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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MOBY DICK)

일   시 : 2012. 03. 20 ~ 2012. 04. 29
장   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관극일 : 2012. 04. 25(수) 20:00
원   작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연   출 : 조용신 이소영, 대본 : 조용신, 작곡/음악감독 : 정예경
캐스트 : 이스마엘 - 신지호(피아노), 퀴퀘그 - KoN(바이올린), 에이헙/필레그 - 황건(첼로), 스타벅 - 이승현(기타), 플라스크 - 유승철(트럼펫), 스텁/모비딕 - 황정규(콘트라베이스), 네레이드 - 이지영(피아노)
줄거리 :
도시에 사는 이스마엘은 부모를 잃고 직장까지 잃자 어릴 때 꿈을 쫒아 바다로 나가 선원이 되려고 결심한다. 이스마엘은 바닷가 물보라 여인숙에서 거친 외양과는 달리 과묵하고 친절한 퀴퀘그를 만나고, 서로가 가진 지식을 나누며 두 사람은 금세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흰 고래 `모비 딕`을 쫒는 에이헙 선장이 지휘하는 피쿼드 호에 승선하여 항해사 스타벅, 플라스크, 스텁과 함께 출항한다. [출처 > 플레이DB]

- 작년에 예매해두고도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보고 지나갔는데, 올해 재연된다고 해서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어느새 막공이 다가오고 있더라. 부랴부랴 뒤늦게 보고 왔는데,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신선함은 좋았지만, 노래-연주-연기를 병행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 셋 중 2개만 클리어해도 굉장한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악기 연주를 1순위로 두고 연기와 노래를 훈련시켰다…는 느낌이었는데, 제대로 넘버를 소화하는 배우가 드물었다. 그나마 재즈풍이라 즉흥성으로 많이 커버가 되었지만, 리듬이 빨라지면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일이 다반사에 음정이 때때로 미묘하게 어긋나서 제대로 넘버를 즐길 수가 없었다. 노래만이 아니라, 대사 처리도 에이헙 선장, 플라스크 정도를 빼고는 어색한 편이었다.

- 배우들이 직접 연주한다는 건 굉장히 신선하고 새로운 볼거리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장점이 딱히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일단 큰 악기들은 고정된 상태에서 연주할 수밖에 없고, 특히 피아노는 붙박이라서 배우가 피아노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다는 제약이 있어서, 무대 오른편에 고정된 피아노에서 연주하는 이스마엘이 객석 왼편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퀴퀘그의 경우 이동하면서 연주할 수 있고, 바이올린으로 효과음을 넣어주는 등 이 뮤지컬이 보여주고자 하는 궁극의 액터-뮤지션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바이올린의 음색은 사람의 억양이라던가 이런 걸 표현하는데 적합해서 퀴퀘그의 심리를 표현하기에도 적합했고, 퀴퀘그와 이스마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동작에 맞춘 끼익~하는 효과음 같은 건 정말 신선하더라. 그리고 퀴퀘그와 이스마엘이 서로 친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jam battle은 흥미진진하기도 했고.

단점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며 들려주는 음악은 날 것의 힘을 뽐내며 생동감을 느끼게 해줘서 좋았다. 가장 좋았던 건 이스마엘의 피아노 연주와 퀴퀘그의 바이올린이었지만, 스텁의 묵직한 콘트라베이스 소리도 깊은 울림을 전해줘서 좋더라. 플라스크의 트럼펫 역시 가벼운 캐릭터에 걸맞은 경쾌한 소리를 내다가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소리,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는 처량한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줬고, 에이헙 선장의 첼로는 오히려 바이올린보다도 날카롭고 건조한 소리를 내서, 불안정하고 광기에 휩싸인 선장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악기를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도 꽤 신선했는데, 플라스크의 트럼펫은 망원경으로, 퀴퀘그의 바이올린 활은 작살로, 그리고 거대한 몸체의 콘트라베이스가 모비 딕을 형상화할 때는 아주 감탄했다.

- 1막은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우정 쌓기(를 빙자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비중이 크고, 2막은 모비 딕을 향한 에이헙 선장의 집착과 광기, 그리고 모비 딕과의 대결이 주를 이루는데, 그래서 1막의 피날레는 너무 급전직하라 조금 어리둥절한 상태로 막을 내리더라. 아마 초연 때는 인터미션 없이 진행됐던 극을 재연하면서 규모를 키우다보니 적당히 끊을 시점이 모호해져서 이렇게 된 것 같기는 하더라.
 
- 뮤지컬 모비 딕에는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바다의 정령 네레이드를 등장시켰는데, 나는 이게 정말 탁월한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바다는 그 변덕스러움 때문에 예로부터 '여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고, 풍랑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소프라노의 고음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모비 딕을 '나의 아이'라고 직접적으로 가사에 드러낸 것도 좋았다. 에이헙은 바다를 향해 '당신을 숭배하지만, 나는 당신을 거역할 것이다!'라고 외치는데, 어머니 바다는 그래도 계속해서 '돌아가, 에이헙' 경고를 보낸다. 말 안듣는 아이에게 끝까지 참을성을 가지고 타이르는 자상하지만 엄한 어머니처럼.
그리고 파국을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비 딕을 형상화한 콘트라베이스의 음산한 저음이 주는 깊은 울림이 파동을 일으키듯 너울너울 공기를 타고 피부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 무대는 산만한 듯 하면서도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정취를 물씬 풍겼는데, 어쩐지 나는 이런 종류의 뱃사람 이야기에 약한 모양이다. 바다, 모험, 의리 이런 단어가 주는 가슴 벅찬 느낌이 참 좋다. 그런 의미로 누가 캐러비안의 해적 뮤지컬로 안 만들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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