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3. 07. 26 ~ 2013. 09. 07
장 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관극일 : 2013. 07. 27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소현, 죽음 - 전동석,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김이삭, 어린 루돌프 - 강동유, 루도비카/마담볼프 - 한지연, 막스 공작 - 오성원, 헬레네 - 박선정, 에스터하지 - 홍금단, 라우셔 추기경 - 이지수, 그륀네 백작 - 윤승욱, 슈바르첸베르크 장군 - 정태준 외
줄거리 :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가 죽은자들을 깨우며 과거로 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를 구해준 죽음의 사신 토드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엘리자벳은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로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토드는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함께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가자고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남편과의 갈등,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토드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엘리자벳을 사랑한 토드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칼을 건네게 되는데... [출처 > 플레이DB]
- 작년에 볼만큼 보고, 질리도록 회전문 돌았던 엘리자벳이 새로운 캐스트, 새로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블루스퀘어라는 공연장은 시설면에서 썩 좋은 공연장이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접근성에 있어선 최고였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음향이나 시설은 좋지만, 접근성이 최악인 공연장이다.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 ㅠ.ㅠ 가뜩이나 러닝타임도 긴 공연, 평일 저녁공 보고 귀가길이 매우 걱정된다.
- 공연 얘기를 해보자면, 초연과 연출의 방향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쓰잘데기 없는 '사랑과 죽음의 론도'라는 오글거리는 넘버를 집어넣어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로맨스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도장 쾅! 찍어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게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의인화에서 죽음의 신, 마왕 쯤으로 인격을 부여해버렸다는 데서 원작 파괴가 아닐런지. 뭐, 이것도 다 원작자가 그렇게 하라며 친절하게 넣어준 곡이고 보면 할말이 없기는 하지만. -_-+
그리고 루케니 캐릭터에 변화가 생겼는데, 화자로써의 면에 좀더 무게가 실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루케니라는 캐릭터와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비중이 초연에서 50:50 이었다면, 재연에서는 40:60 정도로 기울었다는 느낌.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장면이 '결혼의 정거장'이다. 작년에 후기에도 썼지만, 이 인형극에서 루케니는 직접 황실의 인물들을 조종하는 넘치는 권능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난 여기서 죽음이 배후라는 설명 외에 또 다른 장치, 예를 들어 루케니 역시 죽음이 조종하는 또 다른 인형이었다는 설정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했는데, 재연에서 아예 루케니는 인형극 밖으로 빼고, 황실 인물을 조종하는 건 죽음의 천사가 맡아서, 죽음의 입김을 좀 더 강화했다.
아, 또 공연 러닝 타임을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안내 방송에서 1막 1시간5분, 인터미션 15분, 2막 1시간20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실제 공연 시간은 뭐 1막 1시간10분여, 2막 커튼콜 포함 1시간 20분에 맞춰지더라. 작년에 2시간 45분 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5분 줄이는 거지만, 저 5분 줄이려고 음악 박자를 좀 더 빠르게하고, 대사를 더 빨리 말하고, 장면 전환도 빨리하고 등등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 그러나 1막에서 그 5분 줄이기는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고;
보면서 장면 전환이 전반적으로 빨라진 것 같기도...하는 부분은 그게 자연스럽다기 보다 뭔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고, 게다가 정신없이 조명 사고나지(프리뷰가 아닙니다! -_-++), 마지막 장면에선 배우가 늦게 등장하는 일까지; 하여간 러닝 타임을 줄이려면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보인다.
- 소현 엘리는 내가 전작을 본 적이 없어서 영상으로 뜬 '나는 나만의 것' 밖에 본 게 없는 배우였는데, 일단 저~엉~말 예쁘다. 외줄 타다 떨어져서 죽음의 품에 폭 안겨서 나오는데, 진짜 인형같더라. 다만 여기 등장하는 죽음과 죽천들이 회전 무대에서 줄줄이 비엔나처럼 등장하는 건 굉장히 우스웠다. 하다못해 방향이라도 좀 정면을 향하던가. 회전 무대 기준으로 바깥쪽을 보고 줄줄이 돌아나오는데 진짜 코메디도 아니고. 초연 때처럼 죽음 혼자 무대쪽을 바라보고 등장하게 하는 게 훨씬 멋지다. 죽천을 꼭 등장시키고 싶으면 회전무대에 태우지 말고, 그냥 뒤에서 걸어나오게 하라고;
아, 하여튼 등장부터 소녀소녀 예쁨예쁨 소현 엘리는 죽음이고 요제프고 한 눈에 반하게 할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라는 게 너무 잘 이해가 되더라. 1막 마지막의 하얀 드레스는 물론이고, 2막의 헝가리 대관식 드레스까지도 아름답게 어울리고, 하다못해 잠옷 차림에 하늘색 숄을 두르고 있어도 인형처럼 예뻤다.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소리의 변화도 좋았고, 노래도 성악 출신 답게 잘 부르고, 가끔 중저음에서 소리가 잘 안나오기도 했지만, 무난무난. 아, 나는 나만의 것에서 끝에 확 올려부르는 건 정말 짜릿하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기는 앙칼지게 분노하는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기혼 여성이고, 아이 엄마라는 점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는데, 최후 통첩을 날리는 장면이나 말리디 씬에서 보여주는 분노의 표현이 굉장히 진정성이 느껴지더라. 게다가 소현 엘리가 좋은 건 그렇게 분노를 터트릴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여왕님이라는 거. 루돌프 추도식에서 보여주는 슬픔도 아, 역시 엄마는 다르구나...싶고.
- 작년에 루돌프에서 죽음으로 변신한 동석이. 이날이 첫공임을 감안(;)하고 보면, 생각보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막판 뒤집기ㅋㅋㅋㅋㅋ
일단 동석이 노래야 워낙 잘하니까, 그 부분은 믿고 보는데, 노래에 강세를 넣는 부분이 류토트를 많이 떠올리게 하더라. 아직은 젊고, 그래서 미숙하고 거친데, 힘이 넘치는 죽음이었다.
마지막 춤에서 춤 안 추는 거 완전 환영하고, 그런데 그 휘리릭~ 하는 느끼하고 과장된 손동작을 동반한 왕자님 인사법 좀 다듬어주라. 시도때도 없이 피식 웃음이 새나옴. 특히 마이얼링 등장 씬에서 그 권총들고 이상한 각기 추는거 진짜 너무 웃겨서, 난 그 심각한 장면에서 안 웃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날 제일 좋았던 곡은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 이었는데, 루돌프일 때도 워낙 절창으로 잘 불러줬는데, 죽음 포지션에서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는 지배자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다만 같이 듀엣하는 이삭 돌프 목소리가 좀 묻히는 감이 있어서 이건 좀 아쉽지만, 그게 어디 동석이 탓이겠냐며. 그런 밸런스 맞추라고 음향팀이 존재하거늘.
베일 씬에서 등장이 늦은 건 아마도 의상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무대에 서는 건 배우니까 큰 공부한 셈치고.
아, 재밌었던 거. 애기 루돌프한테 다가가서 '소용없어~ 그만두렴~'하는데, 웬지 저 앞에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ㅋㅋㅋㅋㅋ 저 끈끈한 유대감은 뭐지 싶더라.
- 초연에 이어 재연에 참여한 은케니는 식상함을 탈피해보자는 거였는지 갑자기 레게 머리로 등장. 프레스콜 사진 떴을 때는 좀 뜨악했는데,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루케니에 대한 연출의 방향 자체가 초연과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해설자로서 무게가 좀 더 기울었는데, 프롤로그에서의 첫 대사인 '이런 젠장' 부터 확 다르더라. 작년에 신경질적으로 내뱉던 그 대사에 힘을 쫙 빼고, 지겨워, 또 시작이냐 싶은 나지막한 톤. 하기는 백년동안 매일 밤 똑같이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겠지.
전반적으로 대사톤은 좀 더 차분해졌고, 노래도 묵직해졌는데, 몸놀림은 반대로 가벼워지고, 연기도 좀더 여유가 생겨서 제대로 능수능란. 밀크는 앙상블 박력이 좀 많이 아쉬웠는데, 은케니 목청은 더 좋아져서 아주 쩌렁쩌렁 질러주는데, 진짜 홀 전체를 목소리로 가득 채우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게다가 겟세마네로 단련되어 그런가 고음 샤우팅에 자신감이 붙어서 좍좍 질러주는 거 늠 좋더라.
키치에서 관객 조련도 언제 저렇게 넉살이 늘었나 싶게 능글맞고, 무대에선 진짜 말 그대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데, 볼프 살롱에서도 그렇고 저 깨방정에 잔망스런 팔랑거리는 생물은 뭔가요, 요정? 소악마인가? 싶을 정도였; (아니, 요정이라고 해도, 팅커벨, 엘프 이런 종류가 아니라, 한 여름밤의 꿈 같은데 나오는 나쁜 장난을 즐기는 그런 요정;)
캐릭터가 많이 어려진 것 같아서 후반부 루케니의 광기는 어떻게 표현하려나 했더니, 뭐 기우였는지, 침몰하는 배 씬에서부터 눈빛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하더라. 줄칼을 받아들고 심문을 받을 때도 대사톤은 프롤로그에서 처럼 한톤 다운된 평이한 어조. '그런데 나타나지 않던데.' 라며 줄칼로 면도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섬뜩함은 여전하더라. 그러더니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도 별다른 광기를 뿜어내지 않으면서 굉장히 일상적인 일인냥 살인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퇴장. 살인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사이코패스였다.
아, 은케니도 웃겼던거. 루돌프가 가명으로 쓴 기사를 읽는 장면에서 '황태자 루돌프...?' 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거, 낯설지가 않아요~ 뭐, 덕들만 속으로 웃을 수 있는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 그 외 초연 때부터 잘해줬던 민영기 요제프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전히 잘 해내고 있는 이정화 소피(하지만, 그 경박한 발차기만은 좀 ㅠㅠ)가 든든하게 극을 받치고 있고, 김이삭 루돌프도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는데, 엘리자벳의 절반은 앙상블이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앙상블의 박력이 모자라는 점이 많이 아쉽다. 떼창에서의 하모니나 목소리의 합은 괜찮은 편인데, 첫음 얼버무리는 거는 계속 신경쓰이고, 개개인의 끼가 좀 부족하달지. '모두 반가워요.'나 정신병원 장면에서 너무 얌전하고 심심하다. 중소극장 주연급을 앙상블로 데려온 초연이 캐사기급이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뭐, 이제 시작이니 공연 진행되면서 앙상블도 로딩이 될거라고 빌어본다.
엘리자벳이 돌아오기는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