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The Maze Runner, 2014)

감독 : 웨스 볼
원작 : 제임스 대시너(James Dashner)
출연 : 토마스 - 딜런 오브라이언, 알비 - 에멜 아민, 뉴트 - 토마스 생스터, 민호 - 이기홍, 갤리 - 윌 폴터, 척 - 블레이크 쿠퍼, 제프 - 제이콥 라티모어, 트리사 - 카야 스코델라리오, 아바 페이지 - 패트리시아 클락슨 외
줄거리 :
삭제된 기억, 거대한 미로로 둘러싸인 낯선 공간 모든 기억이 삭제된 채 의문의 장소로 보내진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 ‘토마스’는 미로에 갇힌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매일 밤 살아 움직이는 미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존재와 대립하며, 지옥으로부터 빠져나갈 탈출구인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미로의 문이 열리고 그들은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출처 > 네이버영화]

* 한 줄 요약 - 이 가혹한 시대에 태어난 십대들에게 고함

※ 스포일러 주의

-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우선은 예고편을 보고 했던 예상과는 많~이 벗어난 영화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난 움직이는 미로가 주인공인 줄 알았지. 정작 미로는 맥거핀이었다. 그리고 그건 미로라기 보다는 그냥 거대한 "벽"에 가깝다. 진격의 거인에서 거인의 침입을 막아줄 거대한 벽. 미로는 그저 그리버의 침입을 막아주는 벽일 뿐, 미로가 가지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비슷한 장르의 다른 영화들이 이 영화의 성격을 말해준다. 엔더의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해리 포터 시리즈, 에반게리온, 진격의 거인 까지.
이 영화들이 주는 메세지는 "십대는 미래의 희망" 이랄까. 그들이 망해가는 이 세상의 구원자이며, 그들로 인해 세계는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얼마간 늦출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니 너희 목숨을 담보로 깨지고 구르고 네 능력을 펼쳐보여라~ 라니.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게, 노골적인 기성 세대의 "너희가 우리 미래를 책임져야 해!"라는 것처럼 들려서 심히 거북하더라.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미 기성 세대 반열에 들어섰지만서도 불쾌한 건 불쾌한 거다.
우리는 이미 글렀다. 그러니 너희들의 미래는 니들 손으로 만들어가라...는 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글렀으니 니들이 우리가 망쳐놓은 너희들의 미래까지 같이 책임져라..는 게 너무 파렴치하달까.

- 왜 그들은 우리와 다를까.
모든 기성 세대들이 십대를 마주하며 떠올리는 이 명제가 결국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분명히 내게도 십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기성 세대는 새로 나타난 돌연변이를 바라보듯 "요즘 애들"을 바라보는 걸까. 이건 뭐 인류가 지구 위에 존재하던 그 먼 옛날부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겠지.

환경은 계속해서 변하고, 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문제는 환경이 변하는 속도가 현저하게 빨라졌다는 거지. 그 변화에 쫒아가서 적응하고 다음 변화에 대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시대가 흐를수록 익스포넨셜하게 빨라지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세대의 삶의 방식이 기성 세대에게 얼마나 이질적으로 보이겠어. 이 무시무시한 유연성을 머리 굳은 기성 세대는 쫒아갈 수 없으니, 그들보다 오래 산 경험, 정보 우위를 가지고 그들을 내모는 거지. 교활하게도 그들이 가져다 줄 열매를 기다리면서.

- 영화 자체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러브 액츄얼리의 그 사랑스러운 꼬마가 역변없이 잘 성장해 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 민호가 귀여웠다. (뜬금없다;;)

- 나는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어떻게 살고싶은지 결정할 수 있으니까.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레베카(Rebecca)

일   시 : 2014. 09. 06 ~ 2014. 11. 09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4. 10. 04 (토) 15:00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원   작 :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
캐스트 : 나 - 임혜영, 막심 드 윈터 - 민영기, 댄버스 부인 - 옥주현, 반호퍼 부인 - 최나래, 잭 파벨 - 박인배, 줄리앙 대령 - 허정규, 베아트리체 - 이정화, 가일스 - 김장섭, 프랭크 크롤리 - 이광용, 벤 - 김지강, 프리츠 - 신재희 외
줄거리 :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막심 드 윈터,
그는 몬테카를로 여행 중 우연히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막심의 저택인 맨덜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맨덜리는 아름다웠지만 음산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기도 했다. 죽은 레베카가 마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맨덜리의 모든 것은 여전히 레베카에게 깊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집사 댄버스 부인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새 안주인은 점점 숨통이 막혀옴을 느낀다.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그녀는 가면 무도회를 열기로 하고 댄버스의 조언으로 멋진 의상을 준비한다. 하지만 무도회 당일, 자신이 입은 드레스가 레베카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막심의 분노에 실망하여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댄버스는 그런 그녀에게 레베카의 자리는 아무도 차지할 수 없다고 끝내 자살을 권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때,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레베카로 시작해서 댄버스 부인으로 끝나는 주인공은 '나'야~

- 날씨가 정~말 좋았던 금요일,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걷고 집으로 돌아와서 충동적으로 토요일 공연을 예매하기로 결심해서 보게된 공연. 생각해보니까 작년에 보고 후기도 안썼더랬다. 재미있게 보고 왔는데 아마 후기를 쓸 여력은 안됐던 시기였나보다. 토요일도 천사데이(;)에 걸맞게 어찌나 화창하고 좋은 날씨던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좋은 공연 보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아~ 이 맛에 공연을 보지 싶다. 그동안 봐온 연극들이 모두 기빨리는 작품에 눈물 빼는 극이었는데, 그런면에서 레베카는 보고나면 행복해지는 극이라 좋다.

- 작년에 볼 때도 공교롭게도 '나' 역은 임혜영 씨 고정이었는데, 올해도 아마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배우에게는 인생 배역이라는 걸 만나는 순간이 있는데, 레베카의 '나' 역이 임혜영 씨에게는 그런 배역이지 않을까 싶을만큼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작년에도 잘한다 싶었는데, 올해는 거기에서 살짝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목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도 잘 컨트롤해서 넘기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져서 연기 디테일도 좋았다.

'나' 역이 참 손해보는 역인게,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나'인데, 내도록 레베카의 망령에 짓눌리고, 댄버스의 기에 눌리고, 막심의 히스테리에 휘둘리는 역이라, 그 존재감이 막 발산이 되면 안되는 역이라는 거다. 분량면에서나 넘버 수, 넘버 난이도 등에서 하등 꿀릴 게 없지만, 내가 주인공입네 하고 나대면 극이 무너져버리는 그런 역이라서, 보고나면 '레베카 밖에 기억이 안난다'거나 '이거 뮤지컬 댄버스' 라고 하더라도 그게 '나'로서는 성공한 연기라는 아이러니한 사실. 그런 역을 임혜영 씨가 참 잘해주더라.
예쁘고 참하고 귀엽고, 작은 동물을 연상시키는 소심함과 겁먹는 모습 조차도 사랑스러운 그런 소녀. 그 소녀가 사랑을 하게되고, 그 사랑을 키워나가며 강인해지며, 여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나'가 맞다.

- 그런 '나'를 사랑하게 된 막심은 작년에 류정한 씨, 유준상 씨를 만났고, 올해 민영기 씨를 만났는데, 진짜 이 셋이 표현하는 막심은 다 다르다. 류막심은 귀족적이고 예민하며 빡침의 대가다운 막심, 유막심은 적어도 내가 본 공연에서는 퇴역 장교같은 느낌이었고, 민막심은 젠틀하고 자존심 강한 냉정한 막심이었다. 그게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신이여랑 칼날송에서였는데, 류막심이 빡침의 칼날송을 보여줬다면 유막심은 어딘가 광기가 서린 모습, 민막심은 이제까지 유지해온 냉정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상처입은 자존심에 울부짖는 것 같은 그런 막심을 보여주더라. 재밌는 건 민막심은 평소에 너무너무너무 젠틀하고 부드러운 남자인데, 그게 더 차가운 느낌이라, '나'가 기댈 곳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거다. 오히려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류막심 쪽이 '나'에게 더 친밀하달까. 민막심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완벽해서 더 곁을 주지 않는 느낌이라, 둘 사이 케미스트리는 온전히 '나' 혼자 고군분투해서 살리더라는; 장하다 임나!

- 옥주현 씨의 댄버스 부인은 명불허전. 초연 때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뭐 여전히 잘하더라. 극이 시작하고 20여분이나 지난 다음에 등장하지만, 이 뮤지컬의 진 히로인이라 할만한 역이고보니, 첫 등장부터 임팩트가 강하다. 그게 작년보다 더 강해진 느낌. 단모음을 이중모음처럼 발음하는 버릇은 빨리 고쳤으면 좋겠고, 아무래도 디바 출신이라 그런가 레베카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폭발력은 진짜 대단하다...만, 가장 마지막의 레베카 rep.만큼은 초연 때처럼 좀 더 처연하게 불러줬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강하게 불러서 아쉬웠다.

초연 때 신댄버스와 옥댄버스를 모두 봤는데 둘의 노선이 상당히 달라서 재미있었더랬다. 신댄은 레베카를 모성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라면, 옥댄은 레베카에게 동일시의 감정으로 숭배하는 느낌이었는데, 재연에서도 그 감정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더라.

- 잭 파벨의 박인배 배우는 아마 내가 레베카로 처음 만나는 배우인 거 같은데, 음색이며 연기며 모두 취향이라, 굉장히 좋았다. 최민철, 에녹 배우의 잭 파벨도 모두 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잭 파벨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건 박인배 배우였다. 최민철 씨는 미안하지만, 너무 범죄자스러웠고, 에녹 씨는 '폰팔이'라는 누가 생각해냈는지 정말 딱 그 표현 그대로 였는데, 박인배 씨는 적당히 허세끼 있는 속물이면서도 여자들이 혹할만한 매너는 갖추고 있는 호스트 분위기랄까. 그런데다가 이분도 목소리가 상당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타입이라 듣기 좋더라.

- 그 외 프랭크 역에 이광용 씨. 아니 진짜 요제프 이후 얼마만에 무대에서 뵙는지. 여전히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시고. 그 훤칠한 외모도 여전. 부디 자주 뵙길. 프랑켄슈타인에서 집사 역이더니, 레베카에서도 집사로 활약중인 신재희 씨도 오랜만에 반가웠고, 내가 초연 레베카에서 제일 반하고 왔던, 무대 장악력이 남다르신 최나래 씨, 아아~ 최나래 씨의 반호퍼 부인은 사랑입니다.♡ 그 딱따구리 웃음소리 다시 들으니 반가웠다. 레베카도 르베이 작품이라 앙상블이 받쳐줘야 하는데, 이번에도 앙상블은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어 엄지 척!

- 이 극이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이면서도 보고나면 행복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건, 서로를 의지하며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피날레 장면과 커튼콜 때문인 거 같다. 진짜 보고나면 힐링되는 느낌이라니까. 다음에 엄마와 같이 보러가야겠다.

+ 신기한게 극장을 나서면서 흥얼거리는 건 레베카~ 인데, 집에 와서 떠오르는 건 어젯밤 꿈 속 맨덜리 라는 거.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거 여주 투탑극이라는 거.
반신(Half Gods)

일   시 : 2014. 09. 12 ~ 2014. 10. 05
장   소 : 명동예술극장
관극일 : 2014. 10. 01(수) 19:30
연   출 : 노다 히데키(野田秀樹), 원작 :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캐스트 : 수라 - 주인영, 마리아 - 전성민, 노수학자/노의사 - 오용, 가정교사 - 이형훈, 아빠 - 박윤희, 엄마 - 이주영, 하피 - 김정호, 좌숙이/머메이드 - 서주희, 우숙이/가브리엘 - 이수미, 스핑크스 - 김병철, 유니콘/탁이 - 양동탁, 게리온 - 정홍섭
줄거리 :
볼품없는 외모지만 뛰어난 머리를 지닌 언니 수라와 천사같이 아름답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동생 마리아. 두 사람은 몸이 붙은 채로 태어난 샴쌍둥이다. 수라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마리아를 보살피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언제나 마리아다. 그러 두 사람이 열 살이 되기 직전,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다. 살아날 방법은 단 한 가지. 그것은...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 포스터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빼앗겨서 저 반신을 半身이라고만 철썩같이 믿고 극을 보러갔다. Half Gods라고 친절하게 써줬는데 거기엔 시선도 안갔지. 물론 반신은 半神 = 半身 일본어로도 한국어로도 동음이의어로 언어유희적인 표현이기는 하다만. 우리도 일본도 한자문화권이라 이런 식의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비교적 무리없이 통하는 게 재밌다.

- 시작이 독특하다. 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배우들은 무대위에서 몸을 풀고 있다. 그러고보니 이런 극을 전에도 본 기억이 나는데, 그 극도 원작자가 일본인이었던 거 같다. 극중극의 형식을 빌어서 보여주는 이 연극은 계속해서 객관화를 요구한다. 관객이 극에 빠져들어 이입해서 감정이 고조되는 딱 그 시점에 관객을 극 밖으로 빼내버린다. 그런데 그 감각이 방해를 받는다기보다는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극에 잠겨있는 그 순간의 감정을 되짚어서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느낌이랄까.

- 원작자 하기오 모토. '잔혹한 신이 지배한다.', '11인이 있었다' 같은 작품으로 알려진 만화가. 탐미적이고 철학적이며 문학적이고 시적인 대사가 아름다운 작품을 그린 이 분의 단편이 원작이란다. 극을 다 보고나서 미칠듯이 원작이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 정발된 작품도 몇 안되는데, 또 일본 아마존을 뒤져야하나....했는데, 다이제스트 요약본을 바로 찾았다. -_-;;  http://www.oeker.net/bbs/board.php?bo_table=comic&wr_id=3080759
원작은 半身이 맞는데, 그걸 노다 히데키 연출이 半神으로 각색한 것 같다.

- 무대는 나선형 계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끄럼틀, 그리고 한쪽으로 경사진 원형 무대인데, 이게 후반부에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훌륭한 무대장치로 변신! 무대 가운데 구멍이 있어서 그리로 배우들이 등퇴장을 하면서 안그래도 판타지스러운 극을 더욱 더 판타지스럽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체로 과장되고, 가끔은 일부러라는 듯이 격식화되고, 오버액션이 넘쳐난다. 그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런 장치들이 관객들의 몰입을 잠시 밀어내고 객관화를 상기시킨다.

- 연극에 배경음악은 상당히 중요한데, 이렇게 라이브로 연주되는 배경음악은 또 각별하더라. 특히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이 사용된 장면은 음악이 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이 장면의 의미와 음악이 주는 느낌이 맞물려서 가슴이 아팠다.

- 배우들의 연기는 딱히 누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극과 매우 잘 어울렸고, 주인공인 수라와 마리아 역의 두 젊은 여배우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천진난만한 마리아와 애정결핍으로 말라가는 수라.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 이 연극에서도 반복되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은 이게 트렌드인가. 한 번 보여주고, 그리고 아주 많이 달라진 감정으로 다시 그 장면을 보게 한다. 되새김질하면서 감정의 파고가 높아진다. 이런 연출 취향이라서 불평은 아니지만, 그래서 재관람할 의지가 쪼끔 사라졌다.
고곤의 선물

일   시 : 2014. 09. 18 ~ 2014. 10. 05
장   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관극일 : 2014. 09. 27 (토) 15:00
연   출 : 구태환, 원작 : 피터 셰퍼
캐스트 : 에드워드 담슨 - 김태훈, 헬렌 담슨 - 김소희, 필립 담슨 - 김신기, 쟈비스 - 고인배, 담신스키 - 이봉규 외
줄거리 :
‘우상들’, ‘특권’ 등 탁월한 희곡을 남긴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담슨은 4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강박관념이 드러난 마지만 작품 < IRE >의 엄청난 파문과 실패 이후, 두 번째 아내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헬렌과 그리스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그가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몇 달간 슬픔에 잠겨있던 헬렌은 어느 날 편지를 받는다. 28세의 젊은 연극 교수인 필립 담슨의 편지였다.
그는 에드워드의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아들로, 아버지의 전기를 쓰겠다고 헬렌에게 만나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 헬렌은 그의 청을 거절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그녀의 집을 찾아온다. 헬렌은 필립에게 꼭 전기를 쓸 것이라는 맹세를 듣고 나서야 에드워드와의 지난날의 엄청난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데... [출처 > 플레이DB]

-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렸을 때 보고 그야말로 충격에 빠져서 김소희 씨를 찬양하며 나왔던 그 연극 '고곤의 선물'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에드워드 담슨 역에 두 명의 배우를 더블 캐스팅하고, 극장도 명동예술극장에서 세종M씨어터로 바뀌었다.

우선 극장 얘기를 해보면, 세종M은 명동에 비하면 구조자체가 좀 산만하다고 할지, 중앙으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할지. 게다가 천정에 매달린 조명들이 너무 빤히 시선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더라. 고곤의 선물에서 조명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더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날 관극은 거의 재앙수준의 테러를 여러번 당해서 내 집중력이 깨진 것도 한 몫했거든. -_-+ 제발 연극이 지루해 죽겠으면 버티고 앉아서 하품, 혼잣말, 한숨 쉬지 말고, 그냥 퇴장하라고!!! 핸드폰 벨소리는 왜 꼭 중요한 장면, 적막 속에 터져나오는 건지 ㅠ.ㅠ

- 극이 가진 힘 자체는 달라진 게 없는데,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 내 감상은 그저 미묘~ 뭐 무대 위 배우들도 그런 산만함 속에 무대에서 집중하는 것도 큰일이었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김태훈 씨의 에드워드 담슨은 불분명한 딕션과 때때로 지나치게 과장된 연기만 빼면 꽤 좋았다. 피터 셰퍼의 연극은 어마무시한 대사량과 더불어 현학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어휘 사용이 많아서 대본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고생했겠다 싶은데, 그걸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으면 안그래도 어려운 내용을 관객이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러니 발성과 딕션은 신경 좀 써주시길. 
아, 발구르기 춤은 안무가 바뀐 건지 정말 좋았다. 확실하게 그게 춤으로 보였으니까. 정체모를 움직임으로 그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던 2012년 버전에 비하면야 굉장한 발전.

- 김소희 씨의 헬렌 담슨은 여전히 좋았는데, 이날 목상태가 썩 좋지는 않으셔서 듣는데 아슬아슬하더라. 주인공도 더블인 마당에 사실상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원캐로 소화하고 계신데, 힘에 부치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전에 봤을 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헬렌이 마지막으로 쓴 페르세우스와 아테나 여신의 장면을 보면서 아, 이게 헬렌의 발구르기 춤이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필립은 이게 당신의 발구르기 춤이 되겠지요, 라고 미래 예상을 했지만, 헬렌은 사실상 이미 에드워드에게 발구르기 춤을 춘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더 끔찍한 건 에드워드의 발구르기 춤은 그때부터 시작이며, 결코 끝나는 법이 없을 거라는 것.

- 한계를 뛰어넘는 짓, 결코 용서를 받을 수 없는 행위라는 게 있어!! 라던 에드워드의 외침에 설득당한다. 헬렌이 그들보다 나은 인간임을 증명하라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작지만 확실하게,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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