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드 님 댁에서 이런 글을 보고 그냥 이것 저것 생각나길래.
내가 처음으로 일본어를 배워볼까~ 하고 손을 댄 것은 대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일어통역과였는데, 안 그래도 당시에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제이락 쪽에 관심이 많아서 함 해볼까 하는 어중간한 마음으로 책을 하나 소개받았다. 나야 어떤 책이 좋은 지 알 수 없으니, 친구가 이것저것 보다 골라준 책이 '시사엘리트 일본어 기초'라는 책이었다. 일단 오십음도부터 외우라는 말에 히라가나 가타카나 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3일만에 포기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취직을 하고, 일본어 공부를 해보겠다고 몇 번 작심삼일 프로젝트를 발동시켰지만, 끝내 혼자 할 수 있었던 건 これはなんですか? あれはあなたのですか? 정도. 이 때도 실은 슬램 동인이라든가 원서에의 유혹이 많아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했지만, 끝내 귀차니즘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나의 일본어 공부가 갑자기 본격적이 된 건 모두 "십이국기"탓(?)이다.
어느 날, siva 님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판타지 소설 십이국기. 여고생 버전 베르세르크라는 평가와 함께 그 진창(?)에 떨어져버린 독자 한 사람. 조은세상이라는 출판사와 라이센스 계약이 성사됐다고 해서 책이 나오기를 학수고대, 한 권 한 권 나올 때마다 서점으로 달려가 사 모았더랬다. 밭 갈고 씨 뿌리는 편집이나 문고판의 을 무리하게 신국판에 맞추느라 흐려지고 왜곡된 삽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십이국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십이국기 8권 부터는 라이센스 계약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 다음권 출판이 불투명하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이미 11권까지 출판되어 나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드디어 결심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일본어 배워서 원서 읽고만다.
그래서 수~ 년 전에 친구가 골라준 책을 다시 집어들고 오십음도부터 다시 외웠다. 일단 오십음도를 외우고나니 책 읽는 것이 전보다 조금 수월해져서 이 책을 다 독파하고 나면 내 십이국기를 주문해서 읽어야지 라고 다부진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기초는 뗀 게 아닌가 스스로 자화자찬 하고 있을 때, 나는 다카드 님이 받은 충격과 맞먹는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를 일본어로 선택했다는 선배 언니 A로부터 였는데,
A : 일본어 공부하더라.
나 : 네. 이제 기초만 조금.
A : 얼마나 했나, 한 번 해봐.
나 : (조금 실력을 뽐내고 싶은 마음에) 와타시와가쿠세이데스.
A : 응? 가쿠세이가 아니라 각세에지.
나 : 가쿠세이라고 써있었는데.
A : 사행 앞에 오는 카행은 받침처럼 발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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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아무튼 이 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나면, 나는 지금도 約束 라는 단어를 읽을 땐 지금도 한 박자를 쉰다.
처음엔 그저 읽고 뜻만 알면 된다고 생각했다. 허나 언어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비로소 깨닫고 그제야 나는 테이프 딸린 교재를 수배하기에 이르렀다. 무슨 일본어 왕초보 어쩌고 하는 테이프가 3개 딸린 회화책을 선택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확실히 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듣기를 병행하는 편이 훨씬 효율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여기 에 있으니 다시 적지는 않겠다.
하여간에 혼자 공부하는 데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으니,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거든 좋은 선생님을 만나거나 제대로 된 교재를 선택할 일이다. (이상한 결론;)
ps. 집 컴퓨터가 또 말썽입니다. ㅠ.ㅠ