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노무라 만사이 상,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전부터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은 갑툭튀한 이 분이 누구신지 모르시겠지요. --;;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만큼 일에 치이고, 2주 간격으로 일본 출장을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 지금 또 일본이지만 - 저는 새로운 버닝거리를 찾아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짝사랑 하던 후배와 결혼해서 1남 2녀, 세 아이의 아버지이신 이분에게 어쩌다 빠져들게 되었는지 설을 풀어보지요.
노무라 만사이(野村萬斎)
본명 : 노무라 타케시(野村武司), 1994년 증조부 노무라 만조(野村万造)의 은거명 만사이(萬斎)를 습명.
1966년 4월 5일생, B형, 도쿄 출신
조부・故6세 노무라 만조(野村万蔵)와 아버지・노무라 만사쿠(野村万作)에게 사사.
중요무형문화재종합지정자. 3살에 첫 무대.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 졸업.
「교겐이 있는 자리(狂言ござる乃座)」주재.
국내외에서 다수의 교겐(狂言)・노(能) 공연에 참가, 보급에 공헌하는 한편, 현대극이나 영화・TV 드라마의 주연, 무대 『아쓰오 - 산월기・명인전 -(敦—山月記・名人伝—)』『나라를 훔친 이 : 쿠니누스비토(国盗人)』등 고전 기법을 구사한 작품의 연출, NHK 『일본어로 놀자(にほんごであそぼ)』에 출연하는 등 폭넓게 활약.
각 분야에서 비범함을 발휘하고, 교겐의 인지도 향상에 크게 공헌. 현대를 살아가는 교겐시(狂言師)로서, 모든 활동을 통해 교겐 본연의 자세를 묻고 있다.
94년에 문화청 예술가 재외 연수제도에 의해 영국 유학.
예술제신인상,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 신인상, 아사히 무대 예술상, 기노쿠니야 연극상 등을 수상.
2002년부터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世田谷パブリックシアター) 예술감독.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万作の会 http://www.mansaku.co.jp)
본명 : 노무라 타케시(野村武司), 1994년 증조부 노무라 만조(野村万造)의 은거명 만사이(萬斎)를 습명.
1966년 4월 5일생, B형, 도쿄 출신
조부・故6세 노무라 만조(野村万蔵)와 아버지・노무라 만사쿠(野村万作)에게 사사.
중요무형문화재종합지정자. 3살에 첫 무대. 도쿄 예술대학 음악학부 졸업.
「교겐이 있는 자리(狂言ござる乃座)」주재.
국내외에서 다수의 교겐(狂言)・노(能) 공연에 참가, 보급에 공헌하는 한편, 현대극이나 영화・TV 드라마의 주연, 무대 『아쓰오 - 산월기・명인전 -(敦—山月記・名人伝—)』『나라를 훔친 이 : 쿠니누스비토(国盗人)』등 고전 기법을 구사한 작품의 연출, NHK 『일본어로 놀자(にほんごであそぼ)』에 출연하는 등 폭넓게 활약.
각 분야에서 비범함을 발휘하고, 교겐의 인지도 향상에 크게 공헌. 현대를 살아가는 교겐시(狂言師)로서, 모든 활동을 통해 교겐 본연의 자세를 묻고 있다.
94년에 문화청 예술가 재외 연수제도에 의해 영국 유학.
예술제신인상,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 신인상, 아사히 무대 예술상, 기노쿠니야 연극상 등을 수상.
2002년부터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世田谷パブリックシアター) 예술감독.
(출처 > 공식 홈페이지 - 万作の会 http://www.mansaku.co.jp)
처음 시작은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 '음양사'였습니다. 10년도 전에 나온 만화에 새삼 관심이 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을 책을 책꽂이에서 찾다 손에 잡혔던 게 지금은 사라진 세주출판사 판 음양사였을뿐. 다시 보다보니 세이메이와 히로마사 콤비는 그야마로 일본판 홈즈와 왓슨이더군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만화로 만족하고 있었더랬는데, 오카노 레이코의 만화는 뒤로 갈 수록 세이메이가 웃지 않게 되었달까, 뭔가 처음의 분위기가 아니라 소설을 읽자...가 됐습니다. 다행히 손안의 책에서 라이센스가 나와있더군요. 당장에 출판된 6권을 주문해 읽었지요.
원작자 유메마쿠라 바쿠 씨의 세이메이와 히로마사는 만화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더군요. 문장에서 풍겨오는 향기도 그윽하고.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거 영화로도 나왔었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 케이블에서 해주던 음양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감상은 어땠냐면, 세이메이가 입은 카리기누의 뒷태가 너무나 오리궁둥이 스러웠다는 것과, 도손의 식신이었던 까마귀가 무슨 모여라 꿈동산 수준이었다던가, CG의 허접함 같은 것만 남아, 비웃으면서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음양사의 두 콤비에 마음이 끌린 상태에서 본 영화는 어땠을까요. 뭐 눈에 콩깍지가 씌였다 한들 어설픈 CG가 갑자기 세련되게 보일리는 없지만, 세이메이와 히로마사를 보는 시선은 전과 달라졌습니다. 특히나, 이분.
원작에서 묘사하는 여우를 닮은 세이메이 그대로입니다. 뭐, 원작자인 유메마쿠라 바쿠씨가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세이메이 역에 노무라 만사이 상이 아니면 싫다."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그 기대에 보답하듯 이 영화에서 만사이 상은 교겐으로 다져진 몸놀림, 발성을 충분히 이용해서, 우아하고도 신비한 매력의 세이메이를 표현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만사이 상에게 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서있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데 있었습니다. 완전히 몸에 배인 자세랄까, 꼿꼿하게 등을 펴고, 턱을 아래로 끌어당기고, 가슴은 활짝 편 채 서있는 자세는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정좌하고 앉아 있는 자세 또한 우아하기 그지없어, 저는 사실 그 모습에 홀랑 반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뭐, 그 뒤로는 미친듯한 검색이 있을 뿐이지요. ^^;;
그리고 검색할 수록 이분이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이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아가 가는 과정이면서, 지름의 나날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후~
영화 배우로서의 노무라 만사이 상 |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란(乱,1985)에서 츠루마루(鶴丸) 역으로 17세에 영화 데뷔
음양사(2001) 아베노 세이메이 역, 블루리본 영화상 남우주연상, 일본 아카데미 신인상, 남우주연상 수상.
음양사 2(2003) 아베노 세이메이 역
TV 드라마 배우로서의 노무라 만사이 상 |
NHK 대하드라마 꽃의 전쟁(花の乱, 1994) - 호소카와 카츠모토(細川勝元) 역.
NHK 아침 드라마 아그리(あぐり, 1997) - 모치즈케 에이스케(望月エイスケ) 역. 에란돌(エランドール) 특별상, 하시다 스가코(橋田壽賀子) 신인상, 제1회 닛칸 스포츠 조연남우상 수상.
NHK 정월 시대극 창천의 꿈(蒼天の夢 松蔭と晋作・新世紀への挑戦, 2000) - 타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역.
NHK 목요 시대극 쿠라마 텐구(鞍馬天狗, 2008) - 쿠라마 텐구(鞍馬天狗/小野宗房) 역.
TV 교육 프로그램에서의 노무라 만사이 상 |
NHK 교육 채널 일본어로 놀자(にほんごであそぼ) 2003년부터 출연, 현재진행형.
대충 이런 분위기의 어린이 용 프로그램입니다.
현대 연극 배우로서의 노무라 만사이 상 |
2002년 오이디푸스 왕(オイディプス王,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연출) - 오이디푸스 역, 오이디푸스왕, 실수의 교겐으로 요미우리 연극대상 우수 남우상 수상. 2004년 그리스 아테네 헤로데스 아티쿠스에서 재연 공연.
2003년 햄릿(조나단 켄트 연출) - 햄릿, 남자배우들만의 햄릿으로 일본, 영국 런던에서 공연. 1990년 연극 햄릿에서 햄릿 역을 했었음.
2005년 아츠오 - 산월기・명인전 (敦-山月記・名人伝)의 구성, 연출, 출연. 구성, 연출로 기노쿠니야 연극상 수상, 구성, 연출, 주연으로 아사히 무대예술상 수상.
2007년 쿠니누스비토(国盗人) - 사부로 역. (쿠니누스비토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일본식으로 각색한 연극.), 2009년 재연
2008년 우리 영혼은 빛나는 물과 같이(わが魂は輝く水なり) - 주연 사이토 사네모리(斎藤実盛) 역
2010년 맥베스(マクベス) - 맥베스 역
2010년 7월 파우스트의 비극 공연 예정, 파우스트 역.
교겐시(狂言師)로서의 노무라 만사이 상 |
이쪽은 정리가 안됩니다. OTL 아직 제 공부도 많이 부족하고, 그러니 대강 이런 분위기라고만...
하여간에 이렇게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무라 만사이 상이십니다만, 어떻게 보면 장점이고, 어떻게 보면 단점인데, 어떤 역을 하든, 그 안에 노무라 만사이라는 개성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표현자로서 만사이 상의 개성이 너무 강하다고 할까. 뭐, 이제 막 알아가는 참에 너무 주제넘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저는 그게 이분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
너무 뜬금없이, 마치 덫에 걸린 것 마냥 타오르게 된 분이라, 마음의 준비도 없이 속절없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건강하게 표현자로서의 자신을 마음껏 발산해 주시길. 생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ps. 만약 제게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음 포스팅은 아마도 그동안 접한 이분의 영상물의 감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장 첫날 북오프로 달려간 제 눈앞에 '아그리 DVD 완전판'이 눈에 띈건 우연이었을까요. 뭐, 이러라고 버는 돈 아니겠습니까만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