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투 노멀 (Next to normal)

일   시 : 2011. 11. 18 ~ 2012. 02. 12
장   소 :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관극일 : 2011. 12. 29 (목) 20:00
연   출 : 라우라 피에트로핀토, 협력연출 : 변정주, 음악감독 : 이나영
캐스트 : 다이애나 - 박칼린, 댄 - 이정열, 게이브 - 한지상, 나탈리 - 오소연, 헨리 - 이상민, 의사 - 최수형
줄거리 :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한 가정.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다이애나), 어머니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딸(나탈리),
흔들리는 가정을 바로 잡으려는 아버지(댄). 계속되는 아버지(댄)의 노력에도 어머니(다이애나)의 상처는 깊어만 가고 가족들은 힘들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평범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며 평범하지는 않아도 그 언저리에 있는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다. [출처 > 플레이DB]

- 원래 오늘 스케줄에는 다이애나 역에 김지현 씨였으나, 공연 한 시간 여를 앞두고 급하게 박칼린 씨로 교체되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사정이 있었으니, 이리 급하게 스케줄이 변경되었겠지. 급하게 변경되어서 박칼린 씨의 목은 좀 덜 풀린 감이 있었지만, 2막에서의 노래는 좋았다. 딕션에 대한 부분도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아서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 이정열 씨가 정말 감정선이 최고여서, 1막에서부터 너무 많이 우시네 했는데, 2막에서는 뭐 거의 목이 메이실 정도여서. 이날 공연이 넥투노 내 자체 첫공이었는데, 이정열 씨는 레전을 찍어주시는 건가 싶더라. 나탈리 역의 오소연 씨도 목소리 자체는 쨍─한 타입이라 내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노래를 잘하시고, 연기도 훌륭, 오히려 극을 이끌어가는 건 나탈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 한지상 씨는 한뮤대 축하 무대에서부터 정말 독특한 목소리라고 흥미가 있었는데, 게이브 역에 꼭 맞는 연기와 노래였고, 최수형 씨야 뭐 워낙 잘 하시고, 헨리는 원래 그렇게 존재감이 강한 배역은 아니라 이상민 씨는 무난했고, 공연 자체는 참 좋았다. 다만, 이게 내 취향인가 하는 건 좀 다른 문제고.

- 연강홀은 공연 관람하기에 참 쾌적하고 좋은 공연장 중에 하나다. 그리고 음향이 정말 깔끔하다. 유니버설의 웅웅거리던 음향에 나름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연강홀의 에코없이 딱 정직하고 깔끔한 소리가 새삼 반가웠다. 무대 활용도 좋고, 조명 사용도 적절하고.
리뷰에 줄거리가 붙으면 스포일러가 될 소지가 다분해서, 그냥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 위주로.

- 1막은 극 전체적으로 참으로 건조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마르고 퍼석해서 그대로 부스스 부서져내릴 것 같은 사막같은 건조함. 그래서 1막은 관조하듯 지켜볼 수 있었다면, 2막은 한껏 감정선이 고조되어, 인물 하나 하나 좀 더 이입할 수 있어서, 나는 2막이 좀 더 마음에 들었다.

- 다이애나가 겪는 자살 충동을 '추락'과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연결 지은 노래는 전율이었다. 박칼린 씨의 연기는 이번에 처음 보는데, 나는 썩 괜찮게 봤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동자, 흘러넘칠 듯 눈물이 가득차 오르지만, 그래도 흘러내리지 않는 게 더 마음에 와닿았던 연기. 홀린 듯이 게이브를 바라보던 시선 같은 게 잘 표현되어 좋았다.

- 넥스트 투 노멀. 평범까지는 너무 멀어, 평범함의 근처 어딘가, 그 주변 정도라면 견딜 수 있어...라던 나탈리의 대사가 이 극의 주제라고 느껴졌다. Normal을 평범으로 번역한 건 탁월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바라는 삶은 행복한 삶, 멋진 삶도 아니고, 그저 평범함의 근처만이라도...라는 절실한 마음 같은 게 느껴져서 난 2막의 나탈리와 다이애나의 화해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고 마음에 와 닿았다.

- 오늘 이정열 씨의 연기가 정말 너무 압도적으로 좋았는데, 저렇게 헌신적인 남편을 그래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다이애나의 마음도 참 절절하게 이해가 되더라. 힘들면 같이 죽자는 사랑이 아니라, 힘들어도 같이 살아가자는 사랑. 그런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랑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아직도 지옥을 헤매는 '나'에게 그 사랑은, 마치 영혼을 찢고 들어오는 강렬한 빛의 화살.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지옥을 헤매는데, 그 반쪽이 멀쩡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의 반전은 참으로 소름이 끼치더라. (이 뮤지컬에 반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려나;)

- 헨리와 댄이 나탈리와 다이애나에게 마음을 다해 고백하는 장면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은 그래서 참으로 마음이 아프면서도, 흡족해지는 이중적인 감상이 들었다. 또 다른 다이애나와 댄인 나탈리와 헨리. 이들은 좀 더 나은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 계속 아플테지만,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 고통스럽고, 때로 포기하고 싶어지는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용기를 얻는다. 평범해지는 것조차 이렇게 힘들지만, 그 근처 어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