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일   시 : 2013. 04. 26 ~ 2013. 06. 09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3. 05. 01 (수) 20:00
음   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대본 : 팀 라이스
연   출 : 이지나, 음악감독 : 김은영, 음악 수퍼바이져 - 정재일
캐스트 : 지저스 - 박은태, 유다 - 한지상, 막달라 마리아 - 정선아, 빌라도 - 김태한, 헤롯 - 김동현, 가야바 - 조유신, 안나스 - 우지원, 사제 - 이병현, 베드로 - 심정완, 시몬 - 김태훈, 가짜 선지자 - 심새인 외
줄거리 :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7일 전의 이야기를 유다의 시각에서 풀어낸 이야기. 그리고 신자인 나에게는 한마디로 성주간 이야기

- 한 줄 요약 :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ㅠㅠ

- 일단 이 뒷북도 한~~~참 철지난 뒷북 후기에 들어가기 전에.
 난 태어나보니 이미 천주교 신자였고, 말을 깨우치기도 전에 이미 유아 세례라는 걸 받은 상태였으며, 어릴 때부터 활자중독 기미가 있어서 집안에 돌아댕기는 공동번역 성서를 전래동화 읽듯 읽고 자랐다. 그렇다고 뭐 내가 독실한 신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 지금은 냉담자이고, 한때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을 읽다가 아~ 불교도 참 좋구나 감화된 이력도 있더랬지만, 뭐 신부님 말마따나 이미 이마에 印이 새겨진 거 팔자려니 하는 날라리 신자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인호 작가 역시 천주교 신자라고;)

뭘 이렇게 장황하게 고백하는가 하면, 사실 아래 증거 포스팅도 있지만, 난 전부터 은태가 JCS를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목소리로 겟세마네를 불러주면 얼마나 끝내줄까 바랐던 사람이다.

http://redlover.tistory.com/520 - 2011.07.05 모차르트! 후기 중

- 마술피리, 레퀴엠에 이어지는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이제 내 귀엔 완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들린다. 빨마 가지 높이 들어올려 호산나를 외치던 그 목소리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라고 돌변하는 그 비정함. (아~ 언젠가 은태 배우가 좀 더 관록이 쌓여서 겟세마네를 불러주면 참 좋겠다.)

http://redlover.tistory.com/598 - 2011.12. 09 햄릿 후기 중

- '피는 피로써' 넘버는 매 공연 참 계속해서 레전드를 찍어주니 내가 더이상 어떻게 더 찬양할 수식을 못 찾겠다. 그런데 정말 그 허리에 감은 천하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자꾸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와 겹쳐보여서, 언젠가 은태가 꼭 JCS를 해줬으면 좋겠다. 아우, 저렇게 파워가 붙은 목소리로 질러주는 겟세마네는 얼마나 처절할까.


그랬는데, 막상 희망이 이루어졌는데, 나는 망설이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과연 매번 십자가에 못박히고 매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라는 게 하나. 그리고 올해 부서가 바뀌면서 적응하느라 시간 내는 게 전 같지 않아서라는 게 둘.
그래서 바보처럼 2차 티켓팅엔 참전조차 안했다지;; 하여간 그런 미묘한 감정을 안고 잡은 자체 첫공은 노동절 밤공이었다.

- 첫공에 대한 감상은 우선은 압도적인 음악음악음악. 극 내용에 대한 선호와 별개로 나는 JCS의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수시로 ost (1996년 런던 캐스트, 그 스티브 발사모가 캐스팅된)를 듣기도 하고 했는데, 역시 날 것의 힘이란. 거기다 정재일의 편곡이 더해지면서 음악이 더 박력있고 세련되어졌다. 오버추어 시작의 일렉기타 선율에서부터 전율이 오더니만 무릎 꿇은 유다 위로 십자가가 내려오며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수퍼스타로 마무리되는 이 장엄함이란. 난 무슨 장엄미사곡 듣는 기분으로 오버추어의 끝부분을 감상했고, 이때 벌써 직감했다. 원작의 발칙함을 한국에서 기대하기는 좀 어려울지도...하고.

- 그러고선 다시 십자가가 올라가고 성극에서 자주 듣던 허밍이 들려오는 가운데 무대 오른편에서부터 지저스로 추정되는 그가 등장하는데, 난 이 첫 장면에서부터 은저스의 홀리함에 깜짝 놀랐다. 후방 조명으로 인해 생긴 실루엣이 흔히 그림속에서 자주보던 예수님이네? 언제 머리가 저렇게 길었지? 프로필 사진 찍을 때만해도 저렇게 길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 고요하고 정적인 걸음걸이를 넋을 잃고 쳐다봤다. 아직 노래 한 마디, 대사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등장만으로 벌써 압도되는 그런 느낌.

- 속으로 일났다...고 느낀 오프닝에 한지상 유다의 Heaven On Their Minds가 시작되는데, 어우 지저~~~~~~~~스 내뱉는 그 일성에서 다시 한 번 넉다운. 잘한다. 진짜 끝내주게 잘한다. 이 곡이 시작부터 참 쉽지않은 곡인데, 정말 감탄스럽게 잘 부르더라. 넥스트 투 노말과 공연이 겹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 쩌렁쩌렁한 목청은 대체 뭐람. 게다가 슬림한 몸선에 허기진듯한 눈빛이 진짜 딱 내 상상속의 유다다.
한유다는 지저스에 대한 태도가 뭐랄까 감히 손댈 수 없는 분? 최후의 만찬에서 바닥을 기어가고, 엎드려 사정할 때도 그 옷자락에 손도 대지 못하더라. 벌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발을 감싸고 부들부들 떠는 거 보면서, 어라 이 유다 취향일세...라고 생각한 내가 너무 경박한 걸까나;

- 초반에 이렇게 집중해서 극에 몰입해서 보다가 나에게 찬물을 끼얹은 게 두서너 일고여덟가지가 있었는데, 영어가 1/3 쯤 들어간 노랫말 -_-+, 화음을 이루지 못하고 깨진 유리같은 생목소리로 질러대던 앙상블, 저음불가 가야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순간 내가 뭘 들은거야 싶었던 Simon Zealotes 에서 시몬...이라고 생각되는 배우의 솔로 파트. 시몬 질럿 끝나고 쨍하니 얼어붙은 객석 분위기가 참...뭐라 말할 수 없이 민망했다.
가야바 역을 하신 배우분은 그분이 못한다기 보다는 음역대가 맞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우리나라에 베이스를 제대로 소화할만한 배우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제작진의 성의 부족이라고 느껴졌다.

- 그리고 겟세마네. 음원으로 공개됐을 때, 참 곱게도 부른다며, 저래서야 평생 은언니를 못 벗어나지 했더랬다. 당연히 공연에선 다르겠거니 예상을 하고는 있었다. '내 운명 피하고 싶어'도 스튜디오 녹음과 본 공연에서 굉장히 달랐으니까. 그런데 이건 내 예상을 뛰어넘는 진폭이었다.
여리게 파르르 떨면서 시작하는 초반을 지나 본격적으로 이건 부당하잖아요!를 외치는 Why should I die? 의 저 감탄스런 Why~~~~~~ 샤우팅 하며, 후반부에 체념하며 눈물 또르르 떨구며 부르는 '당신 손에 정해진 운명'에 대한 한탄, 그리고 받아들였으되 가시지 않는 원망스런 마음 가득 담아 '찢고 쳐서!' 죽이시라고 독기를 내보이는 마지막까지 진짜 숨도 못쉬고 울먹울먹.
그런데 정말 너무 아까운 건, 감정이 고조될만 하면 등장하는 영어 가사가 어찌나 중간 중간 찬물을 끼얹던지. ㅠㅠ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

- 이 뮤지컬의 궁극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수퍼스타. 갑자기 거미줄에 걸린 십자가 무늬의 가림막이 내려오더니 한유다의 콘서트가 시작됐다. 하얀색 아프로 헤어의 유다걸들과 같이 등장해서 개인기 시간을 펼치는 한유다의 잔망스러움이란. 그런데 썩 좋지 않은 음향에, 애드립이 반인 노래를 듣고 있자니, 이거 주제가 아니었어? 싶은 마음이 들더라.

사실 딱히 연출의 의도랄까 이런게 잘 안보이기도 했지만, 저 거미줄에 걸린 십자가가 연출의 단 한번 뿐인 소극적인 의사표현처럼 보였다. 유다는 계속 '당신은 누군가? 당신은 뭘 위해 희생한건가?' 묻는다. 그런 물음에 연출은 예수의 죽음이 신의 계획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린 덧없는 희생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거 치고는 그 의사표현이 너무 소극적이고, 눈치를 보는 거 같아서 실소가 났지만. 아니 십자가 형을 당하는 예수를 왜 가림막 뒤에 배치해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예수의 모습을 가리는 건지? 여기서 유다는 그냥 씐나씐나 콘서트를 하기만 해서는 안되고요, 예수의 고난을 조롱하고, 말도 안되는 신의 뜻을 비웃어줘야하는 거 아닌가? 근데 왜 저렇게 미리 방어선을 굳건하게 치는 걸까? 안그래도 극을 보는 내내 이거 복음서 내용에 너무 충실한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도대체 어디가 발칙하다는 거지? 했더랬다.

- 그랬는데, 허공에 떠오르는 십자가라니 ㅠㅠ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표하는 신음소리에 갑자기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내가 문장으로만 읽어왔던 구절들이 생생하게 소리가 되어 재생되고 있는 느낌. 막연히 고통스러웠겠지 하던 것과 눈과 귀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건 전혀 달랐다. 외국어로 듣는 것과 모국어로 듣는 것과의 차이도 있겠지만,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 
그리고 모든 소리가 사라진 정적 속에 희미하게 들려온 '다 이루었다.' 한 마디는 꾹꾹 틀어막고 있던 눈물샘을 기어이 터트리고 말았다. 처연하게 흐르는 겟세마네 현악기 버전과 함께 십자가 위로 핀조명이 떨어지는데, 그 순간 십자가에서 눈물 한방울이 반짝하며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 가슴에도 그 눈물이 묵직하게 떨어졌다.

- 위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날 심봤다~ 싶었던 배우가 있었는데, 빌라도 역의 김태한 씨. 저음은 저음대로 중후하시고, 질러줄 땐 파워풀하게 질러주시는데다가, 사실 의상이 좀 어찌보면 우스운 은갈치(;) 토가였는데도 잘 소화하시고, 무엇보다 냉소적인 로마 귀족풍의 집정관을 보여주셔서 좋았다. 채찍신에서 영어로 숫자세기는 연출의 잘못으로 하고;

- 막이 내려가고 나서도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커튼콜 때, 새벽빛 같은 조명 사이로 은저스가 걸어나오는데 참 울컥하더라. 게다가 음악은 또 왜 그리 좋은지. 한유다의 수퍼스타 커튼콜에 휘발될 뻔한 감상을 끌어안고 공연장을 나서면서, 앞으로 잡은 표가 한 장 뿐인 상황을 떠올리며, 내 운이 그렇지 ㅠㅠ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러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ㅠㅠ
맥베스 (Macbeth) - Directed by Mansai Nomura

일   시 : 2013. 03. 15 (금) ~ 17 (일)
장   소 : 명동예술극장
관극일 : 2013. 03. 15 (금) ~ 17 (일)
원   작 : 윌리엄 셰익스피어 <맥베스>
연   출 : 노무라 만사이(野村萬斎)
출   연 : 맥베스 - 노무라 만사이(野村萬斎), 맥베스의 처 - 아키야마 나츠코(秋山菜津子), 세마녀 - 고바야시 케이타(小林桂太), 다카다 케이토쿠(高田恵篤), 후쿠시 케이지(福士惠二), 던컨왕 & 맥더프 - 다카다 케이토쿠, 뱅쿠오 - 후쿠시 케이지, 맬컴 & 플린스 - 고바야시 케이타
줄거리 :
왕좌를 향한 치열한 욕망, 그리고 스스로 그 덫에 빠진 이들의 비극
던컨 왕 휘하 스코틀랜드 장군 맥베스. 뱅쿠오와 함께 진영으로 돌아오던 중, 황야에서 마녀 3명을 만나 “결국 왕이 되는 자” 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러나 성으로 돌아와 보니 던컨 왕은 맬컴 왕자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두려운 마음에 맥베스는 부인과 함께 왕을 살해할 계획을 꾸민다. 모두가 조용히 잠든 밤, 단검으로 왕을 살해하고 드디어 국왕의 자리에 오른 맥베스. 그러나 마녀들에게 또 다른 자가 왕위에 오른다는 예언을 듣고 다시 살인을 꾸미는데…


- 만사이 상이 맥베스를 들고 한국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오매불망 기다리다, 티켓 오픈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나는 명동 예술극장 패키지를 질렀다. 하루 전 선예매라니, 게다가 무려 40% 할인까지 끼얹어주는데 뭔들.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리는 극은 믿고보는 편이라 마음 편하게 패키지를 지르고 3일 내내 실질 1열 중앙을 벗어난 본 적이 없다는 행복한 파슨 라이프~ 아아, 다른 애정극도 이렇게만 티켓팅하면 진짜 행복할 거 같다.
하여간 그렇게 기다려온 만사이 상의 공연. 금요일은 관객과의 대화도 있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보러갔는데, 기대가 헛되지 않아서 굉장히 흥분된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섰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금요일 밤공, 토요일 낮공, 토요일 밤공, 일요일 막공(전관 찍는다!! 고 한게 무색하게 각각 후기를 남겨야 하겠지만, 난 지금 매우 귀찮아병이 도진 상태라서 밀린 후기만 백개이므로 한방에 퉁친다. 또 글쓰기는 연습이므로 그동안 굳어버린 손가락이 무척이나 삐걱대고 있어서 가뜩이나 없던 문장력이 자꾸 퇴보하고 있어서 제대로 후기를 쓰는 것도 버겁다. 아, 왠 잔말이 이리도 많은 것이냐. -_-;;

- 만사이 상은 교겐시로서 일본의 전통문화 계승자이면서, 바로 그 일본 고유의 문화를 보편성에 담아 세계화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시도로 셰익스피어를 가져다 일본식으로 각색하는 작업을 몇년에 걸쳐 진행하고 있고, 상당한 성과를 얻어냈다. '실수 연발'에서부터 태어난 '실수의 교겐', '리처드 3세'에서 나온 것이 '나라를 훔친 자', 그리고 이번의 맥베스까지. 실수의 교겐은 말 그대로 실수 연발을 '교겐'에 담아낸 작품이고, '나라를 훔친 자'나 '맥베스'는 교겐의 미니멀리즘과 일본색을 입혀서 각색한 연극 작품이다.

- 놀랐던 건 첫날 공연을 보고나서 굉장히 일본색이 짙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용 전개에 있어서 원작 훼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대사는 원작 고대로~ 물론 다수의 등장인물을 고작 5명으로 처리해야 했기때문에 원작에서 쳐낼 부분은 가차없이 쳐냈고, 또 그게 전체 맥락을 크게 흐트러트리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 교겐의 노 무대를 연상시키는 장방형 천을 펼쳐 무대를 만들고, 그 천 바깥은 무대 밖이라는 듯, 세 마녀가 들락거리며 소품을 챙기고 쉬기도 하고 등퇴장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교겐의 형식 그대로 였다. 또 세 마녀가 몇 가지 소품을 가지고 빙글빙글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장면 역시 교겐을 연상 시켰다. 나중에 만사이 상 인터뷰를 보니까, 그 변신 장면에 웃음 코드를 기대했는데, 정작 일본에선 반응이 없었는데, 한국 관객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웃어주더라며.

- 맥베스의 흥망성쇠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표현하며 인간 역시 초월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삼라만상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런 정서는 서양인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버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통 맥베스에서 기대하는 건 인간의 욕망, 집착에 대한 끈적하고 어두운 감정이지 않을까. 물론 만사이 상이 연출한 맥베스에서 그 부분이 간과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

- 무대가 간소하다고 해서 극까지 간소한 건 아니어서, 내가 제일 감탄한 장면은 맥베스가 맥더프의 배신을 알고나서 맥더프의 성을 치는 장면이었는데, 와~ 나는 이런 작은 규모의 연극에서 이런 스펙타클을 경험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노 무대를 상징했던 바닥천을 양 옆에서 막대에 걸고 맥베스의 수신호를 따라 걷어올리면 그 천 뒷면이 펄럭이며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데, 그 천 무늬가 빗발치는 화살. 진짜로 맥더프의 성에 화살비가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역동적인 장면이 그 천 한장으로 만들어지더라. 그리고 그 천이 무대 뒤로 사라지면 어느 새 맥베스의 손에는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의 머리가 들려있다. 대단한 만사이 상~

- 쏟아지는 낙엽 속에 피를 토하듯 '이런 한숨이 다 있나'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절규와도 같은 한숨을 내쉬며 쓰러지는 아키야마 상의 광기어린 눈동자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씻어도 씻기지 않는 피냄새, 죄의 무게. 거기에 져버린 한 여인.
때로 왕좌가 되기도 하고, 성이 되기도 하던 무대 장치가 이번엔 관이 되어 맥베스의 처를 안치하며 무대를 떠난다. 하염없이 슬퍼하며 십년은 늙어버린 맥베스에게 최후 통첩이 당도한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버남의 숲이 다가오는 것. 여기서도 걸개천에 그려진 원근법을 적용한 나무 그림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숲이 다가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천은 다시 눈보라와 만나서 맥베스의 최후를 덮어줄 거대한 덮개가 된다.

- 조명, 음향, 배우들의 움직임, 그리고 스스로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이런 영리한 연출까지. 만사이 상은 참으로 다재다능한 분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관극이었다.

+ 3/17 막공일 오전에 우리 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이 되었더랬다. 행복한 마음을 안고 만사이 상의 마지막 맥베스를 보러간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