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11.05 11. 11. 04 - 해무
해무(海霧)

일   시 : 2011. 11. 04 ~ 2011. 11. 20
장   소 :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관극일 : 2011. 11. 04 (금) 20:00
연   출 : 안경모, 작가 : 김민정
캐스트 : 완호 - 신철진, 선장 - 김용준, 경구 - 유인수, 호영 - 권태건, 창욱 - 나종민, 동식 - 송새벽, 율녀 - 박해영, 홍매 - 손수정, 오남 - 박동욱, 길수 - 이효상
줄거리 :
공미리 잡이를 하는 전진호의 선원들은 이번 조업이 매우 중요하다. 거듭된 조업실패로 선장과 선원들의 상황은 극단으로 내몰렸다. 이번 조업이 실패하면 전진호는 없어질 것이다. 마지막 희망을 안고 ‘전진호’는 출항한다. 만선을 꿈꾸던 그들에게 다가오는 실패의 그림자.‘전진호’에서 오랜시간 고락을 함께해 온 선원들이지만 중요한 이번 조업마저 순탄치 않자 대립과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게다가 궁지에서 벗어날 수단으로 밀항하는 조선족을 승선시키면서 갈등은 무한대로 증폭된다. 그러나 심한 풍랑과 해경선을 피하는 동안 조선족들은 어창에서 집단으로 질식사한다. 한편 기관실에서 선원 동식과 사랑의 꽃을 피운 조선족 홍매는 목숨은 건졌으나, 선원들이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사건은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출처 > 플레이DB]

바다가 아닌 곳이라도 짙은 안개가 서리면 그렇게 막막하고 두려울 수가 없다. 영화 미스트를 떠올려보라.
나는 짙은 안개가 낀 날 고작 30m도 안되는 다리 앞에서 건너편 동네가 안 보이는 현상도 경험해봤고, 한번은 저녁 무렵 산길을 자동차로 지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고 비상등만 켠 채로 포켓에 차를 세워둔 풍경도 본 적이 있다. 단단한 땅이 받치고 있는 지상에서도 이럴진데, 망망대해 바다 위에서 안개에 갖힌다는 건 정말 어떤 느낌일까.
극의 시작은 암전과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데,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이거였다.

바다에서 해무에 둘러싸인다는 것, 그것은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과 같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으면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속에선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위에 어선의 반쪽이 보이는데, 이 어선이 빙글빙글 회전을 한다. 시작하는 장면에서 그 위용이 드러나는데, 정말 배가 출항하는 것 같은 느낌. 관객이 그 배에 같이 승선해서 바다로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소극장에 올렸던 극을 4번째 올리면서 대극장으로 옮겼다는데, 저 어선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한 것 같다.

정말 뱃사람들을 데려다 놓은 것 같은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와 숨이 막힐 것 같은 안개, 그리고 감정들의 부딪힘. 극한 상황으로 치달아가는 속에 하나 둘 이성이 마비되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선원들.
잘해보려고 무리수를 둔 것이 계속해서 어긋나기만 하고, 그걸 덮으려 더 큰 무리수를 두고. 어째서 인간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걸까. 참 이상하지. 딱 한 발짝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판단이 가능한 문제를 그 상황에 빠져있을 땐 눈앞의 문제를 해결도 아니고, 치워버리는데만 급급해서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하지 못하는 거다.

한 배를 탔으니, 모두를 위해 이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가장 최악의 선택지를 선택한 그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고 해야할까, 사람이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해야할까. 하여간 두번은 못보겠다 싶더라.

송새벽의 연기는 원래 이랬었구나. 방자전과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보여줬던 모습의 원본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완호 아재 역의 신철진 씨는 연륜이 묻어나오는 연기를 선보여주셨고, 어쩌다 눈치챘는데, 한쪽 다리가 의족이신듯. 그런데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다니 놀라웠다. 
내가 가장 감탄했던 건 경구 역의 유인수 씨. 시종일관 에너지가 필요한(넘치는-이 아니다)역이었다. 전진호에서 가장 삐딱한 선원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길을 가려고 애를 쓰던 사람이라는 게 아이러니. 오히려 성실한 갑판장 호영이 가장 먼저 사람의 길을 저버린다는 것도. 그렇게 경구와 호영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숨도 못쉬게 긴장감이 팽배한다. 그리고 인디아 블로그에서 한 번 얼굴을 익힌 박동욱 씨. 그다지 비중이 있는 역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보니 반갑더라.
그외에 조선족으로 나오신 배우분들은 내 선입견인가 모르겠는데, 여주인공 홍매 역의 손수정 씨를 제외하면 조선족 말투가 너무 어색하시더라.

요즘 대학로에는 주로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런 어둡고, 무거운 리얼리즘 정극이 올라온 게 어떤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아서 좋다. 역시 연우무대.
그래도 두번은 못볼듯;;
이전버튼 1 이전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