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8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옥주현 엘리자벳, 송창의 죽음, 민영기 요제프, 탕준상 어린 루돌프 자체 첫공.
- 옥주현 엘리자벳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에서는 처음 만났는데, 이 아가씨가 나름대로 뮤지컬 무대에서 경험이 쌓이더니, 이제야 빛을 보는 건가 싶을만큼 노래도 연기도 훌륭했다. 이전에 옥주현 씨의 공연을 봤던 지인들의 평에 의하면 노래는 잘 하는데, 표정 연기가 미숙하고, 상대 배우와 하모니를 이루지를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엘리자벳에서는 제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데다가, 이제는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법도 제대로 익힌 것 같더라. 타고난 목청이 좋다고 할지, 목소리가 확실히 트여있고, 힘있게 뱃심으로 쭉 뻗어내는 발성이 아주 시원시원 하더라. 물론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서 섬세함이 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연기 내공 십여년의 김선영 씨와 어떻게 비교를 하겠는가.
두 명의 배우가 표현하는 엘리자벳이니 당연히 연기의 노선도 다르고 (연출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디테일이나, 자잘한 대사도 조금씩은 차이를 두고 있었는데,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감정 표현의 방법이 선영 엘리가 안으로 끌어들여서 삭이는 표현이라면, 옥엘리는 밖으로 다 터트리는 표현이다. 그래서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선영 엘리가 목을 부여잡으며 질식할 것 같은 씨씨라면, 옥엘리는 가슴을 치고 숨을 몰아쉬는 쪽이다.
그리고 선영 엘리가 본질적으로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정을 타고나서, 그 정도가 차츰 심해지는 씨씨라면, 옥엘리는 환경적인 요인(궁정 내 왕따, 고된 시집살이, 믿었던 남편의 외도 등)으로 점점 마음과 영혼이 피폐해져가는 씨씨라고 할까. 그래서 젊은 날의 전성기 시절 씨씨일 때 옥엘리는 꽤 강해서 '내가 춤출 때' 같은 경우 옥엘리는 죽음 따위! 다 물리칠 기세ㅋㅋㅋ 아, 사실 여기엔 '죽음'이라는 캐릭터와의 상성도 꽤 중요한데, 이날의 죽음인 송창의 씨는 내 보기에 세 죽음 중에 제일 순둥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서ㅋㅋㅋ. 옥엘리 - 류죽음일 때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꽤 궁금해지더라.
그리고 루돌프의 장례식 장면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도 두 배우가 달랐는데, 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김선영 씨는 슬픔을 안으로 끌어들여 삭이다 순간적으로 탁 풀어내는 쪽이면, 옥주현 씨는 오열하며 슬픔의 감정을 발산하는 쪽이다. 게다가 옥주현 씨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요제프를 원망하며 요제프의 가슴을 치는 디테일을 집어넣었는데, 아들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 + 그렇게 아들을 몰아간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더해져서 요제프가 내민 손을 거절하는 이유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만들어냈다.
극의 마지막 부분, 루케니에게 찔리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선영 엘리는 검은 상복을 벗어던지고 나서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것 처럼 자유롭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데, 옥엘리는 아직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찔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죽음의 다리를 올라간다. 두 배우의 해석 차이인 듯 한데, 아마도 옥엘리는 죽음의 키스를 받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고 보고 그렇게 연기하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선영 씨의 내면 연기도 좋고, 주현 씨의 감정 전달이 쉬운 연기도 다 설득력이 있어서 두 배우의 다른 해석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좋더라. 이런 게 더블 캐스팅의 묘미니까.
- 역시나 무대에서는 처음 만나는 송창의 씨. 죽음의 캐릭터가 달라지니 극 자체가 달라지더라. 엘리자벳 포스터에 쓰인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에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실제로도 외줄에서 떨어진 씨씨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들어올 때 그림은 포스터 그 자체였다.
하여간에 프롤로그에서부터 죽음이 엘리자벳을 너무 사랑해! @.@ 저 잘생긴 남자가 목소리도 엄청 감미로운데, 어찌나 절절하게 엘리~ 자벳~ 하고 부르는지 원. 그래서 은케니가 날카롭게 엘리~자벳! 하고 외치니까 초상화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루케니를 내려다보며 니가 뭔데 내 여자 이름을 부르는 거임? 하는 표정으로 엘리~자벳! 하고 노래하는데, 아, 송창의 씨는 사랑에 빠진 죽음이로구나 싶더라.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할 때, 다리 난간 위에서부터 와이어 밖으로 엘리자벳을 향해 손을 쭉 뻗는 아주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죽음이다.
특히 류토트랑 아예 대사부터 달랐던 장면이 있는데, 엘리자벳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의사로 변장해서 등장하는데, 시녀장에게 류토트는 "이만 나가주세요."라고 하는데, 송토트는 "우리 둘만 있게 해주세요." 라고 해서 잠시 뿜겼다.
송창의 씨는 기본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발성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고, 노래도 음역대가 안맞는 부분은 포기하고 음을 낮췄는데, 차라리 그편이 낫다. 무리하게 지르는 것보다는 안정적으로 가는 편이 관객도 덜 괴롭고. 허나, 그런 걸 떠나서 목 상태 자체가 별로 좋지가 않아서 1막에선 살짝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 2막에서는 그래도 나아져서 그 정도면 선방한 거라고 보고. 너무 관대한 평가인가? 그 비주얼이면 다 용서되는 수준임.ㅋㅋㅋ
그런데, 송토트는 이미 엘리자벳에게 너무 반해버려서 싸움도 하기 전에 지고 들어간다. 안그래도 상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의 옥엘리인데. 그래서 옥엘리에게 차일 때마다 표정이 너무너무 상심한 표정.ㅋㅋㅋ 섬세한 송창의 씨 캐릭터랑 맞물려서, 가뜩이나 안스러운데. 특히 그 마마보이 요제프에 최후 통첩이라고 선전포고 날리는 씬에서, 나름 분위기 잡고 침대 위에서 엘리~자벳~ 이러고 등장하는데 (진짜 비주얼은 최강이더라;), 옥엘리가 끌려가다가 딱 뿌리치며 필요없어, 가~~~~~~~~~~~! 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충격받아서 침대에서 내려와 퇴장할 때도 막 비틀거려.ㅋㅋㅋ 웃을 일이 아니지만, 여기서 송창의 씨 연기가 정말 딱 상처받은 섬세한 남자st여서.ㅋㅋㅋ
그렇게 이 둘은 밀당이나 기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되겠구나 하며 지켜본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와우, 송창의 씨도 그렇게 녹록한 배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더라. 뭐냐면, 포용하는 죽음이라고 할까. 그래 마음껏 앙탈 부려봐, 다 받아주겠어, 어차피 넌 나에게 돌아오게 돼있으니까...라는 부드럽게 감싸안는 대범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 쯤, 전투적인 옥엘리가 머리도 살짝 흐트러지고 한바탕 전투를 치른 기색이었던 것에 비해, 송토트는 오히려 여유롭고 단호하게 엘리를 바라보더라.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게지. 이 죽음 역시 만만치 않다.
그치만, 너무 순정돋게 엘리자벳을 사랑하고 있어. ㅠ.ㅠ 마지막에 엘리자벳을 데리러 왔을 때도, 마치 잠긴 문 앞에서 요제프가 엘리자벳 부르는 것 처럼, 아주 애절하게 엘리자벳을 부르더라.
아, 그리고 송창의 씨가 의외로 가창력이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그림자는 길어지고' 넘버였는데, 송창의 씨도 기본적으로 벨벳 보이스 계열이라 동석이와 목소리 어울림이 좋았다. 류토트 + 동돌프 케미에야 못미치겠지만, 예상 외로 둘의 목소리가 잘어울리는데다가 송창의 씨가 그저 넘버를 소화해내는 데 급급한 그런게 아니라, 노래에 감정을 실어서 제대로 불러주더라. 강하게 샤우팅해야 할 부분(미래의 황제 폐!하!가! 같은 부분)도 제대로 질러주고. 뭐, 마이크를 키운건지 모르겠지만, 성량 괴물 동석이에게 그럭저럭 밀리지 않고 자기 소리를 내서 나는 오오~ 하면서 봤다. 무엇보다 겁나게 잘생긴 미남자 둘이 그러고 있으니 눈도 호강, 귀도 호강 ㅋㅋㅋ 아, 난 예쁜 거 밝힌다고 누누히 말해왔음;
- 지난 두 번의 공연을 모두 윤영석 씨의 요제프(이후 윤제프)로 보고, 민영기 씨의 요제프(이후 민제프)는 이날이 처음이었는데, 민제프는 확실히 더 강성이라, 마마보이에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윤제프가 착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 삘의 마마보이라면, 민제프는 어머니의 권력이 막강하기에 알아서 기는 아들이라고 할까. 그래서 윤제프가 신혼 시절 엘리자벳에게 어머니의 충고를 들어줘 라고 할 때는 나름 이해가 되는 게, 평생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으니까, 그게 무리한 부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쪽인데 반해, 민제프는 오히려 어머니 눈치를 보며 엘리자벳을 설득시키려고 하니까 그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좀 비겁해 보인다. 즉, 윤제프는 이런 건 당연한 건데, 왜 이해를 못해? 라는 쪽이고, 민제프는 당신 편을 들고 싶지만, 내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지...라는 태도로 보인다는 거. 개인적으로는 윤제프 쪽이 목소리도 그렇고 더 취향이다.
- 이날의 애기 루돌프는 탕준상 어린이. 준상이는 모차르트!에서 내 최애 아마데였던 것도 있어서, 기대도 좀 있었는데, 어우, 이렇게 고운 목소리인 줄 몰랐다. 세상에, 엄마~ 하고 찾는 목소리부터 너무너무 천사인데다가, 그 잠옷!!! 서양 고전 영화에서 봤던 그런 천사돋는 잠옷을 입혀놓으니 또 얼마나 아기 천사 같은지. 그런데, '마음 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 부분에서 강세를 줘야하는데, 강세없이 그냥 죽 이어나가서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어디 아픈 것 처럼도 보이고.
아, 커튼콜에서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준상이. 이번에는 커튼콜에서 이정화 소피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 하더라. ㅋㅋㅋ
- 청년 루돌프 동석이는 '내가 어머니의 거울이면 좋겠어요.' 부를 때, 도와달라며 무릎 꿇는 장면에서 정말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려서 저 커다란 아이가 이 사이즈가 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작아져서 참 안스러웠다. 캐릭터의 상황과 맞물려서 저렇게 자꾸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 그리고, 여기서 대응하는 두 엘리가 또 조금 다른데, 선영 엘리가 세상만사 다 귀찮고, 지친 기색으로 거절한다면, 옥엘리는 다시는 황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거절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이어링 왈츠에서 동석이가 조금만 더 몸에서 힘을 빼주면 처절함이 더 극대화될 것 같은데, 음...무대 위에서 몸에 들어간 힘을 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감각이긴 하겠지.
- 마지막으로 은케니. 노래야 매 공연 기복없이 훌륭! (세번 밖에 못봤지만;) 연기에 대해 말해보면, 왼쪽 사이드에서 보니까 깨알같은 디테일이 정말 눈에 잘 들어오더라. 루케니가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자기가 메인이 아니라도 참 바쁜 캐릭터다. 때로는 시종이 되어 높으신 분들께 차 셔틀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뱃사공으로 변신해서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의 로맨틱한 데이트 분위기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카페 마스터로 서빙을 하고, 기념품 판매도 하는 등 십잡스가 따로 없다.
재미있는 게 루케니의 메인 의상(가로 줄무늬 셔츠에 후줄근한 겉옷)일 땐, 해설자 루케니이고, 뭔가 의상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극 중에 스며들어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하고 있더라.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관객들 눈엔 루케니로 보이지만, 극중 인물들 눈엔 때에 따라 시종, 뱃사공, 카페 마스터, 지나가는 행인 등 그 자리에 있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가구'같은 존재랄까 뭐 그렇게 보여지는 것. 이건 루케니가 죽음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지배 받지 않는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밌었던 디테일을 몇 개 기억해보자면, 바트 이슐에서 헬레네와 요제프가 선을 보는 자리. 한쪽 구석에서 옥엘리가 혼자 컵케이크를 먹다가 그냥 지나치려는 루케니를 발견하고 차를 달라고 손을 든다. 그럼 루케니가 차를 대접하고 옥엘리는 자기가 먹던 컵케이크를 루케니 주고 먹으라곸ㅋㅋㅋ. 그럼 루케니가 일단 받기는 받았지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고 있고, 그럼 옥엘리는 자꾸 먹어보라고 권하고 루케니가 마지못해 먹는 시늉 좀 하다, 옥엘리가 곁에 다가온 요제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루케니가 뭐씹은 표정으로 컵케이크를 쟁반 위에 올려놓는다. 이 짧은 순간 시트콤의 한 장면이 지나가는 거다. ㅋㅋㅋ
그 외에도 카페 씬에서 타자를 치며 기사를 작성하는 테이블 뒤로 가서 뭐라고 썼는지 기웃거리다 기자(로 보이는 남 앙상블)가 그걸 못보게 가리니까 에이~ 라는 표정으로 쌩하니 돌아서는 것도 귀엽고. 정신병원 씬에서 요즘은 정신 병자가 아주 많다며 김문정 음감 앞에 가서 언제부터 젓가락들고 미친년 마냥 팔을 휘저었냐고 할 때, 김음감이 머리위로 하트만들어서 응대하니까 빵터져서 웃음 참는 것도 웃겼다.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조명이 꺼진 뒤에도 계속 캐릭터로서 연기하는 것. 요제프와 엘리자벳의 첫날밤, 퇴장하는 루케니와 소피 대공비가 왼편 어둠속에서 스쳐지나가는데, 소피를 향해 깍듯이 절을 하고 물러나는 은케니. 이런 은케니라 좋다.
+ 커튼콜에서 송토트는 레알 아이돌 댄스를 제대로 소화해서 추더라.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 모양이다. 그리고 환호속에 등장한 꽃같이 어여쁜 옥엘리는 시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는데, 뭐랄까,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걸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 집에 돌아와서 옥류은 조합을 뒤져봤더니, 3월 21일 마티네 공연이 유일하더라. 장난하냐?!!! 4차 오픈할 땐 옥류은 조합좀..굽신굽신.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2. 18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탕준상
- 옥주현 엘리자벳, 송창의 죽음, 민영기 요제프, 탕준상 어린 루돌프 자체 첫공.
- 옥주현 엘리자벳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연에서는 처음 만났는데, 이 아가씨가 나름대로 뮤지컬 무대에서 경험이 쌓이더니, 이제야 빛을 보는 건가 싶을만큼 노래도 연기도 훌륭했다. 이전에 옥주현 씨의 공연을 봤던 지인들의 평에 의하면 노래는 잘 하는데, 표정 연기가 미숙하고, 상대 배우와 하모니를 이루지를 못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엘리자벳에서는 제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데다가, 이제는 상대 배우와 호흡하는 법도 제대로 익힌 것 같더라. 타고난 목청이 좋다고 할지, 목소리가 확실히 트여있고, 힘있게 뱃심으로 쭉 뻗어내는 발성이 아주 시원시원 하더라. 물론 디테일한 감정 표현에서 섬세함이 좀 부족한 면이 있지만, 연기 내공 십여년의 김선영 씨와 어떻게 비교를 하겠는가.
두 명의 배우가 표현하는 엘리자벳이니 당연히 연기의 노선도 다르고 (연출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디테일이나, 자잘한 대사도 조금씩은 차이를 두고 있었는데, 가장 차이가 나는 점은 감정 표현의 방법이 선영 엘리가 안으로 끌어들여서 삭이는 표현이라면, 옥엘리는 밖으로 다 터트리는 표현이다. 그래서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선영 엘리가 목을 부여잡으며 질식할 것 같은 씨씨라면, 옥엘리는 가슴을 치고 숨을 몰아쉬는 쪽이다.
그리고 선영 엘리가 본질적으로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성정을 타고나서, 그 정도가 차츰 심해지는 씨씨라면, 옥엘리는 환경적인 요인(궁정 내 왕따, 고된 시집살이, 믿었던 남편의 외도 등)으로 점점 마음과 영혼이 피폐해져가는 씨씨라고 할까. 그래서 젊은 날의 전성기 시절 씨씨일 때 옥엘리는 꽤 강해서 '내가 춤출 때' 같은 경우 옥엘리는 죽음 따위! 다 물리칠 기세ㅋㅋㅋ 아, 사실 여기엔 '죽음'이라는 캐릭터와의 상성도 꽤 중요한데, 이날의 죽음인 송창의 씨는 내 보기에 세 죽음 중에 제일 순둥이가 아니었을까 싶어서ㅋㅋㅋ. 옥엘리 - 류죽음일 때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꽤 궁금해지더라.
그리고 루돌프의 장례식 장면에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도 두 배우가 달랐는데, 위에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김선영 씨는 슬픔을 안으로 끌어들여 삭이다 순간적으로 탁 풀어내는 쪽이면, 옥주현 씨는 오열하며 슬픔의 감정을 발산하는 쪽이다. 게다가 옥주현 씨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서 요제프를 원망하며 요제프의 가슴을 치는 디테일을 집어넣었는데, 아들을 죽게 했다는 자책감 + 그렇게 아들을 몰아간 남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더해져서 요제프가 내민 손을 거절하는 이유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만들어냈다.
극의 마지막 부분, 루케니에게 찔리고 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선영 엘리는 검은 상복을 벗어던지고 나서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것 처럼 자유롭게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데, 옥엘리는 아직 육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찔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죽음의 다리를 올라간다. 두 배우의 해석 차이인 듯 한데, 아마도 옥엘리는 죽음의 키스를 받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라고 보고 그렇게 연기하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선영 씨의 내면 연기도 좋고, 주현 씨의 감정 전달이 쉬운 연기도 다 설득력이 있어서 두 배우의 다른 해석을 보는 즐거움이 있어 좋더라. 이런 게 더블 캐스팅의 묘미니까.
- 역시나 무대에서는 처음 만나는 송창의 씨. 죽음의 캐릭터가 달라지니 극 자체가 달라지더라. 엘리자벳 포스터에 쓰인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에 가장 어울리는 '죽음'이었다. 실제로도 외줄에서 떨어진 씨씨를 공주님 안기로 들고 들어올 때 그림은 포스터 그 자체였다.
하여간에 프롤로그에서부터 죽음이 엘리자벳을 너무 사랑해! @.@ 저 잘생긴 남자가 목소리도 엄청 감미로운데, 어찌나 절절하게 엘리~ 자벳~ 하고 부르는지 원. 그래서 은케니가 날카롭게 엘리~자벳! 하고 외치니까 초상화만 쳐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루케니를 내려다보며 니가 뭔데 내 여자 이름을 부르는 거임? 하는 표정으로 엘리~자벳! 하고 노래하는데, 아, 송창의 씨는 사랑에 빠진 죽음이로구나 싶더라.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할 때, 다리 난간 위에서부터 와이어 밖으로 엘리자벳을 향해 손을 쭉 뻗는 아주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죽음이다.
특히 류토트랑 아예 대사부터 달랐던 장면이 있는데, 엘리자벳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의사로 변장해서 등장하는데, 시녀장에게 류토트는 "이만 나가주세요."라고 하는데, 송토트는 "우리 둘만 있게 해주세요." 라고 해서 잠시 뿜겼다.
송창의 씨는 기본적으로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발성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고, 노래도 음역대가 안맞는 부분은 포기하고 음을 낮췄는데, 차라리 그편이 낫다. 무리하게 지르는 것보다는 안정적으로 가는 편이 관객도 덜 괴롭고. 허나, 그런 걸 떠나서 목 상태 자체가 별로 좋지가 않아서 1막에선 살짝 불안한 면이 있었지만, 2막에서는 그래도 나아져서 그 정도면 선방한 거라고 보고. 너무 관대한 평가인가? 그 비주얼이면 다 용서되는 수준임.ㅋㅋㅋ
그런데, 송토트는 이미 엘리자벳에게 너무 반해버려서 싸움도 하기 전에 지고 들어간다. 안그래도 상대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쪽의 옥엘리인데. 그래서 옥엘리에게 차일 때마다 표정이 너무너무 상심한 표정.ㅋㅋㅋ 섬세한 송창의 씨 캐릭터랑 맞물려서, 가뜩이나 안스러운데. 특히 그 마마보이 요제프에 최후 통첩이라고 선전포고 날리는 씬에서, 나름 분위기 잡고 침대 위에서 엘리~자벳~ 이러고 등장하는데 (진짜 비주얼은 최강이더라;), 옥엘리가 끌려가다가 딱 뿌리치며 필요없어, 가~~~~~~~~~~~! 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충격받아서 침대에서 내려와 퇴장할 때도 막 비틀거려.ㅋㅋㅋ 웃을 일이 아니지만, 여기서 송창의 씨 연기가 정말 딱 상처받은 섬세한 남자st여서.ㅋㅋㅋ
그렇게 이 둘은 밀당이나 기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되겠구나 하며 지켜본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와우, 송창의 씨도 그렇게 녹록한 배우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더라. 뭐냐면, 포용하는 죽음이라고 할까. 그래 마음껏 앙탈 부려봐, 다 받아주겠어, 어차피 넌 나에게 돌아오게 돼있으니까...라는 부드럽게 감싸안는 대범한 죽음이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날 때 쯤, 전투적인 옥엘리가 머리도 살짝 흐트러지고 한바탕 전투를 치른 기색이었던 것에 비해, 송토트는 오히려 여유롭고 단호하게 엘리를 바라보더라.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게지. 이 죽음 역시 만만치 않다.
그치만, 너무 순정돋게 엘리자벳을 사랑하고 있어. ㅠ.ㅠ 마지막에 엘리자벳을 데리러 왔을 때도, 마치 잠긴 문 앞에서 요제프가 엘리자벳 부르는 것 처럼, 아주 애절하게 엘리자벳을 부르더라.
아, 그리고 송창의 씨가 의외로 가창력이 좋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그림자는 길어지고' 넘버였는데, 송창의 씨도 기본적으로 벨벳 보이스 계열이라 동석이와 목소리 어울림이 좋았다. 류토트 + 동돌프 케미에야 못미치겠지만, 예상 외로 둘의 목소리가 잘어울리는데다가 송창의 씨가 그저 넘버를 소화해내는 데 급급한 그런게 아니라, 노래에 감정을 실어서 제대로 불러주더라. 강하게 샤우팅해야 할 부분(미래의 황제 폐!하!가! 같은 부분)도 제대로 질러주고. 뭐, 마이크를 키운건지 모르겠지만, 성량 괴물 동석이에게 그럭저럭 밀리지 않고 자기 소리를 내서 나는 오오~ 하면서 봤다. 무엇보다 겁나게 잘생긴 미남자 둘이 그러고 있으니 눈도 호강, 귀도 호강 ㅋㅋㅋ 아, 난 예쁜 거 밝힌다고 누누히 말해왔음;
- 지난 두 번의 공연을 모두 윤영석 씨의 요제프(이후 윤제프)로 보고, 민영기 씨의 요제프(이후 민제프)는 이날이 처음이었는데, 민제프는 확실히 더 강성이라, 마마보이에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윤제프가 착하고 말 잘듣는 모범생 삘의 마마보이라면, 민제프는 어머니의 권력이 막강하기에 알아서 기는 아들이라고 할까. 그래서 윤제프가 신혼 시절 엘리자벳에게 어머니의 충고를 들어줘 라고 할 때는 나름 이해가 되는 게, 평생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으니까, 그게 무리한 부탁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쪽인데 반해, 민제프는 오히려 어머니 눈치를 보며 엘리자벳을 설득시키려고 하니까 그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좀 비겁해 보인다. 즉, 윤제프는 이런 건 당연한 건데, 왜 이해를 못해? 라는 쪽이고, 민제프는 당신 편을 들고 싶지만, 내 입장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지...라는 태도로 보인다는 거. 개인적으로는 윤제프 쪽이 목소리도 그렇고 더 취향이다.
- 이날의 애기 루돌프는 탕준상 어린이. 준상이는 모차르트!에서 내 최애 아마데였던 것도 있어서, 기대도 좀 있었는데, 어우, 이렇게 고운 목소리인 줄 몰랐다. 세상에, 엄마~ 하고 찾는 목소리부터 너무너무 천사인데다가, 그 잠옷!!! 서양 고전 영화에서 봤던 그런 천사돋는 잠옷을 입혀놓으니 또 얼마나 아기 천사 같은지. 그런데, '마음 먹으면 강해질 수 있어.' 부분에서 강세를 줘야하는데, 강세없이 그냥 죽 이어나가서 이 부분은 좀 아쉬웠다. 어디 아픈 것 처럼도 보이고.
아, 커튼콜에서 여간 잔망스럽지 않은 준상이. 이번에는 커튼콜에서 이정화 소피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 하더라. ㅋㅋㅋ
- 청년 루돌프 동석이는 '내가 어머니의 거울이면 좋겠어요.' 부를 때, 도와달라며 무릎 꿇는 장면에서 정말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려서 저 커다란 아이가 이 사이즈가 될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작아져서 참 안스러웠다. 캐릭터의 상황과 맞물려서 저렇게 자꾸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 그리고, 여기서 대응하는 두 엘리가 또 조금 다른데, 선영 엘리가 세상만사 다 귀찮고, 지친 기색으로 거절한다면, 옥엘리는 다시는 황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내보이며 거절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이어링 왈츠에서 동석이가 조금만 더 몸에서 힘을 빼주면 처절함이 더 극대화될 것 같은데, 음...무대 위에서 몸에 들어간 힘을 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감각이긴 하겠지.
- 마지막으로 은케니. 노래야 매 공연 기복없이 훌륭! (세번 밖에 못봤지만;) 연기에 대해 말해보면, 왼쪽 사이드에서 보니까 깨알같은 디테일이 정말 눈에 잘 들어오더라. 루케니가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자기가 메인이 아니라도 참 바쁜 캐릭터다. 때로는 시종이 되어 높으신 분들께 차 셔틀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뱃사공으로 변신해서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의 로맨틱한 데이트 분위기도 만들어 주고, 때로는 카페 마스터로 서빙을 하고, 기념품 판매도 하는 등 십잡스가 따로 없다.
재미있는 게 루케니의 메인 의상(가로 줄무늬 셔츠에 후줄근한 겉옷)일 땐, 해설자 루케니이고, 뭔가 의상을 갈아입고 나타나면 극 중에 스며들어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하고 있더라.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관객들 눈엔 루케니로 보이지만, 극중 인물들 눈엔 때에 따라 시종, 뱃사공, 카페 마스터, 지나가는 행인 등 그 자리에 있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마치 '가구'같은 존재랄까 뭐 그렇게 보여지는 것. 이건 루케니가 죽음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지배 받지 않는 캐릭터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재밌었던 디테일을 몇 개 기억해보자면, 바트 이슐에서 헬레네와 요제프가 선을 보는 자리. 한쪽 구석에서 옥엘리가 혼자 컵케이크를 먹다가 그냥 지나치려는 루케니를 발견하고 차를 달라고 손을 든다. 그럼 루케니가 차를 대접하고 옥엘리는 자기가 먹던 컵케이크를 루케니 주고 먹으라곸ㅋㅋㅋ. 그럼 루케니가 일단 받기는 받았지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고 있고, 그럼 옥엘리는 자꾸 먹어보라고 권하고 루케니가 마지못해 먹는 시늉 좀 하다, 옥엘리가 곁에 다가온 요제프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루케니가 뭐씹은 표정으로 컵케이크를 쟁반 위에 올려놓는다. 이 짧은 순간 시트콤의 한 장면이 지나가는 거다. ㅋㅋㅋ
그 외에도 카페 씬에서 타자를 치며 기사를 작성하는 테이블 뒤로 가서 뭐라고 썼는지 기웃거리다 기자(로 보이는 남 앙상블)가 그걸 못보게 가리니까 에이~ 라는 표정으로 쌩하니 돌아서는 것도 귀엽고. 정신병원 씬에서 요즘은 정신 병자가 아주 많다며 김문정 음감 앞에 가서 언제부터 젓가락들고 미친년 마냥 팔을 휘저었냐고 할 때, 김음감이 머리위로 하트만들어서 응대하니까 빵터져서 웃음 참는 것도 웃겼다.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조명이 꺼진 뒤에도 계속 캐릭터로서 연기하는 것. 요제프와 엘리자벳의 첫날밤, 퇴장하는 루케니와 소피 대공비가 왼편 어둠속에서 스쳐지나가는데, 소피를 향해 깍듯이 절을 하고 물러나는 은케니. 이런 은케니라 좋다.
+ 커튼콜에서 송토트는 레알 아이돌 댄스를 제대로 소화해서 추더라. 연습을 정말 많이 했는 모양이다. 그리고 환호속에 등장한 꽃같이 어여쁜 옥엘리는 시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는데, 뭐랄까,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걸 지켜보는 그런 기분이었다.
++ 집에 돌아와서 옥류은 조합을 뒤져봤더니, 3월 21일 마티네 공연이 유일하더라. 장난하냐?!!! 4차 오픈할 땐 옥류은 조합좀..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