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LET
일   시 : 2011. 10 .20 ~ 2011. 12. 17
장   소 : 유니버설 아트센터
관극일 : 2011. 10. 22(토) 15:00
음악 / 대본 : 야넥 레데츠키 , 원작자 : W.셰익스피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원미솔
캐스트 : 햄릿 - 박은태, 오필리어 - 윤공주, 레어티스 - 강태을, 거트루트 - 신영숙, 클로디우스 - 서범석, 폴로니우스 - 김성기

어제 첫공이라 나도 객석도 어수선하고, 배우들도 들뜬 분위기였는데, 어제보다는 좀 정돈이 된 것 같았던 두번째 관극.
더블 캐스팅은 싹 다른 분들로 바뀌었는데, 범사마 님은 역시 진리십니다. -_-乃 윤 클로디어스 때는 제대로 파악 안된 가사들, 멜로디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햄릿이 연극으로 밝힌 진실 앞에서 고뇌하는 연기가 정말 갑. 다만, 거트루트와는 그다지 사랑하는 사이같지는 않았다. 햄릿이 짜증나더라도, 거트루트에게는 좀 지고 들어가줘야하는 거 아닌가. 사랑해서 형도 죽였다면서 어쩌면 그렇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나 그래.
그리고 김성기 폴로니우스 역시 훌륭하십니다. He's crazy도 좀 더 재즈풍으로 소화해주셨고, 춤도 민망하지 않더이다. 태을 레어티스는 시작 전엔 동석 레어티스보다 더 기대를 했는데, 아직까진 so~so~ 그래도 동석 레어티스보단 오필리어의 오빠처럼 보였다. 동석 레어티스는 오빠로 안 보이는 건 둘째치고, 너무 연인처럼 보여서;; 난 남매근친은 쥐약이라고...이쪽은 그냥 끈적이지 말고 산뜻하게 가줬음 하네.

원작에서도 햄릿이 딱히 오필리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는 잘 드러나지 않아서, 오필리어가 죽고난 다음 햄릿의 태도를 보고 사랑했....나?? 싶었는데, 뮤지컬 햄릿은 진짜, 햄릿 개객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설정이다. 아니, 지가 힘들 때 따뜻하게 품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취하고 나선 아버지의 복수를 한답시고 잔인하게 내치고, 상처주고는 죽고나서 사랑했다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믿느냐고. 레어티스가 미쳐 날뛰는 게 백번 이해가 되고도 남지.

그런데, Let's rise above this world에서의 은릿의 연기가 꽤 마음에 든다는 게 문제; 내 피를 팔아 당신의 갈증을 풀어드리겠다는 오필리어의 고백에 은릿은 진짜 너무너무 망설이고 주저하면서 손을 뻗어 오필리어의 손을 찾고, 오히려 오필리어가 리드하는 중에 아주 간절한 마음을 담아 터져나오는 '사랑해─'가 참 반칙이란 말이지. 그리고 침실로 이끌 때는 괴로운 표정을 지우고 오필리어를 향해 웃어준다. (그러니까 나쁜 남자!!)

원작과 달리 햄릿은 오필리어와 함께 한 잠자리에서 선왕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하여간 뮤지컬 햄릿의 주제는 포스터에 쓰인 것처럼 "욕망으로 얼룩진 치명적 사랑"이니까) 그래서 햄릿들이 상반신 누드에 아랫도리에 이불을 둘둘 말고 돌아댕기는데, 아우 서비스가 참 훈늉하십니다ㅋㅋㅋ 선왕 살해에 대한 진실을 듣게된 햄릿이 반라로 미치광이짓을 하고 돌아다니다, 성루에 올라 Let's rise above this world 후렴구를 rep.를 부르는데, 피를 토하는 것처럼 절규하며 지르는 노래가 하반신만 이불로 감싼 비주얼과 함께 자꾸 JCS를 떠올리게 한다. 진짜 언젠가 은태가 겟세마네를 불러주지 않으려나. 참 감탄스럽게 깨끗하게 뽑아주니 그냥 절하고 싶은 심정.

이후 미치광이 햄릿을 연기하는 은태의 연기도 참 마음에 든다. 눈이 아주 형형하게 빛나고 표정에는 냉소가 가득하다. 살을 쪽 빼서 턱선이 더 날렵해져서 옆 모습 실루엣이 조명을 받으면 베일 듯 날카롭다.
은릿은 초반 중2병 환자 -> 질풍노도의 반항 청소년을 거쳐 선왕 살해의 진실을 알게 된 뒤, 감당이 안되는 진실 앞에 정신줄을 잡았다 놨다 이게 미친 척인지 정말 미친 건지 구별이 안 가는 상태를 보이다 급기야 '나는 누구인가'라며 자아 상실의 위기까지 겪는다. 그러다보니 자기자신 밖에 보이지 않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어서 자신을 주위로부터 고립시키게 된다. 그래도 끝까지 곁을 지키는 호레이쇼는 참 좋은 친구다. (그게 우정인지는 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좀 묘하긴 해도;)
이 예민하고 생각많고 자존심 높은 자기만 아는 날 때부터 왕자님이 결국엔 오필리어를 상처입히고, 착각으로 폴로니우스를 죽이고, 오필리어를 실성하게 만들었다. 다시 생각해도 햄릿 개객끼;
게다가 실성한 오필리어는 '아가'라고 임신을 암시했다고. 햄릿 개객끼;
그래놓고 오필리어 죽었다고 나타나서 '너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나를 용서해줘' 그럼 이 개객끼야 소리밖에 더 나오냐고. (아, 근데 그래도 햄릿은 별로 감정이입할 여지가 없는 개객끼인데도 좋았다니까;; 햄릿에게 옮았을까, 이 우유부단;)

햄릿과 레어티스의 결투 장면이 생각보다 박력이 떨어져서, 무거운 검이 아니라, 레이피어였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좀 더 경쾌해졌을 거 같은데.

하여간 웃긴게 뭐냐면, 이 뮤지컬을 보고나면 햄릿이 이렇게 재미난 극이었냐 하는 감상이 남는다는거다.
분명히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 아니냐며. 그런데, 보고나면 아~ 재밌었다, 그래서 또 보고싶다...는 감상이 남는다는 것. 그게 연출자의 의도였다면 성공하셨음요. 난 솔직히 어제 1막 초반 보면서는 1n번 잡아놓은 표가 살짝 아까울 뻔 했는데, 다 보고나서는 다음주 3차 티켓팅도 참전이구나 했다. 아, 진짜 재미지는 햄릿이라니.ㅋㅋㅋ

- 단 2회만에 커튼콜에서 기립이 나왔다. 아니, 기립하고 싶어지는 가창력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