니는 정말로 민중이 자유를 얻고, 그들의 힘으로 해방되기를 바라는 혁명가가 아니다. 그저 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혼란을 던져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선동가다. 그런 냉소적인 모습이 번뜩번뜩해서 아주 빛이 난다. 게다가 탄탄한 노래 실력으로 앙상블을 받쳐주고 끌어주니, 앙상블과 환상적인 조화에 절로 탄성이 터져나온다.

- 1막의 피날레. 민중들이 굶던 말던, 나라의 음모 따위는 상관않고 외모를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엘리자벳. 사치스런 황실 여인의 행태로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주인공인 엘리자벳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모든 행위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는 것과 같다. 창과 방패를 손질하듯 공들여 머리를 손질 하고, 전사가 몸을 단련하듯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갑옷을 두르듯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다. 그렇게 완전무장을 하고 전쟁터로 나서는 전사와 같이 그녀는 남편과 죽음을 대면한다. 요제프는 그녀의 위용 앞에 진작 무릎을 꿇었으며, 죽음은 분하지만, 기다리기로 한다. 시간은 그의 편이니까. 윤제프와 류토트 그리고 선영 엘리의 삼중창은 참으로 황홀하다.

- 2막의 오프닝은 루케니의 원맨쇼. Kitsch! 루케니는 화자이면서 작가를 대변하는 캐릭터인데, 이 넘버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을 냉소적으로 비평한다. 그전까지는 그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하면, 이 넘버에 와서 그녀가 끌어안고 있는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조소를 퍼붓는 거다. 100년 동안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가려진 그녀에게 결국 남은 게 뭐냐고. 기념품 상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싸구려 상품으로 전락한 게 아니냐며, 엘리자벳을 비웃고, 진실에는 관심도 없고, 원하는 건 그저 싸구려 기념품 뿐인 대중들도 끌어들여서 같이 조롱한다. 일타쌍피!
그런데, 참 씐나씐나 하는 음악과 루케니의 익살을 교묘하게 포장해서 쓴웃음을 지을지언정, 기분이 상하게는 하지 않는다는게 영업 포인트! 여기서 은케니의 표정이 또 참 좋은게. 대놓고 비웃음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광대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인데, 눈빛만이 냉정하고 싸늘해서 캐릭터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다.

- 헝가리의 독립을 이끌어내면서 정치적인 입지까지 확고하게 다진 엘리자벳이 자신의 성공에 도취해서 부르는 '내가 춤출 때' 넘버. 이 때가 엘리자벳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나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춤을 추겠다고 선포하지만, 화무십일홍,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세상의 꼭대기에 올라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은 그녀의 불안을 부추기듯 죽음이 등장한다.
죽음은 석상 위에 서서 엘리자벳을 내려다 볼 때는 오히려 엘리자벳의 성취를 응원하고 격려한다. 그래 해냈어, 네가 이룬 성과를 축하하지. 그러다 오히려 석상에 내려와 엘리자벳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는 그녀를 향해 그래봤자, 너는 내 손바닥 안이야 라고 압박한다. 너는 결국 나를 통해서만 자유를 얻을 수 있노라며 밀어부치는 죽음과 내가 이룬 것들을 보라고, 난 혼자서도 날 수 있다며 저항하는 엘리자벳의 팽팽한 기싸움이 볼 만한 곡이다. 선영 씨와 류정한 씨의 쩌렁쩌렁한 성량 대결도 좋았지만, 조금 아쉬운 건 두 분이 직접적인 맞대결이 없이 엘리를 휘두르는 춤은 죽천이 담당한다는 거. 뭐, 엘리의 드레스 자락이 워낙 광활하게 펼쳐져서 반경 1미터 내로 접근도 어렵기는 하겠더라만은. 하지만, 턴 할 때마다 마치 깃발처럼 휘날리는 드레스 자락은 멋졌다. 엘리의 전투복은 드레스!

- 엄마가 그렇게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있을 때, 한 켠에서는 방치된 아들 루돌프가 외로움에 사무쳐 엄마를 찾는데, 나타난 건 엄마가 아니라, 죽음. 오늘 애기 루돌프는 준서. 11일 효준이는 형이라고 좀 더 씩씩한 느낌이라면, 준서는 진짜 너무너무너무 애기. 여기 아기 천사가 있어요~ 라는 느낌이더라. 노래하는 목소리도 어찌나 예쁘고 아련한지.
그런데, 여기서 루돌프도 역시 엘리의 아들이구나 하고 느꼈던 건, 가지 말라고 매달려도 죽음이 우린 다시 만날 거야 하며 떠나려고 하니까, 갑자기 '마음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하고 팍 치고들어오는데, 그 전까지는 칭얼칭얼 어린애였다가, 어제는 고양이도 쏘아 죽였다는 둥 하며, 나는 너를 강제로라도 잡아둘 수 있어! 라는 거 같아서 어우, 준서가 그런 거 까지 계산하고 연기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류정한 씨는 어쩜 그렇게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으며 애기 루돌프를 바라보시는지. ㅋㅋ 장가가세요. ^^;

- 엘리자벳의 권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어서 계략을 꾸미는 소피와 조정 대신들. 여기서 마담 볼프의 살롱이 등장하는데, 1막에서 참 무대를 다이나믹하게 사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2막은 아무래도 내용 자체가 암울하게 흘러가서 시선을 잡아끄는 연출이 없는 가운데, 마담 볼프의 살롱이 번쩍번쩍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아름다운 앙상블 언니들 브라보~! 그 중에서도 마담 볼프와 루도비카 여사를 동시에 맡으신 윤수미 씨 브라보~그리고 멋지게 채찍을 휘두르고 쌍욕을 날리는, 정신병원의 엘리자벳 이고운 씨도 브라보~ 이고운 씨는 햄릿에서도 유랑극단의 여왕님이셨는데, 엘리자벳에서도 정신병원의 여왕님. 은케니는 이 장면에서 좀 더 자신을 풀어놓았으면 좋겠지만, 차츰 익숙해지겠지.

- 남편의 배신에 불같이 화가 난 엘리자벳. 분위기 파악 못하고 또 나랑 마지막 춤이나 추자는 죽음. 그런데 류정한 씨의 깊이 있는 저음으로 그것도 매우 경건한 목소리로 "성병입니다." 하는데 내용과 목소리의 갭에 살짝 웃음이ㅋㅋㅋ 만날 차이는 죽음이 측은하기도 하지만, 엘리자벳도 알고보면 참 터프한 여인이다. 남편의 타락이 나를 자유롭게 풀어줄 명분이 될 거라며 이때부터 방랑생활 시작.

- 방랑끝에 정신병원을 방문한 엘리자벳. 2막 무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인데, 정신병원을 거대한 새장처럼 꾸며놓아서 아무리 마음대로 세상을 떠돌아도 여전히 새상 속에 갖힌 새 신세인 엘리자벳을 형상화해서 보여준다. 작은 새장에서 큰 새장으로 바뀌었을 뿐, 너는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고.
남들이 보기엔 전혀 공감가지 않는 사치스런 투정이지만, 원래 사람은 남이 입은 큰 상처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미쳐야만 하는가, 그러나 난 미칠 용기도 없다며 나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절규하는 이 넘버는 음역대도 높고, 선율, 리듬 뭐 하나 간단치 않은 어려운 곡인데, 배우가 컨베이어 벨트 위를 걷고, 회전하는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고, 가만히 서서 불러도 어려운 곡을 꼭 이렇게 배우를 힘들게 동선 짜야 했는가 싶더라. 안그래도 음역대가 안맞아서 가성으로 소리를 끌어올리고, 때때로 감정을 폭발시키듯 터트리고 해야하는데, 호흡이라도 편하게 해주면 좀 덧나나. 그렇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대를 가지고 캐릭터의 혼란스러움,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을 보여주려고 한 의도는 좋았지만, 연기하는 배우 배려도 좀.

- 이후 엘리는 점점 더 세상을 등지고 자기 내면으로만 침잠해버리면서 극의 활력 또한 떨어진다. 늙고 정신이 병들어 지쳐가는 여인의 청승을 계속 지켜보는 건 재미없지. 그런 타이밍에 등장하는 게 청년 루돌프. 11일 공연에는 동루돌프 였고, 이날은 김승대 루돌프. 일단 승대 씨는 어린 루돌프의 준서와 싱크로율이 좋더라. 그리고 원래 노래보다 연기가 좋은 배우라 노래에 큰 기대는 안했는데, 생각보다 노래가 훌륭해서 깜짝 놀랬다. 그리고 역시 연기에 대한 센스가 좋은 배우라, '그림자는 길어지고' 넘버 시작할 때, 죽음이 등장할 때, 마치 엄습한 죽음을 느끼는 것 처럼 심장을 움켜쥐는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나오는 씬 자체가 적어서 임팩트있는 연기를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렇게 사소한 거 하나하나 신경써서 연기하는 거 보면 역시 좋은 배우다. 이 부분 연출에서 인상적인 건, 계단(이건 사실 뮤지컬 루돌프의 계단을 엘리자벳에서 땡겨 쓰는 거 같기는 하다만) 위에 올라 시위하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이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세상이 닥칠거라고 죽음과 함께 내려다보는 장면인데, 그러니 네가 세상을 바꿔보라고 부추기는 죽음과 반항심에 뛰쳐나오긴 했지만, 실행할 강단은 없는 루돌프의 흔들리는 시선, 불안한 심리 이런 것들이 제대로 잘 표현되었다.

결국 계획은 실패하고 궁지에 몰린 루돌프가 어머니 엘리자벳을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노래 '내가 당신의 거울이라면' 승루돌프는 정말 연약한 유리 멘탈의 왕자님이라는 느낌이다. 여기서 아들을 도와주지 않는 엘리자벳은 이기적이고 냉정한 못된 엄마지만, 김선영 씨는 모든 것에 지치고 진절머리가 나서 나무처럼 굳어버린 씨씨를 연기하고 있어서, 그녀를 아주 이해 못할 것도 없었다. 나쁜 엄마라는 사실이 변치는 않지만.

딴소리지만, 동물들도 새끼를 낳고 모성애를 최고로 발휘해야 하는 시기에 새끼와 떨어져 지내면, 아무리 모성 본능이라고 할지라도, 모성애가 희석되버린다고 한다. 씨씨가 처한 상황이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어야 할 시기에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빼앗겼고, 다시 되찾았을 땐 이미 모성애는 흐려진 다음에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느라 바빴으니, 굳이 이해를 해보자고 하면 그렇다는 거.

- 마이어링 왈츠 장면을 보면서 승돌프가 얼마나 몸을 잘 쓰는 배우인지 새삼 감탄했다. 동돌프는 일단 덩치가 커서 죽천들이 휘두르기도 버거워 보이기는 했는데, 거기다 몸이 뻣뻣해서 휘둘려주지도 못하는데, 승돌프는 얼마나 처절하게 이리저리 굴려지는지. ㅠㅠ 정말 죽천들에 휘둘려서 갈가리 찢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 제대로 비극적인 최후더라.

- 루돌프의 죽음은 씨씨가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계기가 되는데, 여기서 김선영 씨의 연기가 정말. 11일에도 오열하는 모습이 슬퍼보였지만, 이날은 안으로 삭인 슬픔에 목이 메어서 소리도 제대로 못내다가 루돌프의 관을 끌어안고 "엄마야!"하고 통곡하는데 순식간에 눈물나게 만드시더라.

- 그리고 그 슬픔의 순간에 이죽거리며 등장하는 루케니. 참 어지간히 엘리자벳을 싫어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에 애도를 표할만도 한데, 그것마저도 높으신 분들도 슬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봐~ 라며 이죽이죽. 황혼기의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도 로맨틱한 삼류드라마 취급.

- 처음 사랑을 속삭이던 그 장소에서 부르는 같은 노래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서글픈 '행복은 너무나 멀리에' 이게 1막의 '날 혼자두지 말아요'의 reprise인데,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도 좋으련만, 엘리자벳의 마음은 요제프를 완전히 떠났다. 참, 요제프라는 인물도 대단한게 한 나라의 황제이면서, 어떻게 평생 한 여자만 일편단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는지. 끝까지, 자신을 용서해달라며, 사랑하고 있다는 이 남자를 매몰차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라며 잘라낸 엘리자벳은 다시 한 번 터프한 여인이다.
엘리자벳을 신경이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연약한 여인이라고 가끔 착각할 때가 있는데, 끝내 자신 밖에 모르고 타인에게 상처주는 행동을 그치지 않는 저 무신경함은 대체 어떤 종류의 연약함인 걸까. 쿤체 씨도 그런 면에서 엘리자벳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나.

- 서서히 사그러드는 엘리자벳과 함께 몰락해가는 합스부르크 황실을 보여주는 '침몰하는 배' 장면. 연출의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여기서는 류토트와 윤제프의 엘리자벳 배틀이 아주 볼만하다. 그리고 드디어, 도구로서 루케니를 선택한 죽음. 이제까지 죽음과 함께 시간의 흐름을 비껴가있던 루케니의 시간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 루케니에 의해 죽임을 당한 엘리자벳이 이승의 옷을 벗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 매달리는 장면. 11일에 다리의 와이어에서 손을 못 떼던 류정한 씨가 이 날은 드디어 와이어에서 손을 뗐다. 고소공포증이라 들었는데, 본능적인 공포를 눌러죽인 프로 정신에 박수를ㅋㅋㅋ
그렇게 영원한 안식을 찾아 엘리자벳은 죽음을 맞이하고, 앙상블의 합창속에 무대 뒤에서부터 걸어나온 루케니 앞으로 로프가 내려온다. 여기서 또 은케니의 깨알같은 연기가 참 좋은데, 소위 목 씻고 기다려라..라는 것 처럼 목을 앞으로 빼서 가다듬고 줄에 목을 끼울 때의 눈빛하며~ 아 근데, 막이 너무 빨리 닫혔다. ㅠ.ㅠ 11일 날 딱 타이밍 좋게 목 꺽은 다음 막이 닫혔는데, 그날 그 로프 올리는 타이밍 안맞아서 안전 사고 날 뻔 했다더니만, 그래서 그랬나 목 꺽기 전에 막이 닫히는 바람에 너무 아쉬웠다. 아웅, 이거 나중에 타이밍 맞추는 연습 좀 하고 해서 다시 살려주면 안될까나.

+ 커튼콜에서 루케니와 죽음만 앵콜송을 부르는데, 덩실덩실 은케니 역시 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역할인 것 같고, 류토트의 마지막 춤 아이돌 댄스는 뭐 거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더라. 그리고 여주인공 원톱으로 극을 끌어간 김선영 씨. 1막 피날레에 입었던 하얀 드레스 입고 딱 등장하시는데, 그저 아름다우십니다. 아무리 죽음과 루케니가 매력적인 캐릭터라도 이 극은 '엘리자벳'이 끌어가는 극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연해 준 배우들 모두 브라보!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1 (토) 19: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윤영석,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김효준
줄거리 :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가 죽은자들을 깨우며 과거로 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를 구해준 죽음의 사신 토드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엘리자벳은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로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토드는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함께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가자고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남편과의 갈등,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토드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엘리자벳을 사랑한 토드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칼을 건네게 되는데... [출처 > 플레이DB]

- 계획대로라면 내 자체 첫공은 다음주여야 했다. 그러나 개막 후 시시각각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면서 조급증이 도져서 전날 급 예매해서 달려간 공연. 그러니 좋은 자리는 애초에 포기하고, 그래도 무대 전체적으로 한 번 봐두면 좋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는데, 그래도 VIP석이라고 뒷 줄인데도 생각보다 시야 좋고, 음향도 조로에 비하면야 썩 나아져서 만족. (기획사의 횡포에 얼마나 찌들었는지, 생각보다 괜찮아서 만족하다니; OTL)
음향 얘기를 조금 더하자면 조로는 중앙 4열이었는데도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 지경이었는데, 엘리자벳은 중앙 구역도 아닌 훨씬 뒷 줄이었는데도 앙상블 떼창에서 뭉개지는 거 말곤 그럭저럭 전달되더라. 다만, 소리가 모이지 않고 흩어지는 건 여전해서 그 부분은 공연장 자체의 문제인가 싶었다. 하여간 답답했던 조로 때의 음향에 비하면 엘리자벳은 그보단 훨씬 선명해진 편이다.
사설이 너무 길었지만, 소문대로 볼거리 풍성하고, 저 제목란 꽉 채우는 "럭셔리~"한 배우들을 한 무대위에 세울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는 극이었다. 뭐 EMK 특유의 허세 쩌는 오그라듬과 연출의 밋밋함은 예상 가능한 범위.

- 어차피 배우 표정까지 보이는 자리가 아니어서 전체적인 무대나 연출, 음악에 더 치중해서 보기는 했는데, 일단 무대 구성 나쁘지 않았다. 아니, 몇 장면은 꽤 훌륭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적절하게 사용해서 역동성을 부여한 것도 괜찮았지만, 과유불급인 장면도 좀 보이고. 프롤로그에서 망자들 등장할 때, 카페씬에서 탁자들 등장할 땐 정말 멋지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결혼식 장면에서 엘리자벳과 요제프가 왈츠를 추는 장면. 마치 영화에서 보면 카메라가 주인공에 포커스 맞춰서 배경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은 효과를 무대에서 재현해냈는데, 컨베이어 벨트에 거대한 기둥을 얹어서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하고, 뒷 배경 영상도 기둥을 따라 배경이 돌아가도록 해서, 불안하고 위태로운 그들의 시작을 시각적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보통은 배경은 고정되어있고, 배우들만 움직이는 무대에 익숙해있는데, 이렇게 배우와 배경이 함께 동적으로 움직이니, 위태로움, 불안감 증폭. 게다가 이를 떠받쳐주는 건 미묘하게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화성으로 진행되는 왈츠 음악도 한 몫하고.

- 이왕 음악 얘기 나왔으니. 엘리자벳 음악을 듣다보면 이런 의도적인 불협화음(?)이 간간히 들려오는데, 이게 참 절묘하게 세기말적인 암울한 분위기, 그러면서도 극 전반에 흐르는 조롱, 냉소와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는 거. 진짜 르베이의 음악적 센스는 천재적임. 그러니까 어떤 식이냐면, 루케니가 황실을 소개하는 장면 첫 등장에 웅장하게 팡파레가 울리는데, 이게 메인으로 위쪽에 얹어진 트럼펫은 웅장하고, 행진곡스러운 그대로인데, 거기에 베이스로 깔리는 다른 관악기의 소리는 어쩐지 서커스나 광대들의 불협화음처럼 살짝 우스꽝스럽게 들린다는 거다. 난 처음에 이게 오케스트라 미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곡이 황실 테마다보니 종종 재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똑같이 들리는 걸로 봐선, 이건 이렇게 의도된 곡인 것 같다는 거.
또 이런 식의 불협화음이 배경음악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등장 인물간의 갈등을 나타낼 때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엘리자벳과 소피의 대결 구도에서 소피가 묵직하고, 클래식한 선율로 찍어누르는 음성이라면, 거기에 대항하는 엘리자벳은 조급한 리듬에 소피와 벗어난 화성이라 들떠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둘의 기싸움이 시작되면 소피가 엘리자벳에 말려든 것처럼 소피의 리듬도 빨라지다가, 소피가 다시 자기 페이스를 찾으면 '황후는 빛나야해'라고 느리고 묵직한 선율로 돌아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음악이 클래식과 모던함을 오가며 세련되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는 현악은 기본 정도로만 구색을 갖추고, 관악기가 메인인 듯 한데, 조로 때부터 김문정 음감의 취향인가 싶기도 하고. 죽음이 등장할 때 그 등장을 예고하는 부분도 호른으로 묵직하게 분위기 잡아주는 건 아주 마음에 든다. 로맨틱한 분위기는 오보에와 클라리넷으로 잡고, 서커스 풍의 쿵짝쿵짝은 트럼본으로, 그리고 뽕빨나는 색소폰보다 쭉 뻗어주는 트럼펫을 메인으로 써줘서 그게 균형을 잡았다. 그런데, 가끔 트럼펫 하이톤에서 삑 나는 건 좀 개선해줬으면 하네.
아, 그리고 프롤로그나 침몰하는 배 씬에서 날카롭고 영롱한 신디사이져 소리를 참 좋아라 하는데, 소리가 좀 묻혀서 그것도 안타까움. 이게 블퀘 음향탓인지는 모르겠지만.

- 넘버 얘기로 넘어가면 르베이 씨의 곡들은 저음에 고음까지 음역대가 광대한 곡들이 많아서 그걸 소화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좀 가혹한 곡들이 많다. 물론 제대로 소화해내면 그 파괴력이 무시무시하지만.
엘리자벳의 메인 곡이라 할 수 있는 '나는 나만의 것'만 해도 그렇고, 루케니 넘버들은 길이에 상관없이 난이도에 있어서 거의 최고 난이도라 할 수 있겠다. 죽음의 넘버들은 음역대가 그야말로 광활한 '마지막 춤'같은 경우에 깊은 저음에서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고음까지 소화하면서 특유의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얹어줘야 하는 곡이다. 그렇다고 다른 배역들 노래는 쉽냐고? 그럴리가. 앙상블의 힘이 가장 중요한 극 중 하나인데. 하여간 이렇게 어려운 곡들인데도 배우들이 대부분 잘 소화하고 있었다. 아직 노래 로딩이 좀 필요한 건 류정한 씨의 죽음과 몇몇 남 앙상블 정도. 류정한 씨의 경우는 노래가 부족하다기 보다는 뭐랄까, 지난번 햄릿에서 윤영석 씨가 그랬던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노래하려다보니 거기에서 오는 어색함이 더 큰 것 같달까. 차차 좋아지리라 보고, 여 앙상블은 소리의 합이 깨진다는 느낌 거의 안드는 데 반해서 남 앙상블들은 소리가 자꾸 흩어지고 깨지는데, 특히 몇 사람은 소리 튀는 게 너무 적나라하게 들리더라. 음감님 이것도 좀 신경써주길.

- 배역별로 보면 김선영 씨의 엘리자벳은 어린 씨씨 역에서 아무런 위화감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그 서커스 돋는 의상은 에러였지만, 내가 아는 선영 씨 특유의 허스키한 음성이 아니라, 정말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내시더라. 가볍고 통통튀는 음색으로 아빠처럼 살고싶다고 어리광부리는 어린 씨씨 그 자체였다. 여기서부터 나는 이미 씨씨의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나는 나만의 것' 부르실 땐 첫 소절 '난 싫어~' 나올 때부터 온 몸에 소름이 오도도 돋으면서 울컥울컥, 클라이막스에서는 기어이 눈물이 터져나오더라. 자리가 멀어서 표정 같은 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 분위기와 노래에 실린 감성만으로 충분히 감정 전달해주는 여왕님을 일단 찬양. 그런데, 딱 이 이후부터는 엘리자벳에 이입하기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
조금 아쉬웠던 건 1막 피날레 부분. 연출상으로도 아쉬운 부분인데,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걸어나와서 '나는 나만의 것' Rep.을 부르는데 좀 더 위엄있게 불러주셨으면 하는 거. 뒤에 요제프, 죽음과 3중창 할 때, 좌팬텀(윤영석), 우라울(류정한)에게 밀리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어쨌든 엘리가 주인공이니까 임팩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안그래도 연출이 그 모양이라 하이라이트 치고 너무 밋밋한 감이 있는데.

- 류정한 씨는 사실 이번 공연이 첫 만남. 죽음은 내가 평소 이분에 대해 품고있던 막연한 이미지와 잘 맞는 배역이었다. 그 자체로 더하고 뺄 것 없는 '완전함'이라고 할까. 죽음을 선사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아서, 죽음을 선사하는게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고, 그게 그저 순리대로, 때가 되었으니 그렇게 한다는 것 같은 그런 죽음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인 씨씨라는 존재가 새롭게 다가왔을 뿐. 자신은 인간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인데, 씨씨는 그를 연인처럼 대하는 거. 나한테 이러는 건 네가 처음이야 인가...? ㅋㅋ

하여간 류토트는 프롤로그에서 첫 등장할 때 벌써 그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반음 사이로 미묘한 음정 사이를 흘러가듯 노래하고 있더라. 그런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고음에서 진성으로 지를 때마다 무리하시는구나 싶어서;; 목소리톤은 바리톤에 더 잘 어울리는 음색이었는데, 그게 오보에 소리와 정말 잘 어울려서 듣기 좋더라.
절대자로서의 위엄, 가까이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지만 끌릴 수 밖에 없는 매력이라던가 이런 건 정말 충~분~히 객석에 전달돼서,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걸 기대하고 있다.

- 엘리자벳의 "광기" 담당 루케니. 아니, 사실은 루케니는 엘리자벳의 살해범이자 극의 해설자지만, 엘리자벳의 우울과 세기말적인 분위기는 죽음이 담당하고 있다면, 엘리자벳이 품고있는 광기는 루케니를 통해서 더 잘 표현되는 것 같은 느낌. 물론 상당한 비아냥과 조롱을 바닥에 깔고. 그런데 그 조롱은 엘리자벳만을 향한게 아니라 전방위적이라는 거. 심지어 관객에게도 그 조롱을 향한다. 니들도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가쉽과 키치(상징직인 의미로)에 열광하는 거 뿐 아냐? 뭐 이런 식.
아, 일단 은케니 찬양 좀. 이날 공연이 프리뷰를 포함하면 두번째 공연이고, 공식적으로는 은태 첫공이었다. 그런데, 첫공부터 이렇게 로딩따위 필요없음! 이러고 나타나면 어쩌라는 거냐. 전작의 잔영을 싹 지우고 세상을 비웃고 냉소하는 한 마리(;) 아나키스트가 되어 나타났다. 노래야 뭐 잘 하는 거 아는 배우라 남들이 다 오오~ 해도 나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진짜 햄릿 첫공 때도 연기야 앞으로 좋아지겠지 하면서도 노래 로딩은 완료라고 했던 그 때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
루케니 넘버가 고난이도라는 건 일단 리듬이 복잡하고, 선율도 순식간에 고저를 넘나드는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이 많은데, 그걸 너무 쉽게 쉽게 부르더라. (뭐, 본인은 굉장히 연습 많이하고, 부르면서 긴장도 타고 할지 모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 그렇게 들리니까.) 게다가 빠르게 다다다다 가사를 우겨넣어서 불러야 하는 부분도 발음이 하나도 뭉개지지 않고 또렷이 들려서 연습 진짜 많이 했구나 했다.
내가 노래만큼 또 감탄했던 건 대사를 할 때. 대사가 노래처럼 들리더라. 이게 뭔소리냐면, 대사를 할 때도 배경 음악이 흐르는데, 거기에 대사톤을 맞추더라. 대사는 대산데, 리듬감도 살려주고, 톤을 살려주니까 이게 전달력이 노래급. 난 이것도 악보가 있는 거냐 했다니까. 어찌나 찰지던지.
모촤, 피맛골, 햄릿을 거쳐서 목소리에 파워가 붙어서 이제는 앙상블을 든든하게 떠받쳐주는가 하면, 너끈하게 끌어올린 하이음으로 이끌기도 하고, 2막 오픈이 루케니 솔로 넘버인데, 혼자서 대극장 관객들과 주거니 받거니 아주 제대로 쥐락펴락, 노래 하나로 관객을 휘어잡는 스킬은 진짜 갑이더라. 루케니가 극의 수미쌍관을 장식하는 역이라 참 중요한 역이고, 여기 저기서 깨알같이 등장하는 씬도 많아서, 확실히 이 역할을 통해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되었구나 싶었다. 앞으로도 석 달은 더 남은 공연기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더 좋아질 것인지 기대기대. 햄릿 때 주마다 업그레이드 되어서 나타난 거 기억하고 있다. 너무 부담주는 건가? ㅋㅋㅋ

- 황제 프란츠 요제프 역에 윤영석 씨는 햄릿 초반에 참 나와 많이도 싸우셨던 걸 생각하면, 요제프 역은 이분과 참 잘 맞는 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인한 어머니 뜻에 휘둘리는 유약한 황제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고지식함, 한 여자에게 순정을 다 바치는 역에 정말 잘 어울리셨다.
소피 대공비 역의 이태원 씨도 명성황후에서 보여주셨던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지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셨고. 엄격해~ 냉정해~ 할 때 목소리는 정말 질감이 느껴지는 묵직함을 느끼게 해주셨다. 아, 태원님이 한껏 무게 잡고 불러주시는 '황후는 빛나야 해' 할 때 앙상블들이 '맞아요' 하고 추임새 넣는 거 좀 들 방정맞았으면 좋겠다.
어린 루돌프 효준이는 딱 기대한 만큼이었고, 청년 루돌프 동석이도 뭐 기대한 그만큼. 워낙 노래를 잘하는 배우라는 기대치가 있어서 그런가 박자 밀리는 거, 음 삐끗하는게 더 잘들려서 곤란; 그래도 워낙 음색 자체가 좋고, 성량 파워풀하고 또 그런거 다 휘발시킬만큼 비주얼이 끝내주지만, 내 자리에선 얼굴도 잘 안보였지;; '그림자는 길어지고'를 참 많이 기대했는데, 노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나 동석이가 류정한 씨에 맞춘다고 무릎 굽히는 게 너무 적나라하게 들어와서 집중을 못했다. OTL 제대로 귀가 호강하는 순간이었는데, 속으로는 ㅋㅋㅋㅋㅋ 상태여서 ㅠㅠ

- 엘리자벳이 연습기간이 다른 공연보다 길었다고 알고있다. 은태도 햄릿 공연 중에 엘리 연습에 합류했다고 하니 아마도 거의 석달에 가까운 연습 기간이었을 거다. 주요 배역마다 더블에 트리플을 줄줄이 엮어놔서 연습 기간이 더 필요했던 것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여간 그 연습 기간이 헛되지 않았는지, 4번째 공연인데도 앙상블 합은 끝내주더라. 특히 밀크에서 아주 빛을 발하던데, 몇몇 튀는 남앙상블들도 로딩되면 더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3분마다 무대가 바뀐다는 광고 문구가 과장이 아니던데, 무대 크루들 안전사고 나지 않게 긴장하길 바란다.

- 처음엔 디클래스라는 말도 안되는 좌석 등급부터, 공연장이 블루스퀘어라는 것도 한 몫해서 땡기지 않았던 게, 공연 보고 났더니 역시 장사하는 법은 참 제대로 아는 EMK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냥 졌다 싶다. 이런, 젠장~(feat. 은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