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31(수)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재관람이 반복되면 단점은 안 보이고 장점만 보인다는게 사실입니까?
- 트루입니다. --;;

- 하여간 여러번 보다보면 저 정신없는 전개도 무슨 소린지 다 알아먹는데다가 구멍 숭숭 뚫린 부분은 혼자 망상으로 채워넣기도 하며, 원래 회전문의 묘미는 이런 거라며 자기 합리화. 

- 오늘은 행매 양희경님이 참으로 감수성이 넘치신 날이었다.
2막 앞 부분.
중간계에서 깨어난 김생과 혼령이 되어 나타난 홍랑이 서로 스쳐가고, 김생이 절절하게 홍랑을 부르짖다 행매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으면, 행매가 그녀는 혼령이 되어 저승을 떠돌고 있다고 대답하는 장면.
그런데, 이 부분에서 김생이 혼령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하면, 행매가 홍랑의 자결을 알려주고, 그럼 김생이 그럴리 없다며 부정하는 흐름으로 가야하는데, 행매 님이 대사를 잊어버리셨는지, 아니면 순간적으로 울컥하셨는지, 홍랑이 김생이 죽은 줄 알고 자결했다고 알려주는 부분을 건너뛰고, 자네와 그 아가씨의 이생에서의 인연은 그걸로 끝이었다고, 자네는, 산 사람은 어떻게든 힘을 내어 살아야 한다...고 가신 거다.
근데, 참 뭐랄까, 그 순간의 감정선이 행매가 아닌 양희경님의 감성이라는 느낌이라,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목소리도 흐느끼고 있어서, 이 불쌍한 연인을 어쩌나, 이 가여운 것들을 어쩌면 좋은가...뭐, 이런 느낌이더라.

하여간, 김생이 대사 칠 타이밍을 놓치고 행매가 저만큼 나가버린데다 본인도 당황하셨는지 중언부언 이어가셔서 이걸 어찌 하려나 했더니, 와우~ 박은태 언제 이렇게 노련한 연기자가 되었나. 저렇게 헝클어진 사이에 '지금 내게 홍랑이 죽었다는 소릴 하는 거요!'라며, 감정선을 흐트리지 않고 다시 원래 대사가 나올 수 있도록 되돌리더라.
그제서야 비로소 행매가 '자네가 죽은 줄 알고 자결을 했네.'라고 원래 대사로 돌아가, 김생은 드디어 '그럴리 없소. 날 더러 그렇게 살라고 하던 홍랑이 그럴리 없소!' 라고 흐름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첫 관람자는 이게 원래 극의 흐름인 줄 알 정도로 자연스럽게, 이 쓰릴한 난국을 헤쳐나간 노련함에 박수를 보내며, 난 오늘 이 부분을 본 것만으로도 그냥 다 좋았다.
그런데, 행매 뿐만 아니라, 오늘은 은생, 은랑, 홍생까지 다들 아주 감성들이 풍부해서 감정선 따라가는 재미가 또 쏠쏠했다.

- 푸른학 이후 광에서 홍랑과 김생의 대화.
김생이 홍랑과 이런 식으로 만난 것에 대해 되게 면구스러워 하는구나..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호감을 갖고 있던 여인 앞에서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자괴감도 느껴지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시오!" 버럭하는 모습이 늘 허허실실하던 그 김생이 아니라, 그래서 더 자포자기하듯 툭툭 내뱉는 것 같더라.

- 하여간 난 오늘도 만족스럽게 관람하고 돌아왔고, 내일 공연 양도표를 찾아 떠돌테지.

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30(화)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오늘은 사실 볼 생각 없다가, 지난 주 내내 저녁마다 보다가 월요일에 공연없는 게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어서 뒤늦게 표 구한다고 인팍을 들어갔다가 2층 1열 중앙에 딱 한 자리 있는 거 보고, 이것이 운명!! 이라며 처음으로 2층에서 봤다.
어차피 회전문 도는 거 무대 전체적인 모습도 보고싶었고, 또 피맛골 연가는 조명도 꽤 훌륭해서, 배우들의 세세한 표정연기는 포기하더라도, 한번쯤은 2층에서 보고 싶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세종은 1층 뒤로 가느니, 2층 1열이 더 낫더라. 게다가 딱 중앙이라 무대가 한눈에 펼쳐지는데, 1층에서 본 피맛골 세트가 커피면, 2층에서 본 피맛골 세트는 티오피더라. 정말 무대가 어쩜 그렇게 예쁜지. 그 초가집들 하며, 닥종이 인형처럼 정지한 채 서있던 앙상블들, 게다가 뒤로 해 뜨는 것 같은 조명 쓰는 거 진짜 멋지더라. 그 노을같은 배경을 뒤로하고 세트와 배우들 실루엣이 돌아나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곰방대를 한 손에 든 기생의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다. 피맛골 세트가 돌아나오며 펼쳐지는 정겨운 따스한 풍경과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는 오프닝 넘버 '피맛골'은 진짜 언제봐도 압권이다.

음향은 1층 뒤쪽 보단 훨씬 나았지만, 뭐랄까 너무 잘들려서 문제가 될 정도. 그러니까, 주로 기타 연주할 때 손가락이 현을 스칠 때 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첼로 떠는 소리도 벌레의 날갯짓할 때 나는 소리로 증폭되어 들리고. 그리고 무대 뒤쪽에서 세트 이동하는 소리조차도 너무 잘 들리더라. 오히려 1층에선 안 들리던 소리들인데, 덜덜덜 굴러가는 소리 같은 것도 잘들려서 문제;; 그 외에는 1층 뒤쪽보다 소리는 확실히 더 또렷하게 잘들리더라.

조명 얘기를 좀 더 하자면, 피맛골 세트를 비춰주는 따뜻한 호박색 조명도 좋고, 하여간 참 다양한 조명으로 무대의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가 등장할 때는 바닥에 벚꽃무늬 조명, 살구나무를 비추는 분홍 빛 고운 조명도 얼마나 예쁜지, 꽃 그림자마저 고운 분홍색이더라. 푸른학은 구름속에 우는데 씬에서는 파란 달빛 핀 조명을 김생에게 비춰주면서 노래에 담긴 우울함, 새파랗게 시린 한을 더 강조하고 있다. 홍랑방 세트가 돌아나올 때 살구꽃 가지가 꽂힌 화병을 비추는 핀조명도 예쁘고, 사랑이 내게로 왔네 할때는 팔각 창 격자무늬 조명을 쓰고, 토사구팽 rep. 할 때는 뭔가 늑대 이빨 연상되는 날카로운 그림자 조명에서 붉은 조명으로 마무리하며 홍생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좀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2막 서곡이 연주될 때 막을 비추는 조명이다. 2막 서곡은 '달 밝은 밤이었지' 연주곡인데, 이게 중간에 해금 소리가 나오면서 '알잖아 그런 밤~'부분 쯤에 조명이 따뜻한 호박색에서 새파란 조명으로 바뀌면서 막에 비친 '피맛골 연가' 글씨가 페이드 아웃되기 시작한는데, 나는 그 조명이 바뀌는 순간이 참 좋더라. 마치 해가 지고 달빛이 파랗게 비치는구나 싶으면서 그 분위기 전환이, 마치 내가 그 달빛을 쏘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참, 2층에서 보니 군무가 한 눈에 확 들어오면서, 앙상블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절감했다. 1층에서 보면 아무래도 평면적이라 동선 이동 같은 게 잘 안들어 오는데, 2층에서 보니 팔동작 각도 딱딱 들어맞는 거 흩어졌다 모이면서 줄 맞는 거 늠 잘 보여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 모던 스타일 파라다이스 하고나면 숨도 못쉰다던 어느 앙상블의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더라.

2막은 쥐떼들이 등장하면서 살구꽃에 단 조명이 번쩍번쩍, 이곳이 클럽 피맛골인가효~ 싶게 바뀌고ㅋㅋㅋ
그러다가 쥐떼가 저승길을 여는 '우리는 밤의 한조각' 부분은 조명이 동그란 원으로 정말로 대형을 지어 길을 만드는 쥐떼들과 어울려 귀여운 분위기를 내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봐도 놀이공원 퍼레이드 ㅠㅠ
참, 그렇게 어린이 뮤지컬 분위기에서 바로 '아침은 오지 않으리'로 이어지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하다니까. 관객들에게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씐나씐나~ 하다 애절해지라고 하면 읭? 스럽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여기서도 정말 배우의 승리지 ㅠㅠ 정은랑, 은생이 얼마나 애절하고도 절절하게 노래를 하는지. 특히 은생이 '타오르고 타올라~'하면서 감격에 겨워 목소리 떨리는 부분, 굉장히 울컥한다. 2층이라 눈높이에서 은생-은랑을 좀 잘 볼 수 있으려나 했더니, 1층에서도 안 보이는 표정이 2층에서 보일리가 없지. 그래도 눈높이에서 애절한 연기를 볼 수 있어 좋더라. 둘이 너무 애절해서 왜 이 둘은 같이 저승에 갈 수 없는건가 싶고. 그러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 같은 조명이 하이라이트에서 터져나오면서 절정을 이루고, 두 연인은 한 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영영 이별하고만다.

여기서 그대로 극이 끝나도 좋겠지만, 이 피맛골 연가의 또 다른 주인공은 행매님. 지난 주까지는 아침은 오지 않으리 이후에 행매의 대사가 있었는데, 이날 공연에선 대사가 싹 빠지고 바로 한천년으로 들어갔는데, 이거 말고도 2주차 들어서 첫 공연인 이날 소소하게 연출이 바뀐 부분이 있었다.
1막에 좀 뻘쭘했던 사물놀이패 씬이 좀 줄었다. 무대의 흥이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짧아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창고씬에서 푸른학 이후에 쥐 모형들과의 대화도 좀 더 간결하게 줄었고, 2막 '오시네 님이 오시네'에서 홍랑의 동선이 원래는 왼쪽→오른쪽이었는데, 홍생과 통일성을 주려했는지, 오른쪽→왼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침이 오지 않으리 이후에 행매가 '잘 가시게~'라며 대사를 하는데 그 부분 싹 빼고 바로 한천년으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하는 편이 수미쌍관의 묘를 보여줘서 더 나은 거 같다. 시작의 한 천년으로부터 마무리의 한 천년으로 이 모든 것이 행매의 회상이었다는 게 더 잘 드러나는 연출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행매가 살구나무 둥치에서 죽는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다는 설정으로 바뀐 것도 마음에 들었다.

2주차 들어서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배우분들 연기며, 노래며 갈 수록 깊어지고 있어서 회전문을 멈출 수가 없다.ㅠㅠ

+ 오늘 푸른학 시작할 때 한숨 쉬듯이 부르는데, 김생의 한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없더라.

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26(금)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병맛에 빠지는 건 출구를 입구 삼은 거라 빠져나올 길이 없다고 하더니만, 그래서 내가 피맛골 회전문을 도는가보다.
어제로 4번째. 오늘도 또 보러감. 나도 행매의 장난에 홀렸는갑다.ㅋㅋㅋ

어제는 첫 하루 2회 공연이라 그랬는지, 저녁 공연때 잊을만하면 사고가 터지더라.
마이크 사고, 오케 합 안맞는 거, 앙상블님 춤 추다 미끄러지는 건 뭐 일상사
얼치기 4인방 등장하는데, 마이크 안들어와서 대사 생목치고, 숨어라 사랑아에서 할머니 앙상블님 마이크 안 들어와서 첫 소절 날리고. 조명도 좀 늦게 들어오고 하여간 자잘하게 스텝들 합이 안 맞는 상황이 이어지더니, 정작 사고는 행매님이 치셨다.
행매님 2막 숨어라 사랑아에서 한 소절 더 부르셔서 뻐꾹이 커플 여 앙상블 당황하시고, 노래없이 오케스트라 반주만 흐르던 쓰릴한 순간, 그래도 순택 배우가 헝클어진 틈새에서 한 소절 건너뛰고 어케든 맞춰들어가더라. 식은땀 좀 흐르셨을듯.

이제 쥐떼는 자체 스킵도 가능할 지경이고;;
그래도 쥐떼 저승길 여는 넘버 지루하다고 좀 줄여줘ㅠㅠ 놀이동산 퍼레이드같은 구조물 타고 이리저리 이동하는 은생이 그 높이에서 고소공포증에 떠는 거 보는 것도 뭐 재미라면 재미지만, 안그래도 아동극 소리듣는 2막에서 그 씐나씐나하는 동요같은 노래에 딱 놀이동산 퍼레이드 뒤에 '아침은 오지 않으리'라니 이거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1막의 피맛골에 상응하는 2막을 여는 넘버로 모던 스타일 파라다이스를 보여주려고 한 건 욕심이 좀 과한 거 아니었냐 말이지. 진짜 그 아크로바틱한 안무를 보고 있으면 앙상블 잡는 안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그 현란한 안무 좀 줄이고, 1절만 하자.
2절까지 해줬으면 하는 넘버는 1절만 하더니, 1절만 하면 좋겠는 건 왜 2절, 3절 끄는지.
쥐떼들 랩도 좀 1절로 줄이고, 김생-홍랑 사랑에 빠지는 넘버나 좀 늘려주던가. ㅠㅠ

그래도 나날이 좋아지는 은생, 은랑 연기와 노래에 발려서 나는 또 세종을 갈테지.
푸른학은 정말 공연마다 감정선이 조금씩 다르네.
어느 날은 체념, 어느 날은 분노, 어느 날은... 은태 배우 슬픔을 눌러죽인 목소리 정말 좋다. 특히 푸른학 1절 끝에 '푸른 학은 구름 속에 우는데─'하고 끝에 꺼질듯 살짝 갈라진 소리를 내는데, 마른 낙옆이 바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목소리에 깃든 '한'이 그대로 가슴으로 전해져, 내 운명에 이어 푸른학도 은태 배우를 위한 노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정은 선녀님.
김생 칼맞고 나서 그 뒷부분 연기는 아오~ 어제는 슬픔에 더해 넋이 나가서, 살짝 광기까지 비치는데 섬뜩했다. 진짜 목숨 걸만큼 애절하다는 감정만큼은 진심으로 다가오는 연기였다. 그리고 목숨 내놓을 만큼 절망했다는 것도.
선녀 돋는 2막에서 나도 김생 따라 홍랑을 부르짖었네.. 쥐떼 말고 우리 고운 선녀님 좀 보자고ㅠㅠ

암튼, 피맛골 연가가 공연 기간이 별로 안 길어서 다행이고, 티겟값이 싼게 이 뮤지컬의 제일 큰 경쟁력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병맛에 낚였대도 이 가격 아니었음 회전문 돌았을까ㅋㅋㅋㅋ


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25(목)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3번 연속으로 보고나니까 뭐 이건 없던 정도 생길 지경이고. 게다가 내 곰손으로 잡은 것보다 좋은 자리가 막 양도표로 나오니 이건 잡아야해!! 싶어서 또 허여허여 세종으로 내 발길은 향하더라. 뭐 가길 잘했다 싶었지만.
3번째 쯤 되니까, 배우들이 이제서야 어깨에서 힘이 좀 풀리는 것 같더라. 로딩이야, 작년에도 했던 배우들인데, 진즉 로딩이야 끝났지. 다만, 어깨힘을 빼고, 여유를 좀 찾을 때까지 무대 적응 기간이 필요했을 뿐.

피맛골 회전무대가 돌아나오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참 압도된다는 느낌이고, 무엇보다 정말 넘버 좋고, 가사 예쁜 거 말로다 못한다.

정도 많고 사연많아 똑바로는 못가오~ / 구불구불 돌아가며 꿈꾸는 골목
좁아서 좋아라 피맛골 낮아서 좋아라 피맛골 / 구불구불 복작복작 좋아라~
                                                                                                                      - 피맛골 중


하여간 나도 저 구성진 가사와 적절한 해학을 품은 얼치기 넘버라던가, 숨어라 사랑아~ 무대를 보면서 흥이 올라서 보다보면 어느새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며 1막이 끝나버린다.
하여간 세종에 강림한 선녀, 정은랑을 보면 2막에서 은생이 저리 미쳐서 홍랑을 찾는게 절로 이해가 되는데, 당췌 홍랑은 김생의 뭘 보고 죽음마저 불사할 정도로 사랑에 빠졌을까 싶기는 하더란 말이지.

김생과 홍랑의 첫 만남은 김생의 일방적인 희롱(;)이나 다름없었고, 두번째로 얼굴을 마주친 건, 경사스런 유가행렬 도중 친 오빠와 분위기 험악한 대치 상황 중이었고, 세번째는 빈사의 상태로 광에 갖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모습이었다. 구해준다니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거 그냥 신경 끄라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기껏 부축해줬더니 되먹지 않은 수작이나 걸어서, 살려주려다 '진짜로 죽고싶어요?!' 소리나 하게 만들지 않나.

그러나 남녀가 정분이 나는데 필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스파크니까.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을 돕기위해 오지랖 넓게 일을 벌린 것도, 고작 살구나무라고는 해도, 그 가지가 베이는 것을 목숨걸고 막아선 용기도 홍랑에게 어필하는 요소였을까. 게다가 자기 재능을 살려 은근히 읊어주는 싯구는 또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김생을 치료해주면서 연민의 정이라던가, 모성애가 끓어올랐을 거고, 거기에 작업남 김생의 크리티컬 히트!
아마도 홍랑의 컴플렉스가 아니었을까 싶은 손등의 흉터를 '꽃잎같다'는데, 어떤 여자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렇게 찾아온 사랑에 홍랑은 환희에 차서, 김생은 언감생신 자기 처지에 누구를 넘볼까 마음을 다잡으려해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담아 '사랑이 내게로 왔네'를 부른다. 그런데, 참 이렇게 노래하나 부르고 사랑에 빠지고, 또 노래하나 부르고 죽고 못산다고 하냐고 하면서도, 이게 배우빨, 노래빨에 다 설득이 된단말이지.

김생이 칼맞고 끌려나가고 홍생이 분노에 차 '돌아와~'를 열창하고나면, 뒤에 남은 홍랑이 돌아와 rep.를 부르는데, 그 처절하고 애끓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절규는 그냥 그 장면만으로 너무 가슴이 아파서 같이 동조하게된다. 정말 깊이 사랑했구나, 그래서 그만큼 절망도 깊구나 같이 울컥해서 눈물이 또르르. 참내 내가 피맛골을 보면서 울다니;;

2막의 쥐떼는 여전히 극복이 좀 어렵지만, 은랑-은생의 저 절절한 아침은 오지 않으리를 보기위해 또 세종을 향할 것 같다.

+ 1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당신에게로' - '인연' 넘버에서 행매님 마이크가 들어오질 않아서 양희경씨가 1절을 그냥 생목으로 치셨다. 그럼에도 1층 객석에선 또렷하게 들리는 양희경 씨 목소리에 감탄감탄. 그리고 슬쩍 막 뒤로 돌아가 수리하시고 다시 태연하게 무대에 서셨다. 그 와중에도 몰입을 깨지 않으려 집중하시던 모습에도 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