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Das Musical Elisabeth)

일   시 : 2012. 02. 08 ~ 2012. 05. 13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2. 03. 02 (금) 20:00
대   본 : 미하엘 쿤체, 작곡 : 실베스터 르베이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협력연출 : 박인선, 음악감독 : 김문정
캐스트 : 엘리자벳 - 김선영, 죽음 - 류정한, 루케니 - 박은태, 프란츠 요제프 - 민영기, 소피 대공비 - 이정화, 청년 루돌프 - 전동석, 어린 루돌프 - 김효준

- Again 2.28 캐스트에서 어린 루돌프만 효준이로 바뀐 공연. 
오늘 A구역 시야방해석 처음 앉아봤는데, 진짜 가격대비 만족도는 꽤 좋은 자리기는 하더라. 특히 루케니 핥기에 참 좋은 좌석이다. 시야 방해받는 장면이 몇 안되는 건 은혜로운데, 음향은 균형이 좀 안 맞아서, 앙상블 떼창 같은 건 별 차이가 없는데, 솔로곡의 피아니시모 부분이라든가, 속삭이듯 대사치는 건 소리가 많이 죽는다.

- 오늘 지휘자는 부음감이었는데, 그게 영향이 미친 건지 오늘 오케스트라가 초반에 박자를 놓치거나 밀려서 참으로 쓰릴한 순간이 여러번 있었고, 금관 삑사리가 너무 잦아서 슬펐고, 항상 완벽하다 했던 앙상블 마저 뒷통수를 치며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서 박자를 놓쳐서 헝클어졌다. 허나, 벌써 한 달 가까이 진행된 공연이니, 이런 실수 몇으로 무너질 공연은 아니었고, 오히려 이후에는 앙상블 기합이 바짝 들어서 어느 때보다도 멋진 합일된 소리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연 3인방(루케니 남주 맞;;)이 너무너무너무 잘해줘서 전체적으로 공연 자체는 참 좋았다.
선영 엘리는 28일 보다 목상태도 훨씬 좋았고, 류토트는 이제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는 게 느껴졌고, 은케니는 목상태가 좀 안 좋았는지, 조심스럽게 부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늘 어떤 기준 이상은 해내니까.

- 신이시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에서 앙상블의 뼈아픈 실수 이후에 진짜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고 느꼈던 게, '모든 질문은 던져졌다.' 넘버에서. 안그래도 이 넘버 부를 때는 모든 앙상블이 가장 화려한 예장을 하고 등장하는데, 다들 표정부터가 비장하고, 소리가 합이 딱딱 맞아서, 전에도 좋았지만, 평소보다 더 좋은 소리가 나오더라. 그리고 왼쪽에 앉으니까, 엘리자벳과 요제프가 왈츠 출 때, 안보는 척 하면서 흘끔 보는 거, 엘리자벳의 파격적인 댄스(;)에 깜짝 놀라고, 세모눈 뜨고 비웃는 앙상블들 깨알같은 표정 연기가 정말 잘보여서 재밌다. 게다가 엘리 앙상블엔 왠 미녀들이 이리 많은지, 아주 제대로 눈 호강.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져서 '황후는 빛나야해' 넘버를 부르는데, 평소에도 마치 군대 조직 보는 느낌이 들었던 시녀분들이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어서, 소피와 함께 엘리자벳을 전방위에서 압박하는데, 이정화 소피는 진짜 며느리를 쥐잡듯이 볶아채서, 질리게 만든다. 황후는 빛나야해 넘버 자체가 마치 황실에 시집 온 여자는 그저 예쁘장한 장식이고, 애낳는 기계 취급이라, 상당히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데, 거기에 안무도 참 예술이더라. 시녀들이 손으로 왕관을 형상화 한 안무를 추는데, 보기에 아름답고 무척 우아한 동작인데, 황실에 시집 왔으니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라는 책망으로도 보인다.

- 오늘 제일 신선했던 건 어린 루돌프 효준이. 어쩐 일인지 계속 준서, 준상이만 만나서 오랜만에 효준이를 만났는데, 그동안 연기 디테일이 좀 늘었더라. 1막에서 엘리자벳 방문 앞에서 소피가 등장하니까 손에 든 장난감배 뒤로 숨는 거 보고 어라? 했는데, 시녀장이 배를 받아가니까 앞을 막아주던 게 사라져서 당황하고. 그러더니, 엄마 못 만난다고 하니까, 제발요~ 하고 소피 손을 붙들고 너무 간절하게 매달리는 거다. 효준이가 준서나 준상이에 비하면 덩치도 있고, 목소리도 막 아기같지는 않아서 참 씩씩한 루돌프네 했는데, 나름대로 저런 디테일을 넣어온 건가 싶어서 기특했다.

- 선영 엘리를 보면서 가끔 왜 신혼 초에 죽음을 불러들이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첫날부터 달달 볶아댔지, 아이도 빼앗기고, 남편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시녀들 조차 자기 편이 없고, 궁정 생활에 낙이라고는 없었을 그녀가 어떻게 결혼 생활 4년을 버텼는지 의문이다. 그녀의 타고난 성정을 생각해보면 죽음을 불러들여도 몇 번을 불렀을 것 같은데.

그래서 어쩌면 저 4년이 엘리자벳이 황후로서 살아보겠다고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희생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다 진짜 죽을 거 같아서 요제프에서 최후통첩을 내밀게 되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 최후통첩은 선전포고가 아니라, 내가 살려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그녀의 처절한 절규인 셈이다.
이 장면에서 선영 엘리는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그동안 눌러둔 반동으로 엘리자벳 인생에서 죽고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장면에서 토트는 그 어느 장면에서보다 섹시하고 강렬하게 유혹적이다. 그나마도 간신히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뒤에 바로 연결되는 Milk - 황후께선 외모를 가꾸신다 - 나는 나만의 것 rep. 가 하나의 서사를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저 앞에서 엘리자벳의 감정선과 각오, 결심이 얼마나 납득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는 것 같다.

웬만한 각오가 아니면 거절하기 힘든, 죽음의 강렬한 유혹도 뿌리치고, 엘리자벳은 "내 힘으로 자유로워질 거야."라고 선언했다. 그러니 엘리자벳이 외모를 가꾸는 데 목숨을 걸었다는 말은 그냥 비유가 아니라, 진실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르겠다. 즉, 우유를 달라고 부르짖는 민중의 절박함과 동등할 정도로 엘리자벳의 외모에 대한 집착도 절박하지 않았을까. 뭐, 외모를 무기로 자유를 얻겠다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는 거 부터가 정상은 아니지만.
(사족이지만, 외모를 가꾸는 데 신경을 안 쓰는 나같은 사람은 저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도, 저건 사치가 아니라, 고문일 뿐. 머리 손질에만 6시간이라니, 그걸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병사가 전쟁터에 나서기 전에 훈련을 하고, 무기를 손질하는 것 처럼, 몸매를 가꾸고, 머리 손질을 하고, 갑옷을 두르는 것처럼 드레스를 차려입은 엘리자벳. 일명 초상화 씬은 그렇게 새로 태어난 엘리자벳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난 여기서 선영 엘리가 변신한 외모에 걸맞게 좀 더 위엄있는 목소리와 태도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늘의 연기는 28일 보다 더 단단해지고, 좋아졌지만 아직 내 성에 안차서;

- 은케니는 오늘 목상태가 살짝 안 좋은 것도 있어서 그랬는지, 대사도 평소보다는 톤 다운 되어있어서, 전보다는 덜 미쳐있는 것 같더라만, 그런 생각하고 있으면 여지없이 눈동자를 떼구르르 굴리면서 광기를 내비치는데, 좀 더 악동같은 면이 늘었다고 할까. 왜 아기들은 조용하면 어디선가 꼭 사고친다고 하지 않나? 그런 느낌이더라. 폭풍 전의 고요같고. 마지막에 목 매달 때, 전에는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데, 이날 씩 웃는 게 딱 체셔 고양이 떠오르더라.

+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이 사실 감정이입할 여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티켓값도 비싸서 회전문은 안 돌거야...라고 방심한 댓가를 치루는 거 같다. 피맛골연가, 햄릿, 그 패턴의 반복일 것 같아 두렵다. 당췌 학습 효과가 없는 거냐 ㅠ.ㅠ
서툰 사람들

일   시 : 2012. 02. 11 ~ 2012. 05. 28
장   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관극일 : 2012. 02. 29 (수) 20:00
연   출 : 장진
캐스트 : 유화이 - 예지원, 장덕배 - 류덕환, 멀티맨 - 홍승균
줄거리 :
남의 집 털어가는 도둑질도, 도둑놈 맞이하는(?) 집주인 노릇도 영~~ 서툰, 그와 그녀의 하룻밤 대소동!
직업은 도둑이지만 이 집 저 집 배려해주며 친절하게(?) 털어주는 서툰 도둑 장덕배, 훔쳐갈 것도 없는 자기 집에 도둑이 든 게 안타까워 비상금 위치까지 알려주는 오지랖 넓은 서툰 집주인 유화이.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 둘은 얼굴만 마주치면 티격태격! 옥신각신! 급기야는 서로 친구가 되기로 하고. 때마침 아래층 남자 ‘김추락’은 분신자살 소동을 벌이고, 유화이를 짝사랑하는 ‘서팔호’, 화이의 유별난 아버지 ‘유달수’까지 찾아오며 상황은 점점 묘하게 꼬여 가는데…!! [출처 > 플레이DB]

- 예지원 씨, 사...사,사,사랑스럽습니다~~~

- 리턴 투 햄릿을 재미있게 봐서, 장진 감독의 또 다른 연극 서툰 사람들도 기대를 하고 갔다. 게다가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들, 예지원 씨, 류덕환 씨가 나온다니, 어머, 이건 꼭 봐야해!! 했는데, 티켓 오픈하고도 배우들 스케줄 공지가 안 떠서 살짝 식었지만, 하여간 한 번은 볼만한 연극이긴 하더라. 장진 식의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에겐 추천. 서툰 도둑과 물정 모르는 여자가 나오는 소동극이라고만 알고 보러갔는데, 이거 장진식의 로맨틱 코미디였다.

- 일단 극중 25살이라는 유화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예지원 씨. 원래 본인 나이를 잊을 정도로 귀엽고, 맹하고, 그러면서도 때로 강단있는 그 캐릭터를 어찌나 사랑스럽게 연기해주시던지. 진짜 이 연극은 예지원 씨를 위한 극이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 언니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남 주인공 쪽으로는 시선도 잘 안 가더라.
원래 예지원 씨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보여준 4차원에 사는 사랑스러운 푼수떼기의 이미지가 이 연극 서툰 사람들에서 십분 활용되고 있었는데, 그보다 좀 더 어리고 순진한 버전이랄 수 있겠다. 줄거리에 나온 내용이 극의 전부이고, 장진 극의 특성처럼 대화중에 적절히 섞어놓은 개그 포인트가 잘 맞는 사람은 빵빵 터질 수 있겠지만, 안 맞는 사람은 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장덕배 역의 류덕환 씨도 오버하는 법 없이 서툴어빠진 도둑을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는데, 때로 오버해야 할 부분에서 어색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아니, 위화감 없이 장덕배를 잘 연기하고 있었지만, 배경음악으로 Kiss me darling 나오면서 갑자기 판타지 분위기로 들어가는 순간 (그러니까, 넥스트 투 노말에서 보면, 매든 박사가 갑자기 다이애나의 환상속 롹스타로 변신하는 그런 장면 처럼) 그런 장면에서 배우가 쑥쓰러워 하면 보는 관객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정도가 아니라, 눈을 감고 싶어집니다. 자신감있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남자라는 기분으로 연기해주면 좋겠다.

- 시종일관 웃음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멀티맨이 등장하는 순간 극이 루즈해지는 건 개선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두 남녀 주인공이 만들어 놓은 밀도 높은 긴장감을 멀티맨이 확 다 흐트러놓는 식이라서, 여타 대학로 소극장의 멀티맨과 차별화(?) 된다고 할까나. 굳이 왜 등장시켜야 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뻔한 로맨틱 코메디로 흐를 수 있는 극에 갑자기 현실을 들이미는 것도 뭔가 찬물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그런 걸 노리고 집어넣은 거라면, 계획대로 성공했음요. 그래놓고 마무리는 또 급 판타지스럽게 지었지;

-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어울림이 '서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운 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기러기 아빠, 아내와 사별하고 딸은 독립해서 혼자 사는 아빠, 고작 사진 한 번 보고 홀딱 반했다며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달려드는 노총각, 독립은 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고된 독신 여성, 그리고 그 처지가 어땠기에 도둑질을 업으로 삼았을까 싶은 도둑놈. 모두 참 외로움이 뚝뚝 묻어나는 캐릭터들이다. 그래서 결말이 판타지로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은 처음 가봤는데, 다른 대학로 소극장들에 비하면 비교적 쾌적한 관람 환경이기는 했는데, 시작부터 1열 앞에 보조좌석을 좍 깔아놔서 잠시 식겁했다. 내가 1열을 잡았을 땐, 내 앞에 아무도 없이 곧바로 무대를 대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목이 아프든 어쩌든 1열을 잡는 건데 말이지. 그래도 단차가 개념이라, 앞에 앉은 사람이 시야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발도 뻗을 수 없었고, 보조 좌석에 앉은 사람들도 좌식의자여서 그다지 편하진 않았을 것 같고. 음, 대학로 소극장에서 손님 더 받겠다고 보조좌석 까는 거야 하루이틀 일도 아니기는 한데, 그리고 열악한 수익구조 같은 것도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꽁기한 건 내가 요즘 대극장만 너무 돌아서 그런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