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3. 29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최민철,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갑작스런 스케쥴 변경으로 4월달에 김류은 조합이 한 번도 없다는데 일단 패닉. 그래서 최민철 루케니를 보고 싶어서 이 날 공연을 예매하길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 이날 공연은 최민철 루케니를 만나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는데, 더불어(?) 김류 페어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ㅠ.ㅠ
아, 하여튼 이날 공연에선 마이크 지직거리는 음향 사고도 있었고, 앙상블 마이크 볼륨에도 좀 문제가 있어서 라우셔 추기경은 몇 장면 생목으로 치시고, 민제프 침몰씬에서 마이크가 안나온 건지 엘리자벳 날리고 그랬지만, 공연 자체로는 참으로 만족스러웠고, 그 만족감을 채워준 데는 최케니가 한 몫 단단히 했다.

- 맨 처음 루케니 프로필 사진 떴을 때, 애정도와 상관없이 내가 제일 싱크로 최강이라고 생각했던 배우는 최민철 씨였다. 진짜 이탈리아 태생의 건달. 거칠고 과격한 상남자. 그런데 내가 최민철 씨를 화선 김홍도로 만난 것 외에 다른 작품은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캐릭터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 사진 이미지만으로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 루케니를 연기하고 있더라.

최케니는 일단 삼케니 중에 체격이 가장 건장하다. 그렇다고 근육질의 울끈불끈 뭐 이런 건 아닌데도 나는 최케니에게 거친 뱃사람의 느낌을 받았다. 그것도 뽀빠이 쪽이 아니라 부르투스 쪽으로. (연식 나오네;) 아주 거친 바닥에서 굴러먹은 밑바닥 인생이라고 할까. 험한 일도 많이 해봤을 것 같은 싸움꾼, 건달의 이미지. 그래서 나는 다른 평에서 보이는 것처럼 최케니가 친근하지도 구수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척 마초스럽고, 질낮은 농담을 던지고, 과격하고 폭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오더라. 그래서 마지막 암살 장면도 최케니다운 장면으로 납득이 갔고.

재미있었던 건 죽음과의 관계였는데, 용케니는 죽음을 어느 정도 두려워하고, 은케니는 죽음과 맞짱 뜰 기세고, 최케니는 죽음의 하수인같다는 거였다. 프롤로그에서 죽음이 등장할 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카페씬에서 둘이 마주칠 때도 은케니는 챙하고 맞부딪치는 느낌인데, 최케니는 '아, 오셨어요~' 이런 느낌. 그래서 이게 폭력단으로 비유하자면, 최케니는 행동 대장의 이미지가 강하고, 은케니는 모사꾼 쪽의 이미지가 강한데, 그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게 밀크였다. 은케니가 민중의 자유나 해방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저 여기저기 쑤석여서 세상을 뒤집어 버리라고 선동하는 쪽이라면, 최케니는 민중의 편에 서서 같이 진지하게 분노하고 동조하는 쪽이더라. 그래서 은케니의 '말이 돼?'는 보여주기 위한 과장스런 쇼 - 당신들이 생각해도 말이 안되지? - 라는 쪽이라면, 최케니는 자기가 말해놓고 스스로도 이게 말이 되냐며 분노하는 쪽이다.
그런데 최케니 디스는 아니고, 좀 단순 무식(;)한 이미지라서 Kitsch에서 냉소와 조롱의 느낌은 많이 퇴색하고 그저 같이 흥겹게 한 판 놀아보자, 남 뒷담화가 제일 재밌잖아?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일옌 -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이어지는 부분에서 죽음을 향해 다시 한 번 예를 표하고 퇴장해서 죽음과 관계를 한층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최케니의 음색 면에서도 난 꽤 만족했는데, 일단 고음 소화가 안되는 건 음역대 안맞아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그래도 그 부분을 자신이 낼 수 있는 한 최고음을 지른다는 느낌이었고, 몇 군데는 자기 음역대에 맞춰서 음을 낮춰불렀는데,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덕분에 '위태로운 그곳 헝가리에~'를 세가지 버전으로 다 들어봤다. 세 루케니가 다 다르게 불러ㅋㅋ) 그리고 그런 거 다 떠나서 최케니 자신에게 맞는 음역대에서 내는 소리가 진짜 울림이 풍부해서 얼마나 듣기 좋았는지. 저음역대도 강하지만, 중음역대에서의 그 깊은 울림이라니. 소리결이 부드럽고, 풍성한데다, 성량도 좋아서 고음에서 소리가 가늘어지는 거 정도야 몇 군데 안되니까. 뭐 하늘 뚫을 것처럼 치고 올라가는 맛은 없어도 단단하고 묵직하게 받쳐주는 소리도 난 좋았다.

- 선영 엘리는 이날 굉장히 고고한 공주님 노선이었다. 다른 귀족 영애들 처럼 신부 수업 착실히 받는 얌전한 아가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천방지축 말괄량이라고 하기엔 그저 취미가 조금 별난 공주님. 날 때부터 공주로 키워졌고, 그만큼 자존심도 높고, 도도한 새침데기. 그래서 요제프가 청혼을 했을 땐 황실에 시집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사랑하는지는 제쳐두고라도 저리 훤칠한 황제의 청혼을 받는다는 게 꽤 괜찮은 기분이기도 하고, 설사 마음에 안든다 한들 황제의 청혼을 거절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아는 아가씨.
그래서 정화 소피가 늦잠을 깨울 땐 자신의 나태함을 지적받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 한다. 그리고 이를 보이라는 둥 할 때는 명색이 나도 공주에 이제 황후인데, 이런 취급 받을 이유가 없는데, 자신을 핍박하는 소피에 질려서 요제프에게 매달려보지만, 눈치 드럽게 없는 요제프는 그 구조 신호가 얼마나 절박한 건지 알아채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는 나만의 것에서 처음 시작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박대에 쇼크를 받아 부서질 듯 연약하고 가녀린 씨씨에서 타고난 고고함을 되찾으며 용기를 북돋는 씨씨로 변모해간다.

하여간 이렇게 고고한 성격이라 이게 이후에도 큰딸 소피가 죽었을 때, 딸아이의 죽음을 슬퍼하기 전에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는 감정이 더 크다. 내가 이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이를 죽게 만들었구나 하는. 그리고 그 감정이 그대로 2막 루돌프의 추도식에 이어진다. 아이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 고집을 우선해서 소피를 잃고, '고작 자유 따위를 찾겠다고' 다시 루돌프를 잃었다. 그래서 루돌프의 관을 끌어안고 '아가~'라고 부르짖는 엘리자벳을 보며 1막에서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 소피까지 떠올리게 되더라. 게다가 이날 동돌프 연기가 정말 물이 올랐는데, 그 전까지는 그래도 청년 루돌프로 보였는데, 이날은 엄마 앞에서 완전 어린 아이로 퇴행해버렸다. 그러다보니, 엘리자벳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하자 처량하게 일어서서 짓는 표정이,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는데 그 엄마한테 버림받아 이 세상에 기댈곳 하나 없는 어린 아이의 서러운 얼굴이라 울컥했다. 난 동석이가 이렇게 어린 표정을 짓는 걸 이날 처음 봤는데 진짜 가슴이 뻐근할정도로 애처롭더라.

쓰다보니 순서상 뒤로 밀린 '아무것도' 넘버. 선영 엘리가 시종일관 도도한 공주님 노선이라, 이 넘버에서 어떤 감정선을 보여줄까 했는데, 역시 선영님은 선영님. 엘리자벳이 좀 덜 지적이었거나, 자존심, 자존감이 좀 덜 단단했더라면 사는게 좀 덜 고달팠을 지도 모르겠다. 그냥 미쳐버리기에 선영 엘리는 너무 똑똑했고, 성품 또한 고고해서, 자신이 미쳤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은 반디쉬 부인을 바라보며 난 결코 저렇게 될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처럼 rep.'에서 비록 바싹 말라서 껍질만 남은 고목이 되더라도 남의 동정을 사는 게 죽기보다 싫은 꼿꼿한 성격이라는 게 시녀장님과의 씬에서 보인다.

이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엘리자벳이 마침내 죽음의 품에 안겼을 때, 마치 어린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위로하듯 토닥이는 류토트의 손길에 비로소 평안을 찾아 세상을 떠나는 선영 엘리. 그런 선영 엘리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류토트의 시선에서 오랜만에 사랑, 연애, 로맨스가 아닌 초월적인 죽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그동안 류토트 회차를 그래도 꽤 여러번 봤는데도 사실 난 류토트의 캐릭터 파악이 참 힘들었다. 분명 로맨스 노선은 아니고 초월적인 존재로서 죽음이기는 한데 그게 가끔은 스토커스런 구남친 삘이라 뭔가 이가 맞지 않는 느낌이라. 그렇다고 내가 류토트랑 안 맞는 건 아닌데 뭐가 문젠가 했는데, 그걸 이날 공연에서 깨달았다.
류토트의 연기와 가사 간의 간극이 문제였던 거. 프롤로그에서 '난 그녈 사랑했어'라고 하는데, 암만 들어봐도, 표정을 봐도 저건 엘리자벳을 사랑한 거 같지가 않더란 말이지. 진짜 이 장면에서 류토트에게 가장 맞는 대사는 원작의 가사 쪽이다. - 난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떠들기를 이런 게 사랑이라더라. 그렇다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죽음은 영원 불멸의 존재. 짧게 스쳐지나가는 인간들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 가슴을 아프게 하는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엘리자벳이라는 인상. (특별한 너 엘리자벳~ㅋㅋ) 그렇기에 류토트가 엘리자벳을 사랑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송토트가 로맨스 노선이라 한 눈에 들어오는 사랑이라면 류토트는 존재하는 시간의 단위가 너무나 다른 두 존재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참 루케니 의상 중에, '계획이란 소용없어'에서 차 시중들 때, 은케니만 의상을 갈아입는다는걸 처음 알았다. 최케니, 용케니는 바트이슐 당도한 의상 그대로 차시중들고 뱃사공까지 하더라. 은케니는 뱃사공 할 때도 평소 복장에 조끼하나 걸쳐서 이 장면에서 의상 3번 체인지인데 다른 두 루케니는 한 복장으로 죽 가는게 뭔가 의상 담당이 은케니 편애했나?
뮤지컬 엘리자벳을 몇 번씩이나 보면서도 사실 "죽음"이라는 캐릭터에 100% 만족하고 돌아온 적은 별로 없었다. 이건 배우의 역량과는 무관한 드라마 엘리자벳에서의 "죽음"이라는 캐릭터의 설정같은 게 명확하지 않다고 해야하나. 캐릭터를 잡는데 정답은 없는 법이고, 연출의 노선이라는 건 하나의 큰 줄기를 정해주는 것 뿐이고, 세세한 디테일이나 배우간에 호흡, 상성은 배우 역량으로 메꿔가고 뭐 그러는게 EMK식 뮤지컬이기는 한데, 죽음과 사랑(혹은 연애;)이 결합되면서 가끔은 이 캐릭터를 "죽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도 있었고.

그래 곰곰히 생각해봤더니, 나한테는 이거야 말로 "죽음"이 인간으로 육화해서 나타난 것 같다는 전율을 선사한 존재가 너무나 생생했기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009 세계선수권 SP - 죽음의 무도 | Score - 76.12


- 빙판 위에서 시작 포즈를 잡는 순간부터 피아노 건반에 맞춰 고개를 확 꺽는 오프닝 동작, 강렬한 시선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그 짧은 순간 굉장한 집중력으로 몰입, 자신 뿐만 아니라, 청중들 모두를 순식간에 음산하고 기괴한 무덤가로 초대한다.
시작부터 자신의 지배력을 과시하는 듯한 거대한 스케일의 3F-3T을 뛰는데, 난 정말 남녀 통틀어 이렇게 시원스럽고, 넓은 아이스 커버리지를 보여주면서 이대로 날아가버릴 듯한 3F-3T를 본 적이 없다. (이런 훌륭한 점프에 장난질한 심판들, 그래서 지금 피겨판에 저런 점프 뛰는 여자 선수 한 명이라도 있던가? 흥, 자업자득일세.) 이어지는 3Lz의 근사함이야 뭐 이미 최고라고 말하기도 입 아플 지경이고. (끈질기지만, 현 여싱 중에 3Lz 저만큼 뛰는 선수 있음 나와보라 그래. 하여간에 ISU든 심판들이든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뒤로 뒤로 후퇴만 하고 있으니.) 연아의 프로그램이 정말 독보적인건 점프, 스핀, 스텝, 스파이럴이 각기 하나의 기술 요소로 필요하니까 들어간 게 아니라, 이 기술 요소들이 전체 안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의미없이 뛰어야 되니까 뛰는 점프, 의미없이 들어간 스핀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저 완벽한 균형미와 우아함,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표정 연기, 기술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란 연아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 처음 음악으로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들었을 땐 죽음이 을 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연아의 죽음의 무도는 그야말로 죽음이 춤을 춘다는 느낌이다. 때로는 요사스러울만큼 유혹적이고, 때로는 고통속에 몸부림치는 이에게 자비로운 안식을 선사하고, 그리고 무자비하게 폭풍처럼 몰아치며 전쟁과 질병으로 인간을 학살하는 절대자. 그런 모습을 단 2분 30여초에 모두 담아서 선보이는 이 작품은 피겨 역사에도 길이 남을 마스터 피스다.

음악 선곡에 어울리는 의상과 안무. 그리고 그걸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걸 뛰어넘어 몸 동작에 맞춰 선율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섬세한 음악성.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 종종 배경음악 틀어놓고 나는 나 할 것 하겠소 하는 경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저 음악을 잘 타기만 해도 음악성있다 소리 듣는 세계인데, 연아는 진짜 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여기선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 이런 부자연스러움도 없다. 그저 이 모든 상황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표정이 드러나고 감정이 실린다. 내가 곧 이 세계를 지배하는 죽음이라고 엔딩 포즈에서 '쾅' 폭발하는데, 그저 엎드려 경배하고 싶을 뿐이고.
참고로 위 영상에서는 그 장면이 안 잡혀서 좀 아쉬운데, 화질은 좀 떨어지지만 이 영상 - http://youtu.be/zFDQpt92ygE 에서는 엔딩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연아를 볼 수 있다.

+ 이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내가 '완벽'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더라. 하여간 나에게 연아는 진짜 '완벽'이 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