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Mozart!)

일   시 : 2012. 07. 10 ~ 2012. 08. 04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관극일 : 2012. 07. 10 (화) 20:00
연   출 : 유희성,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볼프강 모차르트 - 박은태, 콘스탄체 - 최성희, 레오폴트 모차르트 - 이정열, 콜로레도 - 민영기, 난넬 모차르트 - 임강희,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 신영숙, 체칠리아 - 이경미, 쉬카네더 - 김재만, 아마데 - 탕준상, 어린 난넬 - 윤시영
줄거리 :
천재음악가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사랑 받고자 했던 모차르트,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스타 모차르트!
다양한 음악으로 풀어낸 진짜 그의 인생 이야기! [출처 > 플레이 DB] 

한줄 요약 - 사골국도 재탕까지는 먹을만 하지만, 삼탕부터는 맛이 떨어진다.

- 3년 연속으로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하여간에 삼연을 맞이하게 된 뮤지컬 모차르트! 한줄 요약이 첫공에 대한 감상이지만, 더 정확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난 첫공 보고 내가 잡은 표의 1/3은 버렸다. 아까운 수수료를 물어가며. ㅠ.ㅠ

아무리 첫공 쉴드를 쳐주고 싶어도 이건 아니다 싶게 공연의 완성도가 70% 정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공연을 올린 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애초에 공연 기간도 짧게 올라와서 이게 작정하고 올리는 공연이 아니라, 뭐라도 올려야 할텐데, 준비된 게 없어서 했던 거 올린다는 인상이더니만, 정말 딱 그짝이었던 모양이다. 기존에 출연했던 배우들은 세번째나 되니까 안이하게 하던대로 하면 되지~생각했던 거 같고, 처음 출연하는 배우들은 몸에 맞지 않는 옷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희성 연출의 단점이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책없이 평면적인 무대전환, 맥이 뚝뚝 끊기는 흐름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 가장 큰 문제는 앙상블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합이 안맞는 건 연습량의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소리가 제대로 뭉치지 않고, 화음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량이 부족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모차르트! 넘버에서 앙상블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앙상블이 제대로 받쳐주지를 못하니, 어디에서 감동받을 구석이 없더라. 기존 앙상블들이 지금 엘리자벳 지방 공연에 묶여있는 상황이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진짜 1막 초반에는 다들 긴장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건 뒤로 가면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제일 심각한 건 첫음이 소리가 안나는 거. 자신감 부족이라고 해야할지, 왜 치고 나와야 하는 첫음을 다들 뭉개버리는 건데. 음향 튜닝이 덜 되었는지 공연 중에 볼륨 들쑥날쑥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앙상블 소리에 힘이 없다. 다들 스리슬쩍 묻어가려고만 하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신영숙 씨가 끼면, 신영숙 씨 목소리만 확 튀면서 앙상블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기현상이 발생. 특히 여기는 빈, 모차르트모차르트 넘버에서 심하게 드러나더라. 공연 기간도 그리 길지 않은데, 과연 이 앙상블들이 제대로 앙상블을 이루게 될지 걱정된다.
그리고 쉬카네더의 김재만 씨는 깔롱을 떨지 말고, 제대로 공연을 보여주세요. 앙상블에 묻히는 쉬카네더라니 ㅠ.ㅠ 에녹 씨가 그리워서 눈물이 ㅠ.ㅠ
유희성 연출의 연출 방식은 마음에 안들어도 앙상블 조련 만은 제대로 한다고 생각했더랬는데, 어쩌다 이지경으로 무대위에 올리게 됐는지 진짜 궁금하다. 아니, 프로듀싱 하면서 이게 하나도 안 거슬렸나?

- 내가 작년 성남 모차르트를 보러갈 때, 아는 동생이 그냥 갈라콘이라고 생각하세요~ 했을 때도, 난 그렇게까지 맥락이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고, 모차르트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었기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고. 그런데 이번 공연은 과연 작년에 봤던 그 공연과 같은 공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진짜 맥이 뚝뚝 끊기고 제대로 하나의 극으로 이어지지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이렇게 장면 전환도 부자연스럽고, 단순할수가 있는지.
작년엔 내 눈과 귀에 뭐가 씌였던 건가 싶을 정도로 연출이 형편없더라. 무대 장치가 좌우에서 등장/퇴장을 반복하고, 노래 끝날 즈음해서 배우에게 핀 조명. 이게 매 장면마다 의미없이 반복되는데, 진짜 연출이 그냥 거저먹었다는 생각밖에 안들더라. 뿐인가 배우가 연출에 기댈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휑한 무대 위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게 다 눈에 들어오던데. 연기다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거~의 없었고, 다들 갈라콘에 노래하러 나온 듯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서 난 이 극이 이렇게 지루한 극이었나, 내 기억이 왜곡된 건가 했다. 작년에 분명 150분이 짧다고 느껴졌는데.

- 배우 얘기를 해보자면, 은차는 이제 좀 쉴 때가 된 것 같다. 내가 작년 은차에 홀릭해서 팬 비스무리하게 된 이후 매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이번에도 기대가 좀 있었는데, 그 기대 중에 만족시킨 부분은 목소리에 파워가 붙었다는 거 말고는 없었다. 연기 노선도 크게 바뀐 부분이 없고, 여성스러움이 좀 빠지고, 연령대는 더 어려지고, 막무가내가 좀 늘고 하는 정도. 캐릭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표면적이고 얕은 흉내내기? 연기가 단순해졌다. 흑흑 흐느끼고, 에헤헤 웃고, 깨방정을 떨고. 하여간 모차르트를 세번째 하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건 아닌지 흥이 나지를 않더라. 노래는 참 매번 감탄스럽게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첫공이라 실수없이 불러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었던 거 같고, 그 와중에도 내 운명 피하고 싶어는 참 기가막히게 뽑아내서 그건 참 좋았다. 그러나 배역에 몰입하지 못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 복잡다단한 감정선이 하나도 이해가 안 가고, 그냥 순서 외운대로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실망스러웠다.

- 이번에 공연 올라오면서 콘스탄체는 새 얼굴로 싹 바뀌었는데, 최성희 씨와 오진영 씨. 사실 바다의 연기를 내가 본 적이 없지만, 나는 4차원의 바다라면 새로운 콘스탄체를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예상대로 최성희 씨는 정선아 씨와 전혀 다른 콘스탄체를 보여주기는 했는데, 이게 참;; 1막의 바다 콘스탄체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한마디로 백치미가 넘치는 푼수떼기. 볼프강과 재회했을 때 '난 항상 청소만 해야돼.'하는 대사를 정선아 씨는 의기소침해서 시무룩하게 하는데, 최성희 씨는 저 대사를 할 때 조차 발랄하기 그지없다. 백치미 넘치는 웃음을 헤헤헤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다. 그런 모습도 나름 귀엽게 잘 어울리기는 해서 생각보다 괜찮네 했는데, 아~ 2막. '난 예술가의 아내라' 넘버 자체가 콘스탄체에게 참 불친절한 노래이긴 한데, 너무 캐릭터가 맥락없이 바뀌어서 ㅠ.ㅠ 뭐, 새로 캐스팅 된 배우의 첫공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가자 싶으면서, 관객인 내가 왜 이런 마음가짐으로 관극을 해야하나 싶어서 짜증도 나고. 오진영 씨의 콘스탄체는 또 어떠려는지.

- 작년에 대주교였던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그럭저럭 어울렸지만, 왜 노래를 가요풍으로 편곡해서 박자도 막 바꿔가며 부르시는지. 모차르트!의 곡들은 록적인 것 같으면서 클래식한 곡들이라 박자를 그렇게 밀고 당기고 하면 참 듣기에 어색해서. 하여간 이정열 씨의 레오폴트는 기존의 범사마나 윤승욱 씨의 레오폴트에 비해서 참 아들을 많이 걱정하고, 또 귀족 앞에서 엄청 비굴한 레오폴트였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난 게 '황금별' 넘버 전 상황인데, 범사마든 윤파파든 황금별 여사님이 볼프강을 데려가려고 할 때 꽤 단호하게 맞서는 인상이었는데, 정열 파파는 그렇게 단호하게 의견을 내는 게 아니라 공손하게 숙이고 들어가더라. 신분상의 문제나 이런 걸로 봤을 때 정열 파파의 해석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대사도 좀 더 자연스러운 톤이다. 근래에 아버지 배역을 자주 맡으시면서 볼프강이나 난넬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버지로서의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더라. 노래만 어떻게 정박자를 찾으시면 참 좋을 듯.

- 민영기 씨나 신영숙 씨(이제 황금별은 신영숙 씨 아니면 상상도 가지 않는 곡이 되버렸;)는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연기 노선에 그 짱짱한 성량까지 여전하셔서 그 점은 참 반갑고도 좋았고, 잔망 탕슨생(커튼콜에서 '나는 나는 음악'에 맞춰서 마지막 춤을 추다니, 잔망의 끝은 어디인가!)의 아마데도 여전히 훌륭! 이경미 씨의 베버 부인도 작년과 동일. 참, 이런 걸로 위안삼아야 하다니. ㅠ.ㅠ

- 보면서 참 한숨이 나오는 공연이었는데, 다음에 볼 땐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흐, 나의 모차르트!는 이렇지 않다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맨 오브 라만차 (Man of La Mancha)

일   시 : 2012. 06. 19 ~ 2012. 10. 07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2. 07. 01 (일) 18:30
연   출 : 데이비드 스완,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세르반테스/돈키호테 - 서범석, 알돈자 - 이혜경, 산초 - 이훈진, 도지사/여관주인 - 서영주, 닥터 까라스코 - 박인배, 신부 - 이영기
줄거리 :
배경은 스페인의 어느 지하감옥. 신성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인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조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급기야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며 착각하게 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난다. 풍차를 괴수 거인이라며 달려들지않나, 여관을 성이랍시고 찾아들어가 여종업원인 알돈자에게 아름다운 여인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 않나, 여관주인을 성주라고 착각하고 기사작위를 그에게 수여 받으며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라고 우기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알돈자는 돈키호테를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받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해주는 돈키호테 덕분에 알돈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만 억센 노새끌이들에게 처참히 짓밟히고 만다. 다음날 엉망이 된 알돈자를 발견한 돈키호테는 여전히 아름다운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무릎을 꿇지만 절망에 빠진 알돈자는 자신은 숙녀도 아니며 더럽고 천한 거리의 여자일뿐이라고 울부짖는다. 알돈자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돈키호테 앞에 이번에는 거울의 기사들이 나타나 결투를 신청한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본 알론조는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저 한 노인임을 깨닫고 쓰러지는데...[출처 > 플레이DB]

- 연극 돈키호테를 보면서도 생각한 건데, 나는 이 작품의 완역본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린이 명작동화 수준의 "동화" 혹은 어린이 명작극장에서 보여준 "만화" 정도의 사전 지식만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언젠가 꼭 원작을 완역본으로 읽어봐야겠다. 이게 하나의 원작으로 만든 건가 싶게 연극 돈키호테와 뮤지컬 돈키호테는 사뭇 달라서 과연 원작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연극 돈키호테의 주제가 "꿈"이라면, 뮤지컬 돈키호테의 주제는 "희망"이더라.

- 작년 가을 희망 강북 콘서트에서 '제 꿈은 돈키호테입니다.'를 간절히 소망하시던 범사마께서 드디어 소원성취하셨는데, 아주 그냥 진짜로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시더라. 특히 세르반테스가 소개하는 돈키호테는 깡마르고 비리비리한 늙은이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난다고 묘사되는데, 범사마는 안광이 형형하다기보다는 눈빛이 초롱초롱한 귀여운 기사님이랄까. 내가 세르반테스의 설명을 듣고 상상한 돈키호테는 성마르고 꼬장꼬장한 늙은이, 안광이 형형하여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건 무서워서라기보다는 근처에 가면 괜한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게 귀찮아서. 기본적으로 친근하지 않은 꼬챙이 같은 늙은 기사를 상상하게 되는데,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상당히 유하고 귀엽고 친근한 할아버지 기사였다. 온몸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는 빛을 마구 뿌리고 계시더라.
한마디로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는 즐겁고 유쾌한 늙은 기사님. 그렇다고 이 극이 마냥 해맑은 돈키호테를 그려내는 극이 아님에도 범사마의 돈키호테는 암울한 후반부를 다 덮을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

-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이라는 넘버가 어떤 상황에서 불리는 노래인 줄 모르고 들었을 땐, 그냥 좋은 노래,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노래로만 들렸는데, 확실히 뮤지컬 넘버는 극에서 따로 떼어져 있을 때랑 극 안에 녹아있을 때 느껴지는 감정에 큰 차이가 있다. 수많은 겁쟁이를 향해 꺾이지 않는 신념과 용기를 눈앞에 들이밀어 보여주는 저 보잘것없이 작고 마른, 눈빛만 맑고 형형하게 빛나는 늙은 기사의 울림이 가슴을 치더라.

- 이 뮤지컬은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알돈자 - 둘시네아이다. 알돈자가 돈키호테에 감화되는 부분이 이 극의 주제인 것 같으니 말이다.
언젠가 EBS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사람의 숫자가 셋이라고 한다. 먼저 뜻을 세운 한 명, 그리고 그 사람의 지지자가 한 명. 그런데, 이렇게 둘만으로는 나머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동조하는 세번째 사람이 움직이면 그제야 비로소 움직이지 않던 다른 사람들이 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말하자면 알돈자는 저 세번째 동조자라고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게 만드는 방아쇠 같은 존재.
이혜경 씨는 지난 시즌에도 알돈자 역을 하셨었는데, 거칠고 사나운 길고양이같은 알돈자를 연기하셨다. 그런데, 알돈자의 넘버들은 고음역대가 많아서 그 부분이 좀 어우러지기 힘들다고 할까. 대사를 할 땐 쌍욕을 지껄이고 퉤! 하고 침뱉는 여관의 하녀인데, 노래를 하면 고운 성악 발성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신세를 한탄하니 그 갭이 좀 있더라. 전에 김선영 씨가 인터뷰에서 노래의 음역이 너무 높아서 노래 때문에 연기를 포기하기 싫어서, 노래의 음을 낮추고 연기를 살렸다는 걸 봤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 돈키호테의 영원한 동반자, 지지자 산초 역의 이훈진 씨는 동글동글한 외모에 '주인님이 그냥 좋아요~'라며 순정을 다바치는 역에 어울리는 깨알같은 귀여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런데, 산초가 이렇게 소년이어도 좋은 걸까...하는 생각은 들더라. 물론 귀엽고 깜찍한 산초도 좋았지만, 원래 산초는 그렇게 순수한 캐릭터가 아니지 않았나? 물론 돈키호테를 따라 모험을 떠날 만큼 어딘가 어리숙하지만, 적당히 늙은이 비위나 좀 맞춰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싶은 속내도 가지고 있는 속물스러운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뮤지컬에서 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돈키호테 바라기였다.

- 살아가면서 점점 꿈을 잊고 산다. 꿈을 실현시키려면 부딪혀야 하는 수많은 난관들,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게 어려워서, 혹은 귀찮아서 그렇게 꿈을 외면하고 산다. 용기가 필요하다.

+ 이날 무대 소품 사고가 대박으로 났더랬다. 2막의 막바지 가장 중요한 장면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소품으로 엉성하게 만든 침대에 범동키가 눕고 뒤로 체중을 싣는 순간 무게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침대 상판이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이다. 그게 정말 너무 웃겨서 관객들이 다 웃고, 그래도 무대 위 배우 분들이 침착하게 다시 침대를 셋팅하고, 범사마가 웃음기 없이 침대에 눕고, 관객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극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뒤로도 침대에 누워서 대사를 하는 장면이 계속되었는데, 침대를 볼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와서 혼났다. 극에서 제일 중요한 감정선이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라 그 감정선이 깨진 건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덕후 한 마리는 속으로 '앗싸! 레어템~'을 외쳤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