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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일   시 : 2011. 11. 23 ~ 2011. 12. 11
장   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 : 2011. 11. 26 (토) 15:00
연   출 : 김정옥, 원작 : 윌리엄 포그너, 각색 : 알베르 까뮈
캐스트 : 템플 - 김성녀, 남편 고완 - 이호성, 변호사 스티븐슨 - 오영수, 난시 - 전국향, 간수 뚜브 - 권병길, 주지사 - 변주현, 피터 - 강진휘
줄거리 :
첫 무대는 법정.
영아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여성 난시. 살해한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꼭 다문채 다만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이 흑인여성과 죽은 영아의 어미이자 난시의 고용인인 백인 여성 템플, 그리고 그녀의 남편 고완, 이들 사이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며, 왜 템플은 자신의 아이를 죽인 여성을 변호해야만 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인가...[출처 > 플레이DB]

김성녀 씨의 차기작이라는 소식에 뒤도 안돌아보고 예매. 게다가 11/27 까지는 프리뷰 기간이라고 40% 할인을 끼얹어주니 이 기간중에 꼭 봐야해~ 하다보니, 이런 무리한 스케줄. 아무리 내가 요즘 달린다고 해도,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안 빼고 공연 스케줄 잡힌 건 진짜 이번이 처음이지만, 마지막이고 싶다. ㅠ.ㅠ 햄릿 회전문 도는 기간에 다른 공연 안 잡으려고 공연 기간 긴 것들은 다 뒤로 밀었는데, 짧게 올라오는 것들은 그렇게도 못하고. 진짜 기간 안 맞아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렇게 연일 달리는 건 좋지 않다. 감정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아, 그리고 결심했다.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열은 가지않기로. 지난번에 해무를 볼 땐 3열이라 별 고충없이 극을 관람했는데, 단차가 없으면 좌석이라도 지그재그로 배치해주지, 정말 앞에 앉은 정서장애 남자 사람 때문에 내내 시야방해받아 집중이 안되더라. 애인따라 온 거 같은데, 그놈의 머리며 몸이며 단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하더라. 1열에 앉아서 그러고 싶냐. 내 왠만하면 관크가지고 후기를 안쓰는데, 진짜 오늘은 어찌나 화가 나던지.

무대는 간소했고, 화면 전환은 음울한 재즈 선율과 함께 무대 뒤 벽면에 영상을 통해 장소의 전환을 보여줬는데, 이걸 굳이 대극장에 올려야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좀 들었다. 그리고 오늘 극장 안이 어찌나 추운지, 날씨도 이런데 난방을 아예 안한건지, 극장 안에서 목도리까지 두르고 본 건 처음이었다.

극은 참 대사가 많았다. 각 배우별로 소화해야 할 대본의 양이 상당했을 듯. 그것도 일상어가 아니라 책에서나 나올 법한 문어체 대사가 줄줄이 나오는데, 이거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했다던가. 좀 더 자연스러운 극을 좋아하다보니, 이렇게 나 연극이요 하는 문어체 대사는 좀 부담스럽더라. 대사량이나 현학적이기로는 레드도 만만찮았지만, 그래도 레드는 어렵다는 생각이 안들었는데, 이 연극은 오히려 문학적이고, 추상적인, 은유와 비유가 섞인 표현들이 어렵게 느껴졌다.

고완 역의 이호성 씨는 겉으로는 성인군자입네 하며 사실은 그저 소인배였을 뿐인 찌질한 남편 역으로 열연해주셨는데, 그 혀를 자꾸 낼름거리셔서 신경이 쓰였다. 그게 습관이신건지, 그냥 입이 마르셔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난 어떤 버릇 같은 걸 보이는 배우의 극은 집중을 못하겠단 말이지. (내가 왜 용릿을 한 번 보고 그만뒀는데;)

김성녀 님의 연기는 어딘가 벽속의 요정에서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건 배우가 가진 개성 중의 하나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느 장면에서 감정선을 확 끌어올려, 극의 밀도가 확 올라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의 몰입도는 정말 이분을 따라올 자가 없는 거 같다. 그저 밋밋하게 흘러가는 극을 지켜보다가 그 한 순간 그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순간적으로 울컥하게 만드시는데, 아주 탄복했다. "어째서 거짓말을 멈출 수 없을까요."라는 대사 한 마디에 그녀가 가진 근원적인 공포와 치열한 갈등 같은 게 느껴져서 눈물이 또르르.

진실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들 한다. 그게 아무리 잔인하고 더럽고 추잡하더라도 그 진실에서 눈돌리고 싶어지는  본능을 어떻게든 이성으로 눌러두고, 우리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진실에서 눈 돌려서 더 큰 불행을 불러올 바에는.
최근에 본 극은 다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ps. 어느새 블로그 방문자 수가 저렇게 훌쩍 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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