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Begin Again, Can a Song Save Your Life?, 2013)

감독 : 존 카니
음악 : 그렉 알렉산더
출연 : 그레타 - 키이라 나이틀리, 댄 - 마크 러팔로, 데이브 - 애덤 리바인, 스티브 - 제임스 코든, 바이올렛 - 헤일리 스테인펠드, 미리암 - 캐서린 키너, 트러블검 - 씨 로 그린 외

줄거리 :
“다시 시작해, 너를 빛나게 할 노래를!”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뉴욕으로 오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오랜 연인이자 음악적 파트너로서 함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것이 좋았던 그레타와 달리 스타가 된 데이브의 마음은 어느새 변해버린다.
스타 음반프로듀서였지만 이제는 해고된 ‘댄’(마크 러팔로)은 미치기 일보직전 들른 뮤직바에서 그레타의 자작곡을 듣게 되고 아직 녹슬지 않은 촉을 살려 음반제작을 제안한다. 거리 밴드를 결성한 그들은 뉴욕의 거리를 스튜디오 삼아 진짜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만들어가는데… [출처 > 네이버영화]

* 한 줄 요약 :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들어 주는 그것, 음악

- 그동안 영화를 안 본 것도 아닌데, 얼마만에 쓰는 영화 감상인지 모르겠다. 밀린 후기도 잔뜩인데, 광주까지 갔다온 모차르트 후기는 시작도 못했는데, 오늘 보고 온 이 영화가 참으로 울렁울렁해서.

- 영화의 오프닝에서 흐르던 지친 목소리, 쓸쓸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건조한 노래가 댄의 '마음의 소리'를 거쳐서 변화하는 그 순간의 마법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저 노래가 그 사람에겐 이렇게 들릴 수도 있구나. 편곡의 힘, 프로듀싱의 위대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 장면에서 그 황홀경을 같이 느끼게 해준 감독에게 무한 감사를 보내며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당황했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도 좋은 연주일 수 있지만, 거기에 피아노 반주가 섞이고, 바이올린, 첼로, 퍼커션, 베이스가 적절하게 하모니를 이루게되면 1+1+…+1 이 아니라 익스포넨셜한 효과가 더해진다. 바이올린 독주도 아름답지만, 현악 사중주가 되면 얼마나 풍성한 소리가 되는가. 파이처럼 겹겹이 쌓이는 악기 소리들이 주는 청각적 쾌감이 황홀하다.

- 영화의 스토리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지, 그리고 그 음악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음악'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하는 바로 그 "음악"

-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같은 음악을 들으며 밤새 뉴욕 거리를 돌아다니는 그레타와 댄의 밤나들이 장면이다. 자신의 핸드폰의 음악 리스트를 보이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과 같다는 그레타의 대사에 뜨끔했다. 나도 가끔 친구가 요즘엔 뭘 듣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할 때가 종종 있어서;
음악이 함께하는 그 순간엔 일상적인 것들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런 감각을 나이들수록 찾기 힘들어진다는 댄의 대사에도 뜨끔. 그나마 굳어져가는 마음을 다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음악이지.

- 시대를 반영한 건지 협찬이 들어온 건지 아이폰, 맥북 에어가 자주 등장한다. 초반에 오디션용 CD를 듣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선 다들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앨범 제작과 발매와 유통 방법 역시 매우 Smart 하다. 그런 의미에서 CD를 듣고, LP 박스를 챙기던 댄은 아직은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다. 그레타는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을 가진 Smart한 현대인이라고 할까. 노래를 통해 남자 친구의 변심을 알아채고, 그에 대한 감정 정리 역시 노래로 전한다. 그리고 둘 만의 노래가 대중의 노래가 된 순간 그녀는 결단을 내린다. 아름답고 영리하고 신념이 있고 재능이 넘치는 매력적인 아가씨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 처음으로 워크맨이 내게 주어졌던 그날부터 음악은 내 일상이었다. 듣고싶지 않아도 들려오는 버스 안 라디오 방송, 타인의 수다 소리를 차단해주고, 눈만 감으면 콘서트 홀로 영화 속으로 공연장으로 데려다주는 고마운 존재. (그래서 내가 소니에 감정이 각별한 건가;)

- 제목처럼 세상을 구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4. 06. 11 ~ 2014. 08. 03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4. 07. 05(토) 14:00
연   출 : 아드리안 오스몬드,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베버 - 임정희, 콜로레도 대주교 - 김수용, 레오폴트 모차르트 - 박철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차지연, 난넬 모차르트 - 임강희, 체칠리아 베버 - 김현숙, 쉬카네더 - 박형규, 아마데 - 곽이안 외

- Overture의 첫 부분에서 터져나오는 금관 악기 소리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의 도입부다. 그리고 이 도입부는 레퀴엠의 "Rex tremendae" 의 Rex~ 부분의 음을 따서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이건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구나. 뮤지컬 모차르트! 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뒤에 걸려있는 천체가 목성으로도 보인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41번은 쥬피터라는 부제를 달고있으니까, 그의 죽음을 기리는 무덤가에 어울릴지도.

-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나는 음악' 찬양. 온 몸으로 내가 곧 음악이라고 환희에 젖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그 모습에 참 여러가지 감정이 든다. 그냥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같이 기분이 좋아진다. 절로 미소가 그려진다. 그렇지만 이미 뒷 얘기를 알아버린 나는 마음 한 구석에 떠오르는 슬픔을 모른척 하지도 못한다. 내가 이 구역의 모차르트 빠순이요. ㅠ.ㅠ

- 임강희 난넬을 사연에서 처음 만났는데, 생각해보면, 난 재연/삼연 모두 난넬은 임강희 씨 원캐스트였고, 오히려 초연 배우인 배해선 난넬을 사연에서 처음 만난 건데, 두분 다 어쩌면 그렇게 본투비 난넬들이신지, 아무런 위화감 없이 그냥 난넬이구나...하고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뭐래;;)
그런데, 임난넬은 배난넬에 비해 좀 더 단호하고, 어두운 느낌이더라. 배난넬은 엄마같은 누나라면, 임난넬은 연년생 누나, 자라면서 남동생과 엄청 싸우고, 어느 순간 사이가 틀어져서 다시는 안 볼거 같은 그런 누나 이미지랄까. 그게 가장 두드러지는 게 '친구'씬이나,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는 장면에서 배난넬은 슬픔을 깔고있고, 임난넬은 분노가 기저에 깔려있다. 그래도 임난넬의 꾀꼬리같은 목소리를 들으니 좋기는 좋더라. 얼굴도 인형같이 예쁘시고.

- 볼프강이 처음으로 인생의 좌절을 겪는 파리의 어느 초라한 카페에서의 연주. 한 때는 천재라고 열광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엄마는 아프고. 이 장면에서 은촤가 표현하는 사연의 볼프강이 재/삼연과 얼마나 다른 캐릭터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재/삼연까지는 그래도 아직 엄마 앞에서 밝은 척 웃을 수 있었던 아이가, 사연에서는 이미 우울하고 어두운 기운에 잠식당해있다. 그래도 엄마를 안심시켜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거짓 웃음도 웃지 못할만큼 자신감은 하락하고, 마음은 우울함으로 가득차있다. 세상물정 모르던 소년과 세상의 쓴맛을 조금은 알게된 청년만큼의 차이일까.
Overture의 처음을 여는 그 레퀴엠의 음악으로 시작하는 '얼마나 잔인한 인생인가'에서 코러스를 넣은 건 정말 신의 한수다. 사연의 음악이 전반적으로 웅장하면서 더 어두운 쪽으로 코러스의 사용이 좋아졌는데, 여기서 금관 악기만 연주되던 기존과 달리 Rex~ 하고 코러스를 넣으니까 한층 레퀴엠의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처음 죽음을 대면한 볼프강의 내면을 음악으로 표현해주면, 그걸 배우가 연기로 풀어내는 그 주고받음이 참 좋다.

- '짤츠부르크는 겨울'에서 '나는 쉬카네더'로 이어지는 술집씬이 사연에서 심심하다...했더니만, 그 씬의 재미를 은촤가 취객 연기로 채워준다. 오늘은 또 어떤 이상한 춤을 출지, 어떤 취한 연기를 보여줄지 은근히 기대가 된다. 어떻게 하루도 같은 날이 없어ㅋㅋㅋ 쉬카네더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시선을 빼앗는 저 잔망스런 볼프강에 지지 않게 볼거리를 제공해보시던가~

- 황금별이 전에는 그냥 황금별 여사의 노래에 푹 빠져 노래 듣는 장면이었는데, 그 안에 이야기가 생겨났다. 내가 또 프리뷰에서 황금별 연출 구리다고 불평을 해댔는데;; 아니, 지금도 그 조명 황금별 조명 뽝! 경사 무대 뙇! 이런 거는 여전히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레오폴트와 볼프강 사이에 시선의 교차나 서로를 향한 마음 같은게 너무 절절하게 표현되니까, 중간에 낀 남작부인이 되게 방해물 같고, 그래서 남작부인이 뒤로 빠져주니까 레오폴트와 볼프강 사이에 드라마가 성립되더라. 
그냥 서있는 게 아니라, 아빠를 향해서 정말 간절한 시선을 보내는 은촤. 전엔 남작부인이 내 얘기를 들어보겠냐고 하면 그 편에 서서 이것 좀 들어보라고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그보단 좀 더 간절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마음을 돌려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중간에 차남작부인때문에 시야가 가리니까 아빠와 아이 컨택할 수 있는 자리로 옮기는 거도 좋았고. 뭐랄까 전에는 이미 남작부인 꼬임에 더 넘어가는 거 같았는데, 사연에 들어서는 아빠와의 소통을 더 바란다는게 느껴진다. 그리고 남작부인이 언덕에 올라가서 '저 세상으로 날아가 날아올라~' 하고 부르는 부분에서 아빠와 남작부인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게 마음속 갈등을 그대로 보여줘서 좋았다. 아빠 말을 따라 착한 아들로 살것인지, 남작부인을 따라 새로운 기회의 땅인 빈으로 갈 것인지, 그 맹렬한 갈등 끝에 홀리듯 남작부인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좋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는데, 여기서도 얼마나 간절하게 설득을 하던지. 저렇게 바라는데, 아버님 허락좀 해주지. ㅠ.ㅠ

- 빈에 남겠어에서 용주교와 붙으면 어쩐지 반항기+건방짐이 두배가 되는 은촤. 아무래도 용주교는 민주교에 비해 카리스마도 무게감도 떨어지다보니 동년배의 싸움처럼도 보인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는 아르코 백작과 은촤의 케미가 폭발이라. 받아주는 황만익 아르코 백작님 굿~

- 난 자유다~~~~~~유리 천장 백장이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시원함 뒤로, 아마데의 등장에 한숨 쉬며 주저앉아 시작하는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이렇게 사소한 한 숨 소리, 몸짓 하나로도 극이 선명해진다. 그리고 매번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드는 은촤의 내운명이시여. ㅠ.ㅠ 어떻게 갈때마다 더 더 좋아질 수 있는걸까. 어떻게 이게 가능해? 라는 생각이 들정도다. '그전에 운명 앞에 지는가'에서 완전히 무너지듯 주저앉았다가 앉은 채 뒤돌아서 '그렇겐 못해!' 하고 일어서는데, 저 단순한(?) 방향 전환만으로 회전과 수직 상승이라는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한 치의 흔들림없이 최고음을 뽑아낸다. 진짜 최고라고 생각했던 그 어떤 걸 계속해서 깨주시는 바람에 전관 찍는 보람이 있다. 정말 단 한 순간도 눈과 귀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향연이다.

- 이막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가서, 왜 날 사랑해주지 않나요부터 아마데의 공격, 구걸 편지, 아버지의 부고까지 그를 좀 내버려둬~ (feat. 콘스탄체) 라고 하고싶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러 온 임난넬은 어찌나 차갑고 단호하신지.
이어지는 슈테판 성당, 콘스탄체와의 이별, 마술피리, 쉬운길은 잘못된 길 까지 또 쉴새없이 몰아치다보면 곧장 모차르트!모차르트!가 시작되고 볼프강의 죽음이 다가온다. 적고보니 진짜 2막에서 볼프강은 2/3 이상을 퇴장없이 죽 이어가야하는 터프한 역이구나 싶다.
황금별을 찾았지만, 그 빛에 타버린 그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건 그래도 음악. 나는 나는 음악의 슬픈 변주곡 위로 서서히 번지는 미소는 일막에서의 환희에 찬 미소와 대비되어 어쩌면 더 눈부시다는 느낌이다. 진짜로 음악밖에 없구나 싶어서. 그렇게 마지막 불꽃을 환하게 태우고 꺼져버린 모차르트의 빛. 그리고 꺼졌다고 생각했던 그 빛이 음표로 살아나 하늘로 떠오르는 피날레.
그의 음악은 영원하겠지만, 그저 행복하고 싶었던 볼프강은 어디에서 위안을 받아야 하는지, 늘 먹먹해진다.
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4. 06. 11 ~ 2014. 08. 03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4. 07. 04(금) 20:00
연   출 : 아드리안 오스몬드,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베버 - 김소향, 콜로레도 대주교 - 김수용, 레오폴트 모차르트 - 박철호,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신영숙, 난넬 모차르트 - 배해선, 체칠리아 베버 - 이경미, 쉬카네더 - 박형규, 아마데 - 윤펠릭스 외

* 한 줄 요약 - 앙상블을 이루다.

- 나는 나는 음악에서 신이 주신 이 재능이 나의 날개가 될 거라고 노래할 때, 은촤가 정말로 날개를 펼치듯 팔을 펼치고 마치 깃털이 하느작거리며 움직이듯, 건반 두듯리듯 손가락을 팔랑거리던게 너무 예뻐서 넋을 놓고 봤다. 

- 이 날 나는 나는 음악에서 거울 내려오고 펠릭스 아마데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타이밍이 좀 늦어서 은촤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 단장하고 하는 시간이 좀 길어졌다. 난 이 장면이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만남이라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날은 텀이 좀 길어지다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장면이 단순히 아마데와의 첫 만남이 아니라, 아마데의 첫 탄생의 순간이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아마데는 어디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언제나 볼프강 안에 있었는데, 그걸 볼프강이 '아마데'라는 존재로 처음 인식하는 그 순간, 아마데는 그렇게 처음으로 태어나서 볼프강과 박리(분리가 아니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이 때의 아마데는 아직 볼프강과의 분리가 완벽하지 않아 '너'와 '나'의 구분없이 '우리'로서 성립한다. 그러니 볼프강이 전해주는 악상에 의지해 악보만 그려대는 거지. 볼프강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졸졸 따라다니고.

그러던 아마데도 볼프강과 별개의 '존재'로서 성장해나가면서 자기 주장을 하기 시작하는게, 황금별 이후라고 생각된다. 몇 번 썼지만, 난 프리뷰 첫 공연에서 빈으로 떠나겠다는 볼프강과 그걸 막으려는 레오폴트의 대립에서 레오폴트 편에 서는 아마데를 보고 캐릭터 붕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사연의 아마데는 천재성 + 어린 시절이라고 그 생각을 수정하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이해를 했다기 보다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 것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아마데의 첫 자기 주장, 볼프강과 분리된 또 다른 자아로서 나는 아직 아버지 그늘 아래 있어야한다고 볼프강에게 맞서는 거라면 또 이해가 되지. 그리고 점차로 아마데는 볼프강의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다. 볼프강은 좀 더 인간다운 삶, 행복, 쾌락을 쫒기 시작한다. 여전히 그에게 음악은 중요하지만, 그게 예전에 내가 곧 음악이라고 하던 시절 만큼은 아니게되었다. 볼프강에겐 사랑도 돈도 명예도 가족도 음악만큼 소중하지만, 아마데는 음악만이 소중하니까. 그래서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분리가 베버 가족네 방문 장면이었다는 건 참 의미심장하다. 모차르트!에서 아마데가 가장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존재는 체칠리아 베버, 콘스탄체 베버 인 듯ㅋㅋㅋㅋㅋ

- 빈에 남겠어 넘버가 갈수록 박력이 장난 아니다. 목소리의 강약 조절하며, 아르코 백작을 위협하는 볼프강이 완전 취향이라. 게다가 받아주는 황만익 아르코 백작님 쫄아드는 리액션도 좋고. 이날 특히 '장난처럼 보이나' 할 때 처음부분은 버럭 질렀다가 뒤에 소리를 죽여가며 협박조로 위협하는게 더 무섭더라. 아, 그리고 대주교에게 '할 말이 있어~'할 때 목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쓸데없이 예쁘고 청아한지 모르겠다. 매번 혼자 좋아죽는다.

- 난 자유다~ 이후에 정말 후련하다는 웃음을 짓던 은촤가 아마데의 등장과 함께 싸늘하게 표정이 식는 그 순간순간의 표정 변화는 진짜 연사로 찍어서 저장하고 싶다. 그리고 이날의 내운명도 뻔하지만, 레젼....아닌 날이 있을리가;
지난 28일 버전이 완성형이었던 거 같고 그 노선으로 가닥은 잡고, 그 안에서 좀 더 세밀하게 미세 조정을 하는 느낌이다. 자신을 비추는 낡은 거울을 깨치고 힘겹게 발걸음을 떼고 언덕을 올라가다 이 운명 앞에 지는가 할 땐 진짜 운명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처럼 완전히 주저 앉았다가 박차고 일어나는데, 이게 또 28일과는 또 다르게 굉장히 버거워 보이더라.
그리고 이날 정말 칭찬받아 마땅할 앙상블들. 내 운명에서 앙상블이 저엉말 멋졌던게, 그전엔 조금씩 어긋나는게 들렸는데, 딱 한사람의 목소리처럼 앙상블을 이뤄서 어찌나 좋던지. 그렇게 딱 한 목소리가 되니까 은촤 : 앙상블 = 1:1 의 대치처럼 들리면서, 이 둘(?)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딱 맞서는 것이, 아아~ 여기서 앙상블은 그냥 화음을 넣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목소리가 없는 아마데를 대신하여 볼프강을 압박하는 그 모든 것이구나 하는게 느껴져서 전율이 일었다. 너는 결코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언덕 위로 달아나 탈출에 성공했다고 느꼈을 그 뒤에 까지 쫓아가 매달리는 목소리의 압박이라니.

- 2막은 초반에 잠깐 상승세를 타던 부분을 지나면 내도록 어둡고 처절한 내리막길이라, 진짜 언덕에서 돌 굴러내리 듯 순식간에 몰아친다. 그 와중에도 제일 처절한 부분은 역시 '왜 날 사랑해주지 않나요.'인데, 이날 처음으로 이 넘버의 무게가 '내 운명'과 맞먹는 다는 걸 느끼게 해주더라. 원래도 2막에서 제일 좋아하던 넘버였고, 은태가 참 절절하게도 잘 불러줘서 모차르트!에서 최애 넘버이기도 하고 했지만, 확실히 한 단계 더 성장한 은태가 불러주는 '왜 날 사랑해주지 않나요.'는 또 다르더라. 볼프강에게 있어서 피하고 싶은 내 운명(천재성 아마데)과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 인정의 무게는 동등하구나 하고. 그러니 아버지가 자신을 내쳤다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아마데의 공격을 받고 미쳐버리는 것도 충분히 납득 가능.

-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듣고, 슈테판 성당에서 부르는 노래를 은촤가 참 성스럽게 성가 부르듯 부르는 게 좋다. 경건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거 같아서. 그런데, 여기서 은촤가 가사 실수를ㅋㅋㅋㅋ 근데 참 실수를 해도 티안나게 극복하는데는 도가 텃나보다. 원래 가사가 당신이 옳았어요 다음에 '기적은 다 끝났어, 이제 댓가를 치를 테죠.' 인데, 이걸 '댓가를 치르겠죠, 신의 기적은 끝났어.' 이렇게 부르더라. 댓가가 먼저 나와버리는 바람에 잉? 이랬더니, 뒤에 가서 저렇게 작사를ㅋㅋㅋㅋ 아, 하여간 순발력 하나는 인정.

- 마술피리에서 은촤의 표정 변화 역시 사랑이다. 환희와 고통, 슬픔과 기쁨, 이 두 상반된 극과 극의 감정이 동시에 터져나온다.

- 은촤와 용주교의 쉬운 길은 참 미묘한게 둘의 목소리가 비슷한 성질(声質)을 가졌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좋은 점이라는 거다. 비슷한 성질(声質)이라 섞이기 쉽다.  이게 단점으로 작용하는 건 둘이 같이 맞붙을 때 묻힌다는 거고, 장점으로 작용하는 건 화음을 이룰 때, 정말 듣기 좋은 하모니를 이룬다는 거다. 여기서 막판에 있는 힘껏 내지르는 은촤 승! 으로 싸움은 끝나지만, 이미 모든 기력을 소모해서 간신히 버틴다는 것도 일목요연하다. 그런데 민주교와 용주교의 퇴장 타이밍이 조금 다른 게, 민주교는 밀어내듯 질러대는 볼프강에 밀려서 퇴장하는 느낌이라면, 용주교는 그 뒤에 들려오는 '모차르트!모차르트!' 연호하는 환호 소리에 밀려 퇴장하는 느낌이라 볼프강에게 밀린다기 보다는 볼프강을 연호하는 대중에 떠밀려 퇴장하는 느낌이 든다.

- 내 운명때 그렇게 좋았던 앙상블이니 모차르트! 모차르트! 에서는 또 얼마나 좋았겠나. 역시나 앙상블의 화음이 딱 맞아떨어져 엄청난 전율을 안겨주었다. 앙상블 전원이 풀 파워로 한 목소리로 질러대는 그 느낌. 내가 이거 때문에 대극장 극에 맛을 들였지! 하는 그런 멋진 앙상블이다. 그 위압적인 앙상블이 볼프강을 둘러싸고 짓누르는 그 느낌. 여기서 볼프강이 한 번 탈출을 시도하는 것처럼 침대를 벗어나려 하는데, 그 앙상블의 소리가 마치 자석의 인력처럼 볼프강을 다시 아마데의 곁으로 돌려놓더니 벗어나지 못하게 압박하는 것 처럼 보이더라.
그 압도적인 욕망과 탐욕의 소리에 시달리는 볼프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마데에게 악상을 죽쭉 빨리면서 점점 바스러진다. 내 멘탈도 같이 탈탈 털리고. ㅠ.ㅠ

- 박철호씨의 레오폴트는 참 개성이 강하다. 이정열 씨와 또 다른 아버지 타입으로 좀 더 한국형에 가깝다. 모차르트를 찾아라에서 필사적으로 아들 앞을 막아서는 모습은 눈물겨운 소시민스러운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며, 반항하는 아들에게 이 자식이! 소리치며 한 대 칠것 같은 모습에서도 말보다 빠른 주먹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안타까운 건 연기만큼 노래가 받쳐주면 금상첨화였을텐데. ㅠ.ㅠ

- 신영숙 씨는 역시 오리지널이다. 차지연 씨도 좋다 했는데, 역시 신영숙 씨의 남작부인이 주는 안정감이란. 

+ 커튼콜에서 인사법은 우아함 쪽으로 방향 선회한 듯. 나이스! 펠릭스 아마데를 향해 사랑의 총알을 쏜 은촤. 펠릭스가 좀 무거워보이는데도 안정적으로 안아들고 둥기둥기. 역시 애아빠. 파파 한번 끌어안고, 주교님도 한번 끌어안고 그리고 막 내려오는데 펠릭스가 세걸음 무대앞으로 나아가 인사하는 바람에 내려오는 막을 보고 식겁한 용주교님이 펠릭스 급 소환. 아가 다음부터는 앞만보지 말고, 위도 좀 보자. 그 막 그거 생각보다 위험한 거란다.


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4. 06. 11 ~ 2014. 08. 03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4. 06. 28(토) 19:00
연   출 : 아드리안 오스몬드,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베버 - 임정희, 콜로레도 대주교 - 민영기, 레오폴트 모차르트 - 이정열,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차지연, 난넬 모차르트 - 배해선, 체칠리아 베버 - 이경미, 쉬카네더 - 조성지, 아마데 - 곽이안 외

* 한 줄 요약 - 피할 수 없는 네 운명 ㅠ.ㅠ

- 나는 나는 음악은 재관람이 반복될 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 은촤의 연기적인 면이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 곡 자체가 정말 내 마음에 든다. 솔직히 재/삼연에서는 이렇게까지 이 곡이 좋지는 않았고, 그냥 흐뭇하게 엄마 미소 지으며 볼프강과 아마데의 꽁냥거림을 지켜보는 넘버였지, 이게 넘버가 좋다, 음악이 좋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넘버 중 하나였는데, 사연에서는 정말 이 곡 때문에 반복해서 본다고 할 정도로 좋다. 노래하는 배우의 목소리도 창법도 달라졌고, 편곡도 가사도 좀 더 다이나믹하게 바뀌고, 무엇보다 이 곡에 실린 감정의 무게가 다르다. 내가 곧 음악이라고 환희에 젖어있는 볼프강, 신이 주신 재능이 나의 날개라는 믿음이 곧 어떻게 그의 인생을 무너트릴지 그 강렬한 대비가 이 곡 한곡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 곡이 시작할 때, 허공에서 거울이 내려와 볼프강을 비추다 아마데와 조우하게 되는 그 연출이 프리뷰 때 보고 임팩트 없다고 투덜댄 게 무색하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땐 모든 게 낯설어서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 였다고 변명;;)

지난 번에 이 장면이 아마데와 볼프강의 첫 대면이라고 그랬는데, 이날 공연에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만남일까, 아니면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분리일까.

- 이번 모촤에서 거울이 중요한 소품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첫번째가 나는 나는 음악, 두번째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세번째가 모차르트 혼란씬이다. 거울이라는 소품은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거울은 그냥 허투루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이 아닌데, 아드리안이 모차르트!에서 그걸 세번이나 사용한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거다.

나는 나는 음악에서 거울을 들여다본다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자신을 객관화 해서 바라보는 것. 또는 자신의 무의식과 내면을 탐색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볼프강은 거기에서 아마데를 발견한 걸 수도, 아니면 그 순간 볼프강과 아마데를 분리해낸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두번째로 등장하는 거울은 내 운명 피하고 싶어에서. 내 운명에서 거울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마데가 깃펜으로 볼프강의 팔뚝을 찔러서 잉크 대신 피로 악보를 적는 그 부분에서 등장한다. 여기서의 연출이 맨 오브 라만차의 '거울의 기사'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보다보니 이건 연출의 의도는 명확하게 다르구나 하는게 느껴지더라.
라만차에서 거울은 환상에서 깨어나 너의 본질, 너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직시하라는 이상에서 현실로 끌어내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내 운명에서의 거울은 사실 이게 내 확대 해석인지도 모르겠는데, 볼프강에 의해서 깨지는 거울처럼 보인다.
거울을 깨트린다는 건 지금까지 습관화된 낡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겠다는 그런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하면서 거울 든 앙상블들을 쳐내는 장면이 마치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과거의 나를 깨부시는 것 처럼 보이더라. 그렇게 깨진 거울을 헤치고 나가다가도 '이 운명 앞에 지는가.'라며 어깨를 짓누르는 운명의 무게에 다시 한 번 주저 앉았다가, '그렇겐 못해! 난 할 수 없어!' 라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배우가 추가한 디테일이겠지만,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노래 한 곡 안에서 완벽하게 완결된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도 감탄했던 장면 중 하나가 '도망자'에서 하나의 넘버로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거였는데, 그걸 모차르트!에서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진짜 이날의 내 운명은 이런 말도 식상하지만, 이제까지 중에 가장 좋았다. 뭐지? 지난 번에도 레젼 갱신 우와 쩔어, 미쳤나봐 뭐 이런 반응이었는데, 이날의 내운명은 그걸 또 한 번 뛰어 넘었다. 이게 무슨 이차방정식 그래프를 그리는 거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날 죽이고 말거야~ 샤우팅 이후에 앙상블들이 '어떻게 그림자 잃고 어떻게 운명 거부해' 라며 압박할 때 한 번 더 지르는 샤우팅에서 정말 풍성하게 후음 쭉 뻗어주는데 진짜 그 울림이 온통 세종 홀을 가득채우는 그 느낌은 뭐라 할 수 없이 전율이다. 게다가 저렇게 넘버 하나 안에서 기승전결 완결성을 가진 하나의 드라마를 보여주니 이건 뭐 제대로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 브라보~ 은차르트!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거울은 혼란씬에서 등장하는 깨진 거울이다. 거울을 깨트리는 것과 이미 깨진 거울이 등장하는 건 굉장히 다른 의미다. 위에 썼듯이 거울을 깬다는 건 과거를 버리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만, 깨진 거울은 왜곡된 자기 이미지를 암시한다. 낮은 자존감, 혼란스러운 자기 정체성, 무엇하나 똑바로 비춰주지 않는 깨진 거울은 불분명하고 모호한 이미지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거기에 비춰진 이미지는 실체보다 더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이다.
생각할 수록 아드리안은 천잰가봉가;;

- 사연 연출에서 아역 난넬의 역할이 조금이라도 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초연에서는 배해선 씨가 원피스를 입고 어린 난넬 역까지 하셨다고 한다.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늦동이 키우는 나이 많은 누나 같았을 거 같다. 재/삼연에서는 아역 난넬을 캐스팅해서 세웠는데, 이게 참 그 아역 배우들에게 할 짓은 아니었을 거라는 게, '이 아이는 누구인가'에서 부지런히 동생 시중들고, 바이올린 셔틀에 앵벌이 ㅠ.ㅠ 하면서 쟁반들고 돌아다니다, 노래는 딱 두 마디 하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영영 잊혀진 채, 커튼콜 때가 되서야 어른 난넬과 같이 등장해서 인사. 그러니까 1막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커튼콜까지 저 아이는 의상도 갈아입지 못한 채 뭘하고 시간을 보냈을까...이런 생각이 들었더랬지.
그러던게 사연에서는 그래도 깨알같이 어린 난넬을 등장시키더라. 역시 노래는 두마디 뿐인데, 어찌된 일인지 더블 캐스트된 두 아이가 그 두마디 뿐인 노래를 제대로 못불러서 -_-; 하여간 1막 초에 나오고 잊혀진 줄 알았던 아역 난넬은 볼프강의 악몽(수수께끼)에, 난넬의 과거 회상(끝나지 않는 음악 있을까)에 꽤 비중있게 등장해서 뭔가를 보여 줄 수 있어서 재연에서 아역 난넬 했던 시영이가 새삼 애틋하게 생각났더랬다;;

- 민주교님도 나날이 연기가 디테일해지고 업그레이드 되는 게 보여서 새삼 민영기씨도 참 좋은 배우였지..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조연 포지션의 연기만 봐왔고, 늘 일정이상의 퀄리티로 기복없이 꾸준히 잘 해주는 배우라는 인상은 있었지만, 이번 사연 모차르트!에서는 한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 보여서 감탄했다. 어느 단계에 오른 배우들이 그걸 또 벗어나 위로 올라가는 건 이제 시작하는 배우가 발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데 민주교님이 재/삼연에서도 잘해줬던 그걸 뛰어넘는 사연의 대주교를 보여주시더라.

이날도 쉬운 길은 잘못된 길, 어엄청 좋았는데, 민주교님 디테일이 이것 저것 추가되면서 처음에 꼬득이는 부분이라던가, 고작 하인 취급하던 레오폴트까지 들먹일 때는 이분이 급하셨구나 싶었다. 이 부분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민주교가 은촤 뒤쪽에서 '아버질 생각해~' 하니까 은촤가 굉장히 괴로운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이어지는 '내 말을 따르길 바랄걸' 이라는 소절을 무척 강조하면서 확 긁어서 부르는데 대주교의 감정이 느껴져서 좋더라. 이 곡을 부를 때의 은촤는 뭐 한대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서도 눈빛만 생생한 것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게 보인다. 근데도 그게 막 강하게 대치하는 게 아니라, 간신히라는 게 보여서 안스럽다. 이 뒤에 이어지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카운터 펀치고. ㅠ.ㅠ

- 차지연 씨의 남작부인도 자리를 잡아가는 게 보인다. 특히 신영숙 씨의 남작부인과 확연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모차르트!모차르트!에서 인데, 차남작부인은 오로지 볼프강의 재능만을 사랑했다는게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신영숙 씨보다 좋았던 부분이 빈으로 아들 찾으러 온 레오폴트와 대립하는 장면이었는데, 신영숙 씨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르는 부분을, 차지연 씨는 당장이라도 파이트할 기세로 불러줘서 좋았다.

-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그저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 제발 오래오래 건강하게 무대에 서 주시길. 레오폴트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극에 대한 몰입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니; 원래도 1막에서 연달아 잔소리 해대는 레오폴트 넘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뭐. 그래도 2막에서 리프라이즈 되는 부분은 청년 볼프강과 꼬장꼬장 레오폴트의 한 판 파이트가 되니까 좀 들을만 한데, 1막에선 아버지 잔소리잔소리가 볼프강에 백퍼 이입하게 된다;
아들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하는만큼 그 재능을 키워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레오폴트. 저는 천재를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라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그 상처받은 자존심이 안타까운 한편 모차르트 빠순이인 나는 야속하다. 아버님, 자존심 버리고 빈까지 가셨는데, 아들래미 한 번만 꾹 참고 안아주셨으면 좋았잖아요. ㅠ.ㅠ

- 이 날 커튼콜에서 은촤는 기존의 방방 뛰던 거에서 재/삼연에서처럼 우아한 인사법으로 바꿔서 난 그게 더 좋더라. 극 분위기 때문에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다음 공연을 봐야 알겠지만, 내가 발레 동작이 가미된 은촤의 저 부드럽고 우아한 절을 참 좋아해서.
그리고 귀염둥이 아마데, 이안이를 끌어안고는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주던 은촤. 이안이가 귀엽긴 많이 귀엽지ㅋㅋㅋ 그러더니 다 같이 인사할 때 정열 레오폴트가 이안이 안아주시고, 그걸 은촤가 안아 옮겨받고 인사하다가, 갑자기 민주교가 은촤를 앞으로 확 밀어서, 타이밍만 맞았으면 내려온 막 앞에서 망연자실할 은촤와 그 품에 안긴 이안이를 볼 수 있을 뻔했다.ㅋㅋㅋ 순발력 있는 은촤가 내려오는 막을 보고는 기겁해서 제자리 찾아 들어가 그런 재미는 누릴 수 없었지만, 언젠간 꼭 하고 말 거 같은 민주교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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