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연가
일   시 : 2011. 08. 30(화) 20:00
장   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캐스팅 : 김생 - 박은태, 홍랑 - 조정은, 홍생 - 임현수, 행매 - 양희경

오늘은 사실 볼 생각 없다가, 지난 주 내내 저녁마다 보다가 월요일에 공연없는 게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어서 뒤늦게 표 구한다고 인팍을 들어갔다가 2층 1열 중앙에 딱 한 자리 있는 거 보고, 이것이 운명!! 이라며 처음으로 2층에서 봤다.
어차피 회전문 도는 거 무대 전체적인 모습도 보고싶었고, 또 피맛골 연가는 조명도 꽤 훌륭해서, 배우들의 세세한 표정연기는 포기하더라도, 한번쯤은 2층에서 보고 싶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세종은 1층 뒤로 가느니, 2층 1열이 더 낫더라. 게다가 딱 중앙이라 무대가 한눈에 펼쳐지는데, 1층에서 본 피맛골 세트가 커피면, 2층에서 본 피맛골 세트는 티오피더라. 정말 무대가 어쩜 그렇게 예쁜지. 그 초가집들 하며, 닥종이 인형처럼 정지한 채 서있던 앙상블들, 게다가 뒤로 해 뜨는 것 같은 조명 쓰는 거 진짜 멋지더라. 그 노을같은 배경을 뒤로하고 세트와 배우들 실루엣이 돌아나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곰방대를 한 손에 든 기생의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다. 피맛골 세트가 돌아나오며 펼쳐지는 정겨운 따스한 풍경과 앙상블의 힘을 보여주는 오프닝 넘버 '피맛골'은 진짜 언제봐도 압권이다.

음향은 1층 뒤쪽 보단 훨씬 나았지만, 뭐랄까 너무 잘들려서 문제가 될 정도. 그러니까, 주로 기타 연주할 때 손가락이 현을 스칠 때 나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울리는지. 첼로 떠는 소리도 벌레의 날갯짓할 때 나는 소리로 증폭되어 들리고. 그리고 무대 뒤쪽에서 세트 이동하는 소리조차도 너무 잘 들리더라. 오히려 1층에선 안 들리던 소리들인데, 덜덜덜 굴러가는 소리 같은 것도 잘들려서 문제;; 그 외에는 1층 뒤쪽보다 소리는 확실히 더 또렷하게 잘들리더라.

조명 얘기를 좀 더 하자면, 피맛골 세트를 비춰주는 따뜻한 호박색 조명도 좋고, 하여간 참 다양한 조명으로 무대의 분위기를 변화시킨다.
예를 들어 살구나무 정령인 행매가 등장할 때는 바닥에 벚꽃무늬 조명, 살구나무를 비추는 분홍 빛 고운 조명도 얼마나 예쁜지, 꽃 그림자마저 고운 분홍색이더라. 푸른학은 구름속에 우는데 씬에서는 파란 달빛 핀 조명을 김생에게 비춰주면서 노래에 담긴 우울함, 새파랗게 시린 한을 더 강조하고 있다. 홍랑방 세트가 돌아나올 때 살구꽃 가지가 꽂힌 화병을 비추는 핀조명도 예쁘고, 사랑이 내게로 왔네 할때는 팔각 창 격자무늬 조명을 쓰고, 토사구팽 rep. 할 때는 뭔가 늑대 이빨 연상되는 날카로운 그림자 조명에서 붉은 조명으로 마무리하며 홍생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부분은 좀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2막 서곡이 연주될 때 막을 비추는 조명이다. 2막 서곡은 '달 밝은 밤이었지' 연주곡인데, 이게 중간에 해금 소리가 나오면서 '알잖아 그런 밤~'부분 쯤에 조명이 따뜻한 호박색에서 새파란 조명으로 바뀌면서 막에 비친 '피맛골 연가' 글씨가 페이드 아웃되기 시작한는데, 나는 그 조명이 바뀌는 순간이 참 좋더라. 마치 해가 지고 달빛이 파랗게 비치는구나 싶으면서 그 분위기 전환이, 마치 내가 그 달빛을 쏘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참, 2층에서 보니 군무가 한 눈에 확 들어오면서, 앙상블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절감했다. 1층에서 보면 아무래도 평면적이라 동선 이동 같은 게 잘 안들어 오는데, 2층에서 보니 팔동작 각도 딱딱 들어맞는 거 흩어졌다 모이면서 줄 맞는 거 늠 잘 보여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 모던 스타일 파라다이스 하고나면 숨도 못쉰다던 어느 앙상블의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더라.

2막은 쥐떼들이 등장하면서 살구꽃에 단 조명이 번쩍번쩍, 이곳이 클럽 피맛골인가효~ 싶게 바뀌고ㅋㅋㅋ
그러다가 쥐떼가 저승길을 여는 '우리는 밤의 한조각' 부분은 조명이 동그란 원으로 정말로 대형을 지어 길을 만드는 쥐떼들과 어울려 귀여운 분위기를 내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봐도 놀이공원 퍼레이드 ㅠㅠ
참, 그렇게 어린이 뮤지컬 분위기에서 바로 '아침은 오지 않으리'로 이어지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하다니까. 관객들에게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씐나씐나~ 하다 애절해지라고 하면 읭? 스럽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여기서도 정말 배우의 승리지 ㅠㅠ 정은랑, 은생이 얼마나 애절하고도 절절하게 노래를 하는지. 특히 은생이 '타오르고 타올라~'하면서 감격에 겨워 목소리 떨리는 부분, 굉장히 울컥한다. 2층이라 눈높이에서 은생-은랑을 좀 잘 볼 수 있으려나 했더니, 1층에서도 안 보이는 표정이 2층에서 보일리가 없지. 그래도 눈높이에서 애절한 연기를 볼 수 있어 좋더라. 둘이 너무 애절해서 왜 이 둘은 같이 저승에 갈 수 없는건가 싶고. 그러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 같은 조명이 하이라이트에서 터져나오면서 절정을 이루고, 두 연인은 한 순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영영 이별하고만다.

여기서 그대로 극이 끝나도 좋겠지만, 이 피맛골 연가의 또 다른 주인공은 행매님. 지난 주까지는 아침은 오지 않으리 이후에 행매의 대사가 있었는데, 이날 공연에선 대사가 싹 빠지고 바로 한천년으로 들어갔는데, 이거 말고도 2주차 들어서 첫 공연인 이날 소소하게 연출이 바뀐 부분이 있었다.
1막에 좀 뻘쭘했던 사물놀이패 씬이 좀 줄었다. 무대의 흥이 객석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겉도는 것 같아 안타까웠는데, 짧아져서 다행이다. 그리고 창고씬에서 푸른학 이후에 쥐 모형들과의 대화도 좀 더 간결하게 줄었고, 2막 '오시네 님이 오시네'에서 홍랑의 동선이 원래는 왼쪽→오른쪽이었는데, 홍생과 통일성을 주려했는지, 오른쪽→왼쪽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침이 오지 않으리 이후에 행매가 '잘 가시게~'라며 대사를 하는데 그 부분 싹 빼고 바로 한천년으로 이어지는데, 이렇게 하는 편이 수미쌍관의 묘를 보여줘서 더 나은 거 같다. 시작의 한 천년으로부터 마무리의 한 천년으로 이 모든 것이 행매의 회상이었다는 게 더 잘 드러나는 연출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행매가 살구나무 둥치에서 죽는게 아니라 아예 사라진다는 설정으로 바뀐 것도 마음에 들었다.

2주차 들어서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는 배우분들 연기며, 노래며 갈 수록 깊어지고 있어서 회전문을 멈출 수가 없다.ㅠㅠ

+ 오늘 푸른학 시작할 때 한숨 쉬듯이 부르는데, 김생의 한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