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 :
월금공주(月琴姫), 꽃점치는 여인(花占の女), 용신제(龍神祭), 매미 법사(月突法師), 무주(無呪), 부엉이 법사(蚓喰法師), 식객하인(食客下郎), 두루마리와 동자승(魔鬼物小僧), 죠조 사랑의 행보(浄蔵恋始末)
손안의 책에서 음양사 - 태극의 권이후로 뒷권이 안 나오고있는데, 그 뒤로 약 4권 정도의 시리즈가 더 나왔다.
단편 모음인 야광배의 권(夜光杯ノ巻), 천둥의 권(天鼓ノ巻), 장편인 타키야샤 히메(瀧夜叉姫) 상/하 2권 이렇게 나왔고, 그 사이 사이 혹 떼는 세이메이(瘤取り晴明), 머리(首) 같은 단편도 나왔다.
나는 솔직히 음양사 시리즈는 장편보다는 단편쪽이 더 좋다. 하나의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줄줄이 엮여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냥 세이메이와 히로마사가 주거니 받거니 술잔 기울이다 생각났다는 듯 사건 하나 해결해나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런 이야기가 좋다. 매번 같은 패턴일지라도. 세이메이의 집에서 스노코 위에 앉아 계절감 풍부한 정원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우아한 어둠과 향기로운 술,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끈끈한 우정 - 이라고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 - 을 그저 계속 지켜보고 싶다고 할까.
야광배의 권은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9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히로마사는 굉장해~"다.
첫 단편인 월금공주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그저 다정한 말과 아름다운 연주로 식신을 만들어낸 히로마사 이야기가 나온다. 용신제는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겠지만, 용신제에 악사로 초대받은 히로마사의 이야기, 무주 역시 히로마사의 피리에 홀린 고대의 신 이야기가 나온다. 히로마사는 그냥 피리의 명수가 아니라, 그 인품에서부터 우러나온 투명함, 맑음이 주위를 오히려 물들이는 참으로 순수한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세이메이는 히로마사라는 슈(呪)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야광배의 권은 시기적으로는 유혈낭자한 저주와 원한이 흘러넘치는 장편 타키야샤 히메 뒤에 나온 소설로, 그 반동인지 상당히 잔잔하고, 아름다운 단편들로 채워져있다. 작가도 후기에서 이번엔 드물게도 죽는 사람은 안 나왔다고 썼을 정도니까. (사실 이미 죽어 유령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래서 그런가 제목처럼 상품의 술잔에 향기로운 술을 따라놓은 듯한 한 권이라는 느낌이다.
개인적인 별점 :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소설 음양사 안에서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관계는 어떻게 봐도 동인녀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데, 어째서 동인지는 그토록 드물까...하는 의문을 가진적이 있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이건 뭐 따로 패러디 할 것도 없이, 원작자님께서 알아서 동인지를 써주시니 따로 상상의 나래를 펼 여지가 없다고 할까. ^^;
닭살도 이런 닭살이 없는 세이메이와 히로마사의 노골적인 애정 공세는 천둥의 권에서 더 확실하게 나오지만, 아래 내용도 만만찮다.
식객하인(食客下郎) 중에서
(전략)
타카사마로, 나카치마로, 츠치마로
세 사람은 목소리를 맞춰 나란히 말했다.
"자, 빨리 돌아가는게 좋을 거다."
세이메이가 말했다.
"음"
"그리 하지."
"잘 먹었다. 세이메이"
"맛있었다."
"이만 가자."
"또 보세. 세이메이."
세 사람이 말을 마치자 벌써 타카사마로, 나카치마로, 츠치마로의 모습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어이. 사, 사라졌어. 세이메이."
"음."
"어찌된 일인가."
히로마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모두 돌아간걸세."
"어디로?"
"지옥으로"
"뭐라고!?"
"저들은 모두 지옥의 옥졸이네. 수명이 다한 자를 데려가는 것이 일이지."
"또 보세. 라고 했네만."
"결국에 또 만나게 될테니..."
"결국에?"
"어차피 우리도 죽게 될테니까. 그때, 저들이 데리러 오겠지. 그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운명이네."
"죽는건가, 우리도."
"아아, 죽지."
"자네도인가, 자네도 죽는건가, 세이메이?"
"죽지."
"나도?"
"죽네."
"그건 언제인가?"
"알고싶은가, 히로마사."
히로마사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모르는게 낫네."
딱잘라 말했다.
"그렇군."
"음, 그렇다네."
"음."
"이보게, 세이메이."
"뭔가, 히로마사."
"언젠가, 내가 어떤 식으로 죽던지 말이네..."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자네와 이 세상에서 만나, 이렇게 함께 술을 마신 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걸세. 그것은 그러니까"
"그러니까?"
"언제 죽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운명이구나 하고"
"음."
"그걸로 됐네."
"음."
"이 세상에 자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는 지금 마음속 깊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세. 세이메이."
"바보.(馬鹿)"
"바보?"
"그런 것을 불시에 말하는 게 아니네, 히로마사."
"어째서?"
"내 마음에도 준비라는 것이 필요하니까."
"흐응."
히로마사는 미소를 띄우고 세이메이를 바라본다.
"왜그러나, 히로마사"
"자네에게도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구먼."
"나를 놀리지 말게. 히로마사."
"놀리거나 하지 않아."
"그것보다도 피리를 불어주지 않겠는가. 자네의 피리가 듣고싶네."
"음."
히로마사가 끄덕이며, 옷 안쪽에서 하후타츠를 꺼내어, 입술에 대었다.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피리 소리가, 여름의 열기를 머금은 별 밤하늘에 퍼져나간다.
구름이 움직여간다.
바람이 불고있다.
세이메이는 눈을 감고, 히로마사의 피리를 듣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