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놀자 만사이의 야야코시야~풀베개~(にほんごであそぼ 萬斎のややこしや~草枕~@2008) 중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로만 알고있었는데, 좀더 알고보니, 이 분도 참 평탄치 않은 인생을 사신 분이다. (위키피디아 참조 - 미야자와 겐지, 이것보다는 ebs의 지식채널 쪽을 추천)
결핵으로 37세에 요절하고, 역시나 당대에는 평가받지 못하고, 후대에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비에도 지지 않고」는 작가 사후 수첩에 적혀있던 것이 발표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이 시는 병상에서 쓴 시라는데, 소박하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꿔온 시인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득 전에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선진국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아느냐고. 그때 예로 들어준 것은 Sesame street 였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음악가, 엔지니어, 무대 연출가, 각본가 등등 당대 최고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간다던가.
이 "일본어로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니코동에 가끔 '일본어로 놀자' 클립이 올라가면 "贅沢(사치)"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소리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일본어의 감각을 익히게 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어른이 함께 봐도 재미있다고 할까.
이번 편은 시 낭송이지만, 어떤 때는 교겐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만 보여준다던가 - 우리로 치면 판소리 명창이 어린이 프로에 나와서 흥보가의 박타령 한 소절, 어느 날은 춘향가의 사랑가 한 소절 불러주는 식이다 - 진짜 온 몸으로 유명한 시구를 표현하기도 한다. 고전은 어렵다...는 편견을 어렸을 때 깨버리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의상 담당하시는 분은 풍선을 참 좋아하시는 듯. ^^


雨ニモマケズ

宮澤賢治

雨ニモマケズ
風ニモマケズ
雪ニモ夏ノ暑サニモマケヌ
丈夫ナカラダヲモチ
慾ハナク
決シテ瞋ラズ
イツモシヅカニワラツテイル
一日ニ玄米四合ト
味噌ト少シノ野菜ヲタベ
アラユルコトヲ
ジブンヲカンジョウニ入レズニ
ヨクミキキシワカリ
ソシテワスレズ
野原ノ松ノ林ノ蔭ノ
小サナ萱ブキ小屋ニイテ
東ニ病気ノ子供アレバ
行ツテ看病シテヤリ
西ニ疲レタ母アレバ
行ツテソノ稲ノ束ヲ負ヒ
南ニ死ニソウナ人アレバ
行ツテコハガラナクテモイヽトイヒ
北ニケンクワヤソシヨウガアレバ
ツマラナイカラヤメロトイヒ
ヒデリノトキハナミダヲナガシ
サムサノナツハオロオロアルキ
ミンナニデクノボートヨバレ
ホメラレモセズ
クニモサレズ
サウイウモノニ
ワタシハナリタイ
비에도 지지않고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건강한 몸을 하고
욕심 없이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고
하루에 현미 네 되와
된장국과 약간의 채소를 먹고
어떤 경우에도
내 계산만 하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이해하고
그리고 잊지않고
들녘에 소나무 숲 그늘
작은 초가집에 살며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간병해 주고
서쪽에 고단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단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 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고
북쪽에 싸우거나 송사가 있으면
사소한 일이니 그만두라 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을 흘리고
냉해의 여름에는 걱정스레 지내고
모두에게 바보라고 불리고
칭찬 받지도 않고
걱정거리도 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출처 - http://interview.engekilife.com/102
연극 라이프 6월 10일 기사
나의 터닝 포인트 Vol.102 - 노무라 만사이
뛰어난 표현에는 시대나 국경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하나 습득해왔다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부터 교겐시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당근과 채찍을 받아가며, 조금씩 이 세계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울트라 괴수의 인형이 무대를 밟을 때마다 늘어나는 것에 광희난무하는 한편, 연습에서는 엄격하게 틀(型 - 교겐 연기의 기본은 양식, 형식이다)을 철저히 교육받는 셈입니다. 팔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면 주의를 받고, 조금이라도 높으면 꾸중듣고, 이거야말로 조교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몸에 형식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이네요.

중학교를 졸업해서 자아가 싹틀 때가 되니, 이대로 교겐시의 길로 나아가는 것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의미로 전기가 된 것은, 17세의 때에 「삼바소(三番叟)」를 피로했던 것(披く-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공연하는 것을 세상을 향해 연다, 선보인다는 의미로 히라쿠라고 한다.).

매우 고난도의 신체 능력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습득에는 엄격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만,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하나의 관문을 돌파한 것 같은 달성 감이 있었습니다. 교겐시로서, 표현할 수 있는 신체를  하나, 획득한 것 같은 감각. 아이템 장착, 이네요(웃음).

그리고, 이때의 무대의 사진을 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이, 나를 『란(乱)』에 기용해 주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무대에서만 표현해 온 것을, 영상의 세계에서 시도한 것이어서, 매우 신선한 체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표현의 장이 교겐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로 펼쳐져 가면서, 표현자로서의 자각이 싹 튼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관련해서 영국 유학을 결심

도쿄 글로브좌에서 『햄릿』으로 무대에 선 것이 24살 때, 이것이 나의 첫 현대극이었습니다. 버선도 짚신도 아닌, 구두를 신고 무대에 서는 것부터 첫 체험이었고, 목소리를 내는 법, 서는 법까지 교겐과는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연기했다고 하는 점에서, 매우 자극적이었습니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어렸을 때부터 읽어왔었고,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한 『란(乱)』도, 『리어왕』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보니,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깊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영국의 재팬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윈저의 즐거운 여인들(The Merry Wives of Windsor)』을 교겐으로 번안한 『허풍 사무라이(法螺侍)』에 출연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셰익스피어를 더 알고 싶고, 연출에 대한 흥미도 깊어져서, 영국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중심으로, 여러 사건이 링크된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귀국하고 나서도,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은 계속되었고, 『실수의 희극(The Comedy of Errors)』을 교겐으로 번안한 『실수의 교겐(まちがいの狂言)』 (2001년 처음 출연), 조너선·켄트 연출로 런던 공연도 했던 『햄릿』 (2003년), 그로부터 『리처드 3세』를 번안한 『나라 도둑(国盗人)』 (2007년),이라는 형태로 연결되어 갔습니다.

교겐과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완전히 다른 토지에서 자라 온 문화지만, 중세 시대에 태어난 고전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고전이라고 해서 해석이나 표현 방법이 고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시대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과 같이 현대성이 있다는 것이 굉장한 점이네요.

현대성이 없는 작품으로는 상연하는 의의가 없다

니나가와 (유키오(幸雄))씨와의 만남은, 2002년의 『오이디푸스왕』이 계기입니다만, 스케일이 큰 연출에 더해서, 아사미 레이(麻実れい) 씨나 요시다 코타로(吉田鋼太郎) 씨라는 개성적인 공연진에 대항하는데만도 죽을 힘을 다했습니다. 애초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하는 것이, 육식 인종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문화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정도로, 육체를 혹사시키는 것입니다. 2004년에 아테네의 고대 극장에서 『오이디푸스왕』을 재연했을 때에는, 몸이 파열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웃음).

그 후, 『우리 혼은 빛나는 물과 같이(わが魂は輝く水なり)』 (2008년)로 이어지고, 이번의 『파우스트의 비극(ファウストの悲劇 - Dr, Faustus)』에서 다시 니나가와 씨와 얼굴을 맞대는 셈입니다만,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에는,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현대성을 느낍니다. 인간이 신에게 반항하고, 향락에 빠져드는 모습은, 완전히 현대의 바로 그것. PC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지금 세상은 악마적인 유혹이 흘러넘치고 있지 않습니까(웃음).

이러한 현대성에야말로, 표현하는 의의를 느끼고, 그것은 고전이든 새로운 작품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뛰어난 표현이라고 하는 것은, 시대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는 힘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세계에 통용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 공통의 테마입니다.

노무라 만사이 상에게 Q & A

Q 만약, 교겐시가 되지 않았다면?
A 좀 상상이 안 갑니다. 교겐이 아닌 장소에서 활동한다고 해도, 배우라던가, 연출가라고 자기를 칭한 일 조차도 없으니까요.

Q 처음으로 감동받은 연극은?
A 사이먼·맥버니(Simon Montagu McBurney)의 작품은, 유학 중 본 것 중에 최고였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표현은, 국경이나 시대를 뛰어넘는다」네요.

Q 최근의 고민은?
A 최근이라고 할까, 지금 시대에 어째서 교겐을 하지않으면 안되는 걸까, 라는 것을 늘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민 많은 인생 (웃음)

앞으로 연극을 즐기려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연극의 매력은, 라이브 감. 딱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보거나, 느끼거나 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것을 강하게 요구받기도 하겠지만, 그 정도 노력할 가치가 꼭 있습니다.

앞으로 연극을 하려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능숙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유로서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능숙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기만 해서는 불충분. 기술이라는 것은 자연히 몸에 붙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습득하기 위한 노력은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으로 감성을 갈고 닦는 것. 『좋은 배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반드시 뭔가 하나, 뛰어난 면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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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이 상에게 있어서 교겐시로 살아가자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삼바소(三番叟)".
삼바소는 오키나(翁)라는 노·교겐 중 교겐시가 추는 의식의 춤으로, 제사적인 의미가 강하다. 초반에는 맨 얼굴로, 후반에는 검은 탈을 쓰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풍요를 기원하는 춤을 춘다. 우리나라의 굿과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맨 얼굴일 때는 인간 사제로서의 춤, 검은 노인 탈을 쓰고 추는 춤은 마치 강신 같다고 할까.
이 삼바소가 만사이 상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라는 건, 17세에 첫 공연으로 교겐시로 살아가겠다 결심하고, 이후 만사이라는 이름을 잇는 습명 피로 공연에서도 시작은 삼바소였고,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 취임 첫 공연도 삼바소였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아래 영상은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고 첫 공연으로 '삼바소'를 했을 때의 영상(狂言劇場 - その壱에 수록)에서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것이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실제 공연은 40 여분 정도.

 


  • 가장 최근 만사이 상의 모습.
    왼쪽은 지난 6월 5일 NHK BS2에서 방송된 The Star(프로그램명 : ザ☆スター) 에서의 모습. 오른쪽은 연극 "파우스트의 비극"에 같이 출연하는 오바야시 모토코(大林素子) 씨 블로그에 6월 10일 올라온 사진.
    생각해보니, The Star 스튜디오 녹화는 5월 17일이었다지; 오바야시 모토코 씨는 전직 배구 선수로 배구를 은퇴한 뒤 연기자로도 활동을 하는 모양인데, 파우스트의 비극에 캐스팅 된 것 같다. 키가 182cm라는데, 음....요즘 만사이 상이 연극 때문에 탱고 특훈 중이라고 하는데, 혹 이 분과 추는건가? 만사이 상 키가 이 분보다 10cm는 작은데 어떤 그림이 나오려는지 좀 궁금하네. ^^;


  • 직접 보지는 못하고 일본 팬 블로그 돌아다니면서 깨알같은 The Star 방송 후기를 봤다.
    • 초·중·고교 동창인 NHK 아나운서 시바타 유키코(柴田祐規子)씨가 나와서 '만사이'라는 이름을 받기 전인 '타케시'라고 불러대면서 학창시절의 만행(?) - 여학생 화장실 습격 사건 - 을 폭로했다던가. 그걸 또 화면 상단에 부인 치에코 씨의 얼굴을 같이 비춰줬다던가 - 치에코 씨는 학교 후배 - 만사이 상은 허둥대며 몸둘바를 몰라했다던가.

    • 드라마 아그리의 실제 주인공인 요시유키 아그리 씨의 장녀 요시유키 카즈코 씨가 출연해서, 어머니에게 있어서 진짜 에이스케 보다, 만사이 상이 연기한 에이스케 씨가 남편의 이미지로 남아버렸다....고 했다던가.

    • 음양사의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 영화 감독인 타키타 요지로 씨 모두 "3탄"에의 미련을 숨기지 않으셨다고. 그러나 팬들조차 "2"의 연장선상이라면 필요없음!! 이라는 냉정한 반응.

    • 만사이 상이 내는 목소리의 울림과 관련해서 소리를 보여주는 카메라로 분석을 해봤는데, 목소리가 전신에서 울려퍼지고 있다던가. 심지어 다리에서도 소리가 난다고. 만사이 상은 등을 반향판으로 해서 소리를 내는 이미지로 연습을 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목소리는 전방으로만 퍼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 뒤로도 울려퍼지고 있는 것을 화면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 이제 10살이 된 잘 자란 유키군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교겐시가 되고싶다.'고 인터뷰 한 것을 보고, '립서비스 겠지요.'라면서도 기뻐하는 만사이 상, 아버지 만사쿠 상의 '앞으로 30년, 40년 뒤에도 교겐이 남아있을까..'라는 말씀에는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이 되셨다던가.

    • 끝에는 하고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클론이 8명 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단다. 지금도 충분히 8명 분의 일을 해나가고 계신 것은 아닌지.

  • 날때부터 앞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 걸까.
    지금은 인간문화재이신 노무라 만사쿠 상도 적극적으로 교겐시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한 건 대학교 재학 중이셨다고 한다. 만사이 상은 저서라든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할 시기인 17세에 비로소 교겐시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 그에 비해 어린 나이에 아빠처럼 되고 싶다, 아빠를 뛰어넘는 교겐시가 되겠다고 적극적으로 연습에 임하는 유키군은 어쩌면 정말 본인이 선언한대로 만사이 상을 뛰어넘는 교겐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노무라 가의 교겐 삼대(狂言三代). 그리고 또 새로운 삼대.
DNA의 신비!! 유키군의 모습에서 만사이 상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이고, 만사쿠 상의 모습은 점점 만조 상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만사이 상이 더 나이가 들면 만사쿠 상을 닮아 있을까나. ^^

  • 8명분의 일을 하고 계신 만사이 상 => 연극정보 사이트・스테이지 웹에 6월 13일 올라온 기사
    노무라 만사이가 이야기하는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 2010년도 프로그램
    교겐시로서의 일, 연극 배우로서의 일, 때로는 방송 출연(자주는 아니지만), 거기에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의 예술감독으로서의 일. 집에서는 아버지, 아들, 남편 그리고 후진양성을 위한 스승도 되어주셔야 하는 참으로 다망하신 분이다.

    ■노무라 만사이에게 듣는 예술감독 프로그램 소개

    11월17일(수)− 28일(일)『현대노가쿠집(現代能楽集)V-「春独丸」「俊寛さん」「愛の鼓動」』
    12월17일(금)・ 18일(토)『노가쿠 현재형극장판@세타가야(能楽現在形 劇場版@世田谷)』
    12월23일(목・祝)− 26일(일)『실수의 교겐(まちがいの狂言)』을 상연하는 외에, 인기 시리즈『MANSAI◎解体新書』도 5월과 3월28일(월)2회 개최。

오이디푸스왕(2002, オイディプス王)

원작 : 소포클레스
연출 : 니나가와 유키오 (蜷川幸雄)
음악 : 토기 히데키 (東儀秀樹)
상연 : 2002년 6월 7일 ~ 30일 / 시부야 분카무라 시어터 코쿤
         DVD 수록은 6월 15일

출연
오이디푸스 : 노무라 만사이 (野村萬齋)
이오카스테 : 아사미 레이 (麻実れい)
크레온 : 요시다 코타로 (吉田鋼太郎)
테레시아스 : 칸노 나오유키 (菅野菜保之)
코린토스의 사자 : 카와베 큐조 (川辺久造)
양치기 : 야마야 하츠오 (山谷初男)
보고자 : 스고 타카유키 (菅生隆之)


서글픈 피아노 선율에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어슴프레 조명이 켜지면, 라마승과도 같은 붉은 복장의 코러스가 절규에 휩싸인 오체투지를 시작한다. 몸을 내던질 만큼의 고통과 탄식, 오체투지의 박력에 일순 테베의 비참한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비로소 무대에 시선이 가는데, 벽면은 녹슬고 균열이 간 거울, 무대엔 마치 솟대를 연상시키는 기둥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그 기둥엔 룽따(風馬,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티벳, 네팔 등지의 오색 기도천)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어 코러스와 함께 어딘지 티벳을 떠올리게 한다.
역병으로 황폐해진 테베의 슬픔을 쏟아내는 코러스의 절규에 드디어 정면의 문이 열리며 오이디푸스왕이 등장한다. 극적인 효과를 노린 핀 라이트에 하얀 의상이 콘트라스트되며, 어둡고 절망스러운 분위기가 일순 화사하게 피어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젊고 현명한 자랑스러운 왕. 첫 등장에서부터 어찌나 오만하고 위엄에 넘치는 왕님이시던지.

만사이 상, 36세에 연기하신 이 오이디푸스 왕은 초반 감정의 기복이 널뛰듯 한 불안정한 "청년왕"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테베에 내린 재앙의 원인이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 때문이라고 신탁이 내리자, 세상에 자기만큼 정당한 자는 없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살인자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그 살인자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겠다, 자신은 정의롭다고 과시하며,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청해 사건의 진실을 듣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은 순식간. 테레시아스가 전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오히려 이것이 크레온과 테레시아스의 정치적 음모가 아닌가 억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에게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테레시아스는 "지금은 올바로 보는 그 눈도 그 때가 되면 어둠밖에 비추지 않을 것이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나간다.

한편 왕위 찬탈을 노린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크레온과의 험악한 분위기는 이오카스테의 등장으로 수습이 된다. 남자들만 득실대는 무대위에 단 한송이 백합처럼 우아하고 늠름하고 위엄이 넘치는 왕비님이다. 과연 전 다카라즈카 설조의 남자역 탑스타였던 아사미 레이 상,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다. 단 한명의 여배우로서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고, 오히려 모두가 의지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강했다. 50년생인 아사미 상은 만사이 상과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차가 있지만, 두 사람이 같이 서있을 때는 어느 장면이든 그림이 되고, 하여간 이분도 나이를 잊으신 듯. 가끔은 부부라기보다 어머니와 아들처럼 보인 장면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건 의도된 연출이 아니었나 싶고.

퍼즐 조각이 하나씩 채워져 가며 진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의 긴장감은, 마치 차례차례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는 대전 게임과 같다. 조금 더 큰 조각을 가지고 있는 코린토스의 사자, 라이오스의 양치기가 차례차례 등장하며 마침내 모든 사건의 진실이 명확해진다. 마지막 패를 미리 알아버린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오이디푸스를 말리지만,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 얼마나 가여운 사람인가." 이오카스테는 절망하여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스스로 찔러버린다.

피갑칠하고 나타난 만사이 상의 오이디푸스에는 진짜 깜짝 놀랐다. 선혈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절규하는 앞에 코로스는 무대에 룽따를 펼치기 시작한다. 일순 무대는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산 정상과도 같이 보인다. 그리고 송곳처럼 박혀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저지른 죄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점점 작아져가는 왕. 그가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하리라는 예언을 벗어나고자 버둥거린 결과가 결국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라는 것만 증명한 꼴이 되었으나,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예언의 희생자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인정한다. 진리를 찾고자 열심이고, 결벽한 자존심을 가진 그가 나락에 떨어진 그제야 비로소 전에 없던 신성함을 두르기 시작한다.
사태 수습을 위해 돌아온 크레온은 오이디푸스를 동정하여 그의 두 딸을 데려다준다. 여기에서 보여준 두 딸 - 이면서 동생이기도 한 - 에 대한 절절한 애정은 살짝 만사이상의 아버지로서의 모습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끝까지 왕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스스로 추방당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을 뒤로 코러스의 '인간 죽기 직전까지 교만하지 말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연출부터 배우들의 연기,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 성찬을 맛본 것 같은 연극 한 편이었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서 객석을 무대로 끌어들인 연출과 적절하게 어우러진 음악, 특히 의상 담당하신 분은 찬양하고 싶어진다. 이 처절하게 슬픈 극을 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커튼콜마저 연극의 연속인 듯 아름답고 우아한 인사가 이어졌다. 특히 만사이 상이 인터뷰에서 '커튼콜에서는 아사미 상에게 이길 수 없다.'라고 했다는 아사미 레이 상의 인사하는 모습은 한 떨기 백합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품위가 있었다. 그리고 피갑칠을 싹 지우고, 하얀 의상으로 몸을 감싸고 등장한 만사이 상은 커튼콜에서조차 오이디푸스 왕을 연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숙였던 몸을 들어올리고 객석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라니.
새삼스럽지만, 하얀옷이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
 
개인적인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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