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4. 06. 11 ~ 2014. 08. 03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4. 06. 28(토) 19:00
연   출 : 아드리안 오스몬드,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베버 - 임정희, 콜로레도 대주교 - 민영기, 레오폴트 모차르트 - 이정열,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차지연, 난넬 모차르트 - 배해선, 체칠리아 베버 - 이경미, 쉬카네더 - 조성지, 아마데 - 곽이안 외

* 한 줄 요약 - 피할 수 없는 네 운명 ㅠ.ㅠ

- 나는 나는 음악은 재관람이 반복될 수록 점점 더 좋아진다. 은촤의 연기적인 면이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그 곡 자체가 정말 내 마음에 든다. 솔직히 재/삼연에서는 이렇게까지 이 곡이 좋지는 않았고, 그냥 흐뭇하게 엄마 미소 지으며 볼프강과 아마데의 꽁냥거림을 지켜보는 넘버였지, 이게 넘버가 좋다, 음악이 좋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넘버 중 하나였는데, 사연에서는 정말 이 곡 때문에 반복해서 본다고 할 정도로 좋다. 노래하는 배우의 목소리도 창법도 달라졌고, 편곡도 가사도 좀 더 다이나믹하게 바뀌고, 무엇보다 이 곡에 실린 감정의 무게가 다르다. 내가 곧 음악이라고 환희에 젖어있는 볼프강, 신이 주신 재능이 나의 날개라는 믿음이 곧 어떻게 그의 인생을 무너트릴지 그 강렬한 대비가 이 곡 한곡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 곡이 시작할 때, 허공에서 거울이 내려와 볼프강을 비추다 아마데와 조우하게 되는 그 연출이 프리뷰 때 보고 임팩트 없다고 투덜댄 게 무색하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땐 모든 게 낯설어서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 였다고 변명;;)

지난 번에 이 장면이 아마데와 볼프강의 첫 대면이라고 그랬는데, 이날 공연에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만남일까, 아니면 볼프강과 아마데의 첫 분리일까.

- 이번 모촤에서 거울이 중요한 소품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첫번째가 나는 나는 음악, 두번째가 내 운명 피하고 싶어, 세번째가 모차르트 혼란씬이다. 거울이라는 소품은 그 자체로서도 굉장히 많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거울은 그냥 허투루 사용할 수 있는 소품이 아닌데, 아드리안이 모차르트!에서 그걸 세번이나 사용한데는 그만한 의미가 있을 거다.

나는 나는 음악에서 거울을 들여다본다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자신을 객관화 해서 바라보는 것. 또는 자신의 무의식과 내면을 탐색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볼프강은 거기에서 아마데를 발견한 걸 수도, 아니면 그 순간 볼프강과 아마데를 분리해낸 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두번째로 등장하는 거울은 내 운명 피하고 싶어에서. 내 운명에서 거울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마데가 깃펜으로 볼프강의 팔뚝을 찔러서 잉크 대신 피로 악보를 적는 그 부분에서 등장한다. 여기서의 연출이 맨 오브 라만차의 '거울의 기사'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 보다보니 이건 연출의 의도는 명확하게 다르구나 하는게 느껴지더라.
라만차에서 거울은 환상에서 깨어나 너의 본질, 너의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직시하라는 이상에서 현실로 끌어내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내 운명에서의 거울은 사실 이게 내 확대 해석인지도 모르겠는데, 볼프강에 의해서 깨지는 거울처럼 보인다.
거울을 깨트린다는 건 지금까지 습관화된 낡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겠다는 그런 의미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하면서 거울 든 앙상블들을 쳐내는 장면이 마치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과거의 나를 깨부시는 것 처럼 보이더라. 그렇게 깨진 거울을 헤치고 나가다가도 '이 운명 앞에 지는가.'라며 어깨를 짓누르는 운명의 무게에 다시 한 번 주저 앉았다가, '그렇겐 못해! 난 할 수 없어!' 라며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배우가 추가한 디테일이겠지만,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노래 한 곡 안에서 완벽하게 완결된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도 감탄했던 장면 중 하나가 '도망자'에서 하나의 넘버로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거였는데, 그걸 모차르트!에서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진짜 이날의 내 운명은 이런 말도 식상하지만, 이제까지 중에 가장 좋았다. 뭐지? 지난 번에도 레젼 갱신 우와 쩔어, 미쳤나봐 뭐 이런 반응이었는데, 이날의 내운명은 그걸 또 한 번 뛰어 넘었다. 이게 무슨 이차방정식 그래프를 그리는 거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날 죽이고 말거야~ 샤우팅 이후에 앙상블들이 '어떻게 그림자 잃고 어떻게 운명 거부해' 라며 압박할 때 한 번 더 지르는 샤우팅에서 정말 풍성하게 후음 쭉 뻗어주는데 진짜 그 울림이 온통 세종 홀을 가득채우는 그 느낌은 뭐라 할 수 없이 전율이다. 게다가 저렇게 넘버 하나 안에서 기승전결 완결성을 가진 하나의 드라마를 보여주니 이건 뭐 제대로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 브라보~ 은차르트!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거울은 혼란씬에서 등장하는 깨진 거울이다. 거울을 깨트리는 것과 이미 깨진 거울이 등장하는 건 굉장히 다른 의미다. 위에 썼듯이 거울을 깬다는 건 과거를 버리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지만, 깨진 거울은 왜곡된 자기 이미지를 암시한다. 낮은 자존감, 혼란스러운 자기 정체성, 무엇하나 똑바로 비춰주지 않는 깨진 거울은 불분명하고 모호한 이미지만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거기에 비춰진 이미지는 실체보다 더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이다.
생각할 수록 아드리안은 천잰가봉가;;

- 사연 연출에서 아역 난넬의 역할이 조금이라도 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초연에서는 배해선 씨가 원피스를 입고 어린 난넬 역까지 하셨다고 한다.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늦동이 키우는 나이 많은 누나 같았을 거 같다. 재/삼연에서는 아역 난넬을 캐스팅해서 세웠는데, 이게 참 그 아역 배우들에게 할 짓은 아니었을 거라는 게, '이 아이는 누구인가'에서 부지런히 동생 시중들고, 바이올린 셔틀에 앵벌이 ㅠ.ㅠ 하면서 쟁반들고 돌아다니다, 노래는 딱 두 마디 하고 들어간다. 그리고는 영영 잊혀진 채, 커튼콜 때가 되서야 어른 난넬과 같이 등장해서 인사. 그러니까 1막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커튼콜까지 저 아이는 의상도 갈아입지 못한 채 뭘하고 시간을 보냈을까...이런 생각이 들었더랬지.
그러던게 사연에서는 그래도 깨알같이 어린 난넬을 등장시키더라. 역시 노래는 두마디 뿐인데, 어찌된 일인지 더블 캐스트된 두 아이가 그 두마디 뿐인 노래를 제대로 못불러서 -_-; 하여간 1막 초에 나오고 잊혀진 줄 알았던 아역 난넬은 볼프강의 악몽(수수께끼)에, 난넬의 과거 회상(끝나지 않는 음악 있을까)에 꽤 비중있게 등장해서 뭔가를 보여 줄 수 있어서 재연에서 아역 난넬 했던 시영이가 새삼 애틋하게 생각났더랬다;;

- 민주교님도 나날이 연기가 디테일해지고 업그레이드 되는 게 보여서 새삼 민영기씨도 참 좋은 배우였지..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조연 포지션의 연기만 봐왔고, 늘 일정이상의 퀄리티로 기복없이 꾸준히 잘 해주는 배우라는 인상은 있었지만, 이번 사연 모차르트!에서는 한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 보여서 감탄했다. 어느 단계에 오른 배우들이 그걸 또 벗어나 위로 올라가는 건 이제 시작하는 배우가 발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데 민주교님이 재/삼연에서도 잘해줬던 그걸 뛰어넘는 사연의 대주교를 보여주시더라.

이날도 쉬운 길은 잘못된 길, 어엄청 좋았는데, 민주교님 디테일이 이것 저것 추가되면서 처음에 꼬득이는 부분이라던가, 고작 하인 취급하던 레오폴트까지 들먹일 때는 이분이 급하셨구나 싶었다. 이 부분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민주교가 은촤 뒤쪽에서 '아버질 생각해~' 하니까 은촤가 굉장히 괴로운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이 또르르 떨어진다. 이어지는 '내 말을 따르길 바랄걸' 이라는 소절을 무척 강조하면서 확 긁어서 부르는데 대주교의 감정이 느껴져서 좋더라. 이 곡을 부를 때의 은촤는 뭐 한대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양을 하고서도 눈빛만 생생한 것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게 보인다. 근데도 그게 막 강하게 대치하는 게 아니라, 간신히라는 게 보여서 안스럽다. 이 뒤에 이어지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카운터 펀치고. ㅠ.ㅠ

- 차지연 씨의 남작부인도 자리를 잡아가는 게 보인다. 특히 신영숙 씨의 남작부인과 확연하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 모차르트!모차르트!에서 인데, 차남작부인은 오로지 볼프강의 재능만을 사랑했다는게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신영숙 씨보다 좋았던 부분이 빈으로 아들 찾으러 온 레오폴트와 대립하는 장면이었는데, 신영숙 씨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르는 부분을, 차지연 씨는 당장이라도 파이트할 기세로 불러줘서 좋았다.

-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그저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 제발 오래오래 건강하게 무대에 서 주시길. 레오폴트를 누가 맡느냐에 따라 극에 대한 몰입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니; 원래도 1막에서 연달아 잔소리 해대는 레오폴트 넘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뭐. 그래도 2막에서 리프라이즈 되는 부분은 청년 볼프강과 꼬장꼬장 레오폴트의 한 판 파이트가 되니까 좀 들을만 한데, 1막에선 아버지 잔소리잔소리가 볼프강에 백퍼 이입하게 된다;
아들의 재능을 자랑스러워하는만큼 그 재능을 키워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레오폴트. 저는 천재를 한 번 만들어봤습니다...라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그 상처받은 자존심이 안타까운 한편 모차르트 빠순이인 나는 야속하다. 아버님, 자존심 버리고 빈까지 가셨는데, 아들래미 한 번만 꾹 참고 안아주셨으면 좋았잖아요. ㅠ.ㅠ

- 이 날 커튼콜에서 은촤는 기존의 방방 뛰던 거에서 재/삼연에서처럼 우아한 인사법으로 바꿔서 난 그게 더 좋더라. 극 분위기 때문에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다음 공연을 봐야 알겠지만, 내가 발레 동작이 가미된 은촤의 저 부드럽고 우아한 절을 참 좋아해서.
그리고 귀염둥이 아마데, 이안이를 끌어안고는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주던 은촤. 이안이가 귀엽긴 많이 귀엽지ㅋㅋㅋ 그러더니 다 같이 인사할 때 정열 레오폴트가 이안이 안아주시고, 그걸 은촤가 안아 옮겨받고 인사하다가, 갑자기 민주교가 은촤를 앞으로 확 밀어서, 타이밍만 맞았으면 내려온 막 앞에서 망연자실할 은촤와 그 품에 안긴 이안이를 볼 수 있을 뻔했다.ㅋㅋㅋ 순발력 있는 은촤가 내려오는 막을 보고는 기겁해서 제자리 찾아 들어가 그런 재미는 누릴 수 없었지만, 언젠간 꼭 하고 말 거 같은 민주교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