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Wicked)

일   시 : 13. 11. 22 ~ Open run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13. 11. 20 (수) 20:00
원   작 : 그레고리 맥과이어 作 위키드
연   출 : 리사 리구일로
캐스트 : 엘파바 - 옥주현, 글린다 - 정선아, 피에로 - 이지훈, 마법사 - 남경주, 마담 모리블 - 김영주, 네사로즈 - 이예은, 보크 - 김동현, 딜라몬드 교수 - 조정근 외
줄거리 :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셀러 ‘위키드’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다. 100년간 숨겨져 있던 오즈의 마녀들의 대한 이야기가 기막힌 반전으로 풀어진다.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이미 그곳에서 만나 우정을 키웠던 두 마녀가 주인공으로, 우리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초록마녀가 사실은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를 받는 착한 마녀이며, 인기 많고 아름다운 금발마녀는 사실 공주병에 내숭덩어리였다는 센세이셔녈한 상상력을 펼친다. 전혀 다른 두 마녀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그리고 두마녀가 어떻게 해서 각각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가 되었는가를 마법에 홀린듯한 매혹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정선아 글린다 만세~!!

공연 보러가기 전 참 감개무량했다. 그동안 업무 때문에 관극을 거의 못하고, 그나마 잡아놨던 연극도 일 때문에 날리고, 진짜 뮤지컬 마지막으로 본 게 애비뉴Q 였으니, 몇 달 만에 찾는 샤롯데인지. ㅠㅠ 그래서 부러 프레스콜 기사도 안 보고, 후기도 안 읽고 오랜만에 뮤지컬 나들이라고 좀 들떴다. 예상대로 샤롯데는 초록색으로 장식되어 블링블링~ MD도 꽤 다양해서, JCS나 애비뉴Q 때도 MD의 다양함과 고퀄에 놀랐는데 이게 설컴의 영업방식이라면 환영일세. 뭐 이건 공연 전까지의 감상이고.

공식적으로 공연기간이 11/22 시작이라고 되어있으나 비씨 스페셜데이라는 명목의 리허설프리뷰 공연을 19일부터 시작한 설컴의 패기. 하여간에 어느샌가 VIP 14만원으로 스리슬쩍 오른 티켓값도 신경쓰이고, 작년 내한 때 좋은 기억이 많아서 일찌감치 보려고 하기는 했었지만, 공연을 보고나서 느낀점은 싼 가격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만 새삼 실감했다. 내가 지금 완성된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런쓰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지. 심지어 오케 피트 안쪽에서 퍼커션 쪽 악기 준비하다 나는 소음까지 다 들리더라.

작년에 내한 때도 느낀 건데, 이쪽 음향 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향은 최대한 배우들의 생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인가봉가. 아직 셋팅이 최적화된 게 아니라고 생각은 되지만, 최적화 된다고 한들 내 취향의 음향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중블 3열에서 들었을 때, 무대에서 배우의 생목소리가 들려오고 내 머리 뒷쪽 스피커에서 생목소리와 비슷한 크기로 마이크를 통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느낌인데, 이게 느낌만이 아니라고 확신한 게, 2막에서 남경주 씨 대사 칠 때 한번 마이크가 늦게 들어와서 생목소리가 그대로 나오고 곧바로 마이크 켜지고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겹쳐서 들리더라. 하여튼 배우의 목소리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증폭하지 않고 필터도 거치지 않고 전달하는 게 목표라면 성공이네.....는 개뿔. 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어디까지 어떻게 내야하는지 감을 못잡고 중간 중간 소리가 작아졌다 갑자기 커지고, 출력이 불안정해서 듣는 입장에서 괴롭다고. 에코를 최대한 절제해서 건조한 소리를 내는 건 그쪽 취향인지 모르니 존중해준다고 쳐도 음량이 왔다갔다 하는 건 좀 고쳐줬으면 좋겠고, 적어도 디파잉에서만큼은 홀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음향을 들려줬으면 좋겠다. 어제는 배우가 너무 생목으로 지르는 걸 듣고 있자니 안됐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리고 처음 내한 공연 봤을 때 가장 감탄한 것 중 하나가 자연스러운 무대 전환이었는데, 이 부분은 무대 장치뿐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호흡, 무대 크루의 숙련도와 관련있는 부분이라, 이런 노하우를 국내 스텝들이 잘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만큼 전수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매끄럽게는 되지 않아서 이게 공연 초반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 손에 익으면 좀더 부드럽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아, 또 날아다니는 원숭이하시는 배우분들 충분히 연습하셨겠지만, 안전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시길. 오프닝 때 줄에 매달려 한바퀴 빙 돌고 내려오는 분은 무대 장치와 부딪칠 뻔해서 손으로 한 번 밀던데 조마조마하더라.

번역은 내한 때 자막으로 봤던 부분에서 좀 다듬는 수준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구석이 좀 아쉽기는 하다. Green이야 초등학생도 아는 단어라지만, Popular, Unlimited 같은 거는 좀.... 그렇다고 Popular를 인기인 쯤으로 번역했으면 그건 더 싫었을 거 같기는 한데. 이래서 번역은 이래저래 참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노래가 되면 가락 안에 가사를 끼워맞춰야 하니 더 어렵지. 그래서 그런가 어제 공연을 보면서 가사의 30%는 그냥 못알아듣고 넘긴 거 같다. 중요한 내용은 대충 아니까 어떤 가사 내용일지 상상은 가는데, 내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뭐 음향 탓도 있어서 오프닝 곡인 No one mourns the Wicked 에서 앙상블 떼창 반은 날린 듯;
앙상블 얘기 나온 김에. 일단 다들 너무 생목소리로 지르는데, 음....이게 음향탓인 건지, 앙상블 소리의 풍성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3열에 있으면 맨 앞(보조 무대) 으로 튀어나온 앙상블 목소리는 마이크 통한 목소리가 아니라 생목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춤 추는 장면은 아직 무대에 덜 익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화려함이 덜하고, 좀 굳어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One short day에서 리본 휘두르는 분, 의상에 걸려서 한동안 좀 당황하시던데, 맨 처음 혼자 등장해서 리본을 휘날려야 하는 역이라 그 실수가 참 너무 눈에 띄여서; 옷이 장식도 엄청나고 걸릴 구석이 많아서 앞으로도 고생 좀 하실 듯.

뭐 계속 투덜투덜대기는 했지만, 일단 위키드라는 작품 자체를 국내에서 라이센스로 공연한다는 자체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기에 기대만큼 걱정도 됐고 뭐 그런 거다. 

배우들 얘기를 해보자면 이날 가장 큰 만족도를 준 배우는 정선아 씨와 김영주 씨. 내한 공연 볼 때도 사실 나는 주인공이 엘파바인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진 히로인은 글린다..? 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수지 글린다가 오죽 귀엽고 잔망스러웠어야 말이지.) 라이센스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옥주현 씨의 엘파바는 크게 기대한 것도 없음에도 기대한 거에 비하면 좀 모자랐고(음향탓도 좀 있다고 치자), 정선아 씨의 글린다는 기대를 엄청 했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더라. 아이다를 보면서도 이거 뮤지컬 암네리스 아니야 했더랬는데, 이번에도 정선아 씨는 참 자기에게 꼭 맞는 배역을 만나서 아주 시종일관 물 만난 고기처럼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본인만의 개성이랄수도 있는 그 특유의 밉지않은 자신만만함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사랑스럽고 백치미가 흐르지만 그게 멍청하게 보이지 않고 귀엽게만 보인다면 이미 콩깍지가 쓰인 거겠지. 진짜 글린다 등장 씬마다 내내 엄마 미소가 떠나지를 않더라.

그런데 이게 이 연출(리사 리구일로)의 의도인가 싶기도 한게 내한 때도 같은 연출가였어서, 그때도 난 글린다에만 시선이 갔더랬거든. 젬마의 엘파바가 나빴던 게 아님에도 수지의 글린다가 워낙에 사랑스러워서 뭐 저런 귀여운 생물이 다 있냐며 러브빔을 보내고 있었으니. 하여튼, 원래라면 엘파바가 주인공이고 글린다가 조금은 얄밉게 그려져야 할 거 같은데, 난 오히려 엘파바와 피에로의 사랑 얘기엔 마음이 팍 식어버려서 자체 스킵할 지경이라.

하여간 원래도 노래 참 잘하는 배우고, 기복없이 잘 하는 배우라 믿고보는 편인데, 그럼에도 글린다의 음역은 꽤 높아서 어떻게 잘 소화하려나 했는데, 성악 발성도 안정적으로 잘 내주는 편이다. 고음에서 소리가 가늘어지는 건 좀 있지만, 음향이 개선되면 좀 나으려나. 어제의 베스트 씬은 누가 뭐래도 Popular 하고, For good. 실제로도 옥주현 씨와 친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연기로도 이 둘의 우정과 신뢰,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찡하고 가슴이 울리더라. 누가 케미여왕 아니랄까봐 엘파바와 케미스트리도 무지 화끈하심. 박혜나 엘파바일 때 또 어떨지 궁금하다. 저 두 장면과 별개로 나한테 와닿았던 장면은 2막 오프닝인 Thanks goodness 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어떻게든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미소짓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모리블 학장 역의 김영주 씨도 굉장히 좋았다. 공연 초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완벽하게 모리블 학장을 파악하고 계셔서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지경. 분장이 분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캐릭터와 일체화되셨더라.

주인공인 엘파바 역의 옥주현 씨는 아직 무대 위에서 몸이 덜 풀린 느낌이다. 상당히 경직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엘파파 특유의 뻣뻣함이 아니라 배우가 긴장을 풀지 못한 것 같달지. 게다가 창법이나 강약을 두는 부분이 젬마를 떠오르게 할 정도였는데, 연출가의 디렉션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드는데, 배우 본인은 좀 불완전연소? 욕구불만? 일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런가 파워풀하게 지르는 부분에서 너무 확 질러버린다는 느낌. 엘파바의 감정선은 잘 따라가고 있는데, 아직까진 초록 피부가 아니라 초록 분장으로 보이는 정도. 분장이 들러붙어서 피부처럼 느껴지게 그렇게 변해갔으면 좋겠다.

남자 배우들 얘기를 해보면 피에로 역의 이지훈 씨는 공연에서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떤 사전 정보가 없었던 터라 생각보다 무난무난. 마법사 역의 남경주 씨는 잘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유의 숨소리 좀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보크역의 김동현 씨는 진짜로 기대이하. 좀 더 개성을 살려줬으면 좋겠다. 보크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무색무취한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지.

뭐 아쉬움도 있고, 만족한 부분도 있고 오픈런 공연이라 아무리 바빠도 달에 한 번은 보러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드는 나의 위키드 라이센스 첫 공연이었다.

+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엘파바와 글린다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잖아? 그런데 글린다는 인격적인 성숙이랄지 이런게 눈에 보이는데, 엘파바는 남자 만나서 소녀에서 여인이 됐다는 성장인 거? 왜냐면 엘파바는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정치적으로 바른(다양성의 존중, 편견에 의한 핍박 반대 등등)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엘파바에 이입이 안됐던 걸까.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3. 07. 26 ~ 2013. 09. 07
장 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관극일 : 2013. 07. 27 (토) 14: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소현, 죽음 - 전동석,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김이삭, 어린 루돌프 - 강동유, 루도비카/마담볼프 - 한지연, 막스 공작 - 오성원, 헬레네 - 박선정, 에스터하지 - 홍금단, 라우셔 추기경 - 이지수, 그륀네 백작 - 윤승욱, 슈바르첸베르크 장군 - 정태준 외
줄거리 :
황후 엘리자벳을 암살한 혐의로 100년 동안 목이 매달려 재판을 받고 있는 루케니가 죽은자들을 깨우며 과거로 돌아간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엘리자벳은 소녀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엘리자벳에게 반해 그녀를 구해준 죽음의 사신 토드를 만나게 된다. 그 후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결혼한 엘리자벳은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로서의 삶에 고통스러워하고 토드는 엘리자벳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과 함께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가자고 그녀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엘리자벳은 남편과의 갈등, 아들 루돌프의 자살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토드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엘리자벳을 사랑한 토드는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칼을 건네게 되는데... [출처 > 플레이DB]

- 작년에 볼만큼 보고, 질리도록 회전문 돌았던 엘리자벳이 새로운 캐스트, 새로운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블루스퀘어라는 공연장은 시설면에서 썩 좋은 공연장이라는 생각은 안드는데, 접근성에 있어선 최고였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음향이나 시설은 좋지만, 접근성이 최악인 공연장이다.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 ㅠ.ㅠ 가뜩이나 러닝타임도 긴 공연, 평일 저녁공 보고 귀가길이 매우 걱정된다.

- 공연 얘기를 해보자면, 초연과 연출의 방향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쓰잘데기 없는 '사랑과 죽음의 론도'라는 오글거리는 넘버를 집어넣어서 죽음과 엘리자벳의 로맨스를 남녀간의 사랑으로 도장 쾅! 찍어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이게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의 의인화에서 죽음의 신, 마왕 쯤으로 인격을 부여해버렸다는 데서 원작 파괴가 아닐런지. 뭐, 이것도 다 원작자가 그렇게 하라며 친절하게 넣어준 곡이고 보면 할말이 없기는 하지만. -_-+

그리고 루케니 캐릭터에 변화가 생겼는데, 화자로써의 면에 좀더 무게가 실렸다. 뭐라고 해야할까 루케니라는 캐릭터와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꾼의 비중이 초연에서 50:50 이었다면, 재연에서는 40:60 정도로 기울었다는 느낌.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장면이 '결혼의 정거장'이다. 작년에 후기에도 썼지만, 이 인형극에서 루케니는 직접 황실의 인물들을 조종하는 넘치는 권능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난 여기서 죽음이 배후라는 설명 외에 또 다른 장치, 예를 들어 루케니 역시 죽음이 조종하는 또 다른 인형이었다는 설정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했는데, 재연에서 아예 루케니는 인형극 밖으로 빼고, 황실 인물을 조종하는 건 죽음의 천사가 맡아서, 죽음의 입김을 좀 더 강화했다.

아, 또 공연 러닝 타임을 줄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안내 방송에서 1막 1시간5분, 인터미션 15분, 2막 1시간20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실제 공연 시간은 뭐 1막 1시간10분여, 2막 커튼콜 포함 1시간 20분에 맞춰지더라. 작년에 2시간 45분 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5분 줄이는 거지만, 저 5분 줄이려고 음악 박자를 좀 더 빠르게하고, 대사를 더 빨리 말하고, 장면 전환도 빨리하고 등등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 그러나 1막에서 그 5분 줄이기는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고; 
보면서 장면 전환이 전반적으로 빨라진 것 같기도...하는 부분은 그게 자연스럽다기 보다 뭔가 부산스럽게 느껴지고, 게다가 정신없이 조명 사고나지(프리뷰가 아닙니다! -_-++), 마지막 장면에선 배우가 늦게 등장하는 일까지; 하여간 러닝 타임을 줄이려면 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해보인다.

- 소현 엘리는 내가 전작을 본 적이 없어서 영상으로 뜬 '나는 나만의 것' 밖에 본 게 없는 배우였는데, 일단 저~엉~말 예쁘다. 외줄 타다 떨어져서 죽음의 품에 폭 안겨서 나오는데, 진짜 인형같더라. 다만 여기 등장하는 죽음과 죽천들이 회전 무대에서 줄줄이 비엔나처럼 등장하는 건 굉장히 우스웠다. 하다못해 방향이라도 좀 정면을 향하던가. 회전 무대 기준으로 바깥쪽을 보고 줄줄이 돌아나오는데 진짜 코메디도 아니고. 초연 때처럼 죽음 혼자 무대쪽을 바라보고 등장하게 하는 게 훨씬 멋지다. 죽천을 꼭 등장시키고 싶으면 회전무대에 태우지 말고, 그냥 뒤에서 걸어나오게 하라고;

아, 하여튼 등장부터 소녀소녀 예쁨예쁨 소현 엘리는 죽음이고 요제프고 한 눈에 반하게 할 치명적인 아름다움의 소유자라는 게 너무 잘 이해가 되더라. 1막 마지막의 하얀 드레스는 물론이고, 2막의 헝가리 대관식 드레스까지도 아름답게 어울리고, 하다못해 잠옷 차림에 하늘색 숄을 두르고 있어도 인형처럼 예뻤다.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목소리의 변화도 좋았고, 노래도 성악 출신 답게 잘 부르고, 가끔 중저음에서 소리가 잘 안나오기도 했지만, 무난무난. 아, 나는 나만의 것에서 끝에 확 올려부르는 건 정말 짜릿하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기는 앙칼지게 분노하는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기혼 여성이고, 아이 엄마라는 점이 작용했는지 모르겠는데, 최후 통첩을 날리는 장면이나 말리디 씬에서 보여주는 분노의 표현이 굉장히 진정성이 느껴지더라. 게다가 소현 엘리가 좋은 건 그렇게 분노를 터트릴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여왕님이라는 거. 루돌프 추도식에서 보여주는 슬픔도 아, 역시 엄마는 다르구나...싶고.

- 작년에 루돌프에서 죽음으로 변신한 동석이. 이날이 첫공임을 감안(;)하고 보면, 생각보다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막판 뒤집기ㅋㅋㅋㅋㅋ
일단 동석이 노래야 워낙 잘하니까, 그 부분은 믿고 보는데, 노래에 강세를 넣는 부분이 류토트를 많이 떠올리게 하더라. 아직은 젊고, 그래서 미숙하고 거친데, 힘이 넘치는 죽음이었다.
마지막 춤에서 춤 안 추는 거 완전 환영하고, 그런데 그 휘리릭~ 하는 느끼하고 과장된 손동작을 동반한 왕자님 인사법 좀 다듬어주라. 시도때도 없이 피식 웃음이 새나옴. 특히 마이얼링 등장 씬에서 그 권총들고 이상한 각기 추는거 진짜 너무 웃겨서, 난 그 심각한 장면에서 안 웃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날 제일 좋았던 곡은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 이었는데, 루돌프일 때도 워낙 절창으로 잘 불러줬는데, 죽음 포지션에서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는 지배자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다만 같이 듀엣하는 이삭 돌프 목소리가 좀 묻히는 감이 있어서 이건 좀 아쉽지만, 그게 어디 동석이 탓이겠냐며. 그런 밸런스 맞추라고 음향팀이 존재하거늘.
베일 씬에서 등장이 늦은 건 아마도 의상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무대에 서는 건 배우니까 큰 공부한 셈치고.

아, 재밌었던 거. 애기 루돌프한테 다가가서 '소용없어~ 그만두렴~'하는데, 웬지 저 앞에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ㅋㅋㅋㅋㅋ 저 끈끈한 유대감은 뭐지 싶더라.

- 초연에 이어 재연에 참여한 은케니는 식상함을 탈피해보자는 거였는지 갑자기 레게 머리로 등장. 프레스콜 사진 떴을 때는 좀 뜨악했는데,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잘 어울리더라.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루케니에 대한 연출의 방향 자체가 초연과 달라진 부분이 있어서 해설자로서 무게가 좀 더 기울었는데, 프롤로그에서의 첫 대사인 '이런 젠장' 부터 확 다르더라. 작년에 신경질적으로 내뱉던 그 대사에 힘을 쫙 빼고, 지겨워, 또 시작이냐 싶은 나지막한 톤. 하기는 백년동안 매일 밤 똑같이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겠지. 

전반적으로 대사톤은 좀 더 차분해졌고, 노래도 묵직해졌는데, 몸놀림은 반대로 가벼워지고, 연기도 좀더 여유가 생겨서 제대로 능수능란. 밀크는 앙상블 박력이 좀 많이 아쉬웠는데, 은케니 목청은 더 좋아져서 아주 쩌렁쩌렁 질러주는데, 진짜 홀 전체를 목소리로 가득 채우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게다가 겟세마네로 단련되어 그런가 고음 샤우팅에 자신감이 붙어서 좍좍 질러주는 거 늠 좋더라. 
키치에서 관객 조련도 언제 저렇게 넉살이 늘었나 싶게 능글맞고, 무대에선 진짜 말 그대로 팔랑팔랑 날아다니는데, 볼프 살롱에서도 그렇고 저 깨방정에 잔망스런 팔랑거리는 생물은 뭔가요, 요정? 소악마인가? 싶을 정도였; (아니, 요정이라고 해도, 팅커벨, 엘프 이런 종류가 아니라, 한 여름밤의 꿈 같은데 나오는 나쁜 장난을 즐기는 그런 요정;)

캐릭터가 많이 어려진 것 같아서 후반부 루케니의 광기는 어떻게 표현하려나 했더니, 뭐 기우였는지, 침몰하는 배 씬에서부터 눈빛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하더라. 줄칼을 받아들고 심문을 받을 때도 대사톤은 프롤로그에서 처럼 한톤 다운된 평이한 어조. '그런데 나타나지 않던데.' 라며 줄칼로 면도하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섬뜩함은 여전하더라. 그러더니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도 별다른 광기를 뿜어내지 않으면서 굉장히 일상적인 일인냥 살인을 저지르고 아무렇지 않게 퇴장. 살인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사이코패스였다.

아, 은케니도 웃겼던거. 루돌프가 가명으로 쓴 기사를 읽는 장면에서 '황태자 루돌프...?' 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거, 낯설지가 않아요~ 뭐, 덕들만 속으로 웃을 수 있는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 그 외 초연 때부터 잘해줬던 민영기 요제프와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전히 잘 해내고 있는 이정화 소피(하지만, 그 경박한 발차기만은 좀 ㅠㅠ)가 든든하게 극을 받치고 있고, 김이삭 루돌프도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는데, 엘리자벳의 절반은 앙상블이 받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앙상블의 박력이 모자라는 점이 많이 아쉽다. 떼창에서의 하모니나 목소리의 합은 괜찮은 편인데, 첫음 얼버무리는 거는 계속 신경쓰이고, 개개인의 끼가 좀 부족하달지. '모두 반가워요.'나 정신병원 장면에서 너무 얌전하고 심심하다. 중소극장 주연급을 앙상블로 데려온 초연이 캐사기급이었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뭐, 이제 시작이니 공연 진행되면서 앙상블도 로딩이 될거라고 빌어본다.

엘리자벳이 돌아오기는 돌아왔구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일   시 : 2013. 04. 26 ~ 2013. 06. 09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3. 05. 17 (금) 14:00
음   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대본 : 팀 라이스
연   출 : 이지나, 음악감독 : 김은영, 음악 수퍼바이져 - 정재일
캐스트 : 지저스 - 박은태, 유다 - 한지상, 막달라 마리아 - 정선아, 빌라도 - 김태한, 헤롯 - 김동현, 가야바 - 조유신, 안나스 - 우지원, 사제 - 이병현, 베드로 - 심정완, 시몬 - 김태훈, 가짜 선지자 - 심새인 외

- 내가 공연을 보면서 JCS만큼 자리에 구애받지 않은 공연이 있을까 싶다. 아무리 기다려도 좋은 자리는 나오지 않고, 아는 동생이 샤롯데 2층도 상당히 괜찮다며 적극 추천해줘서 첫 2층 데뷔(;).
공연의 감동은 좋은 자리에서 오는 것도 크다고 생각해서 이제까지 맨눈으로 배우 얼굴 표정이 보이지 않는 자리는 가본 적이 없었건만, 여러모로 JCS가 내 경험치를 높여주고있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니 샤롯데 2층은 오글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도전해볼 가치가 있더라. 생각보다 무대와 멀지 않은 거리, 시야도 트여있고, 1층 앞열에서 음향에 뭉개지던 앙상블 가사가 2층 2열에선 오히려 더 잘들리기도 했으니. 물론 1층 앞열에 자리가 있을 땐 주저없이 그리로 가겠지만, 1층 뒷자리(14열 이후)로 갈 바엔 차라리 2층 앞열로 가는게 나은 선택일 것 같다.
하여튼 2층이라도 잡아서 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만큼 이날 공연도 상당히 좋았고 이 앞으로는 계속 더 좋아질 일만 남았구나 기대도 품게 한 공연이었다.

- 1층에서만 보다가 2층 올라오니까 확실히 무대의 휑함이 느껴진다. Overture에서 앙상블들이 튀어나와서 군무를 추는데 이렇게 비어보일 수가! 물론 배우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저 빈 무대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배우가 기댈 구석을 최소화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건 조명이다. 이 연출의 장기 중 하나인데, 여백의 미를 지나치게 추구한 무대에 조명을 최대한 활용해서 시공간을 나누고, 효과를 준다. 특히 JCS에서는 역광을 적절하게 잘 사용해서, 신비로운 느낌, 경건하고 거룩한 느낌을 잘 살렸다.

- 조명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지저스에게는 수직 조명이 자주 사용되는데, 하늘에서 비추는 후광 효과를 통해 성스러움을 강조한다. 다만, 지저스는 애시당초 신의 아들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는데, 굳이 조명을 통해 그 신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은 든다. JCS의 지저스는 신의 아들보다는 사람의 아들쪽이지 않았는가.
수직 조명의 나쁜 예 : 아무도 없다 @ Strange Thing, Mystifying
수직 조명의 좋은 예 : forever Amen! @ Simon Zealotes

가장 예쁘다고 생각한 조명은 역시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장면인데, 지저스를 찾아 달려가는 마리아의 발걸음을 따라 물결처럼 퍼지던 바닥 조명과 마리아의 환상과 현실이 교차되던 따스한 오렌지 빛 후광 조명과 청명한 푸른 밤하늘. 기도하는 지저스를 두고 돌아서는 마리아의 뒤로 총총히 빛나던 별밤하늘이다.

가장 섬뜩했던 조명은 채찍신이 끝나고 십자가에 못밖으라고 군중들이 난리칠 때, 마치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 보였던 붉은 사선 무늬로 물들은 바닥 조명이었는데, 그 사선의 운동성으로 인해 진짜 무대 전체에 핏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조명은 십자가 씬. 수퍼스타 마지막에서 십자가를 향해 서슬퍼렇게 내려꽂히는 그 조명이 아니라, John 19:41가 흘러나오면서 후방에서 십자가를 향해 핀조명이 떨어지는데 그 빛으로 인해 무대 바닥에 거대한 십자가 그림자가 진다. 조용히 흔들리는 그 십자가 그림자는 이상하게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고, 오히려 홀연한 느낌마저 주더라.

- 배우들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우선 한유다. 사실 JCS에서 유다는 정말 시작부터 쉽지 않다. 뭐, 어떤 배역은 쉽겠냐만은 유다 넘버 중 가장 어려운 곡을 시작하자마자 불러제껴야 한다는 거. 원래 오프닝이 가장 임팩트있는 법이라 어쩔 수 없는 거라지만, 이게 피겨로 치면 3-3 점프 같은 거라. 하여간 Heaven On Their Minds는 참 감탄할만큼 잘 불러줘서 좋았지만, 이후 고음 올릴 때 힘겨워하거나, 종종 피치가 떨어지는 등 성대의 피로도가 여실히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게 그럴 수 밖에 없는게, 트리플 캐스팅이 무색한 이 2주간의 스케줄을 보라.


더블 캐스팅된 지저스가 저렇게 꼬박꼬박 번갈아 무대에 서는 것과 달리, 유다는 트리플 캐스팅임에도 마치 한유다 원캐에 김유다 얼터인 것 같은 스케줄이다. 부디 죽음의 주간에 살아남기를. 난 내일도 모레도 보러오니까;;

- 정마리아와 장마리아, 둘 다 좋고 잘하지만, 역시 나는 장마리아 쪽에 좀더 기운다. 정마리아도 참 잘하는데, 장마리아의 음색도 음색이거니와, 좀 더 지저스에 집중하는 느낌이랄지.
What's The Buzz에서 군중들이 자꾸만 매달리고 언제 뜻을 이루실거냐고 귀찮게 굴 때, 더이상 걱정하지 말라며 마리아가 끼어드는데, 여기서 정마리아와 장마리아가 다른 게, 정마리아는 지저스의 뒤쪽으로 빙 돌아서 이동을 하고, 장마리아는 군중과 지저스의 사이를 가르며 이 둘을 분리시켜서 좀 더 독점욕을 내보인다. 
Everything's Alright에서도 유다의 비난 이후 두 마리아가 보이는 태도가 다르다. 정마리아는 자신을 천한 여자라 비하한 유다까지 위로하는!(그것도 지저스보다 먼저!) 성녀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장마리아는 시선은 유다를 향했어도 마음은 지저스에게 집중하는 모습이라, 겉으론 웃으면서 속으로 유다를 욕할 것 같은 마리아다. 
이후 2막에서 정마리아는 점점 더 성녀로서의 모습이 강해지면서 지저스의 체포 이후 와해된 사도들을 다시 하나로 묶고 일으켜 세우는 지도자의 모습마저 보인다. 장마리아는 그런 면에 사도들과 유대감 같은 게 옅고, 끝까지 지저스 하나만 바라보는 인상이 더 강하다. 

- 지현준 빌라도를 보고 난 다음이라 그런가 태한 빌라도는 뭘 해도 다 좋고, 동현 헤롯도 자기 색을 확실히 찾아서 좋았다. 제사장 삼인방도 내가 본 중에 이날 공연이 가장 좋았는데,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는지 커튼콜에서는 이제 환호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더라. 시몬은 여전히 별로였는데, 뒤에서 고음 서포트 하는 앙상블을 시몬 커버로 쓰는 게 어떨지. 베드로의 '난 몰라요~'가 근래 들은 것 중엔 개중 나아서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질러줬음 싶더라.

- 그리고 공연이 진행되면서 차곡차곡 감정이 쌓이고,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마치 파이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이날의 은저스는 지난 수요일과 또 다른 감정을 보여주었다.
2막의 시작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은저스의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하다.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었으나, 아~무것도 모른채 공명심에 차있는 제자들을 보며 부질없다 한탄하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잊혀짐을 서글퍼한다. 지레 찔린 유다의 변명을 듣기 싫다 물리치고,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제자들은 또 한 번 스승의 속을 긁어놓는다. 골치 아픈 일 때가 되면 알게되리~ 라니, 진짜 제자복도 없는 지저스. 그런 지저스를 또 한번 유다가 도발한다. 이 가여운 인간! 하지만 더 불쌍한 건 당신을 위해 희생양으로 선택된 나라고 주장하는 유다를 지저스는 진절머리난다는 듯 떨쳐낸다. 그냥 닥치고 네 일이나 하라고. 그 말에 절망한 유다는 그 발앞에 꿇어 엎드려 절규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거냐고. 지저스의 옷자락에 손도 못대고 자신을 외면하는 지저스를 애처롭게 바라보다 등돌려 떠나는 한유다. 그러나 그가 떠날 때 고집스럽게 외면한 지저스가 그 뒤에서 아련한 시선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걸 알았다면 그는 다시 돌아왔을까.
그리고는 유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무도 곁에 없구나~' 하는데, 그럼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다른 제자들은 뭐가 되나요; 

이어지는 겟세마네. 이제와서 레전이니 뭐니 하는 것도 유난스럽지만, 정말 너무 좋았다. ㅠㅠ 베드로, 요한, 야고보 부르는 목소리에서부터 흐느낌이 느껴지더니, 전에 없이 이날은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처연하게 시작된 노래는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한 순간 피눈물을 삼키 듯 울컥해서 나도 같이 울컥대고, 찢고 쳐서!!할 때의 처절함은 더 강렬해지고, 내 맘 변하기 전!에서 보여주는 단호함은 더 단단해졌다. 당신이 정해놓은 운명에 따르기는 따르겠으나, 하나 뿐인 당신 아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똑똑히 보시라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이날 가장 가슴에 남았던 유다의 죽음. 솔직히 유다의 죽음 장면에서 동어 반복만 계속되는 하다만 번역이 마음에 안들기도 하고, 한유다가 보여주는 찌질한(;) 유다의 죽음이 마음에 안들기도 해서 썩 좋아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정재일 음감의 귀신같은 편곡으로 재탄생한 '잘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 코러스 뒤로 울려퍼지는 비장한 음악때문에 좋아하게 된 장면인데.....
아놔, 이날 은저스가 장례 행렬을 향해서 한쪽 손을 뻗는게 아닌가. 안그래도 이 장면에서 은저스 표정 디테일을 좋아하는데, 거기에 더해서 저렇게 손을 들어 애도의 표시를 하니, 유다의 배신까지 자책하며, 그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가겠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ㅠㅠ
(그런데 환생해 돌아온 유다는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는 스승을 향해 '하늘나라 친구들은 어떠세요~' 이러고 있고. ㅠㅠ)

지난 수요일 공연부터 은저스는 '다, 이루었다'에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냥 눈 앞에 장면, 소리를 흘려보내다 이 대사를 들으면 갑작스레 오열이 터져나와서 주체할수가 없다.

+ 공연장을 나서는데, 어떤 꼬마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있지, 지저스가 죽을 때 웃으면서 죽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JESUS CHRIST SUPERSTAR)

일   시 : 2013. 04. 26 ~ 2013. 06. 09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2013. 05. 15 (수) 20:00
음   악 : 앤드류 로이드 웨버, 대본 : 팀 라이스
연   출 : 이지나, 음악감독 : 김은영, 음악 수퍼바이져 - 정재일
캐스트 : 지저스 - 박은태, 유다 - 한지상, 막달라 마리아 - 장은아, 빌라도 - 지현준, 헤롯 - 김동현, 가야바 - 조유신, 안나스 - 우지원, 사제 - 이병현, 베드로 - 심정완, 시몬 - 김태훈, 가짜 선지자 - 심새인 외

- 관극 다섯번 째만에 지현준 빌라도 자체 첫공. 태한 빌라도가 뜻밖의 수확이었기에 공연에서 처음 만나는 지현준 씨의 빌라도는 어떨지 궁금함을 안고 보기 시작했는데, 어........Overture에서부터 확 다른 빌라도. 저기 그건 치마가 아니라 토가인데요...라는 말이 절로나오는 격렬한 치마질에 일단 식겁했다. 그리고 이때 품었던 불안한 마음은 2막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지. 훗,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ㅠㅠ

- 명경지수에 조금씩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무심함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은저스의 얼굴에 표정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게 앞머리를 신경쓰면서 그런 건지. 전에는 앞머리가 내려오던 말던, 눈앞에 커튼을 치던말던 하던걸 좀 신경쓰는 게 보이더라. 특히 유다를 바라보는 시선의 싸늘함은 여전한데, 이게 간혹 미묘하게 흘깃 확인해보는 것 같은 시선이랄지.
이건 한유다의 집착이 상호작용을 일으켜서 더 그런 것도 있기는 한데, 이날따라 한유다의 시선이 진짜 집요하게 지저스만을 쫓아서; 어디서 뭘 하던 그 시선의 끝에는 늘 지저스가 있다. 그러니 그 집요한 시선을 은저스가 모를리가 있나. 알면서 외면하고 그런데 또 그 시선이 아직 자신에게 와 있는지 슬쩍 확인하고, 한유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을 때만 골라서 또 한유다를 바라보는 은저스는...이 무슨 밀당의 고수들도 아니고;

- Strange Thing, Mystifying에서 Everything's Alright 으로 이어지는 이 두 곡에서 한유다의 질투심이 참 제대로 폭발인데, 여기서 장마리아의 상심한 표정 연기도 좋고, 그런 마리아를 위로하는 은저스의 손은 또 왜 그리 고운지.
빈정대며 날린 화살은 마리아를 향한 것이었는데,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돌아오는 건 '너에게 실망했다.'는 스승의 싸늘한 반응이다. 그리고 누구도 내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탄하는 지저스를 위로한 것 역시 마리아의 몫이다보니, 지켜보는 한유다는 한 소리 들은 것도 있고, 마냥 지켜만 본다. 그러나 향유를 발라주며 지저스를 주물주물(;) 마사지하는 마리아를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또 딴지를 건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정마리아는 직접적인 터치가 별로 없는데, 장마리아는 좀더 진한 스킨십을 보여준다. 말하는 내용은 그 향유에 쓸 돈이면, 가난한 자들을 얼마든지 더 구할텐데, 왜 그리 낭비하냐는 비난인데, 이게 한유다의 몸짓, 시선이 겹쳐지면서, 어떻게 들어도 마리아의 향유 조공이 아니꼽고, 그걸 좋다고 받아주는 지저스가 야속하기만 하다는 심통으로밖에 안들린다. 호모로운 한유다여. ㅠ.ㅠ
그런데 문제는 은저스가 이런 한유다의 감정을 전혀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 자신을 둘러싼 군중들의 찬양을 들으며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다가도 유다와 시선이 마주치자 싸늘하게 굳어버리는 표정. 그러니 한유다는 더 안달이 날 수 밖에; (나 지금 JCS 감상 쓰는 거 맞음;)

- 제사장 삼인방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맞지않는 음역대를 좀 높이면서 가야바의 자신감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요망한(;) 안나스와 무색무취 사제 삼인방의 연기합이 잘 맞아떨어진다. 다만, 안나스는 위혐, 위염을 오가는 위험한 발음을 어떻게 좀 해줬음좋겠다. 이 셋의 조합이 나쁘지 않은데도 난 이 넘버에서 박수를 칠 수가 없는데, 내가 아무리 날라리라도 대놓고 예수를 죽이라는 넘버에 박수를 칠 마음은 안들어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수퍼스타에서도 박수가 안 나온다.

- 저 삼인방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면, 시몬은 아직도 목 상태가 정상이 아닌 듯 하고, 앙상블은 여전히 하모니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싶은 째지는 소리를 낸다. 이게 나름 오합지졸 사도들, 무조건 떼쓰고 보는 군중들, 2막에서 악을 쓰며 십자가에 못박으랄 때만 박력이 터지는 군중을 염두에 둔 캐스팅이었나 싶으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다들 생목소리로 질러대는지 ㅠ.ㅠ Hosanna에서 떼창 사이로 은저스 솔로 흘러나올 때, 마치 소음 가득한 공간에서 맑은 계곡 물소리 들리는 숲으로 들어갔을 때와 맞먹는 감동을 느낀다.

- 앞에서 명경지수에 잔물결이 일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게 Simon Zealotes에서부터 전엔 진짜 무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들을 쳐다보더니, 이날은 조금씩 표정이 달라진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운 표정, 걱정하는 표정,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 가야할 길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르키는 것을 보고 짓는 서글픈 표정으로 조금씩 감정의 변화를 내비치기 시작한다. 자신의 제자들마저 내 뜻을 몰라주는구나 깊은 고독과 허탈함 속에 나직이 부르는 Poor Jerusalem. 홀로 남겨졌을 때만 보이는 흔들리는 모습, 가려진 앞머리 사이로 볼을 타고 흘러 턱밑으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그렇게 티나지 않게 울지좀 말라고 ㅠ.ㅠ

- 지현준 빌라도의 Pilate's Dream도 나쁘지 않았다. 지저스와 교차되면서 마치 환상을 붙잡으려는 듯한 손짓이나, 마지막에 붉은 조명을 받을 때, 태한 빌라도는 서서 조명을 받는데, 현준 빌라도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조명을 받아 좀더 극적인 효과를 낸다. 솔직히 여기 조명은 너~무 노골적이라 오히려 촌스럽다는 느낌인데, 두 배우가 분위기를 잘 살렸다.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왜 2막에선 ㅠ.ㅠ

- 이어지는 Temple에서 은저스의 분노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반주가 멈춘 뒤로도 계속 뻗어나가는 나가~~~~샤우팅이 그가 느끼는 분노의 크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냥 분노만이 아닌 슬픔이 흘러넘치는 분노,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는데서 오는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병자들의 구원씬. 끝도없이 밀려드는 그들의 열망에 자신을 보호하듯 두손으로 몸을 감싸안는 은저스. 그러나 살려달라는 소리에 고개를 털고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하나를 내어주면 열을 바라는 저 바닥을 알 수 없는 욕망을 채워주려면 어디까지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까.

- JCS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겟세마네, 수퍼스타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대중적인 곡은 I Don't Know How To Love Him일 것이다. 군중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지저스를 쉬게하고, 지저스를 향한 마리아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 노래는 뒤에 유다의 죽음에서 다시 한번 reprise 되기도 한다.
지난번에도 쓴 것 같은데, 정마리아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장마리아의 음색이 내 취향에 직격이라. 그리고 여기에서 장은아 씨의 연기 디테일도 마음에 드는 게, 지저스를 향해 달려가기 전, 화장한 얼굴을 쓱쓱 지우고나서 달려간다. 비교하자면 정마리아는 소녀의 느낌인데, 장마리아는 여인이라는 느낌이다.

- 최후의 만찬에서 안그래도 미욱한 사도들이 마땅치 않았는데, 가사 실수까지 나와서 잠시 빠직. 그럼에도 은저스와 한유다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더라. 그것과 별개로 번역의 일관성 없음이 뼈아픈 장면이기도 하고.

- 겟세마네에서 중간 박수는 번갈아가며 나오는 건지. 지난 9일엔 없었고, 이날은 있었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겟세마네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진폭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은저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이미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 넘버를 시작한다. 그래서 겟세마네 전반에 깔리는 감정은 체념한 상태에서 순수한 의문, 부당한 처사에 대한 원망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착한 아들 속성이 어디 안가는 은저스는 저 원망이 길게 가지도 않는다. 겟세마네의 후반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잠시 서러워하다, 당신 손에 정해진 운명이지만, 이 길을 선택한 건 나의 의지이기도 하니, 내게 독잔을 내리려거든, 내가 결심한 바로 지금 내리시라고 하늘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 그 어느 때보다 더 짙은 미소로 유다를 맞이하는 은저스와 바들바들 떨면서 입맞춤을 건네는 한유다. 참 잔인하기도 하지.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미소를 그 순간에 보여주다니. 이 지저스는 진짜 어디까지 츤데레인지, Last supper에서도 한유다의 시선이 따라붙을 땐 끝내 외면하더니, 그가 등돌려 떠나갈 때야 비로소 아련하게 그 뒷모습을 쫓는다. 그리고 그 시선은 그대로 유다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자신만을 집요하게 쫓는 열에 들뜬 그 시선에는 한번도 응해준 적 없지만, 마지막 순간에서야 봉인했던 감정을 터트리듯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은저스. 참으로 안타까운 스승과 제자다. (그러니 어디선가 신이 잘못했네~ 하는 평이 나오지;)

- 내가 아끼는 태한 빌라도라도 영어로 숫자세는 채찍신은 민망했더랬는데, 지현준 빌라도의 채찍신은 민망한 정도가 아니라, 그 오버스러움에 뜨악했다. 지금 채찍 맞는 건 지저스고요, 그 지저스가 이 악물고 신음소리 한 번 안내고 견디고 있거든요? 그런데 왜 빌라도가 당장이라도 심장마비로 죽을 거 같은 거죠? ㅠ.ㅠ 그리고 왜 노래를 안하시고 짐승처럼 울부짖기만 하시는 건지. ㅠ.ㅠ 내가 태한 빌라도를 먼저 봐서 다행이다 싶었다.

- 십자가 장면은 이제 그냥 반쯤 넋을 놓고 보는데, 이날은 무방비하게 있다가 너무나 지친 목소리로 한숨처럼 '다 이루었다' 한마디에 격침.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이 흘러넘치고 갑작스럽게 오열이 치밀어 올라서 입 틀어막고 끅끅대느라 숨 막히는 줄 알았다. 이게 커튼콜까지 멈추지를 않아서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리고 은저스는 커튼콜에 등장할 때, 아직 지저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한 모습이어서 또 울컥했더랬다.

+ 이날 객석에 수녀님 몇 분이 보여서 과연 이분들이 어떻게 보셨을까 했는데, 공연 끝나고 나가는 길에 보니 함박 웃음이시더라. 한유다의 수퍼스타 앵콜이 이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많이 휘발 시키기는 하지요.

++ 스승의 날이기도 했던 이날, 설컴 트윗에 스승의 날의 의미를 새겨보라는 둥 하며 올린 사진. 저 사진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라는 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