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일   시 : 14. 03. 08 ~ 14. 03. 23
장   소 : 명동예술극장
관극일 : 14. 03. 19(수) 19:30
원   작 : 맥베스(Macbeth) by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   출 : 이병훈
캐스트 : 맥베스 - 이해수, 레이디 맥베스 - 김소희, 뱅코우 - 이종무, 던컨 왕 - 곽은태, 맥더프 - 송영근, 마녀1 - 변유정, 마녀2 - 남기애, 마녀3 - 김수연, 부대장 - 장재호, 문지기 - 한동규 외
줄거리 :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와 뱅코우는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황야에서 세 마녀를 만난다. 세 마녀는‘맥베스가 코더의 영주 그리고 장차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것이며, 뱅코우 후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코더의 영주가 되자 장차 왕이 된다는 예언까지 믿게 된 맥베스는 레이디 맥베스와 함께 자신의 성을 방문한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는 자신의 예언을 알고 있는 뱅코우와 아들 역시 살해하려 하지만, 뱅코우만 죽고, 그의 아들은 도망친다. 이후 맥베스는 뱅코우의 망령에 시달리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레이디 맥베스 역시 불안과 죄책감으로 건강이 악화되는데…  [출처>플레이DB]

* 한 줄 요약 - 텍스트의 무대화

- 벽속의 요정 10주년 막공을 보던 날 명동예술극장 외벽에 걸린 맥베스 포스터를 보고 그제서야 부랴부랴 예매창을 켰더랬다. 들어가보니 이미 매진 사례. 하기는 박해수, 김소희 배우에다가 셰익스피어 원작의 맥베스인데 아무렴. ㅠ.ㅠ
그래도 항상 느끼는 거지만, 구하는 자에게 표는 구해지기 마련으로 어찌어찌 좋은 자리를 찾아서 보러갔다.
(잡소리가 길어지지만, 일에 치여서 관극 일정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보니, 한 번을 보더라도 내가 원하는 캐스트, 좋은 자리를 고집하게 된다. 간절할 수록 자리니 뭐니 안 가릴 거 같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인간의 욕심이란~)

- '고곤의 선물' 단 한 편으로 애정배우로 등극한 김소희 배우와 '됴화만발' 한 편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박해수 배우가 레이디 맥베스, 맥베스를 연기한다고 해서 굉장히 기대가 컸다. 작년에 노무라 만사이 상이 보여주신 맥베스의 잔영도 남아있었고. 결과적으로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난 왜 학습 능력이 없는 거냐;;
아, 미리 말해두지만 두 배우의 연기에 실망했다기 보다는 연출에 실망한 게 크다. 이해수 배우의 맥베스는 내 예상보다 평면적이었지만, 김소희 배우의 레이디 맥베스는 기대한 만큼을 충족시켜주셨다.

- 무대는 금속성인데, 지난 햄릿도 그렇고 요즘 무대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재료는 금속인가?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드러내는데 금속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누군가 금속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는 둥 하기는 했지만서도.

-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고스란히 무대에 재현시키면 이렇게 될까 싶은 연출이었다. 모든 연극이 다 연출가만의 독특한 재해석이나 작품 비틀기가 들어가야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연출가의 개성은 드러나줘야 하지 않을까.

가장 심심했던 부분은 세 마녀에 대한 연출가의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들은 정말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의 마녀인지, 맥베스 내면의 욕망의 소리인지, 그저 사람을 유혹하고 함정에 빠트리기 좋아하는 악마인지, 그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맥베스의 몰락을 보여주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긴장감이 결여된 전쟁 장면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맥베스가 자신은 끝내 멸망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버남의 숲이 움직이는 순간의 장면 연출은 이 극의 가장 최악의 장면이었다. 실소도 나오지 않는 방패와 영상 활용. 진짜 천 한장으로 스펙타클을 만들어낸 만사이 상이 천재라고는 생각하지만, 이건 아니지.

그리고 맥더프와 최후의 일전에 와서는 눈을 돌려버리고 싶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칼에 휘둘리는 두 배우의 칼싸움은 전~~~~~혀 박진감을 만들어내지도 비장함을 뿜어내지도 못했다. 겉으로 봐서는 박해수 배우도, 맥더프 역의 송영근 배우도 전장의 백전노장, 칼싸움의 명수 쯤으로 보이는데, 어린애들 합 맞춰 얍!얍! 하듯 칼날을 부딪히는 모양새라 맥빠지는 장면이 되버렸다.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몽유병을 앓는 레이디 맥베스의 독백, 회한에 찬 절규, 실은 그저 목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 것 뿐인지 모르지만, 간간히 쇳소리가 섞인 흐느낌, 높고 가느다란 울음 소리가 훨씬 더 극의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 마지막까지 희곡대로 결말은 지어졌고, 희곡에 있는 내용은 다 무대에 올렸다는 걸로 내 할 일은 다했다는 것 같은 극이었다.
프랑켄슈타인

일   시 : 2014. 03. 18 ~ 2014. 05. 11
장   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관극일 : 2014. 03. 13(목) 20:00
원   작 : 프랑켄슈타인 by 메리 셸리(Mary Shelley)
연   출 : 왕용범, 음악감독 : 이성준, 안무 - 서병구, 무대디자인 - 서숙진
캐스트 : 빅터 프랑켄슈타인/자크 - 이건명, 앙리 뒤프레/괴물 - 박은태, 줄리아/까트린느 - 리사, 엘렌/에바 - 서지영, 룽게/이고르 - 김대종, 슈테판/페르난도 - 이희정, 어린 빅터 - 최민영, 어린 줄리아 - 김희윤 외
줄거리 :
19세기 유럽, 나폴레옹 전쟁 당시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전쟁터에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신체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를 만나게 된다. 빅터의 확고한 신념에 감명받은 앙리는 그의 실험에 동참하지만 종전으로 연구실은 폐쇄된다. 제네바로 돌아온 빅터와 앙리는 연구실을 프랑켄슈타인 성으로 옮겨 생명 창조 실험을 계속해 나가는데,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고 피조물이 창조되지만 홀연 사라지고 만다. 3년 후, 줄리아와의 결혼을 앞둔 빅터 앞에 괴물이 되어버린 피조물이 나타나는데……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괴물

- 작년 여름 쯤에 충무아트홀 개관 10주년을 맞아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작 뮤지컬을 기획중이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리고 당시에 캐스팅 된 배우 이름은 유준상, 박은태만 올라있는 상태여서 과연 은태가 프랑켄슈타인을 할지, 크리쳐를 할지 궁금했더랬지. 그리고 잊고지냈더니만 전 캐스팅이 발표되었고, 프로필 사진들이 올라오고, 넘버들이 하나씩 공개되고, 제작발표회를 통해 기대감을 높였다........지만, 난 이 과정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일에 치여서 ㅠ.ㅠ 
공개된 곡도 제대로 들은 게 없고, 연습 영상이니 뭐니 하나도 챙겨보지도 못하고, 티켓 오픈일도 까맣게 잊어버려서 1차 티켓팅엔 참전도 못했다. (물론 개막 석달 전에 오픈한 기획사가 나쁘다!!) 그 와중에 프리뷰 티켓 오픈일도 놓쳐, 삼성카드데이, 베네데이 다 놓쳐 ㅠ.ㅠ (나 뭐한거니;) 그런데 운좋게 2열 자리를 주웠다. 그렇게 보러 간 프리뷰 공연 (사설이 길기도 길다;) 위에다 주절주절 써놨지만, 하여간 그래서 나는 작품 자체에 대해 프랑켄슈타인이 원작이라는 것 외에 사전지식 없이 공연을 보러갔다. 왕용범 연출의 작품을 접하는 것도 처음이고, 은태랑 김대종 씨를 제외하면 다른 배우들도 다 처음!이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예방선 치기다;

- 1막이 끝났을 때 좀 당황스러웠다. 세트가 허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출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넘버가 지루한 것도 아닌데, 전혀 몰입할 수 없는 이 이야기는 뭐지? 싶었다. 2막이 끝났을 땐 더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좋을 땐 정말 좋은데, 또 별로인 장면은 끝간데 없이 냉정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 널뛰는 듯한 퀄리티의 이 괴작은 뭘까. 결국 내 감상도 그렇게 널을 뛸 수 밖에.

- 일단 무대는 고딕풍으로 어둡고 음산하다.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홀로 사는 그 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하여간 고딕과 그로테스크 그 어딘가에 위치한 세트는 정말 작품과 잘 어울린다. 성문과 좌우의 나선형 계단과 중간의 다리를 통해 공간을 분리해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연출도 꽤 영리하다. 그런데 그걸 좀 자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서, 처음엔 오! 신선해! 했던 게 갈수록 또냐? 싶어지는 것도 좀 있었다.
내용도 암울하고 무대 세트도 어두운데, 조명이라고 밝을 리 없지만, 평화의 시대라던가 빅터의 결혼식 같은 장면은 좀 더 화사하게 해줬으면 어땠을까. 대비가 확실하게 되도록 말이다. 하긴 앙상블들 드레스가 그 모양이라 화려한 분위기는 물건너간거지만. (누가 자꾸 ㅎㅈㅇ에게 일을 주는가 ㅠ.ㅠ)

- 내가 왕용범 연출이 처음이라 그런데, 원래 이렇게 플래시백 스타일을 즐겨 쓰는 타입이신지. 효과적으로 쓰인 장면이 있는가 하면, 극의 흐름 자체를 끊어놓을 지경인 부분도 있어서 좀 정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읽다가 회상 장면이 너무 길어져서 본편의 흐름을 놓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 뒤적뒤적 앞장을 찾아 읽을 때가 있다. 소설이야 다시 읽으면서 아 이랬었지~ 하면 되지만, 공연에선 그런 흐름을 한 번 놓치면 다시 잡기 힘든 만큼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다. 너무 이야기가 나열식으로 전개되는데다가 그렇게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좋은 이야기는 장황하게 펼쳐놓고, 좀 더 설명이 필요한 장면은 넘버 속 가사 몇 줄로 지나가버린다.

그리고 장면 나열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 극은 장면 전환이 많아도 너무 많은데다가 연출도 그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긴 한데, 암전의 최소화에 신경 쓴 나머지 오히려 간격을 두어야 할 장면 마저 서둘러 치고 들어와 여운을 즐길 틈도 주지 않고, 그 공기를 산산히 부숴버린다. 앞에 장면이 조용하게 끝나면 다음은 박진감 넘치게 가자고 그렇게 시놉을 짰는지 모르겠는데, 이게 정말 심각할 정도로 감정 훼손. 나오려던 눈물 쏙 들어가게 만드는 생뚱맞은 전개라 나중엔 화가 날 지경이더라. 진짜 선택과 집중이 아쉽다.

- 선택과 집중 얘기 나온 김에. 넘버 얘길 안 할 수 없는데, 마지막 소절은 반드시 쭉 뽑아올려서 쩌렁쩌렁 질러야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양 모든 넘버가 다 오페라 아리아급으로 질러대는 걸로 마무리. 진짜 모든 넘버들이 다 하이라이트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욕심이야 낫겠지만, 그래도 그 욕심을 좀 버렸다면 훨씬 더 큰 걸 얻었을텐데. 그렇다고 넘버들이 영 허접하냐하면 오히려 좋은 노래도 많은데, 그게 계속되는 고음의 나열에 귀가 피로해지고 무뎌지면서 어떤 패턴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조곤조곤 하다 고조되고 리프라이즈되다 마지막엔 또 질러대는 식. 가끔 랩처럼 들리는 곡들은 가사를 너무 많이 구겨 넣으려다 실패한 게 아닌가 싶고, 굳이 저기서 저렇게 안 질러도 되는 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심드렁해지면서 배우들 성대 걱정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가 있나.

그리고 노래 안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있어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된다. 이건 상당히 문제가 있는데, 다다다다 구겨넣은 의미심장한 가사들을 관객이 제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감상할 여지를 주지 못한다. 모든 관객이 다 재관람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사가 곧 대사인 뮤지컬에서 가사 전달이 안 된다는 건 상당히 불만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처음에 빅터와 앙리가 서로 의견 대립하다가 앙리가 설득당하는 부분이 노래 한 곡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걸 한 번에 알아듣고 파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러니 앙리 금사빠 소릴 듣지;) 생명창조가 시작된다는 넘버에서도 중간에 거의 랩을 하듯 지나가는 부분이 있는데, 빅터의 중2함을 들키지 않으려는 제작진의 꼼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니까;

아,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향을 기대하고 갔는데, 좋았던 부분보다는 어딘가 올드하고 촌스러운 편곡에도 살짝 실망했다. 어째서 브라스 편곡이 죄다 열린음악회 아니면 전국노래자랑인걸까. OTL

- 음, 위에 실컷 불평불만을 쏟아냈지만, 그렇다고 이게 망작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게 배우들이 워낙 열연을 해주셔서. 배우빨이라는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아무래도 원작이 있다보니 스토리도 나름 탄탄하고 극의 구조도 평면적이라 그렇지 아주 얼토당토않은 괴작은 아닌데, 이게 점수로 치자면 70점 정도? 그런데 그걸 순간 순간 120점까지 끌어올리는 게 배우들이다. 마치 심장 뛰는 곡선처럼 밋밋하다 한번씩 피크를 치는, 그래서 평균은 80점인데 최대값은 120점을 줘도 좋은 느낌이다.

- 이건명 배우의 빅터는 오만하고 도도한 귀족 도련님이다. 아마도 뒤치닥거리는 룽게에게 다 맏기고, 자기가 어떤 사고를 치고 다녀도 누나는 나를 다 이해해줄 거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줄리아는 나를 사랑할 거라고 믿는 나르시스트 기질이 다분한 도련님. 그를 유별나다거나 좀 특이한 괴짜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서 그의 주위엔 항상 사람이 모였을 것 같고, 앙리는 그 반짝거림에 끌렸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잃으면서 그 때마다 내도록 절규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느라 계속 에너지를 소모해야하는 역이라 배우가 참 힘들어 보인다.

아니, 그게 빅터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고, 극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살면서 가장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연속적으로 겪게되니까, 이건 무슨 잔혹동화도 이렇게 까지는 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상급이 최상급인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인데, 최악에 최악을 겹쳐서 경험하게 하다니;; 그리고 그 최악의 일이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차례로 벌어진다는 게 충격과 공포다. 아니, 애초에 이 뮤지컬엔 쓸데없는(?) 죽음이 너무 많다. 죽음에 무감각해질 정도로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죽고 죽고 계속 죽는다. 왕용범 연출 전작이 잭더리퍼라서 그런건지.

자크는 스테레오 타입의 찌질한 악역이라 특별히 의미 부여할 게 별로 없;;
이건명 배우는 프랑켄슈타인으로 처음 만나는데, 연기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으나 음정에 예민한 귀가 자꾸 이게 아니라고;;

- 은앙리, 은괴물에 대해선 내가 사실 이성을 붙들고 후기를 쓸 자신이 없어서...;; 일단 은태가 그동안 이렇게 오래 작품을 쉰적이 없었고, 나도 공연을 참 오랜만에 보는데, 난 진짜 첫 대사 '조금만 참아요, 살 수 있어요!' 만 듣고도 너~무 반가웠어서;; 그런데다가 앙리 설정이 좀 미소년 뭐 이런 캐릭터라서 그랬는지 목소리가 유난히 미성미성. 목소리만 들으면 진짜 영락없는 미소년ㅋㅋㅋ 그런데 또 이 올곧은 청년은 군의관에도 조력자에도 너무너무 성실하게 자기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각잡힌 청년이라서, 참 배우 본인의 아우라라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했다. 이게 2막의 괴물에 가서는 특유의 홀리함까지 덧입혀져서, 어쩌면 이렇게 내 취향 적격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는지. ㅠ.ㅠ

오래 쉬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그동안에도 꾸준히 레슨 받은 보람인지 저음이고 고음이고 뭐 너무나 안정적인데다가 울림이 풍성한 그 목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목소리에 취해 이미 반이상 마음을 빼앗겼는데, 2막의 괴물에 가서는 놀라움의 연속. 난 이제껏 박은태라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저렇게 미칠듯한 감정을 쏟아내는 걸 본 적이 없다. 뭐라고 해야할까 은저스 때도 그의 감정은 내부로 꾹꿀 눌러 담아서 절제하고 절제해도 어쩔 수 없이 흘러넘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 이번에도 다른 장면에서는 그런 절제된 감정이 느껴지는데, '난 괴물'이라는 넘버에 가서는 진짜 전부를 내던져버리더라. 온 마음과 정신과 감정, 오장육부를 송두리째 뒤집어 무대 위에 쏟아내는 느낌이라 그 순간 급격히 감정의 밀도가 높아진다. 내가 저 위에 썼지만, 사실 썩 만족스럽지 않아서 계속 관찰자 모드로 심드렁하니 극을 구경(감상이 아닌)하고 있더랬었는데, 진짜 이 한 장면에서 보여준 순도 높은 감정의 폭발에 휩쓸려서 냉정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그 여운에 잠겨들려는 찰나에 쿵쾅쿵쾅 앙상블 떼창에 다음 장면이 곧장 치고들어와서 내 감정을 산산히 흩어놓았지. -_-++

사실 '난 괴물' 넘버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나에게 이 날 가장 가슴 저린 대사는 '바람이 분다.' 였다. 이건 봐야지 알 수 있는데, 너무나도 물기 가득한, 그러면서도 서늘한 목소리로 빅터에게 '하늘을 봐. 바람이 분다.' 하는데, 난 이 뒤에 '살아야겠다.'가 나온대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내려앉더라. 뭐, 그 대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은괴물을 보면서 은태가 캐릭터 해석을 진짜 철저하게 나노 단위로 해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오는 한 편, 그래서 앙리는? 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뭐 그게 배우 탓이기만 하겠냐며.

- 두 주인공 얘기에 진이 빠진 관계로 나머지 배우들은 간단히.

리사 씨가 맡은 캐릭터인 줄리아는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든 꽃 병풍이었고 (배우 역량이나 비중의 문제가 아니라 스토리 상 끼어들 여지가 없다), 까뜨린느는 그렇게까지 몰아넣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그러니까 이 세상에 불행한 일이란 불행한 일은 모두 이 여자에게 벌어져야 했었냐고. 누군가는 이런 인간 군상들이 잔뜩 나오는 극이라 보고나면 기가 빨린다고 하던데, 난 그냥 지치더라. 발성이 뚝뚝 끊어치는 듯해서 좀 거슬리는 부분을 제외하면 넘버 소화도 잘하고, 연기도 무난무난한데, 꽃 병풍 답게 비명이라도 좀 시원하게 질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지르다 만 바람 빠진 비명 말고, 공포 영화에 잘 나오는 그런 비명 좀...

서지영 배우도 이번에 처음 만나는데, 그동안 내가 엠뮤지컬 작품을 안봐서 이 분을 이제야 접하는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실력도 좋으시고, 연기도 짱짱하신데, 엘렌과 에바 모두 훌륭하셨다. 특히 '남자의 세계'에서 무슨 밤의 여왕 소환하는 고음역을 잘도 지르시던데, 내가 다 긴장이 되서. 비중면에서 보면 여주인공은 줄리아가 아니라 엘렌인 것 같던데, 빅터가 가장 슬퍼한 것도 엘렌의 죽음이었고.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는 누님과 남자를 채찍으로 부리는 누님 모두 매력적이었다. 자크는 어쩌다 이렇게 멋진 누님의 눈에 들었을까나.

룽게와 이고르 역의 김대종 씨는 이 어둡기만한 극에 한줄기 웃음을 안겨다 주는 감초 캐릭터를 잘 살려주셨다. 그 와중에 이고르의 비중이 너무 미미해서 도대체 왜 이 역을 시켰는지 모르겠다는 게 아쉬움. 슈테판 시장과 페르난도 역의 이희정 배우도 처음인데, 음...뭘 논하기엔 내가 제대로 본 게 없어서.

그리고 노래도 연기도 너무너무너무너무 잘 해낸 어린 빅터의 최민영 군, 혀가 꼬일 것 같은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의 나열을 또랑또랑 맑은 음색에 실어서 불러주는데, 아주 그냥 기특해서 엄마 미소 지으며 봤더랬다.

앙상블은 초반 '단 하나의 미래'에서 보여준 시체춤은 정말 훌륭해서 기대가 좀 있었는데, 음....아직 한 목소리가 되지 못해서, 떼창에서 소리가 제각각이라 가뜩이나 가사 듣기 어려운데 좀 깔끔하게 한데 묶여나오는 소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


+ 나 악인! 이라고 그려놓은 듯한 인물이 저지르는 악행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의도치 않게 벌이는 악행 쪽이 사실은 더 무섭고 잔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