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Rebecca)

일   시 : 2014. 09. 06 ~ 2014. 11. 09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4. 10. 04 (토) 15:00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원   작 :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
캐스트 : 나 - 임혜영, 막심 드 윈터 - 민영기, 댄버스 부인 - 옥주현, 반호퍼 부인 - 최나래, 잭 파벨 - 박인배, 줄리앙 대령 - 허정규, 베아트리체 - 이정화, 가일스 - 김장섭, 프랭크 크롤리 - 이광용, 벤 - 김지강, 프리츠 - 신재희 외
줄거리 :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막심 드 윈터,
그는 몬테카를로 여행 중 우연히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막심의 저택인 맨덜리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맨덜리는 아름다웠지만 음산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기도 했다. 죽은 레베카가 마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맨덜리의 모든 것은 여전히 레베카에게 깊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집사 댄버스 부인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새 안주인은 점점 숨통이 막혀옴을 느낀다.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그녀는 가면 무도회를 열기로 하고 댄버스의 조언으로 멋진 의상을 준비한다. 하지만 무도회 당일, 자신이 입은 드레스가 레베카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막심의 분노에 실망하여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댄버스는 그런 그녀에게 레베카의 자리는 아무도 차지할 수 없다고 끝내 자살을 권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때,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데…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레베카로 시작해서 댄버스 부인으로 끝나는 주인공은 '나'야~

- 날씨가 정~말 좋았던 금요일,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걷고 집으로 돌아와서 충동적으로 토요일 공연을 예매하기로 결심해서 보게된 공연. 생각해보니까 작년에 보고 후기도 안썼더랬다. 재미있게 보고 왔는데 아마 후기를 쓸 여력은 안됐던 시기였나보다. 토요일도 천사데이(;)에 걸맞게 어찌나 화창하고 좋은 날씨던지.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좋은 공연 보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더랬다. 아~ 이 맛에 공연을 보지 싶다. 그동안 봐온 연극들이 모두 기빨리는 작품에 눈물 빼는 극이었는데, 그런면에서 레베카는 보고나면 행복해지는 극이라 좋다.

- 작년에 볼 때도 공교롭게도 '나' 역은 임혜영 씨 고정이었는데, 올해도 아마 그렇게 될 공산이 크다. 배우에게는 인생 배역이라는 걸 만나는 순간이 있는데, 레베카의 '나' 역이 임혜영 씨에게는 그런 배역이지 않을까 싶을만큼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작년에도 잘한다 싶었는데, 올해는 거기에서 살짝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목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도 잘 컨트롤해서 넘기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져서 연기 디테일도 좋았다.

'나' 역이 참 손해보는 역인게,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나'인데, 내도록 레베카의 망령에 짓눌리고, 댄버스의 기에 눌리고, 막심의 히스테리에 휘둘리는 역이라, 그 존재감이 막 발산이 되면 안되는 역이라는 거다. 분량면에서나 넘버 수, 넘버 난이도 등에서 하등 꿀릴 게 없지만, 내가 주인공입네 하고 나대면 극이 무너져버리는 그런 역이라서, 보고나면 '레베카 밖에 기억이 안난다'거나 '이거 뮤지컬 댄버스' 라고 하더라도 그게 '나'로서는 성공한 연기라는 아이러니한 사실. 그런 역을 임혜영 씨가 참 잘해주더라.
예쁘고 참하고 귀엽고, 작은 동물을 연상시키는 소심함과 겁먹는 모습 조차도 사랑스러운 그런 소녀. 그 소녀가 사랑을 하게되고, 그 사랑을 키워나가며 강인해지며, 여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나'가 맞다.

- 그런 '나'를 사랑하게 된 막심은 작년에 류정한 씨, 유준상 씨를 만났고, 올해 민영기 씨를 만났는데, 진짜 이 셋이 표현하는 막심은 다 다르다. 류막심은 귀족적이고 예민하며 빡침의 대가다운 막심, 유막심은 적어도 내가 본 공연에서는 퇴역 장교같은 느낌이었고, 민막심은 젠틀하고 자존심 강한 냉정한 막심이었다. 그게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신이여랑 칼날송에서였는데, 류막심이 빡침의 칼날송을 보여줬다면 유막심은 어딘가 광기가 서린 모습, 민막심은 이제까지 유지해온 냉정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상처입은 자존심에 울부짖는 것 같은 그런 막심을 보여주더라. 재밌는 건 민막심은 평소에 너무너무너무 젠틀하고 부드러운 남자인데, 그게 더 차가운 느낌이라, '나'가 기댈 곳 없는 외톨이 신세라는 거다. 오히려 변덕스럽고 신경질적인 류막심 쪽이 '나'에게 더 친밀하달까. 민막심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완벽해서 더 곁을 주지 않는 느낌이라, 둘 사이 케미스트리는 온전히 '나' 혼자 고군분투해서 살리더라는; 장하다 임나!

- 옥주현 씨의 댄버스 부인은 명불허전. 초연 때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뭐 여전히 잘하더라. 극이 시작하고 20여분이나 지난 다음에 등장하지만, 이 뮤지컬의 진 히로인이라 할만한 역이고보니, 첫 등장부터 임팩트가 강하다. 그게 작년보다 더 강해진 느낌. 단모음을 이중모음처럼 발음하는 버릇은 빨리 고쳤으면 좋겠고, 아무래도 디바 출신이라 그런가 레베카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폭발력은 진짜 대단하다...만, 가장 마지막의 레베카 rep.만큼은 초연 때처럼 좀 더 처연하게 불러줬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강하게 불러서 아쉬웠다.

초연 때 신댄버스와 옥댄버스를 모두 봤는데 둘의 노선이 상당히 달라서 재미있었더랬다. 신댄은 레베카를 모성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라면, 옥댄은 레베카에게 동일시의 감정으로 숭배하는 느낌이었는데, 재연에서도 그 감정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더라.

- 잭 파벨의 박인배 배우는 아마 내가 레베카로 처음 만나는 배우인 거 같은데, 음색이며 연기며 모두 취향이라, 굉장히 좋았다. 최민철, 에녹 배우의 잭 파벨도 모두 봤는데, 내가 생각하는 잭 파벨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건 박인배 배우였다. 최민철 씨는 미안하지만, 너무 범죄자스러웠고, 에녹 씨는 '폰팔이'라는 누가 생각해냈는지 정말 딱 그 표현 그대로 였는데, 박인배 씨는 적당히 허세끼 있는 속물이면서도 여자들이 혹할만한 매너는 갖추고 있는 호스트 분위기랄까. 그런데다가 이분도 목소리가 상당히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타입이라 듣기 좋더라.

- 그 외 프랭크 역에 이광용 씨. 아니 진짜 요제프 이후 얼마만에 무대에서 뵙는지. 여전히 아름다운 음색을 자랑하시고. 그 훤칠한 외모도 여전. 부디 자주 뵙길. 프랑켄슈타인에서 집사 역이더니, 레베카에서도 집사로 활약중인 신재희 씨도 오랜만에 반가웠고, 내가 초연 레베카에서 제일 반하고 왔던, 무대 장악력이 남다르신 최나래 씨, 아아~ 최나래 씨의 반호퍼 부인은 사랑입니다.♡ 그 딱따구리 웃음소리 다시 들으니 반가웠다. 레베카도 르베이 작품이라 앙상블이 받쳐줘야 하는데, 이번에도 앙상블은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어 엄지 척!

- 이 극이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이면서도 보고나면 행복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는 건, 서로를 의지하며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피날레 장면과 커튼콜 때문인 거 같다. 진짜 보고나면 힐링되는 느낌이라니까. 다음에 엄마와 같이 보러가야겠다.

+ 신기한게 극장을 나서면서 흥얼거리는 건 레베카~ 인데, 집에 와서 떠오르는 건 어젯밤 꿈 속 맨덜리 라는 거.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거 여주 투탑극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