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드(Wicked)
일 시 : 13. 11. 22 ~ Open run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13. 11. 20 (수) 20:00
원 작 : 그레고리 맥과이어 作 위키드
연 출 : 리사 리구일로
캐스트 : 엘파바 - 옥주현, 글린다 - 정선아, 피에로 - 이지훈, 마법사 - 남경주, 마담 모리블 - 김영주, 네사로즈 - 이예은, 보크 - 김동현, 딜라몬드 교수 - 조정근 외
줄거리 :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셀러 ‘위키드’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다. 100년간 숨겨져 있던 오즈의 마녀들의 대한 이야기가 기막힌 반전으로 풀어진다.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이미 그곳에서 만나 우정을 키웠던 두 마녀가 주인공으로, 우리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초록마녀가 사실은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를 받는 착한 마녀이며, 인기 많고 아름다운 금발마녀는 사실 공주병에 내숭덩어리였다는 센세이셔녈한 상상력을 펼친다. 전혀 다른 두 마녀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그리고 두마녀가 어떻게 해서 각각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가 되었는가를 마법에 홀린듯한 매혹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정선아 글린다 만세~!!
공연 보러가기 전 참 감개무량했다. 그동안 업무 때문에 관극을 거의 못하고, 그나마 잡아놨던 연극도 일 때문에 날리고, 진짜 뮤지컬 마지막으로 본 게 애비뉴Q 였으니, 몇 달 만에 찾는 샤롯데인지. ㅠㅠ 그래서 부러 프레스콜 기사도 안 보고, 후기도 안 읽고 오랜만에 뮤지컬 나들이라고 좀 들떴다. 예상대로 샤롯데는 초록색으로 장식되어 블링블링~ MD도 꽤 다양해서, JCS나 애비뉴Q 때도 MD의 다양함과 고퀄에 놀랐는데 이게 설컴의 영업방식이라면 환영일세. 뭐 이건 공연 전까지의 감상이고.
공식적으로 공연기간이 11/22 시작이라고 되어있으나 비씨 스페셜데이라는 명목의리허설프리뷰 공연을 19일부터 시작한 설컴의 패기. 하여간에 어느샌가 VIP 14만원으로 스리슬쩍 오른 티켓값도 신경쓰이고, 작년 내한 때 좋은 기억이 많아서 일찌감치 보려고 하기는 했었지만, 공연을 보고나서 느낀점은 싼 가격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만 새삼 실감했다. 내가 지금 완성된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런쓰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지. 심지어 오케 피트 안쪽에서 퍼커션 쪽 악기 준비하다 나는 소음까지 다 들리더라.
작년에 내한 때도 느낀 건데, 이쪽 음향 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향은 최대한 배우들의 생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인가봉가. 아직 셋팅이 최적화된 게 아니라고 생각은 되지만, 최적화 된다고 한들 내 취향의 음향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중블 3열에서 들었을 때, 무대에서 배우의 생목소리가 들려오고 내 머리 뒷쪽 스피커에서 생목소리와 비슷한 크기로 마이크를 통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느낌인데, 이게 느낌만이 아니라고 확신한 게, 2막에서 남경주 씨 대사 칠 때 한번 마이크가 늦게 들어와서 생목소리가 그대로 나오고 곧바로 마이크 켜지고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겹쳐서 들리더라. 하여튼 배우의 목소리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증폭하지 않고 필터도 거치지 않고 전달하는 게 목표라면 성공이네.....는 개뿔. 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어디까지 어떻게 내야하는지 감을 못잡고 중간 중간 소리가 작아졌다 갑자기 커지고, 출력이 불안정해서 듣는 입장에서 괴롭다고. 에코를 최대한 절제해서 건조한 소리를 내는 건 그쪽 취향인지 모르니 존중해준다고 쳐도 음량이 왔다갔다 하는 건 좀 고쳐줬으면 좋겠고, 적어도 디파잉에서만큼은 홀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음향을 들려줬으면 좋겠다. 어제는 배우가 너무 생목으로 지르는 걸 듣고 있자니 안됐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리고 처음 내한 공연 봤을 때 가장 감탄한 것 중 하나가 자연스러운 무대 전환이었는데, 이 부분은 무대 장치뿐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호흡, 무대 크루의 숙련도와 관련있는 부분이라, 이런 노하우를 국내 스텝들이 잘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만큼 전수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매끄럽게는 되지 않아서 이게 공연 초반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 손에 익으면 좀더 부드럽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아, 또 날아다니는 원숭이하시는 배우분들 충분히 연습하셨겠지만, 안전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시길. 오프닝 때 줄에 매달려 한바퀴 빙 돌고 내려오는 분은 무대 장치와 부딪칠 뻔해서 손으로 한 번 밀던데 조마조마하더라.
번역은 내한 때 자막으로 봤던 부분에서 좀 다듬는 수준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구석이 좀 아쉽기는 하다. Green이야 초등학생도 아는 단어라지만, Popular, Unlimited 같은 거는 좀.... 그렇다고 Popular를 인기인 쯤으로 번역했으면 그건 더 싫었을 거 같기는 한데. 이래서 번역은 이래저래 참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노래가 되면 가락 안에 가사를 끼워맞춰야 하니 더 어렵지. 그래서 그런가 어제 공연을 보면서 가사의 30%는 그냥 못알아듣고 넘긴 거 같다. 중요한 내용은 대충 아니까 어떤 가사 내용일지 상상은 가는데, 내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뭐 음향 탓도 있어서 오프닝 곡인 No one mourns the Wicked 에서 앙상블 떼창 반은 날린 듯;
앙상블 얘기 나온 김에. 일단 다들 너무 생목소리로 지르는데, 음....이게 음향탓인 건지, 앙상블 소리의 풍성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3열에 있으면 맨 앞(보조 무대) 으로 튀어나온 앙상블 목소리는 마이크 통한 목소리가 아니라 생목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춤 추는 장면은 아직 무대에 덜 익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화려함이 덜하고, 좀 굳어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One short day에서 리본 휘두르는 분, 의상에 걸려서 한동안 좀 당황하시던데, 맨 처음 혼자 등장해서 리본을 휘날려야 하는 역이라 그 실수가 참 너무 눈에 띄여서; 옷이 장식도 엄청나고 걸릴 구석이 많아서 앞으로도 고생 좀 하실 듯.
뭐 계속 투덜투덜대기는 했지만, 일단 위키드라는 작품 자체를 국내에서 라이센스로 공연한다는 자체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기에 기대만큼 걱정도 됐고 뭐 그런 거다.
배우들 얘기를 해보자면 이날 가장 큰 만족도를 준 배우는 정선아 씨와 김영주 씨. 내한 공연 볼 때도 사실 나는 주인공이 엘파바인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진 히로인은 글린다..? 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수지 글린다가 오죽 귀엽고 잔망스러웠어야 말이지.) 라이센스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옥주현 씨의 엘파바는 크게 기대한 것도 없음에도 기대한 거에 비하면 좀 모자랐고(음향탓도 좀 있다고 치자), 정선아 씨의 글린다는 기대를 엄청 했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더라. 아이다를 보면서도 이거 뮤지컬 암네리스 아니야 했더랬는데, 이번에도 정선아 씨는 참 자기에게 꼭 맞는 배역을 만나서 아주 시종일관 물 만난 고기처럼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본인만의 개성이랄수도 있는 그 특유의 밉지않은 자신만만함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사랑스럽고 백치미가 흐르지만 그게 멍청하게 보이지 않고 귀엽게만 보인다면 이미 콩깍지가 쓰인 거겠지. 진짜 글린다 등장 씬마다 내내 엄마 미소가 떠나지를 않더라.
그런데 이게 이 연출(리사 리구일로)의 의도인가 싶기도 한게 내한 때도 같은 연출가였어서, 그때도 난 글린다에만 시선이 갔더랬거든. 젬마의 엘파바가 나빴던 게 아님에도 수지의 글린다가 워낙에 사랑스러워서 뭐 저런 귀여운 생물이 다 있냐며 러브빔을 보내고 있었으니. 하여튼, 원래라면 엘파바가 주인공이고 글린다가 조금은 얄밉게 그려져야 할 거 같은데, 난 오히려 엘파바와 피에로의 사랑 얘기엔 마음이 팍 식어버려서 자체 스킵할 지경이라.
하여간 원래도 노래 참 잘하는 배우고, 기복없이 잘 하는 배우라 믿고보는 편인데, 그럼에도 글린다의 음역은 꽤 높아서 어떻게 잘 소화하려나 했는데, 성악 발성도 안정적으로 잘 내주는 편이다. 고음에서 소리가 가늘어지는 건 좀 있지만, 음향이 개선되면 좀 나으려나. 어제의 베스트 씬은 누가 뭐래도 Popular 하고, For good. 실제로도 옥주현 씨와 친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연기로도 이 둘의 우정과 신뢰,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찡하고 가슴이 울리더라. 누가 케미여왕 아니랄까봐 엘파바와 케미스트리도 무지 화끈하심. 박혜나 엘파바일 때 또 어떨지 궁금하다. 저 두 장면과 별개로 나한테 와닿았던 장면은 2막 오프닝인 Thanks goodness 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어떻게든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미소짓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모리블 학장 역의 김영주 씨도 굉장히 좋았다. 공연 초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완벽하게 모리블 학장을 파악하고 계셔서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지경. 분장이 분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캐릭터와 일체화되셨더라.
주인공인 엘파바 역의 옥주현 씨는 아직 무대 위에서 몸이 덜 풀린 느낌이다. 상당히 경직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엘파파 특유의 뻣뻣함이 아니라 배우가 긴장을 풀지 못한 것 같달지. 게다가 창법이나 강약을 두는 부분이 젬마를 떠오르게 할 정도였는데, 연출가의 디렉션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드는데, 배우 본인은 좀 불완전연소? 욕구불만? 일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런가 파워풀하게 지르는 부분에서 너무 확 질러버린다는 느낌. 엘파바의 감정선은 잘 따라가고 있는데, 아직까진 초록 피부가 아니라 초록 분장으로 보이는 정도. 분장이 들러붙어서 피부처럼 느껴지게 그렇게 변해갔으면 좋겠다.
남자 배우들 얘기를 해보면 피에로 역의 이지훈 씨는 공연에서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떤 사전 정보가 없었던 터라 생각보다 무난무난. 마법사 역의 남경주 씨는 잘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유의 숨소리 좀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보크역의 김동현 씨는 진짜로 기대이하. 좀 더 개성을 살려줬으면 좋겠다. 보크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무색무취한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지.
뭐 아쉬움도 있고, 만족한 부분도 있고 오픈런 공연이라 아무리 바빠도 달에 한 번은 보러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드는 나의 위키드 라이센스 첫 공연이었다.
+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엘파바와 글린다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잖아? 그런데 글린다는 인격적인 성숙이랄지 이런게 눈에 보이는데, 엘파바는 남자 만나서 소녀에서 여인이 됐다는 성장인 거? 왜냐면 엘파바는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정치적으로 바른(다양성의 존중, 편견에 의한 핍박 반대 등등)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엘파바에 이입이 안됐던 걸까.
일 시 : 13. 11. 22 ~ Open run
장 소 : 샤롯데씨어터
관극일 : 13. 11. 20 (수) 20:00
원 작 : 그레고리 맥과이어 作 위키드
연 출 : 리사 리구일로
캐스트 : 엘파바 - 옥주현, 글린다 - 정선아, 피에로 - 이지훈, 마법사 - 남경주, 마담 모리블 - 김영주, 네사로즈 - 이예은, 보크 - 김동현, 딜라몬드 교수 - 조정근 외
줄거리 :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셀러 ‘위키드’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다. 100년간 숨겨져 있던 오즈의 마녀들의 대한 이야기가 기막힌 반전으로 풀어진다.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이미 그곳에서 만나 우정을 키웠던 두 마녀가 주인공으로, 우리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초록마녀가 사실은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를 받는 착한 마녀이며, 인기 많고 아름다운 금발마녀는 사실 공주병에 내숭덩어리였다는 센세이셔녈한 상상력을 펼친다. 전혀 다른 두 마녀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그리고 두마녀가 어떻게 해서 각각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가 되었는가를 마법에 홀린듯한 매혹적인 스토리로 풀어낸다. [출처 > 플레이DB]
* 한 줄 요약 - 정선아 글린다 만세~!!
공연 보러가기 전 참 감개무량했다. 그동안 업무 때문에 관극을 거의 못하고, 그나마 잡아놨던 연극도 일 때문에 날리고, 진짜 뮤지컬 마지막으로 본 게 애비뉴Q 였으니, 몇 달 만에 찾는 샤롯데인지. ㅠㅠ 그래서 부러 프레스콜 기사도 안 보고, 후기도 안 읽고 오랜만에 뮤지컬 나들이라고 좀 들떴다. 예상대로 샤롯데는 초록색으로 장식되어 블링블링~ MD도 꽤 다양해서, JCS나 애비뉴Q 때도 MD의 다양함과 고퀄에 놀랐는데 이게 설컴의 영업방식이라면 환영일세. 뭐 이건 공연 전까지의 감상이고.
공식적으로 공연기간이 11/22 시작이라고 되어있으나 비씨 스페셜데이라는 명목의
작년에 내한 때도 느낀 건데, 이쪽 음향 팀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향은 최대한 배우들의 생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인가봉가. 아직 셋팅이 최적화된 게 아니라고 생각은 되지만, 최적화 된다고 한들 내 취향의 음향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중블 3열에서 들었을 때, 무대에서 배우의 생목소리가 들려오고 내 머리 뒷쪽 스피커에서 생목소리와 비슷한 크기로 마이크를 통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그런 느낌인데, 이게 느낌만이 아니라고 확신한 게, 2막에서 남경주 씨 대사 칠 때 한번 마이크가 늦게 들어와서 생목소리가 그대로 나오고 곧바로 마이크 켜지고 나오는 소리가 그렇게 겹쳐서 들리더라. 하여튼 배우의 목소리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증폭하지 않고 필터도 거치지 않고 전달하는 게 목표라면 성공이네.....는 개뿔. 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어디까지 어떻게 내야하는지 감을 못잡고 중간 중간 소리가 작아졌다 갑자기 커지고, 출력이 불안정해서 듣는 입장에서 괴롭다고. 에코를 최대한 절제해서 건조한 소리를 내는 건 그쪽 취향인지 모르니 존중해준다고 쳐도 음량이 왔다갔다 하는 건 좀 고쳐줬으면 좋겠고, 적어도 디파잉에서만큼은 홀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음향을 들려줬으면 좋겠다. 어제는 배우가 너무 생목으로 지르는 걸 듣고 있자니 안됐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리고 처음 내한 공연 봤을 때 가장 감탄한 것 중 하나가 자연스러운 무대 전환이었는데, 이 부분은 무대 장치뿐만 아니라 앙상블 배우들의 호흡, 무대 크루의 숙련도와 관련있는 부분이라, 이런 노하우를 국내 스텝들이 잘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만큼 전수가 됐을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매끄럽게는 되지 않아서 이게 공연 초반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 손에 익으면 좀더 부드럽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아, 또 날아다니는 원숭이하시는 배우분들 충분히 연습하셨겠지만, 안전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시길. 오프닝 때 줄에 매달려 한바퀴 빙 돌고 내려오는 분은 무대 장치와 부딪칠 뻔해서 손으로 한 번 밀던데 조마조마하더라.
번역은 내한 때 자막으로 봤던 부분에서 좀 다듬는 수준으로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구석이 좀 아쉽기는 하다. Green이야 초등학생도 아는 단어라지만, Popular, Unlimited 같은 거는 좀.... 그렇다고 Popular를 인기인 쯤으로 번역했으면 그건 더 싫었을 거 같기는 한데. 이래서 번역은 이래저래 참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노래가 되면 가락 안에 가사를 끼워맞춰야 하니 더 어렵지. 그래서 그런가 어제 공연을 보면서 가사의 30%는 그냥 못알아듣고 넘긴 거 같다. 중요한 내용은 대충 아니까 어떤 가사 내용일지 상상은 가는데, 내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아서. 뭐 음향 탓도 있어서 오프닝 곡인 No one mourns the Wicked 에서 앙상블 떼창 반은 날린 듯;
앙상블 얘기 나온 김에. 일단 다들 너무 생목소리로 지르는데, 음....이게 음향탓인 건지, 앙상블 소리의 풍성함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3열에 있으면 맨 앞(보조 무대) 으로 튀어나온 앙상블 목소리는 마이크 통한 목소리가 아니라 생목소리가 그대로 들린다;; 춤 추는 장면은 아직 무대에 덜 익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화려함이 덜하고, 좀 굳어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 같기도 하고. One short day에서 리본 휘두르는 분, 의상에 걸려서 한동안 좀 당황하시던데, 맨 처음 혼자 등장해서 리본을 휘날려야 하는 역이라 그 실수가 참 너무 눈에 띄여서; 옷이 장식도 엄청나고 걸릴 구석이 많아서 앞으로도 고생 좀 하실 듯.
뭐 계속 투덜투덜대기는 했지만, 일단 위키드라는 작품 자체를 국내에서 라이센스로 공연한다는 자체가 참 대단하다 생각했기에 기대만큼 걱정도 됐고 뭐 그런 거다.
배우들 얘기를 해보자면 이날 가장 큰 만족도를 준 배우는 정선아 씨와 김영주 씨. 내한 공연 볼 때도 사실 나는 주인공이 엘파바인 줄 알고 갔는데, 알고보니 진 히로인은 글린다..? 라는 생각을 했던 터라 (수지 글린다가 오죽 귀엽고 잔망스러웠어야 말이지.) 라이센스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선 옥주현 씨의 엘파바는 크게 기대한 것도 없음에도 기대한 거에 비하면 좀 모자랐고(음향탓도 좀 있다고 치자), 정선아 씨의 글린다는 기대를 엄청 했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주더라. 아이다를 보면서도 이거 뮤지컬 암네리스 아니야 했더랬는데, 이번에도 정선아 씨는 참 자기에게 꼭 맞는 배역을 만나서 아주 시종일관 물 만난 고기처럼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본인만의 개성이랄수도 있는 그 특유의 밉지않은 자신만만함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사랑스럽고 백치미가 흐르지만 그게 멍청하게 보이지 않고 귀엽게만 보인다면 이미 콩깍지가 쓰인 거겠지. 진짜 글린다 등장 씬마다 내내 엄마 미소가 떠나지를 않더라.
그런데 이게 이 연출(리사 리구일로)의 의도인가 싶기도 한게 내한 때도 같은 연출가였어서, 그때도 난 글린다에만 시선이 갔더랬거든. 젬마의 엘파바가 나빴던 게 아님에도 수지의 글린다가 워낙에 사랑스러워서 뭐 저런 귀여운 생물이 다 있냐며 러브빔을 보내고 있었으니. 하여튼, 원래라면 엘파바가 주인공이고 글린다가 조금은 얄밉게 그려져야 할 거 같은데, 난 오히려 엘파바와 피에로의 사랑 얘기엔 마음이 팍 식어버려서 자체 스킵할 지경이라.
하여간 원래도 노래 참 잘하는 배우고, 기복없이 잘 하는 배우라 믿고보는 편인데, 그럼에도 글린다의 음역은 꽤 높아서 어떻게 잘 소화하려나 했는데, 성악 발성도 안정적으로 잘 내주는 편이다. 고음에서 소리가 가늘어지는 건 좀 있지만, 음향이 개선되면 좀 나으려나. 어제의 베스트 씬은 누가 뭐래도 Popular 하고, For good. 실제로도 옥주현 씨와 친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 연기로도 이 둘의 우정과 신뢰,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찡하고 가슴이 울리더라. 누가 케미여왕 아니랄까봐 엘파바와 케미스트리도 무지 화끈하심. 박혜나 엘파바일 때 또 어떨지 궁금하다. 저 두 장면과 별개로 나한테 와닿았던 장면은 2막 오프닝인 Thanks goodness 였는데,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어떻게든 밝고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미소짓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모리블 학장 역의 김영주 씨도 굉장히 좋았다. 공연 초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만큼 완벽하게 모리블 학장을 파악하고 계셔서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지경. 분장이 분장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캐릭터와 일체화되셨더라.
주인공인 엘파바 역의 옥주현 씨는 아직 무대 위에서 몸이 덜 풀린 느낌이다. 상당히 경직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게 엘파파 특유의 뻣뻣함이 아니라 배우가 긴장을 풀지 못한 것 같달지. 게다가 창법이나 강약을 두는 부분이 젬마를 떠오르게 할 정도였는데, 연출가의 디렉션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드는데, 배우 본인은 좀 불완전연소? 욕구불만? 일 것 같더라. 그래서 그런가 파워풀하게 지르는 부분에서 너무 확 질러버린다는 느낌. 엘파바의 감정선은 잘 따라가고 있는데, 아직까진 초록 피부가 아니라 초록 분장으로 보이는 정도. 분장이 들러붙어서 피부처럼 느껴지게 그렇게 변해갔으면 좋겠다.
남자 배우들 얘기를 해보면 피에로 역의 이지훈 씨는 공연에서 만난 적이 없어서 어떤 사전 정보가 없었던 터라 생각보다 무난무난. 마법사 역의 남경주 씨는 잘 어울리는 배역이라고 생각하는데, 특유의 숨소리 좀 어떻게 해주셨으면 좋겠다. 보크역의 김동현 씨는 진짜로 기대이하. 좀 더 개성을 살려줬으면 좋겠다. 보크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무색무취한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지.
뭐 아쉬움도 있고, 만족한 부분도 있고 오픈런 공연이라 아무리 바빠도 달에 한 번은 보러가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드는 나의 위키드 라이센스 첫 공연이었다.
+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엘파바와 글린다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잖아? 그런데 글린다는 인격적인 성숙이랄지 이런게 눈에 보이는데, 엘파바는 남자 만나서 소녀에서 여인이 됐다는 성장인 거? 왜냐면 엘파바는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정치적으로 바른(다양성의 존중, 편견에 의한 핍박 반대 등등)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엘파바에 이입이 안됐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