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Rebecca)

일   시 : 2014. 09. 06 ~ 2014. 11. 09
장   소 :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관극일 : 2014. 11. 02 (일) 14:00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음악감독 : 김문정, 무대디자인 : 정승호
원   작 : 대프니 듀 모리에(Daphne du Maurier)
캐스트 : 나 - 임혜영, 막심 드 윈터 - 민영기, 댄버스 부인 - 신영숙, 반호퍼 부인 - 김희원, 잭 파벨 - 박인배, 줄리앙 대령 - 허정규, 베아트리체 - 이정화, 가일스 - 김장섭, 프랭크 크롤리 - 이광용, 벤 - 김지강, 프리츠 - 신재희 외

* 한 줄 요약 - 임나 종신계약 원츄~

- 초연 때도 좋다 했는데, 재연에서 더더 좋아진 임혜영 씨의 '나'는 참 미묘한 주인공이다. 캐스팅 보드에서조차 댄버스 부인 뒤에 있지만, 분명히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나'라는 거. 그걸 조용한 존재감이라고 표현할 지. 하여간 대놓고 내가 주인공이다 카리스마 터트리고 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가고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아직 어리고 젊은, 미숙한 소녀가 사랑을 하면서 점차 강단있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그걸 임나가 정말 잘 표현해줘서 매번 감탄하고있다. 특히 칼날송 이후 '나'의 변화는 놀라운데, 사랑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사람을 아주 바꿔놓았다. 항상 소심하게 움츠러들던 모습이 사라지고, 등을 쭉 펴고 당당하게 고개를 쳐든 모습이 허세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럽다. 진짜 이 '나'라는 역할은 임혜영 씨 필모에 길이 남을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 신영숙 씨의 댄버스 부인은 옥댄과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데, 초연 때도 레베카 내 새끼, 내 자랑스러운 레베카~ 이런 모성을 보여줬는데, 재연에선 그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뭔가가 더 생겨난 거 같더라. 옥댄이 레베카를 동일시하며 숭배하는 노선이라면, 신댄은 자랑스런 내 새끼, 뭘해도 우월하고 잘난 레베카 우쭈쭈 이런 느낌인데, 거기에 되게 아련하고 애절한 감정이 더 깊어졌다. 
레베카3는 옥댄의 화려한 폭발력이 더 돋보이는데, 레베카4에서의 배신감에 무너져내리는 감정선은 신댄이 정말 처절하더라. 게다가 오늘 손수건을 가차없이 집어던지는데, 그 상처받은 마음이 느껴져서 울컥하더라. 순간적인 몰입이 굉장해서 가슴을 쿡 찌르는데,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난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의 불타는 맨덜리에서 보여준 광기도 정말 대단해서, 민막심과 함께 블퀘 천장을 뚫어버리심.

- 민막심은 지난번보다 오늘이 훠~얼씬 더 좋아져서, 역시 공연이 진행될 수록 점점 더 내공이 쌓이고 발전해나가는 구나 싶었다. 지금 마리 앙트와네트랑 같이 달리시는 듯 한데, 레베카는 다음주면 끝이니까. 아~ 써놓고 보니 좀 아쉽다. 한 번 정도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스케쥴이 안 맞다니 ㅠ.ㅠ
'놀라운 평범함'이 참 어려운 넘버인가보다. 내가 본 세 막심 누구도 만족스럽게 불러준 사람이 없다. 이게 막 어려운 넘버라는 티는 안나는데도 뭔가 부르기 어려운 곡인가보다. 뭐, 막심의 대표곡은 따로 있고, 신이여나 칼날송만 잘 불러주면야. 게다가 오늘 민막심의 칼날송은 진심으로 대박! 레베카의 제안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치욕스러움과 그만큼 더 커다란 레베카에 대한 증오심이 제대로 표출되고, 그 와중에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자신을 혐오하는 마음까지 다 보이더라. 레베카 빙의 씬도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자연스러웠고. 하여간 오늘 민막심은 칼날송이 다했음.

- 김희원 씨의 반호퍼 부인은 나래 반호퍼 부인과 또 다른 매력덩어리. 나래 반호퍼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난미쿡여자 넘버에서 제대로 소울 충만한 섹시한 반호퍼를 보여준다면, 희원 반호퍼는 애드립 넘치는 즉흥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은 매력을 선사한다. 줄리앙도 거기에 흠뻑 빠진 거 같고. 난 이 커플 지지합니다!! 초반에 이히를 대하는 태도가 두 반호퍼가 냉탕/온탕 수준이지만,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미쿡 졸부 아지매라는 캐릭터는 유지하고 있으니까. 초연 때 경미 반호퍼가 넘버 소화라는 면에서 살짝 밸붕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번 반호퍼는 누굴 봐도 만족스러운 듯.

- 박인배 씨의 잭파벨도 변함없이 좋아서, 난 진짜 이 잭파벨이야말로 레베카가 장난감으로 데리고 놀았을 법한 레베카에 어울리는 정부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인물값하고, 적당히 야망이 있고, 적당히 양아치고. (매우 양아치면 안됨.) 음색도 좋고, 넘버 소화 잘하고, 페이크 모션같은 것도 좋다. 무엇보다 너~무 느물대지 않는 게 제일 마음에 든다.

- 레베카는 마지막 에필로그와 커튼콜이 참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데, 특히 다들 인사한 후, 댄버스 부인의 카리스마 넘치는 레베카~로 시작되는 앵콜송이 아주 좋다. 오늘은 민막심이 작정한 듯 후음을 굉장히 기~일게 빼줘서 객석이 끓어올랐지. 그리고 주인공 '나'가 등장해서 부르는 어젯밤 꿈속 맨덜리 선창 후 합창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것 같아서 보고있는 동안엔 분명 어둡고 미스테리한 내용이라 생각했으면서도,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그래서 웃기게도 레베카가 힐링극인 거 같다는 착각이든다니까. 뭐, 그래서 엄마와 동생을 동반한 거기도 한데, 엄마도 동생도 아주 만족하면서 재밌었다니 보람이 있다.  

+ 극장을 나서는데, 쿤체와 르베이 할배가 보여서 나도 모르게 아는 체를 할 뻔했다. 안 해서 다행이다. (진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