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상'에 해당되는 글 125건

  1. 2011.10.04 의식의 흐름에 의한 잡설 2
  2. 2011.09.24 피맛골 연가에 등장한 한시
  3. 2011.05.20 백만년 만의 블로깅 4
  4. 2010.06.16 이대로 영화 찍을 기세 - 하야부사

가만 생각해봤다. 내가 덕질을 시작한 건 언제쯤이었나. 거슬러 올라가보니, 캔디캔디를 파던 시절부터, 소년중앙, 보물섬을 탐독하던 시기를 지나, 르네상스, 댕기, 윙크를 지나 이슈, 화이트까지 순정 만화를 꾸준히 파오다, 자연스레(?) BL이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지.

주윤발과 홍콩 느와르에 홀릭해서 주말마다 영화관으로 달리고 - 그래, 난 이때부터 영화 혼자보기 스킬을 마스터했더랬다 - 그러다 엑스재팬에 잠시잠깐 빠졌다가, 토니에게 홀려서 참 평생 첨으로 아이돌 팬질이란 걸 해봤지. 그렇게 토니는 always야~ 를 외치다 미키 상을 영접하여 성우 팬미팅에, 아자씨와 함께 여행이라는 황송한 이벤트 경험도 해보고, 오지 취향 어디가나 만사이 상을 만났다.

그리고는 한동안 잠잠한가 했는데, 올들어 난데없이 공연(? 배우?)에 홀릭. 하여간에 난 참 덕질을 쉬지않고 하는구나....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하는 Born to be 덕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이게 뮤지컬 모차르트!로 촉발된 공연에의 홀릭인지, 배우 박은태에의 홀릭인지 아직 좀 구분이 모호한 감이 있다. 그래서 내 덕질의 역사를 관찰한 지인들 눈엔 내가 박은태 파슨이라고 여겨질지라도, 나만 혼자 인정을 못하고 있는 상황;
이때껏 쏟아부은 액수를 봐도 배우 파슨 인정할 만 한데, 마음속에 한 자리 들여놓는게, 왜 이렇게 주저함이 생길까. 분명히 그 목소리에 홀리고, 연기에도 마음이 가고, 각종 인터뷰에서 보여준 모습도 호감이 가는데, 막 파슨이라고 하기에 걸리는 게 뭘까나.

생각해보니 내 팬질의 대상 중에 박은태가 제일 어리다, 81년생. (아, 90년생 연아는 숭배의 대상이니까, 팬질과는 좀 다르고;) 근데, 박은태보다 나이도 많은 토니는 토닌데, 박은태는 은태라고 안 불려서, 왜 그럴까 했더니, 처음 접한 나이가 문젠가 싶기도 하고. 토니야 십대 때부터 만나서 팬들도 같이 나이들고 그랬어서, 지금도 그냥 토닌데, 아무래도 30대에 처음 접한 박은태는 은태라고 하면 안될 것 같고. 액면가로 봐도 토니가 아직 한참 더 어려보이고; 말이 좀 이상한데, 너무 생생한 현실감 때문인가? 아니면, 깊이 들어갈수록 진창이 되는 덕질에 대한 방어본능 때문인지도.


뮤지컬 모차르트!가 나한테 끼친 영향이란, 공연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킨 것 외에, 공연은 주말에나 보는 거라는 편견을 깨준 작품이라는 것. 경기도민으로서 평일 공연은 애초에 무리라고 딱 선 긋고, 주말 공연으로만 스케쥴을 채우려다보니 놓치는 공연이 어찌나 아깝던지. 결국 평일에도 공연보기 시작하면서, 카드 한도액을 증액하는 결과가 ㅠㅛㅠ

그래도 피맛골 연가로 한창 달릴 때가 참 좋았지 싶은 요즘이다. 평일 스케쥴 텅 빈거 보면서 이렇게 허전할 수가; 오늘도 당장 퇴근하고 대학로 달려가 현매라도 끊어서 공연볼까 싶을 정도기는 하지만, 햄릿 티켓 끊어놓은 게 얼마인지 계산하고 나면, 표를 더 잡기도 그렇고`


내가 목소리에 약하다는 자각은 있는데, 이제는 내 취향을 나도 모르겠다. 예전엔 분명 벨벳 보이스 계열의 부드럽고 묵직한 바리톤 취향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는데, 그럼 미키 상 목소리는? 박은태 목소리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목소리도 무게감이라면 충분히 묵직하지만, 그 신경질적인 예민한 목소리가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지는 소리에 열광하는 거 보면, 내 취향을 다시 정의해야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내내 그렇게 신경 긁는 소리가 좋은 건 아니고, 특정 포인트에서 그런 소리 내주는 게 좋은 거니까, 아직 바리톤 취향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미키 상도 중후한 목소리로 연기하는 거 들음 또 좋아 죽지; 그래, 그래서 매력적인 걸거다. 다양한 소리를 통해 감정 표현을 하고, 그 중에 물기어린 목소리도 좋지만, 버석거리는 건조함이 가슴을 더 파고든다. 그래 이게 내 취향인갑다.

요즘 박은태의 야뇌에 꽂혀서 주구장창 돌려듣는데, 그 목소리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역시 경질의 유리처럼 단단한 목소리보다는 이렇게 바람 솔솔 잘 통하는 창호지 같은 목소리가 좋다. 노래 가사가 풍경처럼 펼쳐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밭, 검붉은 노을, 홀로 남은 남자의 절규가 다 느껴져서, 이게 내가 파슨이 되는 단계라 평이 후한건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로 노래하는데, 평소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나 다른 가요를 부를 때와도 창법이 달라서, 정말 노래 잘하는구나, 순수하게 감탄하게된다.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봤자, 잡설 늘어놓기라 마무리하기 참 뻘쭘하다. -_-;
내가 피맛골 연가에 낚인 이유 중에 하나는 시대극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참으로 예쁜 우리말 가사와,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싯구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극중에 김생이 뒷골목 대시인이라는 면모를 보여주는 시가 몇 구 등장하는데, 그 중에 몇은 창작인듯 하고, 몇은 한시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젠 한시까지 공부시킬 기세.

먼저, 김생이 홍생의 과거시험을 대신 봐줘서 장원급제까지 시켜줬다는 시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한가하니 살구나무 꽃 떨어지고
밤이 조용하니 봄산도 비엇으라
벗이여 술이나 한 잔 하잣으라
인정은 손바닥 같이 뒤집히렷다



이 시는 왕유의 '새 우는 물가(鳥鳴澗)'와 '벗과 함께 술을 마시며(酌酒與裵迪)'를 적당히(?) 섞어서 만들어진 시로 원작은 아래와 같다.

鳥鳴澗(조명간)  -  王維(왕유)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사람 한가하니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밤이 고요하니 봄 동산이 비었어라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달이 솟아오르니 산새 놀라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때때로 봄 시내에서 울어대노라

酌酒與裵迪(작주여배적)  -  王維(왕유)

酌酒與君君自寬(작주여군군자관) 친구여 술이나 드시게
人情翻覆似波瀾(인정번복사파란) 인정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白首相知猶按劍(백수상지유안검) 늙도록 사귄 벗도 칼을 겨누고
朱門先達笑彈冠(주문선달소탄관) 성공한 이도 후배의 앞길을 막나니
草色全經細雨濕(초색전경세우습) 비에 젖어 잡풀은 우거져도
花枝欲動春風寒(화지욕동춘풍한) 봄바람 차가와 꽃은 피지 못하거늘
世事浮雲何足問(세사부운하족문) 뜬구름 같은 세상 말을 해 무엇 하랴
不如高臥且加餐(부여고와차가찬) 누워서 배불리 지내는 게 제일이지


그리고 극중 창고에 갖혀 죽을 일만 기다리던 김생을 홍랑이 구해주고, 홍랑의 방에서 치료를 받으며 김생이 읊은 시가 있는데, 원작이 가진 정서와 좀 다르게 살짝 연시의 느낌을 살렸다.

살구꽃 밤비 머금어 붉게 피고
버들잎 푸르러 안개를 이었네
떨어진 꽃잎은 아직 쓸지 아니하고
소쩍새 우건만 손님 아직 잠 못드네


이 시도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의 '전원 생활의 즐거움(田園樂 七首)' 일곱수 중 여섯번째 시를 차용했는데, 절구를 살짝 다르게 해석해서 분위기가 좀 미묘하게 바뀌었다. 극중 홍랑의 이미지 컬러는 분홍색과 하늘색, 김생은 파란색으로 저 시를 들으면 살구꽃 홍랑과 버들잎 김생이 딱 떠오르는데, 원작은 아래와 같다.


田園樂七首(전원락칠수) 중 제6수 - 백거이(白居易)

桃紅復含宿雨(도홍부함숙우)  밤비 머금은 복사꽃 더욱 붉어지고
柳綠更帶春戀(유록갱대조연)  버들잎 푸른 위로 아침 안개 끼었네
花落家童未掃(화락가동미소)  꽃잎이 떨어져도 어린 하인은 쓸지 않고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우는데 산속 나그네 잠만 자고 있네


+ 그리고 백거이의 한시집을 뒤적여보다 찾은 '꽃이나 꽃이 아니네(花非花)'는 정황이 딱 '아침은 오지 않으리' 이후에 홀로 남은 김생이 읊었을 법한 싯구여서, 또 원작에서 느껴지는 것과 다른 해석이...;


화비화 (花非花) - 백거이(白居易)

花非花霧非霧(화비화무비무)  꽃이나 꽃이 아니고, 안개이되 안개 아니어라
夜半來天明去(야반래천명거)  밤 깊어 왔다가 날 밝아 떠나가더라
來如春夢幾多時(내여춘몽기다시)  봄 꿈처럼 왔던 것이 얼마나 되던가
去似朝雲無覓處(거사조운무멱처)  아침 구름처럼 떠나고는 찾을 곳이 없어라


원작은 뭐랄까, 깊은 밤에 찾아왔다 이른 새벽 꿈처럼 사라지는 님을 원망하는 듯한 시인데, 피맛골 연가의 정서를 끼얹으니, 단 하룻밤, 자시에서 해뜨기 전 그 단 한순간 만나서 영영 이별한 연인을 그리워하는 김생의 마음처럼 느껴져서
ㅠㅠ

  •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생활. 결국 균형 맞추기에 실패한 대가로 온라인의 생활을 묻어버렸다.

  • 많은 일이 있었다. 
    슬픈 일 - 연생이가 작년 11월 29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6살.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많이 미안했다.
    좋은 일 - 연생이를 보내고 적적함에 동이를 데려왔다. 같은 풍산개 암컷. 연생이 이후로 풍산개의 매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별 일 - 나도 국가4대 봉 중 하나. 재산세라는 걸 내게 되었다.


  • 연아가 참 좋다.
    승냥이라고 자각한 건 아마도 2007년 월드 쯤이었던가. 해마다 좋아하는 마음이 더더욱 커진다.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고, 내 블로그에서나마 외쳐본다. 

연아내꺼~♥


  • 아자씨도 여전히 좋아한다.
    오랜만에 들른 아자씨 집에 일기가 업데이트. 대지진에도 무사하셔서 참 다행이지만, 방사능 어쩔 ㅠ.ㅠ
    아자씨는 일본에 방영될 드라마 "추노"에서 대길 역을 맡으셨다고. 근데 난 언년이크리에 초반만 보고 포기했음;
    아마존은 아직 내 취향이 안 변했냐고 꼬박꼬박 메일 보내줌. 癒守石01 <- 유수석이라는 만지면 병 낫게 해주는 돌에 산다는 정령으로 미키 상, 카미야 히로시 상 2인 출연 CD인데, 시리즈로 나올 모양이다.
    아자씨의 아드님은 아자씨를 토~짜마로 부른다고 판명. 거품벌레는 베개에서 살지않아!!!

 

  • 오래가지 못하는 버닝
    평생가는 버닝도 있고, 일주일 가는 버닝도 있는 법이지.....라고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도 한 순간이라도 집중 할 수 있는 버닝꺼리가 있는 편이 인생이 즐겁지.

 

지구를 떠난지 7년만에 귀환한 하야부사 - 일본이 발사한 이토카와 소혹성 탐사선 -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라서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이런 것을 보게됐다.

하야부사의 모험일기 - http://www.isas.jaxa.jp/j/enterp/missions/hayabusa/fun/adv/index.shtml
이게 무려 JAXA에서 제작해서 올린 그림일기라는 점이, 참으로 덕국의 나라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일반인도 알기 쉽게 그림까지 곁들여 설명해놓았는데, 예를 들어 통신 두절같은 걸 기절했다...는 식으로 써놨다. 지나친 의인화가 아닌가 싶지만, 무엇이든 모에캐화 할 수 있는 덕국의 나라에서 이쯤이야....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어느새 눈물 그렁그렁 매달고 이런 사진을 보고 있었다.

대기권 진입 후 마찰열로 산화하는 하야부사의 마지막 모습


보이저 호,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 화성 탐사 쌍둥이 로봇 - 그리고 하야부사까지. 기계의 의인화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건 공돌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쓸 수 있는 엔진은 둘이 합쳐 한 사람개몫의 보조엔진 밖에 없고, 연료는 이미 바닥난 상황에서도 지구로 돌아와 처음 목적했던 소혹성의 부스러기를 담은 캡슐을 무사히 안착 시키고, 자신은 대기권에서 산화해 버렸다.
 
그리고 하야부사는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라고 해도 믿을 기세.avi

이 영상 보고 부크럽게도 눈물이 주륵주륵. 묘한 부분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말란말이지. 한 쪽 눈만 뜨인다든가, 소혹성 착륙 후 다리가 비틀려 있다던가, 대기권 진입 장면이라든가..훌쩍.

그런데 또 이런 걸 마지막 사진이라고 해서 보내주는 하야부사..너님 좀 짱인듯. ㅠ.ㅠ

상품화에 능한 일본이다보니, 캐릭터 상품이며 뭐며 벌써부터 들썩들썩 하는 것도 같지만, 뭐랄까, 몰락의 미학 이런 거에 열광하는 일본인들 취향과도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기계의 "있을 리 없는" 자기희생이라는 건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정곡이니까. - 터미네이터, 월E, OZ의 19 처럼.


NASA에서 DC-8 Airborne Laboratory (항공기 실험실?)를 띄워서 찍은 하야부사의 대기권 재돌입 영상.
확실히 현실은 언제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을 때가 있다. 마치 한 마리 불사조매가 되어 돌아온 듯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