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날에

일   시 : 2012. 04. 21 ~ 2012. 05. 20
장   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관극일 : 2012. 04. 24(화) 20:00
연   출 : 고선웅, 원작 : 정경진
캐스트 : 여산 - 김학산, 현재의 정혜 - 정재은, 과거의 정혜 - 조윤미, 오민호 - 이명행, 오진호 - 박윤희, 일정 - 이영석, 이상무 - 장성익, 윤기준 - 조영규, 오운화 - 최광희, 아이 외 - 홍의준
줄거리 :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민호는 사랑하던 연인 윤정혜가 임신한 사실도 모른 채 이별한다. 도청에서 시민군으로 저항하던 민호는 투항하여 살아남지만 동료들을 계엄사에 밀고했다는 죄책감으로 환각에 시달린다. 배 다른 형 진호와 정혜의 애틋한 배려를 뿌리치고 행려자가 되어 떠돌던 민호는 해남에서 일정스님을 만나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서 태어난 딸 운화가 성년이 되어 어느 덧 결혼을 하게 되고 민호와 정혜는 중년이 되어 스님과 보살의 관계로 식장에서 만난다. 비로소 용서하고 화해하는 두 사람. 민호는 마음의 짐을 털며 니르바나의 환희를 느낀다. [출처 > 플레이DB]

- 극장을 나서고 뜨뜻미지근한 밤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그런 일을 겪고서도 우리는 웃을 수 있고, 사랑을 하고, 계속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연극이라는 것만 알고 갔다. 일부러 사전에 시놉도 읽지 않고 갔다. 보고 나와서는 다시 한 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내용을 미리 알고 갔더라면, 그렇게 집중해서 보지도 못했을 거 같고, 그렇게 무방비하게 칼을 맞지도 않았을 테지.

참 영리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처참한 이야기도 아니라니까요? 사람 사는 건 언제 어느 시절이나 다 똑같아요. 그냥 그때 그런 끔찍한 일도 있었어요~ 라면서 쓴웃음 지으며 아무렇지 않게 심장을 손가락으로 콕 쑤신다. 

고선웅 연출은 차마 울릴 수 없어서 웃기기로 했는가 보다. 그리고 그의 이런 연출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극을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문어체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변사처럼 연기하는 배우들과 비장한 각오를 다지면서도 본능적인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외치는 구령이 Paul Anka의 'Diana'라는 기묘하게 명랑한 장면들 덕에 한발 물러서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이 극은 나를 끝내 관망자가 아닌 공범자로 몰아세우더라. 아마도 이 부채의식은 절대 사라지지 않겠지.

-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故 김남주 시인의 시들, 그리고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송창식의 '푸르른 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오월의 노래'를 비롯한 음악들이다.

詩라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배우들이 저마다 외치는 故 김남주 시인의 학살2는 전율이었다. 시인보다 전사, 투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인의 날카로운 칼날 같은 시구들이 가슴을 서걱서걱 베어 나가는 듯했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 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고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다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 故 김남주 시인 학살 2 中

시를 다 읊고 나서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에 맞춰서 군무를 추는데,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뜨악했더랬다. 한껏 고조되었던 감정이 폭삭 꺼져버리는 듯한 감각. 왜 저 노래를 선택했는지 이런 건 다 이해가 가지만, 이 앞에서 시 낭독만으로도 절정을 치고 올라갔던 감정이 그대로 식어버리더라.

- 배우들 얘기를 하자면, 오민호 역의 이명행 씨가 단연 인상에 남는다. 공연 내내 정말 고행하는 심정으로 연기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정혜. 이 사랑으로 뭉쳐진 것 같은 깊고도 순수한 애정이 한결같은 여인 정혜가 아니었다면 민호가 아무리 수행을 거듭한다 한들 그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역시 사랑이 세상을 구원한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4. 19 (목)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옥주현, 죽음 - 송창의,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태원, 청년 루돌프 - 김승대,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이날 공연의 감상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루케니가 극을 장악하게 되면 어떤 극이 되는지 그 끝을 본 느낌.
그것도 보통의 루케니가 아니라 완벽하게 광기에 휩싸여 미쳐버린 사이코패스 은케니였으니···. 간혹 케니자벳이냐는 소릴 듣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보여준 건 애교였다. 이날의 공연이야말로 작가 은케니의 각본에 연출 은케니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판타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를 섞은 게 아니라, 살인자 루케니의 구차한 변명 이야기 쇼로 보이더라. 
그런데 이게 은케니의 의도라기보다는 캐릭터 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다. 은케니는 평소에 하던 대로 자기 역에 충실하게, 지나치게 열심히(칭찬아님) 했다. 문제는 이날 송토트가 약해도 너무 약해서 극에 대한 지배력을 잃었다는 데 있다. 죽음이 저리 약해졌으니, 은케니가 힘을 좀 뺐다면 균형이 맞았을까? 천만의 말씀. 죽음이 상대해야 하는 건 정작 루케니가 아니라 엘리자벳인데, 이날 엘리자벳은 생명력이 넘쳐나는 억세고 강한 옥엘리였다. 뿐인가 영원한 엘리바라기 민제프와 소유권 대결에 루돌프를 쥐고 흔들어야 하는데, 그러니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애초에 약해지면 안 되는 캐릭터다.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죽음이 되더라도 본질은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시간의 지배자여야 한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이 뮤지컬 엘리자벳은 원탑 여주인공 엘리자벳과 죽음과 루케니의 삼각 구도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극이 산으로 가더라. 

- 김음감, 부음감 딱히 가리지는 않았지만, 부음감일 때는 박자가 조금 빠르고, 오케스트라 반주에 여유가 없이 타이트해서 평소에 음을 끄는 버릇이 있는 배우들은 다들 삐걱삐걱. 이 어긋남이 연기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대사를 날리거나(옥엘리), 가사를 틀리거나(민제프). 보는 내내 이봐요, 그래서 당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싶었던 공연이었고, 여기에 대답을 준 캐릭터는 은케니 뿐이었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을 뿐이고. ㅠ.ㅠ

- 내가 송토트의 가창력에는 큰 기대가 없어서 참 그동안 관대한 기준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날의 송토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들게 부른 넘버가 단 한 곡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관대한 기준을 더 깐깐하게 올린 것도 아닌데, 거기에 한 참 못 미쳐서 이게 다른 배우였다면 가루가 되도록 조목조목 까던지, 아니면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거다. 일단 목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었던 게, 노래를 대부분 가성으로 부르는데, 가성으로 부른다고 소리에 힘이 빠져서야. 연극에서 배우가 속삭인다고 객석에서 대사 안 들리는 거 봤나? 성악가나 연주자가 피아니시시모로 연주한다고 그 소절이 객석에서 안 들리는 거 본 적 있나? 그리고 고음 음역 안돼서 음 낮춰 부르면서 거기서 또 음이 플랫되는 건 또 뭔가. 하여간에 죽음 등장할 때마다 못마땅한 거 쌓여있는데, 이날 따라 연기도 뭔가 뚝뚝 끊어지는 듯해서 감정이 이어지지도 않더라.

'마지막 춤'에서 춤추는 동작 집어넣으면서 노래에 대한 집중을 잃은 건가 싶어서, 난 그 춤추는 거 차라리 뺐으면 좋겠고, '나는 나만의 것 rep.'에서 주인은 나야~ 하는데 옥엘리, 민제프 소리에 다 먹혀서 안 들려, '내가 춤추고 싶을 때'에서는 진짜 불쌍할 정도로 옥엘리에 밀리고,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에서 상대가 승돌프라 그 정도였지 동돌프 였으면 듀엣 아니고 솔로라고 착각했을 거다. 후반 사비 부분은 앙상블 소리밖에 안 들리더라.

- 그런데다 옥엘리가 다시 날뛰는 망아지로 돌아와서 이런 재앙이 ㅠ.ㅠ 그리고 한 번 어긋나면 계속 어긋난다고, 옥주현 씨의 음을 질질 끄는 나쁜 버릇이 전에도 없었던 건 아닌데, 이날 유독 심하게 거슬렸다. 그건 박자를 타이트하게 딱딱 끊어내는 부음감과 만나서 더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민제프도 거기에 해당해서 가뜩이나 후음 길게 빼서 박자 미는 버릇이 있는 둘이 만나니 둘이서 부르는 듀엣이 계속 오케랑 어긋나고 두 사람의 하모니도 어긋나서 듣기 괴로웠다. 특히 2막의 '행복은 너무 멀리에' 같은 경우는 옥엘리, 민제프, 오케스트라가 정말 다 각각 따로 놀아서 수습이 안 되는 지경이었는데, 민제프는 가사까지 틀리셨지.

- 그리고 이날의 원작 파괴범 은케니. 난 처음부터 엘리자벳이라는 극이 해설자 루케니의 시선을 통해서 보는 한 여인의 일생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루케니 친화적인 관객이었지만, 이날은 그 선을 벗어난 것으로 보였다.

애당초 원작자는 루케니에게 참으로 많은 권능을 부여했다. 이 뮤지컬에서 액자 틀로 형상화된 무대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건 루케니가 유일하다. 액자 밖으로 튀어나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권리,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라고 할 수 있는 권리. 극 안에서는 죽음이 절대적인 지배자이지만, 그 죽음조차도 루케니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관객에게 전달되는 존재가 아닌가. 판관이 그러잖는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듣기 싫다고. 저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죽음"을 실체화해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루케니다. 그러니 케니자벳이 된다 한들 이게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죽음이 엘리자벳을 사랑해서 그녀를 데려갔다는 사실 자체가 루케니가 꾸며낸 허구의 변명 거리로 전락하는 건 다른 문제다. 원래도 은케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몸이고 보면 새삼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데 그런 은케니의 태도가 최약체 송토트와 만나니까, 진짜로 저 "죽음"이 루케니의 상상의 산물처럼 보이더라는 거다.

게다가 근래 들어 웃음기가 싹 빠지고 그 자리를 광기와 사악함으로 채워 넣은 연기 때문에 이젠 아예 객석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을 작정을 했는지. 안 그래도 번뜩번뜩 빛나는 눈빛이 무서운데, 거기서 더 나아가서 이날은 약했나? 싶은 트립 상태까지 보여주더라. 난 이게 이날의 충격과 공포였는데, 죽음에게 줄칼을 받고 판관에게서 심문받는 장면에서 "그게 언제였습니까?"라고 하니까 날짜를 떠올리고 "아주 아름답고 화창한 날이었지."라고 대답할 때, 눈을 까뒤집으면서 고개를 뒤로 꺾으면서 경련을 일으키는데, 소름이 쫙 끼치더라. 흡사 레옹에서 게리 올드만이 약에 취해서 발작하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엘리자벳을 암살하고 나서 전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퇴장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지만, 이날은 찌르고 난 줄칼을 코에 가져가 피 냄새를 맡으며 퇴장해서, 헉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이날의 은케니는 무슨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저 악의로 똘똘 뭉친 검은 마물은 도대체 뭐지? 싶은 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이날 공연이 재미없었냐면, 나름의 재미는 있었다. 진정한 무대광풍 은케니를 봤고, 저 반듯하고 선량한 청년이 저런 심연의 어둠과 광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은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엘리자벳은 다시 보고 싶지 않다.

+ 이날의 은케니는 프린세스 츄츄의 드롯셀마이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